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항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North Korea Humanities

(→‎개요)
(→‎문단 등단부터 해방까지)
37번째 줄: 37번째 줄:
 
==='''문단 등단부터 해방까지'''===
 
==='''문단 등단부터 해방까지'''===
 
{{글상자|
 
{{글상자|
−
|내용= 그는 ≪단층≫에 작품을 발표하는데, ≪단층≫ 1호(1937년 4월)에 소설 <마권(馬券)> , 2호(1937년 10월)에 <구구(區區)>, 그리고 1938년 3∼4월에는 평론 <개성(個性)·작가(作家)·나>를, 1940년 6월에는 평론 <소설의 창조성>을 각각 발표한다. 1940년 10월에는 처음으로 중앙 문단에 작품을 발표한다. 그 작품이 바로 ≪인문평론(人文評論)≫에 발표한 단편 <부호(符號)>다. 연이어 1941년 2월에는 ≪문장(文章)≫에 단편<롱담(弄談)>을 발표한다.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 8월 김조규, 최명익과 평양예술위원회를 결성하고, 1946년 3월에는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결성에 참여한다. 이후 북조선 교육국 국어편찬위원회와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출판국에서 일을 하게 된다.
+
|내용= 이후 「부호(符號)」(1940)를 『인문평론』에, 「농담」(1941)을 『문장』에 발표하였다.<ref>이명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1973 유항림]",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광복 후에는 재북 작가로 평양에서 계속 활동하였다.<ref>이명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1973 유항림]",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개」(1946)·「와샤」(1948)·「부득이」(1949)·「아들을 만나리」(1949)·「형제」(1949) 등이 이 당시 발표한 단편소설들이다.<ref>이명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1973 유항림]",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2024년 12월 13일 (금) 16:08 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4-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한승현(GNU2024)이 작성했습니다.




유항림(兪恒林)
출처 :
 
한글명 유항림 한자명 兪恒林 영문명 Yu Hang-rim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914년 몰년 1980년 출신지 평양시 진향리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북한의 소설가. 1937년 ≪단층≫의 동인으로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해방 후에 평양에서 문단 활동을 하였다. [1] 대표적인 작품으로 <구구(區區)>, <부호(符號)>, <롱담(弄談)> 등이 있다.[2]


생애


출생 및 『단층』 발간

평양 출생. 평양에서 소학교와 광성중학교를 마친 후 고서점에서 일하면서 많은 책을 접했다.[3] 그의 작품 활동은 1937년 최정익(崔正翊)·구연묵(具然默)·김이석(金利錫)·김조규(金朝奎) 등과 『단층』을 발간하면서 시작되었다.[4] 종합문예지 『단층』에는 당대 지식인들의 불안과 자의식을 반영한 모더니즘 성향의 소설들이 많이 발표되었다.[5] 이곳에 실린 유항림의 단편소설 「마권(馬券)」과 「구구(九九)」 또한 사회적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표출할 수 없었던 당시 인텔리의 고뇌와 자의식이 심리소설의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다.[6]


문단 등단부터 해방까지

이후 「부호(符號)」(1940)를 『인문평론』에, 「농담」(1941)을 『문장』에 발표하였다.[7] 광복 후에는 재북 작가로 평양에서 계속 활동하였다.[8] 「개」(1946)·「와샤」(1948)·「부득이」(1949)·「아들을 만나리」(1949)·「형제」(1949) 등이 이 당시 발표한 단편소설들이다.[9]


해방 이후 작품 활동

해방 이후 이러한 다양한 문학 단체를 결성하고 또 참여하는 것 이외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다. 1946년에 단편소설 <개>, 1948년에 <와사>, 1949에 <부들이>, <아들을 만나리>, <형제>, 1950년에는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1951년에는 <진두평>과 전후 복구 건설기의 고난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북한 사회 구성원의 모습을 잘 형상화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직맹반장>을, 1954년에는 <소년 통신병>을 발표한다. 1958년에는 중편소설 <성실성에 관한 이야기>와 <판잣집 마을에서>를 , 1961년에는 장편소설 ≪대오에 서서≫를 각각 발표한다. 1958년에는 그동안 써온 소설을 모은 ≪유항림 단편집≫이 조선작가동맹 출판사에서 간행된다. 1980년 11월 5일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연구


30년대 후반에 유항림의 소설의 특성

유항림은 30년대 후반의 절망적 상황을 보여주는 작가였을 뿐 아니라, 모더니즘적 성향을 보여주는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소설은 사회적 모더니티에 대응하는 미학적 모더니티의 한 반응을 보여준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시대 현실을 작품에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객관적 사실의 묘사를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개인의 심리에 중심을 두었으며, 무엇보다 근대를 체험하는 주체의 특수성을 제재로 한 작품을 창작하였다. 문체의 측면에서 현저하게 패러독스나 모호성, 그리고 불확실성을 드러낸다는 점도 유사하다.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Person: 홍아무개 A hasSon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Book: ○○○ Person: 홍길동 A creator B



Timeline


  • [▶Time라인스프레드시트URL삽입 Timeline Google Spreadsheet]

▶Timeline임베딩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 이명재, "유항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 이명재, "유항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영구원.
  3. ↑ 이명재, "유항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 이명재, "유항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 이명재, "유항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6. ↑ 이명재, "유항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7. ↑ 이명재, "유항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8. ↑ 이명재, "유항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9. ↑ 이명재, "유항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