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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본문5: 5.진단학회 창립)
(본문6-1: (1)동아일보(5월 9일): 진단학회의 창립(유종의 미가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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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1번={{TagSpage|224-4}}朝鮮과 및 隣近 文化를 硏究하는 學徒들의 大同的 結成으로 震檀學會가 創立되었다는 것은 昨紙에 報道한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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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2번={{TagSpage|224-5}}震檀 卽 朝鮮의 文化는 半萬載에 亘하여 그 燦然한 光華―四表에 퍼지므로, 東方 人文의 淵源을 짓고 또 中樞를 이루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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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3번={{TagSpage|224-6}}그러나 或은 廢墟의 草土 속에서 그 衰殘한 命脈조차 끊이게 되고, 或은 史乘의 煙墨 우에서 그 熹微한 痕跡을 겨우 保全한 今日에 있어서 粒粒이 收拾하야 文化의 體系를 完成코저 하는 것은 實로 우리의 苦待하던 일이요, 또한 그만큼 慶賀에 値할 일이라 할 것이다. 무릇 一民族의 社會學的 乃至 人類學的 價値性은 오직 그 文化로써만 評定하게 되는 것이니, 朝鮮民族의 文化史的 硏究는 果然 朝鮮民族 自體의 發展 生{{TagPage|225-1}}策을 爲하여서만도 重大한 意義를 가진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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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4번={{TagSpage|225-2}}날이 거듭할스록 朝鮮 乃至 東方 諸民族의 文化的 特殊性에 驚異의 눈을 뜨는 外人의 硏究熱이 거이 極度에 達하려는 學界의 世界的 雰圍氣를 돌아보면, 우리 學界의 蕭條와 寂寞이 더욱 우리로 하여금 憐愍의 情을 참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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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5번={{TagSpage|225-3}}또한 그 우에 學問의 純粹性을 잃어버리어, 그로 말미암아 된 朝鮮民族史의 誤謬된 論筆은 그 얼마이며, 거기 追隨 盲從한 錯覺的 認識은 그 어느 程度이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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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6번={{TagSpage|225-4}}그러므로 從來의 失望은 적은 것이 아니었고, 또한 憂慮와 嗟嘆이 깊었거니와, 이제 우리 學徒들의 學究的 奮發과 協助的 努力을 보게 되매, 이를 크게 말하면, 歷史的 劃期的 現象이라 할 것이요, 적게 말한대도 朝鮮 社會에 重大한 衝動을 준다 하리니, 어찌 恒茶飯的 祝言으로만 足할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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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7번={{TagSpage|225-5}}더욱이 同會에서는 年 四次 品位 있는 學報를 刊頒하며, 其他 諸事業으로 朝鮮 學界에 權威를 세우고 文化 硏究 乃至 向上에 貢獻이 있을 줄 믿거니와, 現代 科學的 方法에 依한 嚴肅하고 眞實한 硏究를 試하야 自別한 歷史性을 正觀하고 蕪雜한 文化相을 審察하는 때에 震檀의 悠久하고 絢麗한 文化는 비로소 躍如한 面目을 얻을 것이니, 우리는 此際에 企冀하는배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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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8번={{TagSpage|225-6}}대개 自負心의 强烈한 이 學者의 보배로운 特性인지는 모르거니와, 往往이 그것이 細少한 功名心과 짝하야 猜疑로 變할 때에 그것은 마침내 民族의 大生命을 戕害하고야 마는 것이니, 이는 朝鮮의 近世史가 明證하는 바요, 또 目下의 現實이 雄辯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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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9번={{TagSpage|225-7}}그런데 이에 우리 學者들이 서로 그 秘藏을 公開하고 共同 討議에 協力 相助하야, 오직 朝鮮 文化 그것의 基〿를 闡明함에만 精進하려는 것은 참으로 感賀할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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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10번={{TagSpage|225-8}}더구나 貧窮한 朝鮮 學者의 現實生活은 外國의 그들과 判異한 바 있어 協力 硏究란 것이 莫大한 意義와 必要가 있음을 切感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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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11번={{TagSpage|225-9}}그러므로 이 學會의 組織이 時宜에 應하야 그 얼마만한 價値를 自有하고 있음은 再言을 不要한다 하려니와, 우리는 이 學會에 有終의 美가 있기를 바라고 勸함과 아울러 이 機會에 一般 人士에게도 오래 가지고 오던 本懷의 一端을 披瀝하고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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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12번={{TagSpage|225-10}}어떠한 民族이고 偉大한 學者를 가진 民族은 優勝한 民族이다. 한 學者로 말미암아 그 民族 全體가 자랑을 받는 것은{{TagPage|226-1}} 그 例를 얼마든지 古에서 찾을 것이요 今에 또한 그 證을 얻을 것이다. 그리면 이 偉大한 學者는 어찌하야 나는 것인가. 그것은 첫재 그 自身이 天與의 才分을 가지고 不斷한 硏究를 거듭하는 것과, 둘재로 金力 其他로 周圍 社會의 熱心한 聲援이 있음으로써만 되는 것이다. 