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참에 대한 일이의 고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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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석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0월 22일 (화) 12:46 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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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참에 대한 일이의 고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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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圖讖에 對한 一二의 考察(一)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10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이병도 역자 집필일자 게재연월 1939년 4
시작쪽 001쪽 종료쪽 018쪽 전체쪽 018쪽 연재여부 단독 범주 논문 분야 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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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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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본문


본문1: 서언


도참은 일종의 미신 혹은 신비사상에 속하는 것이고, 이것의 신앙 조작 내지 유행은 동양사상 특히 중국 및 조선사상에 있어 일층 많이 발견되는 사상이며, 더욱 그 정치·사회사의 이면에 있어, 때때로 밀접한 교섭을 가지는 것이니, 종래 이런 류의 사상은 종종의 신비적 언설에 의하야 인심을 충동 혹은 지배하야 종종의 공능(功能)을 행사하였을 만큼 실제생활에 끼친 영향은 실로 적지 아니하였다. 한 왕조가 일어나고 거꾸러지는 소위 ‘역성혁명’의 큰 변동기에 있어서는 물론이요, 기타 내환외우로 시국이 불안한 때에도 이런 종류의 사상은 반드시 머리를 듣고 활보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정치(개혁)운동, 민중(갱생)운동의 지도자 자신이 이를 이용 혹은 조작하여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민중을 기만하고 구사(驅使)하며 민중은 이에 맹신, 맹종하여 얼마나 많은 성패득실의 자취를 역사상에 남기어 놓았는지 모른다. 저 왕망인물(王莽)의 찬위, 광무인물(光武)의 중흥을 비롯하여 중국 역대의 역성의 때에 도참의 유작(遺作) 혹은 이용 유행을 보지 아니한 적이 없었고, 또 황건(黃巾), 백련(白蓮) 기타의 비밀결사적 운동이 순연히 이러한 사상으로 색채되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우리 동방에 있어서도 옛적 삼국의 쇠망의 때라든지, 더구나 고려 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조의 초중말엽에도 이런 사상과의 교섭이 얼마나 잦았으며, 특히 최근세의 동학교문의 운동과 같은 것은 마치 중국의 백련교, 의화권교(義和拳敎)의 운동과 방불한 감을 주게 하는 것으로, 이 역시 도참적 요소를 다량으로 가미하였던 것이다. 중국의 소위 『공자폐방기서적(孔子閉房記)』니 『추배도서적(推背圖)』니 하는 것과 고려조의 『도선비기서적(道詵秘記)』 따위 이조의 『정감록서적(鄭鑑錄)』 따위의 도참서류는, 식자계급, 무식자계급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인심을 미혹하여 종종의 폐해를 끼치었으며, 이런 까닭에 혹은 도참 배척의 성과 금지의 령이 행치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 워낙 그 신앙 및 사상의 뿌리가 인간 심리에 깊이 밝히어 있는 만큼 잠재적 세력을 가지고 기회를 따라 재현의 작용을 함이 보통이었다. 도참에 대한 사상사적 방면의 연구는 오인에게 과여된 중요한 제목임에 불구하고 재래 학자의 학술적 고찰을 거치지 아니하였으며, 현금에도 이에 대하여 연구하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 나의 과문으로는 듣지 못하였다. 나는 연래 이 방면 연구에 다소의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어 간간이 사고의 일단을 발표하여 왔거니와, 이번에는 특히 도참 그것의 개념에 대하여―즉 그 의의, 유별 및 기원에 대하여―약간의 고찰을 시하려 한다.
쪽수▶P001-1圖讖은 一種의 迷信 혹은 神祕思想에 屬하는 자이어니와, 이것의 信仰 造作 乃至 流行은 東洋史上 特히 中國 及 朝鮮史上에 있어 一層 많이 發見되는 事象이며, 더욱 그 政治·社會史의 裏面에 있어, 때때로 密接한 交涉을 가지는 것이니, 從來 이런 類의 思想은 種種의 神秘的 言說에 依하야 人心을 衝動 혹은 支配하야 種種의 功能을 行使하였는 이만치 實際生活에 끼친 影響은 實로 적지 아니하였다. 한 王朝가 일어나고 거꾸러지는 所謂 『易姓革命』의 큰 變動期에 있어서는 勿論이요, 其他 內患外憂로 時局이 不安한 때에도 이런 種類의 思想은 반드시 머리를 듣고 闊步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욱 政治(改革)運動 民衆(更生)運動의 指導者 自身이 이를 利用 혹은 造作하야 自己편에 有利하▶P002도록 民衆을 欺瞞하고 驅使하며 民衆은 이에 盲信 盲從하여 얼마나 많은 成敗得失의 자취를 歷史上에 남기어 놓았는지 모른다. 저 王莽의 簒位, 光武의 中興을 비롯하여 中國 歷代의 易姓의 際에 圖讖의 遺作 혹은 利用 流行을 보 지 아니한 적이 없었고, 또 黃巾 白蓮 其他의 秘密結社的 運動이 純然히 이러한 思想으로 色彩되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우리 東方에 있어서도 옛적 三國의 衰亡의 際라든지, 더구나 高麗 一代는 말할 것도 없고, 李朝의 初中末葉에도 이런 思想과의 交涉이 얼마나 잦았으며, 特히 最近世의 東學敎門의 運動과 같은 것은 마치 中國의 白蓮敎 義和拳敎의 運動과 枋佛한 感을 주게 하는 것으로, 이 역시 圖讖的 要素를 多量으로 加味하였던 것이다. 中國의 所謂 『孔子閉房記』니 『推背圖』니 하는 것과 高麗朝의 『道詵秘記』 따위 李朝의 『鄭鑑錄』 따위의 圖讖書類는, 識者階級 無識者階級을 莫論하고 오랫동안 인심을 迷惑하여 種種의 弊害를 끼치었으며, 이런 까닭에 혹은 圖讖排斥의 聲과 禁止의 令이 行치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 워낙 그 信仰 及 思想의 뿌리가 人間心理에 깊이 밝히어 있는 이만치 潜在的 勢力을 가지고 機會를 따라 再現의 作用을 함이 普通이었다. 圖讖에 對한 思想史的 方面의 研究는 吾人에게 課與된 重要한 題目임에 不拘하고 在來 學者의 學術的 考察을 거치지 아니하였으며, 現今에도 이에 對하여 硏究하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 나의 寡聞으로는 듣지 못하였다. 나는 年來 이 方面 硏究에 多少의 興味와 關心을 가지게 되어 間間이 私考의 一端을 發表하여 왔거니와, 이번에는 特히 圖讖 그것의 槪念에 就하여―즉 그 意義 類別 및 起源에 就하여―若干의 考察을 試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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