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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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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1번= {{TagSpage|107}} 春香傳 異本을 大綱 三期로서 나누어 본다면 京版春香傳에서 完版春香傳까지가 第一期, 完版春香傳에서 獄中花까지가 第二期, 獄中花以後가 第三期가 될 것인데 本書는 李海朝의 編著로 大正 元年 8月 27日에 普及書舘에서 그 初版이 發行되었다. 李海朝라 하면 지금은 作故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記憶에 새로운 바와 같이 李人稙과 아울러 近代 新小說 時代의 大家로서 鬢上雪, 九疑山, 昭陽亭 其他의 作品이 있고, 또 一時는 每日申報社 記者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小說界에 活動할 時代는 世態가 時刻으로 變하여 文學을 즐기고 文學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前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春香傳을 다시 復活시켰고 또 어느 程度까지 일로서 現代文學을 刺戟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本書는 홀로 春香傳의 異本으로서 그 光彩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實로 過渡期에 있는 朝鮮小說로서 잊을 수 없는 {{TagPage|108-1}}作品이라 할 것인데 以後의 春香傳의 異本이라 한다면 거의 그 影響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程度까지 이의 飜案이라 하여도 過言이 아닐 듯하다.
 
|목차1원문1번= {{TagSpage|107}} 春香傳 異本을 大綱 三期로서 나누어 본다면 京版春香傳에서 完版春香傳까지가 第一期, 完版春香傳에서 獄中花까지가 第二期, 獄中花以後가 第三期가 될 것인데 本書는 李海朝의 編著로 大正 元年 8月 27日에 普及書舘에서 그 初版이 發行되었다. 李海朝라 하면 지금은 作故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記憶에 새로운 바와 같이 李人稙과 아울러 近代 新小說 時代의 大家로서 鬢上雪, 九疑山, 昭陽亭 其他의 作品이 있고, 또 一時는 每日申報社 記者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小說界에 活動할 時代는 世態가 時刻으로 變하여 文學을 즐기고 文學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前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春香傳을 다시 復活시켰고 또 어느 程度까지 일로서 現代文學을 刺戟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本書는 홀로 春香傳의 異本으로서 그 光彩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實로 過渡期에 있는 朝鮮小說로서 잊을 수 없는 {{TagPage|108-1}}作品이라 할 것인데 以後의 春香傳의 異本이라 한다면 거의 그 影響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程度까지 이의 飜案이라 하여도 過言이 아닐 듯하다.
|목차1원문2번= {{TagSpage|108-2}}이렇게 말하면 벌서 大綱 짐작이 될 바와 같이 本書는 단단히 從來의 春香傳에 大改竄을 꾀하였고 또 可及的 現代 生活의 感情을 넣어보려 애썼으니 以下 本書의 이 點에 對하여 大綱 들어 보면, 첫째 그 形式에 있어 從來의 連續式올 分切式으로 고치고, 또 純諺文體룔 諺漢文體로 써서 二 代身 漢文字에는 一一히 그 옆에 諺文으로 音譯하였기 때문에 讀書에 많은 便宜를 주었으며, 다음 그 內容에 이르면 于先 劈頭에 무슨 大王 年間에 云云으로 始作하던 古代小說의 典型을 打破하고 劈頭에 <br/>「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苧羅山下 若耶溪에 西施가 鍾出하고, …... 湖南左道南原府는 東으로 智異山, 西으로 赤城江, 山水精神 어리여서 春香이가 삼겨 있다」<br/>이렇게 始作하였다.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할지 모르지만 春香傳으로 보아서는 大膽한 破格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여기에 春香傳은 古代小說에서 다시 新小說로 化粧을 고처하고 世上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春香에 對하여는 完本에서 많은 影響을 받아 그를 閭閻집 處女로 新裝한 것은 勿論이지만 春香母月梅와 成參判과의 關係云云은 훨씬 뒤에 가서 春香母가 李道令에게 說明하는 말로 들리고, 처음에는 春香母의 胎夢에 어떤 仙女 李花 桃花 두 가지를 兩손에 갈라쥐고 하늘로 나와서 桃花를 내어주며 「이꽃을 잘갖구어 李花接을 부쳤으면 오는 行樂 좋으리라. 李花 갖다 傳할 곳이 時刻이 急하기로 忽忽히 떠나노라」 하였다 하여, 春香과 李道令이 同是 16歲의 同甲으로 만난 그 因緣을 先天的으로 여기에 맺어 두고, 李道令이 廣寒樓에 와서 春香을 불렀을 때는 李明善氏本과 같이 春香은 雁隨海{{TagPage|109}}蝶隨花, 蟹隨穴이라는 말을 傅喝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李道令이 그날 밤에 春香 집을 찾았을 때는 完版本에 房子가 뒤쫓아 春香 집으로 가서 春香을 부를 때 春香母가 꿈 이야기를 하듯이 마침 春香母가 春香 房에와서 "너자는 枕上에서 彩雲이 일어나며 靑龍이 너를 물고 하날로 오르기로 龍의 허리를 안고 이리 궁굴 저리 궁굴하다가 깨였다" 云云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럴 때에 李道令이 밖에서 부르니 春香母가 깜짝 놀라 맞아들이었으나 여기도 李道令은 春香을 禮로써 맞이한 듯이 하여 春香母에게 그 딸의 許婚을 請하였고, 春香은 그 母의 許諾을 기다려 李道令에게 一身을 바쳤는데, 사랑 끝에 離別이 되는 데는 李道令이 別로 그 母親에게 春香일을 삷다가 꾸중을 들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後 使道와 그 夫人은 벌써 그 關係를 눈치채고 있었는 듯하여 떠날 때에는 春香을 불러보려고까지 하다가 道令의 長習도 될 것 같고 下人 所視에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春香母女에게 돈과 白米와 匹木과 其他 珮物을 厚히 주어 慰勞하고 또 後日 道令님이 及第하면 將次 데려간다고도 일러주었다 하였다. 또 卞府使는 李府使가 上京 後에 곧 온 것이 아니고, 그 中間에 다른 府使가 李府使의 뒤를 이어 왔다가 1年만에 갈려 간 後에 到任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마 春香으로 하여금 李道令을 思慕하고 守節하는 時間的 餘裕를 주어, 날이 가고 달이 가도 絶對로 그 節介는 變함이 없다는 것을 더 힘있게 말하고자 한 데에서 考案된 듯하나, 事實 從來의 異本은 李府使가 갈려간 後 곧 卞府使가 到任하여왔기 때문에 春香의 節介에는 얼마쯤 損이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卞府使의 우력에도 屈하지 않았다니까 勿論 그를 疑心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 離別한 곧 그다음이니까 하는 핸드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本書와 같이 하여 두고 보면 春香의 節介에는 아무 疑心을 介入할 틈을 두지 않는다. 可히 編者의 稠密한 頭腦를 볼 것이나 이러한 點은 또 이 밖에도 있었다. 이것은 먼저 別春香傳에서도 그랬지만 春{{TagPage|110}}香의 獄中書簡인데 여기는 使令이 나와서 春香에게 서울로 편지나 하여보라 勸하고 春香도 옳게 여겨 편지를 써서 부치는데 亦是 前日 道令님을 뫼시고 다니던 房子를 불러 보냈다 하였다. 그리하여 御史가 途中에서 房子를 만나 그 편지를 받을 것이나, 御史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憤하여 不意에 그놈을 단박에 三門出道를 하여 封庫를 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房子에게 눈치를 보여 버렸다. 그런데 別奪香傳은 이때 別로 房子에게 그런 눈치를 보였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그 房子에게 自己가 南原에 가기 前에는 아무 말을 내지 마라 당부하고 보냈지만 여기서는 房子에게 御史라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그 뒤 收拾을 適當히 하지 않을 수 없어 그 房子를 雲峯으로 보내는데, 房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주고 그것을 갖다 雲峯官家에 드리고 주는 것이 있거든 받아가지고 오라 한다. 그러나 편지 內容은 그 놈이 가거든 잡아 가두어 두라 하였기 때문에 房子는 거기 가서 그만 禁錮를 當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비록 房子의 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雲峯에게는 內通하는 것이 되지 않나 하지만 그는 또 그럴 만한 理由가 있었던 것이다.  即 雲峯은 御史가 卞府使의 生日宴에 乞人의 形色을 하고 들어갔을 때 唯獨히 御史에게 同情하여 주었던 것이나 編者는 이 點을 날카로이 感得하여 雲峯의 態度를 有心하게 하는 同時에 또 房子의 입을 막아 〿〿의 綻紫를 防止한다는 一石二鳥식의 手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그後 御史가 南原 三門에 出道를 하였을 때는 그 房子가 저절로 놓여 御史 앞에 뛰어왔으므로 그 勞를 謝하고 南原官奴廳一課所任을 시켜주었다 한다. 그리고 卞府使는 紫色하여 印兵符를 끌러 御史에게 바치니 御史는 도리어 慰勞하여 하는 말이 男兒의 貪花함은 英雄梨 一般일 뿐 아니라 또 春香의 節行이 빛남도 本官의 德澤이니 介念하지말고 앞으로 善治하여 萬人傘을 받으라 하고 封庫罷職은 하지 않았다 하였다. 여기에 또 編者는 李道令의 度量을 힘껏 넓혀 春香의 無雙한 節行에 〿〿〿의 濶〿한 人格을 配{{TagPage|111-1}}合하려 한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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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2번= {{TagSpage|108-2}}이렇게 말하면 벌서 大綱 짐작이 될 바와 같이 本書는 단단히 從來의 春香傳에 大改竄을 꾀하였고 또 可及的 現代 生活의 感情을 넣어보려 애썼으니 以下 本書의 이 點에 對하여 大綱 들어 보면, 첫째 그 形式에 있어 從來의 連續式올 分切式으로 고치고, 또 純諺文體룔 諺漢文體로 써서 二 代身 漢文字에는 一一히 그 옆에 諺文으로 音譯하였기 때문에 讀書에 많은 便宜를 주었으며, 다음 그 內容에 이르면 于先 劈頭에 무슨 大王 年間에 云云으로 始作하던 古代小說의 典型을 打破하고 劈頭에 <blockquo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苧羅山下 若耶溪에 西施가 鍾出하고, …... 湖南左道南原府는 東으로 智異山, 西으로 赤城江, 山水精神 어리여서 春香이가 삼겨 있다」</blockquote>이렇게 始作하였다.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할지 모르지만 春香傳으로 보아서는 大膽한 破格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여기에 春香傳은 古代小說에서 다시 新小說로 化粧을 고처하고 世上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春香에 對하여는 完本에서 많은 影響을 받아 그를 閭閻집 處女로 新裝한 것은 勿論이지만 春香母月梅와 成參判과의 關係云云은 훨씬 뒤에 가서 春香母가 李道令에게 說明하는 말로 들리고, 처음에는 春香母의 胎夢에 어떤 仙女 李花 桃花 두 가지를 兩손에 갈라쥐고 하늘로 나와서 桃花를 내어주며 「이꽃을 잘갖구어 李花接을 부쳤으면 오는 行樂 좋으리라. 李花 갖다 傳할 곳이 時刻이 急하기로 忽忽히 떠나노라」 하였다 하여, 春香과 李道令이 同是 16歲의 同甲으로 만난 그 因緣을 先天的으로 여기에 맺어 두고, 李道令이 廣寒樓에 와서 春香을 불렀을 때는 李明善氏本과 같이 春香은 雁隨海{{TagPage|109}}蝶隨花, 蟹隨穴이라는 말을 傅喝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李道令이 그날 밤에 春香 집을 찾았을 때는 完版本에 房子가 뒤쫓아 春香 집으로 가서 春香을 부를 때 春香母가 꿈 이야기를 하듯이 마침 春香母가 春香 房에와서 "너자는 枕上에서 彩雲이 일어나며 靑龍이 너를 물고 하날로 오르기로 龍의 허리를 안고 이리 궁굴 저리 궁굴하다가 깨였다" 云云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럴 때에 李道令이 밖에서 부르니 春香母가 깜짝 놀라 맞아들이었으나 여기도 李道令은 春香을 禮로써 맞이한 듯이 하여 春香母에게 그 딸의 許婚을 請하였고, 春香은 그 母의 許諾을 기다려 李道令에게 一身을 바쳤는데, 사랑 끝에 離別이 되는 데는 李道令이 別로 그 母親에게 春香일을 삷다가 꾸중을 들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後 使道와 그 夫人은 벌써 그 關係를 눈치채고 있었는 듯하여 떠날 때에는 春香을 불러보려고까지 하다가 道令의 長習도 될 것 같고 下人 所視에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春香母女에게 돈과 白米와 匹木과 其他 珮物을 厚히 주어 慰勞하고 또 後日 道令님이 及第하면 將次 데려간다고도 일러주었다 하였다. 또 卞府使는 李府使가 上京 後에 곧 온 것이 아니고, 그 中間에 다른 府使가 李府使의 뒤를 이어 왔다가 1年만에 갈려 간 後에 到任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마 春香으로 하여금 李道令을 思慕하고 守節하는 時間的 餘裕를 주어, 날이 가고 달이 가도 絶對로 그 節介는 變함이 없다는 것을 더 힘있게 말하고자 한 데에서 考案된 듯하나, 事實 從來의 異本은 李府使가 갈려간 後 곧 卞府使가 到任하여왔기 때문에 春香의 節介에는 얼마쯤 損이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卞府使의 우력에도 屈하지 않았다니까 勿論 그를 疑心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 離別한 곧 그다음이니까 하는 핸드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本書와 같이 하여 두고 보면 春香의 節介에는 아무 疑心을 介入할 틈을 두지 않는다. 可히 編者의 稠密한 頭腦를 볼 것이나 이러한 點은 또 이 밖에도 있었다. 이것은 먼저 別春香傳에서도 그랬지만 春{{TagPage|110}}香의 獄中書簡인데 여기는 使令이 나와서 春香에게 서울로 편지나 하여보라 勸하고 春香도 옳게 여겨 편지를 써서 부치는데 亦是 前日 道令님을 뫼시고 다니던 房子를 불러 보냈다 하였다. 그리하여 御史가 途中에서 房子를 만나 그 편지를 받을 것이나, 御史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憤하여 不意에 그놈을 단박에 三門出道를 하여 封庫를 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房子에게 눈치를 보여 버렸다. 그런데 別奪香傳은 이때 別로 房子에게 그런 눈치를 보였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그 房子에게 自己가 南原에 가기 前에는 아무 말을 내지 마라 당부하고 보냈지만 여기서는 房子에게 御史라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그 뒤 收拾을 適當히 하지 않을 수 없어 그 房子를 雲峯으로 보내는데, 房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주고 그것을 갖다 雲峯官家에 드리고 주는 것이 있거든 받아가지고 오라 한다. 그러나 편지 內容은 그 놈이 가거든 잡아 가두어 두라 하였기 때문에 房子는 거기 가서 그만 禁錮를 當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비록 房子의 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雲峯에게는 內通하는 것이 되지 않나 하지만 그는 또 그럴 만한 理由가 있었던 것이다.  即 雲峯은 御史가 卞府使의 生日宴에 乞人의 形色을 하고 들어갔을 때 唯獨히 御史에게 同情하여 주었던 것이나 編者는 이 點을 날카로이 感得하여 雲峯의 態度를 有心하게 하는 同時에 또 房子의 입을 막아 〿〿의 綻紫를 防止한다는 一石二鳥식의 手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그後 御史가 南原 三門에 出道를 하였을 때는 그 房子가 저절로 놓여 御史 앞에 뛰어왔으므로 그 勞를 謝하고 南原官奴廳一課所任을 시켜주었다 한다. 그리고 卞府使는 紫色하여 印兵符를 끌러 御史에게 바치니 御史는 도리어 慰勞하여 하는 말이 男兒의 貪花함은 英雄梨 一般일 뿐 아니라 또 春香의 節行이 빛남도 本官의 德澤이니 介念하지말고 앞으로 善治하여 萬人傘을 받으라 하고 封庫罷職은 하지 않았다 하였다. 여기에 또 編者는 李道令의 度量을 힘껏 넓혀 春香의 無雙한 節行에 〿〿〿의 濶〿한 人格을 配{{TagPage|111-1}}合하려 한 것이 보인다.
 
|목차1원문3번= {{TagSpage|111-2}}以上은 主로 本書의 重要한 創案을 들어보았으나 이 外에도 小小한 것을 든다면 李道令이 御史가 되어서 南原으로 오던 途中에 잠깐 졸았는데 非夢似夢間에 "저기 앉은 李相公은 나를 살려 주오" 하는 꿈을 꾸고 春香을 생각하였다던지, 또 御史 出道 後에 春香을 잡아 올리라 하니 南原邑 老少寡婦들이 春香의 白放을 等狀들었다 하는 것 等이 있다. 그러나 本書도 大體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李明善氏 本 完版本에서 많은 影響을 입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첫째 春香을 成參判의 딸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이니, 李道令이 첫날 밤에 春香 母를 찾아서 그 딸과 百年佳約을 請하니 春香母의 말이 "나의 딸 春香이가 常사람이 아니라, 會洞 成參判 令監이 補外로 南凉에 坐定하여 一色 名妓 다 버리고 늙은 나를 守廳케 하시니 모신지 數朔만에 吏曹參判 陞差하여 內職으로 들어갈 때 내게 가자 하셨으나 老父가 계신 이유로 따라가지 못하고 離別한 그 달부터 저것을 밴 줄 짐작하고 緣由로 告目하니 젖줄 뗄 만하게 되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宅 運數 不吉하여 令監이 別世하니 春香을 못 보내고 저만큼 길렀으니, 七歲에 小學 읽혀 修身齊家 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根本이 있는 故로 萬事가 達通이라" 云云한 것과, 御史가 南原 가까이 왔을 때 春香이 獄中에서 非夢似夢間에 李道令을 보니 頭上에는 金冠이요 腰間에는 珮鉞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일 것이고,  李道令이 廣寒樓서 불렀을 때 春香이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는 文句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던지, 御史가 途中에 절에 들렀다 한 것은 李明善氏本의 影響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절 이야기는 李明善氏本과 多少 다름이 있었다. 即 거기는 御史가 절에 들어가니 香丹이가 와서 春香을 爲해 齋를 올리고 있었더라 하였는데, 여기는 그 절 이름을 萬福寺라 하였고 또 그 절인 바는 前에 春香母가 春香을 낳으려고{{TagPage|112-1}}施主하고 精誠드리는 절인데, 御史가 房子를 데리고 그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들이 方今 春香과 李道令을 爲해 佛供 祝願을 하고 있었으므로 御史 感嘆하여 돈 千兩을 내어 施主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全體의 記述上順序로 본다 할지라도 이를 完版本과 比較하여보면 그다지 큰 變動이 없었다. 다만 離別에 있어 李道令이 春香을 그 집으로 찾아 離別을 서러워하고 一旦 官家로 들어갔다가 內行을 뫼시고 가는 길에 五里亭에서 六房下人의 下直을 받고 再次 春香 집으로 가서 離別을 하였으며 거기서 明鏡과 玉指環의 信物을 交換하였다 하였고, 그 다음 離別 後의 春香의 黃陵廟 夢事와 獄窓 櫻桃花落夢事 사이에 春香의 獄中 書簡과 李道令의 御史治行途中에 春香의 편지 받는 것과 房子의 雲峯 禁錮가 있을 따름이다.
 
