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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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수근은 해방 이후 한국 현대 건축의 정립 과정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던 건축가이자 문화예술 후원자이다.<ref name="encykorea">강홍빈, "김수근(金壽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9653)</ref> 1960년대 국가 주도의 대형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한국 건축계의 중심인물로 부상했다.<ref name="vmspace">공간그룹, "History: 1960-1979", 『SPACE GROUP』online, 공간그룹. (https://vmspace.com/company/history.html)</ref> 그러나 남영동 대공분실 설계와 같은 군사 정권 협력 이력은 그의 업적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를 요구하는 요인이기도 하다.<ref name="hani">황두진, "건축가 김수근의 두 얼굴", 『한겨레』online, 2011.08.08.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0977.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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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며 예술 후원자이다[http://kimswoogeun.org/biography]. 1960년대 한국 현대 건축의 태동기를 이끌었으며, {{TagGroup|공간그룹}}을 설립하여 건축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예술 전반의 발전에 기여했다[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549]. 대표작으로 {{TagBuilding|자유센터}}, {{TagBuilding|공간사옥}}, {{TagBuilding|경동교회}}, {{TagBuilding|서울올림픽주경기장}} 등이 있다[https://k-art.kookmin.ac.kr/theme/]. 그러나 {{TagBuilding|국립부여박물관}}의 왜색 시비와 {{TagBuilding|남영동 대공분실}} 설계 등 논쟁적인 역사적 평가도 공존하는 인물이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9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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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31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수근은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했다.<ref name="encykorea" /> 6.25 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예술대학]] 건축과와 도쿄대학 대학원(도시계획 전공)에서 수학했다.<ref name="encykorea" /> 이 시기 그는 일본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요시무라 준조]]연구실에서 수학하며 건축적 기초를 다졌다.<ref name="vmsp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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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31년 2월 20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중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TagInstitution|서울대학교}} 건축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가 1958년 {{TagInstitution|도쿄예술대학}} 건축과를 졸업했다. 이후 {{TagInstitution|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하며 일본 모더니즘 건축가 {{TagPerson|요시무라 준조}}영향을 받았다[https://samsungblueprint.tistory.com/91]. 1960년 도쿄대학 대학원 재학 중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축 설계 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며 한국 건축계에 이름을 알렸다[https://cafe.daum.net/interiorworld/HI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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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건축가로서의 부상 (1960-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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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0년 국회의사당 건축 설계 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면서 한국으로 귀국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ref name="encykorea" /> 그는 [[자유센터]](1963), 타워호텔 등의 설계를 맡으며 개발 독재 시대의 국가적 이상향을 콘크리트 조형물로 구현해냈다.<ref name="hani" /> 이 시기 그의 건축은 거대한 스케일과 노출 콘크리트의 거친 물성을 특징으로 하는 브루탈리즘 경향을 띠었다.<ref name="vmsp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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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박물관 왜색 시비 (1967-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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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과 공간그룹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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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7년 설계한 [[국립부여박물관]]은 김수근 건축 인생의 최대 위기이자 전환점이었다.<ref name="encykorea" /> 박물관의 정문이 일본 신사의 도리이(鳥居)를 닮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전 국민적인 '왜색 시비'가 일어났다.<ref name="hani" /> 이 사건은 그에게 "한국의 전통을 현대 건축에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ref name="vmsp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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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1년 귀국하여 '김수근 건축연구소'(현 {{TagGroup|공간그룹}})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https://www.spacea.com/renew/about.html]. 1966년에는 종합 예술 전문지인 월간 『공간(SPACE)』을 창간하여 건축, 미술, 연극 등 한국 예술계의 담론을 이끌었다[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4218]. 1960년대에는 {{TagBuilding|자유센터}}, {{TagBuilding|타워호텔}} 등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한 조형미 넘치는 건축물을 주로 설계했다[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9/20130719017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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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시대와 문화 운동 (1971-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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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철학의 심화와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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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71년 그는 자신의 대표작이자 한국 현대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공간사옥]](현 아라리오 뮤지엄)을 완공했다.