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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택<sub>住宅</sub>에 대<sub>對</sub>하야와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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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일제강점과 해방, 6.25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거쳤던 박동진의 건축은 근대와 전근대의 전환기적 성격이 특징적이라고 하겠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현대건축의 추세가 포함된 동아일보 연재 우리 주택에 대하야<sub><ref>글은 네 장으로 구성됐는데, 1장인 ‘생활<sub>生活</sub>과 주택<sub>住宅<sub>과’는 서론으로서 급변하는 시대상을 논하고, 본론인 3장 ‘우리 집<sub>住家</sub>의 <sub>現狀</sub>’및 4장‘우리의 새 집<sub>住家</sub>’는 각각 재래 주가에 대한 비판과 개선책을 담는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2장 현대건축의 추세는 전체 연재의 3∼5회 사흘 분(1931.3.17∼19)에 걸쳐 있으며, 자체로서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뉜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아르누보와 제체션을 중심으로 도입부를 서술한 후, 당시 건축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던 네 개 국가인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러시아의 건축 경향에 대해 차례로 정보를 제공하는 형식이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ref></sub>(1931.3.14∼4.5; 23일 중 16일)에서도 물론이다.<ref>박동진의 이 같은 시대적 한계 및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색은 그가 출판한 글에서도 확인되는데, 실제 디자인에서보다 개혁적 입장이 훨씬 뚜렷하다.</ref><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이 글은 재래 주택의 현황을 건물배치, 평면, 외관 등으로 나눠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며 합리적 개선 방안을 논한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그 논지를 뒷받침하는 배경이 합리화·국제화돼가는 ‘현대건축의 추세’인 셈인데, 1회차 글에서 “현대에 있어서 우리 재래 생활방식의 가치는 거의 0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는, 상당히 과격한 견해를 밝혔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이런 개혁적 입장은 같은 해 12월 신동아<sub>新東亞</sub>에 출판한 곡선<sub>曲線</sub>과 건축미<sub>建築美</sub>에서 과학적·경제적 관점에서 필연적이지 않은 곡선을 거부하는 시각으로 나타났고, 10년후에 나온 춘추<sub>春秋</sub>의 북한주택개혁이론<sub>朝鮮住宅改革論</sub>(1941.8)은 우리주택에 대하야 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온돌폐지를 포함해 재래 주택의 완전한 개혁을 주장하는 데까지 나갔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후자는 일제의 식민사관마저도 노출하는 한편으로, 현대건축의 흐름을 적극 수용하려는 그의 일관된 입장을 내포하고 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박동진은‘건축’을 ‘예술’로 인식했거나 최소한 ‘예술로서의 건축’을 서술 대상으로 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그러는 가운데 서양 근대건축운동의 주류 경향을 적극 긍정한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주류는 장식과 주관의 표현성을 극복한 합리주의와 기능주의였으며, 공통의 좌표는 결국 국제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한편, 서양 근대건축운동의 시작을 19세기 말의 아르누보와 제체션에서 보되, 바그너야말로 이후 건축운동의 출발점이라 인식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박동진은‘예술’이 ‘필요’의 결과라는 바그너의 모토를 핵심 이념으로 인용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박동진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은 아무래도 아직 파편적이고 피상적이다.<ref>박동진은 우리 주택에 대하야 글 첫머리에 이미 자신이 ‘전문적’ 논의를 의도하지 않음을 전제하긴 했다. 세계건축의 신경향을 보임으로써 자기 주택개량론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대건축의 추세만을 떼어놓고 볼 때 자체로서 의의가 큼에도 불구하고 인식의 시차와 한계가 노출됨은 결국 박동진이 처했던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제약의 발로라 할 수 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ref><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박동진의 현대건축의 추세는 자기 주택개량론을 위한 일간지 연재물의 한 챕터로 삽입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제약된 지면 내의 개괄적 서술만이 가능한 조건이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그러나 더 중요한 바는 1931년의 이 글이 조선 건축계의 서양 근대건축에 관한 사실상의 첫 텍스트여서 아직 그 지식이 충분히 구비되지 못한 때 작성됐다는 점일 것이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다만 1931년 당시의 서양 근대건축운동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조선 건축계의 드문 자료라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더구나 당대 조선의 건축계와 대중에 나름의 신선한 지식을 제공했다고 판단되는데, 이로써 박동진은 최신 건축과 관련한 조선인 전문가로 각인됐을 것이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글의 의도처럼 박동진이 자기 주택개량론을 뒷받침하면서 말이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박동진의 현대건축의 추세 (1931.3)은 1930년대 조선의 건축계에서 나온, 서양 근대건축운동에 관한 한국 최초의 역사서술적 성격의 글로 판단된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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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일제강점과 해방, 6.25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거쳤던 박동진의 건축은 근대와 전근대의 전환기적 성격이 특징적이라고 하겠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현대건축의 추세가 포함된 동아일보 연재 우리 주택에 대하야<sub><ref>글은 네 장으로 구성됐는데, 1장인 ‘생활<sub>生活</sub>과 주택<sub>住宅<sub>과’는 서론으로서 급변하는 시대상을 논하고, 본론인 3장 ‘우리 집<sub>住家</sub>의 <sub>現狀</sub>’및 4장‘우리의 새 집<sub>住家</sub>’는 각각 재래 주가에 대한 비판과 개선책을 담는다.