|목차1원문3번= {{TagSpage|111-2}}以上은 主로 本書의 重要한 創案을 들어보았으나 이 外에도 小小한 것을 든다면 李道令이 御史가 되어서 南原으로 오던 途中에 잠깐 졸았는데 非夢似夢間에 "저기 앉은 李相公은 나를 살려 주오" 하는 꿈을 꾸고 春香을 생각하였다던지, 또 御史 出道 後에 春香을 잡아 올리라 하니 南原邑 老少寡婦들이 春香의 白放을 等狀들었다 하는 것 等이 있다. 그러나 本書도 大體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李明善氏 本 完版本에서 많은 影響을 입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첫째 春香을 成參判의 딸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이니, 李道令이 첫날 밤에 春香 母를 찾아서 그 딸과 百年佳約을 請하니 春香母의 말이 "나의 딸 春香이가 常사람이 아니라, 會洞 成參判 令監이 補外로 南凉에 坐定하여 一色 名妓 다 버리고 늙은 나를 守廳케 하시니 모신지 數朔만에 吏曹參判 陞差하여 內職으로 들어갈 때 내게 가자 하셨으나 老父가 계신 이유로 따라가지 못하고 離別한 그 달부터 저것을 밴 줄 짐작하고 緣由로 告目하니 젖줄 뗄 만하게 되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宅 運數 不吉하여 令監이 別世하니 春香을 못 보내고 저만큼 길렀으니, 七歲에 小學 읽혀 修身齊家 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根本이 있는 故로 萬事가 達通이라" 云云한 것과, 御史가 南原 가까이 왔을 때 春香이 獄中에서 非夢似夢間에 李道令을 보니 頭上에는 金冠이요 腰間에는 珮鉞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일 것이고,  李道令이 廣寒樓서 불렀을 때 春香이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는 文句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던지, 御史가 途中에 절에 들렀다 한 것은 李明善氏本의 影響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절 이야기는 李明善氏本과 多少 다름이 있었다. 即 거기는 御史가 절에 들어가니 香丹이가 와서 春香을 爲해 齋를 올리고 있었더라 하였는데, 여기는 그 절 이름을 萬福寺라 하였고 또 그 절인 바는 前에 春香母가 春香을 낳으려고{{TagPage|112-1}}施主하고 精誠드리는 절인데, 御史가 房子를 데리고 그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들이 方今 春香과 李道令을 爲해 佛供 祝願을 하고 있었으므로 御史 感嘆하여 돈 千兩을 내어 施主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全體의 記述上順序로 본다 할지라도 이를 完版本과 比較하여보면 그다지 큰 變動이 없었다. 다만 離別에 있어 李道令이 春香을 그 집으로 찾아 離別을 서러워하고 一旦 官家로 들어갔다가 內行을 뫼시고 가는 길에 五里亭에서 六房下人의 下直을 받고 再次 春香 집으로 가서 離別을 하였으며 거기서 明鏡과 玉指環의 信物을 交換하였다 하였고, 그 다음 離別 後의 春香의 黃陵廟 夢事와 獄窓 櫻桃花落夢事 사이에 春香의 獄中 書簡과 李道令의 御史治行途中에 春香의 편지 받는 것과 房子의 雲峯 禁錮가 있을 따름이다.
 
|목차1원문4번= {{TagSpage|112-2}}그러나 本書의 플롯 上 前記 兩本의 影響은 받았다 할지라도 또 兩本에서 取捨함이 있었음도 不得已하였으니, 그 取한 바는 벌써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다시 버린 點을 들어 보면 첫째 여기는 完版本의 陵郞廳이라던지 會計나리라던지 其他 서울 急走며 烏鵲橋 下의 漂母公論이 나오지 않고, 또 李明善氏本의 農歌以外의 御史探問이라던가, 御史가 草殯에 울었다던가, 春香이 獄中에서 黃陵廟꿈과 獄窓櫻桃花落꿈 以外에도 다른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것도 亦是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編者는 自由로 完版本과 李明善氏本을 가지고 取捨選擇하여 거기에 다시 編者 自身의 創案을 넣어 編纂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목차1원문4번= {{TagSpage|112-2}}그러나 本書의 플롯 上 前記 兩本의 影響은 받았다 할지라도 또 兩本에서 取捨함이 있었음도 不得已하였으니, 그 取한 바는 벌써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다시 버린 點을 들어 보면 첫째 여기는 完版本의 陵郞廳이라던지 會計나리라던지 其他 서울 急走며 烏鵲橋 下의 漂母公論이 나오지 않고, 또 李明善氏本의 農歌以外의 御史探問이라던가, 御史가 草殯에 울었다던가, 春香이 獄中에서 黃陵廟꿈과 獄窓櫻桃花落꿈 以外에도 다른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것도 亦是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編者는 自由로 完版本과 李明善氏本을 가지고 取捨選擇하여 거기에 다시 編者 自身의 創案을 넣어 編纂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목차1원문5번= {{TagSpage|112-3}}이로써 本書의 槪括的 紹介는 大綱 마쳤다고 생각하나 다시 그 內容을 좀 더 細密히 檢討하여 보면 從來의 春香傳에서 面目을 一新하였다 할만큼 그 描寫法을 變更하였다. 即 從來의 異本은 책에 따라 多少 輕重은 있었지만 一般的으로 보아서 그 描寫가 너무 誇張的이고 또 卑俗한 데가 많던 것을 本書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弱點을 救할{{TagPage|113}}랴 애썼다. 이를테면 春香의 房치례라 하더라도<br/>"湯人君 犧牲되어 剪瓜斷髮身嬰白茅六事로 비를 빌어 大雨方數千里에 衰龍袍를 적셔 입고 識宮으로 가는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南壁을 살펴보니 商山四時 네 老人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一點二期 땅땅 둘 때 어떤 老人은 鶴氅衣에 綸巾쓰고 白碁를 손에 쥐고 요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葛巾道服 떨쳐 입고 黑碁를 손에 쥐고 河圖洛書法을 찾아 이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靑藜杖 半만 집고 바둑 훈수를 하느라고 어깨 너머로 넘어 보며 이만하고 앉은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어떠한 老人은 巾을 벗어 松枝에 걸고 竹冠을 제쳐쓰고 五絃琴 거문고를 膝上에 올려놓고 世無知音羽衣曲을 시르렁 타고 놀제 白鶴이 춤을 춘다. 北壁을 바라보니 千年蟠桃瑤池 봄 西王母의 靑鳥로다"<br/>이러한 程度에 그쳤고, 春香母의 酒盤床에 이르면 <br/> "羅州漆盤에 沈菜 한보, 藥脯肉粘鰒쌈 한 接匕, 實果 곁들여 놓았겠다." <br/> 라 하여 完版本이나 古本 春香傳과는 雲泥의 差가 있었다. 또 사랑歌에서도 "近來 사랑歌에 情字 노래 風字 노래가 있으나 너무 亂하여 風俗에 關係도 되고 春香烈節에 辱이 되겠으나 너무 無味하니까 大綱 大綱 하는 것이었다"라 앞에서 미리 말하여 두고 風紀 上 問題될 것은 애초에 넣지 않아 極히 簡單히 措處하여 버렸으며, 房子의 甚한 弄談이라던지 春香母의 辱說 같은 것도 쓰지 않아 될 수 있는 대로 事件을 自然스레 展開하여 卑俗한 點 없게 하고, 또 春香이나 그 母의 身分에 對하여는 끝까지 擁護하여 絶對로 賤한 빛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態度는 甚至於 李府使와 李道令에까지 미쳐 그 人格을 될 수 있는 限 圓滿無缺히 하고자 하였으니 李府使가 春香母女에게 金{{TagPage|114-1}}品을 주어 慰勞하고 간 것이라던지 御史가 卞府使를 封庫罷職하지 않고 도리어 前途를 激勵한 것은 다 그러한 意圖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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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5번= {{TagSpage|112-3}}이로써 本書의 槪括的 紹介는 大綱 마쳤다고 생각하나 다시 그 內容을 좀 더 細密히 檢討하여 보면 從來의 春香傳에서 面目을 一新하였다 할만큼 그 描寫法을 變更하였다. 即 從來의 異本은 책에 따라 多少 輕重은 있었지만 一般的으로 보아서 그 描寫가 너무 誇張的이고 또 卑俗한 데가 많던 것을 本書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弱點을 救할{{TagPage|113}}랴 애썼다. 이를테면 春香의 房치례라 하더라도<blockquote no="XX">湯人君 犧牲되어 剪瓜斷髮身嬰白茅六事로 비를 빌어 大雨方數千里에 衰龍袍를 적셔 입고 識宮으로 가는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南壁을 살펴보니 商山四時 네 老人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一點二期 땅땅 둘 때 어떤 老人은 鶴氅衣에 綸巾쓰고 白碁를 손에 쥐고 요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葛巾道服 떨쳐 입고 黑碁를 손에 쥐고 河圖洛書法을 찾아 이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靑藜杖 半만 집고 바둑 훈수를 하느라고 어깨 너머로 넘어 보며 이만하고 앉은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어떠한 老人은 巾을 벗어 松枝에 걸고 竹冠을 제쳐쓰고 五絃琴 거문고를 膝上에 올려놓고 世無知音羽衣曲을 시르렁 타고 놀제 白鶴이 춤을 춘다. 北壁을 바라보니 千年蟠桃瑤池 봄 西王母의 靑鳥로다</blockquote>이러한 程度에 그쳤고, 春香母의 酒盤床에 이르면<blockquote no="XX">羅州漆盤에 沈菜 한보, 藥脯肉粘鰒쌈 한 接匕, 實果 곁들여 놓았겠다.</blockquote> 라 하여 完版本이나 古本 春香傳과는 雲泥의 差가 있었다. 또 사랑歌에서도 "近來 사랑歌에 情字 노래 風字 노래가 있으나 너무 亂하여 風俗에 關係도 되고 春香烈節에 辱이 되겠으나 너무 無味하니까 大綱 大綱 하는 것이었다"라 앞에서 미리 말하여 두고 風紀 上 問題될 것은 애초에 넣지 않아 極히 簡單히 措處하여 버렸으며, 房子의 甚한 弄談이라던지 春香母의 辱說 같은 것도 쓰지 않아 될 수 있는 대로 事件을 自然스레 展開하여 卑俗한 點 없게 하고, 또 春香이나 그 母의 身分에 對하여는 끝까지 擁護하여 絶對로 賤한 빛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態度는 甚至於 李府使와 李道令에까지 미쳐 그 人格을 될 수 있는 限 圓滿無缺히 하고자 하였으니 李府使가 春香母女에게 金{{TagPage|114-1}}品을 주어 慰勞하고 간 것이라던지 御史가 卞府使를 封庫罷職하지 않고 도리어 前途를 激勵한 것은 다 그러한 意圖에서 나온 것이다.
|목차1원문6번= {{TagSpage|114-2}}그리고 本書는 勿論 古代小說을 飜案하여 그 時代의 生活과 感情을 保有하고자 한 것이지만 그러나 編者는 單純히 古典을 古典으로만 傳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이로써 現代小說化하고자 하는, 即 다시 말하면 古代 春香傳이 아니고 現代 春香傳을 쓰고자 하는 것이 그 本意인 듯하여 가끔 그 表現에 있어 現代的 感情을 쓴 것이 있었다. 이런 것이 많진 않지만 ᅳ例를 들어 보면 農歌의 一節에 <br/>社會에 領袖되어 法律 範圍 違越말고 一動一靜 知彼知己 因其勢而道之하여 改良風俗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br/> 國內 靑年 몰아다가 敎育界에 집어넣고 各種學問 敎授하여 人才養成 한 然後에 學界主人 뫼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br/> 經國濟民 研究하여 天下利益 얻었다가 金庫에 滿積하고 商業低仰 任意대로 經濟大家 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br/>云々하는 것은 可히 글로 볼 것인 줄 믿으나 여기에 獄中花는 古典에서 다시 現代小說로 街路에 闊步하여 나왔던 것이다. 또 文章에 있어서도 비록 四々調의 韻文體는 많이 썼지만, 完板本과 같이 歌曲化하고자 아니하고 도리어 될 수만 있으면 戱曲的인 데에서 다시 純粹한 小說體로 돌아오고자 하였다. 따라서 事實에 없는 말을 空然히 다듬어 實情{{TagPage|115-1}}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적다. 이를테면 먼저 完版本에서 引用하였던 場面, 即 春香의 鞦韆하는 데를 比較 삼아 하나 引用하여 보면<br/>春香의 舉動 보아라 鞦韆을 하라 하고 長々綵細 그네줄을 두 손에 갈러쥐고 선 듯 올라 발 구르니 한번 굴러 뒤가 솟고 두 번 굴러 앞이 높아 鳶飛戾天솔개 뜨듯 爛熳桃花 높은 가지 소소러처 툭々 차니 송이송이 맺힌 꽃 휘 느러저 떨어져서 風無聲而落花로다 오락가락 노닐 적에 李道令이 精神없이 한참 서서 望見터니 뜻밖에 몸이 웃슬 웃슬 소톰이 쪽 끼치니 精神黯黯 一身을 벌々 뜰미 <br/> 『이에 房子야야아아』<br/>이와 같다. 이것은 勿論 一例에 지나지 못하지만 全體를 通하여 보면 相當히 歌曲을 爲한 歌曲的 部門을 減少하고 그 代身 寫實的 方面에 힘을 傾注하였다. 이것도 本書가 現代的 小說로 걸어 나오자 하는 慾望일 것이요 또 거기에 成功하였다고 우리는 認證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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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6번= {{TagSpage|114-2}}그리고 本書는 勿論 古代小說을 飜案하여 그 時代의 生活과 感情을 保有하고자 한 것이지만 그러나 編者는 單純히 古典을 古典으로만 傳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이로써 現代小說化하고자 하는, 即 다시 말하면 古代 春香傳이 아니고 現代 春香傳을 쓰고자 하는 것이 그 本意인 듯하여 가끔 그 表現에 있어 現代的 感情을 쓴 것이 있었다. 이런 것이 많진 않지만 ᅳ例를 들어 보면 農歌의 一節에<blockquote no="XX">社會에 領袖되어 法律 範圍 違越말고 一動一靜 知彼知己 因其勢而道之하여 改良風俗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blockquote><blockquote no="XX">國內 靑年 몰아다가 敎育界에 집어넣고 各種學問 敎授하여 人才養成 한 然後에 學界主人 뫼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blockquote> <blockquote no="XX">經國濟民 研究하여 天下利益 얻었다가 金庫에 滿積하고 商業低仰 任意대로 經濟大家 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blockquote>云々하는 것은 可히 글로 볼 것인 줄 믿으나 여기에 獄中花는 古典에서 다시 現代小說로 街路에 闊步하여 나왔던 것이다. 또 文章에 있어서도 비록 四々調의 韻文體는 많이 썼지만, 完板本과 같이 歌曲化하고자 아니하고 도리어 될 수만 있으면 戱曲的인 데에서 다시 純粹한 小說體로 돌아오고자 하였다. 따라서 事實에 없는 말을 空然히 다듬어 實情{{TagPage|115-1}}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적다. 이를테면 먼저 完版本에서 引用하였던 場面, 即 春香의 鞦韆하는 데를 比較 삼아 하나 引用하여 보면<blockquote no="XX">春香의 舉動 보아라 鞦韆을 하라 하고 長々綵細 그네줄을 두 손에 갈러쥐고 선 듯 올라 발 구르니 한번 굴러 뒤가 솟고 두 번 굴러 앞이 높아 鳶飛戾天솔개 뜨듯 爛熳桃花 높은 가지 소소러처 툭々 차니 송이송이 맺힌 꽃 휘 느러저 떨어져서 風無聲而落花로다 오락가락 노닐 적에 李道令이 精神없이 한참 서서 望見터니 뜻밖에 몸이 웃슬 웃슬 소톰이 쪽 끼치니 精神黯黯 一身을 벌々 뜰미 <br/> 『이에 房子야야아아』</blockquote>>이와 같다. 이것은 勿論 一例에 지나지 못하지만 全體를 通하여 보면 相當히 歌曲을 爲한 歌曲的 部門을 減少하고 그 代身 寫實的 方面에 힘을 傾注하였다. 이것도 本書가 現代的 小說로 걸어 나오자 하는 慾望일 것이요 또 거기에 成功하였다고 우리는 認證하지 않을 수 없다.
|목차1원문7번= {{TagSpage|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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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7번= {{TagSpage|115-2}}要컨대 本書는 以上 屢々 說來하여 온 바와 같이 形式 內容 어느 方面으로나 從來의 春香傳에 大幅的 改纂을 하여 編者는 이것을 現代 春香傳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春香傳 文學으로 보아 一大 劃期的 事實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여기에 春香傳은 現代人에게 再認識되어 本書는 一般 小說讀書層에 그야말로 熱狂的 歡迎을 받았다. 여기 따라 大正 14年頃 以後로는 또 本書의 異本이 京城 各 書肆에서 쏟아져 나왔으니, 먼저 그 書名과 發行所만을 적어보면 <blockquote no="XX">萬古烈女春香傳,  一色絶代佳人成春香傳, 諺文春香傳 (永昌書館, 韓與書林), (德興書林)<br/> 諺文獄中絕代佳人,  一名春香傳, 絶代佳人, 鮮漠文春香傳((永昌書館, 韓與書林)<br/>{{TagPage|116-1}}古代小說諺文春香傳,  一名春香傳 (灌東書館)<br/> 懷中春香傳,  一名春香傳, 小春香歌 (廣韓書林)<br/> 萬古烈女特別無雙春香傳,  一名鮮漢文春香傳, 萬古烈女特別無雙新春香傳 (永昌書館)
|목차1원문8번= {{TagSpage|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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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이러한 것이 있다. 이 外도 또 萬古烈女日鮮文春香傳(朝鮮圖書株式會社)이라던지 Edward T. Urquart The Fragrance of Spring(時光社)은 다 本書를 底本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前記한 本書의 異本에 對하여 簡單한 說明을 加하고 本項을 마치겠다.
|목차1원문9번= {{TagSpage|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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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8번= {{TagSpage|116-2}}1. 萬古烈女春香傳<br/>本書는 編輯 兼 發行者에 姜義永의 名義로 大正14年 4月 20日에 永昌書館과 韓興書林에서 卷頭에 揷畵를 넣어 發行하였다. 內容은 獄中花를 그대로 改版하여 낸 것이나 다만 獄中花의 諫漢文體를 다시 純諺文體로 고치고 또 分節式을 運續式의 옛날에 還元시켰다. 그럼으로 同版을 가지고 大正 14年 11月 15日에는 德興書林에서 金東縉의 名義로 一名 諺文春香傳이라는 이름을 걸어서 發行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잠긴 春香傳의 書名파 그 著者名義에 對하여 說明하여둘 必要가 있으니 첫째 書店에 對하여는 獄中花 하나가 上記한 바와 같이 別々 이름을 쓰고 나오나, 한 책에 있어서도 또한 表紙에 題名한 書名파 안장의 書名이 닯으며, 안장에도 卷頭에 붙인 蕃名과 또 卷尾에 붙인 書名이 닯은 일이 種種 있다. 이를테면 이 萬古熟女春香傳으로 두고 보더라도 永昌書館本은 안장 卷頭에는 萬古烈女春香傳이라 하여 놓고 卷尾에는 諺文春香傳終이라 하였으며, 또 表紙에는 絶代{{TagPage|117-1}}佳人成春香傳이라 써 있고, 興書林本은 表紙에 萬古烈女春香傳과 諺文春香傳의 두 이름이 쓰여있다. 그리고 著作者名義는 發行所에 따라 各其 닯아 發行書店主가 곧 그 著作者名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書店과 著作者 名義가 닯다 하여 內容이 닯은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書店은 廣告的이요 著作者 名義는 出版의 便宜上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차1원문10번= {{TagSpage|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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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9번= {{TagSpage|117-2}}2. 獄中絶代佳人<br/>이것도 表紙에는 絶代佳人 或은 鮮漢文春香傳이라는 書名을 가지고 있으나 亦是 永昌書館과 韓興書林에서 大正 14年 10月 10日에 姜義永의 名義로 券頭에 揷畵를 넣어 發行한 것인데, 本書는 純諺文體를 썼으나 漢文 文句에는 그 옆에 漢字를 註記하였다. 內容은 勿論 獄中花 그대로인데 다만 劈頭에 獄中花의<ci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cite> 云云을  <blockquote no="XX">「世上萬物 점지할제 絶代佳人 없을소냐, 絶代佳人 생겨날제 烈女忠臣 없을소냐 烈女忠臣 생겨날제 江山精氣 타고 난다. 湖南左道 南原府는……」</blockquote>으로 고쳤을 뿐이다.
|목차1원문11번= {{TagSpage|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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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10번= {{TagSpage|117-3}}3. 古代小說諺文春香傳<br/> 本書도 表紙에는 春香傳이라 하였는데 大正 14年 10月 30日에 滙東書舘에서 高裕相의 名義로 發行하였다. 古代小說이라 하고 또 題目을 諺文春香傳이라 이른 만큼 純諺文으로 古代小說 體裁의 그대로를 썼다.
|목차1원문12번= {{TagSpage|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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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11번= {{TagSpage|117-4}}4. 懷中春香傳<br/> {{TagPage|118-1}}表紙에는 春香傳 또 小春香歌라 하였으니 卷尾에는 正直하게 獄中花終이라 하였다. 大正 15年 2月 27日에 廣韓書林에서 金天熙의 名義로 發行하였는데 體裁는 純諺文體의 懷中用本에 되어 있다.
|목차1원문13번= {{TagSpage|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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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12번= {{TagSpage|118-2}}5. 萬古烈女特別無雙春香傳<br/>本書는 一名 鮮漢文春香傳 或은 萬古烈女特別無雙新春香傳이라 하야 昭和 10年 12月 25日에 姜義永의 名義로 永昌書館, 韓興書林에서 發行하였다. 卷頭에는 새로운 揷畵 數枚를 붙이고 本文 劈頭의 <ci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cite>云云을  <blockquote no="XX">「芳草花柳 좋은 때라 晋處士의 五柳門은 초록장을 드리운 듯 이리로 펄펄 저리로 펄펄 꾀꼬롱 꾀꼬롱하는 꾀꼬리는 제 벗을 불러내고 이편으로 너훌 너훌 저편으로 너훌 너홀, 쌍쌍이 춤을 추는 범나비는 興을 계워 노닐더라」</blockquote>로 고쳐서 <cite no="XX">「全羅左道南原府는……」</cite>에 붙였을 뿐이다.
 
