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규

North Korea Humanities

김민정(K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5월 28일 (화) 16:29 판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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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규(權悳奎)
권덕규.png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권덕규
 
한글명 권덕규 한자명 權悳奎 영문명 Kwon Deok-gyu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1890년 몰년 1950년 출신지 경기 김포 전공 독립운동, 국어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권덕규(權悳奎, 1890년 ~ 1950년)는 한국의 국어학자이자, 역사가였다. 호는 애류(崖溜)이며, 1913년 서울 휘문의숙을 졸업하고 모교와 중앙학교·중동학교에서 국어 및 국사를 가르쳤다. 주시경(周時經)의 뒤를 잇는 몇 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1921년 12월 3일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창립에 참여하였다. 그 뒤 조선어학회의 역사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조선어큰사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932년 12월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원안을 작성하였다.


생애


출생 및 학력

권덕규(權悳奎, 호는 애류 崖溜)는 1891년 8월 7일에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 석탄리에서 태어났다. 1913년 휘문의숙을 졸업한 뒤, 휘문고보, 중앙고보 등 중등학교에서 국어와 국사를 가르쳤다. 조선어 연구회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활동사항

휘문고보, 중앙고보, 중등학교에서 국어와 국사를 가르쳤으며, 주시경 선생의 후계자의 한 사람으로 1921년 조선어 연구회 창립 회원이었다. 1930년 맞춤법 통일안 원안 작성 위원이었으며 표준말 사정 위원으로서 저서로는 <조선어문경위>, <조선유기>, <을지문덕>이 있다.


조선어학회 사건

이는 1942년 10월부터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 및 관련 인물을 검거해 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때, 일제 형사들이 그를 두 번이나 서울역까지 끌고 갔다가 지병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돌려보냈다. 그도 조선어학회 사건 때 연루된 33인 중 하나였다. 조선어학회의 회원으로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제정위원으로 활약했고, '조선어대사전'의 편찬 위원을 맡았기에 일제의 탄압은 불가피했다. 그는 해방 뒤 십일회 회원에 포함됐으나 행방불명됐다. 저서로 <조선어문경위> <조선유기> <을지문덕> 등이 있다.


상훈

권덕규 선생이 반일 민족주의 학술단체인 조선어학회에 참여해,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제정과 <조선어대사전>의 편찬을 통해, 우리말과 한글을 영구히 유지하는 언어 독립투쟁을 전개한 공훈이 인정돼 광복 74주년이 되는 올해에 독립유공자로 결정됐다. 늦었지만 참으로 기쁜 일이다.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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