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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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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북한의 정치인 겸 문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본명은 한병도(韓秉道)이다. 한설야 이외에도 설야(雪野)·만년설(萬年雪)·한형종(韓炯宗)·김덕혜(金德惠)·윤영순(尹英順)·H생 등의 필명을 사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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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4일 (화) 23: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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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야 (韓雪野)
한설야.jpg
출처 : 김성동, "광복 전 ‘경향문학’ 거목 한설야 (하)", 『주간경향』, 2009.04.14. 820호, 『위클리경』online, 주간경향.
 
한글명 한설야[1] 한자명 韓雪野 영문명 가나명 이칭 설야(雪野)·만년설(萬年雪)·한형종(韓炯宗) 김덕혜(金德惠)·윤영순(尹英順)·H생
성별 남성 생년 1900년 몰년 1976년 출신지 함경남도 함흥군 주서면 하구리 503번지 (現 함경남도 함주군 주서리) 전공 사회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북한의 정치인 겸 문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본명은 한병도(韓秉道)이다. 한설야 이외에도 설야(雪野)·만년설(萬年雪)·한형종(韓炯宗)·김덕혜(金德惠)·윤영순(尹英順)·H생 등의 필명을 사용한 바 있다.


생애


어린시절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하였으며, 나중에 정치적으로 적이 되는 박헌인물과 동기생으로 1915년 경성부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기관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졸업은 고향인 함흥에 돌아와 전학을 한 함흥고등보통학교기관에서 하였다.


유학이후

중화민국 대륙과 일본에서 유학한 뒤 1925년 이광수인물의 추천으로 경조선문단기관에 첫 작품 「그날 밤」서적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27년 카프기관 창립 초기부터 가담하여 계급문학의 이론적 확립과 그 문학적 실천에 앞장섰다. 1927년 「조선지광」서적에 발표된 「그 전후」서적와 「뒷걸음질」서적 등에 이르러서는 경향적 색채를 짙게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당시 농촌의 현실인 빈궁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몰락해 가는 농촌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1934년 다른 카프 문인들과 일경에 의해 검거되는데, 이 시기를 맞이해 일대 전환의 모습을 보인다. 즉 그의 작업은 삶의 구체성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형상화에 집중된다. 이러한 결과로 나타나는 작품이 1936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황혼」서적이다. 「황혼」서적에서는 당대 자본가의 삶과 노동자의 삶을 대조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카프 활동과 비밀 결사 활동으로 신건설사 사건사건 때 검거되는 등 일제강점기 동안 두 차례 투옥되었다.


광복이후

광복 이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기관 함경도 대표를 지냈고 북조선인민위원회기관 교육부장, 최고인민회의기관 대의원도 역임하는 등 북한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정치적인 성공을 누렸다.


한국전쟁이후

한국 전쟁 이후에도 조선문학가총동맹기관 위원장을 지내면서 임화인물, 김남천인물, 이태준인물 등 남로당 계열 문인들의 숙청을 주도한 뒤 최고인민회의기관 부위원장을 지내고 교육상과 인민상을 수상하고 1957년 9월에는 내각 교육,문화상에 임명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1962년 「문학신」서적에 연재하던 시조가 예고 없이 돌연 중단되면서 숙청되었다는 설이 나돌았다.


숙청설 이후

숙청설 이후 행적은 거의 드러난 바가 없으며, 전 재산을 몰수 당한 뒤 자강도의 노동교화소기관로 추방되었다가 1976년 사망했다는 설만 있다.

  1. 본명 한병도(韓秉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