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족의 혼에 관한 신앙과 학설(2)"의 두 판 사이의 차이

North Korea Humanities

(본문1: 2.혼과 육체의 관계)
(본문2: 3.혼에 관한 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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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1번=사자의 부활을 위하여 그 혼을 초환하려고 하는 의식을 중화민족은 복(復)이라 하였다. 초혼복백의 의미이다. 이 의식에 대하여 「예기」에 보이는 바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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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1번=사자의 부활을 위하여 그 혼을 초환하려고 하는 의식을 중화민족은 복(復)이라 하였다. 초혼복백의 의미이다. 이 의식에 대하여 {{TagBook|[[「예기」]]}}에 보이는 바를 보면  
 
|목차1해독문2번=<blockquote no="01">復 盡愛之道也 有禱祀之心焉 望反諸幽 求諸鬼神之道也 北面 求諸幽之義也 (檀弓下)<br/>及其死也 升屋而號告日 皐某復 云云 故死者北首 生者南鄉 其從其初 (禮運)<br/>復衣 不以衣尸 不以歛 婦人復 不以蚺 凡復 男子稱名 婦人稱字 唯哭先復 復而後行死事 始卒主人啼 兄弟哭 婦人哭踊 云云 (喪大記)</blockquote>
 
|목차1해독문2번=<blockquote no="01">復 盡愛之道也 有禱祀之心焉 望反諸幽 求諸鬼神之道也 北面 求諸幽之義也 (檀弓下)<br/>及其死也 升屋而號告日 皐某復 云云 故死者北首 生者南鄉 其從其初 (禮運)<br/>復衣 不以衣尸 不以歛 婦人復 不以蚺 凡復 男子稱名 婦人稱字 唯哭先復 復而後行死事 始卒主人啼 兄弟哭 婦人哭踊 云云 (喪大記)</blockquote>
|목차1해독문3번=이라 하고 또 사자의 계급 신분(왕 후 대부 사 서인 같은)에 따라 그 행하는 바 의식의 상세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계급화한 복잡한 의식의 일일에 대하여 말하고자 함이 아니요 이 초혼복백의 의식을 통하여 중화민족의 혼에 대한 원시신앙의 일단을 알고자 함에 있다. 이 예기의 글에 의하여 보면 사자가 생긴 경우에 그 가족은 사자의 의복을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북을 향하여 그 의복을 보이면서 사자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오라고 호고(號告)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도 돌아오지 않는 때에 비로소 부활을 단념하고 사사(死事)를 행하였다. 예기는 비록 한대의 서적이지만 이러한 사상과 의식은 보다 더 고래의 민족신앙일 것이다. 복은 사자의 시체로부터 떠난 혼을 다시 초환하고자 하는 의식이며 승옥북면은 떠난 혼이 비양하여 북방으로 향한다고 생각한 것을 말하는 것이며 (혼이 북방으로 간다는 사상은 오행사상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사자의 의복을 보이면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생에 대한 애착심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자 호소하는 것이었다. 후한의 정사농(현)도 <cite no="01">”謂復始死招魂復魄也”</cite>라고 주해하였다. (귀족계급 간의 정장 습속도 이 복 사상의 연장일 것이다). 이 의식을 통하여서도 우리는 혼이란 것이 육체와는 독립한 일개의 생활체로서 육체의 사후에는 의연히 지정의(知情意)와 사고력을 갖고 있다는 그들의 신앙을 알 수 있다. 귀신사상 사자숭배 후세생활 영혼불감 등 사상의 심리적 근거는 이에서 출발한 것이다. 예기에서 제도화한 복의 의식을 이후의 지배계급이나 지식계급에서 수행한 것과 또 이것이 조선에도 수입되어 널리 행하게 된 것은 췌언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다음에 중국의 기록에서 일례만을 들면 「통전」 63 복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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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3번=이라 하고 또 사자의 계급 신분(왕 후 대부 사 서인 같은)에 따라 그 행하는 바 의식의 상세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계급화한 복잡한 의식의 일일에 대하여 말하고자 함이 아니요 이 초혼복백의 의식을 통하여 중화민족의 혼에 대한 원시신앙의 일단을 알고자 함에 있다. 이 {{TagBook|[[예기]]}}의 글에 의하여 보면 사자가 생긴 경우에 그 가족은 사자의 의복을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북을 향하여 그 의복을 보이면서 사자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오라고 호고(號告)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도 돌아오지 않는 때에 비로소 부활을 단념하고 사사(死事)를 행하였다. {{TagBook|[[예기]]}}는 비록 한대의 서적이지만 이러한 사상과 의식은 보다 더 고래의 민족신앙일 것이다. 복은 사자의 시체로부터 떠난 혼을 다시 초환하고자 하는 의식이며 승옥북면은 떠난 혼이 비양하여 북방으로 향한다고 생각한 것을 말하는 것이며 (혼이 북방으로 간다는 사상은 오행사상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사자의 의복을 보이면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생에 대한 애착심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자 호소하는 것이었다. 후한의 {{TagPerson|[[정사농]]}}(현)도 <cite no="01">“謂復始死招魂復魄也”</cite>라고 주해하였다. (귀족계급 간의 정장 습속도 이 복 사상의 연장일 것이다). 이 의식을 통하여서도 우리는 혼이란 것이 육체와는 독립한 일개의 생활체로서 육체의 사후에는 의연히 지정의(知情意)와 사고력을 갖고 있다는 그들의 신앙을 알 수 있다. 귀신사상 사자숭배 후세생활 영혼불감 등 사상의 심리적 근거는 이에서 출발한 것이다. {{TagBook|[[예기]]}}에서 제도화한 복의 의식을 이후의 지배계급이나 지식계급에서 수행한 것과 또 이것이 조선에도 수입되어 널리 행하게 된 것은 췌언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다음에 중국의 기록에서 일례만을 들면 {{TagBook|[[「통전」]]}} 63 복조에는
 
|목차1해독문4번=<blockquote no="02">大唐元陵儀注 將復於太極殿內 高品五人 皆常服 以大行皇帝袞冕服 左荷之外 自前東霤 當屋履危北面西上 三呼而止 以衣投於前 承之以箧 自阼階入 以覆大行皇帝之上 復者徹殿西北扉降 自後西霤 其復衣 不以襲歛 浴則去之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4번=<blockquote no="02">大唐元陵儀注 將復於太極殿內 高品五人 皆常服 以大行皇帝袞冕服 左荷之外 自前東霤 當屋履危北面西上 三呼而止 以衣投於前 承之以箧 自阼階入 以覆大行皇帝之上 復者徹殿西北扉降 自後西霤 其復衣 不以襲歛 浴則去之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5번=이라 하여 대체로 예기의 소제를 수행하였다. 그러면 이 초혼이란 사상이며 의식이 전연 한대 유가들의 창견(創見)이겠느냐 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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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5번=이라 하여 대체로 {{TagBook|[[예기]]}}의 소제를 수행하였다. 그러면 이 초혼이란 사상이며 의식이 전연 한대 유가들의 창견(創見)이겠느냐 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한다.
|목차1해독문6번=종래의 인류학자들은 대개 사체공포설로써 상장에 관한 모든 민속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만일 이 설을 따른다면 초혼사상은 인류의 소위 도덕관념이란 것이 상당히 발달된 이후의 소산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며 또 실제로도 미개민 사이에는 엽노(枽老)의 사상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노사(老死)만 하는 것이 아니요 또 사체를 공포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죽음의 순간에 있어서는 그리고 그 사자가 더 살았으면 하는 애석의 느낌을 가족에게 주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그 죽음의 순간에 있어 그 진정의 죽음을 믿지 아니하였을 것이며 그 혼을 다시 초환하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진정의 죽음이 판단된 이후의 사체에 대하여는 공포의 느낌을 가졌겠지만은 그들의 지력으로서 생사를 판단하기 어려운 죽음의 순간에 있어서는 그러하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초혼사상을 매우 원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바이나 예기에 보이는 바와 같은 이러한 의식까지가 원시적이란 의미는 아니다. 상상하건대 가장 원시적인 초혼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을 듯하니 하나는 애호로써 그 부인리(不忍離)의 정을 환기함이요 둘은 음식 가무 등으로 사자의 혼을 만류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cite no="02">”始卒主人啼 兄弟哭 婦人哭踊”</cite>은 그러한 습속의 유흔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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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6번=종래의 인류학자들은 대개 사체공포설로써 상장에 관한 모든 민속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만일 이 설을 따른다면 초혼사상은 인류의 소위 도덕관념이란 것이 상당히 발달된 이후의 소산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며 또 실제로도 미개민 사이에는 엽노(枽老)의 사상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노사(老死)만 하는 것이 아니요 또 사체를 공포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죽음의 순간에 있어서는 그리고 그 사자가 더 살았으면 하는 애석의 느낌을 가족에게 주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그 죽음의 순간에 있어 그 진정의 죽음을 믿지 아니하였을 것이며 그 혼을 다시 초환하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진정의 죽음이 판단된 이후의 사체에 대하여는 공포의 느낌을 가졌겠지만은 그들의 지력으로서 생사를 판단하기 어려운 죽음의 순간에 있어서는 그러하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초혼사상을 매우 원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바이나 예기에 보이는 바와 같은 이러한 의식까지가 원시적이란 의미는 아니다. 상상하건대 가장 원시적인 초혼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을 듯하니 하나는 애호로써 그 부인리(不忍離)의 정을 환기함이요 둘은 음식 가무 등으로 사자의 혼을 만류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cite no="02">“始卒主人啼 兄弟哭 婦人哭踊”</cite>은 그러한 습속의 유흔이 아닌가 한다.
 
|목차1해독문7번=윤색되고 사상화한 유가의 기록을 떠나 민간신앙을 기저로 한 기록을 살펴 보면 송 정원의 「정관쇄언」(학해류편기술) 권하에 초사며 한시 외전 등을 인용하여
 
|목차1해독문7번=윤색되고 사상화한 유가의 기록을 떠나 민간신앙을 기저로 한 기록을 살펴 보면 송 정원의 「정관쇄언」(학해류편기술) 권하에 초사며 한시 외전 등을 인용하여
 
|목차1해독문8번=<blockquote no="03">喪禮有復 說者以爲招復魄 荆楚之俗 乃以是施之生人 宋玉招魂 景差大招是也 予按韓詩云 鄭國之俗 三月上巳 之溱洧兩水之上 招魂續魄 秉蘭草 拂除不祥 則非特楚俗然矣</blockquote>
 
|목차1해독문8번=<blockquote no="03">喪禮有復 說者以爲招復魄 荆楚之俗 乃以是施之生人 宋玉招魂 景差大招是也 予按韓詩云 鄭國之俗 三月上巳 之溱洧兩水之上 招魂續魄 秉蘭草 拂除不祥 則非特楚俗然矣</blockquote>
|목차1해독문9번=라 한 것과 같이 초혼은 중화민간의 민속이었다. 그리고 생인(生人)의 장수 건강을 위하여 초혼속백을 행하는 것은 원시적 초혼사상의 발전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속은 한(漢) 이전으로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것이다. 다시 소설 상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태평광기」 320 채모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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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9번=라 한 것과 같이 초혼은 중화민간의 민속이었다. 그리고 생인(生人)의 장수 건강을 위하여 초혼속백을 행하는 것은 원시적 초혼사상의 발전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속은 한(漢) 이전으로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것이다. 다시 소설 상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TagBook|[[「태평광기」]]}} 320 채모조에는
 
|목차1해독문10번=<blockquote no="04">蔡謨徵爲光祿大夫 右家忽聞東西啼哭聲 有若新死 便見一少年女死人 並離啼哭 不懈所爲 恐是人家忿爭耳 忽聞呼魂聲 便見生女從空中去上天 云云 (出靈異志)<br/>一說 謨在廳事上坐 忽聞鄰左復魄聲 乃出庭前望 正見新死之家 有一老嫗 上著黃羅半袖 下著縹裙 飄然升天 聞一喚聲 楓廼顧 三喚三顧 徘徊良久 聲旣絕 亦不復見 問喪家云 亡者衣服如此 (出幽明錄)</blockquote>
 
|목차1해독문10번=<blockquote no="04">蔡謨徵爲光祿大夫 右家忽聞東西啼哭聲 有若新死 便見一少年女死人 並離啼哭 不懈所爲 恐是人家忿爭耳 忽聞呼魂聲 便見生女從空中去上天 云云 (出靈異志)<br/>一說 謨在廳事上坐 忽聞鄰左復魄聲 乃出庭前望 正見新死之家 有一老嫗 上著黃羅半袖 下著縹裙 飄然升天 聞一喚聲 楓廼顧 三喚三顧 徘徊良久 聲旣絕 亦不復見 問喪家云 亡者衣服如此 (出幽明錄)</blockquote>
 
|목차1해독문11번=라하고 같은 책 권338 노중해조는
 
|목차1해독문11번=라하고 같은 책 권338 노중해조는
 
|목차1해독문12번=<blockquote no="05">大曆四年 處士盧仲海 與從叔纘 客於吳 夜就主人飲 歡甚大醉 郡屬皆散 而纘大吐甚 云云 半夜纘亡 仲海悲惶 伺其心尙煖 計無所出 忽思禮有招魂望反諸幽之旨 又先是 有力士說招魂之騐 乃大呼纘名 連聲不息 數萬計 忽蘇而能言日 賴爾呼救我 云云 俄頃叉開爾喚聲且悲 我心惻然 如是數四 且心不便 云云 (出通幽錄)</blockquote>
 
|목차1해독문12번=<blockquote no="05">大曆四年 處士盧仲海 與從叔纘 客於吳 夜就主人飲 歡甚大醉 郡屬皆散 而纘大吐甚 云云 半夜纘亡 仲海悲惶 伺其心尙煖 計無所出 忽思禮有招魂望反諸幽之旨 又先是 有力士說招魂之騐 乃大呼纘名 連聲不息 數萬計 忽蘇而能言日 賴爾呼救我 云云 俄頃叉開爾喚聲且悲 我心惻然 如是數四 且心不便 云云 (出通幽錄)</blockquote>
|목차1해독문13번=이라 하여 모두 초혼유험을 말하였다. 그러고 노중해의 취한 바와 같은 부단한 호명애규(呼名哀叫)는 실로 가장 원시적 초혼이요 또 자연에 가까운 방법일까 한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 민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임종제의 가족들의 호규이다. 이러한 가장 자연스러운 원시적 초혼방법에 후세 음양오행설의 영향을 가하고 또 사회적 계급적 제종의 윤식을 가한 것이 예기의 제정한 복의 의식일 것이다. 다시 청(淸) 대의 기록에서 일례를 들면 포송령의 「요재지이」 권3 노공녀설화 중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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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13번=이라 하여 모두 초혼유험을 말하였다. 그러고 노중해의 취한 바와 같은 부단한 호명애규(呼名哀叫)는 실로 가장 원시적 초혼이요 또 자연에 가까운 방법일까 한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 민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임종제의 가족들의 호규이다. 이러한 가장 자연스러운 원시적 초혼방법에 후세 음양오행설의 영향을 가하고 또 사회적 계급적 제종의 윤식을 가한 것이 예기의 제정한 복의 의식일 것이다. 다시 청(淸) 대의 기록에서 일례를 들면 {{TagPerson|[[포송령]]}}의 {{TagBook|[[「요재지이」]]}} 권3 노공녀설화 중에는
 
|목차1해독문14번=<blockquote no="06">云云 女沸數日竟卒 生夜夢女來日 下顧者果君耶 年貌舛異 覿面 遂致遠隔 妾己憂憤死 須向土地祠 速招我魂 可得活 遲則無及矣 旣醒 急探盧氏之門 果有女亡二日矣 生大慟 進而吊諸其室 已而以夢告盧 盧從其言 招魂而歸 啓其余 撫其尸 呼而祝之 俄開喉中咯咯有聲 忽見朱櫻乍啓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14번=<blockquote no="06">云云 女沸數日竟卒 生夜夢女來日 下顧者果君耶 年貌舛異 覿面 遂致遠隔 妾己憂憤死 須向土地祠 速招我魂 可得活 遲則無及矣 旣醒 急探盧氏之門 果有女亡二日矣 生大慟 進而吊諸其室 已而以夢告盧 盧從其言 招魂而歸 啓其余 撫其尸 呼而祝之 俄開喉中咯咯有聲 忽見朱櫻乍啓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15번=이라 하여 또한 초혼의 효(効)를 말하였다. 사자의 혼이 일시 토지사에게 구류되었다가 거기서 다시 명사로 송치된다는 것은 후세의 사회제도의 반영일 것이요 그 원시적인 사상은 어디인지 모르게 공중으로 떠난다는 것일 터이다.
 
|목차1해독문15번=이라 하여 또한 초혼의 효(効)를 말하였다. 사자의 혼이 일시 토지사에게 구류되었다가 거기서 다시 명사로 송치된다는 것은 후세의 사회제도의 반영일 것이요 그 원시적인 사상은 어디인지 모르게 공중으로 떠난다는 것일 터이다.
|목차1해독문16번=초혼은 이렇듯 사자에게만 행하는 것이 아니요 병자에게도 행하였으니 그것은 병이란 것이 혼의 이탈로부터 생긴다는 원시사상으로 용이 추측할 수 있다. 지금 그 몇 가지 예를 들면 송 홍매의 「이견지」 정지13 이우여귀투(李遇與鬼鬪)조에는 이우란 자가 백여의 소귀와 싸워 병을 얻은 까닭으로 가족들은 그 장소에 가서 이우의 초혼을 하여 반년이전하였다는 설화가 보이며 청 관혁도인 기윤의 「괴서잡지」 권4에는 어떤 부실이 이암(尼菴)에서 실신상태로 있는 비첩을 초혼으로 구하였다는 설화를 기술한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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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16번=초혼은 이렇듯 사자에게만 행하는 것이 아니요 병자에게도 행하였으니 그것은 병이란 것이 혼의 이탈로부터 생긴다는 원시사상으로 용이 추측할 수 있다. 지금 그 몇 가지 예를 들면 송 {{TagPerson|[[홍매]]}}의 {{TagBook|[[「이견지」]]}} 정지13 이우여귀투(李遇與鬼鬪)조에는 이우란 자가 백여의 소귀와 싸워 병을 얻은 까닭으로 가족들은 그 장소에 가서 이우의 초혼을 하여 반년이전하였다는 설화가 보이며 청 관혁도인 {{TagPerson|[[기윤]]}}의 {{TagBook|[[「괴서잡지」]]}} 권4에는 어떤 부실이 이암(尼菴)에서 실신상태로 있는 비첩을 초혼으로 구하였다는 설화를 기술한 중에
 
|목차1해독문17번=<blockquote no="07">富室 云云 急往尼菴迎歸 癡如故 富室附耳呼其名 乃霍然如夢覺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17번=<blockquote no="07">富室 云云 急往尼菴迎歸 癡如故 富室附耳呼其名 乃霍然如夢覺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18번=이라 하고 「요재지이」 권2 아실설화 중에는 월서의 손자초라는 치생이 중소년과 함께 길 위에서 아실이라는 절세미인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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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18번=이라 하고 {{TagBook|[[「요재지이」]]}} 권2 아실설화 중에는 월서의 손자초라는 치생이 중소년과 함께 길 위에서 아실이라는 절세미인을 만나
 
