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회경제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North Korea Humanities

(내용)
(내용)
102번째 줄: 102번째 줄:
  
 
=='''내용'''==
 
=='''내용'''==
홍종욱,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아시아 인식과 조선 연구」 제2장 제1절을 전재했다.<ref>홍종욱,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아시아 인식과 조선 연구」, 󰡔한국학연구󰡕 61, 2021.5.</ref>
+
홍종욱,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아시아 인식과 조선 연구」(2021) 제2장 제1절을 전재했다.<ref>홍종욱,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아시아 인식과 조선 연구」, 󰡔한국학연구󰡕 61, 2021.5.</ref>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사회경제사 항목도 참조하기를 바란다. (<font color="blue" size="3">[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2073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fon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사회경제사 항목도 참조하기를 바란다. (<font color="blue" size="3">[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2073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font>)
 
}}
 
}}
 
----
 
----

2022년 11월 1일 (화) 16:53 판

서적(Book) 목록으로 이동하기



조선사회경제사
조선사회경제사.png
출처 : 한옥션 (경매번호:42-447)
 
원제목 (經濟學全集 第六十一卷) 朝鮮社會經濟史 저자 백남운 편자 역자
발행처 개조사(改造社) 인쇄소 발행연도 1933년 발행월일 9월9일 인쇄부수



항목

차례


개요 개정 및 증보 저자 목차 원문 내용 인용문헌 관련 논의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A5판. 462쪽. 1933년 동경의 가이조사(改造社)에서 일본어로 간행하였다. 저자가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방대한 한국사를 서술하기 위한 일환으로, 원시사회부터 삼국통일 이전 신라까지 한국의 고대경제사를 우리 나라 최초로 서술한 것이다.이 책은 당시 우리 나라의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 저자가 세계사적인 보편적 역사발전의 법칙이라고 생각한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한국사에 적용시키고자 한 것이다. 지은이는 우리 나라의 역사도 원시공산사회-노예사회-봉건사회-자본주의사회라는 보편적 역사발전의 단계를 거쳐왔다고 보았다.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하여 이 책에서는 원시시대부터 통일 이전 신라까지를 원시 및 노예제의 시기로 분석했으며, 1937년 이 책의 속권으로 역시 가이조사에서 간행한 『조선봉건사회경제사상(朝鮮封建社會經濟史)』 상(上)에서는 통일신라와 고려를 봉건사회로 규정하였다. (※출처: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 및 증보

(내용 서술)



저자

백남운은 전라북도 고창 출생으로 마르크스주의적인 사관에 입각해 한국 경제사를 연구한 학자이다. 수원 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의무 규정에 따라 강화 보통학교의 교원, 강화군 삼림조합 기사로 근무하다 1918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 고등상업학교와 도쿄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당시 도쿄 상과대학에는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고, 백남운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다. 1925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 연희 전문학교 교수가 된 후 마르크스주의 유물 사관과 계급 투쟁론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강의 및 집필을 통해 식민사관에 입각한 ‘정체성론’과 민족주의자들의 개량주의적 입장을 동시에 반박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한 연구 성과의 결과물이 1933년 간행된 『조선사회경제사』이다. (※출처: 「조선 문화의 과학적 연구」〈우리역사넷〉)




목차


순서 차례제목 수록면
01 서론 xxx-xxx
02 조선 경제사회의 방법론
03 단군신화에 대한 비판적 견해
04 본론
05 〈원시 씨족사회〉
06 씨족사회에 관한 학설
07 조선에 있어서의 친적제도의 용어 분석
08 조선에 푸날루아식 가족형태
09 성씨제도
10 원시조선의 생산형태
11 원시씨족 공동체
12 〈원시부족국가의 제형태〉
13 삼한
14 부여
15 고구려
16 동옥저
17 예맥에서의 촌락공동체의 후적
18 읍루의 미개상태와 대우혼의 흔적
19 결론
20 〈노예국가 시대〉
21 고구려
22 백제
23 신라
24 총결산



