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이본고(2)"의 두 판 사이의 차이

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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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5=[[{{FULLPAGENAMEE}}#본문5: 11. 우리들傳|11. 우리들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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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1번= {{TagSpage|107}} 春香傳 異本을 大綱 三期로서 나누어 본다면 京版春香傳에서 完版春香傳까지가 第一期, 完版春香傳에서 獄中花까지가 第二期, 獄中花以後가 第三期가 될 것인데 本書는 李海朝의 編著로 大正 元年 8月 27日에 普及書舘에서 그 初版이 發行되었다. 李海朝라 하면 지금은 作故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記憶에 새로운 바와 같이 李人稙과 아울러 近代 新小說 時代의 大家로서 鬢上雪, 九疑山, 昭陽亭 其他의 作品이 있고, 또 一時는 每日申報社 記者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小說界에 活動할 時代는 世態가 時刻으로 變하여 文學을 즐기고 文學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前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春香傳을 다시 復活시켰고 또 어느 程度까지 일로서 現代文學을 刺戟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本書는 홀로 春香傳의 異本으로서 그 光彩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實로 過渡期에 있는 朝鮮小說로서 잊을 수 없는 {{TagPage|108-1}}作品이라 할 것인데 以後의 春香傳의 異本이라 한다면 거의 그 影響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程度까지 이의 飜案이라 하여도 過言이 아닐 듯하다.
 
|목차1원문1번= {{TagSpage|107}} 春香傳 異本을 大綱 三期로서 나누어 본다면 京版春香傳에서 完版春香傳까지가 第一期, 完版春香傳에서 獄中花까지가 第二期, 獄中花以後가 第三期가 될 것인데 本書는 李海朝의 編著로 大正 元年 8月 27日에 普及書舘에서 그 初版이 發行되었다. 李海朝라 하면 지금은 作故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記憶에 새로운 바와 같이 李人稙과 아울러 近代 新小說 時代의 大家로서 鬢上雪, 九疑山, 昭陽亭 其他의 作品이 있고, 또 一時는 每日申報社 記者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小說界에 活動할 時代는 世態가 時刻으로 變하여 文學을 즐기고 文學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前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春香傳을 다시 復活시켰고 또 어느 程度까지 일로서 現代文學을 刺戟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本書는 홀로 春香傳의 異本으로서 그 光彩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實로 過渡期에 있는 朝鮮小說로서 잊을 수 없는 {{TagPage|108-1}}作品이라 할 것인데 以後의 春香傳의 異本이라 한다면 거의 그 影響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程度까지 이의 飜案이라 하여도 過言이 아닐 듯하다.
|목차1원문2번= {{TagSpage|108-2}}이렇게 말하면 벌서 大綱 짐작이 될 바와 같이 本書는 단단히 從來의 春香傳에 大改竄을 꾀하였고 또 可及的 現代 生活의 感情을 넣어보려 애썼으니 以下 本書의 이 點에 對하여 大綱 들어 보면, 첫째 그 形式에 있어 從來의 連續式올 分切式으로 고치고, 또 純諺文體룔 諺漢文體로 써서 二 代身 漢文字에는 一一히 그 옆에 諺文으로 音譯하였기 때문에 讀書에 많은 便宜를 주었으며, 다음 그 內容에 이르면 于先 劈頭에 무슨 大王 年間에 云云으로 始作하던 古代小說의 典型을 打破하고 劈頭에 <blockquo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苧羅山下 若耶溪에 西施가 鍾出하고, …... 湖南左道南原府는 東으로 智異山, 西으로 赤城江, 山水精神 어리여서 春香이가 삼겨 있다」</blockquote>이렇게 始作하였다.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할지 모르지만 春香傳으로 보아서는 大膽한 破格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여기에 春香傳은 古代小說에서 다시 新小說로 化粧을 고처하고 世上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春香에 對하여는 完本에서 많은 影響을 받아 그를 閭閻집 處女로 新裝한 것은 勿論이지만 春香母月梅와 成參判과의 關係云云은 훨씬 뒤에 가서 春香母가 李道令에게 說明하는 말로 들리고, 처음에는 春香母의 胎夢에 어떤 仙女 李花 桃花 두 가지를 兩손에 갈라쥐고 하늘로 나와서 桃花를 내어주며 「이꽃을 잘갖구어 李花接을 부쳤으면 오는 行樂 좋으리라. 