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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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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0일 (수) 23:20 판

👩🏻‍🏫본 문서는 부산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김온설(PNU2025))이 작성했습니다.




강경애(姜敬愛)
강경애.jpg
출처 : 강경애", 『전통문화포털』online,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글명 강경애 한자명 姜敬愛 영문명 Gang-gyeongae 가나명 이칭 강가마
성별 생년 1930년 몰년 1960년 출신지 황해도 송화군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강경애는 식민지 시대 작가로서는 드물게 하층 여성의 목소리를 공식 기록으로 끌어올린 식민지 시대 하층 여성의 대변자이다. 일제 강점기 역경을 딛고 작가로 성장하여 민족적, 계급적, 성적 억압에 고통 받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하층 여성의 시선을 넘어서서 당대 여느 작가들이 볼 수 없었던 식민지의 실상을 두루 보아내었다. [1]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로 근대문학사에 자리 잡았다.


생애


출생 및 학창 시절

1906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일찍 죽은 뒤 가난을 벗어나고자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장연으로 이사했다.[2] 의붓형제들 사이에서 힘들고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고 형부의 도움으로 1921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으나 1923년에 엄격한 규칙과 강요된 종교교육에 항의하는 학생 맹휴 관련자로 퇴학을 당한 후 서울 동덕여학교 4학년에 편입하여 약 1년간 수학하였다.[3] 1924년 언니가 운영하던 장연 서선여관에서 지내면서 문학 공부에 전념하였고, 그해 무산 아동을 위한 흥풍야학교를 개설하여 1929년까지 학생들과 농민들을 가르쳤다. [4] 1924년 9월 고향으로 되돌아가 야학에 참여하며 농민들을 지도하다가 1925년 형부의 도움으로 다시 숭의여학교에 복학하여 공부했으나 중퇴하였다.[5] 1927년에는 신간회에 참여하고, 그해 5월에 여성 조직인 근우회가 결성되자 근우회에도 가담하였다.[6]


문학 데뷔 초반

1929년 말부터 1931년 초에 이르기까지 조선일보에 독자투고 형식으로 4편의 글을 게재했다. 1931년 조선일보에 단편소설 「파금(破琴)」을, 그리고 같은 해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혜성』(1931)과 『제일선』(1932)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7] 강경애는 1931년 단편소설 ‘파금(破琴)’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 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중앙 문단에는 나서지 않고 가정에서 글을 썼다. 강경애는 대부분의 여성들이라면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성찰의 시간도, 글을 쓸 만한 시간과 공간도 가지지 못한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며 논설과 소설을 지었다.[8]


연애와 결혼

1924년 양주동과 함께 고향 장연을 떠나 경성의 ‘금성’사에서 동거를 하며 문학공부를 하였으나 반 년 만에 결별했다.[9] 강경애는 양주동과 헤어진 뒤 고향에서 지내다 1929년 근우회 황해도 장연군 지회의 간부로 활동하였다.[10] 그해 <조선일보>에 독자투고로 평론 '염상섭씨의 논설 '명일의 길'을 읽고'를 발표하였다.[11] 1931년 6월 장하일과 결혼해 간도로 이주한 뒤에는 다시는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12]1931년 8월부터 조선일보에 단편소설 '파금 (破琴)'을 연재하였고, 그리고 같은 해 혜성지에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여 1932년 12월까지 연재하였다.[13] 1932년에는 소설 제일선을 출간하였고 안수길, 박영준 등과 함께 잡지 《북향 (北鄕)》지의 동인으로 참여했다.[14]


소설 전업 활동

1932년 만주 룽징으로 이주한 뒤 일제와 지주, 기업인들에게 착취당하는 민중의 삶을 묘사하는 사회성 강한 작품을 썼다.[15] 특히 1932년 봄에 간도에서 벌어진 토벌 작전에 항일운동에 나섰던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강경애는 1932년에 장연으로 돌아온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 이때의 '간도의 봄'을 증언하는 것을 자기 문학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다. 또한 간도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사람들의 삶의 실상을 검열을 피해가며 한반도 안의 독자에게 알리는 것을 작가로서의 자신의 의무로 생각했다. [16] 1933년에는 3월 단편소설 '부자 (父子)'를 발표하였고, 9월에는 소설 '채전(菜田)'을 발표하였다, 1934년 2월 일본군의 잔혹한 토벌을 묘사한 소설 '유무 (有無)'를 발표했다가 잠시 피신있다 같은 해 5월 장편소설 '소금' 등을 발표했고, 장편 소설 인간문제를 8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했으며, 10월에는 소설 '동정 (同情)'을 발표했다.[17]


그 이후

어려운 살림살이와 병고, 그리고 중앙문단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준열한 작가정신으로 식민지 한국의 빈궁문제를 작품화하는 데 힘썼다.[18] 그러나 풍토병과 과로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1942년 남편과 함께 간도에서 귀국하여 황해도 장연에서 요양하다가 1944년 4월 26일에 사망했다. 일설에는 1943년에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19] 사후 사회에 비판적인 작품경향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풍토와 김좌진의 암살의혹을 받던 김봉환의 내연녀라는 의혹 때문에 저평가, 외면당하다가 1980년대 와서 그의 작품에 대한 한글 번역과 그의 소설, 시에 대한 작품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20]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는 강경애를 2005년 '3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연구


인간문제

그녀의 대표작인 『인간문제』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사회고발적인 작품이다.[21] 이 작품은 식민지 자본가와 농민, 노동자의 대립 구조 속에서 농민과 노동자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과 그들의 투쟁을 현실성 있게 그림으로써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반영하여 근대 소설사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의 하나로 꼽힌다.[22] 당시의 극한적인 빈곤상이라는 사회적 모순을 작가 나름의 섬세함과 사실적 기법으로 상세히 묘사 한 점에서 한국 소설사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23]


지하촌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강경애 Person: 장하일 A hasSpouse B
Person: 강경애 Institution: 동덕여학교 A takesCourseAt B
Person: 강경애 Institution: 흥풍야학교 A worksAt B
Person: 강경애 Group: 신간회 A isMemberOf B
Person: 강경애 Group: 근우회 A isMemberOf B
Book: 인간문제 Person: 강경애 A creator B
Book: 지하촌 Person: 강경애 A creator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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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work Graph






참고자원


"강경애 (姜敬愛)",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강경애", 『전통문화포털』online,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진솔함으로 시대를 그려낸 작가, 강경애", 『성대신문』online, 성대신문.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주석


  1. "강경애", 『전통문화포털』online,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 강경애", 『전통문화포털』online,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3. 강경애", 『전통문화포털』online,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4.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5.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6.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7. 강경애", 『전통문화포털』online,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8.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9.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10.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11.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12.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13.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14.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15.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16. 강경애", 『전통문화포털』online,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17.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18.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19.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20. 강경애", 『위키백과』online, 위키백과.
  21. 진솔함으로 시대를 그려낸 작가, 강경애", 『성대신문』online, 성대신문.
  22. 강경애", 『전통문화포털』online,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3. 강경애 (姜敬愛)",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