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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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center><big>'''👩🏻‍🏫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분류:2025-2 BigData(SNU)|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위키ID]])이 작성했습니다.'''</big></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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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center><big>'''👩🏻‍🏫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분류:2025-2 BigData(SNU)|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구석현(KNU2025)]])이 작성했습니다.'''</big></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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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수근.jpg
 
|사진= 김수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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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blog.colinmarshall.org/?p=4674 김수근 건축가]』<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Colin Marshall
  
 
|대표명= 김수근(金壽根)
 
|대표명= 김수근(金壽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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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수근은 해방 이후 한국 현대 건축의 정립 과정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던 건축가이자 문화예술 후원자이다.<ref name="encykorea">강홍빈, "김수근(金壽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9653)</ref> 1960년대 국가 주도의 대형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한국 건축계의 중심인물로 부상했다.<ref name="vmspace">공간그룹, "History: 1960-1979", 『SPACE GROUP』online, 공간그룹. (https://vmspace.com/company/history.html)</ref> 그러나 남영동 대공분실 설계와 같은 군사 정권 협력 이력은 그의 업적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를 요구하는 요인이기도 하다.<ref name="hani">황두진, "건축가 김수근의 두 얼굴", 『한겨레』online, 2011.08.08.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0977.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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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며 예술 후원자이다. <ref>「[http://kimswoogeun.org/biography]」<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김수근 문화재단</ref> 1960년대 한국 현대 건축의 태동기를 이끌었으며, {{TagGroup|공간그룹}}을 설립하여 건축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예술 전반의 발전에 기여했다<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549]」<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대표작으로 {{TagLocation|자유센터}}, {{TagLocation|공간사옥}}, {{TagLocation|경동교회}}, {{TagLocation|서울올림픽주경기장}} 등이 있다<ref>「https://k-art.kookmin.ac.kr/theme/]」<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국민대학교 </ref>. 그러나 {{TagLocation|국립부여박물관}}의 왜색 시비와 {{TagLocation|남영동 대공분실}} 설계 등 논쟁적인 역사적 평가도 공존하는 인물이다<ref> 한은화,「[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9343 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중앙일보』, 2022.10.15., <html><online style="color:purple">『중앙일보』<sup>online</sup></online></html>, 중앙일보.</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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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31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수근은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했다.<ref name="encykorea" /> 6.25 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예술대학]] 건축과와 도쿄대학 대학원(도시계획 전공)에서 수학했다.<ref name="encykorea" /> 이 시기 그는 일본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요시무라 준조]]연구실에서 수학하며 건축적 기초를 다졌다.<ref name="vmsp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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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31년 2월 20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중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TagInstitution|서울대학교}} 건축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가 1958년 {{TagInstitution|도쿄예술대학}} 건축과를 졸업했다. 이후 {{TagInstitution|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하며 일본 모더니즘 건축가 {{TagPerson|요시무라 준조}}영향을 받았다<ref>「[https://samsungblueprint.tistory.com/91]」<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삼성물산 건설부문 블로그</ref>. 1960년 도쿄대학 대학원 재학 중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축 설계 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며 한국 건축계에 이름을 알렸다<ref>[https://cafe.daum.net/interiorworld/HIp/15]」<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다음카페</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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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건축가로서의 부상 (1960-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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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0년 국회의사당 건축 설계 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면서 한국으로 귀국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ref name="encykorea" /> 그는 [[자유센터]](1963), 타워호텔 등의 설계를 맡으며 개발 독재 시대의 국가적 이상향을 콘크리트 조형물로 구현해냈다.<ref name="hani" /> 이 시기 그의 건축은 거대한 스케일과 노출 콘크리트의 거친 물성을 특징으로 하는 브루탈리즘 경향을 띠었다.<ref name="vmsp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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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박물관 왜색 시비 (1967-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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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과 공간그룹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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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7년 설계한 [[국립부여박물관]]은 김수근 건축 인생의 최대 위기이자 전환점이었다.<ref name="encykorea" /> 박물관의 정문이 일본 신사의 도리이(鳥居)를 닮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전 국민적인 '왜색 시비'가 일어났다.<ref name="hani" /> 이 사건은 그에게 "한국의 전통을 현대 건축에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ref name="vmsp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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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1년 귀국하여 '김수근 건축연구소'(현 {{TagGroup|공간그룹}})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ref>「[https://www.spacea.com/renew/about.html]」<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공간그룹 </ref>. 1966년에는 종합 예술 전문지인 월간 『공간(SPACE)』을 창간하여 건축, 미술, 연극 등 한국 예술계의 담론을 이끌었다<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4218]」<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한국민족문화대백사전 </ref>. 1960년대에는 {{TagLocation|자유센터}}, {{TagLocation|타워호텔}} 등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한 조형미 넘치는 건축물을 주로 설계했다<ref> 허성준,「[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9/2013071901702.html 건축가 김수근의 주요 작품 목록」『조선비즈』, 2013.07.20.,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비즈』<sup>online</sup></online></html>, 조선비즈.</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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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시대와 문화 운동 (1971-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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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철학의 심화와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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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71년 그는 자신의 대표작이자 한국 현대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공간사옥]](현 아라리오 뮤지엄)을 완공했다.<ref name="vmspace" /> 이곳에서 건축 잡지 월간 『공간』을 발행하고 소극장 '공간사랑'을 운영하며 당대 문화 예술인들의 아지트 역할을 자처했다.<ref name="encykorea" /> 공간 사옥은 좁은 골목길과 마당 등 한국적 공간감을 벽돌이라는 재료로 훌륭하게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f name="vmsp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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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7년 {{TagLocation|국립부여박물관}} 설계가 일본 신사를 닮았다는 왜색 시비에 휘말리며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ref>한은화,「[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9343 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중앙일보』, 2022.10.15., <html><online style="color:purple">『중앙일보』<sup>online</sup></online></html>, 중앙일보.</ref>. 이후 벽돌을 주 재료로 하는 독자적인 건축 세계를 구축하며 {{TagLocation|공간사옥}}, {{TagLocation|마산양덕성당}}, {{TagLocation|경동교회}} 등을 설계했다<ref>「https://k-art.kookmin.ac.kr/theme/]」<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국민대학교 </ref>. 1975년부터 {{TagInstitution|국민대학교}} 조형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986년 6월 14일 간암으로 인해 향년 5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ref>「[http://kimswoogeun.org/biography]」<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김수근 문화재단</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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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프로젝트와 타계 (1980-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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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80년대에 들어서며 김수근은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경동교회]] 등 거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ref name="encykorea" /> 특히 경동교회는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한 외관과 십자가의 길을 연상시키는 진입로 설계를 통해 도심 속의 성소를 구현했다.