내용

홍종욱,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아시아 인식과 조선 연구」(2021) 제2장 제1절을 전재했다.[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사회경제사 항목도 참조하기를 바란다.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후쿠다 도쿠조의 봉건제 결여론 비판

백남운은 「서문」에서 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의 봉건제 결여론을 비판했다. 도쿄상과대학에서 백남운을 가르친 후쿠다는 「經濟單位發展史上韓國の地位」(1905)를 통해 한국은 봉건제가 결여되고 소유권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후쿠다는 일원적 경제발전법칙을 중시했지만, 조선은 예외이자 특수라서 경제 발전과정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선진 문명인 일본이 정체되어 있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개입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임무’라고 주장했다.[2] 백남운은 이런 후쿠다에 대해 “근래 조선경제사의 영역에 착안한 최초의 학자”이지만, “조선에서 봉건제도의 존재를 전혀 부정한 점에서 그에 승복할 수 없”(14쪽)다고 비판했다.[3]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법칙 강조

백남운은 자신의 ‘조선 경제사의 기도(企圖)’를 여섯 항목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①원시 씨족 공산체의 양태, ②삼국 정립 시대의 노예경제, ③삼국시대 말기 경에서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적 봉건사회의 특질, ④아시아적 봉건국가의 붕괴과정과 자본주의 맹아 형태, ⑤외래 자본주의 발전의 일정과 국제적 관계, ⑥이데올로기 발전의 총 과정인데, 1933년의 󰡔조선사회경제사󰡕는 이 가운데 ①과 ②에 해당했다(14~15쪽).
백남운은 “인류 사회의 일반적 운동 법칙인 사적 변증법에 의해 그 민족 생활의 계급적 제관계 및 사회체제의 역사적 변동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나아가 그 법칙성을 일반적으로 추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적 유물론에 입각해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법칙이 한국사에도 관철되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의 이식 발전 과정”을 파악하고 “지구상의 사회평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19쪽). 내재적 모순의 발전을 중시하는 태도와 자본주의 ‘이식’이라는 인식은 서로 부딪히는 면이 있지만, 식민지 상황을 직시함으로써 ‘현대 자본주의’라는 보편성의 관철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지구상의 사회평원’은 사회주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수성론 비판

한국사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백남운은 특수성론 비판에 힘을 기울였다. 먼저 ‘우리 선배’의 ‘특수사관’에 대해, 역사학파의 이데올로기를 수입하여 조선 문화사를 독자적인 소우주로 특수화한다고 비판했다(20쪽). ‘우리 선배’는 최남선(崔南善)과 신채호(申采浩)였다. 백남운은 “피정복군 스스로가 자기의 특수성을 고조하게 되면 그것은 이른바 갱생의 길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노예화의 사도(邪道)에 빠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372쪽). 한편 이와 구별되는 ‘관제 특수성’이 존재한다며, 와다 이치로(和田一郞) 등 여러 어용학자의 ‘조선 특수 사정’ 이데올로기를 들었다. 전자가 신비적ㆍ감상적인 데 반하여 후자는 독점적ㆍ정치적이라 할 수 있는데, 두 가지 닮은 꼴 특수성은 인류 사회 발전의 역사적 법칙의 공통성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반동적이라고 비판했다(20쪽).
백남운은 마르크스의 󰡔임노동과 자본󰡕에서 고대 사회ㆍ봉건 사회ㆍ부르주아 사회는 생산 관계의 총화이자 인류 역사에서 일정하고 특정한 발전 단계를 표시한다는 말을 인용하여, ‘세계사적인 일원론적 역사법칙’에 따른 ‘우리 조선의 역사적 발전’을 규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백남운은 “조선 민족의 발전사는 그 과정이 아무리 아시아적일지라도 사회구성의 내면적 발전법칙 그 자체는 완전히 세계사적”이라고 주장했다(22쪽).