<ref name="vmspace" /> 이곳에서 건축 잡지 월간 『공간』을 발행하고 소극장 '공간사랑'을 운영하며 당대 문화 예술인들의 아지트 역할을 자처했다.<ref name="encykorea" /> 공간 사옥은 좁은 골목길과 마당 등 한국적 공간감을 벽돌이라는 재료로 훌륭하게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f name="vmsp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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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7년 {{TagBuilding|국립부여박물관}} 설계가 일본 신사를 닮았다는 왜색 시비에 휘말리며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이후 벽돌을 주 재료로 하는 독자적인 건축 세계를 구축하며 {{TagBuilding|공간사옥}}, {{TagBuilding|마산양덕성당}}, {{TagBuilding|경동교회}} 등을 설계했다. 1975년부터 {{TagInstitution|국민대학교}} 조형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986년 6월 14일 간암으로 인해 향년 5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http://kimswoogeun.org/biogra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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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프로젝트와 타계 (1980-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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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80년대에 들어서며 김수근은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경동교회]] 등 거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ref name="encykorea" /> 특히 경동교회는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한 외관과 십자가의 길을 연상시키는 진입로 설계를 통해 도심 속의 성소를 구현했다.<ref name="vmspace" />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활동하던 그는 1986년 간암으로 55세의 이른 나이에 타계했다.<ref name="ency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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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비즘과 제3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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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사옥 (Space Group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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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수근 건축 철학의 핵심은 '네거티비즘' 또는 '궁극적 공간(Ultimate Space)'으로 요약된다.<ref name="encykorea" /> 그는 건축을 보여지는 오브제가 아니라, 인간이 생활하고 체험하는 비워진 공간을 조직하는 것으로 보았다.<ref name="vmspace" /> 이는 한국 전통 건축의 마당이나 대청마루와 같은 매개적 공간의 현대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ref name="ency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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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71년(구관)과 1977년(신관)에 걸쳐 완공된 김수근의 대표작으로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다[http://archistory.korea.ac.kr/archive_110919/Essays/69.pdf]. 검은색 전벽돌을 사용하여 주변의 한옥과 조화를 이루며, 내부는 스킵 플로어(Skip Floor)를 활용하여 미로와 같은 풍부한 공간감을 제공한다[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4541]. 김수근은 이 공간을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궁극 공간'이라 칭했다[http://jah.or.kr/journal/article.php?code=37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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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교회 (Kyungdong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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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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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80년 설계된 서울 장충동의 교회 건축물로,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한 외관이 특징이다. 붉은 벽돌의 외벽과 노출 콘크리트의 내부가 조화를 이루며, 교회 내부로 진입하는 길을 골고다 언덕길처럼 설계하여 예배자가 스스로를 정화하도록 유도했다[http://www.kdchurch.or.kr/page/index/32]. 한국 현대 종교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https://www.kieae.kr/xml/13590/13590.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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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과 왜색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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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74년 완공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은 김수근의 설계작 중 가장 논쟁적인 건물이다.<ref name="hani" /> 좁은 창문, 엇갈린 층계, 방음 설계 등은 고립감과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건축적 장치로 해석된다.<ref name="hani" /> 이 건물은 건축가의 재능이 국가 폭력에 어떻게 복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지속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ref name="han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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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7년 설계된 국립부여박물관은 정문이 일본 신사의 도리이(鳥居)를, 본관 지붕이 일본 전통 건축의 치기(千木)를 닮았다는 비판을 받았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9343]. 이는 당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김수근이 이후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 건축에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9/2013071901702.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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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홍빈, "김수근(金壽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9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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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문화재단, 『[http://kimswoogeun.org/biography 김수근 약력]』online, 김수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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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549 김수근(金壽根)]』online.
  