 
  
 
|목차1해독문1번= 춘향전 이본을 대강 3기로서 나누어 본다면 경판춘향전에서 완판춘향전까지가 제1기, 완판춘향전에서 옥중화까지가 제2기, 옥중화이후가 제3기가 될 것인데 본서는 이해조의 편저로 대정 원년 8월 27일에 보급서관에서 그 초판이 발행되었다. 이해조라 하면 지금은 작고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새로운 바와 같이 이인직과 아울러 근대 신소설 시대의 대가로서 빈상설, 구의산, 소양정 기타의 작품이 있고, 또 일시는 매일신보사 기자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소설계에 활동할 시대는 세태가 시각으로 변하여 문학을 즐기고 문학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전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춘향전을 다시 복활시켰고 또 어느 정도까지 일로서 현대문학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홀로 춘향전의 이본으로서 그 광채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실로 과도기에 있는 조선소설로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 할 것인데 이후의 춘향전의 이본이라 한다면 거의 그 영향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정도까지 이의 번안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목차1해독문1번= 춘향전 이본을 대강 3기로서 나누어 본다면 경판춘향전에서 완판춘향전까지가 제1기, 완판춘향전에서 옥중화까지가 제2기, 옥중화이후가 제3기가 될 것인데 본서는 이해조의 편저로 대정 원년 8월 27일에 보급서관에서 그 초판이 발행되었다. 이해조라 하면 지금은 작고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새로운 바와 같이 이인직과 아울러 근대 신소설 시대의 대가로서 빈상설, 구의산, 소양정 기타의 작품이 있고, 또 일시는 매일신보사 기자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소설계에 활동할 시대는 세태가 시각으로 변하여 문학을 즐기고 문학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전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춘향전을 다시 복활시켰고 또 어느 정도까지 일로서 현대문학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홀로 춘향전의 이본으로서 그 광채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실로 과도기에 있는 조선소설로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 할 것인데 이후의 춘향전의 이본이라 한다면 거의 그 영향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정도까지 이의 번안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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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5번= 이로써 본서의 개괄적 소개는 대강 마쳤다고 생각하나 다시 그 내용을 좀 더 세밀히 검토하여 보면 종래의 춘향전에서 면목을 일신하였다 할만큼 그 묘사법을 변경하였다. 즉 종래의 이본은 책에 따라 다소 경중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보아서 그 묘사가 너무 과장적이고 또 비속한 데가 많던 것을 본서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약점을 구하려 애썼다. 이를테면 춘향의 방치례라 하더라도<blockquote no="XX">湯人君 犧牲되어 剪瓜斷髮身嬰白茅六事로 비를 빌어 大雨方數千里에 衰龍袍를 적셔 입고 識宮으로 가는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南壁을 살펴보니 商山四時 네 老人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一點二期 땅땅 둘 때 어떤 老人은 鶴氅衣에 綸巾쓰고 白碁를 손에 쥐고 요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葛巾道服 떨쳐 입고 黑碁를 손에 쥐고 河圖洛書法을 찾아 이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靑藜杖 半만 집고 바둑 훈수를 하느라고 어깨 너머로 넘어 보며 이만하고 앉은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어떠한 老人은 巾을 벗어 松枝에 걸고 竹冠을 제쳐쓰고 五絃琴 거문고를 膝上에 올려놓고 世無知音羽衣曲을 시르렁 타고 놀제 白鶴이 춤을 춘다. 北壁을 바라보니 千年蟠桃瑤池 봄 西王母의 靑鳥로다</blockquote>이러한 정도에 그쳤고, 춘향 모의 주반상에 이르면<blockquote no="XX">羅州漆盤에 沈菜 한보, 藥脯肉粘鰒쌈 한 接匕, 實果 곁들여 놓았겠다.</blockquote>라 하여 완판본이나 고본 춘향전과는 운니의 차가 있었다. 또 사랑歌에서도 "近來 사랑歌에 情字 노래 風字 노래가 있으나 너무 亂하여 風俗에 關係도 되고 春香烈節에 辱이 되겠으나 너무 無味하니까 大綱 大綱 하는 것이었다"라 앞에서 미리 말하여 두고 풍기 상 문제될 것은 애초에 넣지 않아 극히 간단히 조처하여 버렸으며, 방자의 심한 농담이라던지 춘향 모의 욕설 같은 것도 쓰지 않아 될 수 있는 대로 사건을 자연스레 전개하여 비속한 점 없게 하고, 또 춘향이나 그 모의 신분에 대하여는 끝까지 옹호하여 절대로 천한 빛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심지어 이부사와 이도령에까지 미쳐 그 인격을 될 수 있는 한 원만무결히 하고자 하였으니 이부사가 춘향 모녀에게 금품을 주어 위로하고 간 것이라던지 어사가 변부사를 봉고파직하지 않고 도리어 전도를 격려한 것은 다 그러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목차1해독문5번= 이로써 본서의 개괄적 소개는 대강 마쳤다고 생각하나 다시 그 내용을 좀 더 세밀히 검토하여 보면 종래의 춘향전에서 면목을 일신하였다 할만큼 그 묘사법을 변경하였다. 즉 종래의 이본은 책에 따라 다소 경중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보아서 그 묘사가 너무 과장적이고 또 비속한 데가 많던 것을 본서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약점을 구하려 애썼다. 이를테면 춘향의 방치례라 하더라도<blockquote no="XX">湯人君 犧牲되어 剪瓜斷髮身嬰白茅六事로 비를 빌어 大雨方數千里에 衰龍袍를 적셔 입고 識宮으로 가는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南壁을 살펴보니 商山四時 네 老人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一點二期 땅땅 둘 때 어떤 老人은 鶴氅衣에 綸巾쓰고 白碁를 손에 쥐고 요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葛巾道服 떨쳐 입고 黑碁를 손에 쥐고 河圖洛書法을 찾아 이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靑藜杖 半만 집고 바둑 훈수를 하느라고 어깨 너머로 넘어 보며 이만하고 앉은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어떠한 老人은 巾을 벗어 松枝에 걸고 竹冠을 제쳐쓰고 五絃琴 거문고를 膝上에 올려놓고 世無知音羽衣曲을 시르렁 타고 놀제 白鶴이 춤을 춘다. 北壁을 바라보니 千年蟠桃瑤池 봄 西王母의 靑鳥로다</blockquote>이러한 정도에 그쳤고, 춘향 모의 주반상에 이르면<blockquote no="XX">羅州漆盤에 沈菜 한보, 藥脯肉粘鰒쌈 한 接匕, 實果 곁들여 놓았겠다.</blockquote>라 하여 완판본이나 고본 춘향전과는 운니의 차가 있었다. 또 사랑歌에서도 "近來 사랑歌에 情字 노래 風字 노래가 있으나 너무 亂하여 風俗에 關係도 되고 春香烈節에 辱이 되겠으나 너무 無味하니까 大綱 大綱 하는 것이었다"라 앞에서 미리 말하여 두고 풍기 상 문제될 것은 애초에 넣지 않아 극히 간단히 조처하여 버렸으며, 방자의 심한 농담이라던지 춘향 모의 욕설 같은 것도 쓰지 않아 될 수 있는 대로 사건을 자연스레 전개하여 비속한 점 없게 하고, 또 춘향이나 그 모의 신분에 대하여는 끝까지 옹호하여 절대로 천한 빛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심지어 이부사와 이도령에까지 미쳐 그 인격을 될 수 있는 한 원만무결히 하고자 하였으니 이부사가 춘향 모녀에게 금품을 주어 위로하고 간 것이라던지 어사가 변부사를 봉고파직하지 않고 도리어 전도를 격려한 것은 다 그러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목차1해독문6번= 그리고 본서는 물론 고대소설을 번안하여 그 시대의 생활과 감정을 보유하고자 한 것이지만 그러나 편자는 단순히 고전을 고전으로만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이로써 현대소설화하고자 하는, 즉 다시 말하면 고대 춘향전이 아니고 현대 춘향전을 쓰고자 하는 것이 그 본의인 듯하여 가끔 그 표현에 있어 현대적 감정을 쓴 것이 있었다. 이런 것이 많진 않지만 일례를 들어 보면 농가의 일절에<blockquote no="XX">社會에 領袖되어 法律 範圍 違越말고 一動一靜 知彼知己 因其勢而道之하여 改良風俗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blockquote> <blockquote no="XX">國內 靑年 몰아다가 敎育界에 집어넣고 各種學問 敎授하여 人才養成 한 然後에 學界主人 뫼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blockquote> <blockquote no="XX">經國濟民 研究하여 天下利益 얻었다가 金庫에 滿積하고 商業低仰 任意대로 經濟大家 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blockquote>운운하는 것은 가히 글로 볼 것인 줄 믿으나 여기에 옥중화는 고전에서 다시 현대소설로 가로에 활보하여 나왔던 것이다. 또 문장에 있어서도 비록 사사조의 운문체는 많이 썼지만, 완판본과 같이 가곡화하고자 아니하고 도리어 될 수만 있으면 희곡적인 데에서 다시 순수한 소설체로 돌아오고자 하였다. 따라서 사실에 없는 말을 공연히 다듬어 실정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적다. 이를테면 먼저 완판본에서 인용하였던 장면, 즉 춘향의 추천하는 데를 비교 삼아 하나 인용하여 보면<blockquote no="XX">春香의 舉動 보아라 鞦韆을 하라 하고 長々綵細 그네줄을 두 손에 갈러쥐고 선 듯 올라 발 구르니 한번 굴러 뒤가 솟고 두 번 굴러 앞이 높아 鳶飛戾天솔개 뜨듯 爛熳桃花 높은 가지 소소러처 툭々 차니 송이송이 맺힌 꽃 휘 느러저 떨어져서 風無聲而落花로다 오락가락 노닐 적에 李道令이 精神없이 한참 서서 望見터니 뜻밖에 몸이 웃슬 웃슬 소톰이 쪽 끼치니 精神黯黯 一身을 벌々 뜰미 <br/> 『이에 房子야야아아』</blockquote>이와 같다. 이것은 물론 일례에 지나지 못하지만 전체를 통하여 보면 상당히 가곡을 위한 가곡적 부문을 감소하고 그 대신 사실적 방면에 힘을 경주하였다. 이것도 본서가 현대적 소설로 걸어 나오자 하는 욕망일 것이요 또 거기에 성공하였다고 우리는 인증하지 않을 수 없다.
 