|목차1해독문19번=<blockquote no="08">衆情顚倒 品頭題足 粉粉若狂 生獨默然 及衆他適 回視猶癡立故所 呼之不應 群曳之曰 魂隨阿寶去耶 亦不答 衆以其素訥 故不爲怪 或推之 或挽之以歸 至家直上牀臥 終日不起 冥如醉 呼之不醒 家人疑其失魂 招於曠野 莫能效 强拍問之 則矇朧應云 我在阿寶家 及細語之 又默不語 云云 女每夢與人交 問其名 曰我孫子楚也 心異之 而不可以告人 生臥三日 氣休休若將澌滅 家人大恐 托人婉告翁 欲一招魂其家 翁笑日 平昔不省往還 何由遺魂吾家 家人固哀之 翁始尤 巫執故服草薦以往女 詰得其故 駭極 不聽他往 直導入室 任招呼而去 巫歸至門 生榻上己呻 旣醒 女室之香奩什具 何色何名 歷言不爽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19번=<blockquote no="08">衆情顚倒 品頭題足 粉粉若狂 生獨默然 及衆他適 回視猶癡立故所 呼之不應 群曳之曰 魂隨阿寶去耶 亦不答 衆以其素訥 故不爲怪 或推之 或挽之以歸 至家直上牀臥 終日不起 冥如醉 呼之不醒 家人疑其失魂 招於曠野 莫能效 强拍問之 則矇朧應云 我在阿寶家 及細語之 又默不語 云云 女每夢與人交 問其名 曰我孫子楚也 心異之 而不可以告人 生臥三日 氣休休若將澌滅 家人大恐 托人婉告翁 欲一招魂其家 翁笑日 平昔不省往還 何由遺魂吾家 家人固哀之 翁始尤 巫執故服草薦以往女 詰得其故 駭極 不聽他往 直導入室 任招呼而去 巫歸至門 生榻上己呻 旣醒 女室之香奩什具 何色何名 歷言不爽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20번=이란 것이 보이고 제원주인의 「야담수록」 권4 다전봉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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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20번=이란 것이 보이고 제원주인의 {{TagBook|[[「야담수록」]]}} 권4 다전봉조에는
 
|목차1해독문21번=<blockquote no="09">前鋒多某 行二 未得前鋒時 與所親同往東直門外城閏下 習騎射 墜馬昏絕 所親扶掖以歸 歸家即甦 一無所損 但神癡不復解言笑 與食則食 不與亦不食也 與飲則欽 不與赤不飲也 越半月弗瘥 云云 群扶多 至墮馬處 呼其名而招之 徑返三四 多怱發一寒噤 即時清白 向家人涕泣而道之日 汝輩一何忍心 棄我於此 半月之久 不來一顧 云々</blockquote>
 
|목차1해독문21번=<blockquote no="09">前鋒多某 行二 未得前鋒時 與所親同往東直門外城閏下 習騎射 墜馬昏絕 所親扶掖以歸 歸家即甦 一無所損 但神癡不復解言笑 與食則食 不與亦不食也 與飲則欽 不與赤不飲也 越半月弗瘥 云云 群扶多 至墮馬處 呼其名而招之 徑返三四 多怱發一寒噤 即時清白 向家人涕泣而道之日 汝輩一何忍心 棄我於此 半月之久 不來一顧 云々</blockquote>
|목차1해독문22번=이라 하고 원매의 「신제해」 17 광서귀사조는 광서무격의 병자를 위하여 행하는 초혼습속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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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22번=이라 하고 {{TagPerson|[[원매]]}}의 {{TagBook|[[「신제해」]]}} 17 광서귀사조는 광서무격의 병자를 위하여 행하는 초혼습속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록하였다.
|목차1해독문23번=<blockquote no="10">廣西信奉鬼師 有陳賴二姓 能捉生替死 病家多延之 至則 先取杯水 覆以紙 倒懸病者床上 翌日來視 其水週時不滴者 云可救 或取雄雞一隻 貫白刃七八寸入雞喉 提向病人身 運氣誦咒 咒畢 雞口不滴血者 亦云可救 拔刃擲地 雞飛如故 若滴下點水 及雞血者 辭去勿救 其可救者 設一壇 掛神鬼像數十褔 鬼師作婦人粧 步罡持咒 鑼鼓齊作 至夜 染油紙作燈 至野外呼魂 萁聲幽渺 隣人有熟睡者 魂即應聲來 鬼師遞火與之接去 後鬼師向病家稱賀 則病者愈 而來接火之 人死之 解之之術 但夜開鑼鼓聲 以兩脚踏土上 便無所妨 陳賴二家 以此致富 其堂宇層層陰黑 供鬼神像甚多 余嬸母{{TagPage|171-1}}患病 呼賴鬼師視之 賴持劍捕鬼 房中有物如大蝙蝠 投入床下 賴用掌心雷擊之 火倒 出燒賴鬚 賴大怒 令煎一鍋桐 油書符燒之 以手攪鍋中油 聞床下鬼哦哦求饒 久之而絕 嬸病果愈 一日者 陳鬼師爲某家呼魂 見藍衣女冉冉來逼 視之即其所生女來接火 陳大驚擲火于地 以掌擊其背 急歸視女 女方睡驚覺云 夢中聞爺呼故來 所衣藍布衫上 手掌油迹宛然 桂林魏太守女病危 夫人延陳鬼師視之 陳索百金爲謝 太守素方嚴 拘而杖之 將置之獄 鬼師笑曰 杖我毋後悔 方杖鬼師 女忽于床上呼曰 陳鬼師命二鬼杖我瞥 拉我人獄 夫人大恐 力勸放之 詐以重謝 陳曰 業爲祟鬼所驚 吾力不能 女竟死</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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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23번=<blockquote no="10">廣西信奉鬼師 有陳賴二姓 能捉生替死 病家多延之 至則 先取杯水 覆以紙 倒懸病者床上 翌日來視 其水週時不滴者 云可救 或取雄雞一隻 貫白刃七八寸入雞喉 提向病人身 運氣誦咒 咒畢 雞口不滴血者 亦云可救 拔刃擲地 雞飛如故 若滴下點水 及雞血者 辭去勿救 其可救者 設一壇 掛神鬼像數十褔 鬼師作婦人粧 步罡持咒 鑼鼓齊作 至夜 染油紙作燈 至野外呼魂 萁聲幽渺 隣人有熟睡者 魂即應聲來 鬼師遞火與之接去 後鬼師向病家稱賀 則病者愈 而來接火之 人死之 解之之術 但夜開鑼鼓聲 以兩脚踏土上 便無所妨 陳賴二家 以此致富 其堂宇層層陰黑 供鬼神像甚多 余嬸母患病 呼賴鬼師視之 賴持劍捕鬼 房中有物如大蝙蝠 投入床下 賴用掌心雷擊之 火倒 出燒賴鬚 賴大怒 令煎一鍋桐 油書符燒之 以手攪鍋中油 聞床下鬼哦哦求饒 久之而絕 嬸病果愈 一日者 陳鬼師爲某家呼魂 見藍衣女冉冉來逼 視之即其所生女來接火 陳大驚擲火于地 以掌擊其背 急歸視女 女方睡驚覺云 夢中聞爺呼故來 所衣藍布衫上 手掌油迹宛然 桂林魏太守女病危 夫人延陳鬼師視之 陳索百金爲謝 太守素方嚴 拘而杖之 將置之獄 鬼師笑曰 杖我毋後悔 方杖鬼師 女忽于床上呼曰 陳鬼師命二鬼杖我瞥 拉我人獄 夫人大恐 力勸放之 詐以重謝 陳曰 業爲祟鬼所驚 吾力不能 女竟死</blockquote>
|목차1해독문24번=흥미 있는 기록이므로 필요 이상의 전문을 인용하였으나 요컨대 이것은 광서민속 상에 독특히 발표된 일종의 초혼방법이요 이 방법에 의하면 타인의 혼을 병자에 부흥하여 병을 치료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혼의 개인성을 무시하는 사상의 소산이다. 그리고 또 남방의 만민 사이에도 병자를 위하여 행하는 초혼민속이 있으니 명 광로의 「적아」 상 수혼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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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24번=흥미 있는 기록이므로 필요 이상의 전문을 인용하였으나 요컨대 이것은 광서민속 상에 독특히 발표된 일종의 초혼방법이요 이 방법에 의하면 타인의 혼을 병자에 부흥하여 병을 치료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혼의 개인성을 무시하는 사상의 소산이다. 그리고 또 남방의 만민 사이에도 병자를 위하여 행하는 초혼민속이 있으니 명 {{TagPerson|[[광로]]}}의 {{TagBook|[[「적아」]]}} 상 수혼조에  
 
|목차1해독문25번=<blockquote no="11">峒婿遠歸 則止三十里外 遣瑤眊 持籃往迎之 脫歸人中衵 貯籃中 曰收魂 瑤眊者巫也</blockquote>
 
|목차1해독문25번=<blockquote no="11">峒婿遠歸 則止三十里外 遣瑤眊 持籃往迎之 脫歸人中衵 貯籃中 曰收魂 瑤眊者巫也</blockquote>
|목차1해독문26번=라한 것과 명 전여성의 「염요기문」 권4 만이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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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26번=라한 것과 명 {{TagPerson|[[전여성]]}}의 {{TagBook|[[「염요기문」]]}} 권4 만이조에
 
|목차1해독문27번=<blockquote no="12">獞人 五嶺以南皆有之 與猺雜處 風俗略同 而生理一切陋簡 云云 人遠出而歸者 止于三十里外 家遣巫 提竹籃迎之 脫歸人帖身衣 貯之籃 以前導還家 言爲行人收魂歸也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27번=<blockquote no="12">獞人 五嶺以南皆有之 與猺雜處 風俗略同 而生理一切陋簡 云云 人遠出而歸者 止于三十里外 家遣巫 提竹籃迎之 脫歸人帖身衣 貯之籃 以前導還家 言爲行人收魂歸也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28번=이란 것은 공히 동고노족(호남계동과 광서 광동 등에 산재한 미개민)에 관한 것이다. 멀리 떠났던 자는 기한으로 인하여 시시로 병을 얻는 경험에서 그것을 혼의 도중유실이라 하여 이러한 의식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외에 또 일종의 초혼의식이 있으니 그것은 전사(戰死) 수사(水死) 등으로 인하여 시체를 얻지 못하는 경우에 초혼장을 한다든지 또는 위와 같은 사자의 시체를 비록 얻게 될지라도 그 시체를 매장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시체와 함께 그 사처(死處)에서 초혼을 하여 귀가매장하는 등이다. 이러한 초혼장에 관하여는 당 두우의 「통전」 103 초혼장의 중에 학자 간의 이에 대한 시비론의 급기실례가 수다히 인거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 장문의 인용을 피하고 민속의 두 세 가지의 예를 간략히 인용함에 그치고자 한다. 청 청량도인의 「청우헌필기」 권4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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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28번=이란 것은 공히 동고노족(호남계동과 광서 광동 등에 산재한 미개민)에 관한 것이다. 멀리 떠났던 자는 기한으로 인하여 시시로 병을 얻는 경험에서 그것을 혼의 도중유실이라 하여 이러한 의식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외에 또 일종의 초혼의식이 있으니 그것은 전사(戰死) 수사(水死) 등으로 인하여 시체를 얻지 못하는 경우에 초혼장을 한다든지 또는 위와 같은 사자의 시체를 비록 얻게 될지라도 그 시체를 매장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시체와 함께 그 사처(死處)에서 초혼을 하여 귀가매장하는 등이다. 이러한 초혼장에 관하여는 당 {{TagPerson|[[두우]]}}의 {{TagBook|[[「통전」]]}} 103 초혼장의 중에 학자 간의 이에 대한 시비론의 급기실례가 수다히 인거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 장문의 인용을 피하고 민속의 두 세 가지의 예를 간략히 인용함에 그치고자 한다. 청 {{TagPerson|[[청량도인]]}}의 {{TagBook|[[「청우헌필기」]]}} 권4에는
 
|목차1해독문29번=<blockquote no="13">先大父退國公言 康熙初 云云 船略傾側 不覺墜於江中 衆人見其身隨洪流而去 頃刻已杳 欲救不能 孫生與僕 沿江求其屍 又不得 云云 以舊衣冠招魂 與其妻同葬之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29번=<blockquote no="13">先大父退國公言 康熙初 云云 船略傾側 不覺墜於江中 衆人見其身隨洪流而去 頃刻已杳 欲救不能 孫生與僕 沿江求其屍 又不得 云云 以舊衣冠招魂 與其妻同葬之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30번=이라 보이고 청 양공진의 「지상초당필기」 권7 광동화겁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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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30번=이라 보이고 청 {{TagPerson|[[양공진]]}}의 {{TagBook|[[「지상초당필기」]]}} 권7 광동화겁조에는
 
|목차1해독문31번=<blockquote no="14">云云 聞戯塲火發 亟率婦徍視 則烈焰燼餘 有屍似其子者 哭而殮之 招魂設靈於家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31번=<blockquote no="14">云云 聞戯塲火發 亟率婦徍視 則烈焰燼餘 有屍似其子者 哭而殮之 招魂設靈於家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32번=하고 명 주국정의 「용당소품」 12 부자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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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32번=하고 명 {{TagPerson|[[주국정]]}}의 {{TagBook|[[「용당소품」]]}} 12 부자조에는
 
|목차1해독문33번=<blockquote no="15">呂向生父岌 客遠方不還 少喪母 失墓所在 將葬 巫者求得之 不知父在亡 招魂合諸墓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33번=<blockquote no="15">呂向生父岌 客遠方不還 少喪母 失墓所在 將葬 巫者求得之 不知父在亡 招魂合諸墓 云云</blockquote>
 
|목차1해독문34번=이라 하였다. 이러한 의식에 대하여 금일의 우려는 벌써 그 기원적 의미를 망각하고 오직 인정 상의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 원래의 의미는 가족제도 및 조선숭배와 관련을 갖는 것이다. 동양의 가족제도에 있어서는 조선의 혼은 항상 그 가족과 불리(不離)의 관계에 있어 노(怒)하면 가족에 재화를 내리고 희(喜)하면 행복을 주는 것이며 조선의 혼이 이렇게 가족과 불리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은 가족의 재산옹호와 중대한 관계를 갖는 까닭이었다. 이 점은 후일에 상론할 기회가 있으려니와 이러한 관계에 있는 조선이므로 그 혼은 반드시 가내에 시봉하든지 가족의 주위에 있게 할 것이요 원방에 방치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었다. 여기에서 초혼장의 습속이 출발한 것이다.
 
