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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일본 망명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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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2일 (수) 02:5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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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모뤄(郭沫若)
궈모뤄.png
출처 : 바이두 백과
 
한글명 궈모뤄 한자명 郭沫若 영문명 Guo Moruo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892년 몰년 1978년 출신지 중국 쓰촨 전공 문학,역사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중국 신문학 활동가, 역사학자, 고고학자, 정치가다. 궈모뤄의 일생에 여러 정권을 경험했다. 청나라 말기부터 북양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시기를 걸쳐 중화인문공화국 설립 이후까지 이어졌다. 일본 유학 당시 신시(新詩)와 역사극 등 문예 창작을 시작하였으며 문학 단체 창조사(創造社)를 결성했다. 1927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같은 해에 국민정부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일본 제국으로 도망가서 1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다. 1938년 다시 상하이(上海)로 귀국하고 항일 사상을 선전하는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생애


유년기 및 청소년기

1897년 봄, 궈모뤄는 아버지에게 가숙(家塾)에 들어갈 의향을 전하며 심환장(沈煥章)인물에게 계몽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1] 가숙에서 《시경》, 《고문관지》 등 전통적인 공부는 물론, 신학 지식도 접하게 됐다.[2] 1905년, 쟈딩(嘉定)에 개설된 고등소학당에 들어가 1년 반만에 교과 과정을 마치고 쟈딩중학교로 진학했지만 1919년에 퇴학을 당했다. 다음 해에 청두(成都)의 한 중학교 四川官立高等分設中學堂기관에 편입으로 들어갔다. 수학, 물리 등 신학 지식이 교과 과정을 통해 소개되었지만 교사들도 능통하지 못해서 궈모뤄가 신학에 대해 흥미가 없을뿐더러 학교 생활을 답답해하고 빨리 쓰촨에서 벗어날 생각만 가득했다. 이 이유로 청두의 고등학교에서 한 학기만 머문 뒤 톈진군의학교(天津軍醫學校)에 지원했다. 그때의 궈모뤄는 쓰촨을 떠나는 것이 목적이고 의학을 공부할 마음은 없었다.[3] 그래서 톈진에 도착한 후에, 학교에 진학하지 않았고 첫째 형을 찾으러 베이징에 갔다.[4]


일본 유학 시절

궈모뤄는 첫째 형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1914년 중국을 떠나, 조선을 경유하고 도쿄에 도착했다.[5] 도쿄에서 반 년만에 도쿄제일고등학교(東京第一高等學校)기관의 예과에 합격했다. 1915년에 오카야마제육고등학교(岡山第六高等學校)기관에 합격하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1918년, 고등학교에서 졸업하고 규슈제국대학(九州帝國大學)기관의학부에 입학했다. 톈진군의학교 지원했던 시기와 달리 궈모뤄가 일본에 있는 동안 조국이 강해질 수 있도록 기술을 열심히 배우고 나라에 기여하는 각오를 했다.[6] 그러나 17살에 병으로 인해 청력이 손해되고 임상의학에 큰 어려움을 느꼈다.[7] 1923년에 의학부를 졸업했지만 의사가 되지 않았다.
궈모뤄가 일본 유학하는 동안 문예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다. 주로 신시, 소설, 산문 등 여러가지 문학 장르를 창작하고 외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1921년 위다푸(郁達夫)인물 등 문인 친구와 같이 도쿄에서 혁명문학 단체 창조사를 결성하고 그 뒤로 여러 간행물을 발행했다.[8] 궈모뤄가 실제로 중국에 없었지만 그가 신문화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행했다. 그의 창작물들도 중국 문학의 현대화를 추진했다.


