도참에 대한 일이의 고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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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석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0월 22일 (화) 13:07 판 (본문2: 도참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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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참에 대한 일이의 고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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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圖讖에 對한 一二의 考察(一)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10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이병도 역자 집필일자 게재연월 1939년 4
시작쪽 001쪽 종료쪽 018쪽 전체쪽 018쪽 연재여부 단독 범주 논문 분야 민속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목차







본문


본문1: 서언


도참은 일종의 미신 혹은 신비사상에 속하는 것이고, 이것의 신앙 조작 내지 유행은 동양사상 특히 중국 및 조선사상에 있어 일층 많이 발견되는 사상이며, 더욱 그 정치·사회사의 이면에 있어, 때때로 밀접한 교섭을 가지는 것이니, 종래 이런 류의 사상은 종종의 신비적 언설에 의하야 인심을 충동 혹은 지배하야 종종의 공능(功能)을 행사하였을 만큼 실제생활에 끼친 영향은 실로 적지 아니하였다. 한 왕조가 일어나고 거꾸러지는 소위 ‘역성혁명’의 큰 변동기에 있어서는 물론이요, 기타 내환외우로 시국이 불안한 때에도 이런 종류의 사상은 반드시 머리를 듣고 활보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정치(개혁)운동, 민중(갱생)운동의 지도자 자신이 이를 이용 혹은 조작하여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민중을 기만하고 구사(驅使)하며 민중은 이에 맹신, 맹종하여 얼마나 많은 성패득실의 자취를 역사상에 남기어 놓았는지 모른다. 저 왕망인물(王莽)의 찬위, 광무인물(光武)의 중흥을 비롯하여 중국 역대의 역성의 때에 도참의 유작(遺作) 혹은 이용 유행을 보지 아니한 적이 없었고, 또 황건(黃巾), 백련(白蓮) 기타의 비밀결사적 운동이 순연히 이러한 사상으로 색채되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우리 동방에 있어서도 옛적 삼국의 쇠망의 때라든지, 더구나 고려 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조의 초중말엽에도 이런 사상과의 교섭이 얼마나 잦았으며, 특히 최근세의 동학교문의 운동과 같은 것은 마치 중국의 백련교, 의화권교(義和拳敎)의 운동과 방불한 감을 주게 하는 것으로, 이 역시 도참적 요소를 다량으로 가미하였던 것이다. 중국의 소위 『공자폐방기서적(孔子閉房記)』니 『추배도서적(推背圖)』니 하는 것과 고려조의 『도선비기서적(道詵秘記)』 따위 이조의 『정감록서적(鄭鑑錄)』 따위의 도참서류는, 식자계급, 무식자계급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인심을 미혹하여 종종의 폐해를 끼치었으며, 이런 까닭에 혹은 도참 배척의 성과 금지의 령이 행치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 워낙 그 신앙 및 사상의 뿌리가 인간 심리에 깊이 밝히어 있는 만큼 잠재적 세력을 가지고 기회를 따라 재현의 작용을 함이 보통이었다. 도참에 대한 사상사적 방면의 연구는 오인에게 과여된 중요한 제목임에 불구하고 재래 학자의 학술적 고찰을 거치지 아니하였으며, 현금에도 이에 대하여 연구하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 나의 과문으로는 듣지 못하였다. 나는 연래 이 방면 연구에 다소의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어 간간이 사고의 일단을 발표하여 왔거니와, 이번에는 특히 도참 그것의 개념에 대하여―즉 그 의의, 유별 및 기원에 대하여―약간의 고찰을 시하려 한다.
쪽수▶P001-1圖讖은 一種의 迷信 혹은 神祕思想에 屬하는 자이어니와, 이것의 信仰 造作 乃至 流行은 東洋史上 特히 中國 及 朝鮮史上에 있어 一層 많이 發見되는 事象이며, 더욱 그 政治·社會史의 裏面에 있어, 때때로 密接한 交涉을 가지는 것이니, 從來 이런 類의 思想은 種種의 神秘的 言說에 依하야 人心을 衝動 혹은 支配하야 種種의 功能을 行使하였는 이만치 實際生活에 끼친 影響은 實로 적지 아니하였다. 한 王朝가 일어나고 거꾸러지는 所謂 『易姓革命』의 큰 變動期에 있어서는 勿論이요, 其他 內患外憂로 時局이 不安한 때에도 이런 種類의 思想은 반드시 머리를 듣고 闊步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政治(改革)運動 民衆(更生)運動의 指導者 自身이 이를 利用 혹은 造作하야 自己편에 有利하▶P002도록 民衆을 欺瞞하고 驅使하며 民衆은 이에 盲信 盲從하여 얼마나 많은 成敗得失의 자취를 歷史上에 남기어 놓았는지 모른다. 저 王莽의 簒位, 光武의 中興을 비롯하여 中國 歷代의 易姓의 際에 圖讖의 遺作 혹은 利用 流行을 보 지 아니한 적이 없었고, 또 黃巾 白蓮 其他의 秘密結社的 運動이 純然히 이러한 思想으로 色彩되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우리 東方에 있어서도 옛적 三國의 衰亡의 際라든지, 더구나 高麗 一代는 말할 것도 없고, 李朝의 初中末葉에도 이런 思想과의 交涉이 얼마나 잦았으며, 特히 最近世의 東學敎門의 運動과 같은 것은 마치 中國의 白蓮敎 義和拳敎의 運動과 枋佛한 感을 주게 하는 것으로, 이 역시 圖讖的 要素를 多量으로 加味하였던 것이다. 中國의 所謂 『孔子閉房記』니 『推背圖』니 하는 것과 高麗朝의 『道詵秘記』 따위 李朝의 『鄭鑑錄』 따위의 圖讖書類는, 識者階級 無識者階級을 莫論하고 오랫동안 인심을 迷惑하여 種種의 弊害를 끼치었으며, 이런 까닭에 혹은 圖讖排斥의 聲과 禁止의 令이 行치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 워낙 그 信仰 及 思想의 뿌리가 人間心理에 깊이 밝히어 있는 이만치 潜在的 勢力을 가지고 機會를 따라 再現의 作用을 함이 普通이었다. 圖讖에 對한 思想史的 方面의 研究는 吾人에게 課與된 重要한 題目임에 不拘하고 在來 學者의 學術的 考察을 거치지 아니하였으며, 現今에도 이에 對하여 硏究하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 나의 寡聞으로는 듣지 못하였다. 나는 年來 이 方面 硏究에 多少의 興味와 關心을 가지게 되어 間間이 私考의 一端을 發表하여 왔거니와, 이번에는 特히 圖讖 그것의 槪念에 就하여―즉 그 意義 類別 및 起源에 就하여―若干의 考察을 試하려 한다.





































본문2: 도참의 의의


도참은 즉 도(圖)와 참(讖)과의 연칭어(連稱語)로서, 단히 이를 도라고도 하고 참이라고도 하며 또 위(緯)와 결합하야 도위(圖緯), 참위(讖緯)라고도 하는 것이나, 도참과 위는 후에 말할 바와 같이 본래 본질을 달리하고, 처음에는 반드시 교섭이 있던 것도 아니며, 그 용어에 있어서도 ‘도참’ 편이 ‘도위’나 ‘참위’의 어보다는 좀 먼저 나타나고 또 널리 사용되어 온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특히 도참이란 용어를 쓰기로 하였다. 그러면 도참이란 무엇인가?
쪽수▶P003-1圖識은 즉 圖와 讖과의 連稱語로서, 單히 이를 圖라고도 하고 讖이라고 도하며 또 緯와 結合하야 圖緯 讚緯라고도 하는 것이나, 圖讖과 緯는 後에 말할 바와 같이 본래 本質을 달리하고, 처음에는 반드시 交涉이 있던 것도 아니며, 그 用語에 있어서도 『圖讖』편이 『圖緯』나 『讚緯』의 語보다는 좀 몬저 나타나고 또 널리 使用되어 온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特히 圖讖이란 用語를 就하기로 하였다. 그러면 圖讖이란 무엇인가?
도참이 무엇인가를 좀 자세히 상고하려면 그 용어의 의의로부터 전색(詮索)할 필요가 있고, 또 그리함에는 각기 글자의 오랜 용어 문례와 그 본질적 어의를 캐어, 이 두 글자의 연합된 소이를 밝히어 봄이 편리할 듯하다. 나의 고구의 편의상, 먼저 참(讖) 자에 대하여 조사하고 생각하여 보자.
쪽수▶P003-2圖讖이 무엇인가를 좀 仔細히 상고하려면 그 用語의 意義로부터 詮索할 必要가 있고, 또 그리함에는 각기 글자의 오랜 用語文例와 그 本質的 語義를 캐어, 이 두 글자의 連合된 所以를 밝히어 봄이 便利할 듯하다. 나의 考究의 便宜上, 먼저 讖字에 就하여 조사하고 생각하여 보자.
