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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0일 (수) 21:07 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박정현(CNU2025))이 작성했습니다.




박화성(朴花城)
박화상 근영.jpg
출처 : 고석규, "풍경의 기억", 『호남학산책』online, 한국학호남진흥원, 작성일: 2020년 08월 13일.
 
한글명 박화성 한자명 朴花城 영문명 Park, Hwa seong 가나명 이칭 소영(素影)
성별 생년 1903년 몰년 1988년 출신지 전라남도 목포 전공 영문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며 본명은 박경순(朴景順)이다. 서울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 후 영광중학원기관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단편『추석전야』가 『조선문단』1월호에 발표되며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1]. 데뷔한 이래 장편 17편, 단편 62편, 중편 3편, 연작소설 2회분, 희곡 1편, 콩트 6편, 동화 1편, 두 권의 수필집과 평론 등을 제외하고도 모두 92편의 방대한 작품들을 남겼다.[2] 해당 인물은 문학계에 쌓은 공로를 인정받아 목포시문화상(1958년), 한국문학상(1966년), 대한민국예술원상(1970년), 3·1문화상(1984년)등을 수상했다. [3]


생애


출생 및 어린시절

1904년 목포 죽동에 부유한 선창 객주 박운서(朴雲瑞)의 4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4] 1915년 목포에 있는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를 거쳐 1918년서울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기관를 졸업하였다.[5] 졸업 이후 충청남도 천안과 아산에 있는 보통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22년부터 전라남도 영광중학교기관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였다.[6]


교원 생활 및 데뷔

영광에 머무르는 동안 시조작가 조운인물(曺雲) 등과 사귀면서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하였다.[7] 이후 박화성의 수필을 본 조운이 소설을 써보라 권하여「팔삭동」서적이라는 단편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8] 1924년 여름에 쓴 「추석전야」서적를 조운이 이광수인물(李光洙)에게 보여준 뒤 이를 이광수가 1925년「조선문단」1월호에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9]


대학 재학 및 졸업이후

문단 데뷔 이후 학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상경, 1926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기관(신학년제 4년)를 졸업한 뒤,[10]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여자대학기관[日本女子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며, 3학년 재학 중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11] 이후 1932년 잡지『동광(東光)』에 「하수도공사」서적란 제목의 소설을 발표하고, 『동아일보』에 장편 역사소설 「백화」서적를 연재하며 공백기를 깨고 작가 생활을 이어나갔다.[12] 이 시기 박화성은 1934년 「논 갈 때」서적, 「홍수전후」서적, 1935년 「한귀」서적, 1936년 「고향 없는 사람들」서적와 같은 소설을 남겼으며, 1938년 「중굿날」서적을 발표한 뒤 광복까지 공백기를 가진다.[13] 이 때의 박화성은 스스로의 "약자의 편에서 강자를 상대로 하여 생활을 이겨나가는 심리적이나 현실적인 사항을 다루어 펴나갔기 때문에"라는 말처럼 궁핍한 조선 현실에 대응하여 계급의식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형상화해 나갔다.[14]


광복 이후

1946년『민성』에 단편 「봄 안개」서적를 발표하면서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이후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15] 이 시기 박화성은 1948년「광풍(狂風) 속에서」서적 ,1965년 「샌님 마님」서적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고, 1955년~1956년 「고개를 넘으면」서적,1956년~1957년 「사랑」서적,1957년~1958년 「벼랑에 피는 꽃」서적,1958년~1959년 「바람뉘」서적등의 장편소설을 연재하였다.[16] 이 때의 박화성은 스스로의 "강력한 민족적 저항의식에서 풀려나는 반면으로 나의 주인공들은 휴머니즘에 좀더 감겨들기 시작하여 가족 관계의 모순이라던가, 윤리의 맹점 같은, 또한 인간성의 선악을 기조로 한 이른바 세정(世情)에 더 날카로운 관찰을 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심리와 감정의 오묘한 경지에까지 침투해 있는 것이다."라는 말처럼[17], 작품세계에 대중성을 도입하여 서민들의 세대의식이나 남녀간의 애정문제 등을 주로 다루었다.[18]





대표 저서


하수도공사

박화성이 일본 유학에서 6년 만에 돌아와 새로 쓰기 시작한 첫 단편소설이다.[19] 1931년 3월 29일 목포의 하수도공사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문제를 주 소재로 한 작품이다.[20] 일본인 청부업자가 부정한 경리로 부실공사가 된 뒤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그래도 모자라 체불노임을 횡령하려는 것을, 책의 주인공 서동관이 앞장서서 노동자들과 같이 싸워 끝까지 받아내는 내용이며, 해당 작품은 인간의 노동력의 위대한 업적을 세상에 알리고, 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민족독립으로 연관하여 승화시켜 나가고 있는 것에서 예술성을 보인다.[21].


