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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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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8일 (일) 02:1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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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金基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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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글명 김기석 한자명 金基錫 영문명 Kim Ki-seok 가나명 이칭
성별 생년 1905년 몰년 1974년 출신지 평안북도 용천 전공 철학, 교육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및 학장, 한국교육학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철학개론』, 『현대정신사』, 『윤리전서』 등을 저술한 철학자 · 교육학자.[1]


생애


출생

본관은 광산. 호는 서은(西隱). 평안북도 용천 출생.[2]


업적

1953년 한국교육학회 초대회장,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교육분과위원장, 1959년 도덕재무장운동(MRA) 국제대회 한국대표를 지냈다. 1960~1962년 단국대학교 학장, 1963~1964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고문, 1971~1974년 경남대학교 학장을 역임하였다. 문화훈장 대통령장,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받았다. 저서에 《현대정신사》 《윤리전서》 《남강 이승훈(南岡李昇薰)》이 있으며, 잡지 《이성(理性)》을 19집까지 발행하기도 하였다..[3]


사상

그러나 이 모든 것과 아울러 기억되어야 할 것은 그가 저술 및 강연 등을 통하여 벌인 새로운 윤리 운동인 것이며, 그가 세운 동방 아카데미는 서은의 꿈이요, 이상의 현현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는 남강(南周) 이승훈(李昇薰, 1864~1930)의 수제자로서 남강 사상의 후계자라 하겠다. 남강과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가 강조한 바 신민주의 (新民主義)를 바로 이어받았고, 서은 스스로는 동양 부홍의 논리를 펼쳤으니 신동방주의의 교육 사상가요, 가히 교사의 교사라하겠다. [4]



제목4


제목5





연구


국민 윤리 운동의 선구자

서은은 명저 남강 이승훈(1964)을 남겼거니와 그 스스로는 나아가 새로운 윤리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덕스럽고 밝고 힘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1946년경에 이미 소책자로 윤리강령을 출간하였고, 이는 다시 판을 달리하여 1962년에 제작 · 배포하기도 하였다. 이 윤리 강령이 라는 소책자는 어떻게 보면 서은의 새로운 윤리 운동의 원형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5]


동서 사상의 한국화

서은 사상은 단적으로 말하여 동서 사상의 한국화라 하겠다. 이는 그의 사상적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수긍이 가리라고 본다. 그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페스탈로찌, 그 중에서도 특히 ‘칸트 연구’ 에 주력하였다. 한편, 공자, 석가, 노자, 예수 등 유교, 불교, 도교,기독교 등에 정통하였다.[6] 한마디로 말해서 서은은 동서 사상의 한국화에 힘쓴 ‘동방의 철인(哲A)’ 이시다. 철학 관계서로는 철학개론( 1954)과 신고 철학개론 (1960)이 널리 읽혀졌다.[7]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Person: 홍아무개 A hasSon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Book: ○○○ Person: 홍길동 A creator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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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피디아』online, 두산.
  4. 한기언, 「서은 김기석」, 『사학』 제77호, 대한사립학교장회, 1996년, pp. 116.
  5. 한기언, 「서은 김기석」, 『사학』 제77호, 대한사립학교장회, 1996년, pp. 116-117.
  6. 한기언, 「서은 김기석」, 『사학』 제77호, 대한사립학교장회, 1996년, pp. 118.
  7. 한기언, 「서은 김기석」, 『사학』 제77호, 대한사립학교장회, 1996년, pp.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