</ref><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2장 현대건축의 추세는 전체 연재의 3∼5회 사흘 분(1931.3.17∼19)에 걸쳐 있으며, 자체로서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뉜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아르누보와 제체션을 중심으로 도입부를 서술한 후, 당시 건축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던 네 개 국가인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러시아의 건축 경향에 대해 차례로 정보를 제공하는 형식이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ref></sub>(1931.3.14∼4.5; 23일 중 16일)에서도 물론이다.<ref>박동진의 이 같은 시대적 한계 및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색은 그가 출판한 글에서도 확인되는데, 실제 디자인에서보다 개혁적 입장이 훨씬 뚜렷하다.</ref><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이 글은 재래 주택의 현황을 건물배치, 평면, 외관 등으로 나눠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며 합리적 개선 방안을 논한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그 논지를 뒷받침하는 배경이 합리화·국제화돼가는 ‘현대건축의 추세’인 셈인데, 1회차 글에서 “현대에 있어서 우리 재래 생활방식의 가치는 거의 0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는, 상당히 과격한 견해를 밝혔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이런 개혁적 입장은 같은 해 12월 신동아<sub>新東亞</sub>에 출판한 곡선<sub>曲線</sub>과 건축미<sub>建築美</sub>에서 과학적·경제적 관점에서 필연적이지 않은 곡선을 거부하는 시각으로 나타났고, 10년후에 나온 춘추<sub>春秋</sub>의 북한주택개혁이론<sub>朝鮮住宅改革論</sub>(1941.8)은 우리주택에 대하야 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온돌폐지를 포함해 재래 주택의 완전한 개혁을 주장하는 데까지 나갔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후자는 일제의 식민사관마저도 노출하는 한편으로, 현대건축의 흐름을 적극 수용하려는 그의 일관된 입장을 내포하고 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 박동진은‘건축’을 ‘예술’로 인식했거나 최소한 ‘예술로서의 건축’을 서술 대상으로 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그러는 가운데 서양 근대건축운동의 주류 경향을 적극 긍정한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주류는 장식과 주관의 표현성을 극복한 합리주의와 기능주의였으며, 공통의 좌표는 결국 국제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한편, 서양 근대건축운동의 시작을 19세기 말의 아르누보와 제체션에서 보되, 바그너야말로 이후 건축운동의 출발점이라 인식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박동진은‘예술’이 ‘필요’의 결과라는 바그너의 모토를 핵심 이념으로 인용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박동진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은 아무래도 아직 파편적이고 피상적이다.<ref>박동진은 우리 주택에 대하야 글 첫머리에 이미 자신이 ‘전문적’ 논의를 의도하지 않음을 전제하긴 했다. 세계건축의 신경향을 보임으로써 자기 주택개량론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대건축의 추세만을 떼어놓고 볼 때 자체로서 의의가 큼에도 불구하고 인식의 시차와 한계가 노출됨은 결국 박동진이 처했던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제약의 발로라 할 수 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ref></ref><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박동진의 현대건축의 추세는 자기 주택개량론을 위한 일간지 연재물의 한 챕터로 삽입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제약된 지면 내의 개괄적 서술만이 가능한 조건이었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그러나 더 중요한 바는 1931년의 이 글이 조선 건축계의 서양 근대건축에 관한 사실상의 첫 텍스트여서 아직 그 지식이 충분히 구비되지 못한 때 작성됐다는 점일 것이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다만 1931년 당시의 서양 근대건축운동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조선 건축계의 드문 자료라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더구나 당대 조선의 건축계와 대중에 나름의 신선한 지식을 제공했다고 판단되는데, 이로써 박동진은 최신 건축과 관련한 조선인 전문가로 각인됐을 것이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글의 의도처럼 박동진이 자기 주택개량론을 뒷받침하면서 말이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박동진의 현대건축의 추세 (1931.3)은 1930년대 조선의 건축계에서 나온, 서양 근대건축운동에 관한 한국 최초의 역사서술적 성격의 글로 판단된다.<ref>김현섭, 김제연, [https://accesson.kisti.re.kr/main/search/articleDetail.do?artiId=ATN0043397559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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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8일 (금) 16:37 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박성현(GNU2025))이 작성했습니다.