|목차1해독문34번=이라 하였다. 이러한 의식에 대하여 금일의 우려는 벌써 그 기원적 의미를 망각하고 오직 인정 상의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 원래의 의미는 가족제도 및 조선숭배와 관련을 갖는 것이다. 동양의 가족제도에 있어서는 조선의 혼은 항상 그 가족과 불리(不離)의 관계에 있어 노(怒)하면 가족에 재화를 내리고 희(喜)하면 행복을 주는 것이며 조선의 혼이 이렇게 가족과 불리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은 가족의 재산옹호와 중대한 관계를 갖는 까닭이었다. 이 점은 후일에 상론할 기회가 있으려니와 이러한 관계에 있는 조선이므로 그 혼은 반드시 가내에 시봉하든지 가족의 주위에 있게 할 것이요 원방에 방치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었다. 여기에서 초혼장의 습속이 출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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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번={{TagSpage|173-1}}中華民族이 魂의 存在를 推理하게 된 것은 아득한 옛날에 屬할 바이지마는 이에 對하야 理論的批判을 加하게 된 것은 儒家로부터 始作된 듯하다. 儒家以外의 古典에도 魂에 關한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것은 아즉 學說의 程度에 이르지 못하였다. 「論語」 爲政篇에 <cite no="03">「子曰 非其魂而祭之 謟也」</cite>란 鬼가 鄭玄以後 儒家들의 解釋과 如히 祖考의 死靈을 가러친 것이라면 孔子의 魂에 對한 解釋은 民間의 信仰思想과 大差가 없었을 듯하나 이것만으로는 斷案을 내리기 困難하다. 그러고 「易經」 繫辭上에는 <cite no="04">「陰陽不測之謂神 精氣爲物 遊魂爲變 是故知鬼神之情狀」</cite>이라 하야 鬼神을 陰陽說的見地에서 說明코저 하였음을 보면 魂에 對하여서도 또한 그러한 立塲을 取하였으리라고 推論되나 그러나 極히 模糊한 일이다. 「禮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좀 더 具體的說明을 發見할 수 있으니 그 郊特牲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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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번={{TagSpage|173-2}}<blockquote no="16">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 故祭求諸陰陽之義也</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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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번={{TagSpage|173-3}}라 하야 魂을 氣라 하고 그것은 元來 天(陽)에 屬한 바이오 死後는 天으로 다시 歸去한다고 하였다. 魂은 民間信仰과 如히 形體와 理知를 갖인 形而下的存在가 아니오 形而上的氣에 不過하다는 思想이다. 그러고 形魄即肉體는 地에서 나서 地로 還元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陰陽說的魂魄二元思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思想을 比較的 純粹하게 敷衍한 것은 唐 成伯璵의 「禮記外傳」 及 張幼倫의 그 注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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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4번={{TagSpage|173-4}}<blockquote no="17">人之精氣日魂<sup>魂陽也云云而動</sup> 形體謂之魄<sup>魄陰也寂然不動</sup> 合陽陽二氣而生也<sup>精神聚而爲一物</sup> 形勞則神逝<sup>謂死而魂遊散</sup> 死則難復生也 孝子之心 不能忍也 故升屋而招其魂神也 神智無涯也 鬼者復於土也<sup>人皆食土之物養成形體也</sup> 氣絕而收其魂 使反復於體也 (太平御覽五四{{TagPage|174-1}}九 復魂條所引)</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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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5번={{TagSpage|174-2}}라 하였다. 그러나 儒者間에 있었어도 이 魂氣 形魄에 對한 解釋은 반드시 一致치는 아니하야 「左傳」 昭公七年條에 <cite no="05">「及子產適晋 趙景子問焉曰 伯有猶能爲鬼乎 子產曰能 人生始化曰魄 旣生魄 陽曰魂 用物精多 則魂魄强 云々」</cite>이라 한 것의 唐 孔潁達疏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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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6번={{TagSpage|174-3}}<blockquote no="18">人之生也 始變化爲形 形之靈者 名之曰魄也 既生魄矣 魄内自有陽氣 氣之神者 名之曰魂也 魂魄神靈之名 本從形氣而有 形氣旣殊 魂魄亦異 {{ruby|附形之靈爲魄|○○○○○○}} {{ruby|附氣之神爲魂|○○○○○○}}也 附形之靈者 謂初生之時 耳目心識手足運動啼呼爲聲 此則魄之靈也 附氣之神者 謂精神性識漸有所知 此則附氣之神也 是魄在於前 而魂在於後 故云旣生魄曰魂 魂魄俱是性靈 但{{ruby|魄識少|○○○}} {{ruby|而魂識多|○○○○}} 云々</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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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7번={{TagSpage|174-4}}이라 하야 그는 魂과 氣를 區別하고 또 形과 魄을 區別하야 魂卽魂氣 魂卽形體의 說을 不定하였을 뿐 아니라 魄도 幼稺하나마 知覺을 갖인 形而上的 存在라고 생각하였다. 그러고 <cite no="06">「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cite>에 對하였어도 解釋을 달니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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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8번={{TagSpage|174-5}}<blockquote no="19">以魂本附氣 氣必上浮 故言魂氣歸于天 魄本附形 形旣入土 故言形魄歸于地</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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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9번={{TagSpage|174-6}}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隋 劉炫 같은 이는 이에 對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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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0번={{TagSpage|174-7}}<blockquote no="20">人之受生 形必有氣 氣形相合 義無先後 而此云始化曰魄 陽曰魂 是則先形而後氣 先魄而後魂 魂魄之生有先後者 以形有質 而氣無質 尋形以知氣 故先魄而後魂 其實並生無先後也</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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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1번={{TagSpage|174-8}}라 하야 魂魄並生說을 主張하였다. 如斯한 部分的 異說은 반다시 이것뿐도 아니지마는 그것을 여기서 煩論할 必要는 없고 大體로 본다면 그들은 모다 大槪 陰陽說的 魂魄二元論을 取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注意할 바는 前引한 孔潁達의{{TagPage|175-1}} 魂歸天 魄歸地에 對한 常識的 解釋이다. 이것은 다른 儒家들의 思想과는 大相不同한 것이니 歸於天 歸於地라고 말한 以上 이것을 歸元의 意味로 解함이 더욱 哲學的이오 또 妥當할 것이다. 「漢書」 楊王孫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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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2번={{TagSpage|175-2}}<blockquote no="21">且吾聞之 精神者天之有也 形骸者地之有也 精神離形 各歸其眞 故謂之鬼 鬼之爲言歸也 其尸塊然獨處 豈有知哉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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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3번={{TagSpage|175-3}}라고 한 것이며 「淮南子」 卷七 精神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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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4번={{TagSpage|175-4}}<blockquote no="22">古夫有天地之時 惟像無形 窈窈冥冥 芒芠漠閔 澒獴鴻洞 莫知其門 有二神混生 經天營地 孔乎莫知其所終極 滔乎莫知其所止息 於是乃別爲陰陽 離爲八極 剛柔相成 萬物乃形 煩氣爲蟲 精氣爲人 是故精神天之有也 而骨骸者地之有也 精神入其門 而骨骸反共根 我尙何存 云云</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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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5번={{TagSpage|175-5}}이란 것 等은 道家의 影響을 받은 漢代 儒家들의 思想이다. 이러한 思想을 좀 더 具體的으로 說明한 이는 後漢의 王充이니 王充의 所謂氣 精氣 精神 等이 民間信仰 上의 魂에 該當할 것은 「論衡」 二〇 論死篇의 次文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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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6번={{TagSpage|175-6}}<blockquote no="23">人之所以生者 精氣也 死而精氣滅 能爲精氣者血脉也 人死血脉竭 竭而精氣滅 滅而形體朽 朽而成灰土 云云 人死精神升天 骸骨歸土 故謂之鬼 鬼者歸也 云云 人用神氣生 其死復歸神氣 陰陽稱鬼神 人死亦稱鬼神 氣之生人 猶水之爲氷也 水凝爲氷 {{ruby|氣凝爲人|○○○○}} 氷釋爲水 人死復神 其名爲神也 猞氷釋更名水也 云云 人之精神 藏於形體之內 猞粟米在囊橐之中也 死而形體朽精氣散 猶囊橐穿敗 粟米棄出也 粟米棄出 囊橐無復有形 精氣散亡 何能復有體 而人得見之乎 云云 如人死輒爲鬼 則道路之上 一步一鬼也 人且死見鬼 宜見數百千萬 滿堂盈庭 塡塞港路 不宜徒見 一兩人也 云云 天地之性 能更生火 不能使滅火復燃 能更生人 不能令死人復見 云云 夫死人不能爲鬼 則亦無所知矣 何以驗之 以未生之時 無所知也 人未生 在元氣之中 旣死 復歸元氣 {{ruby|元氣荒忽|○○○○}} {{ruby|人氣在其中|○○○○○}} 人未生無所知 其死歸無知之本 何{{TagPage|176-1}}能有知乎 云云 天下無獨撚之火 世間安得有無體獨知之精 云云 人之未死也 智慧精神定矣 病則惛亂 精神擾也 夫死病之甚者也 病死之微 猞惛亂 况其甚乎 精神擾 自無所知 况其散也 人之死 猶火之滅也 火滅而燿不照 人死而知不慧 二者宜同一實 云云 陰陽之氣凝而爲人 年終壽盡 死還爲氣 云云</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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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7번={{TagSpage|176-2}}王充의 說에 依하면 宇宙에는 元氣란 것이 充滿하여 있고 그 元氣 中에는 萬物을 生할 바 氣가 되어있으며 그 氣中의 하나이 人氣이오 人氣가 凝結하야 人類를 生하고 죽으면 이것이 다시 解散되어 元氣 中으로 還元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水와 氷의 關係와 같으며 또 氣란 것은 單獨으로는 아모 知覺이 없고 오즉 物에 依하여서만 知覺을 發揮할 수 있으니 그것은 마치 薪과 火의 關係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儒道兩說을 綜合하야 獨特한 合理主義的 一異說을 提唱한 것이다. 이 說은 祖先祭祀를 否定하는 思想이므로 後世의 儒家는 이것을 取치 아니하였고 傳統的 儒家의 諸說 綜合하야 加一層 哲學的 體系를 附與한 것이 宋 朱熹의 理氣論的 魂魄聚散設이니 그 要領은「性理大全書」 二八 論在人鬼神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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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8번={{TagSpage|176-3}}<blockquote no="24">問生死鬼神之理 日天道流行 發育萬物 有理而後有氣 雖是一時 都有畢竟 以理爲主 人得之以有生氣之淸者爲氣 濁者爲質 知覺運動 陽之爲也 形體陰之爲也 {{ruby|氣曰魂|○○○}} {{ruby|體曰魄|○○○}} 云云 人所以生 精氣聚也 人只有許多氣 須有箇盡時 盡則魂氣歸於天 形魄歸於地而死矣 人將死時 熱氣上出 所謂魂升也 下體漸冷 所謂魄降也 此所以有生必有死 有始必有終也 夫聚散者氣也 若理則只泊在氣上 初不見凝結 自爲一物 云云 {{ruby|然人死雖終歸於散|○○○○○○○○}} {{ruby|然亦未便盡散|○○○○○○}} {{ruby|故祭祀有感格|○○○○○○}}之理 云云 已散者不復聚 釋氏却謂人死爲鬼 鬼復爲人 如此則 天地間常只是許多人來來去去 更不由造化生生 必無是理 云云</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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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9번={{TagSpage|176-4}}이란 것으로 從來의 說에 朱子의 獨特한 理氣論的 體系를 附興하였을 따름이다. 氣의 淸者인 精氣가 凝聚하야 魂을 形成{{TagPage|177-1}}하고 그 濁者인 質이 凝聚하야 魂을 이루며 이 兩者가 合하야 人生이 되는 것이오 氣로 하여곰 이러한 造化를 하게 하는 것을 理라고 하였다. 그러고 未便盡散이라는 괴루운 理論으로서 祖先崇拜制度를 擁護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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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0번={{TagSpage|177-2}}上述한 바를 簡單히 陰陽說的이라 할 수 있다면 이에 對하야 五行說的 見解를 갖인 者도 있었으니 「關尹子」 四符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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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1번={{TagSpage|177-3}}<blockquote no="25">精者水 魄者金 神者火 魂者木 云々 鬼云爲魂 鬼白僞魄 於文則然 鬼者人死所變 云者風</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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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2번={{TagSpage|177-4}}이란 것이 그것이나 首肯할 만한 理論을 發見할 수 없다. 아마 宋代 人의 假託說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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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3번={{TagSpage|177-5}}다음에 道家의 說을 잠간 삺이어보면 「列子」 天瑞篇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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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4번={{TagSpage|177-6}}<blockquote no="26">精神者天之分 骨骸者地之分 屬天清而散 屬地濁而聚 精神離形 各歸其眞 故謂之鬼 鬼歸也 歸其眞宅也</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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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5번={{TagSpage|177-7}}라 하고 「抱朴子」 至理篇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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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6번={{TagSpage|177-8}}<blockquote no="27">形者神之宅也 故醫之於堤 堤壞則水不留矣 方之於燭 燭糜則火不居矣 形勞則神散 氣嵑則命終 根渴枝繁 則青青去木矣 氣疲欲勝 則精靈離身矣 夫逝者無反期 旣朽無生理 云々</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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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7번={{TagSpage|177-9}}이라 하야 儒家들의 說과 近似하며 儒家들의 그것보다 哲學的으로 展開되지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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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8번={{TagSpage|177-10}}最後로 우리가 注意할 것은 六朝時代에 盛論된 神滅神不滅論이니 다음에 그 大略을 들어보겟다. 神이란 것은 魂에 該當하는 말일씨 勿論이다. 사람의 靈魂不滅을 否定한 이는 范縝이니 그의 神滅論은 當時의 儒家 佛家들의 一齊攻擊을 받고 畢竟은 梁武帝로 하여곰 神滅論 拒否의 勅命까지를 내리게 하였다. 范縝의 說을 말하기 前에 鄭道子의 神不滅論이란 것을 보면 「弘明集」 卷五 (梁 楊都建初寺釋僧祐撰)에 그 說이 보이는데 그는 問答의 形式으로 當時의 神滅論者들의 意見 같은 것을 쓰고 그것에 對하야 反駁을 加하였으므로 우리는 鄭道子의 神不滅論을 通하야 當時의 兩論을 大{{TagPage|178-1}}棡 엿볼 수 있다. 다음에 그 要領을 들면 神滅論者의 理論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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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9번={{TagSpage|178-2}}<blockquote no="28">夫神形未嘗一時相違 相遠則無神矣 草木之無神 無識故也 此形盡矣 神將安附 而謂之不滅哉 苟能不滅 則自乖其靈 不資形矣 既不資形 何理與形爲生 終不相違 不能相違 則生本是同斷可知矣</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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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0번={{TagSpage|178-3}}라는 것이오 이것을 反駁한 鄭道子의 理論의 要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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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1번={{TagSpage|178-4}}<blockquote no="29">夫火因薪則有火 無薪則無火 薪雖所以生火 而非火之本 火本自在 因薪爲用耳 若待薪然後有火 則燧人之前 其無火理乎 火本至陽 陽爲火極 故薪是火所寄 非其本也 神形相資 亦猶此矣</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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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2번={{TagSpage|178-5}}이란 것이다. 또 桓君山의 新論形神 (弘明集卷五所收) 中에 보이는 神滅論者의 理論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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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3번={{TagSpage|178-6}}<blockquote no="30">精神居形體 猞火之然燭矣 云々 氣索而死 如火燭之俱盡矣</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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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4번={{TagSpage|178-7}}이라 하였다. 그러나 神滅論者 中의 가장 有名한 이는 范縝이니 그 說은 「弘明集」 卷九所收 梁 蕭琛의 難神滅論에서 알 수 있고 이 蕭琛의 難神滅論序文 中에 <cite no="07">「內兄范子眞 著神滅論 以明無佛 自謂辯摧衆口 日服千人」</cite>이란 것을 보면 얼마나 靈魂에 對한 論爭이 甚하였든가도 짐작할 수 있다. 范縝의 神滅論의 要旨는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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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5번={{TagSpage|178-8}}<blockquote no="31">神即形也 形即神也 是以形存則神存 形謝則神滅也<br/>形者神之質 神者形之用 是則形稱其質 神言其用 形之與神 不得相異 名殊而體一也<br/>神之於質 猞利之於刃 形之於用 猞刃之於利 利之名非刃也 刃之名非利也 然而捨利無刃 捨刃無利 未聞刃沒利存 豈容形亡而神在也</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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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6번={{TagSpage|178-9}}이러한 神滅論은 現身同一이다. 魂은 肉體의 作用을 指稱함이오 肉體에 固有히 內在하는 것이며 他로부터 來入하{{TagPage|179-1}}다가 다시 他로 離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對한 蕭琛의 神不滅論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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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7번={{TagSpage|179-2}}<blockquote no="32">形者無知之稱 神者有知之名 知與無知 卽事有異 神之與形 理不容一 形神相卽 非所聞也<br/>今論形神合體 則應有不離之證 而直云神卽形 形卽神 形之與神 不得相異 此辯而無徴 有乖篤喩矣 予今據夢以驗 形神不得共體 當人寢時 其形是無知之物 而有見焉 此神遊之所接也 神不孤立 必慿形器 猶人不露處 須有居室 但形器是穢闇之質 居室是蔽塞之地 神反形內 則共識微惛惛 故以見爲夢 人歸室中 則其神暫壅塞 故以明爲味 夫人或夢上鰧玄虛 遠適萬里 若非神行 便是形往耶 形既不往 神又不離 復焉得如此 及其安寐 身似僵木 氣若寒灰 呼之不聞 撫之無覺 卽云神與形均 則是表裏俱勌 旣不外接聲音 寧能內興思想 此卽形靜神馳 斷可知矣</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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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8번={{TagSpage|179-3}}란 것이다. 曹思文의 難范中書神滅論도 이러한 常識論이니 (弘明集卷九所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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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39번={{TagSpage|179-4}}<blockquote no="33">昔者趙簡子疾 五日不知人 秦穆公七日乃寤 並神遊於帝所 帝賜之鈞天廣樂 此其形留而神遊者乎 若如論言形滅則神 滅者 斯形之與神 應如影響之必俱也 然形旣病焉 則神亦病也 何以形不知人 神獨遊帝 而欣歡於鈞天廣樂乎 云々 神之與形 有分有合 合則共爲一體 分則形亡而神逝也</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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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40번={{TagSpage|179-5}}라 하여 民間信仰 上의 常識에서 一步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上述한 바를 要約하면 魂에 對한 中國學者들 사이의 學說은 大體로 四大別할 수 있으니 一은 民俗的 常識論이오 二는 陰陽論的 精氣說이오 三은 理氣說인데 이 三者는 魂魄二元論的 魂不滅論이오 四는 魂魄同一論이며 魂滅論이다. (中國學者의 魂의 關한 記錄은 거이 無數하므로 그 取捨選擇에 困難할 地境이라 그것을 一々히 列擧할 必要는 없으므로 이만한 程度에 그치고저 한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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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41번={{TagSpage|180-1}}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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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42번={{TagSpage|180-2}}「莊子」齊物論云 「其寐也魂交 其覺也形開」<br/>「左傳」昭公二十五年云 「心之精爽 是謂魂魄 魂魄去之 何以能久」<br/>「孔子家語」卷四 哀公問政云 「宰找間於孔子日 吾聞鬼神之名 而不知其所謂 敢間 孔子日 人生有氣有魂 氣也者神之盛也 衆生必死 死必歸土 此之謂鬼 神氣歸天 此之謂神」<br/>「春秋說題辭」云 「天子曰崩 云云 大夫日卒 云云 士日不祿 云云 庶人日死 魂魄去心 死之爲言精爽窮也」 (太平御覽 五四八 死條所引)<br/>「晏氏春秋」卷八 第四條 云 「獨立不慙於影 獨寢不慙於魂一」<br/>「白虎通德論」卷四 崩薨 云 「崩薨三日乃小斂何 奪孝子之恩以漸也 一日之時 屬纊於口上 以候絕氣 二日之時 尙冀其生 三日之時 魂氣不還 終不可奈何 云云」<br/>「白虎通德論」卷三 情性云 「魂魄者何謂 魂猶云云也 行不休於外也 主於情 魄者迫然著人 主於性也」<br/>晋 楊泉 「物理論」云 「人含氣而生 精盡而死 猶澌也滅也 譬如火焉 薪盡而火滅 則無光矣 故滅火之餘 無遺炎交 人死之後 無遺魂矣」 (太平御覽 五四八 死條所引)<br/>魏 董勛 「問禮俗」(玉函山房輯佚書本)云 「或間勛日 俗五月不上屋 云五月人或上屋見影 魂便去 云云」<br/>「漁樵間容」 論生死 漁者 云  「人之死也 謂其形返 氣行則神魂交 形返則精魄存 神魂行於天 精魄返於地 行於天則謂之日門行 返於地則謂之曰陰返 陽行則晝見而夜伏者也 陰返則夜見而晝伏者也 是故 日者月之形也 月者日之影也 陽者陰之形也 陰者陽之影也 人者鬼之形也 鬼者人之影也 人謂鬼無形而無知者 吾不信也」 (古今圖書集成 人事典 八九 生死 總論所引)<br/>「性理大全」二八 鬼神云 「南軒張氏曰 鬼神之說 合而言之 來而不測謂之神 往而不返謂之鬼 分而言之 天地山川風雷之屬 凡氣之所接者 皆曰神 祖考祠饗於廟曰鬼 就人物而言之 聚而生爲神 㪚而死爲鬼 又就一身而言之 魂氣爲神 體魄爲鬼 凡六經所稱 蓋不越是{{TagPage|181-1}}數端 然一言以蔽之 莫非造化之迹 而語其徳 則誠而已<br/>鶴山魏氏曰 云云 宇宙之間 氣之至而伸者爲神 反而歸者爲鬼 其在人焉則 陽魂爲神 隂魄爲鬼 二氣合則 魂聚魄凝而生 離則魂升爲神 魄降爲鬼<br/>程子 曰 動者魂 靜者魄也 動靜二字 括盡魂魄 凡能運用作爲皆魂也 魄則不能 今人之所以能運動 都是魂使之爾 魂若去魄 則不能也」<br/>粱 陶弘景 「肘後備急方」卷一云 「魘臥寐不寫者 皆魂魄外遊 爲邪外執錄 欲還未得 當忌火照 火照途不復入 云云 以麻轉脚 万詰問其故 约敕解之 令一人坐痘頭守 一人於戶內呼病人姓名 坐人應曰 諾在 便蘇」<br/>「靈樞經」二二 大惑論篇云 「目者心之使也 心者神之舍也 故神精亂而不轉 卒然見非常處 精神魂魄 散不相得 故曰惑也」<br/>明 徐春甫編 「古今醫統」云 「五絕乃縊死跌死魘死淹死壓死是也 然此等之死 五贜未絕 因外來之禍而枉死者也 其魂魄守於屍旁 相去未遠 茍以神術招之 魂魄即附體而可生也」<br/>「胎息經」云 「氣入身來爲之生 神去離形爲之死」 (說郛續三十 明王文祿 胎息經疏)<br/>明 岳正 「類博雜言」 (學海類編 子類所收)云 「魂少陽也 靜與物交而成夢 魄少隂也 動與物合而成祟 意藏于脾而常靜 感而後應 應則出傳于肝 是爲魂 傳而至于心則極矣 極則無所不知 無所不能 故謂之神 神也者不能常動也 動極必靜 靜則入 入而歸于肺 是名魄 歸而至于腎則極矣 極則無所與知 無所與能 復藏于脾矣」<br/>淸 紀昀 「如是我聞」卷四 云 「人之魂善而魄惡 人之魂靈而魄愚 其始來也 一靈不泯 魄附魂以行 其既去也 心事既畢 魂一散而滯  魂在則爲人也 魂去則非其人也 世之移尸去影 皆魄爲之 云云」<br/>淸 鈕琇 「觚賸」續卷四 鼠魂云 「云云 崔曰 聞之方書云 凡猫逐鼠急 鼠則先失其魂 遂伏不動 猫乃擒噬 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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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번=중화민족이 혼의 존재를 추리하게 된 것은 아득한 옛날에 속할 바이지만 이에 대하여 이론적 비판을 가하게 된 것은 유가(儒家)로부터 시작된 듯하다. 유가 이외의 고전에도 혼에 관한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아직 학설의 정도에 이르지 못하였다. {{TagBook|[[「논어」]]}} 위정편에 <cite no="03">“子曰 非其魂而祭之 謟也”</cite>란 귀(鬼)가 정현 이후 유가들의 해석과 같이 조고의 사령을 가르친 것이라면 공자의 혼에 대한 해석은 민간의 신앙사상과 대차가 없었을 듯하나 이것만으로는 단안을 내리기 곤란하다. 그리고 {{TagBook|[[「역경」]]}} 계사 상에는 <cite no="04">“陰陽不測之謂神 精氣爲物 遊魂爲變 是故知鬼神之情狀”</cite>이라 하여 귀신을 음양설적 견지에서 설명하고자 하였음을 보면 혼에 대하여서도 또한 그러한 입장을 취하였으리라고 추론되나 그러나 극히 모호한 일이다. {{TagBook|[[「예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좀 더 구체적 설명을 발견할 수 있으니 그 교특생편에
