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학인의 조선문학에 대한 태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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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1번= {{TagSpage|100-1}}여기서 學人이라 하는 것은 物論 文字 그대로 學問하는 사람 即 學者를 意味하는 말이 되겠으나 그러나 從來 우리들의 先輩는 오늘날 우리들이 意味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널리 一般으로 學問을 할 줄 아는 사람 或은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에까지 그 內容을 擴張하야 써왔다. 또 옛날사람들은 學問이라면 곧 漢學을 意味하였고, 오늘날 우리들이 하고 있는 朝鮮文學 따위는 學問의 範疇에 들어가지 않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따라서 내가 여기 學人이라 하는 것은 漢學을 專攻하고 또 널리 學問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意味에 쓰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朝鮮文學에 對하야 어떠한 態度를 取하야 왔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거니와, 먼저 本論에 들어가기 前에 잠깐 朝鮮의 漢文學과 朝鮮文學과의 關係를 簡單히 말하여 두려한다.
 
|원문1번= {{TagSpage|100-1}}여기서 學人이라 하는 것은 物論 文字 그대로 學問하는 사람 即 學者를 意味하는 말이 되겠으나 그러나 從來 우리들의 先輩는 오늘날 우리들이 意味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널리 一般으로 學問을 할 줄 아는 사람 或은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에까지 그 內容을 擴張하야 써왔다. 또 옛날사람들은 學問이라면 곧 漢學을 意味하였고, 오늘날 우리들이 하고 있는 朝鮮文學 따위는 學問의 範疇에 들어가지 않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따라서 내가 여기 學人이라 하는 것은 漢學을 專攻하고 또 널리 學問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意味에 쓰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朝鮮文學에 對하야 어떠한 態度를 取하야 왔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거니와, 먼저 本論에 들어가기 前에 잠깐 朝鮮의 漢文學과 朝鮮文學과의 關係를 簡單히 말하여 두려한다.
 
|원문2번= {{TagSpage|100-2}}大體로 朝鮮文學이라면 이것이 學問硏究의 對象이 되여 專門的으로 硏究하는 學者도 以前에는 그리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이에 對한 意義라던지 或은 그가 가지고 있는 硏究의 範圍란것도 充分히 論難되지 않은 채 오늘에 남어 있는듯하나, 더욱이 이와 漢文學과의 關係같은 것은 앞으로 朝鮮文學을 體系세우는 데에 있어서 極히 重大한 問題이면서도 實로 그 見解가 確定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여기 말하려는 데는 얼마큼 獨斷이 있다는 것을 미리 諒解하여 주기를 바라거니와, 朝鮮은 오랜{{TagPage|101-1}} 옛적부터 漢文化에 接觸하야 그 文字를 배우고 글을 배워왔었다. 그런데 朝鮮의 固有文字인 諺文은 그보다 훨씬 後代 곧 李朝에 들어와서 비로소 發明되었으니까 이것이 發明되기 前은 勿論이고 發明된 以後라 할지라도 思想感情의 重要한 發表는 主張 漢字漢文에 依하야 되여 왔었다. 그러고도 그에 對하여는 조금도 異國文字視하들않고 도로혀 그를 正確한 글 標準的 發表機關이라고, 確信하여 왔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 朝鮮에 發達한 漢文學에 對한限 決코 對岸火를 보듯이 冷待할 수 없고 도로혀 그 氣分으로 보아 그냥 朝鮮文學이 될 듯도 하다.  