단군 신화의 비판적 이해

백남운은 단군 신화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신채호와 최남선에 대해서는 “단군 신화를 조선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을 독자적 신성화함으로써 동방문화에의 군림을 시도”하여 ‘특수문화사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일본 학자의 ‘실증주의적 편견성’도 문제 삼았다. 단군에 대해 나카 미치요(那珂通世)는 ‘무조건적으로 부정’했고,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는 ‘고구려의 국조(國祖)로서 가작(假作)된 인물’로 간주했고, 오다 쇼고(小田省吾)는 ‘묘향산의 산신’이라고 단정하고 대발견이나 한 듯 만족했다고 비판했다. 백남운은 “전자의 경우 환상적인 독자성을 거부함과 동시에, 후자의 경우 합리주의적인 가상(假象)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27쪽). 백남운은 삼국유사와 세종실록에 실린 단군 신화 전문을 번역한 뒤, 전자에서 농업공산체의 붕괴과정을, 후자에서는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및 고구려의 건국과정을 읽어냈다(40쪽).


푸날루아 가족

원시 씨족사회 설명에서는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과 미국 인류학자 모건(Lewis H. Morgan)의 󰡔고대사회󰡕(1877)를 원용했다. 가족의 발전은 혈연가족(군혼) → 푸날루아 가족 → 대우혼(對偶婚) 가족으로 설명했다. 푸날루아 가족은 모건이 40년간 아메리카 원주민 이로쿼이족(Iroquois)을 관찰하여 발견한 것이다. 백남운은 같은 문중의 사위들이나 형제의 처들이 서로 ‘동서’라 부르는 사실이 우리나라에 푸날루아 가족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운의 화석’이라고 주장했다(64쪽). 한편 고대 중국의 푸날루아 가족 형태로서 ‘아혈족(亞血族) 결혼설’을 주창한 ‘지나(支那)의 마르크스주의 학자 궈모뤄(郭沫若)’를 소개하고 그의 책 󰡔支那古代社會史論󰡕(1931, 󰡔中國古代社會硏究󰡕(1930)의 일본어판)을 각주에 인용했다(67쪽). 신석기 시대 한반도와 일본의 생산력 차이를 설명하면서는 와타나베 요시미치(渡部義通), 󰡔日本母系時代の硏究󰡕(1932)를 인용했다(89쪽). 와타나베는 곽말약과도 교류가 있던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였다.


삼국시대 노예제 사회설

󰡔조선사회경제사󰡕의 핵심적인 주장은 삼국시대를 노예제 사회로 보는 데 있었다. 백남운은 삼국지 마한전과 부여전에 나오는 ‘하호(下戶)’를 노예라고 간주하고, 삼한을 ‘노예국가의 맹아 형태’라고 분석했다(125ㆍ142쪽). 백남운은 원시적 부족국가인 삼한 단계에서는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종족 노예제였던 것이 삼국이 형성되면서 개인 노예제로 바뀌면서 사회경제의 기저를 이루었다고 보았다(374쪽). 백남운은 순장 제도를 노예제 존재를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파악했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의 연구에서 아프리카 체와족 사례를 빌려와 순장이 다른 노예제 사회에도 보편적으로 존재했다고 설명했다(143쪽). 삼국은 ‘노예제’ 국가이고 신라에 의한 통일 이후 ‘아시아적 봉건제’로 이행했다고 파악했다. 백남운은 삼국의 중앙집권제, 토지국유제, 관개정책 등을 ‘마자르 내지는 비트포겔 류의 곡해된 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375쪽). 1931년 레닌그라드 토론회의 아시아적 생산양식론 비판과 상통하는 설명이었다.


