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참에 대한 일이의 고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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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석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0월 22일 (화) 12:52 판 (본문2: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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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참에 대한 일이의 고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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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圖讖에 對한 一二의 考察(一)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10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이병도 역자 집필일자 게재연월 1939년 4
시작쪽 001쪽 종료쪽 018쪽 전체쪽 018쪽 연재여부 단독 범주 논문 분야 민속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목차







본문


본문1: 서언


도참은 일종의 미신 혹은 신비사상에 속하는 것이고, 이것의 신앙 조작 내지 유행은 동양사상 특히 중국 및 조선사상에 있어 일층 많이 발견되는 사상이며, 더욱 그 정치·사회사의 이면에 있어, 때때로 밀접한 교섭을 가지는 것이니, 종래 이런 류의 사상은 종종의 신비적 언설에 의하야 인심을 충동 혹은 지배하야 종종의 공능(功能)을 행사하였을 만큼 실제생활에 끼친 영향은 실로 적지 아니하였다. 한 왕조가 일어나고 거꾸러지는 소위 ‘역성혁명’의 큰 변동기에 있어서는 물론이요, 기타 내환외우로 시국이 불안한 때에도 이런 종류의 사상은 반드시 머리를 듣고 활보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정치(개혁)운동, 민중(갱생)운동의 지도자 자신이 이를 이용 혹은 조작하여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민중을 기만하고 구사(驅使)하며 민중은 이에 맹신, 맹종하여 얼마나 많은 성패득실의 자취를 역사상에 남기어 놓았는지 모른다. 저 왕망인물(王莽)의 찬위, 광무인물(光武)의 중흥을 비롯하여 중국 역대의 역성의 때에 도참의 유작(遺作) 혹은 이용 유행을 보지 아니한 적이 없었고, 또 황건(黃巾), 백련(白蓮) 기타의 비밀결사적 운동이 순연히 이러한 사상으로 색채되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우리 동방에 있어서도 옛적 삼국의 쇠망의 때라든지, 더구나 고려 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조의 초중말엽에도 이런 사상과의 교섭이 얼마나 잦았으며, 특히 최근세의 동학교문의 운동과 같은 것은 마치 중국의 백련교, 의화권교(義和拳敎)의 운동과 방불한 감을 주게 하는 것으로, 이 역시 도참적 요소를 다량으로 가미하였던 것이다. 중국의 소위 『공자폐방기서적(孔子閉房記)』니 『추배도서적(推背圖)』니 하는 것과 고려조의 『도선비기서적(道詵秘記)』 따위 이조의 『정감록서적(鄭鑑錄)』 따위의 도참서류는, 식자계급, 무식자계급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인심을 미혹하여 종종의 폐해를 끼치었으며, 이런 까닭에 혹은 도참 배척의 성과 금지의 령이 행치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 워낙 그 신앙 및 사상의 뿌리가 인간 심리에 깊이 밝히어 있는 만큼 잠재적 세력을 가지고 기회를 따라 재현의 작용을 함이 보통이었다. 도참에 대한 사상사적 방면의 연구는 오인에게 과여된 중요한 제목임에 불구하고 재래 학자의 학술적 고찰을 거치지 아니하였으며, 현금에도 이에 대하여 연구하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 나의 과문으로는 듣지 못하였다. 나는 연래 이 방면 연구에 다소의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어 간간이 사고의 일단을 발표하여 왔거니와, 이번에는 특히 도참 그것의 개념에 대하여―즉 그 의의, 유별 및 기원에 대하여―약간의 고찰을 시하려 한다.