|목차2해독문2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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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번=<blockquote no="16">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 故祭求諸陰陽之義也</blockquote>
|목차2해독문3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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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번=라 하여 혼을 기라 하고 그것은 원래 천(양)에 속한 바요 사후는 천으로 다시 귀거한다고 하였다. 혼은 민간신앙과 같이 형체와 이지를 가진 형이하적 존재가 아니요 형이상적 기에 불과하다는 사상이다. 그리고 형백 즉 육체는 지에서 나서 지로 환원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음양설적 혼백이원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상을 비교적 순수하게 부연한 것은 당 {{TagPerson|[[성백여]]}}의 {{TagBook|[[「예기외전」]]}} 및 장유륜의 그 주일 것이니
|목차2해독문4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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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4번=<blockquote no="17">人之精氣日魂<sup>魂陽也云云而動</sup> 形體謂之魄<sup>魄陰也寂然不動</sup> 合陽陽二氣而生也<sup>精神聚而爲一物</sup> 形勞則神逝<sup>謂死而魂遊散</sup> 死則難復生也 孝子之心 不能忍也 故升屋而招其魂神也 神智無涯也 鬼者復於土也<sup>人皆食土之物養成形體也</sup> 氣絕而收其魂 使反復於體也 (太平御覽五四九 復魂條所引)</blockquote>
|목차2해독문5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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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5번=라 하였다. 그러나 유자(儒者) 사이에 있어서도 이 혼기 형백에 대한 해석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아니하여 {{TagBook|[[「좌전」]]}} 소공 7년조에 <cite no="05">“及子產適晋 趙景子問焉曰 伯有猶能爲鬼乎 子產曰能 人生始化曰魄 旣生魄 陽曰魂 用物精多 則魂魄强 云々”</cite>이라 한 것의 당 {{TagPerson|[[공영달]]}} 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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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6번=<blockquote no="18">人之生也 始變化爲形 形之靈者 名之曰魄也 既生魄矣 魄内自有陽氣 氣之神者 名之曰魂也 魂魄神靈之名 本從形氣而有 形氣旣殊 魂魄亦異 {{ruby|附形之靈爲魄|○○○○○○}} {{ruby|附氣之神爲魂|○○○○○○}}也 附形之靈者 謂初生之時 耳目心識手足運動啼呼爲聲 此則魄之靈也 附氣之神者 謂精神性識漸有所知 此則附氣之神也 是魄在於前 而魂在於後 故云旣生魄曰魂 魂魄俱是性靈 但{{ruby|魄識少|○○○}} {{ruby|而魂識多|○○○○}} 云々</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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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7번=이라 하여 그는 혼과 기를 구별하고 또 형과 백을 구별하여 혼즉혼기 혼즉형체의 설을 부정하였을 뿐 아니라 백도 유치하나마 지각을 가진 형이상적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cite no="06">“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cite>에 대하여서도 해석을 달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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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8번=<blockquote no="19">以魂本附氣 氣必上浮 故言魂氣歸于天 魄本附形 形旣入土 故言形魄歸于地</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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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9번=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수 {{TagPerson|[[유현]]}} 같은 이는 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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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0번=<blockquote no="20">人之受生 形必有氣 氣形相合 義無先後 而此云始化曰魄 陽曰魂 是則先形而後氣 先魄而後魂 魂魄之生有先後者 以形有質 而氣無質 尋形以知氣 故先魄而後魂 其實並生無先後也</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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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1번=라 하여 혼백병생설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부분적 이설(異說)은 반드시 이것뿐만 아니지만 그것을 여기서 번거롭게 논의할 필요는 없고 대체로 본다면 그들은 모두 대개 음양설적 혼백이원론을 취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바는 앞서 인용한 {{TagPerson|[[공영달]]}}의 혼귀천 백귀지에 대한 상식적 해석이다. 이것은 다른 유가들의 사상과는 대상부동한 것이니 귀어천 귀어지라고 말한 이상 이것을 귀원의 의미로 해석함이 더욱 철학적이요 또 타당할 것이다. {{TagBook|[[「한서」]]}} 양왕손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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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2번=<blockquote no="21">且吾聞之 精神者天之有也 形骸者地之有也 精神離形 各歸其眞 故謂之鬼 鬼之爲言歸也 其尸塊然獨處 豈有知哉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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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3번=라고 한 것이며 {{TagBook|[[「회남자」]]}} 권7 정신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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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4번=<blockquote no="22">古夫有天地之時 惟像無形 窈窈冥冥 芒芠漠閔 澒獴鴻洞 莫知其門 有二神混生 經天營地 孔乎莫知其所終極 滔乎莫知其所止息 於是乃別爲陰陽 離爲八極 剛柔相成 萬物乃形 煩氣爲蟲 精氣爲人 是故精神天之有也 而骨骸者地之有也 精神入其門 而骨骸反共根 我尙何存 云云</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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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5번=이란 것 등은 도가의 영향을 받은 한(漢) 대 유가들의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이는 후한의 {{TagPerson|[[왕충]]}}이니 {{TagPerson|[[왕충]]}}의 소위 기 정기 정신 등이 민간신앙상의 혼에 해당할 것은 {{TagBook|[[「논형」]]}} 20 논사편의 다음과 같은 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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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6번=<blockquote no="23">人之所以生者 精氣也 死而精氣滅 能爲精氣者血脉也 人死血脉竭 竭而精氣滅 滅而形體朽 朽而成灰土 云云 人死精神升天 骸骨歸土 故謂之鬼 鬼者歸也 云云 人用神氣生 其死復歸神氣 陰陽稱鬼神 人死亦稱鬼神 氣之生人 猶水之爲氷也 水凝爲氷 {{ruby|氣凝爲人|○○○○}} 氷釋爲水 人死復神 其名爲神也 猞氷釋更名水也 云云 人之精神 藏於形體之內 猞粟米在囊橐之中也 死而形體朽精氣散 猶囊橐穿敗 粟米棄出也 粟米棄出 囊橐無復有形 精氣散亡 何能復有體 而人得見之乎 云云 如人死輒爲鬼 則道路之上 一步一鬼也 人且死見鬼 宜見數百千萬 滿堂盈庭 塡塞港路 不宜徒見 一兩人也 云云 天地之性 能更生火 不能使滅火復燃 能更生人 不能令死人復見 云云 夫死人不能爲鬼 則亦無所知矣 何以驗之 以未生之時 無所知也 人未生 在元氣之中 旣死 復歸元氣 {{ruby|元氣荒忽|○○○○}} {{ruby|人氣在其中|○○○○○}} 人未生無所知 其死歸無知之本 何能有知乎 云云 天下無獨撚之火 世間安得有無體獨知之精 云云 人之未死也 智慧精神定矣 病則惛亂 精神擾也 夫死病之甚者也 病死之微 猞惛亂 况其甚乎 精神擾 自無所知 况其散也 人之死 猶火之滅也 火滅而燿不照 人死而知不慧 二者宜同一實 云云 陰陽之氣凝而爲人 年終壽盡 死還爲氣 云云</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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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7번={{TagPerson|[[왕충]]}}의 설에 의하면 우주에는 원기란 것이 충만하여 있고 그 원기 중에는 만물을 생할 바 기가 되어있으며 그 기중의 하나가 인기(人氣)요 인기가 응결하여 인류를 생하고 죽으면 이것이 다시 해산되어 원기 중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수와 빙의 관계와 같으며 또 기란 것은 단독으로는 아무 지각이 없고 오직 물에 의하여서만 지각을 발휘할 수 있으니 그것은 마치 신과 화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도 양설을 종합하여 독특한 합리주의적 일이설(一異說)을 제창한 것이다. 이 설은 조선제사를 부정하는 사상이므로 후세의 유가는 이것을 취하지 아니하였고 전통적 유가의 제설 종합하여 한층 더(加一層) 철학적 체계를 부여한 것이 송 {{TagPerson|[[주희]]}}의 이기론적 혼백취산설이니 그 요령은 {{TagBook|[[「성리대전서」]]}} 28 논재인귀신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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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8번=<blockquote no="24">問生死鬼神之理 日天道流行 發育萬物 有理而後有氣 雖是一時 都有畢竟 以理爲主 人得之以有生氣之淸者爲氣 濁者爲質 知覺運動 陽之爲也 形體陰之爲也 {{ruby|氣曰魂|○○○}} {{ruby|體曰魄|○○○}} 云云 人所以生 精氣聚也 人只有許多氣 須有箇盡時 盡則魂氣歸於天 形魄歸於地而死矣 人將死時 熱氣上出 所謂魂升也 下體漸冷 所謂魄降也 此所以有生必有死 有始必有終也 夫聚散者氣也 若理則只泊在氣上 初不見凝結 自爲一物 云云 {{ruby|然人死雖終歸於散|○○○○○○○○}} {{ruby|然亦未便盡散|○○○○○○}} {{ruby|故祭祀有感格|○○○○○○}}之理 云云 已散者不復聚 釋氏却謂人死爲鬼 鬼復爲人 如此則 天地間常只是許多人來來去去 更不由造化生生 必無是理 云云</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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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9번=이란 것으로 종래의 설에 주자의 독특한 이기론적 체계를 부흥하였을 따름이다. 기의 청자인 정기가 응취하여 혼을 형성하고 그 탁자인 질이 응취하여 혼을 이루며 이 양자가 합하여 인생이 되는 것이요 기로 하여금 이러한 조화를 하게 하는 것을 이라고 하였다. 그러고 미편진산(未便盡散)이라는 괴로운 이론으로서 조선숭배제도를 옹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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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0번=상술한 바를 간단히 음양설적이라 할 수 있다면 이에 대하여 오행설적 견해를 가진 자도 있었으니 {{TagBook|[[「관윤자」]]}} 4부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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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1번=<blockquote no="25">精者水 魄者金 神者火 魂者木 云々 鬼云爲魂 鬼白僞魄 於文則然 鬼者人死所變 云者風</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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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2번=이란 것이 그것이나 수긍할 만한 이론을 발견할 수 없다. 아마 송(宋) 시대 사람의 가탁설(假託說)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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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3번=다음에 도가의 설을 잠깐 살펴보면 {{TagBook|[[「열자」]]}} 천서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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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4번=<blockquote no="26">精神者天之分 骨骸者地之分 屬天清而散 屬地濁而聚 精神離形 各歸其眞 故謂之鬼 鬼歸也 歸其眞宅也</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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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5번=라 하고 {{TagBook|[[「포박자」]]}} 지리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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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6번=<blockquote no="27">形者神之宅也 故醫之於堤 堤壞則水不留矣 方之於燭 燭糜則火不居矣 形勞則神散 氣嵑則命終 根渴枝繁 則青青去木矣 氣疲欲勝 則精靈離身矣 夫逝者無反期 旣朽無生理 云々</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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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7번=이라 하여 유가들의 설과 근사하며 유가들의 그것보다 철학적으로 전개되지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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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8번=최후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육조시대에 성론된 신멸신불멸론이니 다음에 그 대략을 들어보겠다. 신이란 것은 혼에 해당하는 말임은 물론이다. 사람의 온혼부멸을 부정한 이는 {{TagPerson|[[범진]]}}이니 그의 신멸론은 당시의 유가 불가들의 일제공격을 받고 필경은 {{TagPerson|[[양무제]]}}로 하여금 신멸론 거부의 칙명까지를 내리게 하였다. {{TagPerson|[[범진]]}}의 설을 말하기 전에 {{TagPerson|[[정도자]]}}의 신불멸론이란 것을 보면 {{TagBook|[[「홍명집」]]}} 권5(梁 楊都建初寺釋僧祐撰)에 그 설이 보이는데 그는 문답의 형식으로 당시의 신멸론자들의 의견 같은 것을 쓰고 그것에 대하여 반박을 가하였으므로 우리는 정도자의 신불멸론을 통하여 당시의 양론을 대강 엿볼 수 있다. 다음에 그 요령을 들면 신멸론자의 이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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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29번=<blockquote no="28">夫神形未嘗一時相違 相遠則無神矣 草木之無神 無識故也 此形盡矣 神將安附 而謂之不滅哉 苟能不滅 則自乖其靈 不資形矣 既不資形 何理與形爲生 終不相違 不能相違 則生本是同斷可知矣</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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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0번=라는 것이오 이것을 반박한 {{TagPerson|[[정도자]]}}의 이론의 요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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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1번=<blockquote no="29">夫火因薪則有火 無薪則無火 薪雖所以生火 而非火之本 火本自在 因薪爲用耳 若待薪然後有火 則燧人之前 其無火理乎 火本至陽 陽爲火極 故薪是火所寄 非其本也 神形相資 亦猶此矣</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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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2번=이란 것이다. 또 환군산의 신론형신 ({{TagBook|[[홍명집]]}} 권5 소수) 중에 보이는 신멸론자의 이론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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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3번=<blockquote no="30">精神居形體 猞火之然燭矣 云々 氣索而死 如火燭之俱盡矣</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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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4번=이라 하였다. 그러나 신멸론자 중의 가장 유명한 이는 {{TagPerson|[[범진]]}}이니 그 설은 {{TagBook|[[「홍명집」]]}} 권9 소수 양 {{TagPerson|[[소침]]}}의 난신멸론에서 알 수 있고 이 {{TagPerson|[[소침]]}}의 난신멸론 서문 중에 <cite no="07">“內兄范子眞 著神滅論 以明無佛 自謂辯摧衆口 日服千人”</cite>이란 것을 보면 얼마나 영혼에 대한 논쟁이 심하였던가도 짐작할 수 있다. {{TagPerson|[[범진]]}}의 신멸론의 요지는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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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5번=<blockquote no="31">神即形也 形即神也 是以形存則神存 形謝則神滅也<br/>形者神之質 神者形之用 是則形稱其質 神言其用 形之與神 不得相異 名殊而體一也<br/>神之於質 猞利之於刃 形之於用 猞刃之於利 利之名非刃也 刃之名非利也 然而捨利無刃 捨刃無利 未聞刃沒利存 豈容形亡而神在也</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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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6번=이러한 신멸론은 현신동일(現身同一)이다. 혼은 육체의 작용을 지칭함이요 육체에 고유히 내재하는 것이며 타로부터 들어오다가 다시 타로 떠나는 것(離去)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TagPerson|[[소침]]}}의 신불멸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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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7번=<blockquote no="32">形者無知之稱 神者有知之名 知與無知 卽事有異 神之與形 理不容一 形神相卽 非所聞也<br/>今論形神合體 則應有不離之證 而直云神卽形 形卽神 形之與神 不得相異 此辯而無徴 有乖篤喩矣 予今據夢以驗 形神不得共體 當人寢時 其形是無知之物 而有見焉 此神遊之所接也 神不孤立 必慿形器 猶人不露處 須有居室 但形器是穢闇之質 居室是蔽塞之地 神反形內 則共識微惛惛 故以見爲夢 人歸室中 則其神暫壅塞 故以明爲味 夫人或夢上鰧玄虛 遠適萬里 若非神行 便是形往耶 形既不往 神又不離 復焉得如此 及其安寐 身似僵木 氣若寒灰 呼之不聞 撫之無覺 卽云神與形均 則是表裏俱勌 旣不外接聲音 寧能內興思想 此卽形靜神馳 斷可知矣</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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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8번=란 것이다. {{TagPerson|[[조사문]]}}의 난범중서신멸론도 이러한 상식론이니 (홍명집 권9 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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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39번=<blockquote no="33">昔者趙簡子疾 五日不知人 秦穆公七日乃寤 並神遊於帝所 帝賜之鈞天廣樂 此其形留而神遊者乎 若如論言形滅則神 滅者 斯形之與神 應如影響之必俱也 然形旣病焉 則神亦病也 何以形不知人 神獨遊帝 而欣歡於鈞天廣樂乎 云々 神之與形 有分有合 合則共爲一體 分則形亡而神逝也</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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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40번=라 하여 민간신앙 상의 상식에서 일보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상술한 바를 요약하면 혼에 대한 중국학자들 사이의 학설은 대체로 네 가지로 대별할 수 있으니 첫째는 민속적 상식론이요 둘째는 음양론적 정기설이요 셋째는 이기설인데 이 세 가지는 혼백이원론적 혼불멸론이요 넷째는 혼백동일론이며 혼멸론이다. (중국학자의 혼의 관한 기록은 거의 무수하므로 그 취사선택에 곤란할 지경이라 그것을 일일히 열거할 필요는 없으므로 이만한 정도에 그치고자 한다).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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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41번=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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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42번={{TagBook|[[「莊子」]]}} 제물론: 「其寐也魂交 其覺也形開」<br/>{{TagBook|[[「莊子」]]}} 소공 25년: 「心之精爽 是謂魂魄 魂魄去之 何以能久」<br/>{{TagBook|[[「孔子家語」]]}} 권4 애공문정: 「宰找間於孔子日 吾聞鬼神之名 而不知其所謂 敢間 孔子日 人生有氣有魂 氣也者神之盛也 衆生必死 死必歸土 此之謂鬼 神氣歸天 此之謂神」<br/>{{TagBook|[[「춘추설제사」]]}}: 「天子曰崩 云云 大夫日卒 云云 士日不祿 云云 庶人日死 魂魄去心 死之爲言精爽窮也」 (太平御覽 五四八 死條所引)<br/>{{TagBook|[[「안씨춘추」]]}} 권8 제사조: 「獨立不慙於影 獨寢不慙於魂一」<br/>{{TagBook|[[「백호통덕론」]]}} 권4 붕훙: 「崩薨三日乃小斂何 奪孝子之恩以漸也 一日之時 屬纊於口上 以候絕氣 二日之時 尙冀其生 三日之時 魂氣不還 終不可奈何 云云」<br/>{{TagBook|[[「백호통덕론」]]}} 권3 정성: 「魂魄者何謂 魂猶云云也 行不休於外也 主於情 魄者迫然著人 主於性也」<br/>진 양천 「물리론」: 「人含氣而生 精盡而死 猶澌也滅也 譬如火焉 薪盡而火滅 則無光矣 故滅火之餘 無遺炎交 人死之後 無遺魂矣」 (太平御覽 五四八 死條所引)<br/>위 동훈 {{TagBook|[[「문례속」]]}}(옥함산방집일서본): 「或間勛日 俗五月不上屋 云五月人或上屋見影 魂便去 云云」<br/>{{TagBook|[[「어초간용」]]}} 논생사 어자: 「人之死也 謂其形返 氣行則神魂交 形返則精魄存 神魂行於天 精魄返於地 行於天則謂之日門行 返於地則謂之曰陰返 陽行則晝見而夜伏者也 陰返則夜見而晝伏者也 是故 日者月之形也 月者日之影也 陽者陰之形也 陰者陽之影也 人者鬼之形也 鬼者人之影也 人謂鬼無形而無知者 吾不信也」 (古今圖書集成 人事典 八九 生死 總論所引)<br/>{{TagBook|[[「성리대전」]]}} 28 귀신: 「南軒張氏曰 鬼神之說 合而言之 來而不測謂之神 往而不返謂之鬼 分而言之 天地山川風雷之屬 凡氣之所接者 皆曰神 祖考祠饗於廟曰鬼 就人物而言之 聚而生爲神 㪚而死爲鬼 又就一身而言之 魂氣爲神 體魄爲鬼 凡六經所稱 蓋不越是數端 然一言以蔽之 莫非造化之迹 而語其徳 則誠而已<br/>{{TagPerson|[[학산위]]}}씨 왈 云云 宇宙之間 氣之至而伸者爲神 反而歸者爲鬼 其在人焉則 陽魂爲神 隂魄爲鬼 二氣合則 魂聚魄凝而生 離則魂升爲神 魄降爲鬼<br/>{{TagPerson|[[정자]]}} 왈 動者魂 靜者魄也 動靜二字 括盡魂魄 凡能運用作爲皆魂也 魄則不能 今人之所以能運動 都是魂使之爾 魂若去魄 則不能也」<br/>양 {{TagPerson|[[도홍경]]}} {{TagBook|[[「주후비급방」]]}} 권1: 「魘臥寐不寫者 皆魂魄外遊 爲邪外執錄 欲還未得 當忌火照 火照途不復入 云云 以麻轉脚 万詰問其故 约敕解之 令一人坐痘頭守 一人於戶內呼病人姓名 坐人應曰 諾在 便蘇」<br/>{{TagBook|[[「영추경」]]}} 22 대혹론편: 「目者心之使也 心者神之舍也 故神精亂而不轉 卒然見非常處 精神魂魄 散不相得 故曰惑也」<br/>명 {{TagPerson|[[서춘보]]}} 편 {{TagBook|[[「고금의통」]]}}: 「五絕乃縊死跌死魘死淹死壓死是也 然此等之死 五贜未絕 因外來之禍而枉死者也 其魂魄守於屍旁 相去未遠 茍以神術招之 魂魄即附體而可生也」<br/>{{TagBook|[[「태식경」]]}}: 「氣入身來爲之生 神去離形爲之死」 (說郛續三十 明王文祿 胎息經疏)<br/>명 {{TagPerson|[[악정]]}} {{TagBook|[[「류박잡언」]]}}(학해류 편 자류 소수): 「魂少陽也 靜與物交而成夢 魄少隂也 動與物合而成祟 意藏于脾而常靜 感而後應 應則出傳于肝 是爲魂 傳而至于心則極矣 極則無所不知 無所不能 故謂之神 神也者不能常動也 動極必靜 靜則入 入而歸于肺 是名魄 歸而至于腎則極矣 極則無所與知 無所與能 復藏于脾矣」<br/>청 {{TagPerson|[[기윤]]}} {{TagBook|[[「여시아문」]]}} 권4: 「人之魂善而魄惡 人之魂靈而魄愚 其始來也 一靈不泯 魄附魂以行 其既去也 心事既畢 魂一散而滯  魂在則爲人也 魂去則非其人也 世之移尸去影 皆魄爲之 云云」<br/>청 {{TagPerson|[[유수]]}} {{TagBook|[[「고잉」]]}} 속권4 서혼: 「云云 崔曰 聞之方書云 凡猫逐鼠急 鼠則先失其魂 遂伏不動 猫乃擒噬 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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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30일 (토) 17:15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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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족의 혼에 관한 신앙과 학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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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中華民族의 魂에 關한 信仰과 學說(二)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진단학보 5 발행기관
저자 손진태 역자 집필일자 게재연월 1936년07월
시작쪽 165쪽 종료쪽 181쪽 전체쪽 17쪽 연재여부 2회 범주 논술 분야 민속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목차







