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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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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6일 (토) 00:47 판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박대성(CNU2025))이 작성했습니다.




심영(沈影)
[[file:심영 심영.jpg|270px|thumb|center]]
출처 : 위키백과
 
한글명 심영 한자명 沈影 영문명 Sim Yeong 가나명 シム・ヨン 이칭 심재설 (沈載卨) (본명)
성별 생년 1911년 몰년 1971년 출신지 강원도 철원군 전공 보통학교 퇴학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일제강점기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광복 후에는 공산주의자 행보를 보이다가 북한으로 넘어간 배우이다.


생애


출생

1911년 철원군수로 재직하고 있던 아버지 심완섭의 아들로 철원에서 태어났다. 이후 성장은 서울에서 했으며 제2경성고등보통학교(現경복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스스로 고향은 철원이 아닌 서울로 밝혔고 원적도 경성이라고 한다.


유년시절

제2경성고등보통학교를 퇴학을 당하고 박제행으로 부터 "배우만 되면 출세한다"는 자극을 받게 되어 배우의 길로 가기로 결심했다. 또 다른 기록에서는 배제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학비난으로 인한 퇴학으로 토월회 연구생으로 입단해 배우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1929년 11월 14일 부터 16일까지 조선극장에서 토월회는 <<간난이의 설움>>을 공연했는데 심영은 이 작품으로 본격적인 무대에서의 데뷔를 하게되었다. 당시 평을 보면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성공을 했다. 1930년 1월 12일부터 16일까지 조선극장에서 공연된 창작극 <<남경의 거리>>에서 최초로 주인공을 맡게 되었다. 1933년 4월에 개봉한 <아름다운 희생>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영화로도 진출했다. 일제 시대의 지원병을 독려하는 국책 영화 <<그대의 나>>에 출연하고 일제의 정책을 장려하는 글도 발표하는 등 친일행적을 펼치기도 했다.


광복 이후

해방 이후 심영은 박제행 등 여러 연극계 사람들과 '혁명극장'을 창설하여 좌익 성향의 연극을 펼쳤다. 1946년 3월 조선연극동맹이 주관한 3.1기념 연극대회에 출연하던 중 권총을 가진 괴한에게 피습을 당하기도 했다


말년

월북 후 북한에서 첫 예술영화인 <내고향>에 출연했다. 이후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 <정찰병>, <벗들이여 우리와 함께 가자>, <두만강> 등 다양한 북한의 예술영화에 출연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연기과장, 조선영화인동맹 위원장을 지니고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교수직을 했다. 북한은 그의 공로를 인정을 하고 공훈배우칭호를 수여했다. 1971년 10월 24일 그는 지병으로 사망했다.





연구


제목1


제목2


제목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심완섭 Person: 심영 심완섭 hasSon 심영
Person: 심영 Institution: 제2경성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심영 Institution: 평양연극영화대학 A worksAt B
Person: 심영 Group: 토월회 심영 isMemberOf 토월회
Book: ○○○ Person: A creator B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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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