쪽수▶P001-1圖讖은 一種의 迷信 혹은 神祕思想에 屬하는 자이어니와, 이것의 信仰 造作 乃至 流行은 東洋史上 特히 中國 及 朝鮮史上에 있어 一層 많이 發見되는 事象이며, 더욱 그 政治·社會史의 裏面에 있어, 때때로 密接한 交涉을 가지는 것이니, 從來 이런 類의 思想은 種種의 神秘的 言說에 依하야 人心을 衝動 혹은 支配하야 種種의 功能을 行使하였는 이만치 實際生活에 끼친 影響은 實로 적지 아니하였다. 한 王朝가 일어나고 거꾸러지는 所謂 『易姓革命』의 큰 變動期에 있어서는 勿論이요, 其他 內患外憂로 時局이 不安한 때에도 이런 種類의 思想은 반드시 머리를 듣고 闊步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政治(改革)運動 民衆(更生)運動의 指導者 自身이 이를 利用 혹은 造作하야 自己편에 有利하▶P002도록 民衆을 欺瞞하고 驅使하며 民衆은 이에 盲信 盲從하여 얼마나 많은 成敗得失의 자취를 歷史上에 남기어 놓았는지 모른다. 저 王莽의 簒位, 光武의 中興을 비롯하여 中國 歷代의 易姓의 際에 圖讖의 遺作 혹은 利用 流行을 보 지 아니한 적이 없었고, 또 黃巾 白蓮 其他의 秘密結社的 運動이 純然히 이러한 思想으로 色彩되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우리 東方에 있어서도 옛적 三國의 衰亡의 際라든지, 더구나 高麗 一代는 말할 것도 없고, 李朝의 初中末葉에도 이런 思想과의 交涉이 얼마나 잦았으며, 特히 最近世의 東學敎門의 運動과 같은 것은 마치 中國의 白蓮敎 義和拳敎의 運動과 枋佛한 感을 주게 하는 것으로, 이 역시 圖讖的 要素를 多量으로 加味하였던 것이다. 中國의 所謂 『孔子閉房記』니 『推背圖』니 하는 것과 高麗朝의 『道詵秘記』 따위 李朝의 『鄭鑑錄』 따위의 圖讖書類는, 識者階級 無識者階級을 莫論하고 오랫동안 인심을 迷惑하여 種種의 弊害를 끼치었으며, 이런 까닭에 혹은 圖讖排斥의 聲과 禁止의 令이 行치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 워낙 그 信仰 及 思想의 뿌리가 人間心理에 깊이 밝히어 있는 이만치 潜在的 勢力을 가지고 機會를 따라 再現의 作用을 함이 普通이었다. 圖讖에 對한 思想史的 方面의 研究는 吾人에게 課與된 重要한 題目임에 不拘하고 在來 學者의 學術的 考察을 거치지 아니하였으며, 現今에도 이에 對하여 硏究하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 나의 寡聞으로는 듣지 못하였다. 나는 年來 이 方面 硏究에 多少의 興味와 關心을 가지게 되어 間間이 私考의 一端을 發表하여 왔거니와, 이번에는 特히 圖讖 그것의 槪念에 就하여―즉 그 意義 類別 및 起源에 就하여―若干의 考察을 試하려 한다.





































본문2: 도참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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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03-1圖識은 즉 圖와 讖과의 連稱語로서, 單히 이를 圖라고도 하고 讖이라고 도하며 또 緯와 結合하야 圖緯 讚緯라고도 하는 것이나, 圖讖과 緯는 後에 말할 바와 같이 본래 本質을 달리하고, 처음에는 반드시 交涉이 있던 것도 아니며, 그 用語에 있어서도 『圖讖』편이 『圖緯』나 『讚緯』의 語보다는 좀 몬저 나타나고 또 널리 使用되어 온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特히 圖讖이란 用語를 就하기로 하였다. 그러면 圖讖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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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03-2圖讖이 무엇인가를 좀 仔細히 상고하려면 그 用語의 意義로부터 詮索할 必要가 있고, 또 그리함에는 각기 글자의 오랜 用語文例와 그 本質的 語義를 캐어, 이 두 글자의 連合된 所以를 밝히어 봄이 便利할 듯하다. 