본문


본문1: 2.혼과 육체의 관계


사자의 부활을 위하여 그 혼을 초환하려고 하는 의식을 중화민족은 복(復)이라 하였다. 초혼복백의 의미이다. 이 의식에 대하여 「예기」서적에 보이는 바를 보면
쪽수▶P165-1死者의 復活을 爲하야 그 魂을 招還(초환)하려고 하는 儀式을 中華民族은 復이라 하였다. 招魂復魄(초혼복백)의 意味이다. 이 儀式에 對하야 「禮記」에 보이는 바를 보면

復 盡愛之道也 有禱祀之心焉 望反諸幽 求諸鬼神之道也 北面 求諸幽之義也 (檀弓下)
及其死也 升屋而號告日 皐某復 云云 故死者北首 生者南鄉 其從其初 (禮運)
復衣 不以衣尸 不以歛 婦人復 不以蚺 凡復 男子稱名 婦人稱字 唯哭先復 復而後行死事 始卒主人啼 兄弟哭 婦人哭踊 云云 (喪大記)

쪽수▶P165-2

復 盡愛之道也 有禱祀之心焉 望反諸幽 求諸鬼神之道也 北面 求諸幽之義也 (檀弓下)
及其死也 升屋而號告日 皐某復 云云 故死者北首 生者南鄉 其從其初 (禮運)
復衣 不以衣尸 不以歛 婦人復 不以蚺 凡復 男子稱名 婦人稱字 唯哭先復 復而後行死事 始卒主人啼 兄弟哭 婦人▶P166-1哭踊 云云 (喪大記)

이라 하고 또 사자의 계급 신분(왕 후 대부 사 서인 같은)에 따라 그 행하는 바 의식의 상세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계급화한 복잡한 의식의 일일에 대하여 말하고자 함이 아니요 이 초혼복백의 의식을 통하여 중화민족의 혼에 대한 원시신앙의 일단을 알고자 함에 있다. 이 예기서적의 글에 의하여 보면 사자가 생긴 경우에 그 가족은 사자의 의복을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북을 향하여 그 의복을 보이면서 사자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오라고 호고(號告)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도 돌아오지 않는 때에 비로소 부활을 단념하고 사사(死事)를 행하였다. 예기서적는 비록 한대의 서적이지만 이러한 사상과 의식은 보다 더 고래의 민족신앙일 것이다. 복은 사자의 시체로부터 떠난 혼을 다시 초환하고자 하는 의식이며 승옥북면은 떠난 혼이 비양하여 북방으로 향한다고 생각한 것을 말하는 것이며 (혼이 북방으로 간다는 사상은 오행사상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사자의 의복을 보이면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생에 대한 애착심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자 호소하는 것이었다. 후한의 정사농인물(현)도 “謂復始死招魂復魄也”라고 주해하였다. (귀족계급 간의 정장 습속도 이 복 사상의 연장일 것이다). 이 의식을 통하여서도 우리는 혼이란 것이 육체와는 독립한 일개의 생활체로서 육체의 사후에는 의연히 지정의(知情意)와 사고력을 갖고 있다는 그들의 신앙을 알 수 있다. 귀신사상 사자숭배 후세생활 영혼불감 등 사상의 심리적 근거는 이에서 출발한 것이다. 예기서적에서 제도화한 복의 의식을 이후의 지배계급이나 지식계급에서 수행한 것과 또 이것이 조선에도 수입되어 널리 행하게 된 것은 췌언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다음에 중국의 기록에서 일례만을 들면 「통전」서적 63 복조에는
쪽수▶P166-2이라 하고 또 死者의 階級(계급) 身分(王 候 大夫 士 庶人 같은)에 따라 그 行하는바 儀式의 詳細를 記錄하였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여기서 論코저 하는 것은 그러한 階級化한 複雜한 儀式의 一一에 대하여 말하고저 함이 아니요 이 招魂復魄의 儀式을 通하야 中華民族의 魂에 對한 原始信仰의 一端을 알고저 함에 있다. 이 禮記의 글에 依하야 보면 死者가 생긴 境遇에 그 家族은 死者의 衣服을 갖이고 屋上에 올나가 北을 向하야 그 衣服을 보이면서 死者의 일흠을 불으며 도라오라고 號告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도 도라오지 안는 때에 비로소 復活을 斷念하고 死事를 行하였다. 禮記는 비록 漢代의 書籍일지나 이러한 思想과 儀式은 보다 더 古來의 民族信仰일 것이다. 復은 死者의 屍體로부터 떠난 魂을 다시 招還코저 하는 儀式이며 升屋北面은 떠난 魂이 飛揚하야 北方으로 向한다고 생각한 것을 말하는 것이며 (魂이 北方으로 간다는 思想은 五行思想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死者의 衣服을 보이면서 그 일흠을 부르는 것은 生에 對한 愛着心을 다시 한 번 喚起식히고저 呼訴하는 것이었다. 後漢의 鄭司農(玄)도 「謂復始死招魂復魄也」라고 註解하였다. (貴族階級間의 停葬習俗도 이 復思想의 延長일 것이다). 이 儀式을 通하여서도 우리는 魂이란 것이 肉體와는 獨立한 一個의 生活體로서 肉體의 死後에는 依然히 知情意와 思考力을 갖고 있다는 그들의 信仰을 알 수있다. 鬼神思想 死者崇拜 後世生活 靈魂不減 等 思想의 心理的 根據는 이에서 出發한 것이다. 禮記에서 制度化한 復의 儀式을 爾後의 支配階級이나 知識階級에서 守行한 것과 또 이것이 朝鮮에도 輸入되어 널리 行하게된 것은 贅言(췌언)할 必要도 없는 것이지만 다음에 中國의 記錄에서 一例만을 들면 「通典」 六三 復條에는

大唐元陵儀注 將復於太極殿內 高品五人 皆常服 以大行皇帝袞冕服 左荷之外 自前東霤 當屋履危北面西上 三呼而止 以衣投於前 承之以箧 自阼階入 以覆大行皇帝之上 復者徹殿西北扉降 自後西霤 其復衣 不以襲歛 浴則去之 云云

쪽수▶P166-3

大唐元陵儀注 將復於太極殿內 高品五人 皆常服 以大行皇帝袞冕服 左荷之外 自前東霤 當屋履危北面西上 三呼而▶P167-1止 以衣投於前 承之以箧 自阼階入 以覆大行皇帝之上 復者徹殿西北扉降 自後西霤 其復衣 不以襲歛 浴則去之 云云

이라 하여 대체로 예기서적의 소제를 수행하였다. 그러면 이 초혼이란 사상이며 의식이 전연 한대 유가들의 창견(創見)이겠느냐 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한다.
쪽수▶P167-2이라 하야 大體로 禮記의 所制를 守行하였다. 그러면 이 招魂이란 思想이며 儀式이 全然 漢代儒家들의 創見이겟느냐 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한다.
종래의 인류학자들은 대개 사체공포설로써 상장에 관한 모든 민속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만일 이 설을 따른다면 초혼사상은 인류의 소위 도덕관념이란 것이 상당히 발달된 이후의 소산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며 또 실제로도 미개민 사이에는 엽노(枽老)의 사상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노사(老死)만 하는 것이 아니요 또 사체를 공포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죽음의 순간에 있어서는 그리고 그 사자가 더 살았으면 하는 애석의 느낌을 가족에게 주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그 죽음의 순간에 있어 그 진정의 죽음을 믿지 아니하였을 것이며 그 혼을 다시 초환하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진정의 죽음이 판단된 이후의 사체에 대하여는 공포의 느낌을 가졌겠지만은 그들의 지력으로서 생사를 판단하기 어려운 죽음의 순간에 있어서는 그러하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초혼사상을 매우 원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바이나 예기에 보이는 바와 같은 이러한 의식까지가 원시적이란 의미는 아니다. 상상하건대 가장 원시적인 초혼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을 듯하니 하나는 애호로써 그 부인리(不忍離)의 정을 환기함이요 둘은 음식 가무 등으로 사자의 혼을 만류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始卒主人啼 兄弟哭 婦人哭踊”은 그러한 습속의 유흔이 아닌가 한다.
쪽수▶P167-3從來의 人類學者들은 大概 死體恐怖說로써 喪葬에 關한 모든 民俗을 說明코저 하였다. 만일 이 說을 따른다면 招魂思想은 人類의 所謂 道德觀念이란 것이 相當히 發達된 以後의 所産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며 또 實際로도 未開民 사이에는 枽老(엽노)의 思想이 存在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반다시 老死만 하는 것이 아니요 또 死體를 恐怖함은 不定할 수 없는 事實이지마는 적어도 死의 瞬間에 있었어는 그러고 그 死者가 더 살었으면 하는 愛惜의 感을 家族에게 주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그死의 瞬間에 있어 그 眞正의 死를 믿지 아니하였을 것이며 그 魂을 다시 招還(초환)코저 努力하였을 것이다. 眞正의 死가 判斷(판단)된 以後의 死體에 對하여는 恐怖의 感을 갖이었겟지마는 그들의 智力으로서 生死를 判斷키 어려운 死의 瞬間에 있어서는 그러하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招魂思想을 매우 原始的인 것으로 생각하는 바이나 禮記에 보이는 바와 같은 이러한 儀式까지가 原始的이란 意味는 아니다. 想像하건대 가장 原始的인 招魂方法은 二種이 있었을 듯하니 其一은 哀呼로써 그 不忍離의 情을 喚起함이오 其二는 飮食歌舞 等으로 死者의 魂을 挽留(만류)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始卒主人啼 兄弟哭 婦人哭踊」은 그러한 習俗의 遺痕(유흔)이 아닌가 한다.
윤색되고 사상화한 유가의 기록을 떠나 민간신앙을 기저로 한 기록을 살펴 보면 송 정원의 「정관쇄언」(학해류편기술) 권하에 초사며 한시 외전 등을 인용하여
쪽수▶P167-4潤色(윤색)되고 思想化한 儒家의 記錄을 떠나 民間信仰을 基底(기저)로 한 記錄을 삺이어 보면 宋 鄭瑗(정원)의 「井觀瑣言」(정관쇄언)(學海類編記述)卷下에 楚辭며 韓詩外傳 等을 引用하야

喪禮有復 說者以爲招復魄 荆楚之俗 乃以是施之生人 宋玉招魂 景差大招是也 予按韓詩云 鄭國之俗 三月上巳 之溱洧兩水之上 招魂續魄 秉蘭草 拂除不祥 則非特楚俗然矣

쪽수▶P168-1

喪禮有復 說者以爲招復魄 荆楚之俗 乃以是施之生人 宋玉招魂 景差大招是也 予按韓詩云 鄭國之俗 三月上巳 之溱洧兩水之上 招魂續魄 秉蘭草 拂除不祥 則非特楚俗然矣

라 한 것과 같이 초혼은 중화민간의 민속이었다. 그리고 생인(生人)의 장수 건강을 위하여 초혼속백을 행하는 것은 원시적 초혼사상의 발전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속은 한(漢) 이전으로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것이다. 다시 소설 상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태평광기」서적 320 채모조에는
쪽수▶P168-2라 한 것과 如히 招魂은 中華民間의 民俗이었다. 그러고 生人의 長壽健康을 爲하야 招魂續魄을 行하는 것은 原始的 招魂思想의 發展相일 것이다. 그러고 이러한 民俗은 漢 以前으로부터 旣存하였든 것이다. 다시 小說上에서 몇 가지 例를 들어보면 「太平廣記」 三二〇 蔡謨條에는

蔡謨徵爲光祿大夫 右家忽聞東西啼哭聲 有若新死 便見一少年女死人 並離啼哭 不懈所爲 恐是人家忿爭耳 忽聞呼魂聲 便見生女從空中去上天 云云 (出靈異志)
一說 謨在廳事上坐 忽聞鄰左復魄聲 乃出庭前望 正見新死之家 有一老嫗 上著黃羅半袖 下著縹裙 飄然升天 聞一喚聲 楓廼顧 三喚三顧 徘徊良久 聲旣絕 亦不復見 問喪家云 亡者衣服如此 (出幽明錄)

쪽수▶P168-3

蔡謨徵爲光祿大夫 右家忽聞東西啼哭聲 有若新死 便見一少年女死人 並離啼哭 不懈所爲 恐是人家忿爭耳 忽聞呼魂聲 便見生女從空中去上天 云云 (出靈異志)
一說 謨在廳事上坐 忽聞鄰左復魄聲 乃出庭前望 正見新死之家 有一老嫗 上著黃羅半袖 下著縹裙 飄然升天 聞一喚聲 楓廼顧 三喚三顧 徘徊良久 聲旣絕 亦不復見 問喪家云 亡者衣服如此 (出幽明錄)

라하고 같은 책 권338 노중해조는
쪽수▶P168-4라하고 同書 卷三三八 盧仲海條는

大曆四年 處士盧仲海 與從叔纘 客於吳 夜就主人飲 歡甚大醉 郡屬皆散 而纘大吐甚 云云 半夜纘亡 仲海悲惶 伺其心尙煖 計無所出 忽思禮有招魂望反諸幽之旨 又先是 有力士說招魂之騐 乃大呼纘名 連聲不息 數萬計 忽蘇而能言日 賴爾呼救我 云云 俄頃叉開爾喚聲且悲 我心惻然 如是數四 且心不便 云云 (出通幽錄)

쪽수▶P168-5

大曆四年 處士盧仲海 與從叔纘 客於吳 夜就主人飲 歡甚大醉 郡屬皆散 而纘大吐甚 云云 半夜纘亡 仲海悲惶 伺其心尙煖 計無所出 忽思禮有招魂望反諸幽之旨 又先是 有力士說招魂之騐 乃大呼纘名 連聲不息 數萬計 忽蘇而能言日 賴爾呼救我 云云 俄頃叉開爾喚聲且悲 我心惻然 如是數四 且心不便 云云 (出通幽錄)

이라 하여 모두 초혼유험을 말하였다. 그러고 노중해의 취한 바와 같은 부단한 호명애규(呼名哀叫)는 실로 가장 원시적 초혼이요 또 자연에 가까운 방법일까 한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 민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임종제의 가족들의 호규이다. 이러한 가장 자연스러운 원시적 초혼방법에 후세 음양오행설의 영향을 가하고 또 사회적 계급적 제종의 윤식을 가한 것이 예기의 제정한 복의 의식일 것이다. 다시 청(淸) 대의 기록에서 일례를 들면 포송령인물「요재지이」서적 권3 노공녀설화 중에는
쪽수▶P168-6이라 하야 모도 招魂有驗을 말하였다. 그러고 盧仲海의 取한 바와 같은 不斷한 呼名哀叫(호명애규)는 實로 가장 原始的 招魂이오 또 自然에 가까운 方法일가 한다. 이러한 方法은 우리 民間에서 가장 普遍的으로 볼 수 있는 臨終際의 家族들의 呼叫이다. 이러한 가장 自然스러운 原始的 招魂方法에 後世 陰陽五行說의 影響(영향)을 加하고 또 社會的 階級的 諸種의 潤飾(윤식)을 加▶P169-1한 것이 禮記의 制定한 復의 儀式일 것이다. 다시 淸代의 記錄에서 一例를 들면 蒲松齡의 「聊齋志異」 卷三 魯公女說話 中에는

云云 女沸數日竟卒 生夜夢女來日 下顧者果君耶 年貌舛異 覿面 遂致遠隔 妾己憂憤死 須向土地祠 速招我魂 可得活 遲則無及矣 旣醒 急探盧氏之門 果有女亡二日矣 生大慟 進而吊諸其室 已而以夢告盧 盧從其言 招魂而歸 啓其余 撫其尸 呼而祝之 俄開喉中咯咯有聲 忽見朱櫻乍啓 云云

쪽수▶P169-2

云云 女沸數日竟卒 生夜夢女來日 下顧者果君耶 年貌舛異 覿面 遂致遠隔 妾己憂憤死 須向土地祠 速招我魂 可得活 遲則無及矣 旣醒 急探盧氏之門 果有女亡二日矣 生大慟 進而吊諸其室 已而以夢告盧 盧從其言 招魂而歸 啓其余 撫其尸 呼而祝之 俄開喉中咯咯有聲 忽見朱櫻乍啓 云云