다른 民族은 그들 中에 있는 學者를 爲하야 저렇게들 아끼고 尊敬하고 援助하는 오늘날, 朝鮮 社會는 그들에게 무엇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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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원문13번={{TagSpage|226-2}}貴重한 文獻이 境外를 벗어나고, 苦心한 學徒가 泥中에 묻히도록 돌아볼 줄 모르는 朝鮮 社會는 이제 이런 學會의 創立과 함께 學者를 사랑할 줄 알아야겠고, 學界를 도울 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는 不朽의 盛事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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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1번=조선과 및 인근 문화를 연구하는 학도들의 대동적 결성으로 진단학회가 창립되었다는 것은 작지(昨紙)에 보도한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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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2번=진단 즉 조선의 문화는 반만재(半萬載)에 두루 그 찬연한 광화―사표(四表)에 퍼지므로, 동방 인문의 연원을 짓고 또 중추를 이루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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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3번=그러나 혹은 폐허의 초토 속에서 그 쇠잔한 명맥조차 끊기게 되고, 혹은 사승(史乘)의 연묵(煙墨) 위에서 그 희미한 흔적을 겨우 보전한 금일에 있어서 입립(粒粒)이 수습하여 문화의 체계를 완성하고자 하는 것은 실로 우리의 고대하던 일이요, 또한 그만큼 경하에 값할 일이라 할 것이다. 무릇 일(一)민족의 사회학적 내지 인류학적 가치성은 오직 그 문화로써만 평정하게 되는 것이니, 조선민족의 문화사적 연구는 과연 조선민족 자체의 발전 생책(生策)을 위하여서만도 중대한 의의를 가진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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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4번=날이 거듭할수록 조선 내지 동방 제민족의 문화적 특수성에 경이의 눈을 뜨는 외인의 연구열이 거의 극도에 달하려는 학계의 세계적 분위기를 돌아보면, 우리 학계의 소조(蕭條)와 적막이 더욱 우리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참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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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5번=또한 그 위에 학문의 순수성을 잃어버려, 그로 말미암아 된 조선민족사의 오류된 논필은 그 얼마이며, 거기 추수 맹종한 착각적 인식은 그 어느 정도이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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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6번=그러므로 종래의 실망은 적은 것이 아니었고, 또한 우려와 차탄(嗟嘆)이 깊었거니와, 이제 우리 학도들의 학구적 분발과 협조적 노력을 보게 되니, 이를 크게 말하면, 역사적 획기적 현상이라 할 것이요, 적게 말한대도 조선 사회에 중대한 충동을 준다 하니, 어찌 항다반적 축언으로만 족할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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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7번=더욱이 동회에서는 연 4차 품위 있는 학보를 간반(刊頒)하며, 기타 제사업으로 조선 학계에 권위를 세우고 문화 연구 내지 향상에 공헌이 있을 줄 믿거니와, 현대 과학적 방법에 의한 엄숙하고 진실한 연구를 시도하여 자별한 역사성을 정관(正觀)하고 무잡한 문화상(相)을 심찰하는 때에 진단의 유구하고 현려(絢麗)한 문화는 비로소 약여한 면목을 얻을 것이니, 우리는 차제에 기기(企冀)하는 바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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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8번=대개 자부심의 강렬한 이 학자의 보배로운 특성인지는 모르거니와, 왕왕 그것이 세소(細少)한 공명심과 짝하여 시의로 변할 때에 그것은 마침내 민족의 대생명을 장해하고야 마는 것이니, 이는 조선의 근세사가 명증하는 바요, 또 목하(目下)의 현실이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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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9번=그런데 이에 우리 학자들이 서로 그 비장(秘藏)을 공개하고 공동 토의에 협력 상조하여, 오직 조선 문화 그것의 기〿를 천명함에만 정진하려는 것은 참으로 감하할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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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10번=더구나 빈궁한 조선 학자의 현실생활은 외국의 그들과 판이한 바 있어 협력 연구란 것이 막대한 의의와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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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11번=그러므로 이 학회의 조직이 시의에 응하여 그 얼마만한 가치를 자유(自有)하고 있음은 재언을 불요한다 하려니와, 우리는 이 학회에 유종의 미가 있기를 바라고 권함과 아울러 이 기회에 일반 인사에게도 오래 가지고 오던 본회(本懷)의 일단을 피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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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12번=어떠한 민족이고 위대한 학자를 가진 민족은 우승한 민족이다. 한 학자로 말미암아 그 민족 전체가 자랑을 받는 것은 그 예를 얼마든지 옛날에서 찾을 것이요 오늘날에 또한 그 증거를 얻을 것이다. 그리면 이 위대한 학자는 어찌하여 나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 그 자신이 천여의 재분을 가지고 부단한 연구를 거듭하는 것과, 둘째로 금력 기타로 주위 사회의 열심한 성원이 있음으로써만 되는 것이다. 다른 민족은 그들 중에 있는 학자를 위하여 저렇게들 아끼고 존경하고 원조하는 오늘날, 조선 사회는 그들에게 무엇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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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1해독문13번=귀중한 문헌이 경외를 벗어나고, 고심한 학도가 이중(泥中)에 묻히도록 돌아볼 줄 모르는 조선 사회는 이제 이런 학회의 창립과 함께 학자를 사랑할 줄 알아야겠고, 학계를 도울 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는 불후의 성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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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5일 (화) 20:1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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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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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彙報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진단학보 1 발행기관
저자 역자 집필일자 게재연월 1934년11월
시작쪽 221쪽 종료쪽 228쪽 전체쪽 8쪽 연재여부 범주 휘보 분야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목차