 
|원문2번= {{TagSpage|100-2}}大體로 朝鮮文學이라면 이것이 學問硏究의 對象이 되여 專門的으로 硏究하는 學者도 以前에는 그리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이에 對한 意義라던지 或은 그가 가지고 있는 硏究의 範圍란것도 充分히 論難되지 않은 채 오늘에 남어 있는듯하나, 더욱이 이와 漢文學과의 關係같은 것은 앞으로 朝鮮文學을 體系세우는 데에 있어서 極히 重大한 問題이면서도 實로 그 見解가 確定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여기 말하려는 데는 얼마큼 獨斷이 있다는 것을 미리 諒解하여 주기를 바라거니와, 朝鮮은 오랜{{TagPage|101-1}} 옛적부터 漢文化에 接觸하야 그 文字를 배우고 글을 배워왔었다. 그런데 朝鮮의 固有文字인 諺文은 그보다 훨씬 後代 곧 李朝에 들어와서 비로소 發明되었으니까 이것이 發明되기 前은 勿論이고 發明된 以後라 할지라도 思想感情의 重要한 發表는 主張 漢字漢文에 依하야 되여 왔었다. 그러고도 그에 對하여는 조금도 異國文字視하들않고 도로혀 그를 正確한 글 標準的 發表機關이라고, 確信하여 왔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 朝鮮에 發達한 漢文學에 對한限 決코 對岸火를 보듯이 冷待할 수 없고 도로혀 그 氣分으로 보아 그냥 朝鮮文學이 될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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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3번= {{TagSpage|101-2}}그러나 또 立場을 바꾸어서 朝鮮文學으로부터 생각하야 보면 朝鮮文學은 어디까지든지 朝鮮의 文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即 朝鮮語로 表現된 것이 아니면 이를 朝鮮文學이라 認證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朝鮮에서 發達하였다는 漢文學이라 할지라도 當然히 朝鮮文學의 領域에서 除去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또 한便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漢文은 朝鮮에 일즉이 文字없는 時代에 들어와서 朝鮮사람에게 愛用되었을 뿐 아니라 乃終에는 一點의 疑心도 없이 自國文視 되어버려 幾多의 作品을 産出하고 그것이 漢文으로 表記되었건만 純朝鮮文보다도 더 잘 朝鮮人의 思想感情生活을 表現하여 왔음을 생각할 때, 漢文學을 朝鮮文學으로부터 除去하기에는 얼마큼 躊躇하지 않으면 안 될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하야 곧 漢文學即朝鮮文學이라고는 하고 싶지 않다. 朝鮮文學은 朝鮮의 文學인 以上 어디까지든지 自己의 領域을 保持할 必要가 있다고 믿는다. 空然히 自己의 領域을 넓히는 것은 멀지 않어 自己를 그 瓦解의 運命에 던짐과 같아서 文化라든지 文學에 對한 意識이 全然 옛날과 달라진 오늘에 있어서도 漢文學 朝鮮文學 中에 넣는다는 것은 一顧의 價値가 없는 愚論에  지나지 못하겠거니와 그러나 지나간 過去의 文學時代 即 아즉 漢文學을 自國文學과 同樣視하든 時代의 漢文學은 敢히 이것을 朝鮮文學의 一部分이라고 보는 것은 關係가 없을 듯하다. 이를 좀 더 些細히 말하면 朝鮮에 있어서 朝鮮사람 손에 依하야 發達되여 온 漢文學은 朝鮮文學의 詩歌, 小說, 同樣{{TagPage|102-1}}으로 그 一部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即 漢文學即朝鮮文學이라던지 朝鮮文學即漢文學이라는 것이 아니라 漢文學은 朝鮮文學의 一部分이 되여서 큰 朝鮮文學을 構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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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4번= {{TagSpage|102-2}}實로 獨斷無謀한 생각일지 모르나 나는 大綱 이러한 立場에서 朝鮮文學을 생각하여 보고자한다. 그러나 이 論文에 있어서 朝鮮文學이라 하는 것은 그러한 廣意味의 朝鮮文學이 아니고 훨신 좁은 意味의 朝鮮文學, 即 朝鮮語로 表記된 純朝鮮文學을 意味하는 것이니까 이 點에 誤解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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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5번= {{TagSpage|102-3}}그러면 일로부터 本論에 들어가서 李朝諺文이 制定된 以來 그 文學에 對하야 漢學專攻의 學人들이 如何한 態度로 臨하였는가를 말하고자 하나, 諺文을 制定하던 그 當時의 一般的社會는 支那文化에 相當히 浸潤하야 벌서 새로 制作된 諺文에 對하여는 그다지 期待를 갖지 않었던 것이다. 