李花 갖다 傳할 곳이 時刻이 急하기로 忽忽히 떠나노라」 하였다 하여, 春香과 李道令이 同是 16歲의 同甲으로 만난 그 因緣을 先天的으로 여기에 맺어 두고, 李道令이 廣寒樓에 와서 春香을 불렀을 때는 李明善氏本과 같이 春香은 雁隨海{{TagPage|109}}蝶隨花, 蟹隨穴이라는 말을 傅喝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李道令이 그날 밤에 春香 집을 찾았을 때는 完版本에 房子가 뒤쫓아 春香 집으로 가서 春香을 부를 때 春香母가 꿈 이야기를 하듯이 마침 春香母가 春香 房에와서 "너자는 枕上에서 彩雲이 일어나며 靑龍이 너를 물고 하날로 오르기로 龍의 허리를 안고 이리 궁굴 저리 궁굴하다가 깨였다" 云云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럴 때에 李道令이 밖에서 부르니 春香母가 깜짝 놀라 맞아들이었으나 여기도 李道令은 春香을 禮로써 맞이한 듯이 하여 春香母에게 그 딸의 許婚을 請하였고, 春香은 그 母의 許諾을 기다려 李道令에게 一身을 바쳤는데, 사랑 끝에 離別이 되는 데는 李道令이 別로 그 母親에게 春香일을 삷다가 꾸중을 들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後 使道와 그 夫人은 벌써 그 關係를 눈치채고 있었는 듯하여 떠날 때에는 春香을 불러보려고까지 하다가 道令의 長習도 될 것 같고 下人 所視에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春香母女에게 돈과 白米와 匹木과 其他 珮物을 厚히 주어 慰勞하고 또 後日 道令님이 及第하면 將次 데려간다고도 일러주었다 하였다. 또 卞府使는 李府使가 上京 後에 곧 온 것이 아니고, 그 中間에 다른 府使가 李府使의 뒤를 이어 왔다가 1年만에 갈려 간 後에 到任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마 春香으로 하여금 李道令을 思慕하고 守節하는 時間的 餘裕를 주어, 날이 가고 달이 가도 絶對로 그 節介는 變함이 없다는 것을 더 힘있게 말하고자 한 데에서 考案된 듯하나, 事實 從來의 異本은 李府使가 갈려간 後 곧 卞府使가 到任하여왔기 때문에 春香의 節介에는 얼마쯤 損이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卞府使의 우력에도 屈하지 않았다니까 勿論 그를 疑心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 離別한 곧 그다음이니까 하는 핸드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本書와 같이 하여 두고 보면 春香의 節介에는 아무 疑心을 介入할 틈을 두지 않는다. 可히 編者의 稠密한 頭腦를 볼 것이나 이러한 點은 또 이 밖에도 있었다. 이것은 먼저 別春香傳에서도 그랬지만 春{{TagPage|110}}香의 獄中書簡인데 여기는 使令이 나와서 春香에게 서울로 편지나 하여보라 勸하고 春香도 옳게 여겨 편지를 써서 부치는데 亦是 前日 道令님을 뫼시고 다니던 房子를 불러 보냈다 하였다. 그리하여 御史가 途中에서 房子를 만나 그 편지를 받을 것이나, 御史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憤하여 不意에 그놈을 단박에 三門出道를 하여 封庫를 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房子에게 눈치를 보여 버렸다. 그런데 別奪香傳은 이때 別로 房子에게 그런 눈치를 보였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그 房子에게 自己가 南原에 가기 前에는 아무 말을 내지 마라 당부하고 보냈지만 여기서는 房子에게 御史라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그 뒤 收拾을 適當히 하지 않을 수 없어 그 房子를 雲峯으로 보내는데, 房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주고 그것을 갖다 雲峯官家에 드리고 주는 것이 있거든 받아가지고 오라 한다. 그러나 편지 內容은 그 놈이 가거든 잡아 가두어 두라 하였기 때문에 房子는 거기 가서 그만 禁錮를 當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비록 房子의 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雲峯에게는 內通하는 것이 되지 않나 하지만 그는 또 그럴 만한 理由가 있었던 것이다.  即 雲峯은 御史가 卞府使의 生日宴에 乞人의 形色을 하고 들어갔을 때 唯獨히 御史에게 同情하여 주었던 것이나 編者는 이 點을 날카로이 感得하여 雲峯의 態度를 有心하게 하는 同時에 또 房子의 입을 막아 〿〿의 綻紫를 防止한다는 一石二鳥식의 手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그後 御史가 南原 三門에 出道를 하였을 때는 그 房子가 저절로 놓여 御史 앞에 뛰어왔으므로 그 勞를 謝하고 南原官奴廳一課所任을 시켜주었다 한다. 그리고 卞府使는 紫色하여 印兵符를 끌러 御史에게 바치니 御史는 도리어 慰勞하여 하는 말이 男兒의 貪花함은 英雄梨 一般일 뿐 아니라 또 春香의 節行이 빛남도 本官의 德澤이니 介念하지말고 앞으로 善治하여 萬人傘을 받으라 하고 封庫罷職은 하지 않았다 하였다. 