<ref name="vmspace" />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활동하던 그는 1986년 간암으로 55세의 이른 나이에 타계했다.<ref name="ency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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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비즘과 제3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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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사옥 (Space Group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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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수근 건축 철학의 핵심은 '네거티비즘' 또는 '궁극적 공간(Ultimate Space)'으로 요약된다.<ref name="encykorea" /> 그는 건축을 보여지는 오브제가 아니라, 인간이 생활하고 체험하는 비워진 공간을 조직하는 것으로 보았다.<ref name="vmspace" /> 이는 한국 전통 건축의 마당이나 대청마루와 같은 매개적 공간의 현대적 해석이라 할 있다.<ref name="ency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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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71년(구관)과 1977년(신관)에 걸쳐 완공된 김수근의 대표작으로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다<ref>「[http://archistory.korea.ac.kr/archive_110919/Essays/69.pdf]」<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archistory korea</ref>. 검은색 전벽돌을 사용하여 주변의 한옥과 조화를 이루며, 내부는 스킵 플로어(Skip Floor)를 활용하여 미로와 같은 풍부한 공간감을 제공한다<ref>「[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4541]」<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한국문화원연합회</ref>. 김수근은 이 공간을 편안함을 주는 '궁극 공간'이라 칭했다<ref> 박정현,「[https://www.khan.co.kr/article/202110042119005 한국의 메디치가 지향한 ‘궁극의 공간’…전설 넘어 새 ‘문화 요람’ 될 있을까]」『경향일보』, 2021.11.01., <html><online style="color:purple">『경향일보』<sup>online</sup></online></html>, 경향일.</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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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교회 (Kyungdong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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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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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80년 설계된 서울 장충동의 교회 건축물로,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한 외관이 특징이다<ref>「[http://www.kdchurch.or.kr/page/index/32]」<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경동교회</ref>. 붉은 벽돌의 외벽과 노출 콘크리트의 내부가 조화를 이루며, 교회 내부로 진입하는 길을 골고다 언덕길처럼 설계하여 예배자가 스스로를 정화하도록 유도했다<ref>「[http://www.kdchurch.or.kr/page/index/32]」<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경동교회</ref>. 한국 현대 종교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ref>김창성,「[https://www.kieae.kr/xml/13590/13590.pdf 김수근 교회건축의 공간구성 특성과 빛]」, 『KIEAE Journa』Vol. 18, No. 2, Apr. 2018, pp.47-54.</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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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과 왜색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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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74년 완공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은 김수근의 설계작 중 가장 논쟁적인 건물이다.<ref name="hani" /> 좁은 창문, 엇갈린 층계, 방음 설계 등은 고립감과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건축적 장치로 해석된다.<ref name="hani" /> 이 건물은 건축가의 재능이 국가 폭력에 어떻게 복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지속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ref name="han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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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7년 설계된 {{TagLocation|국립부여박물관}}은 정문이 일본 신사의 도리이(鳥居)를, 본관 지붕이 일본 전통 건축의 치기(千木)를 닮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ref> 한은화,「[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9343 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중앙일보』, 2022.10.15., <html><online style="color:purple">『중앙일보』<sup>online</sup></online></html>, 중앙일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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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ref> 한은화,「[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9343 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중앙일보』, 2022.10.15., <html><online style="color:purple">『중앙일보』<sup>online</sup></online></html>, 중앙일보.</ref>. 이는 당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김수근이 이후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 건축에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f> 허성준,「[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9/2013071901702.html 건축가 김수근의 주요 작품 목록」『조선비즈』, 2013.07.20.,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비즈』<sup>online</sup></online></html>, 조선비즈.</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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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Institution: 공간그룹 || A isFounder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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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Institution: 공간그룹 || A isMember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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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Building: 자유센터 || A designed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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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Person: 요시무라 준조 || A hasMaste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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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Building: 국립부여박물관 || A designed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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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Building: 공간사옥 || A designed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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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Building: 서울올림픽주경기장 || A designed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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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Building: 경동교회 || A designed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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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Building: 남영동 대공분실 || A designed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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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Building: 아르코 예술극장 || A designed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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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Person: 요시무라 준조 || A studiedUnde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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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Person: 김중업 || A isRival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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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Book: 월간 공간 || A publishe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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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ilding: 국립부여박물관 || Event: 왜색 시비 || A caused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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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on: 김수근 || Book: 월간 공간 || A isWriter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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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ilding: 남영동 대공분실 || Event: 인권 유린 || A usedFo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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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VktS5KbXOp6JV2z4j7niYnWs4LzOIdkUNtSVbSutyg0/edit?gid=0#gid=0 Timeline Google Spreadsh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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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홍빈, "김수근(金壽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9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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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문화재단, 『[http://kimswoogeun.org/biography 김수근 약력]』<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 김수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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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549 김수근(金壽根)]』<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
  