궈모뤄와 동시대성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1933)는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궈모뤄의 󰡔中國古代社會硏究󰡕(1930)와 동시대성을 띠었다.[4] 궈모뤄 역시 고대 중국에 푸날루아 가족 형태에 바탕한 원시 씨족사회와 순장이 행해진 노예제 사회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백남운의 연구에 대해서는 ‘공식주의’ 특히 모건과 엥겔스의 도식적 적용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궈모뤄도 같은 비판을 받았지만, 오히려 스스로 “본서의 성질은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의 속편에 해당”한다고 당당히 밝혔다.[5]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조선 민족은 특수한 전통의 아들이 아니며 생물학적으로 진화해 온 일반적 정상적인 인간”(23쪽)이라고 밝혔다. 궈모뤄 역시 󰡔중국고대사회연구󰡕에서 “중국인은 하느님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니다. (중략) 우리의 요구는 인간의 관점에서 중국 사회를 관찰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6] 백남운과 궈모뤄의 보편사관은 <식민지=아시아>의 인간선언이었다.


식민주의 비판

백남운은 혼돈한 조선 사학계에 투신하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며 참월(僭越)”이지만, 자신이 조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그런 모험을 감행할 ‘선험적 자격’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말과 글이 형식적이고 다소 부조리하더라도, 조선어를 모르는 이들의 대저작보다 ‘체험적’이고 ‘진실한 절규’라고 자부했다(13~14쪽). 백남운은 “불란서(佛蘭西)인이 흉한(兇漢)으로 규정한 자가 안남(安南)인에게 의열사(義烈士)가 될 수 있고, 영국인이 신사라 불러도 인도인에게는 주구(走狗)로 매도될 수도 있다.”(371쪽)는 말로 일본의 식민주의를 에둘러 비판했다. 일본 공산당의 지도자이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사노 마나부(佐野學)에 대해서도, “일본에 전수된 조선 문화란 것은 실은 지나(支那)의 것이었고 조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日本歷史の硏究󰡕), 만약 과연 그렇다면 금일의 일본 문화를 단순히 구미로부터의 수입 문화로만 규정해 버릴 수 있을까.”(372쪽)라고 비판했다.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학에 대한 비판은 상대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없었다. 백남운의 보편사관은 조선인의 주체성에 대한 강조와 하나였다.