[[%ED%9C%98%EB%B3%B4#본문6-2: (2)조선중앙일보(5월 10일): 조선 문화 연구열―진단학회(●●●●) 창립을(●●●) 듣고(●●)|(2)조선중앙일보(5월 10일): 조선 문화 연구열―진단학회(●●●●) 창립을(●●●) 듣고(●●)]]






본문


본문1: 1.여유당전서의 간행


부내 황금정(黃金町) 2정목(丁目) 23번지에 있는 신조선사에서는 연래 숙계(宿計) 중이던 다산 정약용의 유저(遺著) 「여유당전서」의 간행을 착수하게 되었다는 희소식이 들린다. 다산 정약용은 말할 것도 없이 이조 말기의 석학으로, 조선의 학술을 거의 집대성하다시피한 한 위인이거니와, 그의 유저(遺著)가 금번 신조선사의 헌신적 노력에 의하여, 전부 간행하기로 된 것은 조선 학계를 위하여, 또 조선 출판계를 위하여, 실로 경하하여 마지 않는 바이다. 물론 그 유저 중의 몇몇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강역고, 아언각비 등과 같은 것)은 기왕에 부분적으로 간행되어 세간에 유포되어 있지만, 그 외의 미간의 중요한 유저가 오히려 많으므로, 해당 출판사에서는 기간 미간의 것을 불문하고 다산 자정(自定)의 전서를 대본으로 삼아 모두 180여권의 거질(鉅帙)을 70책에 나누어 매월 두 책(1책 대(代) 1원)씩 월부 판매로 간행하기로 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9월 30일부터 제1회의 배본을 시행한다고. 그 전서의 주요 목차는 다음과 같다 한다.
쪽수▶P221-1府內 黃金町 二丁目 二十三番地에 있는 新朝鮮社에서는 年來 宿計 中이던 茶山 丁若鏞의 遺著 「與猶堂全書」의 刊行을 着手하게 되었다는 喜消息이 들린다. 茶山 丁若鏞은 말할 것도 없이 李朝 末期의 碩學으로, 朝鮮의 學術을 거이 集大成하다싶이 한 一 偉人이어니와, 그의 遺著가 今番 新朝鮮社의 獻身的 努力에 依하야, 全部 刊行하기로 된 것은 朝鮮 學界를 爲하야, 또 朝鮮 出版界를 爲하야, 實로 慶賀하여 마지 않는 바이다. 勿論 그 遺著 中의 몇몇 (經世遺表, 牧民心書, 欽欽新書, 疆域考, 雅言覺非 等과 같은 것)은 旣徃에 部分的으로 刊行되어 世間에 流布되어 있지만, 其外의 未刊의 重要한 遺著가 오히려 많음으로, 該社에서는 旣刊 未刊의 것을 不間하고 茶山 自定의 全書를 臺本으로 삼아 共 百八十餘卷의 鉅帙을 七十冊에 分하야 每月 二冊(一冊代 一圓)씩 月賦 販賣로 刊行하기로 하였다 한다. 그리하야 九月 三十日부터 第一回의 配本을 始行한다고. 그 全書의 主要 目次는 左와 같다 한다.

1. 경세유표
1. 목민심서
1. 흠흠신서
1. 강역고
1. 대동수경
1. 아언각비
1. 문헌비고정오
1. 풍수집의
1. 마과회통
1. 의령
을(乙). 경집
1. 염씨고금문소증
1. 매씨서평
병(丙). 예론집
정(丁). 악집
1. 악서고존
무(戊). 문집

쪽수▶P221-2

一. 經世遺表
一. 牧民心書
一. 欽欽新書
一. 疆域考
一. 大東水經
一. 雅言覺非
一. 文獻備考正誤
一. 風水集議
一. 麻科會通
一. 醫零
乙. 經集
一. 閻氏古今文疏證
一. 梅氏書平
丙. 禮論集
丁. 樂集
一. 樂書孤存
戊. 文集




































