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학보 제3권을 읽고(이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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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욱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2월 1일 (금) 16:19 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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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학보 제3권을 읽고(이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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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진단학보 제3권을 읽고(이청원) 학술지 동아일보 수록권호 동아일보_19351109 발행기관 동아일보사
저자 이청원 역자 집필일자 게재연월 1935년11월
시작쪽 3쪽 종료쪽 3쪽 전체쪽 연재여부 범주 논문 분야 역사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목차







본문


본문1: 진단학보(震檀學報) 제3권을 읽고(上) (「동아일보」1935년 11월 9일)


지금까지 무시하여 왔던 조선의 역사적 과거를 알자! 이것은 현금 조선인 전체의 요구일 것이다. 그러나 그 요구 중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금일의 기형적인 조선은 많이 왜곡되어 있다 할지언정 그것은 바로 옛날의 조선의 발전한 것이었다. 물론 그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유기적, 진화적인 것이 아니고 도약적인 변화 그것이었다. --현금의 기형적인 일견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이는 위협적인 특수성의 사적발전에 있어서 과학적으로 분탁分柝하여서만이 이것의 해결적 내용의 기초적 인식과 파악이 가능한 것이다. 이 곳에 조선역사연구의 현실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過去한 역사적 사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호화로운 약동을 치게 하는 것은 우리들 과학적 학도들의 격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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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중춘中春 진단학회가 이 나라의 일부인사들의 기대아래에서 창립되고 그 회보로서 진단학보가 삼권까지 세상에 나왔다. 이것은 빈약한 우리 학계에 있어서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좋지 못한 결과도 산출하였다는 것을 조금도 숨겨서는 아니 된다. “사회적 운행을 초월한 순수사유”이니, “순수한 개인의 자기사상”이니 하는 따위의 “늘 점차적으로”라는 기분 좋은 선율(메로틱)에 따라가는 관념론적 사관으로 이 나라의 젊은 학구자學究者들에게 소화불량의 결과를 주었다는 것이 즉 그것이다. 우리는 늘 이상과 같은 관점과 준비 아래서만 이 회會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리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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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이 학보 제삼권의 내용을 보건대, 그에는 당연히 제기하여야 할 상당히 귀중한 문제가 가만히 있으며 종래의 케케묵은 통속사가들 보다 엄청난【역주: 원문은 ‘퀴퀴묵은 통속사가들 보담 엄청나는’】 발전의 자취가 보인다. 그러나 발전이라는 것은 선행자들과 전연 본질적으로 다른 발전이 아니고 오직 그들 선행자들의 제기한 명제를 일반화하고 수정하고 보충하고 다른 일면을 분리하였다는 의미에서이다. 이 의미에서 우리 학계에 남겨준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 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시민적 유산도 받지 못한 이 나라의 신흥 사학계에 있어서는, 인제 각 논문을 일독하고 필자의 소감을 약간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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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가집(歷代歌集) 편찬의식에 대하여(조윤택趙潤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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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유독 남달리 시가가 다른 소설, 희곡 보다는 훨씬 발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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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에 대하여 약간 말하여보자. 그것은 이 논문의 필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시가는 신분, 격식의 여하를 불구하고 뚜렷한 발전을 본 것이니 이것은 상업이라고 하는 것은 그 형태의 여하를 불구하고 구래의 생산양식을 파괴하는 것이나 조선에 있어서는 원시공산사회부터 노예소유자적 구성에로의 발전, 전화轉化는 즉 이 변혁은 상업의 미발달에 제약되어서 이상하게도【역주: 이상히도】불철저하였다. 이것은 원시공산사회의 유물이 광범히 여명餘命을 보존케 한 역사적 조건으로 그 중 원시공산사회의 가무의 유풍遺風은 특히 현저하였던 것으로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등은 그의 좋은 예이다. 이 곳에 조선에 있어서의 시가詩歌발전의 사회적, 역사적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 문학사상에 있어서의 시가의 지위는 “중추적中樞的”인 것이다. 필자 조윤택씨는 근래에 와서 시가연구의 발표로서 학계에 나타난 청년학도로서, 그는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비로소 “아세아”적 봉건조선을 창설한 통일 후 신라의 역사적인 일대전환기인 진성여왕眞聖女王 2년에 각간위인角干魏人과 화상대구和尙大矩가 칙명에 의하여 “삼대목三大目”을 편찬한 것을 일본의 만엽집萬葉集에 비응比應하면서 조선에 있어서의 가집 편찬사업의 사적발전의 단서라고 한 다음, 봉건고려에 와서는 이 사업은 하등의 진전을 보지 못하였으나 이조에 와서는 커다란 진전을 보았고, 씨는 이에 대하여 “이조는 유교로써 건국의 이상을 세웠던 만큼 가락歌樂에 대하여는 특별한 용의用意를 한 듯하여, 우선 창업당초, 국가대강大綱의 조직제도가 성립되자 곧 힘을 구악舊樂정리와 신악新樂성립에 썼으니 운운”하였는데, 이것은 참으로 충실한 분석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적인 것으로 구체적인 것은 아니었다. 봉건이조의 지배자 철학으로서의 유교, 그와의【역주: 원문은 그와이?】 가집편찬의 성대한 것의 내면적인 분석이 결여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이 있다. 즉 봉건이조의 이데올로기적 조류로서의 유교는 이 봉건관료 양반적으로 조직된 신분제도의 강화 및 그를 유교적인 화려한 의식에 의하여 둘러싸고 그 제도적 위엄을 민중의 달할 수 없는 지점에 놓기 위하여서는 절대로 이 화려하기 천사적天使的이며, 따라서 왕조적으로 조성된 노래와 그의 보편화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 곳에서 봉건이조에 있어서의 가집편찬의 성대를 본 비밀을 발견하여서만 비로소 문제제기의 정당성과 옳은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씨는 다시 붓을 돌려 민간에 있어서의 가집편찬을 이조유교사에 있어서의 사단칠정四端七情, 이발기발理發氣發(세칭 사칠四七논쟁)논쟁의 일방의 웅雄으로서의 이퇴계의 문헌을 인용하고 그 외에 악장가사樂章歌詞에 관하여 또 이조 중엽이후에 편찬된 주요한 가집으로서의 청구영언靑丘永言, 해동가집海東歌集, 금고가곡今古歌曲, 동가선남東歌選南, 동태평가董太平歌, 가곡원류歌曲源流 등을 구체적인 사료에 있어서 해설하였다. 그러고 씨는 본론에 들어가 가체분류歌體分類, 작가, 원작, 분절分節, 편자 및 서발序跋에 대한 편찬자의 의의를 말하였다. 대관절 이 소론은 시가에 대한 근래에 드문 논색論索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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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 진단학보(震檀學報) 제3권을 읽고(中) (「동아일보」1935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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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3: 진단학보(震檀學報) 제3권을 읽고(三) (「동아일보」1935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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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4: 진단학보(震檀學報) 제3권을 읽고(完) (「동아일보」1935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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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5: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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