고개를 넘으면

박화성이 광복 이후 1955년~1956년 동안『한국일보』에 연재한 장편 소설이다.[22] 이 작품은 한설희, 한혜순, 한진수, 김영옥, 윤형빈, 박철규 등 6명이 만든 '봐인클럽'이라는 사적 모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이들의 애절한 사랑과 운명에 관심을 보인 독자층의 인기를 끌어 박화성은 「고개를 넘으면」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장편작가, 신문소설 연재 작가로 주목되기 시작했다.[23] 해당 작품의 인물 스스로 성장에 대한 고민이나 발전 의지 등이 일절 보이지 않고 감정에 치우친 애정 관계 서사만 극대화된다는 특징을 보았을 때, 「고개를 넘으면」의 주제는 개인 차원의 에정 문제로 한정되어 있고, 박화성의 광복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였을 때 계몽적 성향이 약화한 것을 볼 수 있다. [24]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박화성 Institution: 숙명여자보통학교 A gradutes B
Person: 박화성 Institution: 일본여자대학교 A gradutes B
Person: 박화성 Book:「팔삭동」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추석전야」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하수도공사」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논 갈 때」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홍수전후」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한귀」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고향 없는 사람들」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중굿날」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봄 안개」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광풍(狂風) 속에서」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샌님 마님」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고개를 넘으면」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사랑」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벼랑에 피는 꽃」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Book:「바람뉘」 A creator B
Person: 박화성 Person: 조운 A hasMaster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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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하수도공사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화성』, 「작가이야기」online, 목포문학, 작성일: 2019년 02월 19일.
고석규, "풍경의 기억", 『호남학산책』online, 한국학호남진흥원, 작성일: 2020년 08월 13일.
김다이, 「<광주전남여성운동사23>시대정신 일깨운 여류 소설가 박화성(1)」, 『시민의소리』online, 시민의소리, 작성일: 2012년 12월 20일.
조미숙, 「박화성 장편소설 서사전략 연구 - 『백화』,『북국의 여명』,『고개를 넘으면』을 중심으로」,『한국예술연구』39,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 2023, 47~67쪽.






주석


  1. 박화성』, 「작가이야기」online, 목포문학, 작성일: 2019년 02월 19일.
  2. 고석규, "풍경의 기억", 『호남학산책』online, 한국학호남진흥원, 작성일: 2020년 08월 13일.
  3.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김다이, 「<광주전남여성운동사23>시대정신 일깨운 여류 소설가 박화성(1)」, 『시민의소리』online, 시민의소리, 작성일: 2012년 12월 20일.
  5.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 박화성』, 「작가이야기」online, 목포문학, 작성일: 2019년 02월 19일.
  9. 박화성』, 「작가이야기」online, 목포문학, 작성일: 2019년 02월 19일.
  10. 박화성』, 「작가이야기」online, 목포문학, 작성일: 2019년 02월 19일.에 따르면 신학제에 따라 숙명야자고등보통학교 1년을 더 다닌 것으로 나타남. 이 때문에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년도가 1918년과 1926년 두 년도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됨.
  11.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2. 고석규, "풍경의 기억", 『호남학산책』online, 한국학호남진흥원, 작성일: 2020년 08월 13일.
  13.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4. 고석규, "풍경의 기억", 『호남학산책』online, 한국학호남진흥원, 작성일: 2020년 08월 15일.
  15.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6.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7. 고석규, "풍경의 기억", 『호남학산책』online, 한국학호남진흥원, 작성일: 2020년 08월 13일.
  18.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 하수도공사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 고석규, "풍경의 기억", 『호남학산책』online, 한국학호남진흥원, 작성일: 2020년 08월 13일.
  21. 하수도공사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2. 박화성onlin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3. 조미숙, 「박화성 장편소설 서사전략 연구 - 『백화』,『북국의 여명』,『고개를 넘으면』을 중심으로」,『한국예술연구』39,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 2023, 47~67쪽.
  24. 조미숙, 「박화성 장편소설 서사전략 연구 - 『백화』,『북국의 여명』,『고개를 넘으면』을 중심으로」,『한국예술연구』39,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 2023, 47~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