* 공간그룹, "History: 1960-1979", 『SPACE GROUP』online, 공간그룹. (https://vmspace.com/company/histo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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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9343 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 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 2021.10.16.
  
* 황두진, "건축가 김수근의 두 얼굴", 『한겨레』online, 2011.08.08.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09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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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9/2013071901702.html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 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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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그룹, 『[https://www.spacea.com/renew/about.html 공간그룹 연혁]』online.
  
  

2025년 12월 8일 (월) 23:49 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위키ID)이 작성했습니다.






김수근(金壽根)
김수근.jpg
출처 : http://blog.colinmarshall.org/?p=4674
 
한글명 김수근 한자명 金壽根 영문명 Kim Swoo-geun 가나명 이칭
성별 남성 생년 1931년 몰년 1986년 출신지 함경북도 청진 전공 건축학, 도시계획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며 예술 후원자이다[1]. 1960년대 한국 현대 건축의 태동기를 이끌었으며, 공간그룹단체을 설립하여 건축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예술 전반의 발전에 기여했다[2]. 대표작으로 틀:TagBuilding, 틀:TagBuilding, 틀:TagBuilding, 틀:TagBuilding 등이 있다[3]. 그러나 틀:TagBuilding의 왜색 시비와 틀:TagBuilding 설계 등 논쟁적인 역사적 평가도 공존하는 인물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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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성장과 유학 (1931-1959)

1931년 2월 20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중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서울대학교기관 건축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가 1958년 도쿄예술대학기관 건축과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대학 대학원기관에서 수학하며 일본 모더니즘 건축가 요시무라 준조인물의 영향을 받았다[5]. 1960년 도쿄대학 대학원 재학 중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축 설계 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며 한국 건축계에 이름을 알렸다[6].



귀국과 공간그룹 설립

1961년 귀국하여 '김수근 건축연구소'(현 공간그룹단체)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7]. 1966년에는 종합 예술 전문지인 월간 『공간(SPACE)』을 창간하여 건축, 미술, 연극 등 한국 예술계의 담론을 이끌었다[8]. 1960년대에는 틀:TagBuilding, 틀:TagBuilding 등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한 조형미 넘치는 건축물을 주로 설계했다[9].



건축 철학의 심화와 타계

1967년 틀:TagBuilding 설계가 일본 신사를 닮았다는 왜색 시비에 휘말리며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이후 벽돌을 주 재료로 하는 독자적인 건축 세계를 구축하며 틀:TagBuilding, 틀:TagBuilding, 틀:TagBuilding 등을 설계했다. 1975년부터 국민대학교기관 조형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986년 6월 14일 간암으로 인해 향년 5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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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공간사옥 (Space Group Building)

1971년(구관)과 1977년(신관)에 걸쳐 완공된 김수근의 대표작으로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다[11]. 검은색 전벽돌을 사용하여 주변의 한옥과 조화를 이루며, 내부는 스킵 플로어(Skip Floor)를 활용하여 미로와 같은 풍부한 공간감을 제공한다[12]. 김수근은 이 공간을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궁극 공간'이라 칭했다[13].


경동교회 (Kyungdong Church)

1980년 설계된 서울 장충동의 교회 건축물로,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한 외관이 특징이다. 붉은 벽돌의 외벽과 노출 콘크리트의 내부가 조화를 이루며, 교회 내부로 진입하는 길을 골고다 언덕길처럼 설계하여 예배자가 스스로를 정화하도록 유도했다[14]. 한국 현대 종교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15].


국립부여박물관과 왜색 시비

1967년 설계된 국립부여박물관은 정문이 일본 신사의 도리이(鳥居)를, 본관 지붕이 일본 전통 건축의 치기(千木)를 닮았다는 비판을 받았다[16]. 이는 당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김수근이 이후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 건축에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17].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김수근 Institution: 공간그룹 A isFounderOf B
Person: 김수근 Institution: 도쿄예술대학 A graduates B
Person: 김수근 Institution: 도쿄대학 A graduates B
Person: 김수근 Building: 자유센터 A designed B
Person: 김수근 Building: 국립부여박물관 A designed B
Person: 김수근 Building: 공간사옥 A designed B
Person: 김수근 Building: 서울올림픽주경기장 A designed B
Person: 김수근 Building: 경동교회 A designed B
Person: 김수근 Building: 남영동 대공분실 A designed B
Person: 김수근 Building: 아르코 예술극장 A designed B
Person: 김수근 Person: 요시무라 준조 A studiedUnder B
Person: 김수근 Person: 김중업 A isRivalOf B
Person: 김수근 Book: 월간 공간 A publishes B
Building: 국립부여박물관 Event: 왜색 시비 A caused B
Building: 남영동 대공분실 Event: 인권 유린 A usedFor B




Timeline


<iframe src='https://cdn.knightlab.com/libs/timeline3/latest/embed/index.html?source=your_sheet_id_here&font=Default&lang=ko&initial_zoom=2&height=650' width='100%' height='65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frameborder='0'></iframe>




Network Graph










참고자원


김수근문화재단, 『김수근 약력』online, 김수근문화재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수근(金壽根)』online.

중앙일보, 「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 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 2021.10.16.

조선비즈,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 2013.07.19.

공간그룹, 『공간그룹 연혁』online.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