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울

North Korea Humanities

양희건(CNU2025)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2월 3일 (수) 18:16 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양희건(CNU2025))이 작성했습니다.




임방울(林芳蔚)
임방울 양희건(CNU2025).jpg
출처 : 최권범, 「신인 국악인 등용문… 임방울국악제 막 오른다」, 『진일보』online, 전남일보, 작성일: 2021.09.23.
 
한글명 임방울 한자명 林芳蔚 영문명 가나명 이칭 임승근(林承根)(본명)
성별 남성 생년 1904년 몰년 1961년 출신지 전라남도 광산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해방 이후 「수궁가], 「적벽가] 등 많은 음반을 낸 판소리의 명창.[1] 14세 때 박재현(朴載賢) 문하에서 「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웠고, 뒤에 유성준(劉成俊)으로부터 「수궁가], 「적벽가]를 배웠다.[2] 많은 음반을 내는데, 그의 많은 음반 가운데 「춘향가]에서 '쑥대머리', 「수궁가]에서 '토끼와 자라' 대목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3]


생애


출생 및 가족

1905년 4월 20일,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도산리 679번지(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 679번지)에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 임경학과 어머니 김나주 사이에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4] 아버지인 임경학은 소리로 이름을 떨칠 정도는 아니었으나, 인근에서 <비갑이 소리꾼> 정도로 인정받아 친지들이 모인 데서 벌어진 소리판에서는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5] 임방울의 어머니 쪽 계통이 단골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임방울의 어머니를 흔히 ‘김나주’라고 말하는데, 이는 나주 출신의 김씨, 즉 ‘나주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6] 어머니와 누나가 무업을 행했다는 증언도 있다.[7] 임방울의 외숙이 당대의 국창 김창환이다.[8] 김창환은 전남 나주 출생의 고종, 순종 때의 명창이다.[9]


판소리 사사 시기

열두살 되던 해에 박재현(朴載賢)의 창극단에 들어가 세달 뒤에는 무대에 서게 되었다.[10] 아버지의 소망에 따라 14세 때 박재현 문하에서 3년 동안「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웠다.[11][12] 박재현 창극단이 화순에서 공연할 때, 공창식 선생을 만났다.[13] 창극단을 그만두고 공창식 선생의 제자가 되어 판소리의 여러 대목을 배웠다.[14] 화순 사람 남국일이 임방울을 후원하여, 그 집에서 숙식을 하며 소리공부를 했다.[15]


판소리 독공 시기

자신의 소리를 완성하기 위하여 지리산 쌍계사를 찾아갔다.[16] 그곳에 토굴을 파고 독공을 시작 했다.[17]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를 차례로 공부하고, '아니리'와 '발림'을 개발하여 공부를 시작했다.[18] 구전심수로 선생에게 배워온 부분을 기억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훈련이 한동안 지속되었다.[19] 선생에게 배운 소리제에다가 자기 나름의 독창적인 개성을 보태기도 하였다.[20] 구수한 송정리 사투리가 판소리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21]





연구


판소리 전성 시기

오랫동안 수련한 그는 25세 때 상경하여 송만갑(宋萬甲)의 소개로 첫무대에서 「춘향가」가운데 ‘쑥대머리’를 불러 크게 인기를 얻었다.[22] 이것을 계기로 그의 창작으로 전하는 ‘쑥대머리’를 비롯한 많은 음반을 내었다.[23] 특히 일본에서 취입한 ‘쑥대머리’는 우리나라·일본·만주 등지에서 100여만 장이나 팔렸다한다.[24] 그 뒤 음반취입과 판소리 공연에만 힘을 쏟았고 창극운동에는 가담하지 않았다.[25] 그리하여 그를 판소리 전통을 최후까지 고수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26] 한편으로는 서편제 소리의 최후 보루라고도 하고 있다.[27] 판소리 다섯 마당을 다 잘하였지만 특히 「춘향가」·「수궁가」·「적벽가」를 잘하였다.[28] 1960년에 원각사(圓覺社)에서 「수궁가」 발표회를 가진 것을 비롯하여 몇 가지 공연을 가졌다.[29] 이때 녹음하여 둔 테이프를 복사하여 취입한 음반인 「수궁가」와 「적벽가」가 전한다.[30] 일제 때에 그는 이화중선(李花仲仙)과 더불어 가장 인기있는 명창이었으나 판소리의 사설에는 치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1] 그의 많은 음반 가운데 「춘향가」에서 ‘쑥대머리’, 「수궁가」에서 ‘토끼와 자라’ 대목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32] 그의 소리는 박귀희(朴貴姬)·한애순(韓愛順)·신평일(申平日)·김용준(金龍準)·성우향(成又香) 등이 이어받았다.[33] 편곡을 비롯하여 작곡에도 재주가 있었으며, 「호남가」와 「사별가」를 남겼다.[34]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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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Person: 홍길동 A creato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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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


  1.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5.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6.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7.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8.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9.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10.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11.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2.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13.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14.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15.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16.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17.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18.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19.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20.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21. ↑ 『국창임방울』online, 임방울재단.
  22.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3.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4.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5.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6.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7.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8.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9.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0.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1.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2.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3. ↑ 『임방울(林芳蔚)』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4. ↑ 『임방울』online,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