본문2: 2.신간서목


동경통지 최남선 편 20,00 경주향교
조선가요집성(고가편 제1집) 김태준 편 20,80 조선어문학회
완당전집 김정희 저 15,00 영생당
대천록 이원영 편 3,00 박문서관
백제사연구 이마니시 류(今西龍) 저 5,00 근택출판부
조선사(제5편 제3권)조선사편수회 2,50 총독부
조선사(제3편 제5권) 조선사편수회 2,50 총독부
조선사(제5편 제4권) 조선사편수회 2,50 총독부
당장서첩(조선사료총간 제4) 조선사편수회 총독부
잡고 제6집 상권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저 4,50 근택출판부
잡고 제6집 하권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저 3,00 근택출판부
경성부사(제1권) 경성부사편찬소 비매품 경성부
Chang, Tien-Tse(장천택)-Sino-Portuguese Trade from 1514 to 1644(중포통상연구) A Synthesis of Portuguese & Chinese sources. Leyden, 1934 pp. 157.
Cressey, G. B.-China's Geographic Foundations. A Survey of the Land & lts People, N. W. 1934. pp. 436, with Illustrations & maps.

쪽수▶P221-3

東京通志 崔南善 編 二〇, 〇〇 慶州鄉校
朝鮮歌謠集成(古歌編 第一輯) 金台俊 編 二〇, 八〇 朝鮮語文學會▶P222-1
阮堂全集 金正喜 著 一五,〇〇 永生堂
待闡錄 李源永 編 三,〇〇 博文書館
百濟史硏究 今西龍 著 五,〇〇 近澤出版部
朝鮮史(第五編 第三卷)朝鮮史編修會 二,五〇 總督府
(第三編 第五卷) 同上 二,五〇 同上
(第五編 第四卷) 同上 二,五〇 同上
唐將書帖(朝鮮史料叢刊 第四) 同上 同上
雜攷 第六輯 上卷 鮎貝房之進 著 四,五〇 近澤出版部
同 第六輯 下卷 同 二,〇〇 同
京城府史(第一卷) 京城府史編纂所 非賣品 京城府
Chang, Tien-Tse(張天澤)-Sino-Portuguese Trade from 1514 to 1644(中葡通商硏究) A Synthesis of Portuguese & Chinese sources. Leyden, 1934 pp. 157.
Cressey, G. B.-China's Geographic Foundations. A Survey of the Land & lts People, N. W. 1934. pp. 436, with Illustrations & maps.







































본문3: 3.정기간행서목


조선민속(제2호)
쪽수▶P222-2朝鮮民俗(第二號)

강계채삼자의 습속 손진태
동래야유대사 송석하
성천민속23 연영화
부요여자탄 한기승
出産に關する民俗(京城) 김문경
村祭の二重組織 아키바 다카시(秋葉隆)

쪽수▶P222-3

江界採蔘者의 習俗 孫晋泰
東萊野遊臺詞 宋錫夏
成川民俗二三 連榮嬅
婦謠女子嘆 韓基升
出産に關する民俗(京城) 金文卿
村祭の二重組織 秋葉隆

보전학회 논집(제1집)
쪽수▶P222-4普專學會 論集(第一輯)

거문도외교사 渡邊勝美
李朝末期における朝鮮の貨幣問題 김광진
경음론 박승빈
조선문 횡서에 대한 실험 오천석

쪽수▶P222-5

巨文島外交史 渡邊勝美
李朝末期における朝鮮の貨幣問題 金光鎭
硬音論 朴勝彬
朝鮮文 橫書에 對한 實驗 吳天錫

동양학보(제21권 제3호)
쪽수▶P222-6東洋學報(第貳拾壹卷 第三號)

白江及び炭峴について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쪽수▶P222-7

白江及び炭峴について 池內宏

청구학총(제16호)
쪽수▶P222-8靑丘學叢(第十六號)

고려병제관견(하) 슌스케 나이토(內藤雋輔)
朝鮮孝宗朝に於ける兩次の滿洲出兵に就いて(下)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田艮齋先生學案一班(中) 洪〿
辛未定州城攻圍圖に就いて 다가와 고조(田川孝三)
廷豊覺淵寺通一大師塔碑の年時と其の撰者に就いて 가쓰라기 스에하루(葛城末治)▶P223-1
東夫餘の位置と高句麗の開國傳説 島田 好
明治維新期(に於ける) 對州藩財政及ひ藩債に就いて 다보하시 기요시(田保橋 潔)

쪽수▶P222-9

高麗兵制管見(下) 內藤雋輔
朝鮮孝宗朝に於ける兩次の滿洲出兵に就いて(下) 稻葉岩吉
田艮齋先生學案一班(中) 洪〿
辛未定州城攻圍圖に就いて 田川孝三
廷豊覺淵寺通一大師塔碑の年時と其の撰者に就いて 葛城末治▶P223-1
東夫餘の位置と高句麗の開國傳説 島田 好
明治維新期(に於ける) 對州藩財政及ひ藩債に就いて 田保橋 潔

만주지리역사연구보고(제14)
쪽수▶P223-2滿洲地理歷史硏究報告(第十四)

百濟滅亡後の動亂及ひ唐·羅·日三國の關係 이케우치 히로시(池內 宏)
明初の滿洲經略(上) 기요시 와다(和田 淸)

쪽수▶P223-3

百濟滅亡後の動亂及ひ唐·羅·日三國の關係 池內 宏
明初の滿洲經略(上) 和田 淸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 A. S. Vol. XXIII Seoul 1934
쪽수▶P223-4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 A. S. Vol. XXIII Seoul 1934

Korean Boats and Ships by Horace H. Underwood ph. D. From Koryu Tokyung by Soh Keung, Jimperial Chinese Envoy to Korea 1124 A.D., Translated by prof. L.G.Paik.