오늘날 전래의 문헌으로서 참(讖) 자가 나타나는 가장 오랜 것을 든다면, 제일 먼저 사기서적권43 조세가(趙世家)에―편작(扁鵲)이 조간자(趙簡字)의 병을 보고 나와서 고하는 말이란 기재 중에―“在昔 秦繆公嘗如此七日而寤 寤之日 告公孫支與子輿日 我之帝所甚樂 (中略) 帝告我 晉國將大覇○獻公의 亂 五世不安 其後將覇○文公 未老而死 霸者之子○襄公 且令而國○秦公 男女無別 公孫支 書而藏之 秦讖(●●)於是出矣”라 한 진참(秦讖)과 회남자서적(회남자서적)권16 설산훈(說山訓) 중에 “六畜生 多耳目者不祥 讖書(●●)著之”라 한 참서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사기서적의 소위 ‘진참(秦讖)’은 그 내용의 믿기 어려움은 별문제로 하고―같은 책서적권105 편작전(扁鵲傳)에 보이는 동일 기사 중에는 ‘진책(秦策)’으로 되어있다. 참(讖) 자가 선진(先秦) 문헌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차라리 ‘진책(秦策)’이 원 사료 그대로의 면목을 전하는 것 같고 ‘진참’의 참은 사기 찬자의 손에 개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거니와, 그는 어떻든 이러한 경우의 ‘책(策)’과 참(讖)과는 물론 의미 상통의 것으로 공히 일종의 신탁(oracle), 몽조(omen from dream) 혹은 천계(divine revelation)를 기록한 간책(簡冊)의 위(謂)인 듯, 그중 책(策)에는 간찰(簡札)‧저서(著筮)‧부첨(符籤)의 뜻이 있으므로 이는 확실히 신의 음신(message), 점언(占言) 등을 적은 간찰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회남자의 소위 ‘참서(讖書)’는 서이징험(瑞異徵驗)에 관한 책으로서, 별언하면 징조(omen)의 길흉을 판단하는 책인 듯하다. 다음에 한서서적권48 가의전(賈誼傳)을 보면 같은 사람의 악부(鶚賦) 중에 “異物來崪 私怪其故 發書占之()言 其度”라 한 참(讖) 자가 보이는데, 사기서적권84 같은 사람의 전의 같은 글 중에는 참(讖) 자가 역시 책(策) 자로 되어있다. 물론 이것도 책(策) 자가 original이요 참(讖) 자는 한서서적 찬자의 개치한 바로 볼 것이어니와, 여기의 책(策)은 구책(龜策), 시책(蓍策)의 책으로 점을 의미한 것이며 참(讖)은 책(策)의 사(辭), 다시 말하면 점사 그것이다. 즉 이런 경우의 참(讖) 자와 책(策) 자는 점 또는 점언이란 의미로 통용된 것인 듯하다. 참(讖) 자의 발명이 어느 때에 되었는지는 자세치 아니하나 현존한 문헌으로는 우의 사기서적·회남자서적의 기사로써 그 초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전한 말기에는 이 방면의 전문가와 전문서적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한서서적의 이즈음에 관한 기사 중에는 참(讖) 자가 더러 나오게 된다. 한서서적권11 애제기(哀帝紀) 건평 2년조에 대조하(待詔夏) 하랑(賀良) 등의 상언 중에는 赤精子之讖(○○○○○) 漢家歷運中衰云云”의 句가 있고, 같은 책서적권75 이심전(李尋傳)에 의하면 이 앞서 성제(成帝) 때도 제인(齊人) 감충가인물(甘忠可)란 자가 있어 역시 이 참설을 창하야 “天帝使眞人赤精子下敎我此道”라고 한 것이 적히어 있다. 소위 ‘적정자(赤精子)의 참’은 그 표방으로서는 역시 일종의 신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도 천제·진인에 가탁(●●)하야 한실의 역운을 말한 보통의 예언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또 같은 책서적권99 왕망전(王莽傳)을 보면 지황(地皇) 2년조에는 복자왕황(卜者王況)이 이언인물(李焉)이란 자를 위하여 참서(○○)를 지어 “유(劉)씨가 부흥하고 이 씨가 그를 도으리라”는 말을 한 것이 있고, 경시(更始) 원년조에도 도사 서문군혜인물(西門君惠)란 자가 천문참기(天文讖記)(○○○○○○○○)를 좋아하여 장군 왕섭인물(王涉)을 위하여 말하기를 “星孛掃宮 劉氏當復興云云”이라고 하였다는 것이 적히어 있다. ‘유씨부흥’의 설은 당시에 성행하는 참설이어서 완인(宛人) 이통인물(李通) 등도 이런 설로써 유수(광무제)인물를 충동하여 마침내 거사를 하게 한 것은 유명한 사실로, 후한서서적권1 광무기(光武紀) 첫 장에 “宛人李通等 以圖讖(○○)說光武云 劉氏復與 李氏爲輔云云”이라고 하여 있거니와, 이들 참서·참기·도참은 역시 복서(卜筮) 또는 천문에 의하여, 혹은 귀신에 가탁하여, 당시 유 씨의 재흥을 예언하고 또 이를 자극케 한 일종의 부명설(符命說)이었다. 도참이란 말은 같은 후한서서적에, ‘도위’, ‘참위’라는 말과 함께 거의 매거키 어려울 만치 많이 나오지만, 한서서적 왕망전 평제 원시 4년의 기사 중에도 이 ‘천문도참’이라는 말이 보이나 현존 문헌으로는 이것이 초견이라고 할 수 있다.
쪽수▶P003-3今日 傳來의 文獻으로서 讖字가 나타나는 가장 오랜 것을 든다면, 第一 먼저 史記卷四十三 趙世家에―扁鵲이 趙簡字의 病을 보고 나와서 告하는 말이란 記載 中에―『在昔 秦繆公嘗如此七日而寤 寤之日 告公孫支與子輿日 我之帝所甚樂 (中略) 帝告我 晉國將大覇○獻公의 亂 五世不安 其後將覇○文公 未老而死 霸者之子○襄公 且令而國○秦公 男女無別 公孫支 書而藏之 奏讖(●●)於是出矣』라 한 秦讖과 淮南子卷十六 說山訓 中에 『六畜生 多耳目者不祥 讖書(●●)著之』라 한 讖書를 들 수 있다. 그런데 史記의 所謂 『秦讖』은 그 內容의 믿기 어려움은 別問題로 하고―同書卷百五 扁鵲傳에 보이는 同一 記事 中에는 『奏策』으로 되어있다. 讖字가 先秦文獻에 全혀 나타나지 안는 것으로 보면 차라리 『奏策』이 原史料 그대로의 面▶P004目을 傳하는 것 같고 『秦讖』의 讖은 史記 撰者의 손에 改筆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거니와, 그는 어떻든 이러한 境遇의 『策』과 讖과는 勿論 意味 相通의 것으로 共히 一種의 神託(oracle) 夢兆(omen from dream) 혹은 天啓(divine revelation)를 記錄한 簡冊의 謂인 듯, 就中 策에는 簡札‧著筮‧符籤의 意가 있으므로 이는 確實이 神의 音信(message) 占言 等을 적은 簡札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淮南子의 所謂 『讖書』는 瑞異徵驗에 關한 書로서, 別言하면 徵兆 (omen)의 吉凶을 判斷하는 書인 듯하다. 다음에 漢書卷四十八 賈誼傳을 보면 同人의 鶚賦 中에 『異物來崪 私怪其故 發書占之()言 其度』라 한 讖字가 보이는데, 史記卷八十四 同人傳의 同文 中에는 讖字가 역시 策字로 되어있다. 勿論 이것도 策字가 original이요 字는 漢書 撰者의 改置한 바로 볼 것이어니와, 여기의 策은 龜策 蓍策의 策으로 占 意味한 것이며 讖은 策의 辭, 다시 말하면 占辭 그것이다. 즉 이런 境遇의 讖字와 策字는 占 또는 占言이란 意味로 通用된 것인 듯하다. 讖字의 發明이 어느 때에 되었는지는 자세치 아니하나 現存한 文獻으로는 우의 史記 · 淮南子의 記事로써 그 初見이라고 할 수 있으며, 前漢 末期에는 이 方面의 專門家와 專門書籍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漢書의 이즈음에 關한 記事 中에는 讖字가 더러 나오게된다. 漢書卷十一 哀帝紀 建平 二年條에 待詔夏賀良 等의 上言 中에는 『赤精子之讖(○○○○○) 漢家歷運中衰云云』의 句가 있고、同書卷七十五 李尋傳에 依하면 이 앞서 成帝時에도 齊人甘忠可란 者가 있어 역시 이 讖說을 唱하야 『天帝使眞人赤精子下敎我此道』라고 한 것이 적히어 있다. 所謂 『赤精子의 讖』은 그 標枋으로서는 역시 一種의 神託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도 天帝 · 眞人에 假託(●●)하야 漢室의 歷運을 말한 普通의 豫言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또 同書卷九十九 王莽傳을 보면 地皇 二年條에는 卜者王況이 李焉이란 者를 爲하여 讖書(○○)를 作하야 『劉氏가 復興하고 李氏가 그를 도으리라』는 말을 한 것이 있고, 更始 元年條에도 道士西門君惠란 者가 天文讖記(○○○○)를 좋아하여 將軍 王涉을 ▶P005-1爲하여 말하기를 『星孛掃宮 劉氏當復興云云』이라고 하였다는 것이 적히어 있다. 『劉氏復興』의 說은 當時에 盛行하는 讖說이어서 宛人 李通 等도 이런 設로써 劉秀(光武帝)를 衝動하여 마침내 舉事를 하게 한 것은 有名한 事實로, 後漢書卷一 光武紀 첫 장에 『宛人李通等 以圖讖(○○)說光武云 劉氏復與 李氏爲輔云云』이라고 하여 있거니와, 이들 讖書 · 讖記 · 圖讖은 역시 卜筮 또는 天文에 依하여, 혹은 鬼神에 假託하여, 當時 劉氏의 再興을 豫言하고 또 이를 刺戟케 한 一種의 符命說이었다. 圖讖이란 語는 同後漢書에, 『圖緯』, 『讖緯』의 語와 함께 거이 枚舉키 어려울 만치 많이 나오지만, 漢書 王莽傳 平帝元始四年의 記事 中에도 이 『天文圖讖』의 語가 보이나 現存 文獻으로는 이것이 初見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도참의 참(讖)은 참언, 참서, 참기, 참록을 가리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또 그것이 신탁, 천계, 몽조, 서이, 점언, 역운, 부명 및 기타의 예언, 비기 등을 가르치는 말인 것도 이상 열거의 문례에 예하여 명백하지만 다시 참(讖)이란 글자의 뜻이 무엇인가를 고찰하여 보자.
