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North Korea Humanities

황유림(C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9일 (일) 18:38 판 (출생 및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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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한자명)
김소월1.jpg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글명 김소월 한자명 金素月 영문명 Kim So-wol 가나명 이칭 소월
성별 생년 1902년 몰년 1934년 출신지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으로써 본명은 '김정식'으로 따로 있으며 '소월'이라는 호로 유명하다. 1923년에 일본에 유학하였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금잔디>,<첫치마>,<엄마야 누나야> 등을 저술하였으며 <진달래꽃>이라는 시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시인이다. [1]


생애


출생 및 성장

본관은 공주이며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아버지는 김성도(金性燾)인물,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인물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2]


학력

남산보통학교기관를 졸업 후 백석,황순원,이중섭 등의 한국 근현대사의 잘 알려진 인물들이 다닌 오산고등보통학교기관를 다니다 3.1운동의 영향으로 폐교되어 배재고등보통학교기관로 옮겨 졸업 후 도쿄상과대학기관 전문부를 다니다 중퇴하였다.


동아일보 지국

고향으로 돌아와 할아버지의 광산 경영을 돕다 경영 실패로 광산이 망한 후 할아버지의 집에서 독립하여 <동아일보>기관 지국을 열고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일을 물불 안 가리고 행했다. 그러나 신문사는 얼마 못가 대중들의 무관심과 일제의 방해로 인해 문을 닫게 된다.


사망

신문사가 망하고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던 김소월은 술에 의지했고 결국 1934년 12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한편으로는 사망 당시 김소월이 시장에서 아편을 샀다는 기록이 존재해 아편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제목5





연구


<진달래꽃>

1925년 발간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서적에 들어있는 서정시이다. 이별의 슬픔을 한국 고유의 정서로 드러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뽑히며 노래로도 불리고 개사, 편곡도 행해졌다. 고등학교와 더불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시이다.


시작활동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내고 1925년 5월 <개벽>에 시론 "시혼"을 발표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집은 그의 전반기의 작품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당시 시단의 수준을 한층 향상시킨 작품집으로서 한국시단의 이정표 구실을 한다. 민요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고 있다.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김성도(金性燾) Person: 김소월 A hasSon B
Person: 장경숙(張景淑) Person: 김소월 A hasSon B
Person: 김소월 Institution: 배재고등보통학교 A gradutes B
Person: 김소월 Book: <진달래꽃> A creator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535

https://namu.wiki/w/%EA%B9%80%EC%86%8C%EC%9B%94





주석


  1. 김소월-나무위키
  2. 김소월-나무위키 중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