이라 하여 또한 초혼의 효(効)를 말하였다. 사자의 혼이 일시 토지사에게 구류되었다가 거기서 다시 명사로 송치된다는 것은 후세의 사회제도의 반영일 것이요 그 원시적인 사상은 어디인지 모르게 공중으로 떠난다는 것일 터이다.
쪽수▶P169-3이라 하야 또한 招魂의 効를 말하였다. 死者의 魂이 一時 土地祠에게 拘留되었다가 거기서 다시 冥司로 送致된다는 것은 後世의 社會制度의 反映일 것이오 그 原始的인 思想은 어데인지 모르게 空中으로 떠난다는 것일 터이다.
초혼은 이렇듯 사자에게만 행하는 것이 아니요 병자에게도 행하였으니 그것은 병이란 것이 혼의 이탈로부터 생긴다는 원시사상으로 용이 추측할 수 있다. 지금 그 몇 가지 예를 들면 송 홍매인물「이견지」서적 정지13 이우여귀투(李遇與鬼鬪)조에는 이우란 자가 백여의 소귀와 싸워 병을 얻은 까닭으로 가족들은 그 장소에 가서 이우의 초혼을 하여 반년이전하였다는 설화가 보이며 청 관혁도인 기윤인물「괴서잡지」서적 권4에는 어떤 부실이 이암(尼菴)에서 실신상태로 있는 비첩을 초혼으로 구하였다는 설화를 기술한 중에
쪽수▶P169-4招魂은 이렇듯 死者에게만 行하는 것이 아니요 病者에게도 行하였으니 그것은 病이란 것이 魂의 離脫로부터 생긴다는 原始思想으로 容易히 推測할 수 있다. 지금 그 數例를 들면 宋 洪邁의 「夷堅志」 丁志十三 李遇與鬼鬪條에는 李遇란 者가 百餘의 小鬼와 싸와 病을 얻은 까닭으로 家族들은 그 場所에 가서 李遇의 招魂을 하야 半年而痊하였다는 說話가 보이며 淸 觀弈道人 紀昀의 「槐西雜志」 卷四에는 어떤 富室이 尼菴에서 失神狀態로 있는 婢妾을 招魂으로 救하였다는 說話를 記述한 中에

富室 云云 急往尼菴迎歸 癡如故 富室附耳呼其名 乃霍然如夢覺 云云

쪽수▶P169-5

富室 云云 急往尼菴迎歸 癡如故 富室附耳呼其名 乃霍然如夢覺 云云

이라 하고 「요재지이」서적 권2 아실설화 중에는 월서의 손자초라는 치생이 중소년과 함께 길 위에서 아실이라는 절세미인을 만나
쪽수▶P169-6이라 하고 「聊齋志異」 卷二 阿實說話 中에는 粤西의 孫子楚라는 癡生이 衆少年과 함께 路上에서 阿實라는 絕世美人을 맛나

衆情顚倒 品頭題足 粉粉若狂 生獨默然 及衆他適 回視猶癡立故所 呼之不應 群曳之曰 魂隨阿寶去耶 亦不答 衆以其素訥 故不爲怪 或推之 或挽之以歸 至家直上牀臥 終日不起 冥如醉 呼之不醒 家人疑其失魂 招於曠野 莫能效 强拍問之 則矇朧應云 我在阿寶家 及細語之 又默不語 云云 女每夢與人交 問其名 曰我孫子楚也 心異之 而不可以告人 生臥三日 氣休休若將澌滅 家人大恐 托人婉告翁 欲一招魂其家 翁笑日 平昔不省往還 何由遺魂吾家 家人固哀之 翁始尤 巫執故服草薦以往女 詰得其故 駭極 不聽他往 直導入室 任招呼而去 巫歸至門 生榻上己呻 旣醒 女室之香奩什具 何色何名 歷言不爽 云云

쪽수▶P169-7

衆情顚倒 品頭題足 粉粉若狂 生獨默然 及衆他適 回視猶癡立故所 呼之不應 群曳之曰 魂隨阿寶去耶 亦不答 衆以▶P170-1其素訥 故不爲怪 或推之 或挽之以歸 至家直上牀臥 終日不起 冥如醉 呼之不醒 家人疑其失魂 招於曠野 莫能效 强拍問之 則矇朧應云 我在阿寶家 及細語之 又默不語 云云 女每夢與人交 問其名 曰我孫子楚也 心異之 而不可以告人 生臥三日 氣休休若將澌滅 家人大恐 托人婉告翁 欲一招魂其家 翁笑日 平昔不省往還 何由遺魂吾家 家人固哀之 翁始尤 巫執故服草薦以往女 詰得其故 駭極 不聽他往 直導入室 任招呼而去 巫歸至門 生榻上己呻 旣醒 女室之香奩什具 何色何名 歷言不爽 云云

이란 것이 보이고 제원주인의 「야담수록」서적 권4 다전봉조에는
쪽수▶P170-2이란 것이 보이고 霽園主人의 「夜譚隨錄」 卷四 多前鋒條에는

前鋒多某 行二 未得前鋒時 與所親同往東直門外城閏下 習騎射 墜馬昏絕 所親扶掖以歸 歸家即甦 一無所損 但神癡不復解言笑 與食則食 不與亦不食也 與飲則欽 不與赤不飲也 越半月弗瘥 云云 群扶多 至墮馬處 呼其名而招之 徑返三四 多怱發一寒噤 即時清白 向家人涕泣而道之日 汝輩一何忍心 棄我於此 半月之久 不來一顧 云々

쪽수▶P170-3

前鋒多某 行二 未得前鋒時 與所親同往東直門外城閏下 習騎射 墜馬昏絕 所親扶掖以歸 歸家即甦 一無所損 但神癡不復解言笑 與食則食 不與亦不食也 與飲則欽 不與赤不飲也 越半月弗瘥 云云 群扶多 至墮馬處 呼其名而招之 徑返三四 多怱發一寒噤 即時清白 向家人涕泣而道之日 汝輩一何忍心 棄我於此 半月之久 不來一顧 云々

이라 하고 원매인물「신제해」서적 17 광서귀사조는 광서무격의 병자를 위하여 행하는 초혼습속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록하였다.
쪽수▶P170-4이라 하고 袁枚의 「新齊諧」 十七 廣西鬼師條는 廣西巫覡의 病者를 爲하야 行하는 招魂習俗에 關하야 다음과 같이 詳細히 記錄하였다.

廣西信奉鬼師 有陳賴二姓 能捉生替死 病家多延之 至則 先取杯水 覆以紙 倒懸病者床上 翌日來視 其水週時不滴者 云可救 或取雄雞一隻 貫白刃七八寸入雞喉 提向病人身 運氣誦咒 咒畢 雞口不滴血者 亦云可救 拔刃擲地 雞飛如故 若滴下點水 及雞血者 辭去勿救 其可救者 設一壇 掛神鬼像數十褔 鬼師作婦人粧 步罡持咒 鑼鼓齊作 至夜 染油紙作燈 至野外呼魂 萁聲幽渺 隣人有熟睡者 魂即應聲來 鬼師遞火與之接去 後鬼師向病家稱賀 則病者愈 而來接火之 人死之 解之之術 但夜開鑼鼓聲 以兩脚踏土上 便無所妨 陳賴二家 以此致富 其堂宇層層陰黑 供鬼神像甚多 余嬸母患病 呼賴鬼師視之 賴持劍捕鬼 房中有物如大蝙蝠 投入床下 賴用掌心雷擊之 火倒 出燒賴鬚 賴大怒 令煎一鍋桐 油書符燒之 以手攪鍋中油 聞床下鬼哦哦求饒 久之而絕 嬸病果愈 一日者 陳鬼師爲某家呼魂 見藍衣女冉冉來逼 視之即其所生女來接火 陳大驚擲火于地 以掌擊其背 急歸視女 女方睡驚覺云 夢中聞爺呼故來 所衣藍布衫上 手掌油迹宛然 桂林魏太守女病危 夫人延陳鬼師視之 陳索百金爲謝 太守素方嚴 拘而杖之 將置之獄 鬼師笑曰 杖我毋後悔 方杖鬼師 女忽于床上呼曰 陳鬼師命二鬼杖我瞥 拉我人獄 夫人大恐 力勸放之 詐以重謝 陳曰 業爲祟鬼所驚 吾力不能 女竟死

쪽수▶P170-5

廣西信奉鬼師 有陳賴二姓 能捉生替死 病家多延之 至則 先取杯水 覆以紙 倒懸病者床上 翌日來視 其水週時不滴者 云可救 或取雄雞一隻 貫白刃七八寸入雞喉 提向病人身 運氣誦咒 咒畢 雞口不滴血者 亦云可救 拔刃擲地 雞飛如故 若滴下點水 及雞血者 辭去勿救 其可救者 設一壇 掛神鬼像數十褔 鬼師作婦人粧 步罡持咒 鑼鼓齊作 至夜 染油紙作燈 至野外呼魂 萁聲幽渺 隣人有熟睡者 魂即應聲來 鬼師遞火與之接去 後鬼師向病家稱賀 則病者愈 而來接火之 人死之 解之之術 但夜開鑼鼓聲 以兩脚踏土上 便無所妨 陳賴二家 以此致富 其堂宇層層陰黑 供鬼神像甚多 余嬸母▶P171-1患病 呼賴鬼師視之 賴持劍捕鬼 房中有物如大蝙蝠 投入床下 賴用掌心雷擊之 火倒 出燒賴鬚 賴大怒 令煎一鍋桐 油書符燒之 以手攪鍋中油 聞床下鬼哦哦求饒 久之而絕 嬸病果愈 一日者 陳鬼師爲某家呼魂 見藍衣女冉冉來逼 視之即其所生女來接火 陳大驚擲火于地 以掌擊其背 急歸視女 女方睡驚覺云 夢中聞爺呼故來 所衣藍布衫上 手掌油迹宛然 桂林魏太守女病危 夫人延陳鬼師視之 陳索百金爲謝 太守素方嚴 拘而杖之 將置之獄 鬼師笑曰 杖我毋後悔 方杖鬼師 女忽于床上呼曰 陳鬼師命二鬼杖我瞥 拉我人獄 夫人大恐 力勸放之 詐以重謝 陳曰 業爲祟鬼所驚 吾力不能 女竟死

흥미 있는 기록이므로 필요 이상의 전문을 인용하였으나 요컨대 이것은 광서민속 상에 독특히 발표된 일종의 초혼방법이요 이 방법에 의하면 타인의 혼을 병자에 부흥하여 병을 치료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혼의 개인성을 무시하는 사상의 소산이다. 그리고 또 남방의 만민 사이에도 병자를 위하여 행하는 초혼민속이 있으니 명 광로인물「적아」서적 상 수혼조에
쪽수▶P171-2興味 있는 기록이므로 必要 以上의 全文을 引用하였으나 要컨대 이것은 廣西民俗上에 獨特히 發表된 一種의 招魂方法이오 이 方法에 依하면 他人의 魂을 病者에 附興하여 病을 治療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魂의 個人性을 無視하는 思想의 所産이다. 그러고 또 南方의 蠻民 사이에도 病者를 爲하야 行하는 招魂民俗이 있으니 明 鄺露의 「赤雅」 上 收魂條에

峒婿遠歸 則止三十里外 遣瑤眊 持籃往迎之 脫歸人中衵 貯籃中 曰收魂 瑤眊者巫也

쪽수▶P171-3

峒婿遠歸 則止三十里外 遣瑤眊 持籃往迎之 脫歸人中衵 貯籃中 曰收魂 瑤眊者巫也

라한 것과 명 전여성인물「염요기문」서적 권4 만이조에
쪽수▶P171-4라한 것과 明 田汝成의 「炎徼紀聞」 卷四 蠻夷條에

獞人 五嶺以南皆有之 與猺雜處 風俗略同 而生理一切陋簡 云云 人遠出而歸者 止于三十里外 家遣巫 提竹籃迎之 脫歸人帖身衣 貯之籃 以前導還家 言爲行人收魂歸也 云云

쪽수▶P171-5

獞人 五嶺以南皆有之 與猺雜處 風俗略同 而生理一切陋簡 云云 人遠出而歸者 止于三十里外 家遣巫 提竹籃迎之 脫歸人帖身衣 貯之籃 以前導還家 言爲行人收魂歸也 云云

이란 것은 공히 동고노족(호남계동과 광서 광동 등에 산재한 미개민)에 관한 것이다. 멀리 떠났던 자는 기한으로 인하여 시시로 병을 얻는 경험에서 그것을 혼의 도중유실이라 하여 이러한 의식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외에 또 일종의 초혼의식이 있으니 그것은 전사(戰死) 수사(水死) 등으로 인하여 시체를 얻지 못하는 경우에 초혼장을 한다든지 또는 위와 같은 사자의 시체를 비록 얻게 될지라도 그 시체를 매장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시체와 함께 그 사처(死處)에서 초혼을 하여 귀가매장하는 등이다. 이러한 초혼장에 관하여는 당 두우인물「통전」서적 103 초혼장의 중에 학자 간의 이에 대한 시비론의 급기실례가 수다히 인거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 장문의 인용을 피하고 민속의 두 세 가지의 예를 간략히 인용함에 그치고자 한다. 청 청량도인인물「청우헌필기」서적 권4에는
쪽수▶P171-6이란 것은 共히 獞牯老族 (湖南谿峒과 廣西 廣東等에 散在한 未開民)에 關한 것이다. 遠出하였든 者는 饑寒으로 因하야 時々로 得病하는 經驗에서 그것을 魂의 途中遺失이라 하야 이러한 儀式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이 外에 또 一種의 招魂儀式이 있으니 그것은 戰死 水死 等으로 因하야 屍體를 不得하는 境遇에 招魂葬을 한다▶P172-1든지 또는 如上한 死者의 屍體를 비록 求得할지라도 그 屍體를 埋葬하는 것만으로는 滿足하지 않고 屍體와 함께 그死處에서 招魂을 하야 歸家埋葬하는 等이다. 이러한 招魂葬에 關하야는 唐 杜佑의 「通典」 一O三 招魂葬議 中에 學者間의 이에 對한 是非論議 及其實例가 數多히 引擧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 長文의 引用을 避하고 民俗의 二三例를 略引함에 그치고저 한다. 清 淸凉道人의 「聽雨軒筆記」 卷四에는

先大父退國公言 康熙初 云云 船略傾側 不覺墜於江中 衆人見其身隨洪流而去 頃刻已杳 欲救不能 孫生與僕 沿江求其屍 又不得 云云 以舊衣冠招魂 與其妻同葬之 云云

쪽수▶P172-2

先大父退國公言 康熙初 云云 船略傾側 不覺墜於江中 衆人見其身隨洪流而去 頃刻已杳 欲救不能 孫生與僕 沿江求其屍 又不得 云云 以舊衣冠招魂 與其妻同葬之 云云

이라 보이고 청 양공진인물「지상초당필기」서적 권7 광동화겁조에는
쪽수▶P172-3이라 보이고 淸 梁恭辰의 「池上草堂筆記」 卷七 廣東火劫條에는

云云 聞戯塲火發 亟率婦徍視 則烈焰燼餘 有屍似其子者 哭而殮之 招魂設靈於家 云云

쪽수▶P172-4

云云 聞戯塲火發 亟率婦徍視 則烈焰燼餘 有屍似其子者 哭而殮之 招魂設靈於家 云云

하고 명 주국정인물「용당소품」서적 12 부자조에는
쪽수▶P172-5하고 明 朱國禎의 「湧幢小品」 一二 父子條에는

呂向生父岌 客遠方不還 少喪母 失墓所在 將葬 巫者求得之 不知父在亡 招魂合諸墓 云云

쪽수▶P172-6

呂向生父岌 客遠方不還 少喪母 失墓所在 將葬 巫者求得之 不知父在亡 招魂合諸墓 云云

이라 하였다. 이러한 의식에 대하여 금일의 우려는 벌써 그 기원적 의미를 망각하고 오직 인정 상의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 원래의 의미는 가족제도 및 조선숭배와 관련을 갖는 것이다. 동양의 가족제도에 있어서는 조선의 혼은 항상 그 가족과 불리(不離)의 관계에 있어 노(怒)하면 가족에 재화를 내리고 희(喜)하면 행복을 주는 것이며 조선의 혼이 이렇게 가족과 불리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은 가족의 재산옹호와 중대한 관계를 갖는 까닭이었다. 이 점은 후일에 상론할 기회가 있으려니와 이러한 관계에 있는 조선이므로 그 혼은 반드시 가내에 시봉하든지 가족의 주위에 있게 할 것이요 원방에 방치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었다. 여기에서 초혼장의 습속이 출발한 것이다.
쪽수▶P172-7이라 하였다. 이러한 儀式에 對하야 今日의 우려는 발서 그 起源的 意味를 忘却하고 오즉 人情上의 當然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 源來의 意味는 家族制度 及 祖先崇拜와 關聯을 갖인 것이다. 東洋의 家族制度에 있어서는 祖先의 魂은 恒常 그 家族과 不離의 關係에 있어 怒하면 家族에 災禍를 내리고 喜하면 幸福을 주는 것이며 祖先의 魂이 이렇게 家族과 不離의 關係를 맺게된 것은 家族의 財産擁護와 重大한 關係를 갖인 까닭이었다. 이 點은 後日에 詳論할 機會가 있으려니와 이러한 關係에 있는 祖先이므로 그 魂은 반다시 家內에 侍奉하든지 家族의 周圍에 있게 할 것이오 遠方에 放置할 性質의 것은 아니었었다. 여기에서 招魂葬의 習俗이 出發한 것이다.




















