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한

North Korea Humanities

전지영(CNU2025)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2월 5일 (금) 14:42 판 (→‎개요)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전지영(CNU2025))이 작성했습니다.




김용한(金容瀚)
바바파파.jpg
출처 :
 
한글명 김용한 한자명 金容瀚 영문명 Kim, Yong-Han 가나명 이칭
성별 남 생년 1929년 몰년 1983년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 전공 경제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해방 이후 물가정책국장, 과학기술처 차관 등을 역임한 관료. 1956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군산남중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1] 1957년 국무원의 수습행정원을 시작으로 행정관료의 길을 걸어 1982년 과학기술처기관 차관으로 발탁될 때까지 줄곧 경제기획업무를 맡았다.[2] 그리고 20여년에 걸친 경제기획원기관에서의 실무경험과 기여가 인정되어 1982년 과학기술처기관 차관으로 발탁되었다.[3] 차관 재직 중 과학기술처기관의 예산편성 및 확보에 특히 심혈을 기울였으나 1983년 버마 아웅산폭발사건사건 때 순직하였다.[4]


생애


경제기획원 시절

예산실장이 된뒤에는 영점기준 예산편성을 추진하는 등 과도기의 재정운용에 있어서 주역을 맡았다. [5] 제로 베이스는 우리 실정에 꼭 맞는 말이 아님을 말하며 영점기준예산을 강조했다. [6] 예산제도와 그 實際(실제)서적라는 저서를 냈고 소위 影占 (영점)기준에 따른 새로운 예산편성개혁작업을 추진하다 과기처차관으로 영전했다. [7]


과학기술처 시절

예산경험이 두터워 5차5개년 계획의 핵심프로젝트인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처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8] 차관 재임 시에는 과학기술개발기금조성에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9] 1981년 과학기술처로 옮긴 후 1년 9개월동안 컴퓨터 반도체 등 첨단기술분야의 재정-예산을 뒷받침하는 정책책임자로 큰역할을 해왔다. [10] 정부투자기관이 기술개발을 민간에 이전해 활용하게 하고 민간기업의 자율적인 투자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며 투자의 확대는 수요에 맞춰 늘린다는 기술개발투자촉진법을 추진했다. [11]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기술개발투자조성심의회를 설치하여 운영할 계획임을 밝혔다. [12]


사후

대핵공장을 추진할 때 실무자로 참여하면서 기획관료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3] 예산의 면도날이라고 불리며 기술개방정책을 확산하는데 큰 몫을 했다. [14] 1983년 제로베이스 예산제도 영점기준예산을 도입했고, 1984년에는 동결예산, 1985년 긴축 예산 등 80년대 들어 재정건전화 작업을 한 결과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다. [15]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 28분 버마 아웅산폭발 사건으로 순직하셨다. [16]





연구


제목1

1965년에 미국 시라큐스대학을 수료했다. [17]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Person: 홍아무개 A hasSon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Book: ○○○ Person: 홍길동 A creator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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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


  1. ↑ 『김용한 (金容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 『김용한 (金容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 『김용한 (金容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 『김용한 (金容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 「「南悳祐經済우등생」더이상없나」, 『조선일보』, 1983.10.13. 02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6. ↑ 「"零點예산 표현이적절"」, 『경향신문』, 1981.12.25. 05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7. ↑ 「金容瀚 科技處次官 豫算밝은 살림군」, 『동아일보』, 1982.01.05. 02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8. ↑ 「…經濟部處에새바람」, 『경향신문』, 1982.02.06. 05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9. ↑ 「豫算다루다 科技處로 옮겨온「物價通」金容瀚 科技處차관」, 『동아일보』, 1983.10.10. 10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0. ↑ 「틈만 있으면 책보는 학구파 金容瀚 과기처차관」, 『조선일보』, 1983.10.11. 06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1. ↑ 「金科技處차관 기술개발 促進 관계법 제정추진」, 『경향신문』, 1983.07.22. 05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2. ↑ 김용한(과학기술처), 「기술개발 투자촉진에 관한 법률안」, 『과학과 기술』 제16-6호, 1983.01, 21~23쪽, 『DBpia』online,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13. ↑ 「아쉬움남기고간 經濟엘리트들 투철했던「公僕召命意識」」, 『경향신문』, 1983.10.10. 05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4. ↑ 「金容瀚 과기처차관 經濟에 밝은"기술관료"」, 『경향신문』, 1983.10.10. 10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5. ↑ 김경수,「87豫算 15조5천8백억 解剖 <1> 緊縮과 팽창」, 『매일경제』, 1986.09.25. 01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6. ↑ 「全大統領방문 버마서 大爆發事故 徐부총리등 16명 殉職」, 『동아일보』, 1983.10.10. 01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
  17. ↑ 「틈만 있으면 책보는 학구파 金容瀚 과기처차관」, 『조선일보』, 1983.10.11. 06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online,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