일본 망명 생활

궈모뤄가 1927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뒤 국민정부에서 내린 지명 수배령으로 인해 일본 제국으로 망명했다.[9] 망명하는 동안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을 중국 고대 사회의 연구에 적용함으로써 유물사관을 중국에 처음 도입했다.[10] 그 외에도 갑골문, 금문 등 고문자학, 역사학 연구를 진행했다.[11] 궈모뤄가 그의 역사학 저서들로 학술계에서 인정을 받아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중국 항일 전쟁 및 국공 내전 시기





연구


소설 『목양애화(牧羊哀話)』

『목양애화(牧羊哀話)』원고는 궈모뤄가 발표한 첫 단편소설 작품이다. 『목양애화』는 궈모뤄가 일본 유학을 떠나는 도중에 조선을 경유하고 부산영사관에서 일주일 간 머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당시 중국과 조선 양국 각각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고 궈모뤄는 일본 침략자들의 핍박에 시달렸던 조선인들의 참혹한 모습을 목격하고 이들에 대한 동정과 지지, 조선이 겪었던 역사와 반일(反日)정서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써 내려갔다.[12]


창조사(創造社) 설립

궈모뤄가 일본에서 유학하는 동안 다른 문학 창작활동을 하는 중국 유학생들을 친구로 사귀었다. 1921년 7월에 궈모뤄가 위다푸와 청팡우(成彷吾)인물 등 문인 친구와 함께 도쿄에서 회의를 하며 '창조'라는 명목으로 계간(季刊)을 발행할 계획을 세웠다.[13] 이때 혁명문학 단체 창조사단체가 결성했고 다음 해 5월에 계간인 창조(創造)학술지의 창간호를 출간했다. 1923년 5월에 주간지인 창조주보(創造周報)학술지, 7월에 일간지인 창조일(創造日)학술지도 발행하기 시작했다.[14]


역사 저서『중국고대사회연구(中國古代社會研究)』


『구망일보(救亡日報)』 창간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궈모뤄 Person: 심환장 A hasMaster B
Person: 궈모뤄 Institution: 四川官立高等分設中學堂 A graduates B
Person: 궈모뤄 Institution: 도쿄제일고등학교 A graduates B
Person: 궈모뤄 Institution: 오카야마제육고등학교 A graduates B
Person: 궈모뤄 Institution: 규슈제국대학 A graduates B
Person: 궈모뤄 Group: 창조사 A isMemberOf B
Person: 위다푸 Group: 창조사 A isMemberOf B
Person: 청팡우 Group: 창조사 A isMemberOf B
Journal: 창조 Group: 창조사 A Publisher B
Journal: 창조주보 Group: 창조사 A Publisher B
Journal: 창조일 Group: 창조사 A Publisher B
Person: 궈모뤄 Article: 『목양애화』 A isWriterOf B
Person: 궈모뤄 Book: 중국고대사회연구 A isWriterOf B
Person: 궈모뤄 Institution: 중국문화계구망협회 선전부 A worksAt B
Person: 궈모뤄 Institution: 구망일보 편집위원회 A worksAt B
Institution: 구망일보 편집위원회 Institution: 중국문화계구망협회 선전부 A isAdjunctTo B
Journal: 구망일보 Institution: 구망일보 편집위원회 A Publisher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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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黃淳浩,『郭沫若自敘』, 团结出版社,1996, 24쪽
  2. 黃淳浩,『郭沫若自敘』, 团结出版社,1996, 71쪽
  3. 黃淳浩,『郭沫若自敘』, 团结出版社,1996, 74-75쪽
  4. 黃淳浩,『郭沫若自敘』,团结出版社,1996, 76쪽
  5. 黃淳浩,『郭沫若自敘』, 团结出版社,1996, 76쪽
  6. 黃淳浩,『郭沫若自敘』, 团结出版社,1996, 77쪽
  7. 黃淳浩,『郭沫若自敘』, 团结出版社,1996, 78쪽
  8. 黃淳浩,『郭沫若自敘』, 团结出版社,1996, 139쪽
  9. 崔力明 "郭沫若归国抗战始末" 『南京民间抗日战争博物馆』online, 南京民间抗日战争博物馆, 작성일: 2024년 03월 20일.
  10. 谢保成, 「郭沫若与《中国古代社会研究》」, 『光明日报』, 2007년.11월.29일., 『光明网』online, 光明日报社.
  11. 郭桢 "郭沫若" 『中国政府网』online, 中华人民共和国中央人民政府, 작성일: 2008년 11월 04일.
  12. 쑹원징(宋文靜),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 궈모뤄와 조선의 인연」, 『아주경제』, 2016년.02월.03일., 『아주경제』online, 아주경제.
  13. 黃淳浩,『郭沫若自敘』, 团结出版社,1996, 139쪽
  14. 黃淳浩,『郭沫若自敘』, 团结出版社,1996, 142-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