나의 考究의 便宜上, 먼저 讖字에 就하여 조사하고 생각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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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03-3今日 傳來의 文獻으로서 讖字가 나타나는 가장 오랜 것을 든다면, 第一 먼저 史記卷四十三 趙世家에―扁鵲이 趙簡字의 病을 보고 나와서 告하는 말이란 記載 中에―『在昔 秦繆公嘗如此七日而寤 寤之日 告公孫支與子輿日 我之帝所甚樂 (中略) 帝告我 晉國將大覇○獻公의 亂 五世不安 其後將覇○文公 未老而死 霸者之子○襄公 且令而國○秦公 男女無別 公孫支 書而藏之 奏讖(●●)於是出矣』라 한 秦讖과 淮南子卷十六 說山訓 中에 『六畜生 多耳目者不祥 讖書(●●)著之』라 한 讖書를 들 수 있다. 그런데 史記의 所謂 『秦讖』은 그 內容의 믿기 어려움은 別問題로 하고―同書卷百五 扁鵲傳에 보이는 同一 記事 中에는 『奏策』으로 되어있다. 讖字가 先秦文獻에 全혀 나타나지 안는 것으로 보면 차라리 『奏策』이 原史料 그대로의 面▶P004目을 傳하는 것 같고 『秦讖』의 讖은 史記 撰者의 손에 改筆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거니와, 그는 어떻든 이러한 境遇의 『策』과 讖과는 勿論 意味 相通의 것으로 共히 一種의 神託(oracle) 夢兆(omen from dream) 혹은 天啓(divine revelation)를 記錄한 簡冊의 謂인 듯, 就中 策에는 簡札‧著筮‧符籤의 意가 있으므로 이는 確實이 神의 音信(message) 占言 等을 적은 簡札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淮南子의 所謂 『讖書』는 瑞異徵驗에 關한 書로서, 別言하면 徵兆 (omen)의 吉凶을 判斷하는 書인 듯하다. 다음에 漢書卷四十八 賈誼傳을 보면 同人의 鶚賦 中에 『異物來崪 私怪其故 發書占之()言 其度』라 한 讖字가 보이는데, 史記卷八十四 同人傳의 同文 中에는 讖字가 역시 策字로 되어있다. 勿論 이것도 策字가 original이요 字는 漢書 撰者의 改置한 바로 볼 것이어니와, 여기의 策은 龜策 蓍策의 策으로 占 意味한 것이며 讖은 策의 辭, 다시 말하면 占辭 그것이다. 즉 이런 境遇의 讖字와 策字는 占 또는 占言이란 意味로 通用된 것인 듯하다. 讖字의 發明이 어느 때에 되었는지는 자세치 아니하나 現存한 文獻으로는 우의 史記 · 淮南子의 記事로써 그 初見이라고 할 수 있으며, 前漢 末期에는 이 方面의 專門家와 專門書籍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漢書의 이즈음에 關한 記事 中에는 讖字가 더러 나오게된다. 漢書卷十一 哀帝紀 建平 二年條에 待詔夏賀良 等의 上言 中에는 『赤精子之讖(○○○○○) 漢家歷運中衰云云』의 句가 있고、同書卷七十五 李尋傳에 依하면 이 앞서 成帝時에도 齊人甘忠可란 者가 있어 역시 이 讖說을 唱하야 『天帝使眞人赤精子下敎我此道』라고 한 것이 적히어 있다. 所謂 『赤精子의 讖』은 그 標枋으로서는 역시 一種의 神託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도 天帝 · 眞人에 假託(●●)하야 漢室의 歷運을 말한 普通의 豫言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또 同書卷九十九 王莽傳을 보면 地皇 二年條에는 卜者王況이 李焉이란 者를 爲하여 讖書(○○)를 作하야 『劉氏가 復興하고 李氏가 그를 도으리라』는 말을 한 것이 있고, 更始 元年條에도 道士西門君惠란 者가 天文讖記(○○○○)를 좋아하여 將軍 王涉을 ▶P005-1爲하여 말하기를 『星孛掃宮 劉氏當復興云云』이라고 하였다는 것이 적히어 있다. 『劉氏復興』의 說은 當時에 盛行하는 讖說이어서 宛人 李通 等도 이런 設로써 劉秀(光武帝)를 衝動하여 마침내 舉事를 하게 한 것은 有名한 事實로, 後漢書卷一 光武紀 첫 장에 『宛人李通等 以圖讖(○○)說光武云 劉氏復與 李氏爲輔云云』이라고 하여 있거니와, 이들 讖書 · 讖記 · 圖讖은 역시 卜筮 또는 天文에 依하여, 혹은 鬼神에 假託하여, 當時 劉氏의 再興을 豫言하고 또 이를 刺戟케 한 一種의 符命說이었다. 