|목차1해독문6번= 그리고 본서는 물론 고대소설을 번안하여 그 시대의 생활과 감정을 보유하고자 한 것이지만 그러나 편자는 단순히 고전을 고전으로만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이로써 현대소설화하고자 하는, 즉 다시 말하면 고대 춘향전이 아니고 현대 춘향전을 쓰고자 하는 것이 그 본의인 듯하여 가끔 그 표현에 있어 현대적 감정을 쓴 것이 있었다. 이런 것이 많진 않지만 일례를 들어 보면 농가의 일절에<blockquote no="XX">社會에 領袖되어 法律 範圍 違越말고 一動一靜 知彼知己 因其勢而道之하여 改良風俗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blockquote> <blockquote no="XX">國內 靑年 몰아다가 敎育界에 집어넣고 各種學問 敎授하여 人才養成 한 然後에 學界主人 뫼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blockquote> <blockquote no="XX">經國濟民 研究하여 天下利益 얻었다가 金庫에 滿積하고 商業低仰 任意대로 經濟大家 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blockquote>운운하는 것은 가히 글로 볼 것인 줄 믿으나 여기에 옥중화는 고전에서 다시 현대소설로 가로에 활보하여 나왔던 것이다. 또 문장에 있어서도 비록 사사조의 운문체는 많이 썼지만, 완판본과 같이 가곡화하고자 아니하고 도리어 될 수만 있으면 희곡적인 데에서 다시 순수한 소설체로 돌아오고자 하였다. 따라서 사실에 없는 말을 공연히 다듬어 실정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적다. 이를테면 먼저 완판본에서 인용하였던 장면, 즉 춘향의 추천하는 데를 비교 삼아 하나 인용하여 보면<blockquote no="XX">春香의 舉動 보아라 鞦韆을 하라 하고 長々綵細 그네줄을 두 손에 갈러쥐고 선 듯 올라 발 구르니 한번 굴러 뒤가 솟고 두 번 굴러 앞이 높아 鳶飛戾天솔개 뜨듯 爛熳桃花 높은 가지 소소러처 툭々 차니 송이송이 맺힌 꽃 휘 느러저 떨어져서 風無聲而落花로다 오락가락 노닐 적에 李道令이 精神없이 한참 서서 望見터니 뜻밖에 몸이 웃슬 웃슬 소톰이 쪽 끼치니 精神黯黯 一身을 벌々 뜰미 <br/> 『이에 房子야야아아』</blockquote>이와 같다. 이것은 물론 일례에 지나지 못하지만 전체를 통하여 보면 상당히 가곡을 위한 가곡적 부문을 감소하고 그 대신 사실적 방면에 힘을 경주하였다. 이것도 본서가 현대적 소설로 걸어 나오자 하는 욕망일 것이요 또 거기에 성공하였다고 우리는 인증하지 않을 수 없다.
|목차1해독문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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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7번= 요컨대 본서는 이상 누누이 설래하여 온 바와 같이 형식 내용 어느 방면으로나 종래의 춘향전에 대폭적 개찬을 하여 편자는 이것을 현대 춘향전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춘향전 문학으로 보아 일대 획기적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여기에 춘향전은 현대인에게 재인식되어 본서는 일반 소설독서층에 그야말로 열광적 환영을 받았다. 여기 따라 대정 14년경 이후로는 또 본서의 이본이 경성 각 서사에서 쏟아져 나왔으니, 먼저 그 서명과 발행소만을 적어보면 이러한 것이 있다. 이 외도 또 만고열녀일선문춘향전(조선도서주식회사) 이라던지 Edward T. Urquart The Fragrance of Spring(시광사)은 다 본서를 저본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전기한 본서의 이본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가하고 본항을 마치겠다.
|목차1해독문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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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8번= 1. 만고열녀춘향전<br/>본서는 편집 겸 발행자에 강의영의 명의로 대정14年 4월 20일에 영창서관과 한흥서림에서 권두에 삽화를 넣어 발행하였다. 내용은 옥중화를 그대로 개판하여 낸 것이나 다만 옥중화의 간한문체를 다시 순언문체로 고치고 또 분절식을 운속식의 옛날에 환원시켰다. 그럼으로 동판을 가지고 대정 14년 11월 15일에는 덕흥서림에서 김동진의 명의로 일명 언문춘향전이라는 이름을 걸어서 발행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잠긴 춘향전의 서명파 그 저자명의에 대하여 설명하여둘 필요가 있으니 첫째 서점에 대하여는 옥중화 하나가 상기한 바와 같이 별별 이름을 쓰고 나오나, 한 책에 있어서도 또한 표지에 제명한 서명파 안장의 서명이 닯으며(다르며), 안장에도 권두에 붙인 번명과 또 권미에 붙인 서명이 다른 일이 종종 있다. 이를테면 이 만고숙녀춘향전으로 두고 보더라도 영창서관본은 안장 권두에는 만고열녀춘향전이라 하여 놓고 권미에는 언문춘향전종이라 하였으며, 또 표지에는 절대 가인성춘향전이라 써 있고, 흥서림본은 표지에 만고열녀춘향전과 언문춘향전의 두 이름이 쓰여있다. 그리고 저작자명의는 발행소에 따라 각기 달라 발행서점주가 곧 그 저작자명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서점과 저작자 명의가 다르다 하여 내용이 다르다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서점은 광고적이요 저작자 명의는 출판의 편의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차1해독문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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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9번= 2. 옥중절대가인<br/>이것도 표지에는 절대가인 혹은 선한문춘향전이라는 서명을 가지고 있으나 역시 영창서관과 한흥서림에서 대정 14년 10월 10일에 강의영의 명의로 권두에 삽화를 넣어 발행한 것인데, 본서는 순언문체를 썼으나 한문 문구에는 그 옆에 한자를 주기하였다. 내용은 물론 옥중화 그대로인데 다만 벽두에 옥중화의 <ci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cite> 운운을  <blockquote no="XX">"世上萬物 점지할제 絶代佳人 없을소냐, 絶代佳人 생겨날제 烈女忠臣 없을소냐 烈女忠臣 생겨날제 江山精氣 타고 난다. 湖南左道 南原府는……"</blockquote>으로 고쳤을 뿐이다.
|목차1해독문1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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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10번= 3. 고대소설언문춘향전<br/>본서도 표지에는 춘향전이라 하였는데 대정 14년 10월 30일에 회동서관에서 고유상의 명의로 발행하였다. 고대소설이라 하고 또 제목을 언문춘향전이라 이른 만큼 순언문으로 고대소설 체재의 그대로를 썼다.
|목차1해독문1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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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11번= 4. 회중춘향전<br/>표지에는 춘향전 또 소춘향가라 하였으니 권미에는 정직하게 옥중화종이라 하였다. 대정 15년 2월 27일에 광한서림에서 김천희의 명의로 발행하였는데 체재는 순언문체의 회중용본에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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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12번= 5. 만고열녀특별무쌍춘향전 <br/>본서는 일명 선한문춘향전 혹은 만고렬녀특별무쌍신춘향전이라 하야 소화 10년 12월 25일에 강의영의 명의로 영창서관, 한흥서림에서 발행하였다. 권두에는 새로운 삽화 수매를 붙이고 본문 벽두의 <cite no="XX">"절대가인 삼겨날제 강산정기 타서 난다……"</cite> 운운을  <blockquote no="XX">"방초화류 좋은 때라 진처사의 오류문은 초록장을 드리운 듯 이리로 펄펄 저리로 펄펄 꾀꼬롱 꾀꼬롱하는 꾀꼬리는 제 벗을 불러내고 이편으로 너훌 너훌 저편으로 너훌 너홀, 쌍쌍이 춤을 추는 범나비는 흥을 계워 노닐더라"</blockquote>로 고쳐서 <cite no="XX">"전라좌도남원부는……"</cite>에 붙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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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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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번= {{TagSpage|118-3}}本書는 朴健會의 編著로 大正 4年 12月 25日 唯一書館에서 發行되었다. 처음에 揷畵 數枚를 붙이고, 全體를 14回에 나누었는데 그 目次를 들면 左와 같다. <blockquote no="XX">第一回, 廣寒樓上賞春景, 綠楊叢裏送秋千 <br/> 第二回, 召不應佳人寄語, 暫未忘才子狂讀 <br/> 第三回, 道令夜訪佳人邸, 老娘許婚有情郎<br/>{{TagPage|119}}第四回, 兩人洞房唱詩詞, 府使遷任督治行 <br/> 第五回, 五里亭兩入惜別, 南原府新官到任 第六回, 到任先檢妓生案, 貪淫欲奪烈女志 <br/> 第七回, 玉節不屈被酷刑, 二妃顯靈說前程 <br/> 第八回, 高舉壯元謁聖科, 特除湖南繡衣使 <br/> 第九回, 得情札山寺看祈禱, 夢不祥獄中請許官 <br/> 第十回, 歛探民情聽邊歌, 爲女築壇禱蒼天 <br/> 第十一回, 御史探看老娘心, 春娘泣訴獄中苦 <br/> 第十二回, 府使設宴東軒上, 暗行出道南原府 <br/> 第十三回, 惜春香衆寡等訴, 聞喜報老娘舞踏 <br/> 第十四回, 御史陳情龍榻下, 聖心大悅封忠烈</blockquote>일로 보아서도 大綱 짐작될 바와 같이 거의 獄中花 그대로이다. 內容을 閱讀하여 볼지라도 獄中花를 中間 中間이 增한 데에 지나지 못하는데 다음에 그 몇 句節을 獄中花와 對校하는 것으로 本書의 紹介를 마치련다. 첫째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春香을 바라보는 場面이다. 이것을 獄中花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TagPage|120}}『오─ 저것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仔細히 보니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로소이다』 <br/> 道令님이 春香이란 말을 듣고 웃음을 勸馬聲 웃음을 웃더니 <br/>『이애 丁寧 春香이야 顚不刺的을 見了萬千이로대 底般可喜娘은 罕曾見이라, 我─ 眼花擦亂口難言이라 魂靈兒飛去半天이로다. 눈에 水銀을 닌듯이 뵈이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오란다고 즉시 불러오너라.』<br/> 房子 엿자오대 <br/>『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府使 郡守 縣監 官長들이 無數히 보랴호되…..』</blockquote>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ruby|鬼神|●●}}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ruby|이애|●●}} 갑갑하다 {{ruby|어서|●●}}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ruby|시침이를|●●●●}} {{ruby|뚝|●}} {{ruby|띄이고|●●●●}}<br/> 『오 저것 {{ruby|말삼이오|●●●●}}, {{ruby|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자세 보니{{ruby|까|●}} 本邑{{ruby|退妨|●●}} 月梅 딸 春香이{{ruby|로구면|●●●}}. {{ruby|그런대요|●●●●}} {{ruby|道令님은|●●●●}} {{ruby|장가도|●●●}} {{ruby|아니드신|●●●●}} {{ruby|兩班이|●●●●}} {{ruby|그런대만|●●●●}} {{ruby|눈이|●●}} {{ruby|먼첨|●●}} {{ruby|가시오|●●●}}』 <br/> 道令님이 {{ruby|이 말을|●●●}} {{ruby|듯더니|●●●}} {{ruby|房子의|●●●}} {{ruby|嘲弄하는|●●●●}} {{ruby|말|●}} {{ruby|대적하기도|●●●●●}} {{ruby|잊어버리고|●●●●●}} {{ruby|다시|●●}} {{ruby|건너편|●●●}} {{ruby|그네|●●}} {{ruby|줄을|●●}} {{ruby|向하여|●●●}} {{ruby|보니|●●}} {{ruby|마음은|●●●}} {{ruby|烏鵲橋를|●●●●}} {{ruby|건너가고|●●●●}} {{ruby|몸은|●●}} {{ruby|精神없이|●●●●}} {{ruby|廣寒樓|●●●}} {{ruby|夕陽 빛에|●●●●}} {{ruby|앉었다가|●●●●}} {{ruby|기쁜 생각이|●●●●●}} {{ruby|사무쳐서|●●●●}} {{ruby|勒馬聲|●●●}} {{ruby|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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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數히 보려하되……』</blockquote> 이렇게 하였다. 또 다음 다른 데에서 더 하나 뽑아 春香이가 卞府使에게 매를 맞고 獄에 갇히는 場面이다. 이것을 눈中花에서는  <blockquote no="XX">春香이 精神차려 <br/> 『어머니 설어말고 氣體 安保하옵시면 罪 없는 春香 몸이 설마한들 죽소리까. 水火劒槍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 터이니 걱정 많으시고 집으로 가옵소서 萬一에 안 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한 말씀이나 지금으로 죽을 테니 나가소서 울음소리에 氣가 막혀 頃刻에 죽겠구려』 <br/> 春香 母 할일 없어 獄中에 딸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 업더지며 잡바질제 그때 왔던 여러 夫人 春香 母를 이끌어서 집으로 나간 後에 春香이 설이 울며 <br/> 『불쌍하신 우리 母親 아비 없이 나를 길러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내어 좋은 일은 못 보시고 獄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父母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더러운 년의 팔자로다. 香丹이 게 있느냐』 <br/> 『예─』</blockquote>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blockquote no="XX">{{TagPage|122-1}} {{ruby|이윽고|●●●}} 精神을 차려 {{ruby|獄門틈으로|●●●●●}} {{ruby|母親을|●●●}} {{ruby|부른다|●●●}}. <br/> 『어머니 설워마시고 氣體 {{ruby|安寧|●●}}하옵{{ruby|소서|●●}}, 罪 없는 春香{{ruby|이가|●●}} 설마한들 죽으리까 水火{{ruby|刀|●}}槍 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ruby|아나서|●●●}} {{ruby|母親奉養할|●●●●●}} 터이니 걱정 {{ruby|넘어|●●}}말으시고 집으{{ruby|로|●}} {{ruby|돌|●}}아가옵소서. 萬一에 안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莫大{{ruby|할지라도|●●●●}}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이 {{ruby|억색|●●}}하여 氣가 마켜 죽게구려』 <br/> 春香 母 {{ruby|이말|●●}} {{ruby|듯고|●●}} 할일 없이 獄中에다 {{ruby|春香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ruby|悲悲切切斷腸懷가|●●●●●●●●}} {{ruby|淨凉路上魂顚倒라|●●●●●●●●}} {{ruby|업더질듯잡바질듯|●●●●●●●●}} {{ruby|집으로|●●●}} {{ruby|向하니라.|●●●●}} {{ruby|春香이|●●●}} {{ruby|母親의|●●●}} {{ruby|돌아가는|●●●●}} {{ruby|모양을|●●●}} {{ruby|보고|●●}} {{ruby|한숨을|●●●}} {{ruby|후유─|●●●}} {{ruby|쉬더니|●●●}} {{ruby|길이|●●}} {{ruby|嘆息을|●●●}} {{ruby|한다.|●●●}} <br/> 『{{ruby|天地間에|●●●●}} {{ruby|이내|●●}} {{ruby|몸이|●●}} {{ruby|父母恩惠|●●●●}} {{ruby|重하도다,|●●●●}} {{ruby|黃河같이|●●●●}} {{ruby|깊으신|●●●}} {{ruby|德澤,|●●●}} {{ruby|山갈이|●●●}} {{ruby|높고|●●}} {{ruby|높다.|●●●}} {{ruby|슬푸도다|●●●●}} 우리 母親, {{ruby|父親|●●}}없이 날 {{ruby|기를제|●●●}}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ruby|놓고|●●}} 좋은 일은 못보시고 눈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ruby|母親|●●}} 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ruby|樹欲靜而風不止하고|●●●●●●●●●●}} {{ruby|子欲養而親不來라,|●●●●●●●●}} {{ruby|半白|●●}} {{ruby|넘은|●●}} {{ruby|늙은|●●}} {{ruby|母親|●●}} {{ruby|누가|●●}} {{ruby|있어|●●}} {{ruby|泰養하나|●●●●}} {{ruby|내일은|●●●}} {{ruby|내가|●●}} {{ruby|알지|●●}} {{ruby|끝날|●●}} {{ruby|날이|●●}} {{ruby|망연하니|●●●●}} {{ruby|가련한|●●●}} {{ruby|母親身勢|●●●●}} {{ruby|어찌하면|●●●●}} {{ruby|좋을는지|●●●●}}. 香丹아 게 있나냐』 </blockquote>부르니 <blockquote no="XX">『예─ {{ruby|여기|●●}} {{ruby|있읍니다|●●●●}}』</blockquote>이렇게 하였다. 即 右에 圈点을 찍은 部分이 改訂 或 增補한 곳이거니와 全體를 通하여 大概 이런 程度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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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번= {{TagSpage|122-2}}그런데 한 가지 여기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春香이가 卞使道에게 불려 들어가서 官長에 對한 拒逆으로 처음에 軍奴房에 내처 笞杖 數刀를 맞는다. 그럴 때에 戶長이 使道에게 春香이가 아직 나이 어려서 官家의 所重한 것{{TagPage|123-1}}을 모르고 그러한 것이니 한번 容恕하면 自己가 잘 타일러 近侍케 하겠다 하니 使道가 도리어 좋아하여 그리하라 하고, 戶長이 春香에게로 나와 무엇을 수군 수군하니 春香이가 다시 使道가 있는 上房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使道가 春香이가 많은 마음을 돌렸는가 하여 無限히 좋아하면서 또 春香에게 節을 굽히고 守廳을 舉行하라 달랜다. 그러나 春香은 亦是 拒絶하였음으로 다시 내려서 매를 쳤다 하였다. 이것은 本書가 앞에서와 같이 獄中花를 增修하는 態度에서 나온 結果이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春香이가 마치 한번은 節을 굽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 듯이 誤解되어 編者는 春香의 節介를 더욱 빛내여 주자 하는 意圖에서 나왔겠지만, 結果는 도리어 그 反對가 됨을 免하지 못하였다. 本書는 即 이러한 点이 가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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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번= 본서는 박건회의 편저로 대정 4년 12월 25일 유일서관에서 발행되었다. 처음에 삽화 수매를 붙이고, 전체를 14회에 나누었는데 그 목차를 들면 아래와 같다.<blockquote no="XX">第一回, 廣寒樓上賞春景, 綠楊叢裏送秋千 <br/> 第二回, 召不應佳人寄語, 暫未忘才子狂讀 <br/> 第三回, 道令夜訪佳人邸, 老娘許婚有情郎<br/> 第四回, 兩人洞房唱詩詞, 府使遷任督治行 <br/> 第五回, 五里亭兩入惜別, 南原府新官到任 第六回, 到任先檢妓生案, 貪淫欲奪烈女志 <br/> 第七回, 玉節不屈被酷刑, 二妃顯靈說前程 <br/> 第八回, 高舉壯元謁聖科, 特除湖南繡衣使 <br/> 第九回, 得情札山寺看祈禱, 夢不祥獄中請許官 <br/> 第十回, 歛探民情聽邊歌, 爲女築壇禱蒼天 <br/> 第十一回, 御史探看老娘心, 春娘泣訴獄中苦 <br/> 第十二回, 府使設宴東軒上, 暗行出道南原府 <br/> 第十三回, 惜春香衆寡等訴, 聞喜報老娘舞踏 <br/> 第十四回, 御史陳情龍榻下, 聖心大悅封忠烈</blockquote> 일로 보아서도 대강 짐작될 바와 같이 거의 옥중화 그대로이다. 내용을 열독하여 볼지라도 옥중화를 중간 중간이 더한 데에 지나지 못하는데 다음에 그 몇 구절을 옥중화와 대교하는 것으로 본서의 소개를 마치련다. 첫째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것을 옥중화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오─ 저것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仔細히 보니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로소이다" <br/> 道令님이 春香이란 말을 듣고 웃음을 勸馬聲 웃음을 웃더니 <br/> "이애 丁寧 春香이야 顚不刺的을 見了萬千이로대 底般可喜娘은 罕曾見이라, 我─ 眼花擦亂口難言이라 魂靈兒飛去半天이로다. 눈에 水銀을 닌듯이 뵈이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오란다고 즉시 불러오너라." <br/> 房子 엿자오대 <br/>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府使 郡守 縣監 官長들이 無數히 보랴호되……"</blockquote>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ruby|鬼神|●●}}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ruby|이애|●●}} 갑갑하다 {{ruby|어서|●●}}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ruby|시침이를|●●●●}} {{ruby|뚝|●}} {{ruby|띄이고|●●●●}}<br/> "오 저것 {{ruby|말삼이오|●●●●}}, {{ruby|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자세 보니{{ruby|까|●}} 本邑{{ruby|退妨|●●}} 月梅 딸 春香이{{ruby|로구면|●●●}}. {{ruby|그런대요|●●●●}} {{ruby|道令님은|●●●●}} {{ruby|장가도|●●●}} {{ruby|아니드신|●●●●}} {{ruby|兩班이|●●●●}} {{ruby|그런대만|●●●●}} {{ruby|눈이|●●}} {{ruby|먼첨|●●}} {{ruby|가시오|●●●}}" <br/> 道令님이 {{ruby|이 말을|●●●}} {{ruby|듯더니|●●●}} {{ruby|房子의|●●●}} {{ruby|嘲弄하는|●●●●}} {{ruby|말|●}} {{ruby|대적하기도|●●●●●}} {{ruby|잊어버리고|●●●●●}} {{ruby|다시|●●}} {{ruby|건너편|●●●}} {{ruby|그네|●●}} {{ruby|줄을|●●}} {{ruby|向하여|●●●}} {{ruby|보니|●●}} {{ruby|마음은|●●●}} {{ruby|烏鵲橋를|●●●●}} {{ruby|건너가고|●●●●}} {{ruby|몸은|●●}} {{ruby|精神없이|●●●●}} {{ruby|廣寒樓|●●●}} {{ruby|夕陽 빛에|●●●●}} {{ruby|앉었다가|●●●●}} {{ruby|기쁜 생각이|●●●●●}} {{ruby|사무쳐서|●●●●}} {{ruby|勒馬聲|●●●}} {{ruby|웃음으로|●●●●}} {{ruby|웃으며|●●●●}} {{ruby|房子를|●●●}} {{ruby|조른|●●}}다. <br/> "이애, 丁寧 春香이냐, {{ruby|어여뿐|●●●}} {{ruby|人物을|●●●}} {{ruby|千萬이나|●●●●}} {{ruby|보았으되|●●●●}} {{ruby|저렇게|●●●}} {{ruby|어여쁜|●●●}} {{ruby|것은|●●}} {{ruby|처음|●●}} {{ruby|보는구나|●●●●}} {{ruby|내|●}} {{ruby|눈이|●●}} {{ruby|眩煌하야|●●●●}} {{ruby|말할|●●●}} {{ruby|수도|●●}} {{ruby|없으니|●●●●}} {{ruby|魂이|●●}} {{ruby|九泉에|●●●}} {{ruby|날라간|●●●}} {{ruby|듯하구나|●●●●}} {{ruby|잔말|●●●}} {{ruby|말고|●●}} {{ruby|내가|●●}}어서 오란다고 곳 좀 불러 오너라"{{ruby|春香이|●●●}} {{ruby|元來|●●}} {{ruby|妓生|●●}} {{ruby|같으면|●●●●}} {{ruby|冊室|●●}} {{ruby|喻附가|●●●}} {{ruby|계신|●●}} {{ruby|바에야|●●●}} {{ruby|입|●}} {{ruby|떠러지기가|●●●●●●}} {{ruby|무섭게|●●●●}} {{ruby|곳|●}} {{ruby|待令을|●●●}} {{ruby|시키마는|●●●●}} {{ruby|房子도|●●●}} {{ruby|그러치|●●●}} {{ruby|않을|●●}} {{ruby|줄|●}} {{ruby|아는|●●}} {{ruby|터이라|●●●}} {{ruby|道令님의|●●●●}} {{ruby|吩咐를|●●●}} {{ruby|듣고|●●●}} {{ruby|매우|●●}} {{ruby|難處하여|●●●●}} {{ruby|春香의|●●●}} {{ruby|來歷을|●●●}} {{ruby|大網|●●}} {{ruby|아뢴다|●●●}}. <br/>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使 府使 郡守 縣監 여러 官長들이 無數히 보려하되……"</blockquote>이렇게 하였다. 또 다음 다른 데에서 더 하나 뽑아 춘향이가 변부사에게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장면이다. 이것을 눈중화에서는 <blockquote no="XX">{{TagPage|122-1}} {{ruby|이윽고|●●●}} 精神을 차려 {{ruby|獄門틈으로|●●●●●}} {{ruby|母親을|●●●}} {{ruby|부른다|●●●}}. <br/> "어머니 설워마시고 氣體 {{ruby|安寧|●●}}하옵{{ruby|소서|●●}}, 罪 없는 春香{{ruby|이가|●●}} 설마한들 죽으리까 水火{{ruby|刀|●}}槍 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ruby|아나서|●●●}} {{ruby|母親奉養할|●●●●●}} 터이니 걱정 {{ruby|넘어|●●}}말으시고 집으{{ruby|로|●}} {{ruby|돌|●}}아가옵소서. 萬一에 안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莫大{{ruby|할지라도|●●●●}}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이 {{ruby|억색|●●}}하여 氣가 마켜 죽게구려" <br/> 春香 母 {{ruby|이말|●●}} {{ruby|듯고|●●}} 할일 없이 獄中에다 {{ruby|春香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ruby|悲悲切切斷腸懷가|●●●●●●●●}} {{ruby|淨凉路上魂顚倒라|●●●●●●●●}} {{ruby|업더질듯잡바질듯|●●●●●●●●}} {{ruby|집으로|●●●}} {{ruby|向하니라.|●●●●}} {{ruby|春香이|●●●}} {{ruby|母親의|●●●}} {{ruby|돌아가는|●●●●}} {{ruby|모양을|●●●}} {{ruby|보고|●●}} {{ruby|한숨을|●●●}} {{ruby|후유─|●●●}} {{ruby|쉬더니|●●●}} {{ruby|길이|●●}} {{ruby|嘆息을|●●●}} {{ruby|한다.|●●●}} <br/> "{{ruby|天地間에|●●●●}} {{ruby|이내|●●}} {{ruby|몸이|●●}} {{ruby|父母恩惠|●●●●}} {{ruby|重하도다,|●●●●}} {{ruby|黃河같이|●●●●}} {{ruby|깊으신|●●●}} {{ruby|德澤,|●●●}} {{ruby|山갈이|●●●}} {{ruby|높고|●●}} {{ruby|높다.|●●●}} {{ruby|슬푸도다|●●●●}} 우리 母親, {{ruby|父親|●●}}없이 날 {{ruby|기를제|●●●}}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ruby|놓고|●●}} 좋은 일은 못보시고 눈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ruby|母親|●●}} 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ruby|樹欲靜而風不止하고|●●●●●●●●●●}} {{ruby|子欲養而親不來라,|●●●●●●●●}} {{ruby|半白|●●}} {{ruby|넘은|●●}} {{ruby|늙은|●●}} {{ruby|母親|●●}} {{ruby|누가|●●}} {{ruby|있어|●●}} {{ruby|泰養하나|●●●●}} {{ruby|내일은|●●●}} {{ruby|내가|●●}} {{ruby|알지|●●}} {{ruby|끝날|●●}} {{ruby|날이|●●}} {{ruby|망연하니|●●●●}} {{ruby|가련한|●●●}} {{ruby|母親身勢|●●●●}} {{ruby|어찌하면|●●●●}} {{ruby|좋을는지|●●●●}}. 香丹아 게 있나냐" </blockquote>부르니 <blockquote no="XX">"예─ {{ruby|여기|●●}} {{ruby|있읍니다|●●●●}}"</blockquote>이렇게 하였다. 즉 위에 권점을 찍은 부분이 개정 혹 증보한 곳이거니와 전체를 통하여 대개 이런 정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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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번= 그런데 한 가지 여기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춘향이가 변사도에게 불려 들어가서 관장에 대한 거역으로 처음에 군노방에 내쳐 태장 수도를 맞는다. 그럴 때에 호장이 사도에게 춘향이가 아직 나이 어려서 관가의 소중(所重)한 것을 모르고 그러한 것이니 한번 용서하면 자기가 잘 타일러 근시(近侍)케 하겠다 하니 사도가 도리어 좋아하여 그리하라 하고, 호장이 춘향에게로 나와 무엇을 수군 수군하니 춘향이가 다시 사도가 있는 상방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사도가 춘향이가 많은 마음을 돌렸는가 하여 무한히 좋아하면서 또 춘향에게 절을 굽히고 수청을 거행하라 달랜다. 그러나 춘향은 역시 거절하였음으로 다시 내려서 매를 쳤다 하였다. 이것은 본서가 앞에서와 같이 옥중화를 증수하는 태도에서 나온 결과이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춘향이가 마치 한번은 절을 굽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듯이 오해되어 편자는 춘향의 절개를 더욱 빛내주자 하는 의도에서 나왔겠지만, 결과는 도리어 그 반대가 됨을 면하지 못하였다. 본서는 즉 이러한 점이 가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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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1일 (목) 18:5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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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이본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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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春香傳異本考 (二)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12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조윤제 역자 @ 집필일자 @ 게재연월 1940년 9월
시작쪽 107쪽 종료쪽 159쪽 전체쪽 53쪽 연재여부 연재 범주 논문 분야 @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목차