본문2: 3.혼에 관한 학설


중화민족이 혼의 존재를 추리하게 된 것은 아득한 옛날에 속할 바이지만 이에 대하여 이론적 비판을 가하게 된 것은 유가(儒家)로부터 시작된 듯하다. 유가 이외의 고전에도 혼에 관한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아직 학설의 정도에 이르지 못하였다. 「논어」서적 위정편에 “子曰 非其魂而祭之 謟也”란 귀(鬼)가 정현 이후 유가들의 해석과 같이 조고의 사령을 가르친 것이라면 공자의 혼에 대한 해석은 민간의 신앙사상과 대차가 없었을 듯하나 이것만으로는 단안을 내리기 곤란하다. 그리고 「역경」서적 계사 상에는 “陰陽不測之謂神 精氣爲物 遊魂爲變 是故知鬼神之情狀”이라 하여 귀신을 음양설적 견지에서 설명하고자 하였음을 보면 혼에 대하여서도 또한 그러한 입장을 취하였으리라고 추론되나 그러나 극히 모호한 일이다. 「예기」서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좀 더 구체적 설명을 발견할 수 있으니 그 교특생편에
쪽수▶P173-1中華民族이 魂의 存在를 推理하게 된 것은 아득한 옛날에 屬할 바이지마는 이에 對하야 理論的批判을 加하게 된 것은 儒家로부터 始作된 듯하다. 儒家以外의 古典에도 魂에 關한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것은 아즉 學說의 程度에 이르지 못하였다. 「論語」 爲政篇에 「子曰 非其魂而祭之 謟也」란 鬼가 鄭玄以後 儒家들의 解釋과 如히 祖考의 死靈을 가러친 것이라면 孔子의 魂에 對한 解釋은 民間의 信仰思想과 大差가 없었을 듯하나 이것만으로는 斷案을 내리기 困難하다. 그러고 「易經」 繫辭上에는 「陰陽不測之謂神 精氣爲物 遊魂爲變 是故知鬼神之情狀」이라 하야 鬼神을 陰陽說的見地에서 說明코저 하였음을 보면 魂에 對하여서도 또한 그러한 立塲을 取하였으리라고 推論되나 그러나 極히 模糊한 일이다. 「禮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좀 더 具體的說明을 發見할 수 있으니 그 郊特牲篇에

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 故祭求諸陰陽之義也

쪽수▶P173-2

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 故祭求諸陰陽之義也

라 하여 혼을 기라 하고 그것은 원래 천(양)에 속한 바요 사후는 천으로 다시 귀거한다고 하였다. 혼은 민간신앙과 같이 형체와 이지를 가진 형이하적 존재가 아니요 형이상적 기에 불과하다는 사상이다. 그리고 형백 즉 육체는 지에서 나서 지로 환원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음양설적 혼백이원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상을 비교적 순수하게 부연한 것은 당 성백여인물「예기외전」서적 및 장유륜의 그 주일 것이니
쪽수▶P173-3라 하야 魂을 氣라 하고 그것은 元來 天(陽)에 屬한 바이오 死後는 天으로 다시 歸去한다고 하였다. 魂은 民間信仰과 如히 形體와 理知를 갖인 形而下的存在가 아니오 形而上的氣에 不過하다는 思想이다. 그러고 形魄即肉體는 地에서 나서 地로 還元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陰陽說的魂魄二元思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思想을 比較的 純粹하게 敷衍한 것은 唐 成伯璵의 「禮記外傳」 及 張幼倫의 그 注일 것이니

人之精氣日魂魂陽也云云而動 形體謂之魄魄陰也寂然不動 合陽陽二氣而生也精神聚而爲一物 形勞則神逝謂死而魂遊散 死則難復生也 孝子之心 不能忍也 故升屋而招其魂神也 神智無涯也 鬼者復於土也人皆食土之物養成形體也 氣絕而收其魂 使反復於體也 (太平御覽五四九 復魂條所引)

쪽수▶P173-4

人之精氣日魂魂陽也云云而動 形體謂之魄魄陰也寂然不動 合陽陽二氣而生也精神聚而爲一物 形勞則神逝謂死而魂遊散 死則難復生也 孝子之心 不能忍也 故升屋而招其魂神也 神智無涯也 鬼者復於土也人皆食土之物養成形體也 氣絕而收其魂 使反復於體也 (太平御覽五四▶P174-1九 復魂條所引)

라 하였다. 그러나 유자(儒者) 사이에 있어서도 이 혼기 형백에 대한 해석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아니하여 「좌전」서적 소공 7년조에 “及子產適晋 趙景子問焉曰 伯有猶能爲鬼乎 子產曰能 人生始化曰魄 旣生魄 陽曰魂 用物精多 則魂魄强 云々”이라 한 것의 당 공영달인물 소에는
쪽수▶P174-2라 하였다. 그러나 儒者間에 있었어도 이 魂氣 形魄에 對한 解釋은 반드시 一致치는 아니하야 「左傳」 昭公七年條에 「及子產適晋 趙景子問焉曰 伯有猶能爲鬼乎 子產曰能 人生始化曰魄 旣生魄 陽曰魂 用物精多 則魂魄强 云々」이라 한 것의 唐 孔潁達疏에는

人之生也 始變化爲形 形之靈者 名之曰魄也 既生魄矣 魄内自有陽氣 氣之神者 名之曰魂也 魂魄神靈之名 本從形氣而有 形氣旣殊 魂魄亦異 附形之靈爲魄(○○○○○○) 附氣之神爲魂(○○○○○○)也 附形之靈者 謂初生之時 耳目心識手足運動啼呼爲聲 此則魄之靈也 附氣之神者 謂精神性識漸有所知 此則附氣之神也 是魄在於前 而魂在於後 故云旣生魄曰魂 魂魄俱是性靈 但魄識少(○○○) 而魂識多(○○○○) 云々

쪽수▶P174-3

人之生也 始變化爲形 形之靈者 名之曰魄也 既生魄矣 魄内自有陽氣 氣之神者 名之曰魂也 魂魄神靈之名 本從形氣而有 形氣旣殊 魂魄亦異 附形之靈爲魄(○○○○○○) 附氣之神爲魂(○○○○○○)也 附形之靈者 謂初生之時 耳目心識手足運動啼呼爲聲 此則魄之靈也 附氣之神者 謂精神性識漸有所知 此則附氣之神也 是魄在於前 而魂在於後 故云旣生魄曰魂 魂魄俱是性靈 但魄識少(○○○) 而魂識多(○○○○) 云々

이라 하여 그는 혼과 기를 구별하고 또 형과 백을 구별하여 혼즉혼기 혼즉형체의 설을 부정하였을 뿐 아니라 백도 유치하나마 지각을 가진 형이상적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에 대하여서도 해석을 달리하여
쪽수▶P174-4이라 하야 그는 魂과 氣를 區別하고 또 形과 魄을 區別하야 魂卽魂氣 魂卽形體의 說을 不定하였을 뿐 아니라 魄도 幼稺하나마 知覺을 갖인 形而上的 存在라고 생각하였다. 그러고 「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에 對하였어도 解釋을 달니하야

以魂本附氣 氣必上浮 故言魂氣歸于天 魄本附形 形旣入土 故言形魄歸于地

쪽수▶P174-5

以魂本附氣 氣必上浮 故言魂氣歸于天 魄本附形 形旣入土 故言形魄歸于地

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수 유현인물 같은 이는 이에 대하여
쪽수▶P174-6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隋 劉炫 같은 이는 이에 對하야

人之受生 形必有氣 氣形相合 義無先後 而此云始化曰魄 陽曰魂 是則先形而後氣 先魄而後魂 魂魄之生有先後者 以形有質 而氣無質 尋形以知氣 故先魄而後魂 其實並生無先後也

쪽수▶P174-7

人之受生 形必有氣 氣形相合 義無先後 而此云始化曰魄 陽曰魂 是則先形而後氣 先魄而後魂 魂魄之生有先後者 以形有質 而氣無質 尋形以知氣 故先魄而後魂 其實並生無先後也

라 하여 혼백병생설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부분적 이설(異說)은 반드시 이것뿐만 아니지만 그것을 여기서 번거롭게 논의할 필요는 없고 대체로 본다면 그들은 모두 대개 음양설적 혼백이원론을 취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바는 앞서 인용한 공영달인물의 혼귀천 백귀지에 대한 상식적 해석이다. 이것은 다른 유가들의 사상과는 대상부동한 것이니 귀어천 귀어지라고 말한 이상 이것을 귀원의 의미로 해석함이 더욱 철학적이요 또 타당할 것이다. 「한서」서적 양왕손전에
쪽수▶P174-8라 하야 魂魄並生說을 主張하였다. 如斯한 部分的 異說은 반다시 이것뿐도 아니지마는 그것을 여기서 煩論할 必要는 없고 大體로 본다면 그들은 모다 大槪 陰陽說的 魂魄二元論을 取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注意할 바는 前引한 孔潁達의▶P175-1 魂歸天 魄歸地에 對한 常識的 解釋이다. 이것은 다른 儒家들의 思想과는 大相不同한 것이니 歸於天 歸於地라고 말한 以上 이것을 歸元의 意味로 解함이 더욱 哲學的이오 또 妥當할 것이다. 「漢書」 楊王孫傳에

且吾聞之 精神者天之有也 形骸者地之有也 精神離形 各歸其眞 故謂之鬼 鬼之爲言歸也 其尸塊然獨處 豈有知哉

쪽수▶P175-2

且吾聞之 精神者天之有也 形骸者地之有也 精神離形 各歸其眞 故謂之鬼 鬼之爲言歸也 其尸塊然獨處 豈有知哉

라고 한 것이며 「회남자」서적 권7 정신훈에
쪽수▶P175-3라고 한 것이며 「淮南子」 卷七 精神訓에

古夫有天地之時 惟像無形 窈窈冥冥 芒芠漠閔 澒獴鴻洞 莫知其門 有二神混生 經天營地 孔乎莫知其所終極 滔乎莫知其所止息 於是乃別爲陰陽 離爲八極 剛柔相成 萬物乃形 煩氣爲蟲 精氣爲人 是故精神天之有也 而骨骸者地之有也 精神入其門 而骨骸反共根 我尙何存 云云

쪽수▶P175-4

古夫有天地之時 惟像無形 窈窈冥冥 芒芠漠閔 澒獴鴻洞 莫知其門 有二神混生 經天營地 孔乎莫知其所終極 滔乎莫知其所止息 於是乃別爲陰陽 離爲八極 剛柔相成 萬物乃形 煩氣爲蟲 精氣爲人 是故精神天之有也 而骨骸者地之有也 精神入其門 而骨骸反共根 我尙何存 云云

이란 것 등은 도가의 영향을 받은 한(漢) 대 유가들의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이는 후한의 왕충인물이니 왕충인물의 소위 기 정기 정신 등이 민간신앙상의 혼에 해당할 것은 「논형」서적 20 논사편의 다음과 같은 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쪽수▶P175-5이란 것 等은 道家의 影響을 받은 漢代 儒家들의 思想이다. 이러한 思想을 좀 더 具體的으로 說明한 이는 後漢의 王充이니 王充의 所謂氣 精氣 精神 等이 民間信仰 上의 魂에 該當할 것은 「論衡」 二〇 論死篇의 次文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人之所以生者 精氣也 死而精氣滅 能爲精氣者血脉也 人死血脉竭 竭而精氣滅 滅而形體朽 朽而成灰土 云云 人死精神升天 骸骨歸土 故謂之鬼 鬼者歸也 云云 人用神氣生 其死復歸神氣 陰陽稱鬼神 人死亦稱鬼神 氣之生人 猶水之爲氷也 水凝爲氷 氣凝爲人(○○○○) 氷釋爲水 人死復神 其名爲神也 猞氷釋更名水也 云云 人之精神 藏於形體之內 猞粟米在囊橐之中也 死而形體朽精氣散 猶囊橐穿敗 粟米棄出也 粟米棄出 囊橐無復有形 精氣散亡 何能復有體 而人得見之乎 云云 如人死輒爲鬼 則道路之上 一步一鬼也 人且死見鬼 宜見數百千萬 滿堂盈庭 塡塞港路 不宜徒見 一兩人也 云云 天地之性 能更生火 不能使滅火復燃 能更生人 不能令死人復見 云云 夫死人不能爲鬼 則亦無所知矣 何以驗之 以未生之時 無所知也 人未生 在元氣之中 旣死 復歸元氣 元氣荒忽(○○○○) 人氣在其中(○○○○○) 人未生無所知 其死歸無知之本 何能有知乎 云云 天下無獨撚之火 世間安得有無體獨知之精 云云 人之未死也 智慧精神定矣 病則惛亂 精神擾也 夫死病之甚者也 病死之微 猞惛亂 况其甚乎 精神擾 自無所知 况其散也 人之死 猶火之滅也 火滅而燿不照 人死而知不慧 二者宜同一實 云云 陰陽之氣凝而爲人 年終壽盡 死還爲氣 云云

쪽수▶P175-6

人之所以生者 精氣也 死而精氣滅 能爲精氣者血脉也 人死血脉竭 竭而精氣滅 滅而形體朽 朽而成灰土 云云 人死精神升天 骸骨歸土 故謂之鬼 鬼者歸也 云云 人用神氣生 其死復歸神氣 陰陽稱鬼神 人死亦稱鬼神 氣之生人 猶水之爲氷也 水凝爲氷 氣凝爲人(○○○○) 氷釋爲水 人死復神 其名爲神也 猞氷釋更名水也 云云 人之精神 藏於形體之內 猞粟米在囊橐之中也 死而形體朽精氣散 猶囊橐穿敗 粟米棄出也 粟米棄出 囊橐無復有形 精氣散亡 何能復有體 而人得見之乎 云云 如人死輒爲鬼 則道路之上 一步一鬼也 人且死見鬼 宜見數百千萬 滿堂盈庭 塡塞港路 不宜徒見 一兩人也 云云 天地之性 能更生火 不能使滅火復燃 能更生人 不能令死人復見 云云 夫死人不能爲鬼 則亦無所知矣 何以驗之 以未生之時 無所知也 人未生 在元氣之中 旣死 復歸元氣 元氣荒忽(○○○○) 人氣在其中(○○○○○) 人未生無所知 其死歸無知之本 何▶P176-1能有知乎 云云 天下無獨撚之火 世間安得有無體獨知之精 云云 人之未死也 智慧精神定矣 病則惛亂 精神擾也 夫死病之甚者也 病死之微 猞惛亂 况其甚乎 精神擾 自無所知 况其散也 人之死 猶火之滅也 火滅而燿不照 人死而知不慧 二者宜同一實 云云 陰陽之氣凝而爲人 年終壽盡 死還爲氣 云云

왕충인물의 설에 의하면 우주에는 원기란 것이 충만하여 있고 그 원기 중에는 만물을 생할 바 기가 되어있으며 그 기중의 하나가 인기(人氣)요 인기가 응결하여 인류를 생하고 죽으면 이것이 다시 해산되어 원기 중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수와 빙의 관계와 같으며 또 기란 것은 단독으로는 아무 지각이 없고 오직 물에 의하여서만 지각을 발휘할 수 있으니 그것은 마치 신과 화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도 양설을 종합하여 독특한 합리주의적 일이설(一異說)을 제창한 것이다. 이 설은 조선제사를 부정하는 사상이므로 후세의 유가는 이것을 취하지 아니하였고 전통적 유가의 제설 종합하여 한층 더(加一層) 철학적 체계를 부여한 것이 송 주희인물의 이기론적 혼백취산설이니 그 요령은 「성리대전서」서적 28 논재인귀신조에
쪽수▶P176-2王充의 說에 依하면 宇宙에는 元氣란 것이 充滿하여 있고 그 元氣 中에는 萬物을 生할 바 氣가 되어있으며 그 氣中의 하나이 人氣이오 人氣가 凝結하야 人類를 生하고 죽으면 이것이 다시 解散되어 元氣 中으로 還元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水와 氷의 關係와 같으며 또 氣란 것은 單獨으로는 아모 知覺이 없고 오즉 物에 依하여서만 知覺을 發揮할 수 있으니 그것은 마치 薪과 火의 關係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儒道兩說을 綜合하야 獨特한 合理主義的 一異說을 提唱한 것이다. 이 說은 祖先祭祀를 否定하는 思想이므로 後世의 儒家는 이것을 取치 아니하였고 傳統的 儒家의 諸說 綜合하야 加一層 哲學的 體系를 附與한 것이 宋 朱熹의 理氣論的 魂魄聚散設이니 그 要領은「性理大全書」 二八 論在人鬼神條에

問生死鬼神之理 日天道流行 發育萬物 有理而後有氣 雖是一時 都有畢竟 以理爲主 人得之以有生氣之淸者爲氣 濁者爲質 知覺運動 陽之爲也 形體陰之爲也 氣曰魂(○○○) 體曰魄(○○○) 云云 人所以生 精氣聚也 人只有許多氣 須有箇盡時 盡則魂氣歸於天 形魄歸於地而死矣 人將死時 熱氣上出 所謂魂升也 下體漸冷 所謂魄降也 此所以有生必有死 有始必有終也 夫聚散者氣也 若理則只泊在氣上 初不見凝結 自爲一物 云云 然人死雖終歸於散(○○○○○○○○) 然亦未便盡散(○○○○○○) 故祭祀有感格(○○○○○○)之理 云云 已散者不復聚 釋氏却謂人死爲鬼 鬼復爲人 如此則 天地間常只是許多人來來去去 更不由造化生生 必無是理 云云

쪽수▶P176-3

問生死鬼神之理 日天道流行 發育萬物 有理而後有氣 雖是一時 都有畢竟 以理爲主 人得之以有生氣之淸者爲氣 濁者爲質 知覺運動 陽之爲也 形體陰之爲也 氣曰魂(○○○) 體曰魄(○○○) 云云 人所以生 精氣聚也 人只有許多氣 須有箇盡時 盡則魂氣歸於天 形魄歸於地而死矣 人將死時 熱氣上出 所謂魂升也 下體漸冷 所謂魄降也 此所以有生必有死 有始必有終也 夫聚散者氣也 若理則只泊在氣上 初不見凝結 自爲一物 云云 然人死雖終歸於散(○○○○○○○○) 然亦未便盡散(○○○○○○) 故祭祀有感格(○○○○○○)之理 云云 已散者不復聚 釋氏却謂人死爲鬼 鬼復爲人 如此則 天地間常只是許多人來來去去 更不由造化生生 必無是理 云云

이란 것으로 종래의 설에 주자의 독특한 이기론적 체계를 부흥하였을 따름이다. 기의 청자인 정기가 응취하여 혼을 형성하고 그 탁자인 질이 응취하여 혼을 이루며 이 양자가 합하여 인생이 되는 것이요 기로 하여금 이러한 조화를 하게 하는 것을 이라고 하였다. 그러고 미편진산(未便盡散)이라는 괴로운 이론으로서 조선숭배제도를 옹호하였다.
쪽수▶P176-4이란 것으로 從來의 說에 朱子의 獨特한 理氣論的 體系를 附興하였을 따름이다. 氣의 淸者인 精氣가 凝聚하야 魂을 形成▶P177-1하고 그 濁者인 質이 凝聚하야 魂을 이루며 이 兩者가 合하야 人生이 되는 것이오 氣로 하여곰 이러한 造化를 하게 하는 것을 理라고 하였다. 그러고 未便盡散이라는 괴루운 理論으로서 祖先崇拜制度를 擁護하였다.
상술한 바를 간단히 음양설적이라 할 수 있다면 이에 대하여 오행설적 견해를 가진 자도 있었으니 「관윤자」서적 4부편에
쪽수▶P177-2上述한 바를 簡單히 陰陽說的이라 할 수 있다면 이에 對하야 五行說的 見解를 갖인 者도 있었으니 「關尹子」 四符篇에

精者水 魄者金 神者火 魂者木 云々 鬼云爲魂 鬼白僞魄 於文則然 鬼者人死所變 云者風

쪽수▶P177-3

精者水 魄者金 神者火 魂者木 云々 鬼云爲魂 鬼白僞魄 於文則然 鬼者人死所變 云者風

이란 것이 그것이나 수긍할 만한 이론을 발견할 수 없다. 아마 송(宋) 시대 사람의 가탁설(假託說)일 것이다.
쪽수▶P177-4이란 것이 그것이나 首肯할 만한 理論을 發見할 수 없다. 아마 宋代 人의 假託說일 것이다.
다음에 도가의 설을 잠깐 살펴보면 「열자」서적 천서편에는
쪽수▶P177-5다음에 道家의 說을 잠간 삺이어보면 「列子」 天瑞篇에는

精神者天之分 骨骸者地之分 屬天清而散 屬地濁而聚 精神離形 各歸其眞 故謂之鬼 鬼歸也 歸其眞宅也

쪽수▶P177-6

精神者天之分 骨骸者地之分 屬天清而散 屬地濁而聚 精神離形 各歸其眞 故謂之鬼 鬼歸也 歸其眞宅也

라 하고 「포박자」서적 지리편에는
쪽수▶P177-7라 하고 「抱朴子」 至理篇에는

形者神之宅也 故醫之於堤 堤壞則水不留矣 方之於燭 燭糜則火不居矣 形勞則神散 氣嵑則命終 根渴枝繁 則青青去木矣 氣疲欲勝 則精靈離身矣 夫逝者無反期 旣朽無生理 云々

쪽수▶P177-8

形者神之宅也 故醫之於堤 堤壞則水不留矣 方之於燭 燭糜則火不居矣 形勞則神散 氣嵑則命終 根渴枝繁 則青青去木矣 氣疲欲勝 則精靈離身矣 夫逝者無反期 旣朽無生理 云々