圖讖이란 語는 同後漢書에, 『圖緯』, 『讖緯』의 語와 함께 거이 枚舉키 어려울 만치 많이 나오지만, 漢書 王莽傳 平帝元始四年의 記事 中에도 이 『天文圖讖』의 語가 보이나 現存 文獻으로는 이것이 初見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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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05-2要컨대 圖讖의 讖은 讖言 讖書 讖記 讖錄의 謂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또 그것이 神託 天啓 夢兆 瑞異 占言 歷運 符命 및 其他의 豫言 秘記 等을 가르치는 말인 것도 以上 列擧의 文例에 例하여 明白하지만 다시 讖이란 글자의 뜻이 무엇인가를 상고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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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005-3許愼의 說文을 보면, 『讖()也 有徵驗(○○)之書 河雒所出書曰讖 从言 韱聲』이라 하고, 또 後漢書卷八十九 張衡傳을 보면 同人의 圖讖非難의 疏中에 『立言於前(○○○○) 有徵於後(○○○○) 故智者貴焉 謂之讖書』라고 하였다. 唐의 章懷太子의 後漢書 光武帝紀 註前記 圖讖의 註에는 『讖 符命之書 讖()也 言爲王者受命之徵驗(○○)也』라 하고, 宋의 戴侗의 六書故에는 『前定徵兆之言』이라고 定義하였다. 이들 說에 依하면 讖에는 驗也 徵也의 義가 있으니, 事前의 立言 ‧ 徵兆 ‧ 暗示 等의, 將來에 있어서의, 符合 效驗을 約束(promise)하는 것이다. 別言하면 未來의 事相에 對한 標徵(token) 혹은 信號(signal)로서 「그러케 될」 것을 確證的으로 豫言하는 것이다. 說文에 『河雒所出書』란 것은 즉 河圖洛書의 謂로서, 圖書에 就하여는 後에 仔細히 말▶P006하려고 하거니와, 이것과 章懷太子의 所謂 『讖符命之書』는 各各 讖의 一例證으로서 든 것에 끝이고 그 一般的 意義는 아니다. 차라리 그 一般的 意味는 『驗也』, 『徵驗也』라고 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讖의 目的論的 說明이라고 할 수 있고, 그 木質的 語源的 意義는 따로 있다고 생각된다. 劉熙의 釋名(釋典藝)에는 以上 諸說과 달라 『讖纖也 其義纖也』라고 하였다. 讖의 義를 纖微也라고 한 것은 讖記 讖言의 內容이 대개 神祕한 隱微한 徵兆 兆朕의 語로써 채(充)여 있다는 見地에서의 解釋뿐만 아니라, 자못 根本的으로, etymologically로 讖字를 解釋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上記 說文에 『从言韱聲』이라고 함과 같이 이 글자는 言字와 韱字로써 結合되어 있다. 韱의 聲(音)뿐 아니라 그 뜻도 맺어 있는 것이다. 韱은 韯 혹은 虃으로도 書하여 說文에 『山韭也』라고 하였다. 山韮(○○)는 즉 細葉인 『부추』의 謂로 古來 中國人의 常食하는 野菜의 一種이다. 細葉의 特徵을 가지기 때문에 이 韱字는 굴러서 纖微 些細 尖銳의 義를 갖게 되었으니, 그것은 이 글자와 合成된 다른 모든 글자의 意義로부터 歸納하여 알 수 있다. 于先 孅銳也細也泉水纔出也悔也細慮也銳也竹籤也細也纖虫長帶, 旗斿銳尖也 細雨微雨과 같은 字를 보아도 明瞭할 것이다. 그런즉 讖字도―言邊에 韱을 붙였으므로―역시 纖微한 말이라든지 隱秘한 意味를 가진 말이라고 解釋될 것이다. 이것이 도리어 讖字의 original한 뜻일 것이다. 이러한 纖徵의 뜻을 가진 讖字가 神託 天啓 夢兆 瑞異 卜言 歷運說 符命說 및 其他의 豫言과 같이 將來의 徵驗을 約束하는 말에 對한 一共通的 術語로 된 것은 當然한 바로서, 이들 自身이 極히 神秘的인 隱微的인 特質을 有하고 또 極히 秘密히 造作되고 또 往往 秘密히 使用되는 것이다. 讖記를 在來 朝鮮서는 祕記 密記 祕詞 혹은 祕訣이라고도 하거니와, 그 理由는 여기에 있다. 要컨대 讖이란 것은 隱秘한 言語 혹은 文字로써 將來의 일을 豫言 暗示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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