본문


본문1: 7. 獄中花


춘향전 이본을 대강 3기로서 나누어 본다면 경판춘향전에서 완판춘향전까지가 제1기, 완판춘향전에서 옥중화까지가 제2기, 옥중화이후가 제3기가 될 것인데 본서는 이해조의 편저로 대정 원년 8월 27일에 보급서관에서 그 초판이 발행되었다. 이해조라 하면 지금은 작고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새로운 바와 같이 이인직과 아울러 근대 신소설 시대의 대가로서 빈상설, 구의산, 소양정 기타의 작품이 있고, 또 일시는 매일신보사 기자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소설계에 활동할 시대는 세태가 시각으로 변하여 문학을 즐기고 문학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전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춘향전을 다시 복활시켰고 또 어느 정도까지 일로서 현대문학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홀로 춘향전의 이본으로서 그 광채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실로 과도기에 있는 조선소설로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 할 것인데 이후의 춘향전의 이본이라 한다면 거의 그 영향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정도까지 이의 번안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쪽수▶P107 春香傳 異本을 大綱 三期로서 나누어 본다면 京版春香傳에서 完版春香傳까지가 第一期, 完版春香傳에서 獄中花까지가 第二期, 獄中花以後가 第三期가 될 것인데 本書는 李海朝의 編著로 大正 元年 8月 27日에 普及書舘에서 그 初版이 發行되었다. 李海朝라 하면 지금은 作故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記憶에 새로운 바와 같이 李人稙과 아울러 近代 新小說 時代의 大家로서 鬢上雪, 九疑山, 昭陽亭 其他의 作品이 있고, 또 一時는 每日申報社 記者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小說界에 活動할 時代는 世態가 時刻으로 變하여 文學을 즐기고 文學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前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春香傳을 다시 復活시켰고 또 어느 程度까지 일로서 現代文學을 刺戟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本書는 홀로 春香傳의 異本으로서 그 光彩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實로 過渡期에 있는 朝鮮小說로서 잊을 수 없는 ▶P108-1作品이라 할 것인데 以後의 春香傳의 異本이라 한다면 거의 그 影響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程度까지 이의 飜案이라 하여도 過言이 아닐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벌서 대강 짐작이 될 바와 같이 본서는 단단히 종래의 춘향전에 대개찬을 꾀하였고 또 가급적 현대 생활의 감정을 넣어보려 애썼으니 이하 본서의 이 점에 대하여 대강 들어 보면, 첫째 그 형식에 있어 종래의 연속식올 분절식으로 고치고, 또 순언문체룔 언한문체로 써서 이 대신 한문자에는 일일이 그 옆에 언문으로 음역하였기 때문에 독서에 많은 편의를 주었으며, 다음 그 내용에 이르면 우선 벽두에 무슨 대왕 연간에 운운으로 시작하던 고대소설의 전형을 타파하고 벽두에

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苧羅山下 若耶溪에 西施가 鍾出하고, …... 湖南左道南原府는 東으로 智異山, 西으로 赤城江, 山水精神 어리여서 春香이가 삼겨 있다

이렇게 시작하였다.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할지 모르지만 춘향전으로 보아서는 대담한 파격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여기에 춘향전은 고대 소설에서 다시 신소설로 화장을 고처하고 세상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춘향에 대하여는 완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그를 여염집 처녀로 신장한 것은 물론이지만 춘향 모 월매와 성참판과의 관계 운운은 훨씬 뒤에 가서 춘향 모가 이도령에게 설명하는 말로 들리고, 처음에는 춘향 모의 태몽에 어떤 선녀 이화 도화 두 가지를 양손에 갈라쥐고 하늘로 나와서 도화를 내어주며 "이꽃을 잘 갖구어 李花接을 부쳤으면 오는 行樂 좋으리라. 李花 갖다 傳할 곳이 時刻이 急하기로 忽忽히 떠나노라"하였다 하여, 춘향과 이도령이 동시 16세의 동갑으로 만난 그 인연을 선천적으로 여기에 맺어 두고, 이도령이 광한루에 와서 춘향을 불렀을 때는 이명선씨 본과 같이 춘향은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말을 부갈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이도령이 그날 밤에 춘향 집을 찾았을 때는 완판본에 방자가 뒤쫓아 춘향 집으로 가서 춘향을 부를 때 춘향 모가 꿈이야기를 하듯이 마침 춘향 모가 춘향 방에와서 "너자는 枕上에서 彩雲이 일어나며 靑龍이 너를 물고 하날로 오르기로 龍의 허리를 안고 이리 궁굴 저리 궁굴하다가 깨였다"운운의 꿈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럴 때에 이도령이 밖에서 부르니 춘향 모가 깜짝 놀라 맞아들이었으나 여기도 이도령은 춘향을 예로써 맞이한 듯이 하여 춘향 모에게 그 딸의 허혼을 청하였고, 춘향은 그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이도령에게 일신을 바쳤는데, 사랑 끝에 이별이 되는 데는 이도령이 별로 그 모친에게 춘향 일을 삷다가 꾸중을 들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후 사도와 그 부인은 벌써 그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는 듯하여 떠날 때에는 춘향을 불러보려고까지 하다가 도령의 장습도 될 것 같고 하인 소시에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춘향 모녀에게 돈과 백미와 필목과 기타 패물을 후히 주어 위로하고 또 후일 도령님이 급제하면 장차 데려간다고도 일러주었다 하였다. 또 변부사는 이부사가 상경 후에 곧 온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다른 부사가 이부사의 뒤를 이어 왔다가 1년 만에 갈려 간 후에 도임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마 춘향으로 하여금 이도령을 사모하고 수절하는 시간적 여유를 주어,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절대로 그 절개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더 힘있게 말하고자 한 데에서 고안된 듯하나, 사실 종래의 이본은 이부사가 갈려간 후 곧 변부사가 도임하여 왔기 때문에 춘향의 절개에는 얼마쯤 손이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변부사의 우력에도 굴하지 않았다니까 물론 그를 의심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 이별한 곧 그다음이니까 하는 핸드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서와 같이 하여 두고 보면 춘향의 절개에는 아무 의심을 개입할 틈을 두지 않는다. 가히 편자의 조밀한 두뇌를 볼 것이나 이러한 점은 또 이 밖에도 있었다. 이것은 먼저 별춘향전에서도 그랬지만 춘향의 옥중서간인데 여기는 사령이 나와서 춘향에게 서울로 편지나 하여보라 권하고 춘향도 옳게 여겨 편지를 써서 부치는데 역시 전일 도령님을 뫼시고 다니던 방자를 불러 보냈다 하였다. 그리하여 어사가 도중에서 방자를 만나 그 편지를 받을 것이나, 어사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분하여 불의에 그놈을 단박에 삼문출도를 하여 봉고를 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방자에게 눈치를 보여 버렸다. 그런데 별탈향전은 이때 별로 방자에게 그런 눈치를 보였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그 방자에게 자기가 남원에 가기 전에는 아무 말을 내지 마라 당부하고 보냈지만 여기서는 방자에게 어사라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그 뒤 수습을 적당히 하지 않을 수 없어 그 방자를 운봉으로 보내는데, 방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주고 그것을 갖다 운봉관가에 드리고 주는 것이 있거든 받아가지고 오라 한다. 그러나 편지 내용은 그 놈이 가거든 잡아 가두어 두라 하였기 때문에 방자는 거기 가서 그만 금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비록 房子의 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운봉에게는 내통하는 것이 되지않나 하지만 그는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즉 운봉은 어사가 변부사의 생일연에 걸인의 형색을 하고 들어갔을 때 유독히 어사에게 동정하여 주었던 것이나 편자는 이 점을 날카로이 감득하여 운봉의 태도를 유심하게 하는 동시에 또 방자의 입을 막아 〿〿의 탄자를 방지한다는 일석이조식의 수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그 후 어사가 남원 삼문에 출도를 하였을 때는 그 방자가 저절로 노여 어사 앞에 뛰어왔으므로 그 노를 사하고 남원관노청일과소임을 시켜주었다 한다. 그리고 변부사는 자색하여 인병부를 끌러 어사에게 바치니 어사는 도리어 위로하여 하는 말이 남아의 탐화함은 영웅리 일반일 뿐 아니라 또 춘향의 절행이 빛남도 본관의 덕택이니 개념하지 말고 앞으로 선치하여 만인산을 받으라 하고 봉고파직은 하지 않았다 하였다. 여기에 또 편자는 이도령의 도량을 힘껏 넓히여 춘향의 무쌍한 절행에 〿〿〿의 활〿한 인격을 배합하려 한 것이 보인다.
쪽수▶P108-2이렇게 말하면 벌서 大綱 짐작이 될 바와 같이 本書는 단단히 從來의 春香傳에 大改竄을 꾀하였고 또 可及的 現代 生活의 感情을 넣어보려 애썼으니 以下 本書의 이 點에 對하여 大綱 들어 보면, 첫째 그 形式에 있어 從來의 連續式올 分切式으로 고치고, 또 純諺文體룔 諺漢文體로 써서 二 代身 漢文字에는 一一히 그 옆에 諺文으로 音譯하였기 때문에 讀書에 많은 便宜를 주었으며, 다음 그 內容에 이르면 于先 劈頭에 무슨 大王 年間에 云云으로 始作하던 古代小說의 典型을 打破하고 劈頭에