여기에 또 編者는 李道令의 度量을 힘껏 넓혀 春香의 無雙한 節行에 〿〿〿의 濶〿한 人格을 配{{TagPage|111-1}}合하려 한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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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2번= {{TagSpage|108-2}}이렇게 말하면 벌서 大綱 짐작이 될 바와 같이 本書는 단단히 從來의 春香傳에 大改竄을 꾀하였고 또 可及的 現代 生活의 感情을 넣어보려 애썼으니 以下 本書의 이 點에 對하여 大綱 들어 보면, 첫째 그 形式에 있어 從來의 連續式올 分切式으로 고치고, 또 純諺文體룔 諺漢文體로 써서 二 代身 漢文字에는 一一히 그 옆에 諺文으로 音譯하였기 때문에 讀書에 많은 便宜를 주었으며, 다음 그 內容에 이르면 于先 劈頭에 무슨 大王 年間에 云云으로 始作하던 古代小說의 典型을 打破하고 劈頭에 <blockquo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苧羅山下 若耶溪에 西施가 鍾出하고, ⋯⋯ 湖南左道南原府는 東으로 智異山, 西으로 赤城江, 山水精神 어리여서 春香이가 삼겨 있다」</blockquote>이렇게 始作하였다.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할지 모르지만 春香傳으로 보아서는 大膽한 破格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여기에 春香傳은 古代小說에서 다시 新小說로 化粧을 고처하고 世上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春香에 對하여는 完本에서 많은 影響을 받아 그를 閭閻집 處女로 新裝한 것은 勿論이지만 春香母月梅와 成參判과의 關係云云은 훨씬 뒤에 가서 春香母가 李道令에게 說明하는 말로 들리고, 처음에는 春香母의 胎夢에 어떤 仙女 李花 桃花 두 가지를 兩손에 갈라쥐고 하늘로 나와서 桃花를 내어주며 「이꽃을 잘갖구어 李花接을 부쳤으면 오는 行樂 좋으리라. 李花 갖다 傳할 곳이 時刻이 急하기로 忽忽히 떠나노라」 하였다 하여, 春香과 李道令이 同是 16歲의 同甲으로 만난 그 因緣을 先天的으로 여기에 맺어 두고, 李道令이 廣寒樓에 와서 春香을 불렀을 때는 李明善氏本과 같이 春香은 雁隨海{{TagPage|109}}蝶隨花, 蟹隨穴이라는 말을 傅喝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李道令이 그날 밤에 春香 집을 찾았을 때는 完版本에 房子가 뒤쫓아 春香 집으로 가서 春香을 부를 때 春香母가 꿈 이야기를 하듯이 마침 春香母가 春香 房에와서 "너자는 枕上에서 彩雲이 일어나며 靑龍이 너를 물고 하날로 오르기로 龍의 허리를 안고 이리 궁굴 저리 궁굴하다가 깨였다" 云云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럴 때에 李道令이 밖에서 부르니 春香母가 깜짝 놀라 맞아들이었으나 여기도 李道令은 春香을 禮로써 맞이한 듯이 하여 春香母에게 그 딸의 許婚을 請하였고, 春香은 그 母의 許諾을 기다려 李道令에게 一身을 바쳤는데, 사랑 끝에 離別이 되는 데는 李道令이 別로 그 母親에게 春香일을 삷다가 꾸중을 들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後 使道와 그 夫人은 벌써 그 關係를 눈치채고 있었는 듯하여 떠날 때에는 春香을 불러보려고까지 하다가 道令의 長習도 될 것 같고 下人 所視에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春香母女에게 돈과 白米와 匹木과 其他 珮物을 厚히 주어 慰勞하고 또 後日 道令님이 及第하면 將次 데려간다고도 일러주었다 하였다. 또 卞府使는 李府使가 上京 後에 곧 온 것이 아니고, 그 中間에 다른 府使가 李府使의 뒤를 이어 왔다가 1年만에 갈려 간 後에 到任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마 春香으로 하여금 李道令을 思慕하고 守節하는 時間的 餘裕를 주어, 날이 가고 달이 가도 絶對로 그 節介는 變함이 없다는 것을 더 힘있게 말하고자 한 데에서 考案된 듯하나, 事實 從來의 異本은 李府使가 갈려간 後 곧 卞府使가 到任하여왔기 때문에 春香의 節介에는 얼마쯤 損이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卞府使의 우력에도 屈하지 않았다니까 勿論 그를 疑心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 離別한 곧 그다음이니까 하는 핸드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本書와 같이 하여 두고 보면 春香의 節介에는 아무 疑心을 介入할 틈을 두지 않는다. 可히 編者의 稠密한 頭腦를 볼 것이나 이러한 點은 또 이 밖에도 있었다. 이것은 먼저 別春香傳에서도 그랬지만 春{{TagPage|110}}香의 獄中書簡인데 여기는 使令이 나와서 春香에게 서울로 편지나 하여보라 勸하고 春香도 옳게 여겨 편지를 써서 부치는데 亦是 前日 道令님을 뫼시고 다니던 房子를 불러 보냈다 하였다. 그리하여 御史가 途中에서 房子를 만나 그 편지를 받을 것이나, 御史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憤하여 不意에 그놈을 단박에 三門出道를 하여 封庫를 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房子에게 눈치를 보여 버렸다. 