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

North Korea Humanities

장문석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6월 23일 (화) 20:15 판

김광진(金洸鎭)
KimKwangjin.png
출처 : 동아일보 1935년 1월 2일자 기사
 
한글명 김광진 한자명 金洸鎭 영문명 Kim Kwang-Jin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903년 몰년 1981년 출신지 평양 전공 역사학


개요

김광진은 1903년 6월 23일 평양 대동강변에서 땔감 장사를 하던 아버지의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김광진은 공립보통학교가 아니라 일신학교(日新學校)에서 수학하였다.[1] 일신학교에서는 '구한국 시대 교과서'를 사용하고 애국적이고 혁명적인 창가를 가르쳤으며, 김광진의 재학 중에도 학교와 경찰 사이의 충돌이 이어졌으며 결국 그가 졸업하기 직전 학교는 문을 닫았다. [2]
1917년 김광진은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홍종인(洪鍾仁)노동규(盧東奎)가 동기생이었으며, 함석헌(咸錫憲)이 1년 선배였다. 이후 1919년 김광진은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서울에서 온 학생과 연락을 취하면서 비밀리에 봉기를 준비했다. 우리는 며칠 밤 철야로 수천 장의 국기를 만들고 호신용 단도를 갖춘 채 드디어 3월 1일을 맞이하였"으며, "그 해 10월에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60 가까웠던 아버지도 연행되었다". [3] 1922년 4월 1일 김광진은 도쿄상과대학(東京商科大學) 예과에 입학한다. 이듬해 간토(關東)대지진이 일어나자 김광진은 직접적인 피해를 겪지는 않았지만, 조선인 학살을 목격하였고 강의실에서 벌어진 교수의 조선인 혐오 발언에 항의하기도 하였다. 당시 도쿄상과대학에는 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 오쓰카 긴노스케(大塚金之助) 등이 근무하고 있었지만, 김광진 스스로의 회고에 따르면, 항의사건 이후 "학교 강의에 흥미를 잃고 혼자서 맑스·레닌주의 공부를 시작했다". 또한 그는 "비합법 독서회에도 참가하고 또한 비합법인 『무산자신문(無産者新聞)』이나 발행 금지 서적의 배포 등에도 관계했다".[4] 1925년 3월 김광진은 예과를 졸업한다. 백남운(白南雲)은 김광진의 도쿄상과대학 3년 선배였으며, 본과 동기는 강석천(姜錫天), 김선형(金善炯), 윤원상(尹元上), 윤인상(尹仁上), 이완조(李玩朝) 등이었다. 본과 3학년 시절 김광진은 윤인상, 김선형 등과 시오바라(鹽原)와 닛코(日光)로 무전여행을 떠났다. 1928년 3월 김광진은 도쿄상과대학을 졸업하여 상학사(商學士) 학위를 받는다. [5]

닛코(日光) 여행[6]

1928년 11월 김광진은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법문학부(法文學部) 부수(副手)로 임명되었고 1929년도에는 같은 곳의 조수(助手)로 근무하였다. [7] 김광진은 경성제대 조선경제연구소(朝鮮經濟硏究所)의 사무를 담당하였다. 김광진은 경성제대 조수 근무를 계기로 성대 그룹 [8] 특히 그 중에서도 유진오(兪鎭午)와 교유하였다. 1931년 9월 조선사회사정연구소(朝鮮社會事情硏究所)가 설립될 때 김광진도 참여하였다. 유진오는 "김광진 군은 동경상대 출신이었지만 나이와 생활태도나 사상 경향이 우리들과 비슷해서 죽이 잘 맞았다"[9] 1934년 미야케(三宅) 교수 적화운동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사건으로 김광진도 증인으로 조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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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장지연(張志淵)의 청원으로 대한제국 학부로부터 ‘私立學校’로 인허된 곳이다. 「日新認許」『皇城新聞』, 1906.4.25.
  2. 金洸鎭, 「學究四O年の道」,『今日の朝鮮』, 外國文出版社, 1965.3(任正赫,『現代朝鮮の科學者たち』, 彩流社, 1997, 수록), 169-170쪽.
  3. 金洸鎭, 「學究四O年の道」, 171쪽.
  4. 金洸鎭, 「學究四O年の道」, 173-174쪽.
  5. 『東京商科大學一覧(昭和三年度)』, 1928.10.
  6. 尹仁上, 『90을 바라보며』, 光林社, 1991
  7. 「昭和三年十月二日 金洸鎭 法文學部副手ヲ命ス(大學)」,『京城帝國大學學報』 20, 1928.11.5.
  8. '성대 그룹'은 식민지기와 해방정국에 걸쳐 활약한 경성제국대학 출신 사회주의 지식인·운동가들이다.
  9. 兪鎭午,『나의 人生觀, 젊음이 깃 칠 때』, 徽文出版社, 1978, 1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