* 공간그룹, "History: 1960-1979", 『SPACE GROUP』online, 공간그룹. (https://vmspace.com/company/histo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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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9343 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 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 2021.10.16.
  
* 황두진, "건축가 김수근의 두 얼굴", 『한겨레』online, 2011.08.08.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09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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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9/2013071901702.html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 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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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그룹, 『[https://www.spacea.com/renew/about.html 공간그룹 연혁]』<html><online style="color:purple"><sup>online</sup></online></html>.
  
  

2025년 12월 9일 (화) 17:34 기준 최신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구석현(KNU2025))이 작성했습니다.






김수근(金壽根)
김수근.jpg
출처 : 김수근 건축가online,Colin Marshall
 
한글명 김수근 한자명 金壽根 영문명 Kim Swoo-geun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931년 몰년 1986년 출신지 함경북도 청진 전공 건축학, 도시계획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며 예술 후원자이다. [1] 1960년대 한국 현대 건축의 태동기를 이끌었으며, 공간그룹단체을 설립하여 건축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예술 전반의 발전에 기여했다[2]. 대표작으로 자유센터공간, 공간사옥공간, 경동교회공간, 서울올림픽주경기장공간 등이 있다[3]. 그러나 국립부여박물관공간의 왜색 시비와 남영동 대공분실공간 설계 등 논쟁적인 역사적 평가도 공존하는 인물이다[4].




생애


성장과 유학 (1931-1959)

1931년 2월 20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중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서울대학교기관 건축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가 1958년 도쿄예술대학기관 건축과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대학 대학원기관에서 수학하며 일본 모더니즘 건축가 요시무라 준조인물의 영향을 받았다[5]. 1960년 도쿄대학 대학원 재학 중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축 설계 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며 한국 건축계에 이름을 알렸다[6].