그런데 別奪香傳은 이때 別로 房子에게 그런 눈치를 보였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그 房子에게 自己가 南原에 가기 前에는 아무 말을 내지 마라 당부하고 보냈지만 여기서는 房子에게 御史라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그 뒤 收拾을 適當히 하지 않을 수 없어 그 房子를 雲峯으로 보내는데, 房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주고 그것을 갖다 雲峯官家에 드리고 주는 것이 있거든 받아가지고 오라 한다. 그러나 편지 內容은 그 놈이 가거든 잡아 가두어 두라 하였기 때문에 房子는 거기 가서 그만 禁錮를 當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비록 房子의 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雲峯에게는 內通하는 것이 되지 않나 하지만 그는 또 그럴 만한 理由가 있었던 것이다.  即 雲峯은 御史가 卞府使의 生日宴에 乞人의 形色을 하고 들어갔을 때 唯獨히 御史에게 同情하여 주었던 것이나 編者는 이 點을 날카로이 感得하여 雲峯의 態度를 有心하게 하는 同時에 또 房子의 입을 막아 〿〿의 綻紫를 防止한다는 一石二鳥식의 手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그後 御史가 南原 三門에 出道를 하였을 때는 그 房子가 저절로 놓여 御史 앞에 뛰어왔으므로 그 勞를 謝하고 南原官奴廳一課所任을 시켜주었다 한다. 그리고 卞府使는 紫色하여 印兵符를 끌러 御史에게 바치니 御史는 도리어 慰勞하여 하는 말이 男兒의 貪花함은 英雄梨 一般일 뿐 아니라 또 春香의 節行이 빛남도 本官의 德澤이니 介念하지말고 앞으로 善治하여 萬人傘을 받으라 하고 封庫罷職은 하지 않았다 하였다. 여기에 또 編者는 李道令의 度量을 힘껏 넓혀 春香의 無雙한 節行에 〿〿〿의 濶〿한 人格을 配{{TagPage|111-1}}合하려 한 것이 보인다.
 
|목차1원문3번= {{TagSpage|111-2}}以上은 主로 本書의 重要한 創案을 들어보았으나 이 外에도 小小한 것을 든다면 李道令이 御史가 되어서 南原으로 오던 途中에 잠깐 졸았는데 非夢似夢間에 "저기 앉은 李相公은 나를 살려 주오" 하는 꿈을 꾸고 春香을 생각하였다던지, 또 御史 出道 後에 春香을 잡아 올리라 하니 南原邑 老少寡婦들이 春香의 白放을 等狀들었다 하는 것 等이 있다. 그러나 本書도 大體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李明善氏 本 完版本에서 많은 影響을 입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첫째 春香을 成參判의 딸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이니, 李道令이 첫날 밤에 春香 母를 찾아서 그 딸과 百年佳約을 請하니 春香母의 말이 "나의 딸 春香이가 常사람이 아니라, 會洞 成參判 令監이 補外로 南凉에 坐定하여 一色 名妓 다 버리고 늙은 나를 守廳케 하시니 모신지 數朔만에 吏曹參判 陞差하여 內職으로 들어갈 때 내게 가자 하셨으나 老父가 계신 이유로 따라가지 못하고 離別한 그 달부터 저것을 밴 줄 짐작하고 緣由로 告目하니 젖줄 뗄 만하게 되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宅 運數 不吉하여 令監이 別世하니 春香을 못 보내고 저만큼 길렀으니, 七歲에 小學 읽혀 修身齊家 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根本이 있는 故로 萬事가 達通이라" 云云한 것과, 御史가 南原 가까이 왔을 때 春香이 獄中에서 非夢似夢間에 李道令을 보니 頭上에는 金冠이요 腰間에는 珮鉞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일 것이고,  李道令이 廣寒樓서 불렀을 때 春香이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는 文句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던지, 御史가 途中에 절에 들렀다 한 것은 李明善氏本의 影響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절 이야기는 李明善氏本과 多少 다름이 있었다. 即 거기는 御史가 절에 들어가니 香丹이가 와서 春香을 爲해 齋를 올리고 있었더라 하였는데, 여기는 그 절 이름을 萬福寺라 하였고 또 그 절인 바는 前에 春香母가 春香을 낳으려고{{TagPage|112-1}}施主하고 精誠드리는 절인데, 御史가 房子를 데리고 그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들이 方今 春香과 李道令을 爲해 佛供 祝願을 하고 있었으므로 御史 感嘆하여 돈 千兩을 내어 施主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全體의 記述上順序로 본다 할지라도 이를 完版本과 比較하여보면 그다지 큰 變動이 없었다. 다만 離別에 있어 李道令이 春香을 그 집으로 찾아 離別을 서러워하고 一旦 官家로 들어갔다가 內行을 뫼시고 가는 길에 五里亭에서 六房下人의 下直을 받고 再次 春香 집으로 가서 離別을 하였으며 거기서 明鏡과 玉指環의 信物을 交換하였다 하였고, 그 다음 離別 後의 春香의 黃陵廟 夢事와 獄窓 櫻桃花落夢事 사이에 春香의 獄中 書簡과 李道令의 御史治行途中에 春香의 편지 받는 것과 房子의 雲峯 禁錮가 있을 따름이다.