이라 하여 유가들의 설과 근사하며 유가들의 그것보다 철학적으로 전개되지도 못하였다.
쪽수▶P177-9이라 하야 儒家들의 說과 近似하며 儒家들의 그것보다 哲學的으로 展開되지도 못하였다.
최후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육조시대에 성론된 신멸신불멸론이니 다음에 그 대략을 들어보겠다. 신이란 것은 혼에 해당하는 말임은 물론이다. 사람의 온혼부멸을 부정한 이는 범진인물이니 그의 신멸론은 당시의 유가 불가들의 일제공격을 받고 필경은 양무제인물로 하여금 신멸론 거부의 칙명까지를 내리게 하였다. 범진인물의 설을 말하기 전에 정도자인물의 신불멸론이란 것을 보면 「홍명집」서적 권5(梁 楊都建初寺釋僧祐撰)에 그 설이 보이는데 그는 문답의 형식으로 당시의 신멸론자들의 의견 같은 것을 쓰고 그것에 대하여 반박을 가하였으므로 우리는 정도자의 신불멸론을 통하여 당시의 양론을 대강 엿볼 수 있다. 다음에 그 요령을 들면 신멸론자의 이론은
쪽수▶P177-10最後로 우리가 注意할 것은 六朝時代에 盛論된 神滅神不滅論이니 다음에 그 大略을 들어보겟다. 神이란 것은 魂에 該當하는 말일씨 勿論이다. 사람의 靈魂不滅을 否定한 이는 范縝이니 그의 神滅論은 當時의 儒家 佛家들의 一齊攻擊을 받고 畢竟은 梁武帝로 하여곰 神滅論 拒否의 勅命까지를 내리게 하였다. 范縝의 說을 말하기 前에 鄭道子의 神不滅論이란 것을 보면 「弘明集」 卷五 (梁 楊都建初寺釋僧祐撰)에 그 說이 보이는데 그는 問答의 形式으로 當時의 神滅論者들의 意見 같은 것을 쓰고 그것에 對하야 反駁을 加하였으므로 우리는 鄭道子의 神不滅論을 通하야 當時의 兩論을 大▶P178-1棡 엿볼 수 있다. 다음에 그 要領을 들면 神滅論者의 理論은

夫神形未嘗一時相違 相遠則無神矣 草木之無神 無識故也 此形盡矣 神將安附 而謂之不滅哉 苟能不滅 則自乖其靈 不資形矣 既不資形 何理與形爲生 終不相違 不能相違 則生本是同斷可知矣

쪽수▶P178-2

夫神形未嘗一時相違 相遠則無神矣 草木之無神 無識故也 此形盡矣 神將安附 而謂之不滅哉 苟能不滅 則自乖其靈 不資形矣 既不資形 何理與形爲生 終不相違 不能相違 則生本是同斷可知矣

라는 것이오 이것을 반박한 정도자인물의 이론의 요점은
쪽수▶P178-3라는 것이오 이것을 反駁한 鄭道子의 理論의 要點은

夫火因薪則有火 無薪則無火 薪雖所以生火 而非火之本 火本自在 因薪爲用耳 若待薪然後有火 則燧人之前 其無火理乎 火本至陽 陽爲火極 故薪是火所寄 非其本也 神形相資 亦猶此矣

쪽수▶P178-4

夫火因薪則有火 無薪則無火 薪雖所以生火 而非火之本 火本自在 因薪爲用耳 若待薪然後有火 則燧人之前 其無火理乎 火本至陽 陽爲火極 故薪是火所寄 非其本也 神形相資 亦猶此矣

이란 것이다. 또 환군산의 신론형신 (홍명집서적 권5 소수) 중에 보이는 신멸론자의 이론을 보면
쪽수▶P178-5이란 것이다. 또 桓君山의 新論形神 (弘明集卷五所收) 中에 보이는 神滅論者의 理論을 보면

精神居形體 猞火之然燭矣 云々 氣索而死 如火燭之俱盡矣

쪽수▶P178-6

精神居形體 猞火之然燭矣 云々 氣索而死 如火燭之俱盡矣

이라 하였다. 그러나 신멸론자 중의 가장 유명한 이는 범진인물이니 그 설은 「홍명집」서적 권9 소수 양 소침인물의 난신멸론에서 알 수 있고 이 소침인물의 난신멸론 서문 중에 “內兄范子眞 著神滅論 以明無佛 自謂辯摧衆口 日服千人”이란 것을 보면 얼마나 영혼에 대한 논쟁이 심하였던가도 짐작할 수 있다. 범진인물의 신멸론의 요지는 이러하였다.
쪽수▶P178-7이라 하였다. 그러나 神滅論者 中의 가장 有名한 이는 范縝이니 그 說은 「弘明集」 卷九所收 梁 蕭琛의 難神滅論에서 알 수 있고 이 蕭琛의 難神滅論序文 中에 「內兄范子眞 著神滅論 以明無佛 自謂辯摧衆口 日服千人」이란 것을 보면 얼마나 靈魂에 對한 論爭이 甚하였든가도 짐작할 수 있다. 范縝의 神滅論의 要旨는 이러하였다.

神即形也 形即神也 是以形存則神存 形謝則神滅也
形者神之質 神者形之用 是則形稱其質 神言其用 形之與神 不得相異 名殊而體一也
神之於質 猞利之於刃 形之於用 猞刃之於利 利之名非刃也 刃之名非利也 然而捨利無刃 捨刃無利 未聞刃沒利存 豈容形亡而神在也

쪽수▶P178-8

神即形也 形即神也 是以形存則神存 形謝則神滅也
形者神之質 神者形之用 是則形稱其質 神言其用 形之與神 不得相異 名殊而體一也
神之於質 猞利之於刃 形之於用 猞刃之於利 利之名非刃也 刃之名非利也 然而捨利無刃 捨刃無利 未聞刃沒利存 豈容形亡而神在也

이러한 신멸론은 현신동일(現身同一)이다. 혼은 육체의 작용을 지칭함이요 육체에 고유히 내재하는 것이며 타로부터 들어오다가 다시 타로 떠나는 것(離去)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소침인물의 신불멸론은
쪽수▶P178-9이러한 神滅論은 現身同一이다. 魂은 肉體의 作用을 指稱함이오 肉體에 固有히 內在하는 것이며 他로부터 來入하▶P179-1다가 다시 他로 離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對한 蕭琛의 神不滅論은

形者無知之稱 神者有知之名 知與無知 卽事有異 神之與形 理不容一 形神相卽 非所聞也
今論形神合體 則應有不離之證 而直云神卽形 形卽神 形之與神 不得相異 此辯而無徴 有乖篤喩矣 予今據夢以驗 形神不得共體 當人寢時 其形是無知之物 而有見焉 此神遊之所接也 神不孤立 必慿形器 猶人不露處 須有居室 但形器是穢闇之質 居室是蔽塞之地 神反形內 則共識微惛惛 故以見爲夢 人歸室中 則其神暫壅塞 故以明爲味 夫人或夢上鰧玄虛 遠適萬里 若非神行 便是形往耶 形既不往 神又不離 復焉得如此 及其安寐 身似僵木 氣若寒灰 呼之不聞 撫之無覺 卽云神與形均 則是表裏俱勌 旣不外接聲音 寧能內興思想 此卽形靜神馳 斷可知矣

쪽수▶P179-2

形者無知之稱 神者有知之名 知與無知 卽事有異 神之與形 理不容一 形神相卽 非所聞也
今論形神合體 則應有不離之證 而直云神卽形 形卽神 形之與神 不得相異 此辯而無徴 有乖篤喩矣 予今據夢以驗 形神不得共體 當人寢時 其形是無知之物 而有見焉 此神遊之所接也 神不孤立 必慿形器 猶人不露處 須有居室 但形器是穢闇之質 居室是蔽塞之地 神反形內 則共識微惛惛 故以見爲夢 人歸室中 則其神暫壅塞 故以明爲味 夫人或夢上鰧玄虛 遠適萬里 若非神行 便是形往耶 形既不往 神又不離 復焉得如此 及其安寐 身似僵木 氣若寒灰 呼之不聞 撫之無覺 卽云神與形均 則是表裏俱勌 旣不外接聲音 寧能內興思想 此卽形靜神馳 斷可知矣

란 것이다. 조사문인물의 난범중서신멸론도 이러한 상식론이니 (홍명집 권9 소수)
쪽수▶P179-3란 것이다. 曹思文의 難范中書神滅論도 이러한 常識論이니 (弘明集卷九所收)

昔者趙簡子疾 五日不知人 秦穆公七日乃寤 並神遊於帝所 帝賜之鈞天廣樂 此其形留而神遊者乎 若如論言形滅則神 滅者 斯形之與神 應如影響之必俱也 然形旣病焉 則神亦病也 何以形不知人 神獨遊帝 而欣歡於鈞天廣樂乎 云々 神之與形 有分有合 合則共爲一體 分則形亡而神逝也

쪽수▶P179-4

昔者趙簡子疾 五日不知人 秦穆公七日乃寤 並神遊於帝所 帝賜之鈞天廣樂 此其形留而神遊者乎 若如論言形滅則神 滅者 斯形之與神 應如影響之必俱也 然形旣病焉 則神亦病也 何以形不知人 神獨遊帝 而欣歡於鈞天廣樂乎 云々 神之與形 有分有合 合則共爲一體 分則形亡而神逝也

라 하여 민간신앙 상의 상식에서 일보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상술한 바를 요약하면 혼에 대한 중국학자들 사이의 학설은 대체로 네 가지로 대별할 수 있으니 첫째는 민속적 상식론이요 둘째는 음양론적 정기설이요 셋째는 이기설인데 이 세 가지는 혼백이원론적 혼불멸론이요 넷째는 혼백동일론이며 혼멸론이다. (중국학자의 혼의 관한 기록은 거의 무수하므로 그 취사선택에 곤란할 지경이라 그것을 일일히 열거할 필요는 없으므로 이만한 정도에 그치고자 한다). –(종)–
쪽수▶P179-5라 하여 民間信仰 上의 常識에서 一步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上述한 바를 要約하면 魂에 對한 中國學者들 사이의 學說은 大體로 四大別할 수 있으니 一은 民俗的 常識論이오 二는 陰陽論的 精氣說이오 三은 理氣說인데 이 三者는 魂魄二元論的 魂不滅論이오 四는 魂魄同一論이며 魂滅論이다. (中國學者의 魂의 關한 記錄은 거이 無數하므로 그 取捨選擇에 困難할 地境이라 그것을 一々히 列擧할 必要는 없으므로 이만한 程度에 그치고저 한다). –(終)–
비고
쪽수▶P180-1備考
「莊子」서적 제물론: 「其寐也魂交 其覺也形開」
「莊子」서적 소공 25년: 「心之精爽 是謂魂魄 魂魄去之 何以能久」
「孔子家語」서적 권4 애공문정: 「宰找間於孔子日 吾聞鬼神之名 而不知其所謂 敢間 孔子日 人生有氣有魂 氣也者神之盛也 衆生必死 死必歸土 此之謂鬼 神氣歸天 此之謂神」
「춘추설제사」서적: 「天子曰崩 云云 大夫日卒 云云 士日不祿 云云 庶人日死 魂魄去心 死之爲言精爽窮也」 (太平御覽 五四八 死條所引)
「안씨춘추」서적 권8 제사조: 「獨立不慙於影 獨寢不慙於魂一」
「백호통덕론」서적 권4 붕훙: 「崩薨三日乃小斂何 奪孝子之恩以漸也 一日之時 屬纊於口上 以候絕氣 二日之時 尙冀其生 三日之時 魂氣不還 終不可奈何 云云」
「백호통덕론」서적 권3 정성: 「魂魄者何謂 魂猶云云也 行不休於外也 主於情 魄者迫然著人 主於性也」
진 양천 「물리론」: 「人含氣而生 精盡而死 猶澌也滅也 譬如火焉 薪盡而火滅 則無光矣 故滅火之餘 無遺炎交 人死之後 無遺魂矣」 (太平御覽 五四八 死條所引)
위 동훈 「문례속」서적(옥함산방집일서본): 「或間勛日 俗五月不上屋 云五月人或上屋見影 魂便去 云云」
「어초간용」서적 논생사 어자: 「人之死也 謂其形返 氣行則神魂交 形返則精魄存 神魂行於天 精魄返於地 行於天則謂之日門行 返於地則謂之曰陰返 陽行則晝見而夜伏者也 陰返則夜見而晝伏者也 是故 日者月之形也 月者日之影也 陽者陰之形也 陰者陽之影也 人者鬼之形也 鬼者人之影也 人謂鬼無形而無知者 吾不信也」 (古今圖書集成 人事典 八九 生死 總論所引)
「성리대전」서적 28 귀신: 「南軒張氏曰 鬼神之說 合而言之 來而不測謂之神 往而不返謂之鬼 分而言之 天地山川風雷之屬 凡氣之所接者 皆曰神 祖考祠饗於廟曰鬼 就人物而言之 聚而生爲神 㪚而死爲鬼 又就一身而言之 魂氣爲神 體魄爲鬼 凡六經所稱 蓋不越是數端 然一言以蔽之 莫非造化之迹 而語其徳 則誠而已
학산위인물씨 왈 云云 宇宙之間 氣之至而伸者爲神 反而歸者爲鬼 其在人焉則 陽魂爲神 隂魄爲鬼 二氣合則 魂聚魄凝而生 離則魂升爲神 魄降爲鬼
정자인물 왈 動者魂 靜者魄也 動靜二字 括盡魂魄 凡能運用作爲皆魂也 魄則不能 今人之所以能運動 都是魂使之爾 魂若去魄 則不能也」
도홍경인물 「주후비급방」서적 권1: 「魘臥寐不寫者 皆魂魄外遊 爲邪外執錄 欲還未得 當忌火照 火照途不復入 云云 以麻轉脚 万詰問其故 约敕解之 令一人坐痘頭守 一人於戶內呼病人姓名 坐人應曰 諾在 便蘇」
「영추경」서적 22 대혹론편: 「目者心之使也 心者神之舍也 故神精亂而不轉 卒然見非常處 精神魂魄 散不相得 故曰惑也」
서춘보인물「고금의통」서적: 「五絕乃縊死跌死魘死淹死壓死是也 然此等之死 五贜未絕 因外來之禍而枉死者也 其魂魄守於屍旁 相去未遠 茍以神術招之 魂魄即附體而可生也」
「태식경」서적: 「氣入身來爲之生 神去離形爲之死」 (說郛續三十 明王文祿 胎息經疏)
악정인물 「류박잡언」서적(학해류 편 자류 소수): 「魂少陽也 靜與物交而成夢 魄少隂也 動與物合而成祟 意藏于脾而常靜 感而後應 應則出傳于肝 是爲魂 傳而至于心則極矣 極則無所不知 無所不能 故謂之神 神也者不能常動也 動極必靜 靜則入 入而歸于肺 是名魄 歸而至于腎則極矣 極則無所與知 無所與能 復藏于脾矣」
기윤인물 「여시아문」서적 권4: 「人之魂善而魄惡 人之魂靈而魄愚 其始來也 一靈不泯 魄附魂以行 其既去也 心事既畢 魂一散而滯 魂在則爲人也 魂去則非其人也 世之移尸去影 皆魄爲之 云云」
유수인물 「고잉」서적 속권4 서혼: 「云云 崔曰 聞之方書云 凡猫逐鼠急 鼠則先失其魂 遂伏不動 猫乃擒噬 云云」
쪽수▶P180-2「莊子」齊物論云 「其寐也魂交 其覺也形開」
「左傳」昭公二十五年云 「心之精爽 是謂魂魄 魂魄去之 何以能久」
「孔子家語」卷四 哀公問政云 「宰找間於孔子日 吾聞鬼神之名 而不知其所謂 敢間 孔子日 人生有氣有魂 氣也者神之盛也 衆生必死 死必歸土 此之謂鬼 神氣歸天 此之謂神」
「春秋說題辭」云 「天子曰崩 云云 大夫日卒 云云 士日不祿 云云 庶人日死 魂魄去心 死之爲言精爽窮也」 (太平御覽 五四八 死條所引)
「晏氏春秋」卷八 第四條 云 「獨立不慙於影 獨寢不慙於魂一」
「白虎通德論」卷四 崩薨 云 「崩薨三日乃小斂何 奪孝子之恩以漸也 一日之時 屬纊於口上 以候絕氣 二日之時 尙冀其生 三日之時 魂氣不還 終不可奈何 云云」
「白虎通德論」卷三 情性云 「魂魄者何謂 魂猶云云也 行不休於外也 主於情 魄者迫然著人 主於性也」
晋 楊泉 「物理論」云 「人含氣而生 精盡而死 猶澌也滅也 譬如火焉 薪盡而火滅 則無光矣 故滅火之餘 無遺炎交 人死之後 無遺魂矣」 (太平御覽 五四八 死條所引)
魏 董勛 「問禮俗」(玉函山房輯佚書本)云 「或間勛日 俗五月不上屋 云五月人或上屋見影 魂便去 云云」
「漁樵間容」 論生死 漁者 云 「人之死也 謂其形返 氣行則神魂交 形返則精魄存 神魂行於天 精魄返於地 行於天則謂之日門行 返於地則謂之曰陰返 陽行則晝見而夜伏者也 陰返則夜見而晝伏者也 是故 日者月之形也 月者日之影也 陽者陰之形也 陰者陽之影也 人者鬼之形也 鬼者人之影也 人謂鬼無形而無知者 吾不信也」 (古今圖書集成 人事典 八九 生死 總論所引)
「性理大全」二八 鬼神云 「南軒張氏曰 鬼神之說 合而言之 來而不測謂之神 往而不返謂之鬼 分而言之 天地山川風雷之屬 凡氣之所接者 皆曰神 祖考祠饗於廟曰鬼 就人物而言之 聚而生爲神 㪚而死爲鬼 又就一身而言之 魂氣爲神 體魄爲鬼 凡六經所稱 蓋不越是▶P181-1數端 然一言以蔽之 莫非造化之迹 而語其徳 則誠而已
鶴山魏氏曰 云云 宇宙之間 氣之至而伸者爲神 反而歸者爲鬼 其在人焉則 陽魂爲神 隂魄爲鬼 二氣合則 魂聚魄凝而生 離則魂升爲神 魄降爲鬼
程子 曰 動者魂 靜者魄也 動靜二字 括盡魂魄 凡能運用作爲皆魂也 魄則不能 今人之所以能運動 都是魂使之爾 魂若去魄 則不能也」
粱 陶弘景 「肘後備急方」卷一云 「魘臥寐不寫者 皆魂魄外遊 爲邪外執錄 欲還未得 當忌火照 火照途不復入 云云 以麻轉脚 万詰問其故 约敕解之 令一人坐痘頭守 一人於戶內呼病人姓名 坐人應曰 諾在 便蘇」
「靈樞經」二二 大惑論篇云 「目者心之使也 心者神之舍也 故神精亂而不轉 卒然見非常處 精神魂魄 散不相得 故曰惑也」
明 徐春甫編 「古今醫統」云 「五絕乃縊死跌死魘死淹死壓死是也 然此等之死 五贜未絕 因外來之禍而枉死者也 其魂魄守於屍旁 相去未遠 茍以神術招之 魂魄即附體而可生也」
「胎息經」云 「氣入身來爲之生 神去離形爲之死」 (說郛續三十 明王文祿 胎息經疏)
明 岳正 「類博雜言」 (學海類編 子類所收)云 「魂少陽也 靜與物交而成夢 魄少隂也 動與物合而成祟 意藏于脾而常靜 感而後應 應則出傳于肝 是爲魂 傳而至于心則極矣 極則無所不知 無所不能 故謂之神 神也者不能常動也 動極必靜 靜則入 入而歸于肺 是名魄 歸而至于腎則極矣 極則無所與知 無所與能 復藏于脾矣」
淸 紀昀 「如是我聞」卷四 云 「人之魂善而魄惡 人之魂靈而魄愚 其始來也 一靈不泯 魄附魂以行 其既去也 心事既畢 魂一散而滯 魂在則爲人也 魂去則非其人也 世之移尸去影 皆魄爲之 云云」
淸 鈕琇 「觚賸」續卷四 鼠魂云 「云云 崔曰 聞之方書云 凡猫逐鼠急 鼠則先失其魂 遂伏不動 猫乃擒噬 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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