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승룡

North Korea Humanities

장유빈(CNU2025)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1월 30일 (일) 17:49 판 (→‎참고자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장유빈(CNU2025))이 작성했습니다.




남승룡(南昇龍)
남승룡.jpg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B%82%A8%EC%8A%B9%EB%A3%A1, 위키피디아
 
한글명 남승룡 한자명 南昇龍 영문명 Nam, Sung yong 가나명 이칭 호회(湖淮)
성별 남 생년 1912년 몰년 2001년 출신지 전라남도 순천시 전공 철학과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남승룡(南昇龍, 1912년 11월 23일~2001년 2월 20일)은 전라남도 순천 출신의 마라톤 선수로,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남자 마라톤사건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의 체육인이다.[1] 그는 순천공립보통학교기관와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기관를 거쳐 일본 메이지대학기관에서 수학하며 각종 국내외 마라톤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해방 이후에는 대한육상경기연맹단체 이사와 전남대학교기관 교수, 올림픽 마라톤 코치 및 국가대표 감독 등을 맡아 한국 육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2] 손기정인물과 함께 한국 마라톤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되며, 1947년 보스턴 마라톤사건에서 서윤복인물의 페이스메이커로 활약한 데 이어 2023년 대한체육회단체가 선정한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헌액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단체의 선수 약력에도 한국 이름과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배경이 반영되는 등 그의 공적은 오늘날 다시 조명되고 있다.[3]


생애


출생과 교육

1912년 11월 23일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남승룡(南昇龍, 1912~2001)은 일제강점기 마라톤을 주종목으로 활동한 육상 선수였다.[4] 그는 순천공립보통학교기관를 졸업한 뒤 서울협성실업학교기관와 양정고등보통학교기관를 다니다 일본 도쿄의 아사부 상업학교기관를 거쳐 메이지대학교기관 철학과에 진학하였다.[5] 1932년 경성운동장공간에서 열린 전조선육상경기대회사건 5,000m와 1만m에서 우승하고, 전일본 마라톤 선수권대회사건와 극동선수권대회사건, 일본건국기념 국제 마라톤 대회사건 등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하며 장거리 선수로 두각을 나타냈다.[6]


베를린 올림픽과 일제강점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파견 마라톤사건 최종 선발전에서 손기정인물과 함께 상위권을 차지해 둘이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고, 남승룡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으로 3위를 하여 동메달을 얻었다.[7] 국가기록원기관 자료에 따르면 손기정과 남승룡은 시상식에서 금·동메달을 따고도 일장기를 달고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들어야 했기 때문에 가장 기쁜 순간에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8] 남승룡은 당시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을 두고 “메달의 색 때문이 아닌,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어서” 부러웠다고 회고했고, 사진에서 바지를 명치까지 끌어올려 가슴의 일장기를 가리려 했던 모습을 보였다.[9]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의 남승룡과 손기정


해방 이후와 지도자 활동

남승룡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사건에 코치로 참가해 서윤복인물의 페이스메이커로 달렸고, 서윤복이 우승할 때 자신은 10위로 골인할 정도로 마라톤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10] 그 은퇴 후 1947년 1월부터 1963년 9월까지 대한육상경기연맹단체 이사를 지냈고,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전남대학교 체육학과기관 교수로 재직했다.[11] 그는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국민체육진흥공단단체으로부터 ‘경기력 향상 연구 연금’을 받는 등 한국 육상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12]


백범 김구와 함께한 남승룡


만년과 사후

남승룡은 2001년 2월 20일 숙환으로 별세했으며, 이후 대한육상경기연맹단체 이사와 전남대학교기관 교수로 활동해 온 경력이 함께 언급된다.[13] 그의 타계를 전하며 “한국마라톤의 큰 별이 졌다”고 표현하기도 하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사건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식민 조국의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운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14] 그의 출생지 순천시에 ‘남승룡로’가 조성되고 ‘남승룡 마라톤 대회’가 매년 열리며,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선정위원회단체가 2023년 남승룡을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선정해 어려운 시대에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어 국민에게 희망을 준 점을 높이 평가한다.[15]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기려진 남승룡





연구


체육학 분야의 선행 연구

2007년에 발표된 체육학 연구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동메달리스트인 남승룡의 생애와 선수·지도자로서의 체육활동을 신문·잡지·단행본·인터뷰·학적부 등을 주된 자료로 활용하여 분석하였다.[16] 남승룡이 국내외 각종 대회에서의 우승 및 입상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3위 입상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있던 우리 민족에게 마라톤으로 한없는 긍지와 희망을 안겨 주고 민족적 의식을 고취시켰으며 한국인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친 인물로 정리된다.[17] 또한 그가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뒤 귀국하여 대한육상경기연맹단체 이사와 전남대학교 체육학과기관 교수로 후진 양성에 헌신하고, 그 공로로 1962년 문화공로훈장과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아 국내 마라톤 발전에 많은 공헌하였다.[18]