쪽수▶P005-2要컨대 圖讖의 讖은 讖言 讖書 讖記 讖錄의 謂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또 그것이 神託 天啓 夢兆 瑞異 占言 歷運 符命 및 其他의 豫言 秘記 等을 가르치는 말인 것도 以上 列擧의 文例에 例하여 明白하지만 다시 讖이란 글자의 뜻이 무엇인가를 상고하여 보자.
허신인물(許愼)의 설문서적(說文)을 보면, “讖()也 有徵驗(○○)之書 河雒所出書曰讖 从言 韱聲”이라 하고, 또 후한서서적권89 장형전(張衡傳)을 보면 같은 사람의 도참 비난의 소 중에 立言於前(○○○○) 有徵於後(○○○○) 故智者貴焉 謂之讖書”라고 하였다. 당의 장회태자인물(章懷太子)의 후한서서적 광무제기(光武帝紀) 주앞의 도참의 주에는 “讖 符命之書 讖()也 言爲王者受命之徵驗(○○)也”라 하고, 송의 대동인물(戴侗)의 육서고서적(六書故)에는 “前定徵兆之言”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들 설에 의하면 참(讖)에는 험야(驗也), 징야(徵也)의 뜻이 있으니, 사전(事前)의 입언‧징조‧암시 등의, 장래에 있어서의, 부합(符合), 효험(效驗)을 약속(promise)하는 것이다. 별언하면 미래의 사상에 대한 표징(token) 혹은 신호(signal)로서 ‘그러케 될’ 것을 확증적으로 예언하는 것이다. 설문서적“河雒所出書”란 것은 즉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가리키는 것으로서, 도서에 대하여는 후에 자세히 말하려고 하거니와, 이것과 장회태자인물의 소위 “讖符命之書”는 각각 참(讖)의 일예증으로서 든 것에 끝이고 그 일반적 의의는 아니다. 차라리 그 일반적 의미는 ‘험야’, ‘징험야’라고 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참(讖)의 목적론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본질적, 어원적 의의는 따로 있다고 생각된다. 유희인물(劉熙)의 석명(釋名)(석전예(釋典藝))서적에는 이상 다른 설과 달라 “讖纖也 其義纖也”라고 하였다. 참(讖)의 뜻을 섬미야(纖微也)라고 한 것은 참기, 참언의 내용이 대개 신비한 은미한 징조, 조짐의 말로써 채(充)워져 있다는 견지에서의 해석뿐만 아니라, 자못 근본적으로, etymologically로 참(讖) 자를 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설문서적“从言韱聲”이라고 함과 같이 이 글자는 언(言) 자와 섬(韱) 자로써 결합되어 있다. 섬(韱)의 성(음)뿐 아니라 그 뜻도 맺어 있는 것이다. 섬(韱)은 구(韯) 혹은 첨(虃)으로도 써서 설문서적“山韭也”라고 하였다. 산구(山韮)(○○○○)는 즉 세엽(細葉)인 ‘부추’를 가리키는 것으 고래 중국인의 상식하는 야채의 일종이다. 세엽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이 섬(韱) 자는 굴러서 섬미(纖微), 사세(些細), 첨예(尖銳)의 뜻을 갖게 되었으니, 그것은 이 글자와 합성된 다른 모든 글자의 의의로부터 귀납하여 알 수 있다. 우선 섬(孅)예야세야(銳也細也), 첨(瀸)천수재출야(泉水纔出也), 참(懺)회야세려야(悔也細慮也), 첨(籤)예야죽첨야(銳也竹籤也), 섬(纖)세야(細也), 점(䘋)섬충(纖虫), 섬(襳)장대(長帶), 기유(旗斿), 첨(鑯)예첨야(銳尖也), 세우미우(細雨微雨)과 같은 자를 보아도 명료할 것이다. 그런즉 참(讖) 자도―언변에 섬(韱)을 붙였으므로―역시 섬미(纖微)한 말이라든지 은비(隱秘)한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해석될 것이다. 이것이 도리어 참(讖) 자의 original한 뜻일 것이다. 이러한 섬미의 뜻을 가진 참(讖) 자가 신탁, 천계, 몽조, 서이, 복언, 역운설, 부명설 및 기타의 예언과 같이 장래의 징험을 약속하는 말에 대한 일 공통적 술어로 된 것은 당연한 바로서, 이들 자신이 극히 신비적인 은미적인 특질을 가지고 또 극히 비밀히 조작되고 또 왕왕 비밀히 사용되는 것이다. 참기를 재래 조선서는 비기, 밀기, 비사 혹은 비결이라고도 하거니와,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요컨대 참(讖)이란 것은 은비한 언어 혹은 문자로써 장래의 일을 예언,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쪽수▶P005-3許愼의 說文을 보면, 『讖()也 有徵驗(○○)之書 河雒所出書曰讖 从言 韱聲』이라 하고, 또 後漢書卷八十九 張衡傳을 보면 同人의 圖讖非難의 疏中에 『立言於前(○○○○) 有徵於後(○○○○) 故智者貴焉 謂之讖書』라고 하였다. 唐의 章懷太子의 後漢書 光武帝紀 註前記 圖讖의 註에는 『讖 符命之書 讖()也 言爲王者受命之徵驗(○○)也』라 하고, 宋의 戴侗의 六書故에는 『前定徵兆之言』이라고 定義하였다. 이들 說에 依하면 讖에는 驗也 徵也의 義가 있으니, 事前의 立言 ‧ 徵兆 ‧ 暗示 等의, 將來에 있어서의, 符合 效驗을 約束(promise)하는 것이다. 別言하면 未來의 事相에 對한 標徵(token) 혹은 信號(signal)로서 「그러케 될」 것을 確證的으로 豫言하는 것이다. 說文에 『河雒所出書』란 것은 즉 河圖洛書의 謂로서, 圖書에 就하여는 後에 仔細히 말▶P006하려고 하거니와, 이것과 章懷太子의 所謂 『讖符命之書』는 各各 讖의 一例證으로서 든 것에 끝이고 그 一般的 意義는 아니다. 차라리 그 一般的 意味는 『驗也』, 『徵驗也』라고 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讖의 目的論的 說明이라고 할 수 있고, 그 木質的 語源的 意義는 따로 있다고 생각된다. 劉熙의 釋名(釋典藝)에는 以上 諸說과 달라 『讖纖也 其義纖也』라고 하였다. 讖의 義를 纖微也라고 한 것은 讖記 讖言의 內容이 대개 神祕한 隱微한 徵兆 兆朕의 語로써 채(充)여 있다는 見地에서의 解釋뿐만 아니라, 자못 根本的으로, etymologically로 讖字를 解釋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上記 說文에 『从言韱聲』이라고 함과 같이 이 글자는 言字와 韱字로써 結合되어 있다. 韱의 聲(音)뿐 아니라 그 뜻도 맺어 있는 것이다. 韱은 韯 혹은 虃으로도 書하여 說文에 『山韭也』라고 하였다. 山韮(○○)는 즉 細葉인 『부추』의 謂로 古來 中國人의 常食하는 野菜의 一種이다. 細葉의 特徵을 가지기 때문에 이 韱字는 굴러서 纖微 些細 尖銳의 義를 갖게 되었으니, 그것은 이 글자와 合成된 다른 모든 글자의 意義로부터 歸納하여 알 수 있다. 于先 孅銳也細也泉水纔出也悔也細慮也銳也竹籤也細也纖虫長帶, 旗斿銳尖也 細雨微雨과 같은 字를 보아도 明瞭할 것이다. 그런즉 讖字도―言邊에 韱을 붙였으므로―역시 纖微한 말이라든지 隱秘한 意味를 가진 말이라고 解釋될 것이다. 이것이 도리어 讖字의 original한 뜻일 것이다. 이러한 纖徵의 뜻을 가진 讖字가 神託 天啓 夢兆 瑞異 卜言 歷運說 符命說 및 其他의 豫言과 같이 將來의 徵驗을 約束하는 말에 對한 一共通的 術語로 된 것은 當然한 바로서, 이들 自身이 極히 神秘的인 隱微的인 特質을 有하고 또 極히 秘密히 造作되고 또 往往 秘密히 使用되는 것이다. 讖記를 在來 朝鮮서는 祕記 密記 祕詞 혹은 祕訣이라고도 하거니와, 그 理由는 여기에 있다. 要컨대 讖이란 것은 隱秘한 言語 혹은 文字로써 將來의 일을 豫言 暗示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는 참(讖) 자의 의의를 설명하였으므로 다음에는 도참의 도(圖)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장회태자인물후한서서적 광무기 주앞의 이통인물의 도참설 하주“圖河圖也”라고 하였으나, 하도(河圖)가 무엇이란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도참의 도(圖)는 결국 하도(河圖)와 같은 류의 것을 지칭한 바에 틀림없으므로, 역시 거기에 관한 오랜 기사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유가경전 중에서 이를 구하면, 상서서적(尙書) 고명편(顧命篇)에 “越玉五重 陳寶 (中略) 太玉 夷玉 天球 河圖(○○) 在東序”라 한 하도란 말이 보이고, 논어서적 자한편(子罕篇)에 “子曰鳳島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역계사(易繫辭)(상)에 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 예기서적 예운편(禮運篇)에 “天降豪露 地出醴泉 山出器車 河出馬圖(○○○○)라는 문장이 보인다. 현대문주1▶여긔 이른바 ‘하도’ 혹은 ‘도’, ‘마도(馬圖)’는 역(易)의 ‘낙출서(洛出書)’의 서(書)와 상병(相並)하여 유가의 소위 하도낙서(河圖洛書)란 것이니, 도서에 대한 한유들의 해석[a 1]을 들으면, 하도는 즉 팔괘로서 복희(伏犧) 씨 시대에 하수(河水)에서 용마가 나타나 그 배문(背紋)을 본받아 이를 그린 것이라 하고 이에 대하여 낙서는 즉 홍범구주(洪範九疇)로서 우(禹)의 시대에 낙수에서 신구(神龜)가 나타나 그 배갑(背甲)에 배열된 수류(數類)에 의하여 이를 만든 것이라 한다. 이러한 설은 본래 믿을 바 되지 못하지만 송유에 이르러서는 일층 설을 부연하여, 역(易) 계사(繫辭)서적의 천지수(天地數)로 구성된 55점의 현대문주2▶기우흑백도(奇偶黑白圖)[a 2]를 용마하도(龍馬河圖)의 모양이라고 하는 동시에 팔괘를 이에 관련시키며, 또 구궁(九宮)·구성(九星)의 술(術)에서 유래된 45점의 현대문주3▶흑백도(黑白圖)[a 3]를 신구낙서(神龜洛書)의 무늬라고 하는 동시에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여기에 관계 붙이는 것이 보통이나, 현대문주4▶그러나 혹은 이와 정반대로 후자의 45점도를 하도라 하고 전자의 55점도를 낙서라고 하는 설도 있었다.