 
|목차1원문3번= {{TagSpage|111-2}}以上은 主로 本書의 重要한 創案을 들어보았으나 이 外에도 小小한 것을 든다면 李道令이 御史가 되어서 南原으로 오던 途中에 잠깐 졸았는데 非夢似夢間에 "저기 앉은 李相公은 나를 살려 주오" 하는 꿈을 꾸고 春香을 생각하였다던지, 또 御史 出道 後에 春香을 잡아 올리라 하니 南原邑 老少寡婦들이 春香의 白放을 等狀들었다 하는 것 等이 있다. 그러나 本書도 大體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李明善氏 本 完版本에서 많은 影響을 입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첫째 春香을 成參判의 딸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이니, 李道令이 첫날 밤에 春香 母를 찾아서 그 딸과 百年佳約을 請하니 春香母의 말이 "나의 딸 春香이가 常사람이 아니라, 會洞 成參判 令監이 補外로 南凉에 坐定하여 一色 名妓 다 버리고 늙은 나를 守廳케 하시니 모신지 數朔만에 吏曹參判 陞差하여 內職으로 들어갈 때 내게 가자 하셨으나 老父가 계신 이유로 따라가지 못하고 離別한 그 달부터 저것을 밴 줄 짐작하고 緣由로 告目하니 젖줄 뗄 만하게 되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宅 運數 不吉하여 令監이 別世하니 春香을 못 보내고 저만큼 길렀으니, 七歲에 小學 읽혀 修身齊家 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根本이 있는 故로 萬事가 達通이라" 云云한 것과, 御史가 南原 가까이 왔을 때 春香이 獄中에서 非夢似夢間에 李道令을 보니 頭上에는 金冠이요 腰間에는 珮鉞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일 것이고,  李道令이 廣寒樓서 불렀을 때 春香이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는 文句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던지, 御史가 途中에 절에 들렀다 한 것은 李明善氏本의 影響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절 이야기는 李明善氏本과 多少 다름이 있었다. 即 거기는 御史가 절에 들어가니 香丹이가 와서 春香을 爲해 齋를 올리고 있었더라 하였는데, 여기는 그 절 이름을 萬福寺라 하였고 또 그 절인 바는 前에 春香母가 春香을 낳으려고{{TagPage|112-1}}施主하고 精誠드리는 절인데, 御史가 房子를 데리고 그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들이 方今 春香과 李道令을 爲해 佛供 祝願을 하고 있었으므로 御史 感嘆하여 돈 千兩을 내어 施主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全體의 記述上順序로 본다 할지라도 이를 完版本과 比較하여보면 그다지 큰 變動이 없었다. 다만 離別에 있어 李道令이 春香을 그 집으로 찾아 離別을 서러워하고 一旦 官家로 들어갔다가 內行을 뫼시고 가는 길에 五里亭에서 六房下人의 下直을 받고 再次 春香 집으로 가서 離別을 하였으며 거기서 明鏡과 玉指環의 信物을 交換하였다 하였고, 그 다음 離別 後의 春香의 黃陵廟 夢事와 獄窓 櫻桃花落夢事 사이에 春香의 獄中 書簡과 李道令의 御史治行途中에 春香의 편지 받는 것과 房子의 雲峯 禁錮가 있을 따름이다.