쪽수▶P223-5

Korean Boats and Ships by Horace H. Underwood ph. D. From Koryu Tokyung by Soh Keung, Jimperial Chinese Envoy to Korea 1124 A.D., Translated by prof. L.G.Paik.








































본문4: 4.강연회


부내 황금정 2정목에 있는 신조선사의 주최로 거(去) 9월 8일 오후 8시에 종로중앙기독교청년회 강당에서 다산선생 몰후(殁後) 99년 기념강연회를 열었는데, 연사 및 연제(演題)는 다음과 같다.
쪽수▶P223-6府內 黃金町 二丁目에 있는 新朝鲜社의 主催로 去 九月 八日 午後 八時에 鍾路中央基督敎靑年會 講堂에서 茶山先生 殁後 九十九年 紀念講演會를 열었는데, 演士 及 演題는 다음과 같다.

이조 유학과 다산선생 현상윤
조선사(史)상의 정다산의 지위 안재홍
다산선생과 조선학 정인보

쪽수▶P223-7

李朝 儒學과 茶山先生 玄相允
朝鮮史上의 丁茶山의 地位 安在鴻
茶山先生과 朝鮮學 鄭寅普

조선계의 동지들의 주최로 거(去) 9월 22일 오후 4시에 부내 중동학교에서 간담회를 열고, 다음과 같은 강화회가 있었다.
쪽수▶P223-8史學界의 同志들의 主催로 去九月 廿二日 午後 四時에 府内 中東學校에서 懇談會를 열고, 다음과 같은 講話會가 있었다.