「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苧羅山下 若耶溪에 西施가 鍾出하고, …... 湖南左道南原府는 東으로 智異山, 西으로 赤城江, 山水精神 어리여서 春香이가 삼겨 있다」

이렇게 始作하였다.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할지 모르지만 春香傳으로 보아서는 大膽한 破格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여기에 春香傳은 古代小說에서 다시 新小說로 化粧을 고처하고 世上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春香에 對하여는 完本에서 많은 影響을 받아 그를 閭閻집 處女로 新裝한 것은 勿論이지만 春香母月梅와 成參判과의 關係云云은 훨씬 뒤에 가서 春香母가 李道令에게 說明하는 말로 들리고, 처음에는 春香母의 胎夢에 어떤 仙女 李花 桃花 두 가지를 兩손에 갈라쥐고 하늘로 나와서 桃花를 내어주며 「이꽃을 잘갖구어 李花接을 부쳤으면 오는 行樂 좋으리라. 李花 갖다 傳할 곳이 時刻이 急하기로 忽忽히 떠나노라」 하였다 하여, 春香과 李道令이 同是 16歲의 同甲으로 만난 그 因緣을 先天的으로 여기에 맺어 두고, 李道令이 廣寒樓에 와서 春香을 불렀을 때는 李明善氏本과 같이 春香은 雁隨海▶P109蝶隨花, 蟹隨穴이라는 말을 傅喝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李道令이 그날 밤에 春香 집을 찾았을 때는 完版本에 房子가 뒤쫓아 春香 집으로 가서 春香을 부를 때 春香母가 꿈 이야기를 하듯이 마침 春香母가 春香 房에와서 "너자는 枕上에서 彩雲이 일어나며 靑龍이 너를 물고 하날로 오르기로 龍의 허리를 안고 이리 궁굴 저리 궁굴하다가 깨였다" 云云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럴 때에 李道令이 밖에서 부르니 春香母가 깜짝 놀라 맞아들이었으나 여기도 李道令은 春香을 禮로써 맞이한 듯이 하여 春香母에게 그 딸의 許婚을 請하였고, 春香은 그 母의 許諾을 기다려 李道令에게 一身을 바쳤는데, 사랑 끝에 離別이 되는 데는 李道令이 別로 그 母親에게 春香일을 삷다가 꾸중을 들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後 使道와 그 夫人은 벌써 그 關係를 눈치채고 있었는 듯하여 떠날 때에는 春香을 불러보려고까지 하다가 道令의 長習도 될 것 같고 下人 所視에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春香母女에게 돈과 白米와 匹木과 其他 珮物을 厚히 주어 慰勞하고 또 後日 道令님이 及第하면 將次 데려간다고도 일러주었다 하였다. 또 卞府使는 李府使가 上京 後에 곧 온 것이 아니고, 그 中間에 다른 府使가 李府使의 뒤를 이어 왔다가 1年만에 갈려 간 後에 到任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마 春香으로 하여금 李道令을 思慕하고 守節하는 時間的 餘裕를 주어, 날이 가고 달이 가도 絶對로 그 節介는 變함이 없다는 것을 더 힘있게 말하고자 한 데에서 考案된 듯하나, 事實 從來의 異本은 李府使가 갈려간 後 곧 卞府使가 到任하여왔기 때문에 春香의 節介에는 얼마쯤 損이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卞府使의 우력에도 屈하지 않았다니까 勿論 그를 疑心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 離別한 곧 그다음이니까 하는 핸드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本書와 같이 하여 두고 보면 春香의 節介에는 아무 疑心을 介入할 틈을 두지 않는다. 可히 編者의 稠密한 頭腦를 볼 것이나 이러한 點은 또 이 밖에도 있었다. 이것은 먼저 別春香傳에서도 그랬지만 春▶P110香의 獄中書簡인데 여기는 使令이 나와서 春香에게 서울로 편지나 하여보라 勸하고 春香도 옳게 여겨 편지를 써서 부치는데 亦是 前日 道令님을 뫼시고 다니던 房子를 불러 보냈다 하였다. 그리하여 御史가 途中에서 房子를 만나 그 편지를 받을 것이나, 御史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憤하여 不意에 그놈을 단박에 三門出道를 하여 封庫를 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房子에게 눈치를 보여 버렸다. 그런데 別奪香傳은 이때 別로 房子에게 그런 눈치를 보였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그 房子에게 自己가 南原에 가기 前에는 아무 말을 내지 마라 당부하고 보냈지만 여기서는 房子에게 御史라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그 뒤 收拾을 適當히 하지 않을 수 없어 그 房子를 雲峯으로 보내는데, 房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주고 그것을 갖다 雲峯官家에 드리고 주는 것이 있거든 받아가지고 오라 한다. 그러나 편지 內容은 그 놈이 가거든 잡아 가두어 두라 하였기 때문에 房子는 거기 가서 그만 禁錮를 當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비록 房子의 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雲峯에게는 內通하는 것이 되지 않나 하지만 그는 또 그럴 만한 理由가 있었던 것이다. 即 雲峯은 御史가 卞府使의 生日宴에 乞人의 形色을 하고 들어갔을 때 唯獨히 御史에게 同情하여 주었던 것이나 編者는 이 點을 날카로이 感得하여 雲峯의 態度를 有心하게 하는 同時에 또 房子의 입을 막아 〿〿의 綻紫를 防止한다는 一石二鳥식의 手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그後 御史가 南原 三門에 出道를 하였을 때는 그 房子가 저절로 놓여 御史 앞에 뛰어왔으므로 그 勞를 謝하고 南原官奴廳一課所任을 시켜주었다 한다. 그리고 卞府使는 紫色하여 印兵符를 끌러 御史에게 바치니 御史는 도리어 慰勞하여 하는 말이 男兒의 貪花함은 英雄梨 一般일 뿐 아니라 또 春香의 節行이 빛남도 本官의 德澤이니 介念하지말고 앞으로 善治하여 萬人傘을 받으라 하고 封庫罷職은 하지 않았다 하였다. 여기에 또 編者는 李道令의 度量을 힘껏 넓혀 春香의 無雙한 節行에 〿〿〿의 濶〿한 人格을 配▶P111-1合하려 한 것이 보인다.
이상은 주로 본서의 중요한 창안을 들어보았으나 이 외에도 소소한 것을 든다면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서 남원으로 오던 도중에 잠깐 졸았는데 비몽사몽간에 "저기 앉은 이상공은 나를 살려 주오" 하는 꿈을 꾸고 춘향을 생각하였다던지, 또 어사 출도 후에 춘향을 잡아 올리라 하니 남원읍 노소과부들이 춘향의 백방을 등상들었다 하는 것 등이 있다. 그러나 본서도 대체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명선씨 본 완판본에서 많은 영향을 입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첫째 춘향을 성참판의 딸이라 한 것은 분명히 완판본의 영향이니, 이도령이 첫날 밤에 춘향 모를 찾아서 그 딸과 백년가약을 청하니 춘향 모의 말이 "나의 딸 춘향이가 상사람이 아니라, 회동 성참판 영감이 보외로 남양에 좌정하여 일색 명기 다 버리고 늙은 나를 수청케 하시니 모신지 수삭만에 이조참판 승차하여 내직으로 들어갈 때 내게 가자 하셨으나 노부가 계신 이유로 따라가지 못하고 이별한 그 달부터 저것을 밴 줄 짐작하고 연유로 고목하니 젖줄 뗄 만하게 되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댁 운수 불길하여 영감이 별세하니 춘향을 못 보내고 저만큼 길렀으니, 칠세에 소학 읽혀 수신제가 화순심을 낱낱이 가르치니 근본이 있는 고로 만사가 달통이라"운운한 것과, 어사가 남원 가까이 왔을 때 춘향이 옥중에서 비몽사몽간에 이도령을 보니 두상에는 김관이요 요간에는 패월이라 한 것은 분명히 완판본의 영향일 것이고, 이도령이 광한루서 불렀을 때 춘향이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문구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던지, 어사가 도중에 절에 들렀다 한 것은 이명선씨본의 영향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절 이야기는 이명선씨본과 다소 다름이 있었다. 즉 거기는 어사가 절에 들어가니 향단이가 와서 춘향을 위해 재를 올리고 있었더라 하였는데, 여기는 그 절 이름을 만복사라 하였고 또 그 절인 바는 전에 춘향 모가 춘향을 낳으려고 시주하고 정성드리는 절인데, 어사가 방자를 데리고 그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들이 방금 춘향과 이도령을 위해 불공 축원을 하고 있었으므로 어사 감탄하여 돈 천냥을 내어 시주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체의 기술상순서로 본다 할지라도 이를 완판본과 비교하여보면 그다지 큰 변동이 없었다. 다만 이별에 있어 이도령이 춘향을 그 집으로 찾아 이별을 서러워하고 일단 관가로 들어갔다가 내행을 뫼시고 가는 길에 오리정에서 육방하인의 하직을 받고 재차 춘향 집으로 가서 이별을 하였으며 거기서 명경과 옥지환의 신물을 교환하였다 하였고, 그 다음 이별 후의 춘향의 황릉묘 몽사와 옥창 앵도화락몽사 사이에 춘향의 옥중 서간과 이도령의 어사치행도중에 춘향의 편지 받는 것과 방자의 운봉 금고가 있을 따름이다.
쪽수▶P111-2以上은 主로 本書의 重要한 創案을 들어보았으나 이 外에도 小小한 것을 든다면 李道令이 御史가 되어서 南原으로 오던 途中에 잠깐 졸았는데 非夢似夢間에 "저기 앉은 李相公은 나를 살려 주오" 하는 꿈을 꾸고 春香을 생각하였다던지, 또 御史 出道 後에 春香을 잡아 올리라 하니 南原邑 老少寡婦들이 春香의 白放을 等狀들었다 하는 것 等이 있다. 그러나 本書도 大體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李明善氏 本 完版本에서 많은 影響을 입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첫째 春香을 成參判의 딸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이니, 李道令이 첫날 밤에 春香 母를 찾아서 그 딸과 百年佳約을 請하니 春香母의 말이 "나의 딸 春香이가 常사람이 아니라, 會洞 成參判 令監이 補外로 南凉에 坐定하여 一色 名妓 다 버리고 늙은 나를 守廳케 하시니 모신지 數朔만에 吏曹參判 陞差하여 內職으로 들어갈 때 내게 가자 하셨으나 老父가 계신 이유로 따라가지 못하고 離別한 그 달부터 저것을 밴 줄 짐작하고 緣由로 告目하니 젖줄 뗄 만하게 되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宅 運數 不吉하여 令監이 別世하니 春香을 못 보내고 저만큼 길렀으니, 七歲에 小學 읽혀 修身齊家 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根本이 있는 故로 萬事가 達通이라" 云云한 것과, 御史가 南原 가까이 왔을 때 春香이 獄中에서 非夢似夢間에 李道令을 보니 頭上에는 金冠이요 腰間에는 珮鉞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일 것이고, 李道令이 廣寒樓서 불렀을 때 春香이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는 文句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던지, 御史가 途中에 절에 들렀다 한 것은 李明善氏本의 影響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절 이야기는 李明善氏本과 多少 다름이 있었다. 即 거기는 御史가 절에 들어가니 香丹이가 와서 春香을 爲해 齋를 올리고 있었더라 하였는데, 여기는 그 절 이름을 萬福寺라 하였고 또 그 절인 바는 前에 春香母가 春香을 낳으려고▶P112-1施主하고 精誠드리는 절인데, 御史가 房子를 데리고 그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들이 方今 春香과 李道令을 爲해 佛供 祝願을 하고 있었으므로 御史 感嘆하여 돈 千兩을 내어 施主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全體의 記述上順序로 본다 할지라도 이를 完版本과 比較하여보면 그다지 큰 變動이 없었다. 다만 離別에 있어 李道令이 春香을 그 집으로 찾아 離別을 서러워하고 一旦 官家로 들어갔다가 內行을 뫼시고 가는 길에 五里亭에서 六房下人의 下直을 받고 再次 春香 집으로 가서 離別을 하였으며 거기서 明鏡과 玉指環의 信物을 交換하였다 하였고, 그 다음 離別 後의 春香의 黃陵廟 夢事와 獄窓 櫻桃花落夢事 사이에 春香의 獄中 書簡과 李道令의 御史治行途中에 春香의 편지 받는 것과 房子의 雲峯 禁錮가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본서의 플롯 상 전기 양본의 영향은 받았다 할지라도 또 양본에서 취사함이 있었음도 부득이하였으니, 그 취한 바는 벌써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다시 버린 점을 들어 보면 첫째 여기는 완판본의 능랑청이라던지 회계나리라던지 기타 서울 급주며 오작교 하의 표모공론이 나오지 않고, 또 이명선씨본의 농가이외의 어사탐문이라던가, 어사가 초빈에 울었다던가, 춘향이 옥중에서 황릉묘꿈과 옥창앵도화락꿈 이외에도 다른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것도 역시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편자는 자유로 완판본과 이명선씨본을 가지고 취사선택하여 거기에 다시 편자 자신의 창안을 넣어 편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쪽수▶P112-2그러나 本書의 플롯 上 前記 兩本의 影響은 받았다 할지라도 또 兩本에서 取捨함이 있었음도 不得已하였으니, 그 取한 바는 벌써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다시 버린 點을 들어 보면 첫째 여기는 完版本의 陵郞廳이라던지 會計나리라던지 其他 서울 急走며 烏鵲橋 下의 漂母公論이 나오지 않고, 또 李明善氏本의 農歌以外의 御史探問이라던가, 御史가 草殯에 울었다던가, 春香이 獄中에서 黃陵廟꿈과 獄窓櫻桃花落꿈 以外에도 다른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것도 亦是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編者는 自由로 完版本과 李明善氏本을 가지고 取捨選擇하여 거기에 다시 編者 自身의 創案을 넣어 編纂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본서의 개괄적 소개는 대강 마쳤다고 생각하나 다시 그 내용을 좀 더 세밀히 검토하여 보면 종래의 춘향전에서 면목을 일신하였다 할만큼 그 묘사법을 변경하였다. 즉 종래의 이본은 책에 따라 다소 경중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보아서 그 묘사가 너무 과장적이고 또 비속한 데가 많던 것을 본서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약점을 구하려 애썼다. 이를테면 춘향의 방치례라 하더라도

湯人君 犧牲되어 剪瓜斷髮身嬰白茅六事로 비를 빌어 大雨方數千里에 衰龍袍를 적셔 입고 識宮으로 가는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南壁을 살펴보니 商山四時 네 老人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一點二期 땅땅 둘 때 어떤 老人은 鶴氅衣에 綸巾쓰고 白碁를 손에 쥐고 요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葛巾道服 떨쳐 입고 黑碁를 손에 쥐고 河圖洛書法을 찾아 이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靑藜杖 半만 집고 바둑 훈수를 하느라고 어깨 너머로 넘어 보며 이만하고 앉은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어떠한 老人은 巾을 벗어 松枝에 걸고 竹冠을 제쳐쓰고 五絃琴 거문고를 膝上에 올려놓고 世無知音羽衣曲을 시르렁 타고 놀제 白鶴이 춤을 춘다. 北壁을 바라보니 千年蟠桃瑤池 봄 西王母의 靑鳥로다

이러한 정도에 그쳤고, 춘향 모의 주반상에 이르면

羅州漆盤에 沈菜 한보, 藥脯肉粘鰒쌈 한 接匕, 實果 곁들여 놓았겠다.