期待인커냥 그 중에는 도로혀 不必要視하는 者도 있었으니 저 崔萬理가 世宗大王께 諺文頒布의 反對上奏를 하였다는 것은 벌서 너무도 有名한 이야기꺼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그것은 單純한 그 一人의 소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도로혀 그들 그 當時 輿論의 一部分이라 보는 것이 妥當할 듯이 나에게는 생각되나, 其實 一部의 反對를 물리치고 世宗大王이 諺文을 頒布하야 極力 그 使用을 獎勵하시었으나 그 効果는 別로 나타나지 않고 世上은 그냥 漢文第一主義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學人들의 朝鮮文學에 對한 態度는 一言으로 말하면 冷談하였다 할 수밖에 없었거니와 그러나 學人이라 할지라도 거기는 또 理學을 主로 하는 學人과 文學을 主로 하는 學人에 난훌 것이니 그들의 사이에도 제절로 그 態度가 달렀을 것도 不得已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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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6번= {{TagSpage|102-4}}元來 理學者라하면 文學에 對하여는 그다지 理解를 가지지 못한 듯하야 栗谷과 같은 大學者도 그 編著인 「精言妙選」 序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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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7번= {{TagSpage|102-5}}詩雖非學者能事 亦所以吟詠性情 宣暢淸和以滌胸中之滓穢 則亦存省之一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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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8번= {{TagSpage|102-6}}라 하였다. 即 詩라는 것은 學者가 너머 좋아할 바는 아니나, 그것이 孔子의 所謂 思無邪의 作인 것 같으면 그를{{TagPage|103-1}}吟詠하야 智中의 滓穢를 씻어 바리는 일도 있어 有益하나 그렇지 않으면 學問을 妨害할 따름이고 利益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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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0일 (금) 21:5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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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학인의 조선문학에 대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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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李朝學人의 朝鮮文學에 對한 態度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10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조윤제 역자 집필일자 게재연월 1939년 3
시작쪽 100쪽 종료쪽 109쪽 전체쪽 010쪽 연재여부 단독 범주 논문 분야 문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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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100-1여기서 學人이라 하는 것은 物論 文字 그대로 學問하는 사람 即 學者를 意味하는 말이 되겠으나 그러나 從來 우리들의 先輩는 오늘날 우리들이 意味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널리 一般으로 學問을 할 줄 아는 사람 或은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에까지 그 內容을 擴張하야 써왔다. 또 옛날사람들은 學問이라면 곧 漢學을 意味하였고, 오늘날 우리들이 하고 있는 朝鮮文學 따위는 學問의 範疇에 들어가지 않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따라서 내가 여기 學人이라 하는 것은 漢學을 專攻하고 또 널리 學問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意味에 쓰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朝鮮文學에 對하야 어떠한 態度를 取하야 왔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거니와, 먼저 本論에 들어가기 前에 잠깐 朝鮮의 漢文學과 朝鮮文學과의 關係를 簡單히 말하여 두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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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100-2大體로 朝鮮文學이라면 이것이 學問硏究의 對象이 되여 專門的으로 硏究하는 學者도 以前에는 그리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이에 對한 意義라던지 或은 그가 가지고 있는 硏究의 範圍란것도 充分히 論難되지 않은 채 오늘에 남어 있는듯하나, 더욱이 이와 漢文學과의 關係같은 것은 앞으로 朝鮮文學을 體系세우는 데에 있어서 極히 重大한 問題이면서도 實로 그 見解가 確定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여기 말하려는 데는 얼마큼 獨斷이 있다는 것을 미리 諒解하여 주기를 바라거니와, 朝鮮은 오랜▶P101-1 옛적부터 漢文化에 接觸하야 그 文字를 배우고 글을 배워왔었다. 