삼한 위치 문제에 대하여 이병도

쪽수▶P223-9

三韓 位置 問題에 對하야 李丙燾












































본문5: 5.진단학회 창립


근래 조선(문화)을 연구하는 경향과 성열(誠熱)이 날로 높아가는 상태에 있는 것은 참으로 경하에 견디지 못하는 바이나, 그런 경향과 성열이 조선인 자체에서보다 조선인 이외의 인사 사이에 더 많고 큼을 발견하게 된다. 그 까닭은 우리 스스로 냉정히 캐어 볼 필요가 있지만, 어떻든 우리는 그런 연구까지 남에게 밀어 맡기어, 오직 그들의 노력과 성과만을 기다리고 힘입기를 바라는 자가 아니다. 비록 우리의 힘이 빈약하고 연구가 졸렬할지라도, 자〿 자진하여 또 서로 협력하여, 조선 문화를 관척(關拓) 발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 될 의무와 사명을 가진 것이다. 어느 사회의 문화든지 그것을 진실 또 정확히 검토 인식하고, 또 이를 향상 발도함에는 그 사회에 생을 받고, 그 풍송 습관 중에서 자라나고, 그 언어를 말하는 사회의 사람의 노력과 성열에 기대함이 더 큰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들 사이에는 그러한 노력과 성열을 가지고 용진하는 자 개별적으로 보아 그 수―매우 영성하고, 더구나 단체적으로 볼 때 적막함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다. 광범한 의의의 조선 문화 연구를 목적으로 한 학회나 기관은 일찍이 우리 사회에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를 보지 못하였다.
쪽수▶P223-10近來 朝鮮(文化)을 硏究하는 傾向과 誠熱이 날로 높아가는 狀態에 있는 것은 참으로 慶賀에 견디지 못하는 바이나, 그런 傾向과 誠熱이 朝鮮人 自體에서보다 朝鮮人 以外의 人士 間에 더 많고 큼을 發見하게 된다. 그 까닭은 우리 스스로 冷靜히 캐어 볼 必要가 있지만, 어떻든 우리는 그런 硏究까지 남에게 밀어 맡기어, 오직 그들의 努力과 成果만을 기다리고 힘입기를 바라는 者이 아니다. 비록 우리의 힘이 貧弱하고 硏究가 拙劣할지라도, 自〿 自進하야 또 서로 協力하야, 朝鮮 文化를 關拓 發展 向上시키지 않으면 안 될 義務와 使命을 가진 것이다. 어느 社會의 文化든지 그것을 眞實 且 正確히 檢討 認識하고, 또 이를 向上 發途함에는 그 社會에 生을 受하고, 그 風俗 習慣 中에서 자라나고, 그 言語를 말하는 社會의 사람의 努力과 誠熱에 期待함이 더 큰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들 사이에는 그러한 努力과 誠熱을 가지고 勇進하는 者 個別的으로 보아 其數―매우 零星하고, 더구나 團體的으로 볼 때 寂寞함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다. 廣汎한 意義의 朝鮮 文化 硏究를 目的으로 한 學會나 機關은 일즉이 우리 社會에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를 보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런 의미의 학술단체를 조직하기 위하여 은근히 고심한 지 이미 오래었다. 그러나 종종의 사정으로 뜻과 같이 되지 못하였다. 유지(有志)면 사경성(事竟成)이라고, 올 여름에 이르러 우리는 한성도서주식회사의 열렬한 후원을 얻어, 마침내 학회 기성의 숙지를 관철하는 기쁨에 부딪쳤다. 그리하여 우리 동지는 금년 5월 7일 오후 5시경에 경성 장곡천정 50번지 푸라다아느 다방에 모여, 본 학회 발기식과 나란히 창립총회 열고, 회명 회칙 회무의 규정과 회원 위원의 선정과 및 학보 발간에 관하여 토의하였다. 회명은 ‘진단학회’, 회칙은 총 10조로 진단의 의의와 10조의 내용은 본보에 따로 게시한 바와 같고, 회의 목적과 사〿은 역시 회칙에 보임과 같이 조선 및 인근 문화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여, 매년 4회(계간) 잡지의 발행과 수시 강연회의 개최 및 기타 필요를 따라 회무를 확장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우선 금년 안으로 학보의 창간호를 발행하기로 내정하였다. 그리고 회무를 담당할 상무위원은 회원 중에서 김태준, 이병도, 이윤재, 이희승, 손진태, 조윤제 등 6인을 선정하고, 본회의 사무소는 임시로 경성부 계동 98번지 이병도씨 집에 두기로 하였다. 8시를 지나 폐회하게 되었다.
쪽수▶P224-1吾人은 이런 意味의 學術團體를 組織하기 爲하야 慇懃히 苦心한 지 이미 오래었다. 그러나 種種의 事情으로 뜻과 같이 되지 못하였다. 有志면 事竟成이라고, 今夏에 이르러 吾人은 漢城圖書株式會社의 熱烈한 後援을 얻어, 마침내 學會 期成의 宿志를 貫徹하는 기쁨에 부딛첬다. 그리하야 우리 同志는 今年 五月 七日 午後 五時頃에 京城 長谷川町 五十番地 푸라다아느 茶房에 모이어, 本 學會 發起式 並 創立總會 열고, 會名 會則 會務의 規定과 會員 委員의 選定과 및 學報 發刊에 關하야 討議하였다. 會名은 「震檀學會」, 會則은 總 十條로 震檀의 意義와 十條의 內容은 本報에 別히 揭示한 바와 같고, 會의 目的과 事〿은 역시 會則에 보임과 같이 朝鮮 及 隣近 文化의 硏究를 目的으로 하야, 每年 四回(季刊) 雜誌의 發行과 隨時 講演會의 開催 및 其他 必要를 따라 會務를 擴張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야 于先 今年 안으로 學報의 創刊號를 發行하기로 內定하였다. 그리고 會務를 擔當할 常務委員은 會員 中에서 金台俊, 李丙燾, 李允宰, 李熙昇, 孫晉泰, 趙潤濟 等 六人을 選定하고, 本會의 事務所는 臨時로 京城府 桂洞 九十八番地 李丙燾氏 家에 置하기로 하였다. 八時를 지나 閉會하게 되었다.
발기인 씨명
쪽수▶P224-2發起人 氏名

고유섭, 김두헌, 김상기, 김윤경, 김태준, 김효경, 이병기, 이병도, 이상백, 이선근, 이윤재, 이은상, 이재욱, 이희승, 문일평, 박문규, 백낙준, 손진태, 송석하, 신석호, 우호익, 조윤제, 최현배, 홍순혁. (가나다 순)
이상 24인

쪽수▶P224-3

高裕燮, 金斗憲, 金庠基, 金允經, 金台俊, 金孝敬, 李秉岐, 李丙燾, 李相佰, 李瑄根, 李允宰, 李殷相, 李在郁, 李熙昇, 文一平, 朴文圭, 白樂濬, 孫晋泰, 宋錫夏, 申奭鎬, 禹浩翊, 趙潤濟, 崔鉉培, 洪淳赫. (가나다 順)
以上 二十四人












































본문6: 6.진단학회 창립에 대한 세 신간의 사설















































본문6-1: (1)동아일보(5월 9일): 진단학회의 창립(유종의 미가 있으라)


