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해

North Korea Humanities

최태림(JB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11일 (화) 03: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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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송(崔鶴松)
출처 :
 
한글명 최학송 한자명 崔鶴松 영문명 CHOI HAKSONG 가나명 이칭 서해(曙海)
성별 남성 생년 1901년 1월 21일년 몰년 1932년 7월 9일(31세)년 출신지 함경북도 성진군 학중면 임명동리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탈출기', '기아와 살육' 등 문단에 이름을 날렸지만 평생을 가난과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제강점기 시대 비운의 작가.


생애


"유년기"

1901년 1월 21일, 함경북도 성진군 학중면 임명동리에서 소작인 겸 한의사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한때 함경북도 길주군 길주읍, 함경북도 길주군 학성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09년에 아버지가 간도로 이주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성진에서 거주하였다. 최서해는 한문 공부와 보통학교 중퇴가 학업의 전부였지만, 《청춘》, 《학지광》 등의 문학 잡지 등을 읽으면서 스스로 문학 공부를 하였다. 1918년 간도 등지를 유랑하면서 나무장사‧두부장사‧부두노동자‧음식점 배달꾼 등 최하층 생활을 경험하는데, 이 체험이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다[1]


"작가 활동 시작"

1924년 초에 단편 소설 「토혈」을 『동아일보』에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상경한 그는, 10월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고국」을 발표했다. 1925년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였고, 여기에 극도로 빈궁했던 간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탈출기」(1925)를 발표함으로써, 당시 문단에 충격을 줌과 동시에 작가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박돌의 죽음」(1925), 「기아와 살육」(1925)과 같은 문제작을 발표했고, 카프에도 가입했다. [2]


"작가로서의 내리막길과 죽음"

이후에도 그는 많은 단편들을 썼으나, 그 수준이나 경향이 이들 초기 작품의 그것들을 넘어서지 못했고 오히려 수준이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1929년 카프를 탈퇴하였고, 1931년 『매일신보』의 학예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1932년 7월 9일 사망했다. [3]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