[a 4] 용 혹은 용마가 도를 지고 하수에서 나타났다 혹은 오직 하수에서 도가 나타났다 또는 이에 대하여 낙수에서는 구문이 나타났다 하는 등의 설은 실상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든, 그리고 용·봉·구·린 등 물을 영물시하든 상대 중화 민족에 있어서는 그럴듯한 전설이라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소위 하도가 복희 씨 시대에, 낙서가 우의 시대에 나왔다는 것이라든지 도와 서의 형식 및 내용이 어떠어떠하다는 위의 모든 설은 전연 후유들이 부회한 바로서, 이에 대하여는 근세 청유들의 고증적 연구에 의한 통쾌한 변설이 많음으로, 새삼스러이 우리의 변을 요구하지 아니하지만, 어떻든 하도와 낙서를 역(易)과 서(書)에 관계 붙이어 해석하는 것은 한유 이래의 무리한 짓이라고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혹은 앞서 인용한 역 계사서적의 글에 의하여 그 불연함을 반변(反辨)할 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하도낙서를 팔괘 내지 구주에 분설함과 같은 표시는 없고, 다만 복서(卜筮) 기원(起源)의 하나로서 양자를 병거한 데 불과하며, 뿐만 아니라 우리는 나가서 계사서적의 글, 그것에 큰 회의를 가지고 있다. 원래 계사서적 중에는 한대 학자의 윤색 혹은 첨입한 듯한 부분이 많이 있고, 더욱 위의 계사서적의 일절은 같은 사람의 필법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듯하며첫째 성인득지(聖人得之)의 같은 구가 상하에 중첩하여 있는 것이 우습다, 또 그중의 ‘낙출서’란 것은 다른 경전 중에는 물론, 경전 이외의 다른 선진 문헌 중에도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원문으로서는 더욱 더욱 신용을 둘 수 없다. 그러므로 위의 계사서적의 일절은 결국 진 이후의 유자의 소위에 의한 사족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따라 이 글에 의하여 도서를 복서기원의 하나로서 보는 것도 무근거한 일이겠다. 그러면 앞서 말한 상서서적, 논어서적예기서적에 보이는 하도 관계의 문자는 대체 무엇을 의미한 것인가. 상서서적의 하도는―그것이 과연 전설과 같이 주(周)의 성왕 시대의 것인지 아닌지는 의문이며 또 그것이 무엇인가도―분명치 못하지만, 같은 글 중에 대옥(大玉), 이옥(夷玉), 천구(天球) 등과 함께 열거되었는 것을 보면 그것(河圖)은 역시 옥석 류의 것으로 마치 좌전(左傳) 소공 24년(겨울 10월)에 진인(津人)이 하수(河水)에서 보규(寶珪)를 얻었다고 함과 같이 이것도 하수에서 나왔다고 하는 서옥(瑞玉)이거나 혹은 문석(紋石)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때 진보시(珍寶視) 또는 얼마쯤 신비시되었을 것이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다음에 논어서적“河不出圖”의 도는 역시 이러한 서문(瑞紋)이 있는 옥석 류를 의미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전설에 이름과 같은 용마의 도를 일컬음인지 잘 알 수 없으나, 어떻든 “鳳鳥不至”와 같이 거론되어 있으므로 이것은 성인왕자(聖人王者)의 부서(符瑞) 혹은 선징(蘚徵)으로서의 어떠한 도를 가르친 것임에 틀림없을지니, 즉 성인왕자가 나오면 거기에 앞서서 봉조가 비래(飛來)하고 하수로부터는 서도(瑞圖)가 나온다는 전설에 의하여 극히 시적으로 탄식한 말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체 공자인물의 말로 보아 상치가 없을 것이다. 끝으로 예기서적“河出馬圖”정현인물의 주에 “龍馬負圖而出也”라고 함과 같이 확실히 전설 상의 용마의 도를 이름이며, 같은 글 중에 “天降豪露”, “地出體泉”, “山出器車” 등과 열거되었음을 보아 이것도 상서(祥瑞)를 의미한 것에 틀림없다. “낙출(구)서(洛出(龜)書)”의 구가 보이지 아니함을 보면 예기서적의 이 기재도 선진 문헌이라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후진 문헌에는 하도낙서가 같이 거론됨이 보통이다).
쪽수▶P007-1우에는 讖字의 意義를 說明하였으므로 다음에는 圖讖의 圖가 무엇인가에 對하여 말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常懷太子는 後漢書 光武紀 註前引 李通의 圖讖說下注에 『圖河圖也』라고 하였으나, 河圖가 무엇이란 說明은 보이어 있지 않다. 그러나 圖讖의 圖는 결국 河圖와 같은 類의 것을 指稱한 바에 틀림없으므로, 역시 거긔 關한 오랜 記事를 조사해 볼 必要가 있다. 먼저 儒家經典 中에 就하야 이를 求하면, 尙書 顧命篇에 『越玉五重 陳寶 (中略) 太玉 夷玉 天球 河圖(○○) 在東序』라 한 河圖의 語가 보이고, 論語 子罕篇에 『子曰鳳島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易繫辭(上)에 『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 禮記 禮運篇에 『天降豪露 地出醴泉 山出器車 河出馬圖(○○○○)』의 文이 보인다. 원문주1▶여긔 이른바 『河圖』 혹은 『圖』 『馬圖』는 易의 『洛出書』의 書와 相並하여 儒家의 所謂 河圖洛書란 것이니, 圖書에 對한 漢儒들의 解釋[1]을 들으면, 河圖는 즉 八卦로서 伏犧氏 時代에 河水에서 龍馬가 出하여 그 背文(紋)을 본받아 이를 畫한 것이라 하고 이에 對하여 洛書는 즉 洪範九疇로서 禹의 時에 洛水에서 神龜가 出하여 그 背甲에 排列된 數類에 依하여 이를 成한 것이라 한다. 이러한 設은 본래 믿을 바 되지 못하지만 宋儒에 이르러서는 一層 說을 敷衍하여, 易 繫辭의 天地數로 構成된 五十五點의 원문주2▶奇偶黑白圖[2]를 龍馬河圖의 形이라고 하는 同時에 八卦를 이에 關聯시키며, 또 九宮·九星의 術에서 由來된 四十五點의 원문주3▶黑白圖[3]를 神龜洛書의 文(紋)이라고 하는 同時에 洪範九疇를 여기에 關係 붙이는 것이 普通이나, 원문주4▶그러나 혹은 이와 正反對로 後者의 四十五點圖를 河圖라 하고 前者의 五十五點圖를 洛書라고 하는 說도 있었다.[4] 龍 혹은 龍馬가 圖를 負하고 河水에서 出하였다 혹은 單히 河水에서 圖가 出하였다 또는 이에 對하여 洛水에서는 龜文이 나타났다 하는 等說은 실상 黃河流域을 中心으로 하여 發展하든, 그리고 龍·鳳·龜·麟 等 物을 靈物視하든 上代 中華 民族에 있어서는 그러할 듯한 傳說이라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所謂 河圖가 伏犧氏 時代에, 洛書가 禹의 時代에 나왔다는 것이라든지 圖와 書의 形式 ▶P008及 內容이 어떠어떠하다는 上記 諸說은 全然 後儒들의 附會한 바로서, 이에 對하여는 近世 淸儒들의 考證的 研究에 依한 痛快한 辨說이 많음으로, 새삼스러이 吾人의 辨을 要치 아니하지만, 어떻든 河圖와 洛書를 易과 書에 關係 붙이어 解釋하는 것은 漢儒 以來의 無理한 짓이라고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혹은 上引한 易繫辭의 文에 依하야 그 不然함을 反辨할 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河圖洛書를 八卦 及 九疇에 分設과 같은 表示는 없고, 다만 卜筮 起源의 하나로서 兩者를 並擧한 데 不過하며, 뿐만 아니라 吾人은 進하여 繫辭의 文, 그것에 큰 懷疑를 가지고 있다. 원래 繫辭 中에는 漢代 學者의 潤色 혹은 添入한 듯한 部分이 많이 있고, 더욱 위의 繫辭의 一節은 同人의 筆法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듯하며첫째 聖人得之의 같은 句가 上下에 重疊하여 있는 것이 우습다, 또 其中의 『洛出書』란 것은 다른 經典 中에는 勿論, 經典 以外의 他先秦文獻 中에도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原文으로서는 더욱 더욱 信用을 둘 수 없다. 그러므로 위의 繫辭의 一節은 결국 秦 以後의 儒者의 所爲에 依한 蛇足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따라 이 글에 依하여 圖書를 卜筮起源의 一로서 보는 것도 無根據한 일이겠다. 그러면 上記 尙書 論語 及 禮記에 보이는 河圖關係의 文字는 대체 무엇을 意味한 것인가. 尙書의 河圖는―그것이 果然 傳說과 같이 周의 成王 時代의 것인지 아닌지는 疑問이며 또 그것이 무엇인가도―分明치 못하지만, 同文 中에 大玉 夷玉 天球 等과 함께 列擧되었는 것을 보면 그것(河圖)은 역시 玉石類의 것으로 마치 左傳 昭公 二十四年(冬十月)에 津人이 河水에서 寶珪를 얻었다고 함과 같이 이것도 河水에서 나왔다고 하는 瑞玉이거나 혹은 紋石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때 珍寶視 또는 얼마쯤 神祕視되었을 것이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다음에 論語의 『河不出圖』의 圖는 역시 이러한 瑞紋이 있는 玉石類를 意味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傳說에 이름과 같은 龍馬의 圖의 謂인지 잘 알 수 없으나, 어른 『鳳鳥不至』와 井擧되어 있으므로 이것은 聖人王者의 符瑞 혹은 蘚徵▶P009-1으로서의 어떠한 圖를 가르친 것임에 틀림없을지니, 즉 聖人王者가 나오면 거기에 앞서서 鳳鳥가 飛來하고 河水로부터는 瑞圖가 나온다는 傳說에 依하여 極히 詩的으로 嘆息한 말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체 孔子의 말로 보아 상치가 없을 것이다. 끝으로 禮記의 『河出馬圖』는 鄭玄의 註에 『龍馬負圖而出也』라고 함과 같이 확실히 傳說上의 龍馬의 圖를 이름이며, 同文 中에 『天降豪露』 『地出體泉』 『山出器車』 等과 列擧되였음을 보아 이것도 祥瑞를 意味한 것에 틀림없다. 『洛出(龜)書』의 句가 보이지 아니함을 보면 禮記의 이 記載도 先秦 文獻이라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後秦 文獻에는 河圖洛書가 並擧됨이 普通이다).