조선과 및 인근 문화를 연구하는 학도들의 대동적 결성으로 진단학회가 창립되었다는 것은 작지(昨紙)에 보도한 바와 같다.
쪽수▶P224-4朝鮮과 및 隣近 文化를 硏究하는 學徒들의 大同的 結成으로 震檀學會가 創立되었다는 것은 昨紙에 報道한 바와 같다.
진단 즉 조선의 문화는 반만재(半萬載)에 두루 그 찬연한 광화―사표(四表)에 퍼지므로, 동방 인문의 연원을 짓고 또 중추를 이루었던 것이다.
쪽수▶P224-5震檀 卽 朝鮮의 文化는 半萬載에 亘하여 그 燦然한 光華―四表에 퍼지므로, 東方 人文의 淵源을 짓고 또 中樞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혹은 폐허의 초토 속에서 그 쇠잔한 명맥조차 끊기게 되고, 혹은 사승(史乘)의 연묵(煙墨) 위에서 그 희미한 흔적을 겨우 보전한 금일에 있어서 입립(粒粒)이 수습하여 문화의 체계를 완성하고자 하는 것은 실로 우리의 고대하던 일이요, 또한 그만큼 경하에 값할 일이라 할 것이다. 무릇 일(一)민족의 사회학적 내지 인류학적 가치성은 오직 그 문화로써만 평정하게 되는 것이니, 조선민족의 문화사적 연구는 과연 조선민족 자체의 발전 생책(生策)을 위하여서만도 중대한 의의를 가진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쪽수▶P224-6그러나 或은 廢墟의 草土 속에서 그 衰殘한 命脈조차 끊이게 되고, 或은 史乘의 煙墨 우에서 그 熹微한 痕跡을 겨우 保全한 今日에 있어서 粒粒이 收拾하야 文化의 體系를 完成코저 하는 것은 實로 우리의 苦待하던 일이요, 또한 그만큼 慶賀에 値할 일이라 할 것이다. 무릇 一民族의 社會學的 乃至 人類學的 價値性은 오직 그 文化로써만 評定하게 되는 것이니, 朝鮮民族의 文化史的 硏究는 果然 朝鮮民族 自體의 發展 生▶P225-1策을 爲하여서만도 重大한 意義를 가진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날이 거듭할수록 조선 내지 동방 제민족의 문화적 특수성에 경이의 눈을 뜨는 외인의 연구열이 거의 극도에 달하려는 학계의 세계적 분위기를 돌아보면, 우리 학계의 소조(蕭條)와 적막이 더욱 우리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참지 못하게 한다.
쪽수▶P225-2날이 거듭할스록 朝鮮 乃至 東方 諸民族의 文化的 特殊性에 驚異의 눈을 뜨는 外人의 硏究熱이 거이 極度에 達하려는 學界의 世界的 雰圍氣를 돌아보면, 우리 學界의 蕭條와 寂寞이 더욱 우리로 하여금 憐愍의 情을 참지 못하게 한다.
또한 그 위에 학문의 순수성을 잃어버려, 그로 말미암아 된 조선민족사의 오류된 논필은 그 얼마이며, 거기 추수 맹종한 착각적 인식은 그 어느 정도이뇨.
쪽수▶P225-3또한 그 우에 學問의 純粹性을 잃어버리어, 그로 말미암아 된 朝鮮民族史의 誤謬된 論筆은 그 얼마이며, 거기 追隨 盲從한 錯覺的 認識은 그 어느 程度이뇨.
그러므로 종래의 실망은 적은 것이 아니었고, 또한 우려와 차탄(嗟嘆)이 깊었거니와, 이제 우리 학도들의 학구적 분발과 협조적 노력을 보게 되니, 이를 크게 말하면, 역사적 획기적 현상이라 할 것이요, 적게 말한대도 조선 사회에 중대한 충동을 준다 하니, 어찌 항다반적 축언으로만 족할 것이랴.
쪽수▶P225-4그러므로 從來의 失望은 적은 것이 아니었고, 또한 憂慮와 嗟嘆이 깊었거니와, 이제 우리 學徒들의 學究的 奮發과 協助的 努力을 보게 되매, 이를 크게 말하면, 歷史的 劃期的 現象이라 할 것이요, 적게 말한대도 朝鮮 社會에 重大한 衝動을 준다 하리니, 어찌 恒茶飯的 祝言으로만 足할 것이랴.
더욱이 동회에서는 연 4차 품위 있는 학보를 간반(刊頒)하며, 기타 제사업으로 조선 학계에 권위를 세우고 문화 연구 내지 향상에 공헌이 있을 줄 믿거니와, 현대 과학적 방법에 의한 엄숙하고 진실한 연구를 시도하여 자별한 역사성을 정관(正觀)하고 무잡한 문화상(相)을 심찰하는 때에 진단의 유구하고 현려(絢麗)한 문화는 비로소 약여한 면목을 얻을 것이니, 우리는 차제에 기기(企冀)하는 바 큰 것이다
쪽수▶P225-5더욱이 同會에서는 年 四次 品位 있는 學報를 刊頒하며, 其他 諸事業으로 朝鮮 學界에 權威를 세우고 文化 硏究 乃至 向上에 貢獻이 있을 줄 믿거니와, 現代 科學的 方法에 依한 嚴肅하고 眞實한 硏究를 試하야 自別한 歷史性을 正觀하고 蕪雜한 文化相을 審察하는 때에 震檀의 悠久하고 絢麗한 文化는 비로소 躍如한 面目을 얻을 것이니, 우리는 此際에 企冀하는배 큰 것이다
대개 자부심의 강렬한 이 학자의 보배로운 특성인지는 모르거니와, 왕왕 그것이 세소(細少)한 공명심과 짝하여 시의로 변할 때에 그것은 마침내 민족의 대생명을 장해하고야 마는 것이니, 이는 조선의 근세사가 명증하는 바요, 또 목하(目下)의 현실이 웅변하고 있다.