귀국과 공간그룹 설립

1961년 귀국하여 '김수근 건축연구소'(현 공간그룹단체)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7]. 1966년에는 종합 예술 전문지인 월간 『공간(SPACE)』을 창간하여 건축, 미술, 연극 등 한국 예술계의 담론을 이끌었다[8]. 1960년대에는 자유센터공간, 타워호텔공간 등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한 조형미 넘치는 건축물을 주로 설계했다[9].



건축 철학의 심화와 타계

1967년 국립부여박물관공간 설계가 일본 신사를 닮았다는 왜색 시비에 휘말리며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10]. 이후 벽돌을 주 재료로 하는 독자적인 건축 세계를 구축하며 공간사옥공간, 마산양덕성당공간, 경동교회공간 등을 설계했다[11]. 1975년부터 국민대학교기관 조형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986년 6월 14일 간암으로 인해 향년 5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2].








연구


공간사옥 (Space Group Building)

1971년(구관)과 1977년(신관)에 걸쳐 완공된 김수근의 대표작으로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다[13]. 검은색 전벽돌을 사용하여 주변의 한옥과 조화를 이루며, 내부는 스킵 플로어(Skip Floor)를 활용하여 미로와 같은 풍부한 공간감을 제공한다[14]. 김수근은 이 공간을 편안함을 주는 '궁극 공간'이라 칭했다[15] .


경동교회 (Kyungdong Church)

1980년 설계된 서울 장충동의 교회 건축물로,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한 외관이 특징이다[16]. 붉은 벽돌의 외벽과 노출 콘크리트의 내부가 조화를 이루며, 교회 내부로 진입하는 길을 골고다 언덕길처럼 설계하여 예배자가 스스로를 정화하도록 유도했다[17]. 한국 현대 종교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8].


국립부여박물관과 왜색 시비

1967년 설계된 국립부여박물관공간은 정문이 일본 신사의 도리이(鳥居)를, 본관 지붕이 일본 전통 건축의 치기(千木)를 닮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19] 그로 인해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20]. 이는 당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김수근이 이후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 건축에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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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김수근 Institution: 공간그룹 A isMemberOf B
Person: 김수근 Institution: 도쿄예술대학 A graduates B
Person: 김수근 Institution: 도쿄대학 A graduates B
Person: 김수근 Person: 요시무라 준조 A hasMaster B
Person: 김수근 Book: 월간 공간 A isWriterOf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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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김수근문화재단, 『김수근 약력online, 김수근문화재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수근(金壽根)online.

중앙일보, 「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 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online, 2021.10.16.

조선비즈,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online, 2013.07.19.

공간그룹, 『공간그룹 연혁online.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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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onlin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https://k-art.kookmin.ac.kr/theme/]」online,국민대학교
  4. 한은화,「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중앙일보』, 2022.10.15.,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
  5. [3]online,삼성물산 건설부문 블로그
  6. [4]online,다음카페
  7. [5]online,공간그룹
  8. [6]online,한국민족문화대백사전
  9. 허성준,「[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9/2013071901702.html 건축가 김수근의 주요 작품 목록」『조선비즈』, 2013.07.20., 『조선비즈』online, 조선비즈.
  10. 한은화,「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중앙일보』, 2022.10.15.,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
  11. https://k-art.kookmin.ac.kr/theme/]」online,국민대학교
  12. [7]online,김수근 문화재단
  13. [8]online,archistory korea
  14. [9]online,한국문화원연합회
  15. 박정현,「한국의 메디치가 지향한 ‘궁극의 공간’…전설 넘어 새 ‘문화 요람’ 될 수 있을까」『경향일보』, 2021.11.01., 『경향일보』online, 경향일.
  16. [10]online,경동교회
  17. [11]online,경동교회
  18. 김창성,「김수근 교회건축의 공간구성 특성과 빛」, 『KIEAE Journa』Vol. 18, No. 2, Apr. 2018, pp.47-54.
  19. 한은화,「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중앙일보』, 2022.10.15.,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
  20. 한은화,「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중앙일보』, 2022.10.15., 『중앙일보』online, 중앙일보.
  21. 허성준,「[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9/2013071901702.html 건축가 김수근의 주요 작품 목록」『조선비즈』, 2013.07.20., 『조선비즈』online, 조선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