다시 유가 경전 이외의 다른 책에 나타나는 도서 관계의 기재를 들면, 묵자서적권5 비공편(非攻篇) 하에 “赤鳥銜珪 降周之岐社曰 天命周文王 伐殷有國 秦顚來賓 河出綠圖(○○○○) 地出乘黃神馬이라 하고, 여씨춘추서적권13 유시람(有始覽) 응동장(應同章)에 “赤鳥銜円書(●●) 集于周社云云”, 같은 책서적(권20) 특군람(特君覽) 관표장(觀表章)에 “人亦有徵 事與國皆有徵 聖人上知千歲 下知千歲 非意之也 盖有自云也 綠圖(○○)·幡簿 從此生矣”라 하고, 회남자서적 숙진훈(俶眞訓)에 “至德之世 (中略) 洛出円書(●●●●) 河出綠圖(○○○○)라 하고 한서서적권49 조착전(鼂錯傳)에―착(錯)의 상언 중에―“臣聞五帝神聖 (中略) 河出圖(○○○) 洛出書(●●●) 神龍至 鳳鳥翔云云”, 같은 책서적(권6) 광무기 원광(元光) 원년 오월조에 “朕聞 (中略) 周之成康 刑錯不用 德及鳥獸 敎通四海 (中略) 麟鳳在郊藪 河洛出圖書(○○○○○)云云”이라 하고, 기타 위서 중에는 이러한 류의 기재가 가장 많이 보이어 일일이 매거키 어려우나, 도서에 대하여는 어떤 자든지 부서(符瑞) 혹은 징험(徵驗)으로서―신비적 또는 전설적으로―말하여 있다. 묵자서적의 ‘녹도(綠圖)’와 회남자서적의 ‘녹도(綠圖)’ 및 ‘단서(丹書)’는 하수 또는 낙수에서 나왔다고 하므로 의심없이 하도낙서를 가리키지만, (단 전자는 문왕(文王( 때에, 후자는 지덕지세(至德之世)에 나타난다 하고), 여씨춘추서적의 ‘단서(丹書)’ 및 ‘녹도(綠圖)’는 낙수나 하수와는 관계가 없는 모양인즉 이는 반드시 하도낙서라고 하기는 어렵고, 또 그 소위 녹도란 것도 전후의 문의(文義)로부터 보면 순수한 부서(符瑞)는 아니요 일종 미래의 징험서, 즉 참기(예언기)와 같은 것을 일컫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녹도라고 하면 글자대로 녹색의 도란 뜻이지만, 혹은 이를 녹도(錄圖)(○○○○)라고도 쓴다. 역위시유모서적(易緯是類謀)에 錄圖(○○)有自顓頊云云”, “河出錄圖(○○) 雒授變書”, 錄圖(○○)世讖”이라 함과 상서위선기검서적(尙書緯璇璣鈐)에 공자인물의 말이라고 하야 “五帝出受錄圖”라 함과 효경위구명결서적(孝經緯鉤命訣)에 “舜即位 巡省中河 錄圖(○○)授文”이라고 함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또 저 사기서적권6 진본기(秦本紀) 시황 32년조에 연인(燕人) 노생(盧生)이란 자가 시황제인물의 사명에 의하여 바다에 들어갔다가 돌아와 귀신사(鬼神事)로써 녹도서((錄圖書)(○○○○○○)를 주(奏)하여 왈 “亡秦者胡也”라고 함과 이로 인해 시황제인물는 장군 몽념인물(蒙恬)으로 하여금 북호(北胡)를 쳐서 하남의 땅을 약취하게 하였다 함은 유명한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녹도서란 말이 보인다. 녹도서라고 함은 녹도의 서란 의미인 듯하며, 즉 녹도란 이름을 빌려온 책으로서 이는(하수의 대신으로) 귀신에 가탁하야 조작한 일종의 예언기(참기)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도는 후에 녹도(籙圖) 혹은 도록(圖籙)이라고도 하고 또는 이를 줄여서 오직 녹(籙)이라 도(圖)라 하기도 하니, 위(魏)의 송균인물(宋均)은 논어서적 참(讖) 주에 녹(籙)을 설명하여 “籙 天敎命也”라고 하였다. 즉 녹(籙)은 천신으로부터 받은 교서(message)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요컨대 녹도(錄圖)의 녹은 처음에는 색의 의미로 사용되였던 것이나, 후에 녹(綠)과 녹(錄)의 음이 통함에 따라 녹(錄) 자가 거기에 대용되고 또 녹(錄)과 녹(籙)과의 사이에 음의 뜻이 상통한다는 이유로 후에는 녹(籙) 자가 거기에 충당되게 되었거니와, 최초의 녹(綠) 자와는 좀 거리가 멀게 되었다.
쪽수▶P009-2다시 儒家 經典 以外의 諸書에 나타나는 圖書關係의 記載를 들면, 墨子卷五 非攻篇 下에 『赤鳥銜珪 降周之岐社曰 天命周文王 伐殷有國 秦顚來賓 河出綠圖(○○○○) 地出乘黃神馬』이라 하고, 呂氏春秋卷十三 有始覽 應同章에 『赤鳥銜円書(●●) 集于周社云云』, 同書(卷二十) 特君覽 觀表章에 『人亦有徵 事與國皆有徵 聖人上知千歲 下知千歲 非意之也 盖有自云也 綠圖(○○) · 幡簿 從此生矣』라 하고, 淮南子 俶眞訓에 『至德之世 (中略) 洛出円書(●●●●) 河出綠圖(○○○○)』라 하고 漢書卷四十九 鼂錯傳에―錯의 上言 中에―『臣聞五帝神聖 (中略) 河出圖(○○○) 洛出書(●●●) 神龍至 鳳鳥翔云云』, 同書(卷六) 武帝紀 元光元年 五月詔에 『朕聞 (中略) 周之成康 刑錯不用 德及鳥獸 敎通四海 (中略) 麟鳳在郊藪 河洛出圖書(○○○○○)云云』이라 하고, 其他 緯書 中에는 이러한 類의 記載가 가장 많이 보이어 一一히 枚舉키 어려우나, 圖書에 就하여는 何者든지 符瑞 혹은 徵驗으로서―神秘的 또는 傳說的으로―말하여 있다. 墨子의 『綠圖』와 淮南子의 『綠圖』 及 『円書』는 河水 또는 洛水에서 나왔다고 하므로 疑心없이 河圖洛書의 謂지만, (但 前者는 文王時에, 後者는 至德之世에 出한다 하고), 呂氏春秋의 『円書』 及 『綠圖』는 洛水나 河水와는 關係가 없는 모양인즉 이는 반드시 河圖洛書라고 하기는 어렵고, 또 그 所謂 綠圖란 것도 前後의 文義로부터 보면▶P010-1 純粹한 符瑞는 아니요 一種 未來의 徵驗書, 즉 讖記(豫言記)와 같은 것의 謂임을 알 수 있다. 綠圖라고 하면 글자대로 綠色의 圖란 뜻이지만, 혹은 이를 錄圖(○○)라고도 書한다. 易緯是類謀에 『錄圖(○○)有自顓頊云云』 『河出錄圖(○○) 雒授變書』 『錄圖(○○)世讖』이라 함과 尙書緯璇璣鈴에 孔子의 言이라고 하야 『五帝出受錄圖』라 함과 孝經緯鉤命訣에 『舜即位 巡省中河 錄圖(○○)授文』이라고 함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또 저 史記卷六 秦本紀 始皇 三十二年條에 燕人盧生이란 者가 始皇帝의 使命에 依하여 海에 入하였다가 還來하야 鬼神事로써 錄圖書(○○○)를 奏하여 曰 『亡秦者胡也』라고 함과 일로 因하여 始皇帝는 將軍 蒙恬으로 하여금 北胡를 쳐서 河南의 地를 略取하게 하였다 함은 有名한 事實이지만, 여기에는 錄圖書란 語가 보인다. 錄圖書라고 함은 錄圖의 書란 意味인 듯하며, 즉 錄圖란 이름을 借來한 書로서 이는(河水의 대신으로) 鬼神에 假託하야 造作한 一種의 豫言記(讖記)임이 無疑한 것이다. 圖는 後에 籙圖 혹은 圖籙이라고도 하고 또는 이를 略하여 單히 籙이라 圖라 하기도 하니, 魏의 宋均은 論語讖註에 籙를 說明하여 『籙 天敎命也』라고 하였다. 即 籙은 天神으로부터 受한 敎書(message)의 謂라는 것이다. 要컨대 錄圖의 錄은 처음에는 色의 意味로 使用되였던 것이나, 後에 綠과 錄의 音通에 依하여 錄字가 거기에 代用되고 또 錄과 籙과의 사이에 音義가 相通한 所以로 後에는 籙字가 거기에 充當되게 되었거니와, 最初의 綠字와는 좀 距離가 멀게 되었다.