쪽수▶P225-6대개 自負心의 强烈한 이 學者의 보배로운 特性인지는 모르거니와, 往往이 그것이 細少한 功名心과 짝하야 猜疑로 變할 때에 그것은 마침내 民族의 大生命을 戕害하고야 마는 것이니, 이는 朝鮮의 近世史가 明證하는 바요, 또 目下의 現實이 雄辯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우리 학자들이 서로 그 비장(秘藏)을 공개하고 공동 토의에 협력 상조하여, 오직 조선 문화 그것의 기〿를 천명함에만 정진하려는 것은 참으로 감하할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쪽수▶P225-7그런데 이에 우리 學者들이 서로 그 秘藏을 公開하고 共同 討議에 協力 相助하야, 오직 朝鮮 文化 그것의 基〿를 闡明함에만 精進하려는 것은 참으로 感賀할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빈궁한 조선 학자의 현실생활은 외국의 그들과 판이한 바 있어 협력 연구란 것이 막대한 의의와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게 한다.
쪽수▶P225-8더구나 貧窮한 朝鮮 學者의 現實生活은 外國의 그들과 判異한 바 있어 協力 硏究란 것이 莫大한 意義와 必要가 있음을 切感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학회의 조직이 시의에 응하여 그 얼마만한 가치를 자유(自有)하고 있음은 재언을 불요한다 하려니와, 우리는 이 학회에 유종의 미가 있기를 바라고 권함과 아울러 이 기회에 일반 인사에게도 오래 가지고 오던 본회(本懷)의 일단을 피력하고자 한다.
쪽수▶P225-9그러므로 이 學會의 組織이 時宜에 應하야 그 얼마만한 價値를 自有하고 있음은 再言을 不要한다 하려니와, 우리는 이 學會에 有終의 美가 있기를 바라고 勸함과 아울러 이 機會에 一般 人士에게도 오래 가지고 오던 本懷의 一端을 披瀝하고저 한다.
어떠한 민족이고 위대한 학자를 가진 민족은 우승한 민족이다. 한 학자로 말미암아 그 민족 전체가 자랑을 받는 것은 그 예를 얼마든지 옛날에서 찾을 것이요 오늘날에 또한 그 증거를 얻을 것이다. 그리면 이 위대한 학자는 어찌하여 나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 그 자신이 천여의 재분을 가지고 부단한 연구를 거듭하는 것과, 둘째로 금력 기타로 주위 사회의 열심한 성원이 있음으로써만 되는 것이다. 다른 민족은 그들 중에 있는 학자를 위하여 저렇게들 아끼고 존경하고 원조하는 오늘날, 조선 사회는 그들에게 무엇을 주는가.
쪽수▶P225-10어떠한 民族이고 偉大한 學者를 가진 民族은 優勝한 民族이다. 한 學者로 말미암아 그 民族 全體가 자랑을 받는 것은▶P226-1 그 例를 얼마든지 古에서 찾을 것이요 今에 또한 그 證을 얻을 것이다. 그리면 이 偉大한 學者는 어찌하야 나는 것인가. 그것은 첫재 그 自身이 天與의 才分을 가지고 不斷한 硏究를 거듭하는 것과, 둘재로 金力 其他로 周圍 社會의 熱心한 聲援이 있음으로써만 되는 것이다. 다른 民族은 그들 中에 있는 學者를 爲하야 저렇게들 아끼고 尊敬하고 援助하는 오늘날, 朝鮮 社會는 그들에게 무엇을 주는가.
귀중한 문헌이 경외를 벗어나고, 고심한 학도가 이중(泥中)에 묻히도록 돌아볼 줄 모르는 조선 사회는 이제 이런 학회의 창립과 함께 학자를 사랑할 줄 알아야겠고, 학계를 도울 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는 불후의 성사이기 때문이다.
쪽수▶P226-2貴重한 文獻이 境外를 벗어나고, 苦心한 學徒가 泥中에 묻히도록 돌아볼 줄 모르는 朝鮮 社會는 이제 이런 學會의 創立과 함께 學者를 사랑할 줄 알아야겠고, 學界를 도울 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는 不朽의 盛事이기 때문이다.




























본문6-2: (2)조선중앙일보(5월 10일): 조선 문화 연구열―진단학회(●●●●) 창립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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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6-3: (3)조선일보(5월 10일): 조선 문화의 과학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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