박동진(朴東鎭)
출처 :
 
한글명 박동진 한자명 朴東鎭 영문명 가나명 이칭
성별 남 생년 1899년 몰년 1981년 출신지 평안북도 정주 전공 건축과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한국의 대표적 1세대 건축가 중 한 명이다.[1] 석조건축 혹은 고딕부흥식의 어휘를 자기 브랜드로 나타냈으며, 기능주의 건축을 추구했다.[2] 일제강점과 해방, 6.25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거쳤던 박동진의 건축은 근대와 전근대의 전환기적 성격이 특징적이다.[3]


생애


출생 및 교육

평안북도 정주 출생이다.[4] 1915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에 입학하였으나, 재학 중 3·1운동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재입학하여 1924년에 졸업하였다.[5] 졸업 후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수(建築技手)로 들어가 많은 업무를 담당하여 기량을 닦았으며, 1936년 기사(技師)로 승진하였다.[6] 이곳에서 그는 대전지방법원 등 몇몇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전하지만 그의 역할을 논하기에는 한계가 크다.[7] 이 기간 그에게 더 중요한 프로젝트는 보성전문 학교 본관(1933∼34)과 도서관(1935∼37)으로 대표되는 여러 개인 작업이었다.[8]


조선총독부 시절

조선총독부에서 15년을 근무하며 근대적 건축술을 익혔다.[9] 관직에 있을 때인 1932년경부터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본관과 도서관의 설계를 시작으로 많은 교육시설을 설계하였는데, 이때의 대표작으로는 조선일보사옥(1933∼1934)·아서원(1934)·오산중학교(1935∼1936)·중앙중학교(1936∼1937)·명신중학교(1937∼1939)·대전지방법원(1939) 등이 있다.[10]


조선총독부 사임 후

1940년 총독부 사임 후 태평건물주식회사, 박동진건축연구소, 기신건축연구소를 설립해 활동을 지속하면서도 명륜동 자택(1943), 영락교회(1946∼50), 남대문교회(1955∼69) 등에 석조건축 혹은 고딕부흥식의 어휘를 자기 브랜드로 나타냈다.[11] 하지만 이런 중에도 그는 조선일보사(1934∼35), 고려대학교 여학생회관(1959) 등을 통해 근대 기능주의로의 전이를 시사했고, 고려대학교 과학관(1959∼60)과 이공대학 본관(1957∼64) 등에서 전형적 기능주의 건축을 보여줬다.[12]