인용문헌


○ 유관 자료



유관논의


서문 「조선 문화의 과학적 연구」에 관한 논의

이 글에서 백남운이 밝히는 입장 중 주목할 만한 첫 번째는 유물주의에 입각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이다. 그는 조선사에 대한 자아비판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동물의 뼈대와 같이 사회의 인위적⋅역사적인 뼈대를 이루는 경제적인 구성”에 대해 주목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사회를 물질 및 그 생산 수단의 소유 관계라는 하부 구조와 그 위에 형성된 정치⋅문화⋅종교 등 상부 구조로 이해하며, 이러한 사회 속에서 민중(무산계급)의 혁명적 운동을 통해 역사가 발전한다고 주장하는 사적 유물론과 직결된다. 실제로 『조선사회경제사』 중 서문에 이어지는 서론에서 백남운은 인류 사회의 일반적 운동 법칙인 사적 변증법에 따라 민족 생활의 계급적인 여러 관계와 사회 체제의 역사적 변동을 분석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조선 역사가 왕조의 정치 변동에만 주목한 왕조 변혁사, 혹은 군왕의 행동거지, 군신의 진퇴, 군주의 득실, 정령의 개폐 등에만 주목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대신 민중 생활 내지는 사회 구성의 발전 과정을 역사의 기축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백남운은 조선의 전통적 역사 서술 및 한일 강제 병합을 전후한 단군 상고사 서술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특히 후자에 관해 백남운은 조선 상고사의 환상적인 신화 서술에 집착하는 신채호(申采浩, 1880~1936)⋅최남선(崔南善, 1890~1957) 등의 민족주의적 역사 서술에 대해 “신화를 독자적으로 신성화함으로써 동방 문화에의 군림을 시도한 결과 하나의 로맨틱한 특수 문화 사관에 그쳐 버렸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런 신화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든가 축소하는 일본 학자들도 비판하면서, 신화에 대한 원조 논쟁 혹은 연대 논쟁을 벌이지 말고 그것을 통해 현실적⋅계급적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밝힌 사적 유물론과는 별개로 백남운의 글에서도 동양주의⋅민족주의적 감수성은 발견된다. “세계사의 동향이 바야흐로 동양에서 결정 날 것”이며 “조선은 동양의 일대 영역이었고 지금은 세계 자본주의의 일환”이라는 기술이 그것이다. 근대 이후 서구가 동양을 바라보는 관점은 항상 차별적이었으며, 이는 서구 근대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비판하면서 태동했던 마르크스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르스크 본인도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용어를 통해 아시아는 서구 사회의 경제 발전 단계에서 소외된 채 노예제 사회가 현재까지 정체⋅지속되고 있는 낙후 지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한 백남운임에도, 그는 세계사의 동향이 동양에서 결정 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그가 연구 주제 중 네 번째로 언급한 ‘아시아적 봉건제 사회’와 ‘자본주의 맹아’와도 연결된 주장이다. 다만 학계에서는 백남운이 전형적인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아시아적 봉건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백남운은 이 책의 서문을 통해 식민 사학적 입장에서 조선의 역사적 정체를 지적한 소위 ‘정체성론’에 대해서도 반박하고 있다. 그는 조선이 ‘동양의 일대 영역’이었다고 선언하며, 또한 그의 은사였던 후쿠다 도쿠조에 대해서도 ‘조선의 봉건제 성립을 전적으로 부정했다’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후쿠다는 그의 스승인 카를 뷔허(Karl Bücher, 1847~1930)의 경제 발전 단계설에 입각해 한국에는 봉건제가 존재하지 않았고, 노예제 단계에서 그 발전이 멈췄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생적으로는 자본주의 성립이 불가능한 사회라고 본 것으로, 일본의 조선 침략 정당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조선사회경제사』 자체는 삼국 시대까지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책만으로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백남운의 다른 글(〈조선일보〉 1926년 1월 3일자, ‘조선 사회력의 동적 고찰’)을 보면 조선 후기 상업의 발전에 기반한 제3계급이 성장하고 있었던 한편 농촌에서도 농업 성장 및 농민들의 단결에 기반한 신흥 계급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조선 사회가 만일 동질적으로 순조롭게 산업화했다면 이러한 신흥 계급이 자유 사상과 계급해방에 입각한 새로운 권력을 쟁취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의 적합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백남운의 유물 사관이 조선 정체성론과 대립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출처: 「조선 문화의 과학적 연구」〈우리역사넷〉)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Book: 조선사회경제사 Person: 백남운 A writer B
Book: 조선사회경제사 Institution: 개조사 A publisher B



Data Network





참고자원


○ 유관 자료




주석


  1. 홍종욱,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아시아 인식과 조선 연구」, 󰡔한국학연구󰡕 61, 2021.5.
  2. 이태훈, 「일제하 백남운의 부르주아 경제사학 비판과 맑스주의 역사인식 형성과정」, 󰡔한국사상사학󰡕 64, 2020.4., 308~309쪽.
  3. 백남운(하일식 역), 󰡔백남운 전집 1: 朝鮮社會經濟史󰡕, 이론과 실천, 1994, 14쪽. 이하 같은 책에서 인용은 본문에 쪽수만 표시.
  4. 백남운과 궈모뤄의 동시대성에 대해서는 洪宗郁, 「白南雲─普遍としての<民族=主体>─」, 趙景達 외 편, 󰡔講座 東アジアの知識人 4: 戦争と向き合って󰡕, 有志舎, 2014, 110~112쪽, 참조.
  5. 郭沫若(藤枝丈夫譯), 「原著者 序」, 󰡔支那古代社會論󰡕, 內外社, 1931.
  6. 郭沫若(藤枝丈夫譯), 「原著者 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