 
|목차1원문4번= {{TagSpage|112-2}}그러나 本書의 플롯 上 前記 兩本의 影響은 받았다 할지라도 또 兩本에서 取捨함이 있었음도 不得已하였으니, 그 取한 바는 벌써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다시 버린 點을 들어 보면 첫째 여기는 完版本의 陵郞廳이라던지 會計나리라던지 其他 서울 急走며 烏鵲橋 下의 漂母公論이 나오지 않고, 또 李明善氏本의 農歌以外의 御史探問이라던가, 御史가 草殯에 울었다던가, 春香이 獄中에서 黃陵廟꿈과 獄窓櫻桃花落꿈 以外에도 다른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것도 亦是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編者는 自由로 完版本과 李明善氏本을 가지고 取捨選擇하여 거기에 다시 編者 自身의 創案을 넣어 編纂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목차1원문4번= {{TagSpage|112-2}}그러나 本書의 플롯 上 前記 兩本의 影響은 받았다 할지라도 또 兩本에서 取捨함이 있었음도 不得已하였으니, 그 取한 바는 벌써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다시 버린 點을 들어 보면 첫째 여기는 完版本의 陵郞廳이라던지 會計나리라던지 其他 서울 急走며 烏鵲橋 下의 漂母公論이 나오지 않고, 또 李明善氏本의 農歌以外의 御史探問이라던가, 御史가 草殯에 울었다던가, 春香이 獄中에서 黃陵廟꿈과 獄窓櫻桃花落꿈 以外에도 다른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것도 亦是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編者는 自由로 完版本과 李明善氏本을 가지고 取捨選擇하여 거기에 다시 編者 自身의 創案을 넣어 編纂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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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이러한 것이 있다. 이 外도 또 萬古烈女日鮮文春香傳(朝鮮圖書株式會社)이라던지 Edward T. Urquart The Fragrance of Spring(時光社)은 다 本書를 底本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前記한 本書의 異本에 對하여 簡單한 說明을 加하고 本項을 마치겠다.
 
</blockquote>이러한 것이 있다. 이 外도 또 萬古烈女日鮮文春香傳(朝鮮圖書株式會社)이라던지 Edward T. Urquart The Fragrance of Spring(時光社)은 다 本書를 底本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前記한 本書의 異本에 對하여 簡單한 說明을 加하고 本項을 마치겠다.
 
|목차1원문8번= {{TagSpage|116-2}}1. 萬古烈女春香傳<br/>本書는 編輯 兼 發行者에 姜義永의 名義로 大正14年 4月 20日에 永昌書館과 韓興書林에서 卷頭에 揷畵를 넣어 發行하였다. 內容은 獄中花를 그대로 改版하여 낸 것이나 다만 獄中花의 諫漢文體를 다시 純諺文體로 고치고 또 分節式을 運續式의 옛날에 還元시켰다. 그럼으로 同版을 가지고 大正 14年 11月 15日에는 德興書林에서 金東縉의 名義로 一名 諺文春香傳이라는 이름을 걸어서 發行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잠긴 春香傳의 書名파 그 著者名義에 對하여 說明하여둘 必要가 있으니 첫째 書店에 對하여는 獄中花 하나가 上記한 바와 같이 別々 이름을 쓰고 나오나, 한 책에 있어서도 또한 表紙에 題名한 書名파 안장의 書名이 닯으며, 안장에도 卷頭에 붙인 蕃名과 또 卷尾에 붙인 書名이 닯은 일이 種種 있다. 이를테면 이 萬古熟女春香傳으로 두고 보더라도 永昌書館本은 안장 卷頭에는 萬古烈女春香傳이라 하여 놓고 卷尾에는 諺文春香傳終이라 하였으며, 또 表紙에는 絶代{{TagPage|117-1}}佳人成春香傳이라 써 있고, 興書林本은 表紙에 萬古烈女春香傳과 諺文春香傳의 두 이름이 쓰여있다. 그리고 著作者名義는 發行所에 따라 各其 닯아 發行書店主가 곧 그 著作者名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書店과 著作者 名義가 닯다 하여 內容이 닯은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書店은 廣告的이요 著作者 名義는 出版의 便宜上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차1원문8번= {{TagSpage|116-2}}1. 