광복 후

광복 후 1950년 태평건물주식회사 사장직을 사임하고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대구 청구대학 건축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53년 박동진건축연구소를 개설하였다.[13] 1960년 기신건축연구소(紀新建築硏究所)로 발전시켜 계속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미국건축가협회의 초청으로 1964년 4월부터 1년간 미국 및 유럽의 건축계를 시찰하고 돌아왔다.[14]





연구


우리 주택住宅에 대對하야와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일제강점과 해방, 6.25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거쳤던 박동진의 건축은 근대와 전근대의 전환기적 성격이 특징적이라고 하겠다.[15] 현대건축의 추세가 포함된 동아일보 연재 우리 주택에 대하야[16][17] 2장 현대건축의 추세는 전체 연재의 3∼5회 사흘 분(1931.3.17∼19)에 걸쳐 있으며, 자체로서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뉜다.[18] 아르누보와 제체션을 중심으로 도입부를 서술한 후, 당시 건축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던 네 개 국가인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러시아의 건축 경향에 대해 차례로 정보를 제공하는 형식이다[19]</ref>(1931.3.14∼4.5; 23일 중 16일)에서도 물론이다.[20][21] 이 글은 재래 주택의 현황을 건물배치, 평면, 외관 등으로 나눠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며 합리적 개선 방안을 논한다.[22] 그 논지를 뒷받침하는 배경이 합리화·국제화돼가는 ‘현대건축의 추세’인 셈인데, 1회차 글에서 “현대에 있어서 우리 재래 생활방식의 가치는 거의 0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는, 상당히 과격한 견해를 밝혔다.[23] 이런 개혁적 입장은 같은 해 12월 신동아新東亞에 출판한 곡선曲線과 건축미建築美에서 과학적·경제적 관점에서 필연적이지 않은 곡선을 거부하는 시각으로 나타났고, 10년후에 나온 춘추春秋의 북한주택개혁이론朝鮮住宅改革論(1941.8)은 우리주택에 대하야 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온돌폐지를 포함해 재래 주택의 완전한 개혁을 주장하는 데까지 나갔다.[24] 후자는 일제의 식민사관마저도 노출하는 한편으로, 현대건축의 흐름을 적극 수용하려는 그의 일관된 입장을 내포하고 있다.[25] 박동진은‘건축’을 ‘예술’로 인식했거나 최소한 ‘예술로서의 건축’을 서술 대상으로 했다.[26] 그러는 가운데 서양 근대건축운동의 주류 경향을 적극 긍정한다.[27] 주류는 장식과 주관의 표현성을 극복한 합리주의와 기능주의였으며, 공통의 좌표는 결국 국제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28] 한편, 서양 근대건축운동의 시작을 19세기 말의 아르누보와 제체션에서 보되, 바그너야말로 이후 건축운동의 출발점이라 인식했다.[29] 박동진은‘예술’이 ‘필요’의 결과라는 바그너의 모토를 핵심 이념으로 인용했다.[30] 박동진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은 아무래도 아직 파편적이고 피상적이다.인용 오류: <ref> 태그를 닫는 </ref> 태그가 없습니다</ref>[31] 박동진의 현대건축의 추세는 자기 주택개량론을 위한 일간지 연재물의 한 챕터로 삽입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제약된 지면 내의 개괄적 서술만이 가능한 조건이었다.[32] 그러나 더 중요한 바는 1931년의 이 글이 조선 건축계의 서양 근대건축에 관한 사실상의 첫 텍스트여서 아직 그 지식이 충분히 구비되지 못한 때 작성됐다는 점일 것이다.[33] 다만 1931년 당시의 서양 근대건축운동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조선 건축계의 드문 자료라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34] 더구나 당대 조선의 건축계와 대중에 나름의 신선한 지식을 제공했다고 판단되는데, 이로써 박동진은 최신 건축과 관련한 조선인 전문가로 각인됐을 것이다.[35] 글의 의도처럼 박동진이 자기 주택개량론을 뒷받침하면서 말이다.[36] 박동진의 현대건축의 추세 (1931.3)은 1930년대 조선의 건축계에서 나온, 서양 근대건축운동에 관한 한국 최초의 역사서술적 성격의 글로 판단된다.[37]