그런데 朝鮮의 固有文字인 諺文은 그보다 훨씬 後代 곧 李朝에 들어와서 비로소 發明되었으니까 이것이 發明되기 前은 勿論이고 發明된 以後라 할지라도 思想感情의 重要한 發表는 主張 漢字漢文에 依하야 되여 왔었다. 그러고도 그에 對하여는 조금도 異國文字視하들않고 도로혀 그를 正確한 글 標準的 發表機關이라고, 確信하여 왔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 朝鮮에 發達한 漢文學에 對한限 決코 對岸火를 보듯이 冷待할 수 없고 도로혀 그 氣分으로 보아 그냥 朝鮮文學이 될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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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101-2그러나 또 立場을 바꾸어서 朝鮮文學으로부터 생각하야 보면 朝鮮文學은 어디까지든지 朝鮮의 文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即 朝鮮語로 表現된 것이 아니면 이를 朝鮮文學이라 認證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朝鮮에서 發達하였다는 漢文學이라 할지라도 當然히 朝鮮文學의 領域에서 除去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또 한便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漢文은 朝鮮에 일즉이 文字없는 時代에 들어와서 朝鮮사람에게 愛用되었을 뿐 아니라 乃終에는 一點의 疑心도 없이 自國文視 되어버려 幾多의 作品을 産出하고 그것이 漢文으로 表記되었건만 純朝鮮文보다도 더 잘 朝鮮人의 思想感情生活을 表現하여 왔음을 생각할 때, 漢文學을 朝鮮文學으로부터 除去하기에는 얼마큼 躊躇하지 않으면 안 될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하야 곧 漢文學即朝鮮文學이라고는 하고 싶지 않다. 朝鮮文學은 朝鮮의 文學인 以上 어디까지든지 自己의 領域을 保持할 必要가 있다고 믿는다. 空然히 自己의 領域을 넓히는 것은 멀지 않어 自己를 그 瓦解의 運命에 던짐과 같아서 文化라든지 文學에 對한 意識이 全然 옛날과 달라진 오늘에 있어서도 漢文學 朝鮮文學 中에 넣는다는 것은 一顧의 價値가 없는 愚論에 지나지 못하겠거니와 그러나 지나간 過去의 文學時代 即 아즉 漢文學을 自國文學과 同樣視하든 時代의 漢文學은 敢히 이것을 朝鮮文學의 一部分이라고 보는 것은 關係가 없을 듯하다. 이를 좀 더 些細히 말하면 朝鮮에 있어서 朝鮮사람 손에 依하야 發達되여 온 漢文學은 朝鮮文學의 詩歌, 小說, 同樣▶P102-1으로 그 一部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即 漢文學即朝鮮文學이라던지 朝鮮文學即漢文學이라는 것이 아니라 漢文學은 朝鮮文學의 一部分이 되여서 큰 朝鮮文學을 構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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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102-2實로 獨斷無謀한 생각일지 모르나 나는 大綱 이러한 立場에서 朝鮮文學을 생각하여 보고자한다. 그러나 이 論文에 있어서 朝鮮文學이라 하는 것은 그러한 廣意味의 朝鮮文學이 아니고 훨신 좁은 意味의 朝鮮文學, 即 朝鮮語로 表記된 純朝鮮文學을 意味하는 것이니까 이 點에 誤解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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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102-3그러면 일로부터 本論에 들어가서 李朝諺文이 制定된 以來 그 文學에 對하야 漢學專攻의 學人들이 如何한 態度로 臨하였는가를 말하고자 하나, 諺文을 制定하던 그 當時의 一般的社會는 支那文化에 相當히 浸潤하야 벌서 새로 制作된 諺文에 對하여는 그다지 期待를 갖지 않었던 것이다. 期待인커냥 그 중에는 도로혀 不必要視하는 者도 있었으니 저 崔萬理가 世宗大王께 諺文頒布의 反對上奏를 하였다는 것은 벌서 너무도 有名한 이야기꺼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그것은 單純한 그 一人의 소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도로혀 그들 그 當時 輿論의 一部分이라 보는 것이 妥當할 듯이 나에게는 생각되나, 其實 一部의 反對를 물리치고 世宗大王이 諺文을 頒布하야 極力 그 使用을 獎勵하시었으나 그 効果는 別로 나타나지 않고 世上은 그냥 漢文第一主義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學人들의 朝鮮文學에 對한 態度는 一言으로 말하면 冷談하였다 할 수밖에 없었거니와 그러나 學人이라 할지라도 거기는 또 理學을 主로 하는 學人과 文學을 主로 하는 學人에 난훌 것이니 그들의 사이에도 제절로 그 態度가 달렀을 것도 不得已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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