민족사와 스포츠 영웅 담론

한국 마라톤경기의 형성과 역사적 의의를 다룬 박사학위 논문은 마라톤이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 이유를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대회 첫 출전부터 민족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온 데에서 찾으면서, 일제강점기에 손기정과 남승룡 등의 세계 제패를 민족적 자부심을 갖게 한 대표적 사건으로 분류한다.[19] 한국 마라톤의 민족사적 인물과 사건을 논하면서 일장기 말소사건과 더불어, 마라톤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긍지와 희망을 선사한 영웅적 마라토너로 남승룡·손기정·서윤복을 제시하고, 이들의 활약이 스포츠를 통한 민족적 독립 의지의 가능성과 통로를 보여 주었다.[20] 독립기념관기관이 발행한 잡지는 손기정의 우승과 더불어 남승룡의 동메달 획득이 일제강점기 식민지 통치를 받던 우리 민족에게 울분을 토로하고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우수성과 저력을 전 세계에 과시한 사건이었다고 평가한다.[21]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남승룡 Person: 손기정 A isTeammateOf B
Person: 남승룡 Person: 서윤복 A isPacemakerOf B
Person: 남승룡 institution: 순천공립보통학교 A gradutes B
Person: 남승룡 Institution: 메이지대학교 A takesCourseAt B
Person: 남승룡 Institution: 전남대학교 체육학과 A worksAt B
Person: 남승룡 Institution: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 A takesCourseAt B
Person: 남승룡 Institution: 서울협성실업학교 A takesCourseAt B
Person: 남승룡 Institution: 아사부 상업학교 A takesCourseAt B
Person: 남승룡 Group: 대한육상경기연맹 A isMemberOf B
Event: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남자 마라톤 Person: 남승룡 A isRelatedTo B
Event: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남자 마라톤 Person: 손기정 A isRelatedTo B
Event: 1947년 보스턴 마라톤 Person: 남승룡 A isRelatedTo B
Event: 2023년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선정 Person: 남승룡 A isRelatedTo B
Event: 남승룡 마라톤 대회 Person: 남승룡 A isRelatedTo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남승룡」,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미디어재단.
「마라토너 남승룡씨 별세」, 『조선일보』, 2001.02.20., 『조선일보』online, 조선일보.
「베를린올림픽 동메달 故 남승룡,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선정」, 『조선일보』, 2023.11.28., 『조선일보』online, 조선일보.
정의진, 「<이 아침의 인물> 남승룡,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동메달」, 『한국경제』, 2021.02.19., 『한국경제』online, 한국경제신문.
안양똑딱이, 「안양2동에 살았던 1세대 마라토너 남승룡선수」,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블로그』online,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2024.02.13.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마라톤」, 『국가기록원』online, 국가기록원.
양종구, 「<책갈피 속의 오늘> 2001년 남승룡 선생 별세」, 『동아일보』, 2008.02.20., 『동아일보』online, 동아일보.



손 환, 「땀으로 쓴 스포츠 역사」, 『월간 독립기념관』, 401호, 독립기념관, 2021.07.01.






주석


  1. ↑ 「남승룡」,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미디어재단.
  2. ↑ 「마라토너 남승룡씨 별세」, 『조선일보』, 2001.02.20., 『조선일보』online, 조선일보.
  3. ↑ 「베를린올림픽 동메달 故 남승룡,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선정」, 『조선일보』, 2023.11.28., 『조선일보』online, 조선일보.
  4. ↑ 정의진, 「<이 아침의 인물> 남승룡,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동메달」, 『한국경제』, 2021.02.19., 『한국경제』online, 한국경제신문.
  5. ↑ 안양똑딱이, 「안양2동에 살았던 1세대 마라토너 남승룡선수」,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블로그』online,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2024.02.13.
  6. ↑ 안양똑딱이, 「안양2동에 살았던 1세대 마라토너 남승룡선수」,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블로그』online,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2024.02.13.
  7. ↑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마라톤」, 『국가기록원』online, 국가기록원.
  8. ↑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마라톤」, 『국가기록원』online, 국가기록원.
  9. ↑ 안양똑딱이, 「안양2동에 살았던 1세대 마라토너 남승룡선수」,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블로그』online,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2024.02.13.
  10. ↑ 양종구, 「<책갈피 속의 오늘> 2001년 남승룡 선생 별세」, 『동아일보』, 2008.02.20., 『동아일보』online, 동아일보.
  11. ↑ 안양똑딱이, 「안양2동에 살았던 1세대 마라토너 남승룡선수」,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블로그』online,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2024.02.13.
  12. ↑ 안양똑딱이, 「안양2동에 살았던 1세대 마라토너 남승룡선수」,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블로그』online,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2024.02.13.
  13. ↑ 정의진, 「<이 아침의 인물> 남승룡,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동메달」, 『한국경제』, 2021.02.19., 『한국경제』online, 한국경제신문.
  14. ↑ 김진우, 「한국마라톤 ‘큰별’ 남승룡 별세」, 『경향신문』, 2001.02.20., 『경향신문』online, 경향신문.
  15. ↑ 안양똑딱이, 「안양2동에 살았던 1세대 마라토너 남승룡선수」,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블로그』online,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2024.02.13.
  16. ↑ 손환·이상우, 「남승룡의 생애와 체육활동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지』, 46권 5호, 한국체육학회, 2007.
  17. ↑ 손환·이상우, 「남승룡의 생애와 체육활동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지』, 46권 5호, 한국체육학회, 2007.
  18. ↑ 손환·이상우, 「남승룡의 생애와 체육활동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학회지』, 46권 5호, 한국체육학회, 2007.
  19. ↑ 박종진, 『한국 마라톤경기의 형성과 역사적 의의』, 박사학위논문, 2013, 한국체육대학교.
  20. ↑ 박종진, 『한국 마라톤경기의 형성과 역사적 의의』, 박사학위논문, 2013, 한국체육대학교.
  21. ↑ 손 환, 「땀으로 쓴 스포츠 역사」, 『월간 독립기념관』, 401호, 독립기념관, 202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