작품리스트

작품 연도
보성전문학교 본관 (현 고려대 본관)普成全文學校本館(現 高麗大本館)[38] 1933~34년
조선일보사 사옥 (없음, 코리아나 호텔 자리)朝鮮日 報社社屋(無, 코리아나 호텔 자리)[39] 1934~35년
아서원 (현 없음)雅敘園(現無)[40] 1934년
보성전문학교 도서관普成全文學校圖書館[41] 1935~37년
오산중학교 본관 (평북 정주)五山中學校本館(平北定州)[42] 1935년
오산중학교 대강당五山中學校大講堂[43] 1936년
오산중학교 과학관五山中學校科學館[44] 1936년
중앙중학교 본관中央中學校本館[45] 1936년
중앙중학교 대강당中央中學校大講堂[46] 1937년
명신중학교 본관 (재령)明新中學校教本館(載寧)[47] 1937년
명신중학교 대강당明新中學校大講堂[48] 1938년
명신중학교 기숙사明新中學校寄宿舎[49] 1939년
대전지방법원 청사大田地方法院廳舍[50] 1939년
평안공업학교 본관 (2층)平安工業學校本館[51] 1940년
보성중학교 별관 교실普成中學校別館教室[52] 1940년
평안공업학교 대강당平安工業學校大講堂[53] 1941년
경방 남천 공장 (남천)京紡南川工場(南川)[54] 1942년
이성봉 소아과 의원李聖鳳小兒科醫院[55] 1942년
백인제 외과 수술실白麟濟外手術室[56] 1944년
영락교회榮樂教會[57] 1948년
남대문교회南大門教會[58] 1954년
고려대학교 준공 건물高麗大學校早今建物[59] 1955~65년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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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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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Person: 홍길동 A creato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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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


  1.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2.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3.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4. ↑ 윤일주, 박동진 (朴東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한국학중앙연구원.
  5. ↑ 윤일주, 박동진 (朴東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한국학중앙연구원.
  6. ↑ 윤일주, 박동진 (朴東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한국학중앙연구원.
  7.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8.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9.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10. ↑ 윤일주, 박동진 (朴東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한국학중앙연구원.
  11.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12.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13. ↑ 윤일주, 박동진 (朴東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한국학중앙연구원.
  14. ↑ 윤일주, 박동진 (朴東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한국학중앙연구원.
  15.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16. ↑ 글은 네 장으로 구성됐는데, 1장인 ‘생활生活과 주택住宅과’는 서론으로서 급변하는 시대상을 논하고, 본론인 3장 ‘우리 집住家의 現狀’및 4장‘우리의 새 집住家’는 각각 재래 주가에 대한 비판과 개선책을 담는다.
  17.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18.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19.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20. ↑ 박동진의 이 같은 시대적 한계 및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색은 그가 출판한 글에서도 확인되는데, 실제 디자인에서보다 개혁적 입장이 훨씬 뚜렷하다.
  21.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22.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23.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24.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25.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23쪽.
  26.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27.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28.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29.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30.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31.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32.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33.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34.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35.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36.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37. ↑ 김현섭, 김제연, 「1930년대 박동진과 홍윤식의 서양 근대건축운동 인식」, 『건축역사연구』 제32권 1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23, 30쪽.
  38.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39.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40.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41.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42.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43.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44.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45.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46.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47.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48.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49.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50.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51.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52.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53.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54.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55.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56.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57.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58.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
  59. ↑ 윤인석, 「한국의 건축가 - 박동진」, 『건축사 = Korean architects』, 제9호(통권 329호), 1996, p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