위서 상서중후서적에 (A)“河龍出圖 洛龜書威 赤文綠字(○○), (B)“龍馬銜甲 赤文綠地(○○), (C)“甲似龜背 廣袤九尺 圓理平上五色文 有列星之分·斗正之度·帝王錄紀興亡之數(○○○○○○) 言虞夏商周秦漢之事云云”이라 하고, 또 상서위선기검서적고령요서적(考靈曜)에 (D)“河圖命紀(○○)圖天地帝王終始存亡之期(○○○○○○○○○○○)·錄代之矩也”라고 함은 즉 도서의 형식 및 내용에 관한 참위가의 전설이니, 그중 (A), (B)의 ‘녹자(綠子)’, ‘녹지(綠地)’는 하도를 녹도라고도 함에 기인한 부회인 듯하고, 다음의 (C), (D) 양절은 하도를 녹도(錄圖) 혹은 녹도(籙圖)라고도 하는 의의를 부친 것같이 보이거니와, 어떻든 종종의 신비적 형식에 의하여 제왕의 수명, 국가의 흥망 등을 기록해 장래의 험(驗)을 삼는 것이 참위가의 소위 도서인 것은 두 말이 필요 없다. 앞서 언급한 사기서적 진본기의 “녹도화(錄圖畫)”와 같은 것은 그 적당한 사례로서, 단 이것은 하수나 낙수에서 나왔다는 전설적의 것이 아니요 귀신에 가탁하여 실제에 인위적으로 만든 위조의 도서이니, 이러한 의조적 도서(그중에서 특히 부명(符命)의 도서)는 후세에 빈번히 나타나, 역성혁명이 있는 때에는 반드시 그 유행을 보게 된다. (한서서적 왕망전에 보이는 “白石丹書”, “銅符帛圖”, “金匱圖”“金策書”라든지 위지서적(권3) 본기 명제 청룡 3년에 장액군(張液郡)에서 현출하였다는 소위 “寶石負圖”와 같은 것은 다 그 저명한 예다.)
쪽수▶P011-2圖書에 對한 神秘的 觀念의 擴大에 따라, 河圖洛書의 稱은 種種의 神秘的 書籍에 借用되어, 緯書 中에는 勿論이요 道敎의 道藏 中에도 그 이름을 取한 것이 많이 있다. 더욱 道藏 中에는 寶籙 圖籙 靈圖, 其他 무슨 圖 무슨 籙이라고 名稱한 書가 가장 많거니와, 이들은 勿論 未來를 豫言 혹은 標徵하는 約束이 아니라 단지 『聖書』 『聖經』과 같은 意味에서 使用된 것이므로 純然한 圖讖家의 所謂 圖書와는 本質을 달리하는 것이다.
도서에 대한 신비적 관념의 확대에 따라, 하도낙서라는 이름은 종종의 신비적 서적에 차용되어, 위서 중에는 물론이요 도교의 도장(道藏) 중에도 그 이름을 취한 것이 많이 있다. 더욱 도장 중에는 보록(寶籙), 도록(圖籙), 영도(靈圖), 기타 무슨 도 무슨 록(籙)이라고 명칭한 서가 가장 많거니와, 이들은 물론 미래를 예언 혹은 표징하는 약속이 아니라 단지 ‘성서’, ‘성경’과 같은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므로 순연한 도참가의 소위 도서와는 본질을 달리하는 것이다.
쪽수▶P011-3이와 같이 設述하여온즉, 圖讖의 ()는 符瑞 혹은 徵驗의 性質을 가진 所謂 河圖 · 綠圖(錄圖) · 圖書 等의 謂임이 더욱 疑心없을 것이나 정작 圖字의 語義에 就하여는 아직 言及하지 아니 하였으므로 다음에는 그것을 考察하려 한다. 說文에 依하면 圖는 『畫計難也 从口从啚 圖難意也』하고 段氏의 註에 『啚者嗇也 嗇者愛濇也 愼難之意也云云』이라 하야 計畫 · 愼難 ·愛濇의 意가 있다고 하였으며, 또 爾雅(釋詁)에는 『謀也』라 하고 釋名(釋典藝)에는 『圖度也 盡其品度也(●●●●●)』라 하야 謀度 · 商量 · 窮究의 意가 있다고 하였다. 圖에 計畫 愼難 謀度 等의 意가 있는 것은 의심 없으나, 이는 말하▶P012-1자면 第二次 第三次的의 語義에 屬하고 第一次의 根本的 語義는 아니며, 더욱 說文 及 其注에 圖字 內의 啚字를 難意 또는 嗇의 義로 解한 데 對하여는 나는 贊成하지안는다. 왜 그러냐 하면 啚는 卽 鄙로서 都鄙(地方區域)字의 義인 所 以다. 鄙의 古字는 본래 啚니 거기에 邑字를 附한 것은 後世의 일이다. 羅掘玉 氏도 啚에 就하여 원문주5▶『此即都鄙之本字 說文解字 以爲啚嗇字 而以鄙爲都鄙字 考古文都鄙字 亦不从邑 从邑者後來所增也』[5]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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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12-2원문주6▶啚의 殷虛文字形은 ․․․와 같이 되어있는데[6] 羅氏의 說에 依하면 이는 倉廩의 象으로서 倉廩 所在가 啚라는 것이니, 원문주7▶啚의 㐭이 바로 廩의 本字임을 參考함이 좋다(京도 역시 倉廩의 義임을 並考이 可함)[7]. 圖字도 卜辭 乃至 古金文에는 □를 省畧한 곳도 있지만 其 理由는 鄙字의 邑邊을 省畧함과 같다. 圖字의 □는 古文圍字로서 包圍의 意니, 『从口从啚』의 圖字의 語源的 意義(○○○○○○○○)는―倉廩 所在의 地, 즉 田庄 領地를 包含한 象으로서 所有土地圖 領地圖 疆域圖 輿地圖, 다시 簡單히 말하면 地圖 또는 그것을 畫한다는 뜻이다. 版圖니 圖籍이니 하는 圖는 다 地圖를 이름이다. 圖字의 第一次的 根本的 意義는 이와 같이 地圖, 또는 地圖를 그린다는 것에 있을 것이나, 이것이 一轉하여 土地山川 以外의 다른 事像 物像의 畫寫까지도 圖라고 하게 되었다. 이는 圖의 第二次的 派生的 語義라고 할 수 있거니와, 위의 說文 爾雅 및 釋名에 보인 計畫 謀度의 義도 말하자면 第一次的 語義 혹은 第二次的 字義에서 再轉한것일 것이다. 이를 英語의 map이란 말과 對照하여 보면 興味를 느끼게 하는 것이 있으니 map의 本義는 말할 것도 없이 地圖(名詞), 또는 地圖로 나타낸다(動詞)는 것이나, 轉하여 圖를 畫한다 表現한다는 뜻도 되고, 또는 거기에 out란 말을 붙이어 mapout이라고 하면 計畫한다 謀策한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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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12-3그런데 여기에 注意할 것은 圖와 畵와의 區別이니, 이에 對하여는 辭源의 圖畫條에 比較的 要領 있는 說明이 보이▶P013-1어있다. 가로대 『()者脫離實物 於精神上製成之 如地圖非實際所能審視 僅依測量之所得 顯之於紙上是也 ()者以所見之實物 用點線濃淡彩色等 表視之 以發其美之觀念』이라고 하였다. 즉 圖는 實事 實物을 떠나서 多少 抽象的 혹은 含縮的으로 그것의 特徵 條理 要領만을 表示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쯤 解釋思考의 餘地를 가지게 하는 것이나, 畫는 될수록 實物에 卽近하야 直觀的으로 美의 感을 하도록 表現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문주8▶畫의 古字形은 또는 로서 羅振玉氏의 說[8]과 같이 『日光四射』의 狀을 象한 것이니, 畫가 日光을 象하는 데서 出發한 字이라 하면 圖는 倉廩所在(所有土地, 즉 領地)를 畫하는 데서 出發한 字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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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13-2이와 같이 圖字에 있어 ①地圖의 義, ②圖象 畫象의 義, ③計畫 謀策의 義가 있다고 하면, 河圖 綠圖(錄圖) 圖書의 圖 즉 圖讖의 圖는 三者 中 그 어떤 意義에 該當할 것인가? 이는 勿論 第二의 圖象(名詞)의 意요, 第一의 地圖나 第三의 計畫 謀度의 意는 아니니, 換言하면 河圖 綠(錄)圖 圖書 等 符瑞 徵驗의 圖는, 人爲的 計畫的 謀策的 出現을 標榜한다는 것보다도 될수록 神意的 自然的 天然的 出現을 標榜하는 것으로서 讖과 같이 未來에 일어날 事實의―秘密(隱密)한―象徵(Symbol) 標徵(Token) 信號(Sygnal) 徵候(Smptom) 前兆(omen) 暗示(Suggestion)로서의 意義를 가진 것이다. 즉 將來에 어떠한 事實이 일어나기 前에 미리 그 事象의 標徵으로서 어떠한 形式의 圖가 나타난다는 것이 즉 河圖 綠圖인 所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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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13-3그러나 그 圖는 반드시 圖畫的 形式을 要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形式으로나 含縮的 象徵的 信號的 表示를 줄 만한 記寫면 可하므로 文字 其他 符號로도 表示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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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13-4일로써 보면 圖는 讖과 거의 性質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즉 圖나 讖이나 將來의 徵驗을 意味하고 天▶P014-1意的(神意的) 自然的 現出을 標榜하는 同時에 그 表現(表示)의 方法과 形式이 神祕를 極하고 또 兩者가 흔히 王者 受命의 符驗으로서 任務를 다하든 點에 있어 全혀 서로 一致하여 조금도 다름이 없다. 