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승(SNU24-1)

North Korea Humanities

김지선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0월 5일 (토) 15:59 판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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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한자명)
이희승.png
출처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6728
 
한글명 이희승 한자명 李熙昇 영문명 Lee Heeseung 가나명 이칭 일석(一石)
성별 남성 생년 1896년(고종 33)년 몰년 1989년년 출신지 경기도 광주 전공 법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해방[1] 이후 『한글맞춤법강의』, 『국어학개설』, 『새고등문법』, 『국어대사전』 등을 저술한 국어학자이다.


생애


학구열이 엄청났던 젊은 시절

1903년부터 5년 간 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1908년 이정옥(李貞玉)인물과 혼인한 다음 곧 상경하여 관립 한성외국어학교기관영어부에 입학하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2]로 이 학교가 폐교되어 3년만에 졸업하였다. 이어 1911년 9월까지 경성고등보통학교기관에서 수학하고 1912년부터 1913년까지 양정의숙(養正義塾)기관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 1914년 사립 신풍학교(新豊學校)기관 교원으로 취임하고, 한편으로 1915년 사립 중동학교 야간부기관에 다녔으며, 이어 1918년 사립 중앙학교기관 4년을 졸업하였다. 1923년 전문학교 입학 검정 시험에 합격하여, 1925년 연희전문학교기관 수물과(數物科)를 졸업하고 이어 1927년 경성제국대학기관 예과를 수료한 다음, 1930년 경성제국대학기관 법문학부 조선어학 및 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조선어학회에서 국어를 널리 알리기에 몰두하다

1930년 조선어학회단체[3]에 입회하여 간사(이사)와 간사장(대표간사) 등을 역임하면서 이 회에서 추진하고 있던 「한글맞춤법통일안」(1933년 완성)서적과 「표준어사정(標準語査定)」(1937년 완성)서적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광복 이후 국어학 연구의 선구자가 되다

1961년 9월 30일 서울대학교기관를 정년퇴임함과 동시에 서울대학교기관로부터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4년 3월 대한민국학술원단체 회원에 피선되고, 1962년 서울대학교기관 명예교수에 피임되었으며, 1963년 8월 동아일보사기관 사장에 취임하여 2년 동안 군사정권사건 아래에서의 언론창달에 진력하였다. 1965년 9월 대구대학기관 대학원장에 피임되어 학계에 복귀한 뒤,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성균관대학교기관 대학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71년부터 1981년까지 단국대학교기관 부설 동양학연구소단체 소장직을 맡아 국학 및 동양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한편, 1969년부터 19년 동안 한국어문교육연구회단체 회장으로서 국한문혼용 주장 등 어문교육 시정에 힘썼다.





연구


많은 저서를 출간하다

학문적 업적은 국어학분야가 주이면서도 국문학분야에도 걸쳐 있어서, 첫번째 저서가 1938년에 간행된 『역대조선문학정화(歷代朝鮮文學精華)』 상권서적이었으며, 이어서 1946년에 『조선문학연구초(朝鮮文學硏究鈔)』서적가 출간되었다. 시집으로 『박꽃』(1947)서적 · 『심장의 파편』(1961)서적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벙어리 냉가슴』(1956)서적 · 『소경의 잠꼬대』(1964)서적 등이 있다. 1946년에 출간된 『한글마춤법강의』서적는 1933년에 확정된 『한글맞춤법통일안』서적의 원리를 각 항마다 이론적으로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일찍이 조선어학회단체의 기관지인 『한글』서적에 1938년부터 1940년까지 20회에 걸쳐서 연재한 것을 하나로 모으고 일부 내용을 보완한 책이다. 또한, 1947년에 간행된 『조선어학논고(朝鮮語學論攷)』서적는 1930년부터 1940년까지에 발표하였던 20여편의 논문 가운데에서 16편만을 수록한 것이다. 이러한 기초적인 연구 끝에 1955년에 간행된 『국어학개설(國語學槪說)』서적은 우리나라 국어학연구의 방향을 제시한 명저였다.


한국어의 문법을 정의하다

문법에 관한 이론은 대학에서의 문법론 강의자료에 상당히 많은 분량에 걸쳐 나타나 있었으나, 공간(公刊)되지 못하여 중고등학교의 문법교과서를 통해서 문법체계를 엿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교과서로는 『초급국어 문법』(1949)서적과 이를 보완한 『새고등문법』(1957)서적을 출간하였는데, 문법을 정의하기를 ‘단어와 단어가 서로서로 관계를 맺어서 글월을 이루는 법칙’이라 하고, 문법의 영역을 총설 · 품사 · 글월[文]의 3부문으로 하였다. 이는 최현배(崔鉉培)[4]의 『우리말본』(1937)서적 등에서 문법의 영역을 소리갈[音聲學] · 씨갈[詞論] · 월갈[文章論]과 같이 음성학이나 음운론 분야를 문법학에 포함시켜 오던 연구태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또, 용언의 활용어미는 독립된 품사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체언과 결합되는 여러 가지 곡용(曲用)어미는 이를 독립된 단위로 인정하여 ‘조사’라고 하였으며, 체언에 조사가 결합되는 언어형식을 ‘어절(語節)’이라고 하고, 품사론의 단위는 단어, 글월의 단위는 어절로 잡았었다. 품사는 명사 · 대명사 · 동사 · 형용사 · 존재사 · 관형사 · 부사 · 감탄사 · 접속사 · 조사로 하고, 지정사(指定詞) ‘이다'는 체언의 활용인 서술격조사로 처리하였다. 그의 이러한 문법체계는 최현배의 문법체계와 더불어 우리나라 문법체계의 2대계열을 형성하여 왔다. 문법론 이외에도 단어와 어휘분야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1961년에 발행한 『국어대사전』서적(수록어휘 257,854)은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었다.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이희승 Person: 이정옥 A hasSpouse B
Person: 이희승 Institution: 경성제국대학 A gradutes B
Person: 이희승 Group: 조선어학회 A isMember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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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1.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6728
2.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o403300&code=kc_age_40 조선어학회 1921 - 우리역사넷
3.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7759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