라 하여 완판본이나 고본 춘향전과는 운니의 차가 있었다. 또 사랑歌에서도 "近來 사랑歌에 情字 노래 風字 노래가 있으나 너무 亂하여 風俗에 關係도 되고 春香烈節에 辱이 되겠으나 너무 無味하니까 大綱 大綱 하는 것이었다"라 앞에서 미리 말하여 두고 풍기 상 문제될 것은 애초에 넣지 않아 극히 간단히 조처하여 버렸으며, 방자의 심한 농담이라던지 춘향 모의 욕설 같은 것도 쓰지 않아 될 수 있는 대로 사건을 자연스레 전개하여 비속한 점 없게 하고, 또 춘향이나 그 모의 신분에 대하여는 끝까지 옹호하여 절대로 천한 빛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심지어 이부사와 이도령에까지 미쳐 그 인격을 될 수 있는 한 원만무결히 하고자 하였으니 이부사가 춘향 모녀에게 금품을 주어 위로하고 간 것이라던지 어사가 변부사를 봉고파직하지 않고 도리어 전도를 격려한 것은 다 그러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쪽수▶P112-3이로써 本書의 槪括的 紹介는 大綱 마쳤다고 생각하나 다시 그 內容을 좀 더 細密히 檢討하여 보면 從來의 春香傳에서 面目을 一新하였다 할만큼 그 描寫法을 變更하였다. 即 從來의 異本은 책에 따라 多少 輕重은 있었지만 一般的으로 보아서 그 描寫가 너무 誇張的이고 또 卑俗한 데가 많던 것을 本書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弱點을 救할▶P113랴 애썼다. 이를테면 春香의 房치례라 하더라도

湯人君 犧牲되어 剪瓜斷髮身嬰白茅六事로 비를 빌어 大雨方數千里에 衰龍袍를 적셔 입고 識宮으로 가는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南壁을 살펴보니 商山四時 네 老人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一點二期 땅땅 둘 때 어떤 老人은 鶴氅衣에 綸巾쓰고 白碁를 손에 쥐고 요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葛巾道服 떨쳐 입고 黑碁를 손에 쥐고 河圖洛書法을 찾아 이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靑藜杖 半만 집고 바둑 훈수를 하느라고 어깨 너머로 넘어 보며 이만하고 앉은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어떠한 老人은 巾을 벗어 松枝에 걸고 竹冠을 제쳐쓰고 五絃琴 거문고를 膝上에 올려놓고 世無知音羽衣曲을 시르렁 타고 놀제 白鶴이 춤을 춘다. 北壁을 바라보니 千年蟠桃瑤池 봄 西王母의 靑鳥로다

이러한 程度에 그쳤고, 春香母의 酒盤床에 이르면

羅州漆盤에 沈菜 한보, 藥脯肉粘鰒쌈 한 接匕, 實果 곁들여 놓았겠다.

라 하여 完版本이나 古本 春香傳과는 雲泥의 差가 있었다. 또 사랑歌에서도 "近來 사랑歌에 情字 노래 風字 노래가 있으나 너무 亂하여 風俗에 關係도 되고 春香烈節에 辱이 되겠으나 너무 無味하니까 大綱 大綱 하는 것이었다"라 앞에서 미리 말하여 두고 風紀 上 問題될 것은 애초에 넣지 않아 極히 簡單히 措處하여 버렸으며, 房子의 甚한 弄談이라던지 春香母의 辱說 같은 것도 쓰지 않아 될 수 있는 대로 事件을 自然스레 展開하여 卑俗한 點 없게 하고, 또 春香이나 그 母의 身分에 對하여는 끝까지 擁護하여 絶對로 賤한 빛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態度는 甚至於 李府使와 李道令에까지 미쳐 그 人格을 될 수 있는 限 圓滿無缺히 하고자 하였으니 李府使가 春香母女에게 金▶P114-1品을 주어 慰勞하고 간 것이라던지 御史가 卞府使를 封庫罷職하지 않고 도리어 前途를 激勵한 것은 다 그러한 意圖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본서는 물론 고대소설을 번안하여 그 시대의 생활과 감정을 보유하고자 한 것이지만 그러나 편자는 단순히 고전을 고전으로만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이로써 현대소설화하고자 하는, 즉 다시 말하면 고대 춘향전이 아니고 현대 춘향전을 쓰고자 하는 것이 그 본의인 듯하여 가끔 그 표현에 있어 현대적 감정을 쓴 것이 있었다. 이런 것이 많진 않지만 일례를 들어 보면 농가의 일절에

社會에 領袖되어 法律 範圍 違越말고 一動一靜 知彼知己 因其勢而道之하여 改良風俗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國內 靑年 몰아다가 敎育界에 집어넣고 各種學問 敎授하여 人才養成 한 然後에 學界主人 뫼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經國濟民 研究하여 天下利益 얻었다가 金庫에 滿積하고 商業低仰 任意대로 經濟大家 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운운하는 것은 가히 글로 볼 것인 줄 믿으나 여기에 옥중화는 고전에서 다시 현대소설로 가로에 활보하여 나왔던 것이다. 또 문장에 있어서도 비록 사사조의 운문체는 많이 썼지만, 완판본과 같이 가곡화하고자 아니하고 도리어 될 수만 있으면 희곡적인 데에서 다시 순수한 소설체로 돌아오고자 하였다. 따라서 사실에 없는 말을 공연히 다듬어 실정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적다. 이를테면 먼저 완판본에서 인용하였던 장면, 즉 춘향의 추천하는 데를 비교 삼아 하나 인용하여 보면

春香의 舉動 보아라 鞦韆을 하라 하고 長々綵細 그네줄을 두 손에 갈러쥐고 선 듯 올라 발 구르니 한번 굴러 뒤가 솟고 두 번 굴러 앞이 높아 鳶飛戾天솔개 뜨듯 爛熳桃花 높은 가지 소소러처 툭々 차니 송이송이 맺힌 꽃 휘 느러저 떨어져서 風無聲而落花로다 오락가락 노닐 적에 李道令이 精神없이 한참 서서 望見터니 뜻밖에 몸이 웃슬 웃슬 소톰이 쪽 끼치니 精神黯黯 一身을 벌々 뜰미
『이에 房子야야아아』

이와 같다. 이것은 물론 일례에 지나지 못하지만 전체를 통하여 보면 상당히 가곡을 위한 가곡적 부문을 감소하고 그 대신 사실적 방면에 힘을 경주하였다. 이것도 본서가 현대적 소설로 걸어 나오자 하는 욕망일 것이요 또 거기에 성공하였다고 우리는 인증하지 않을 수 없다.
쪽수▶P114-2그리고 本書는 勿論 古代小說을 飜案하여 그 時代의 生活과 感情을 保有하고자 한 것이지만 그러나 編者는 單純히 古典을 古典으로만 傳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이로써 現代小說化하고자 하는, 即 다시 말하면 古代 春香傳이 아니고 現代 春香傳을 쓰고자 하는 것이 그 本意인 듯하여 가끔 그 表現에 있어 現代的 感情을 쓴 것이 있었다. 이런 것이 많진 않지만 ᅳ例를 들어 보면 農歌의 一節에

社會에 領袖되어 法律 範圍 違越말고 一動一靜 知彼知己 因其勢而道之하여 改良風俗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國內 靑年 몰아다가 敎育界에 집어넣고 各種學問 敎授하여 人才養成 한 然後에 學界主人 뫼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經國濟民 研究하여 天下利益 얻었다가 金庫에 滿積하고 商業低仰 任意대로 經濟大家 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云々하는 것은 可히 글로 볼 것인 줄 믿으나 여기에 獄中花는 古典에서 다시 現代小說로 街路에 闊步하여 나왔던 것이다. 또 文章에 있어서도 비록 四々調의 韻文體는 많이 썼지만, 完板本과 같이 歌曲化하고자 아니하고 도리어 될 수만 있으면 戱曲的인 데에서 다시 純粹한 小說體로 돌아오고자 하였다. 따라서 事實에 없는 말을 空然히 다듬어 實情▶P115-1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적다. 이를테면 먼저 完版本에서 引用하였던 場面, 即 春香의 鞦韆하는 데를 比較 삼아 하나 引用하여 보면

春香의 舉動 보아라 鞦韆을 하라 하고 長々綵細 그네줄을 두 손에 갈러쥐고 선 듯 올라 발 구르니 한번 굴러 뒤가 솟고 두 번 굴러 앞이 높아 鳶飛戾天솔개 뜨듯 爛熳桃花 높은 가지 소소러처 툭々 차니 송이송이 맺힌 꽃 휘 느러저 떨어져서 風無聲而落花로다 오락가락 노닐 적에 李道令이 精神없이 한참 서서 望見터니 뜻밖에 몸이 웃슬 웃슬 소톰이 쪽 끼치니 精神黯黯 一身을 벌々 뜰미
『이에 房子야야아아』

>이와 같다. 이것은 勿論 一例에 지나지 못하지만 全體를 通하여 보면 相當히 歌曲을 爲한 歌曲的 部門을 減少하고 그 代身 寫實的 方面에 힘을 傾注하였다. 이것도 本書가 現代的 小說로 걸어 나오자 하는 慾望일 것이요 또 거기에 成功하였다고 우리는 認證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본서는 이상 누누이 설래하여 온 바와 같이 형식 내용 어느 방면으로나 종래의 춘향전에 대폭적 개찬을 하여 편자는 이것을 현대 춘향전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춘향전 문학으로 보아 일대 획기적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여기에 춘향전은 현대인에게 재인식되어 본서는 일반 소설독서층에 그야말로 열광적 환영을 받았다. 여기 따라 대정 14년경 이후로는 또 본서의 이본이 경성 각 서사에서 쏟아져 나왔으니, 먼저 그 서명과 발행소만을 적어보면 이러한 것이 있다. 이 외도 또 만고열녀일선문춘향전(조선도서주식회사) 이라던지 Edward T. Urquart The Fragrance of Spring(시광사)은 다 본서를 저본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전기한 본서의 이본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가하고 본항을 마치겠다.
쪽수▶P115-2要컨대 本書는 以上 屢々 說來하여 온 바와 같이 形式 內容 어느 方面으로나 從來의 春香傳에 大幅的 改纂을 하여 編者는 이것을 現代 春香傳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春香傳 文學으로 보아 一大 劃期的 事實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여기에 春香傳은 現代人에게 再認識되어 本書는 一般 小說讀書層에 그야말로 熱狂的 歡迎을 받았다. 여기 따라 大正 14年頃 以後로는 또 本書의 異本이 京城 各 書肆에서 쏟아져 나왔으니, 먼저 그 書名과 發行所만을 적어보면

萬古烈女春香傳, 一色絶代佳人成春香傳, 諺文春香傳 (永昌書館, 韓與書林), (德興書林)
諺文獄中絕代佳人, 一名春香傳, 絶代佳人, 鮮漠文春香傳((永昌書館, 韓與書林)
▶P116-1古代小說諺文春香傳, 一名春香傳 (灌東書館)
懷中春香傳, 一名春香傳, 小春香歌 (廣韓書林)
萬古烈女特別無雙春香傳, 一名鮮漢文春香傳, 萬古烈女特別無雙新春香傳 (永昌書館)

이러한 것이 있다. 이 外도 또 萬古烈女日鮮文春香傳(朝鮮圖書株式會社)이라던지 Edward T. Urquart The Fragrance of Spring(時光社)은 다 本書를 底本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前記한 本書의 異本에 對하여 簡單한 說明을 加하고 本項을 마치겠다.
1. 만고열녀춘향전
본서는 편집 겸 발행자에 강의영의 명의로 대정14年 4월 20일에 영창서관과 한흥서림에서 권두에 삽화를 넣어 발행하였다. 내용은 옥중화를 그대로 개판하여 낸 것이나 다만 옥중화의 간한문체를 다시 순언문체로 고치고 또 분절식을 운속식의 옛날에 환원시켰다. 그럼으로 동판을 가지고 대정 14년 11월 15일에는 덕흥서림에서 김동진의 명의로 일명 언문춘향전이라는 이름을 걸어서 발행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잠긴 춘향전의 서명파 그 저자명의에 대하여 설명하여둘 필요가 있으니 첫째 서점에 대하여는 옥중화 하나가 상기한 바와 같이 별별 이름을 쓰고 나오나, 한 책에 있어서도 또한 표지에 제명한 서명파 안장의 서명이 닯으며(다르며), 안장에도 권두에 붙인 번명과 또 권미에 붙인 서명이 다른 일이 종종 있다. 이를테면 이 만고숙녀춘향전으로 두고 보더라도 영창서관본은 안장 권두에는 만고열녀춘향전이라 하여 놓고 권미에는 언문춘향전종이라 하였으며, 또 표지에는 절대 가인성춘향전이라 써 있고, 흥서림본은 표지에 만고열녀춘향전과 언문춘향전의 두 이름이 쓰여있다. 그리고 저작자명의는 발행소에 따라 각기 달라 발행서점주가 곧 그 저작자명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서점과 저작자 명의가 다르다 하여 내용이 다르다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서점은 광고적이요 저작자 명의는 출판의 편의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쪽수▶P116-21. 萬古烈女春香傳
本書는 編輯 兼 發行者에 姜義永의 名義로 大正14年 4月 20日에 永昌書館과 韓興書林에서 卷頭에 揷畵를 넣어 發行하였다. 內容은 獄中花를 그대로 改版하여 낸 것이나 다만 獄中花의 諫漢文體를 다시 純諺文體로 고치고 또 分節式을 運續式의 옛날에 還元시켰다. 그럼으로 同版을 가지고 大正 14年 11月 15日에는 德興書林에서 金東縉의 名義로 一名 諺文春香傳이라는 이름을 걸어서 發行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잠긴 春香傳의 書名파 그 著者名義에 對하여 說明하여둘 必要가 있으니 첫째 書店에 對하여는 獄中花 하나가 上記한 바와 같이 別々 이름을 쓰고 나오나, 한 책에 있어서도 또한 表紙에 題名한 書名파 안장의 書名이 닯으며, 안장에도 卷頭에 붙인 蕃名과 또 卷尾에 붙인 書名이 닯은 일이 種種 있다. 이를테면 이 萬古熟女春香傳으로 두고 보더라도 永昌書館本은 안장 卷頭에는 萬古烈女春香傳이라 하여 놓고 卷尾에는 諺文春香傳終이라 하였으며, 또 表紙에는 絶代▶P117-1佳人成春香傳이라 써 있고, 興書林本은 表紙에 萬古烈女春香傳과 諺文春香傳의 두 이름이 쓰여있다. 그리고 著作者名義는 發行所에 따라 各其 닯아 發行書店主가 곧 그 著作者名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書店과 著作者 名義가 닯다 하여 內容이 닯은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書店은 廣告的이요 著作者 名義는 出版의 便宜上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옥중절대가인
이것도 표지에는 절대가인 혹은 선한문춘향전이라는 서명을 가지고 있으나 역시 영창서관과 한흥서림에서 대정 14년 10월 10일에 강의영의 명의로 권두에 삽화를 넣어 발행한 것인데, 본서는 순언문체를 썼으나 한문 문구에는 그 옆에 한자를 주기하였다. 내용은 물론 옥중화 그대로인데 다만 벽두에 옥중화의 "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운운을

"世上萬物 점지할제 絶代佳人 없을소냐, 絶代佳人 생겨날제 烈女忠臣 없을소냐 烈女忠臣 생겨날제 江山精氣 타고 난다. 湖南左道 南原府는……"

으로 고쳤을 뿐이다.
쪽수▶P117-22. 獄中絶代佳人
이것도 表紙에는 絶代佳人 或은 鮮漢文春香傳이라는 書名을 가지고 있으나 亦是 永昌書館과 韓興書林에서 大正 14年 10月 10日에 姜義永의 名義로 券頭에 揷畵를 넣어 發行한 것인데, 本書는 純諺文體를 썼으나 漢文 文句에는 그 옆에 漢字를 註記하였다. 內容은 勿論 獄中花 그대로인데 다만 劈頭에 獄中花의"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云云을

「世上萬物 점지할제 絶代佳人 없을소냐, 絶代佳人 생겨날제 烈女忠臣 없을소냐 烈女忠臣 생겨날제 江山精氣 타고 난다. 湖南左道 南原府는……」

으로 고쳤을 뿐이다.
3. 고대소설언문춘향전
본서도 표지에는 춘향전이라 하였는데 대정 14년 10월 30일에 회동서관에서 고유상의 명의로 발행하였다. 고대소설이라 하고 또 제목을 언문춘향전이라 이른 만큼 순언문으로 고대소설 체재의 그대로를 썼다.
쪽수▶P117-33. 古代小說諺文春香傳
本書도 表紙에는 春香傳이라 하였는데 大正 14年 10月 30日에 滙東書舘에서 高裕相의 名義로 發行하였다. 古代小說이라 하고 또 題目을 諺文春香傳이라 이른 만큼 純諺文으로 古代小說 體裁의 그대로를 썼다.
4. 회중춘향전
표지에는 춘향전 또 소춘향가라 하였으니 권미에는 정직하게 옥중화종이라 하였다. 대정 15년 2월 27일에 광한서림에서 김천희의 명의로 발행하였는데 체재는 순언문체의 회중용본에 되어 있다.
쪽수▶P117-44. 懷中春香傳
▶P118-1表紙에는 春香傳 또 小春香歌라 하였으니 卷尾에는 正直하게 獄中花終이라 하였다. 大正 15年 2月 27日에 廣韓書林에서 金天熙의 名義로 發行하였는데 體裁는 純諺文體의 懷中用本에 되어 있다.
5. 만고열녀특별무쌍춘향전
본서는 일명 선한문춘향전 혹은 만고렬녀특별무쌍신춘향전이라 하야 소화 10년 12월 25일에 강의영의 명의로 영창서관, 한흥서림에서 발행하였다. 권두에는 새로운 삽화 수매를 붙이고 본문 벽두의 "절대가인 삼겨날제 강산정기 타서 난다……" 운운을

"방초화류 좋은 때라 진처사의 오류문은 초록장을 드리운 듯 이리로 펄펄 저리로 펄펄 꾀꼬롱 꾀꼬롱하는 꾀꼬리는 제 벗을 불러내고 이편으로 너훌 너훌 저편으로 너훌 너홀, 쌍쌍이 춤을 추는 범나비는 흥을 계워 노닐더라"

로 고쳐서 "전라좌도남원부는……"에 붙였을 뿐이다.
쪽수▶P118-25. 萬古烈女特別無雙春香傳
本書는 一名 鮮漢文春香傳 或은 萬古烈女特別無雙新春香傳이라 하야 昭和 10年 12月 25日에 姜義永의 名義로 永昌書館, 韓興書林에서 發行하였다. 卷頭에는 새로운 揷畵 數枚를 붙이고 本文 劈頭의 "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云云을

「芳草花柳 좋은 때라 晋處士의 五柳門은 초록장을 드리운 듯 이리로 펄펄 저리로 펄펄 꾀꼬롱 꾀꼬롱하는 꾀꼬리는 제 벗을 불러내고 이편으로 너훌 너훌 저편으로 너훌 너홀, 쌍쌍이 춤을 추는 범나비는 興을 계워 노닐더라」

로 고쳐서 「全羅左道南原府는……」에 붙였을 뿐이다.