이는 마침내 圖와 讖이 結合하여 『圖讖』이란 術語를 生하게 하고 또 위에 引說한 바와 같이 說文에 『河雒所出書曰讖』이라 하여 河圖洛書를 곧 讖이라고까지 하게 된 所以어니와, 以後로 圖와 讖은 더욱 더욱 區別이 없게 되어 圖가 곧 讖이요 讖이 곧 圖라고 할 만치 되었다. 그러나 兩者間에 區別이 全혀 없는 것은 아니다. 圖書에는 원래 符瑞·標徵으로서의 意가 많음에 對하여 讖에는 그보다도 占驗 豫言의 義가 더 또 讖의 傳達方法은 文字 外에 言語로써 發表할 수 있지만, 圖에 있어서는 文字나 其他의 形式으로써 반드시 記寫(○○)를 要하므로 言語(口頭)에 依한 表示는 圖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圖와 讖을 嚴密한 意味에서 區別한다면 지금 말한 바와 같으나, 兩者를 結合하여 『圖讖』이라고 할 때는 勿論 그 뜻도 서로 混合된 것이므로 그러한 巖密한 區別과 分析할 必要가 없는 것이다. 夢中에 나타나는 讖―즉 夢讖―과 言語(口述)에 依한 讖과 같은 것은 何等의 記寫의 形式이 없으므로 이를 圖라고 單稱할 수는 없지만, 圖讖이라고는 할 수 있는 것이며, 또 文字 以外의 어떠한 符號나 圖形으로 나타낸 未來의 標徵은 이를 『圖』라고 할지언정 『讖』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역시 圖讖이란 連稱語로서 부를 수는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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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14-2以上 說述한 바에 依하여 讀者는 圖讖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了得하였을 줄로 믿지만 다시 이를 묶어서 簡單히 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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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14-3圖讖은 그 內容形式의 眞僞와, 現出의 神祕與否를 莫論하고 將來의 事象―特히 人間生活의 吉凶禍福 盛衰得失▶P015-1에 對한 豫言 혹은 徵兆를 泛稱하는 用語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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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15-2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圖讖의 重要 條件은 무엇보다도 將來 事實에 對한 豫言 · 暗示에 있으므로 그 內容 方式 및 現出 의 神秘와 같은 것은 第二次的이라고 할 수 있으며, 過去에 關한 傳說的 說話는 설령 어떠한 神秘를 極하였을지라도 圖讖의 性質에 屬하지는 못한다. 例하면 緯書尙書中候에 堯舜禹湯文武周公의 諸聖人이 河圖洛書를 受하였다는 後人의 附會的 傳說은 이를 圖讖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機會에 있어 한 가지 辨明하여 두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은 圖讚과 祕緯와의 區別에 對하여서니, 祕緯의 書도 其中에 圖讖 祥瑞 歷運 符命 및 其他에 關한 神秘的 要素가, 많이 있어, 필경 緯와 圖讖을 連稱하여, 『圖緯』 『讖緯』 혹은 『緯圖』 『緯讖』이라고 하여, 全然 兩者를 混同하게까지 되고 또한 緯書 中에는 天文(占星) 災異에 關한 것이 많음으로 因하여 이를 『星緯』 혹은 『緯候』라고도 하지만, 緯는 本是 經 에 對한 語로 劉熙의 釋名(釋典藝)에 依하면 『緯圍也 反覆圍繞 以成經』이라 하고 실제 緯로서 經에 依附한 者가 있으니, 즉 易緯稽覽圖·乾鑿度·坤靈圖·通卦驗·是類謀‧辨終備 等 書緯璇璣鈴‧考靈耀·刑德収·帝命驗·運期授 等 詩緯推度災·紀歷樞·含神務 等 禮緯含文嘉·稽命徵·斗威儀 樂緯動聲儀·稽耀嘉·叶圖徵 孝經緯援神契·鉤命決 春秋緯演孔圖·元命包·文耀釣·運斗樞·感情符·合誠圖·考異郵·保乾圖·漢含孳·侑助期·握誠圖·潜譚巴·說題辭 等 七緯의 書가 그것이며, 또 緯書 中에는 未來에 對한 豫言的 部分보다도 過去에 關한 附會的 傳說이 많음으로 圖讖과는 本質 體制를 달리하는 것으로 보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淸의 徐養原의 緯候辨을 보면 원문주9▶『要之 圖讖乃術士之言 與經義初不相涉 至後人造作緯書 則因圖讖而牽合於經義 其於經義 皆西京博士家言 爲今文之學者也 盖前漢說經者好言災異 易有京房 尙書有夏侯勝 春秋有董仲舒 其說頗近於圖讖 著緯者因而文飾之 今有乾鑿度 與孟京易學相表裏 卦氣起中孚 稽覽圖詳之 張霸 僞撰百兩篇 作緯 者卽造中候十八篇 以符百二十篇之數 何休著公羊 述演孔圖於終篇 鄭康成曰公羊長於讖 又翼奉曰臣學齊詩 開五際之要▶P016其說見於汎歷樞 此其緣飾經術之大畧也云云』[9]이라고 한 一節이 있으니―이는 緯書 成立의 由來를 簡述한 것이어니와―그 要領은 圖讖은 術士의 言으로 經義와는 애초에 交涉이 없는 者이나 緯는 圖讖 其他 災異說에 依하여 經義를 牽合文飾한 것인즉 圖讖과 緯와는 本質을 달리한다는 意味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徐氏의 說을 매우 穩當한 양으로 생각하는 同時에 我中을 得한 者로 본다. 隋書(卷三十二) 經籍志에는 緯 及 讖의 由來를 述하야 『孔子旣叙六經 以明天人之道 知後世不能稽同其意 故別立緯及讖 以遺來世 其書出於前漢 有河圖九篇 洛書六篇』이라고 하여 孔子가 비로소 이를 내인 것과 같이 말하였지만, 그것은 固不足信의 說話다. 孔子와 같은 이가 그러한 不經無稽의 言을 後世에 垂할 理도 萬無하고 또 緯書 中에는 孔子 以後 漢代 思想의 要素가 많이 들어 있으므로써다. 未來를 豫言하는 圖讖思想의 起源은 後에 말할 바와 같이 孔子 以前 멀리 原始時代에 求할 수 있음에 反하여 緯의 始現은 普通 學者의 所唱과 같이 前漢末 哀平時代에서 더 멀리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다. 漢書(卷七十五) 李尋傳에 尋이 王根에게 說한 言 中에 『五經六緯』의 句가 있음을 보면 尋說의 年代는 正히 成帝時에 當한즉 이즈음부터 緯의 崩芽가 發하였던 것 같다. 何如튼 緯와 圖讖과는 本質을 달리하는 同時에 起源年代도 서로 큰 差異가 있는 것이니, 위의 徐氏의 論文 中에 또한 『竊意緯書當起 於西京之季 而圖讖則自古有之』라고 하였다. 이 역시 움직일 수 없는 鐵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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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원문주


  1. 孔安國은 河圖를 八卦라 解하고(論語 何晏集解), 劉歆은 『虙犧氏繼天而王受河圖 則而畫之 八卦是也 禹治洪水 賜雒書 法而陳之 洪範是也』라 附會하고(漢書 五行志), 鄭玄은 春秋緯에 의하여 『河龍圖發 洛龜書感 河圖有九篇 洛書有六篇』이라 하고(鄭玄易註), 다시 僞孔安國尙書大傳에 이르러서는 『河圖八卦 伏犧王天下 龍馬出河 遂則其文 以畵八卦 謂之河圖』, 『天與禹洛出書 神龜負文而出 列於背 有數至于九 禹遂因而第之 以成九類』라 하였으니, 河圖洛書에 對한 漢儒 以來의 設이 어떻게 發展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2. 五十五點의 奇偶黑白圖란 것을, 즉 易繫辭에 보이는 大衍數(天地數)―天一·地二·天三·地四·天五·地六·天七·地八·天九·地十―를 東西南北 中央의 五方에 分配하여, 北(水)에는 一과 六, 東(水)에는 三과 八, 南(火)에는 二와 七, 西(金)에는 四와 九, 中央(土)에는 五와 十의 奇(白) 偶(黑) 兩數를 配定한 것이니, 이러한 配定은 어느 때로부터 始作된 것인지 仔細치 아니하나, 이미 漢代에도 行하였던 모양이니, 楊雄의 太玄經(玄圖篇)에 『一與六共宗(范望解云在北方也) 二與七爲朋(在南方也) 三與八成友(在東方也) 四與九同道(在西方也) 五與十相守(在中央也)』라 하고, 鄭玄의 易注 中(大衍數)에는 분명히 『衍演也 天一生水于北 地二生火于南 天三生木于東 地四生金于西 天五生土于中 陽無耦 陰無配未得相成 地六成水于北 與天一幷 天七成火于南 與地二幷 地八成木于東 與天三幷 天九成金于西 與地四幷 地十成土于中 與天五幷也云云』(鄭氏佚書易注七)이라 하였다. 楊子의 配定은 과연 范氏의 注解와 같이 방위까지 幷指한 것이라고 볼는지 一疑問이나, 易의 天地數를 奇偶合作으로 分配하려고 한 것만은 分明하며, 鄭氏의 配定은 바로 宋儒들의 이른바 河圖 그대로의 內容이다. 그러나 楊氏나 鄭氏는 이러한 配定만 試하였을 뿐이요, 일찍이 이를 가리켜 『河圖』라고는 明言하지 아니하였다. 이를 비로소 河圖라고 하기는 소위 後魏 關子明의 洞極經이란 것으로서, 거기에 『河圖之文 七前六後 八左九右 聖人觀之 以畵卦云云』이라고 보이거니와, 洞極經은 실상 宋의 阮逸의 僞作에 係한 것임은 學者가 共認하는 바이다. 또 그 所謂 河圖之文이란 것도 奇偶兩數合作의 分配가 아니므로 完全한 五十五點의 奇偶黑白圖라고는 할 수 없다. 五十五點의 奇偶黑白圖로서 河圖의 形式을 具體化시킨 이는 즉 朱子 及 蔡元定 等이니 그 圖形과 說明은 易學啓蒙에 仔細히 보인다.
