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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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우(JBNU2024)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9일 (일) 00: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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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중(尹世重)
윤세중.jpg
출처 : 20세기 북한예술문화사전
 
한글명 윤세중 한자명 尹世重 영문명 Yoon, Se-jung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912년 몰년 1965년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창작활동을 한 소설가이다. 단편소설인 <용섭이>(1939), <안골동네>(1948)[1] 등과 장편소설인 <백무선>(1940), <시련 속에서>(1957), <용광로는 숨쉰다>(1960)등 여러 작품을 작성하였다. 북한 뿐만 아니라 소련에서도 '천재 조선 예술가'로 불리며 높게 평가받고 있다.[2]


생애


출생부터 작품활동의 시작까지

충청남도 논산의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어린시절 부모를 따라 함경북도 선봉지방에 가 소학교를 마쳤다.[3] 간도로 건너가 룡정의 대성중학교에 다니던 그는 반동교원들을 반대하는 동맹휴학에 참가하였다가 퇴학을 당하였다. 후에 그는 반일 운동으로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감금되었다 출옥하였다. 이 시기에 그가 작성한 작품으로는 「그늘밑 사랑」(1937), 「명랑(明朗)」(1937) 등이 있다. 「그늘밑 사랑」(1937)이 현상문예에서 1등으로 당선된 것을 계기로 그는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 [4]


북한으로 넘어간 후의 작품 활동

일제의 가혹한 탄압속에서도 투쟁의 신념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1940년에는 장편소설 「백무선」을 연재하던 도중 중지당하였다.[5] 해방 이후 그는 월북을 선택하여 북한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단편소설 「선화리」(1947)와 「안골동네」(1948)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은 그 당시 북한 농민들의 토지개혁으로 인해 변화된 삶을 실감 나게 묘사하였다. 한국전쟁중에는 인민군과 함께 활도아며 종군작가로 나서서 전쟁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을 작성하였다. 이시기의 작품으로는「구대원과 신대원」(1951)과 「분조장과 신입대원」(1952) 등의 단편소설이 있다. [6]


제목3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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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 김성수, "윤세중 [Yun Sechung]", 『20세기 북한예술문화사전online, 북한대학원대학교
  • 이명재, "윤세중 (尹世重)",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윤세중", 북한문학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윤세중", 조선향토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주석


  1. 김성수, "윤세중 [Yun Sechung]", 『20세기 북한예술문화사전online, 북한대학원대학교
  2. 이명재, "윤세중 (尹世重)",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네이버 지식백과 1
  4. 네이버 지식백과 2
  5. 네이버 지식백과1
  6. 한국민족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