본문2: 8. 特別無雙春香傳


본서는 박건회의 편저로 대정 4년 12월 25일 유일서관에서 발행되었다. 처음에 삽화 수매를 붙이고, 전체를 14회에 나누었는데 그 목차를 들면 아래와 같다.

第一回, 廣寒樓上賞春景, 綠楊叢裏送秋千
第二回, 召不應佳人寄語, 暫未忘才子狂讀
第三回, 道令夜訪佳人邸, 老娘許婚有情郎
第四回, 兩人洞房唱詩詞, 府使遷任督治行
第五回, 五里亭兩入惜別, 南原府新官到任 第六回, 到任先檢妓生案, 貪淫欲奪烈女志
第七回, 玉節不屈被酷刑, 二妃顯靈說前程
第八回, 高舉壯元謁聖科, 特除湖南繡衣使
第九回, 得情札山寺看祈禱, 夢不祥獄中請許官
第十回, 歛探民情聽邊歌, 爲女築壇禱蒼天
第十一回, 御史探看老娘心, 春娘泣訴獄中苦
第十二回, 府使設宴東軒上, 暗行出道南原府
第十三回, 惜春香衆寡等訴, 聞喜報老娘舞踏
第十四回, 御史陳情龍榻下, 聖心大悅封忠烈

일로 보아서도 대강 짐작될 바와 같이 거의 옥중화 그대로이다. 내용을 열독하여 볼지라도 옥중화를 중간 중간이 더한 데에 지나지 못하는데 다음에 그 몇 구절을 옥중화와 대교하는 것으로 본서의 소개를 마치련다. 첫째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것을 옥중화에서는

(道)"그러면 金도 玉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일러다고."
房子놈이 그제야 "오─ 저것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仔細히 보니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로소이다"
道令님이 春香이란 말을 듣고 웃음을 勸馬聲 웃음을 웃더니
"이애 丁寧 春香이야 顚不刺的을 見了萬千이로대 底般可喜娘은 罕曾見이라, 我─ 眼花擦亂口難言이라 魂靈兒飛去半天이로다. 눈에 水銀을 닌듯이 뵈이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오란다고 즉시 불러오너라."
房子 엿자오대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府使 郡守 縣監 官長들이 無數히 보랴호되……"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道)"그러면 金도 玉도 鬼神(●●)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이애(●●) 갑갑하다 어서(●●) 일러다고"
房子놈이 그제야 시침이를(●●●●) () 띄이고(●●●●)
"오 저것 말삼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자세 보니() 本邑退妨(●●) 月梅 딸 春香이로구면(●●●). 그런대요(●●●●) 道令님은(●●●●) 장가도(●●●) 아니드신(●●●●) 兩班이(●●●●) 그런대만(●●●●) 눈이(●●) 먼첨(●●) 가시오(●●●)"
道令님이 이 말을(●●●) 듯더니(●●●) 房子의(●●●) 嘲弄하는(●●●●) () 대적하기도(●●●●●) 잊어버리고(●●●●●) 다시(●●) 건너편(●●●) 그네(●●) 줄을(●●) 向하여(●●●) 보니(●●) 마음은(●●●) 烏鵲橋를(●●●●) 건너가고(●●●●) 몸은(●●) 精神없이(●●●●) 廣寒樓(●●●) 夕陽 빛에(●●●●) 앉었다가(●●●●) 기쁜 생각이(●●●●●) 사무쳐서(●●●●) 勒馬聲(●●●) 웃음으로(●●●●) 웃으며(●●●●) 房子를(●●●) 조른(●●)다.
"이애, 丁寧 春香이냐, 어여뿐(●●●) 人物을(●●●) 千萬이나(●●●●) 보았으되(●●●●) 저렇게(●●●) 어여쁜(●●●) 것은(●●) 처음(●●) 보는구나(●●●●) () 눈이(●●) 眩煌하야(●●●●) 말할(●●●) 수도(●●) 없으니(●●●●) 魂이(●●) 九泉에(●●●) 날라간(●●●) 듯하구나(●●●●) 잔말(●●●) 말고(●●) 내가(●●)어서 오란다고 곳 좀 불러 오너라"春香이(●●●) 元來(●●) 妓生(●●) 같으면(●●●●) 冊室(●●) 喻附가(●●●) 계신(●●) 바에야(●●●) () 떠러지기가(●●●●●●) 무섭게(●●●●) () 待令을(●●●) 시키마는(●●●●) 房子도(●●●) 그러치(●●●) 않을(●●) () 아는(●●) 터이라(●●●) 道令님의(●●●●) 吩咐를(●●●) 듣고(●●●) 매우(●●) 難處하여(●●●●) 春香의(●●●) 來歷을(●●●) 大網(●●) 아뢴다(●●●).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使 府使 郡守 縣監 여러 官長들이 無數히 보려하되……"

이렇게 하였다. 또 다음 다른 데에서 더 하나 뽑아 춘향이가 변부사에게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장면이다. 이것을 눈중화에서는

▶P122-1 이윽고(●●●) 精神을 차려 獄門틈으로(●●●●●) 母親을(●●●) 부른다(●●●).
"어머니 설워마시고 氣體 安寧(●●)하옵소서(●●), 罪 없는 春香이가(●●) 설마한들 죽으리까 水火()槍 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아나서(●●●) 母親奉養할(●●●●●) 터이니 걱정 넘어(●●)말으시고 집으() ()아가옵소서. 萬一에 안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莫大할지라도(●●●●)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이 억색(●●)하여 氣가 마켜 죽게구려"
春香 母 이말(●●) 듯고(●●) 할일 없이 獄中에다 春香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悲悲切切斷腸懷가(●●●●●●●●) 淨凉路上魂顚倒라(●●●●●●●●) 업더질듯잡바질듯(●●●●●●●●) 집으로(●●●) 向하니라.(●●●●) 春香이(●●●) 母親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한숨을(●●●) 후유─(●●●) 쉬더니(●●●) 길이(●●) 嘆息을(●●●) 한다.(●●●)
"天地間에(●●●●) 이내(●●) 몸이(●●) 父母恩惠(●●●●) 重하도다,(●●●●) 黃河같이(●●●●) 깊으신(●●●) 德澤,(●●●) 山갈이(●●●) 높고(●●) 높다.(●●●) 슬푸도다(●●●●) 우리 母親, 父親(●●)없이 날 기를제(●●●)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놓고(●●) 좋은 일은 못보시고 눈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母親(●●) 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樹欲靜而風不止하고(●●●●●●●●●●) 子欲養而親不來라,(●●●●●●●●) 半白(●●) 넘은(●●) 늙은(●●) 母親(●●) 누가(●●) 있어(●●) 泰養하나(●●●●) 내일은(●●●) 내가(●●) 알지(●●) 끝날(●●) 날이(●●) 망연하니(●●●●) 가련한(●●●) 母親身勢(●●●●) 어찌하면(●●●●) 좋을는지(●●●●). 香丹아 게 있나냐"

부르니

"예─ 여기(●●) 있읍니다(●●●●)"

이렇게 하였다. 즉 위에 권점을 찍은 부분이 개정 혹 증보한 곳이거니와 전체를 통하여 대개 이런 정도의 것이다.
쪽수▶P118-3本書는 朴健會의 編著로 大正 4年 12月 25日 唯一書館에서 發行되었다. 처음에 揷畵 數枚를 붙이고, 全體를 14回에 나누었는데 그 目次를 들면 左와 같다.

第一回, 廣寒樓上賞春景, 綠楊叢裏送秋千
第二回, 召不應佳人寄語, 暫未忘才子狂讀
第三回, 道令夜訪佳人邸, 老娘許婚有情郎
▶P119第四回, 兩人洞房唱詩詞, 府使遷任督治行
第五回, 五里亭兩入惜別, 南原府新官到任 第六回, 到任先檢妓生案, 貪淫欲奪烈女志
第七回, 玉節不屈被酷刑, 二妃顯靈說前程
第八回, 高舉壯元謁聖科, 特除湖南繡衣使
第九回, 得情札山寺看祈禱, 夢不祥獄中請許官
第十回, 歛探民情聽邊歌, 爲女築壇禱蒼天
第十一回, 御史探看老娘心, 春娘泣訴獄中苦
第十二回, 府使設宴東軒上, 暗行出道南原府
第十三回, 惜春香衆寡等訴, 聞喜報老娘舞踏
第十四回, 御史陳情龍榻下, 聖心大悅封忠烈

일로 보아서도 大綱 짐작될 바와 같이 거의 獄中花 그대로이다. 內容을 閱讀하여 볼지라도 獄中花를 中間 中間이 增한 데에 지나지 못하는데 다음에 그 몇 句節을 獄中花와 對校하는 것으로 本書의 紹介를 마치련다. 첫째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春香을 바라보는 場面이다. 이것을 獄中花에서는

(道)『그러면 金도 玉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일러다고.』
房子놈이 그제야▶P120『오─ 저것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仔細히 보니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로소이다』
道令님이 春香이란 말을 듣고 웃음을 勸馬聲 웃음을 웃더니
『이애 丁寧 春香이야 顚不刺的을 見了萬千이로대 底般可喜娘은 罕曾見이라, 我─ 眼花擦亂口難言이라 魂靈兒飛去半天이로다. 눈에 水銀을 닌듯이 뵈이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오란다고 즉시 불러오너라.』
房子 엿자오대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府使 郡守 縣監 官長들이 無數히 보랴호되…..』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道)『그러면 金도 玉도 鬼神(●●)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이애(●●) 갑갑하다 어서(●●) 일러다고』
房子놈이 그제야 시침이를(●●●●) () 띄이고(●●●●)
『오 저것 말삼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자세 보니() 本邑退妨(●●) 月梅 딸 春香이로구면(●●●). 그런대요(●●●●) 道令님은(●●●●) 장가도(●●●) 아니드신(●●●●) 兩班이(●●●●) 그런대만(●●●●) 눈이(●●) 먼첨(●●) 가시오(●●●)
道令님이 이 말을(●●●) 듯더니(●●●) 房子의(●●●) 嘲弄하는(●●●●) () 대적하기도(●●●●●) 잊어버리고(●●●●●) 다시(●●) 건너편(●●●) 그네(●●) 줄을(●●) 向하여(●●●) 보니(●●) 마음은(●●●) 烏鵲橋를(●●●●) 건너가고(●●●●) 몸은(●●) 精神없이(●●●●) 廣寒樓(●●●) 夕陽 빛에(●●●●) 앉었다가(●●●●) 기쁜 생각이(●●●●●) 사무쳐서(●●●●) 勒馬聲(●●●) 웃음으로(●●●●) 웃으며(●●●●) 房子를(●●●) 조른(●●)다.
『이애, 丁寧 春香이냐, 어여뿐(●●●) 人物을(●●●) 千萬이나(●●●●) 보았으되(●●●●) 저렇게(●●●) 어여쁜(●●●) 것은(●●) 처음(●●) 보는구나(●●●●) () 눈이(●●) 眩煌하야(●●●●) 말할(●●●) 수도(●●) 없으니(●●●●) 魂이(●●) 九泉에(●●●) 날라간(●●●) 듯하구나(●●●●) 잔말(●●●) 말고(●●) 내가(●●)어서 오란다고 곳 좀 불러 오너라』▶P121春香이(●●●) 元來(●●) 妓生(●●) 같으면(●●●●) 冊室(●●) 喻附가(●●●) 계신(●●) 바에야(●●●) () 떠러지기가(●●●●●●) 무섭게(●●●●) () 待令을(●●●) 시키마는(●●●●) 房子도(●●●) 그러치(●●●) 않을(●●) () 아는(●●) 터이라(●●●) 道令님의(●●●●) 吩咐를(●●●) 듣고(●●●) 매우(●●) 難處하여(●●●●) 春香의(●●●) 來歷을(●●●) 大網(●●) 아뢴다(●●●).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使 府使 郡守 縣監 여러 官長들이 無數히 보려하되……』

이렇게 하였다. 또 다음 다른 데에서 더 하나 뽑아 春香이가 卞府使에게 매를 맞고 獄에 갇히는 場面이다. 이것을 눈中花에서는

春香이 精神차려
『어머니 설어말고 氣體 安保하옵시면 罪 없는 春香 몸이 설마한들 죽소리까. 水火劒槍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 터이니 걱정 많으시고 집으로 가옵소서 萬一에 안 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한 말씀이나 지금으로 죽을 테니 나가소서 울음소리에 氣가 막혀 頃刻에 죽겠구려』
春香 母 할일 없어 獄中에 딸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 업더지며 잡바질제 그때 왔던 여러 夫人 春香 母를 이끌어서 집으로 나간 後에 春香이 설이 울며
『불쌍하신 우리 母親 아비 없이 나를 길러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내어 좋은 일은 못 보시고 獄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父母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더러운 년의 팔자로다. 香丹이 게 있느냐』
『예─』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P122-1 이윽고(●●●) 精神을 차려 獄門틈으로(●●●●●) 母親을(●●●) 부른다(●●●).
『어머니 설워마시고 氣體 安寧(●●)하옵소서(●●), 罪 없는 春香이가(●●) 설마한들 죽으리까 水火()槍 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아나서(●●●) 母親奉養할(●●●●●) 터이니 걱정 넘어(●●)말으시고 집으() ()아가옵소서. 萬一에 안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莫大할지라도(●●●●)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이 억색(●●)하여 氣가 마켜 죽게구려』
春香 母 이말(●●) 듯고(●●) 할일 없이 獄中에다 春香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悲悲切切斷腸懷가(●●●●●●●●) 淨凉路上魂顚倒라(●●●●●●●●) 업더질듯잡바질듯(●●●●●●●●) 집으로(●●●) 向하니라.(●●●●) 春香이(●●●) 母親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한숨을(●●●) 후유─(●●●) 쉬더니(●●●) 길이(●●) 嘆息을(●●●) 한다.(●●●)
天地間에(●●●●) 이내(●●) 몸이(●●) 父母恩惠(●●●●) 重하도다,(●●●●) 黃河같이(●●●●) 깊으신(●●●) 德澤,(●●●) 山갈이(●●●) 높고(●●) 높다.(●●●) 슬푸도다(●●●●) 우리 母親, 父親(●●)없이 날 기를제(●●●)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놓고(●●) 좋은 일은 못보시고 눈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母親(●●) 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樹欲靜而風不止하고(●●●●●●●●●●) 子欲養而親不來라,(●●●●●●●●) 半白(●●) 넘은(●●) 늙은(●●) 母親(●●) 누가(●●) 있어(●●) 泰養하나(●●●●) 내일은(●●●) 내가(●●) 알지(●●) 끝날(●●) 날이(●●) 망연하니(●●●●) 가련한(●●●) 母親身勢(●●●●) 어찌하면(●●●●) 좋을는지(●●●●). 香丹아 게 있나냐』

부르니

『예─ 여기(●●) 있읍니다(●●●●)

이렇게 하였다. 即 右에 圈点을 찍은 部分이 改訂 或 增補한 곳이거니와 全體를 通하여 大概 이런 程度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여기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춘향이가 변사도에게 불려 들어가서 관장에 대한 거역으로 처음에 군노방에 내쳐 태장 수도를 맞는다. 그럴 때에 호장이 사도에게 춘향이가 아직 나이 어려서 관가의 소중(所重)한 것을 모르고 그러한 것이니 한번 용서하면 자기가 잘 타일러 근시(近侍)케 하겠다 하니 사도가 도리어 좋아하여 그리하라 하고, 호장이 춘향에게로 나와 무엇을 수군 수군하니 춘향이가 다시 사도가 있는 상방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사도가 춘향이가 많은 마음을 돌렸는가 하여 무한히 좋아하면서 또 춘향에게 절을 굽히고 수청을 거행하라 달랜다. 그러나 춘향은 역시 거절하였음으로 다시 내려서 매를 쳤다 하였다. 이것은 본서가 앞에서와 같이 옥중화를 증수하는 태도에서 나온 결과이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춘향이가 마치 한번은 절을 굽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듯이 오해되어 편자는 춘향의 절개를 더욱 빛내주자 하는 의도에서 나왔겠지만, 결과는 도리어 그 반대가 됨을 면하지 못하였다. 본서는 즉 이러한 점이 가끔 있었다.
쪽수▶P122-2그런데 한 가지 여기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春香이가 卞使道에게 불려 들어가서 官長에 對한 拒逆으로 처음에 軍奴房에 내처 笞杖 數刀를 맞는다. 그럴 때에 戶長이 使道에게 春香이가 아직 나이 어려서 官家의 所重한 것▶P123-1을 모르고 그러한 것이니 한번 容恕하면 自己가 잘 타일러 近侍케 하겠다 하니 使道가 도리어 좋아하여 그리하라 하고, 戶長이 春香에게로 나와 무엇을 수군 수군하니 春香이가 다시 使道가 있는 上房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使道가 春香이가 많은 마음을 돌렸는가 하여 無限히 좋아하면서 또 春香에게 節을 굽히고 守廳을 舉行하라 달랜다. 그러나 春香은 亦是 拒絶하였음으로 다시 내려서 매를 쳤다 하였다. 이것은 本書가 앞에서와 같이 獄中花를 增修하는 態度에서 나온 結果이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春香이가 마치 한번은 節을 굽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 듯이 誤解되어 編者는 春香의 節介를 더욱 빛내여 주자 하는 意圖에서 나왔겠지만, 結果는 도리어 그 反對가 됨을 免하지 못하였다. 本書는 即 이러한 点이 가끔 있었다.







































본문3: 9. 倫理小說廣寒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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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4: 10. 增修春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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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5: 11. 우리들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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