萬古烈女春香傳<br/>本書는 編輯 兼 發行者에 姜義永의 名義로 大正14年 4月 20日에 永昌書館과 韓興書林에서 卷頭에 揷畵를 넣어 發行하였다. 內容은 獄中花를 그대로 改版하여 낸 것이나 다만 獄中花의 諫漢文體를 다시 純諺文體로 고치고 또 分節式을 運續式의 옛날에 還元시켰다. 그럼으로 同版을 가지고 大正 14年 11月 15日에는 德興書林에서 金東縉의 名義로 一名 諺文春香傳이라는 이름을 걸어서 發行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잠긴 春香傳의 書名파 그 著者名義에 對하여 說明하여둘 必要가 있으니 첫째 書店에 對하여는 獄中花 하나가 上記한 바와 같이 別々 이름을 쓰고 나오나, 한 책에 있어서도 또한 表紙에 題名한 書名파 안장의 書名이 닯으며, 안장에도 卷頭에 붙인 蕃名과 또 卷尾에 붙인 書名이 닯은 일이 種種 있다. 이를테면 이 萬古熟女春香傳으로 두고 보더라도 永昌書館本은 안장 卷頭에는 萬古烈女春香傳이라 하여 놓고 卷尾에는 諺文春香傳終이라 하였으며, 또 表紙에는 絶代{{TagPage|117-1}}佳人成春香傳이라 써 있고, 興書林本은 表紙에 萬古烈女春香傳과 諺文春香傳의 두 이름이 쓰여있다. 그리고 著作者名義는 發行所에 따라 各其 닯아 發行書店主가 곧 그 著作者名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書店과 著作者 名義가 닯다 하여 內容이 닯은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書店은 廣告的이요 著作者 名義는 出版의 便宜上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차1원문9번= {{TagSpage|117-2}}2. 獄中絶代佳人<br/>이것도 表紙에는 絶代佳人 或은 鮮漢文春香傳이라는 書名을 가지고 있으나 亦是 永昌書館과 韓興書林에서 大正 14年 10月 10日에 姜義永의 名義로 券頭에 揷畵를 넣어 發行한 것인데, 本書는 純諺文體를 썼으나 漢文 文句에는 그 옆에 漢字를 註記하였다. 內容은 勿論 獄中花 그대로인데 다만 劈頭에 獄中花의<ci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cite> 云云을  <blockquote no="XX">「世上萬物 점지할제 絶代佳人 없을소냐, 絶代佳人 생겨날제 烈女忠臣 없을소냐 烈女忠臣 생겨날제 江山精氣 타고 난다. 湖南左道 南原府는……」</blockquote>으로 고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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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9번= {{TagSpage|117-2}}2. 獄中絶代佳人<br/>이것도 表紙에는 絶代佳人 或은 鮮漢文春香傳이라는 書名을 가지고 있으나 亦是 永昌書館과 韓興書林에서 大正 14年 10月 10日에 姜義永의 名義로 券頭에 揷畵를 넣어 發行한 것인데, 本書는 純諺文體를 썼으나 漢文 文句에는 그 옆에 漢字를 註記하였다. 內容은 勿論 獄中花 그대로인데 다만 劈頭에 獄中花의<ci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cite> 云云을  <blockquote no="XX">「世上萬物 점지할제 絶代佳人 없을소냐, 絶代佳人 생겨날제 烈女忠臣 없을소냐 烈女忠臣 생겨날제 江山精氣 타고 난다. 湖南左道 南原府는⋯⋯」</blockquote>으로 고쳤을 뿐이다.
 
|목차1원문10번= {{TagSpage|117-3}}3. 古代小說諺文春香傳<br/> 本書도 表紙에는 春香傳이라 하였는데 大正 14年 10月 30日에 滙東書舘에서 高裕相의 名義로 發行하였다. 古代小說이라 하고 또 題目을 諺文春香傳이라 이른 만큼 純諺文으로 古代小說 體裁의 그대로를 썼다.
 
|목차1원문10번= {{TagSpage|117-3}}3. 古代小說諺文春香傳<br/> 本書도 表紙에는 春香傳이라 하였는데 大正 14年 10月 30日에 滙東書舘에서 高裕相의 名義로 發行하였다. 古代小說이라 하고 또 題目을 諺文春香傳이라 이른 만큼 純諺文으로 古代小說 體裁의 그대로를 썼다.
 
|목차1원문11번= {{TagSpage|117-4}}4. 懷中春香傳<br/> {{TagPage|118-1}}表紙에는 春香傳 또 小春香歌라 하였으니 卷尾에는 正直하게 獄中花終이라 하였다. 大正 15年 2月 27日에 廣韓書林에서 金天熙의 名義로 發行하였는데 體裁는 純諺文體의 懷中用本에 되어 있다.
 
|목차1원문11번= {{TagSpage|117-4}}4. 懷中春香傳<br/> {{TagPage|118-1}}表紙에는 春香傳 또 小春香歌라 하였으니 卷尾에는 正直하게 獄中花終이라 하였다. 大正 15年 2月 27日에 廣韓書林에서 金天熙의 名義로 發行하였는데 體裁는 純諺文體의 懷中用本에 되어 있다.
