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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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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3일 (목) 22:4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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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병철(李秉哲)
리병철.png
출처 : https://www.siyoillib.com/ReadingPoem/AuthorDetail?dbid=478
 
한글명 리병철 한자명 李秉哲 영문명 Ri Pyongchol 가나명 이칭 풍림(風林)
성별 남성 생년 1921년 몰년 1995년 출신지 경상북도 영양 전공 문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경상북도 영양 출신의 월북 시인, 작가, 기자. 별명은 풍림(風林).


생애


출생과 성장

1921년 6월 9일 빈농 집안의 경상남도 영양 태생. 15살에 상경 후 진학하고자 하였으나 경제적 사정으로 만주로 가 유리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중등 과정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마르크수주의 사상에 빠지게 된다. 서울로 돌아와 1940년 당시 혜화전문학교기관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한글연구가인 고모부 서승효인물의 민족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1943년 『조광』에 「낙향소식」 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월북 이전

1945년 8월에 「새벽」,「소」를 발표하였으며, 1945년 좌익문학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였다. 1946년 김상훈인물, 유진오인물, 김상훈인물, 박산운인물, 김광현인물 등과 함께 공동시집 『전위시인집』을 발간하였다. 1948년에 이화여중기관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49년 잡지 『신천지』에서 일하였다. 1949년에 리병철은 리용악인물도 연루되었던 남로당 서울시 문련 예술과 사건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월북 이후

불온 삐라 살포의 중간 책임을 맡고 있었던 리용악인물의 지시로 리병철은 남한 체제를 부정하는 시를 썼고, 이로 인해 7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기관에 복역을 하게 된다. 6.25 전쟁 때 북한이 서울을 점령한 후 석방되어 가족과 함께 바로 월북하였다. 한국전쟁시기 종군작가로 참전하여 북한체제 이념을 전쟁승리로 연결시키는 작품을 창작하였다. 시 「종군작가는 손님일 수 없다」는 '1951년 7월 전선동부에서'라는 설명이 붙은 작품으로 병사처럼 무기를 들고 직접 싸우지 못하는 아쉬움을 통해 전투의지를 고취시켰다. 이후 로동신문사 군사생활부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문예총 문학동맹과 조선작가동맹 시분과 지도원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12월부터 교통성 파견작가로 청진철도관리국 산하 직장에서 생활하였으며, 청진제강소에 파견되어 노동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작품활동

북한에서의 작품활동은 1995년 작고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1953년 남로당 서울시 문련예술과사건사건에 연루되지 않고 무사히 넘겼으며 북한문예총기관지인 『조선문학』에 「내일을 위하여」를 발표하였다. 대부분의 작품은 『조선문학』에 발표되어서 게재지를 생략하고 작품명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957년 「환갑날」, 「휴가를 두고」, 「신혼부부」를 발표하였고, 1958년 「백령임 고개」, 「대열」을 발표, 1959년 「잠들 수 없구나」, 1960년 「붉은 언덕에서」, 「쏘비에트의 마음」(『청년문학』), 1961년 「새역사 첫장을 넘기며」, 「비단을 위하여」, 「하나가 천을 이기는」, 「더 늙을 수는 없다」, 1962년 「불멸의 이름 권영력」, 「탄부의 기쁨」, 1981년 「탄생」, 1982년 「긍지」, 1987년 「우리는 아침에 선다」, 1988년 「그들은 구면이었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다」 등이다.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Person: 홍길동 Group: ○○학회 A isMemberOf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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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