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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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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암은 또한 ‘구인회’ 멤버로 활동했다. 해방 후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조선문학가동맹’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건설출판사를 설립해 주보 ≪건설≫을 발행했으며 1949년 월북했고,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조선문학≫, ≪문학신문≫ 주필, 평양문학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으며 시집 ≪향수(鄕愁)≫(1938), ≪지열(地熱)≫(1948), ≪벽암 시선≫(1957) 등을 발간했다. 서울에서 ≪조벽암시전집≫(이동순·김석영 편, 2004)이 발간되었고 1985년 평양에서 사망했다.<ref>https://ko.wikipedia.org/wiki/조벽암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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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암은 또한 ‘{{TagGroup|구인회}}’ 멤버로 활동했다. 해방 후 ‘{{TagInstitution|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TagInstitution|조선문학가동맹}}’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건설출판사를 설립해 주보 ≪건설≫을 발행했으며 1949년 월북했고, ‘{{TagInstitution|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조선문학≫, ≪문학신문≫ 주필, 평양문학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으며 시집 ≪향수(鄕愁)≫(1938), ≪지열(地熱)≫(1948), ≪벽암 시선≫(1957) 등을 발간했다. 서울에서 ≪조벽암시전집≫(이동순·김석영 편, 2004)이 발간되었고 1985년 평양에서 사망했다.<ref>https://ko.wikipedia.org/wiki/조벽암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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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7일 (월) 17:22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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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암 (趙碧巖)
조벽암.jpeg
출처 : 위키백과-조벽암
 
한글명 조벽암 한자명 趙碧巖 영문명 가나명 이칭 중흡 (重洽)
성별 남성 생년 1908년 몰년 1985년 출신지 충청북도 진천 전공 법학부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본명은 조중흡(趙重洽)으로, 일제강점기 「건식의 길」, 「파종」, 「파행기」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생애


출생 및 성장

1908년 충청북도 진천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중흡(重洽)이고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아버지는 조태희(趙兌熙),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며 1920년대의 대표 작가인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1]의 조카다. 경성 제2공립고등보통학교기관를 졸업했다.[2]


학력 및 데뷔

경성 제2공립고등보통학교기관를 거쳐 경성제대기관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시에 『문학타임즈』를 발행하여 문학 활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화신연쇄점 직물부에 취직하기도 했으나, 문필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시와 소설, 평론 등을 발표하였다. 1931년 8월 소설 「건식(健植)의 길」과 10월에 시 「구고를 사르며」 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38년 월북 전 이문당에서 첫 시집 『향수』를 간행했다.[3]


활동사항

조벽암의 작품활동은 1930년대 초에 시작되었는데 시와 소설을 거의 동시에 병행하면서 발표하였다. 시작품으로 「새 아침」(『신동아』, 1933.1)·「만추사경(晩秋四景)」(『동아일보』, 1933.12.6∼7)·「새 설계도(設計圖)」(『동아일보』, 1934.2.10)·「봄」(『신동아』, 1934.2) 등을 발표하였다. 시집으로는 『향수(鄕愁)』(이문당서점, 1938)와 『지열(地熱)』(이문각, 1948)을 간행하였으나 시집 『지열(地熱)』은 발매 금지를 당했었다. 조벽암의 시는 지식인의 비참한 현실과, 지식인이 현실에서 느끼는 우수와 권태와 비통함과 증오의 감상을 서사적·설명적으로 표현하고 있다.[4]


조벽암은 또한 ‘구인회단체’ 멤버로 활동했다. 해방 후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기관’, ‘조선문학가동맹기관’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건설출판사를 설립해 주보 ≪건설≫을 발행했으며 1949년 월북했고, ‘조선작가동맹기관’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조선문학≫, ≪문학신문≫ 주필, 평양문학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으며 시집 ≪향수(鄕愁)≫(1938), ≪지열(地熱)≫(1948), ≪벽암 시선≫(1957) 등을 발간했다. 서울에서 ≪조벽암시전집≫(이동순·김석영 편, 2004)이 발간되었고 1985년 평양에서 사망했다.[5]





연구


소설의 경향

조벽암의 소설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뉘다. 「건식(健植)의 길」(『조선일보』, 1931.8.1∼21)·「구인몽(蚯蚓夢)」(『비판』, 1932.11∼1933.1)·「농군(農軍)」(『비판』, 1933.3)·「처녀촌(處女村)」(『조선문학』, 1933.11)·「파종(破鍾)」(『신동아』, 1935.7)·「취직(就職)과 양(羊)」(『조광』, 1937.3) 등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인물들의 사회적 투쟁을 다루거나, 동물에 빗대어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이에 비해 「결혼 전후」(『신가정』, 1934.1)·「노승(老僧)」(『조선문학』, 1936.5)·「파행기(跛行記)」(『신동아』, 1936.7) 등에서는 현실에 대한 관심이 간접화되거나 단편적인 인상만이 그려지고 있다. 한편, 역서로 고리키(Gorki, M.)의 『문학론』(1947)이 있다.

조벽암은 당대 현실의 문제를 작품 내부에 진지하게 적용은 하지만, 정치적 이념을 내세우기보다는 도덕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당시 프로문학의 관념성과 도식성을 개인의 양심과 문학적 기법으로 일정하게 넘어서고 있다.[6]


평론가

조벽암은 처음에 소설을 많이 쓰다가 시와 비평을 겸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평론으로도 활약한 바 있는데 「김안서씨의 정형시론에 대하여」(《조선일보》, 1933.1), 「탄식하는 시신(詩神)」(《조선일보》, 1933.10), 「대담한 나파륜(奈巴崙)의 길」, 「창작방법 리알리즘 작가」(《조선중앙일보》, 1935.7), 「문단 부패성과 고독성」(《동아일보》, 1935.5) 등을 썼다. 또한 1947년에는 막심 고리끼의 『문학론』을 번역 간행하기도 했다. 또한 일찍이 조벽암은 『향수』, 『지열(地熱)』 등의 시집을 냈으며, 이 시들은 당시의 황막하고도 불만족스러운 정황 속의 대상을 관조적으로 응시하는 특질을 지니고 있다.[7]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조벽암 Institution: 경성 제2공립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조벽암 Institution: 경성제대 A graduates B
Person: 조벽암 Group: 구인회 A isMemberOf B
Person: 조벽암 Institution: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A worksAt B
Person: 조벽암 Institution: 조선문학가동맹 A worksAt B
Person: 조벽암 Institution: 조선작가동맹 A worksAt B



Timeline


Timeline Google Spreadsheet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개항기에 활동한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문학가. 본관은 양주(陽州)이고, 호는 포석(抱石)·목성(木星), 필명은 적로(笛蘆)이다.
  2.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6645&docId=548524&categoryId=466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1708&docId=333919&categoryId=41737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4.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6645&docId=548524&categoryId=466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5. https://ko.wikipedia.org/wiki/조벽암 위키백과
  6.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6645&docId=548524&categoryId=466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7.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60594&docId=1692254&categoryId=60594 북한문학사전, 이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