  3. 四十五點의 黑白圖는 즉 二九四·七五三·六一八(總數 四十五)의 數를 橫으로 上中下 三段에 分列하되, 奇數는 白, 偶數는 黑으로 나타낸 것이니, 이 配列의 數는 縱으로나 橫으로나, 또는 斜로나 어느 편으로든지 一列을 合하면 十五의 和을 得하는 것인데 西洋에서도 옛부터 이를 異常이 여기어 魔方 또는 方陣이라고 하여왔으나, 지금은 一種의 遊戱算術에 不過한 것이다. 中國에서는 옛날에 더욱 이 數를 神秘視하여 明堂의 九宮制(禮記月令, 大戴禮明堂篇에 보임)를 비롯하여 易乾鑿度의 太一下行九宮說, 天文曆象의 九星術에 이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配列의 圖를 洛書로 附會하기는 실상 宋阮逸의 僞作인 洞極經에 시작되어 거기에 『洛書之文 九前一後 三左七右 四前左 八後左 六後右 後聖稽 之以爲三象 一四七 爲天生之數 二五八爲地育之數 三六九爲資之數』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朱子 及 蔡元定에 이르러 大成된 것이니, 朱, 蔡의 洛書四十五點黑白圖의 圖形과 說明은 역시 易學啓蒙 中에 仔細히 보인다.
  4. 五十五點의 大衍數를 洛書라 하고, 四十五點의 九宮數를 河圖라고 한 것은 宋의 劉牧의 所撰인 易數釣隱圖의 說인데, 劉氏는 가로대 河圖와 洛書는 共히 伏羲氏 時代에 나타나 伏羲가 이를 兼則하여 八卦를 畫하었던바, 五行의 數가 顯著치 못하므로 禹가 다시 이를 法하여 九疇를 陳하니, 生成의 數 五十五가 이에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 說은 確實히 後日의 朱子 及 蔡元定의 定한 河圖 洛書의 圖說과는 正反對의 것이거니와, 四十五點의 九宮數를 河圖로 삼는 說의 傾向은 劉氏보다도 훨씬 以前에 求할 수 있나니, 後漢書(卷八十七) 劉瑜傳을 보면 同人의 上書 中에 『河圖授嗣 正在九房』이란 句 보이고, 또 魏의 魏伯陽의 易叅同契(上卷)에는 『上察河圖文 下序地形流』라고 한 文句가 있다. 九房이니 河圖文이니 하는 것은 天文의 太一九宮 혹은 九星을 가리켜 이름인 듯하니, 이 推測이 어그러지지 아니한다면 위의 劉氏의 所謂 河圖는 여기에 淵源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5. 羅振玉著 殷虛書契考釋(啚字條).
  6. 同 上.
  7. 元의 王禎의 農書(十六), 農器圖譜十倉廩門에 『京 倉之方著 廣雅云字從广倉也 又四起曰京 今取其方而高大之義 以名倉曰京則其象也云云』이라 한 것을 參考함이 좋다.
  8. 羅振玉著 殷虛文字類編(畵字條).
  9. 詁經精舍文集 卷十二(緯侯不起於哀平辨).






현대문주


  1. 공안국인물(孔安國)은 하도를 팔괘라 해하고(논어서적 하안집해(何晏集解)), 유흠인물(劉歆)은 “虙犧氏繼天而王受河圖 則而畫之 八卦是也 禹治洪水 賜雒書 法而陳之 洪範是也”라 부회하고(한서서적 오행지(五行志)), 정현인물(鄭玄)은 춘추위(春秋緯)에 의하여 “河龍圖發 洛龜書感 河圖有九篇 洛書有六篇”이라 하고(鄭玄易 註), 다시 위공안국상서대전서적(僞孔安國尙書大傳)에 이르러서는 “河圖八卦 伏犧王天下 龍馬出河 遂則其文 以畵八卦 謂之河圖”, “天與禹洛出書 神龜負文而出 列於背 有數至于九 禹遂因而第之 以成九類”라 하였으니, 하도낙서에 대한 한유 이래의 설이 어떻게 발전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2. 55점의 기우흑백도란 것을, 즉 역 계사서적에 보이는 대연수(大衍數)(천지수)―천일(天一)·지이(地二)·천삼(天三)·지사(地四)·천오(天五)·지육(地六)·천칠(天七)·지팔(地八)·천구(天九)·지십(地十)―를 동서남북 중앙의 오방에 분배하여, 북(水)에는 1과 6, 동(水)에는 3과 8, 남(火)에는 2와 7, 서(金)에는 4와 9, 중앙(土)에는 5와 10의 기(奇)(백), 우(偶)(흑), 양수를 배정한 것이니, 이러한 배정은 어느 때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자세치 아니하나, 이미 한대에도 행하였던 모양이니, 양웅인물(楊雄)의 태현경서적(현도편(玄圖篇))에 “一與六共宗(范望解云在北方也) 二與七爲朋(在南方也) 三與八成友(在東方也) 四與九同道(在西方也) 五與十相守(在中央也)”라 하고, 정현인물의 역주(易注) 중(대연수)에는 분명히 “衍演也 天一生水于北 地二生火于南 天三生木于東 地四生金于西 天五生土于中 陽無耦 陰無配未得相成 地六成水于北 與天一幷 天七成火于南 與地二幷 地八成木于東 與天三幷 天九成金于西 與地四幷 地十成土于中 與天五幷也云云”(鄭氏佚書易注七)이라 하였다. 양자(楊子)의 배정은 과연 범(范) 씨의 주해와 같이 방위까지 병지(幷指)한 것이라고 볼는지 의문이나, 역의 천지수를 기우합작으로 분배하려고 한 것만은 분명하며, 정 씨의 배정은 바로 송유들의 이른바 하도 그대로의 내용이다. 그러나 양 씨나 정 씨는 이러한 배정만 시도하였을 뿐이요, 일찍이 이를 가리켜 ‘하도’라고는 명언하지 아니하였다. 이를 비로소 하도라고 하기는 소위 후위(後魏) 관자명인물(關子明)의 동극경서적(洞極經)이란 것으로서, 거기에 “河圖之文 七前六後 八左九右 聖人觀之 以畵卦云云”이라고 보이거니와, 동극경서적은 실상 송의 원일인물(阮逸)의 위작에 계(係)한 것임은 학자가 공인하는 바이다. 또 그 소위 하도지문이란 것도 기우 양수 합작의 분배가 아니므로 완전한 55점의 기우흑백도라고는 할 수 없다. 55점의 기우흑백도로서 하도의 형식을 구체화시킨 이는 즉 주자인물채원정인물(蔡元定) 등이니 그 도형과 설명은 역학계몽서적(易學啓蒙)에 자세히 보인다.
  3. 45점의 흑백도는 즉 294·753·618(총수 45)의 수를 횡으로 상중하 삼단에 분열하되, 기수는 백, 우수는 흑으로 나타낸 것이니, 이 배열의 수는 종으로나 횡으로나, 또는 사(斜)로나 어느 편으로든지 일열을 합하면 15를 얻는 것인데 서양에서도 옛부터 이를 이상이 여기어 마방(魔方) 또는 방진(方陣)이라고 하여왔으나, 지금은 일종의 유희 산술에 불과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옛날에 더욱 이 수를 신비하게 보아 명당의 구궁제(九宮制)(예기서적 월영(月令), 대대예(大戴禮) 명당편(明堂篇)에 보임)를 비롯하여 역건착도(易乾鑿度)의 태일하행궁설(太一下行九宮說), 천문역상(天文曆象)의 구성술(九星術)에 이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배열의 도를 낙서로 부회하기는 실상 송 원일인물의 위작인 동극경서적에 시작되어 거기에 “洛書之文 九前一後 三左七右 四前左 八後左 六後右 後聖稽 之以爲三象 一四七 爲天生之數 二五八爲地育之數 三六九爲資之數”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주자인물채원정인물에 이르러 대성된 것이니, 주, 채의 낙서 45점 흑백도의 도형과 설명은 역시 역학계몽서적 중에 자세히 보인다.
  4. 55점의 대연수를 낙서라 하고, 45점의 구궁수를 하도라고 한 것은 송의 유목인물(劉牧)의 소찬인 역수조은도(易數釣隱圖)의 설인데, 유 씨는 말하기를 하도와 낙서는 공히 복희 씨 시대에 나타나 복희가 이를 겸칙(兼則)하여 팔괘를 그렸던바, 오행의 수가 현저치 못하므로 우(禹)가 다시 이를 법(法)하여 구주(九疇)를 진(陳)하니, 생성의 수 55가 이에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설은 확실히 후일의 주자인물채원정인물이 정한 하도낙서의 도설과는 정반대의 것이거니와, 45점의 구궁수를 하도로 삼는 설의 경향은 유 씨보다도 훨씬 이전에 구할 수 있나니, 후한서서적(권87) 유유전(劉瑜傳)을 보면 같은 사람의 상서 중에 “河圖授嗣 正在九房”이란 구가 보이고, 또 위(魏)의 위백양인물(魏伯陽)의 역참동결서적(易叅同契)(상권)에는 “上察河圖文 下序地形流”라고 한 문구가 있다. 구방이니 하도문이니 하는 것은 천문의 태일구궁(太一九宮) 혹은 구성을 가리켜 이름인 듯하니, 이 추측이 어그러지지 아니한다면 위의 유 씨의 소위 하도는 여기에 연원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