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제(SNU24-1)

North Korea Humanities

김완규(C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12일 (수) 19: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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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趙潤濟))
조윤제 사진.JPG
출처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한글명 조윤제 한자명 趙潤濟 영문명 Jo Yoon Jae 가나명 이칭 도남
성별 남자 생년 1904년 몰년 1976년 출신지 경상북도 예천 전공 국문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해방 이후 『국문학사』, 『국문학개설』, 『한국문학사』 등을 저술하고, 시대를 앞선 대인의 풍을 가진 학자이다.


생애


광복 이전

경상북도 예천 출생. 아버지 조용범(趙鏞範)인물과 청주 한씨(淸州韓氏) 사이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이어 1926년 4월 경성제국대학기관 법문학부 문학과에 진학, 조선어문학을 전공하는 유일한 학생이 되었으며, 1929년 3월에 동 학부를 졸업, 문학사의 학위를 얻었다. 이어 동 학부의 촉탁(囑託)·조수를 거쳐 1932년 3월 경성사범학교 교유(敎諭 : 일제 때, 중등학교의 교원)로 임명되었으며, 그 해 4월에 그의 첫 저서가 된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을 쓰기 시작하였다. 1939년 3월 경성사범학교를 사임, 자유의 몸으로 당시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장이던 손진태(孫晉泰), 뒤이어 대학 후배인 이인영(李仁榮)인물과 모여 학문 연구방법론을 토론하고, 그 결과 민족사관의 입장을 밝혔다. 그 뒤 경신학교·양정중학교·동성상업학교·천주교신학교 등의 강사를 역임하였다.


광복 이후

1945년 8월 조국광복과 함께 경성대학 법문학부 재건의 책임을 맡았으며, 이어 동 대학의 법문학부장, 개편된 서울대학교의 대학원 부원장, 문리과대학 교수 및 학장을 역임하고, 다시 성균관대학교 교수, 대학원장 및 부총장을 역임한 뒤 청구대학·영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다가 71세 때인 1974년 2월 영남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다.


학자로서의 활동

『조선시가사강』(1937)을 필두로 『교주 춘향전(校註春香傳)』(1939)·『조선시가(朝鮮詩歌)의 연구』(1948)·『국문학사(國文學史)』(1949)·『국문학개설(國文學槪說)』(1955)·『한국문학사(韓國文學史)』(1963) 등 20여권에 이른다. 논문으로는 1929년 2월 『동아일보』에 발표한 「조선문학과 한문학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50여 편, 수필·잡문 등은 거의 100편에 이른다. 이들 저서와 논문들은 모두가 이른바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서술된 것들로, 일제하 황무지였다고도 할 국문학 연구에 있어 개척자적 역할을 하였다. 광복 후에는 국문학 연구의 출발점을 이루었으며, 동시에 그에게 있어서는 진지한 민족독립운동의 표출이기도 하였다. 한편, 그가 민족사관에 입각하고 있었다 하나, 그의 학문이 국수주의적이거나 독존적·배타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세계화적 일반 보편성을 추구하는 정정당당한 자세였음은 주목하여야 할 점이다. 그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민족을 사랑한 그의 태도는 저술에서 뿐만 아니라, 대학 강단과 사회 생활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났으며, 그 과단성·청렴성과 학구적 양심은 옛 선비의 풍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대인의 풍을 갖춘 학자라는 일반의 평이 그리 어긋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조용범 Person: 조윤제 A hasSon B
Person: 조윤제 Institution: 경성제국대학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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