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와 그의 난에 취하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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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0월 23일 (수) 16:23 판 (본문1: 6.삼별초난의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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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와 그의 난에 취하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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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三別抄와 그의 亂에 就하야(完)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진단학보 13 발행기관
저자 김상기 역자 집필일자 게재연월 1941년03월
시작쪽 34쪽 종료쪽 85쪽 전체쪽 52쪽 연재여부 3회 범주 논술 분야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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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1: 6.삼별초난의 경과

삼별초난은 편의상 전후 양기로 나누어 볼 수가 있으니 전기는 즉 배중손 노영희 등이 중심이 되어 승화후를 추대해 가지고 진도에 입거(入據)하여 한 국가의 체제로써 항전하던 것이며 후기는 진도가 공함된 후에 김통정 등의 새로운 중심 인물이 출현하여 제주로 들어가 항전을 계속하던 시기이다. 원래 이 전후의 양자는 서로 계속적인 것으로서 그들의 목표와 동향에는 하등의 변화를 찾아보기 어려우나 체제상으로 또는 세력상으로 보면 후자 즉 후기에 이르러서는 벌써 삼별초의 위세는 석일(昔日)의 관(觀)을 잃게 된 것이었다.
쪽수▶P34-1三別抄亂은 便宜上 前後 兩期로 나누워 볼 수가 있으니 前期는 即 裴仲孫 盧永禧 等이 中心이 되여 承化侯를 推戴해 가지고 珍島에 入據하야 한 國家의 體制로써 抗戰하던 것이며 後期는 珍島가 攻陷된 後에 金通精 等의 새로운 中心 人物이 出現하야 濟州로 드러가 抗戰을 繼續하던 時期이다. 元來 이 前後의 兩者는 서로 繼續的의 것으로서 그들의 目標와 動向에는 何等의 變化를 차저보기 어려우나 體制上으로 또는 勢力上으로 보면 後者 即 後期에 이르러서는 발서 三別抄의 威勢는 昔日의 觀을 일케 된 것이였다.





































본문1-1: (1)삼별초난의 전기




































본문1-2: (2)삼별초난의 후기




































본문1-3: (3)삼별초의 패인




































본문


본문2: 7.결언








































본문2-1: (1)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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