|목차1원문12번= {{TagSpage|118-2}}5. 萬古烈女特別無雙春香傳<br/>本書는 一名 鮮漢文春香傳 或은 萬古烈女特別無雙新春香傳이라 하야 昭和 10年 12月 25日에 姜義永의 名義로 永昌書館, 韓興書林에서 發行하였다. 卷頭에는 새로운 揷畵 數枚를 붙이고 本文 劈頭의 <ci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cite>云云을  <blockquote no="XX">「芳草花柳 좋은 때라 晋處士의 五柳門은 초록장을 드리운 듯 이리로 펄펄 저리로 펄펄 꾀꼬롱 꾀꼬롱하는 꾀꼬리는 제 벗을 불러내고 이편으로 너훌 너훌 저편으로 너훌 너홀, 쌍쌍이 춤을 추는 범나비는 興을 계워 노닐더라」</blockquote>로 고쳐서 <cite no="XX">「全羅左道南原府는……」</cite>에 붙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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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12번= {{TagSpage|118-2}}5. 萬古烈女特別無雙春香傳<br/>本書는 一名 鮮漢文春香傳 或은 萬古烈女特別無雙新春香傳이라 하야 昭和 10年 12月 25日에 姜義永의 名義로 永昌書館, 韓興書林에서 發行하였다. 卷頭에는 새로운 揷畵 數枚를 붙이고 本文 劈頭의 <ci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cite>云云을  <blockquote no="XX">「芳草花柳 좋은 때라 晋處士의 五柳門은 초록장을 드리운 듯 이리로 펄펄 저리로 펄펄 꾀꼬롱 꾀꼬롱하는 꾀꼬리는 제 벗을 불러내고 이편으로 너훌 너훌 저편으로 너훌 너홀, 쌍쌍이 춤을 추는 범나비는 興을 계워 노닐더라」</blockquote>로 고쳐서 <cite no="XX">「全羅左道南原府는⋯⋯」</cite>에 붙였을 뿐이다.
  
 
|목차1해독문1번= 춘향전 이본을 대강 3기로서 나누어 본다면 경판춘향전에서 완판춘향전까지가 제1기, 완판춘향전에서 옥중화까지가 제2기, 옥중화이후가 제3기가 될 것인데 본서는 이해조의 편저로 대정 원년 8월 27일에 보급서관에서 그 초판이 발행되었다. 이해조라 하면 지금은 작고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새로운 바와 같이 이인직과 아울러 근대 신소설 시대의 대가로서 빈상설, 구의산, 소양정 기타의 작품이 있고, 또 일시는 매일신보사 기자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소설계에 활동할 시대는 세태가 시각으로 변하여 문학을 즐기고 문학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전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춘향전을 다시 복활시켰고 또 어느 정도까지 일로서 현대문학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홀로 춘향전의 이본으로서 그 광채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실로 과도기에 있는 조선소설로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 할 것인데 이후의 춘향전의 이본이라 한다면 거의 그 영향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정도까지 이의 번안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목차1해독문1번= 춘향전 이본을 대강 3기로서 나누어 본다면 경판춘향전에서 완판춘향전까지가 제1기, 완판춘향전에서 옥중화까지가 제2기, 옥중화이후가 제3기가 될 것인데 본서는 이해조의 편저로 대정 원년 8월 27일에 보급서관에서 그 초판이 발행되었다. 이해조라 하면 지금은 작고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새로운 바와 같이 이인직과 아울러 근대 신소설 시대의 대가로서 빈상설, 구의산, 소양정 기타의 작품이 있고, 또 일시는 매일신보사 기자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소설계에 활동할 시대는 세태가 시각으로 변하여 문학을 즐기고 문학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전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춘향전을 다시 복활시켰고 또 어느 정도까지 일로서 현대문학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홀로 춘향전의 이본으로서 그 광채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실로 과도기에 있는 조선소설로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 할 것인데 이후의 춘향전의 이본이라 한다면 거의 그 영향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정도까지 이의 번안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목차1해독문2번= 이렇게 말하면 벌서 대강 짐작이 될 바와 같이 본서는 단단히 종래의 춘향전에 대개찬을 꾀하였고 또 가급적 현대 생활의 감정을 넣어보려 애썼으니 이하 본서의 이 점에 대하여 대강 들어 보면, 첫째 그 형식에 있어 종래의 연속식올 분절식으로 고치고, 또 순언문체룔 언한문체로 써서 이 대신 한문자에는 일일이 그 옆에 언문으로 음역하였기 때문에 독서에 많은 편의를 주었으며, 다음 그 내용에 이르면 우선 벽두에 무슨 대왕 연간에 운운으로 시작하던 고대소설의 전형을 타파하고 벽두에  <blockquo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苧羅山下 若耶溪에 西施가 鍾出하고, …... 湖南左道南原府는 東으로 智異山, 西으로 赤城江, 山水精神 어리여서 春香이가 삼겨 있다</blockquote>이렇게 시작하였다.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할지 모르지만 춘향전으로 보아서는 대담한 파격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여기에 춘향전은 고대 소설에서 다시 신소설로 화장을 고처하고 세상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춘향에 대하여는 완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그를 여염집 처녀로 신장한 것은 물론이지만 춘향 모 월매와 성참판과의 관계 운운은 훨씬 뒤에 가서 춘향 모가 이도령에게 설명하는 말로 들리고, 처음에는 춘향 모의 태몽에 어떤 선녀 이화 도화 두 가지를 양손에 갈라쥐고 하늘로 나와서 도화를 내어주며 <cite no="XX">"이꽃을 잘 갖구어 李花接을 부쳤으면 오는 行樂 좋으리라. 李花 갖다 傳할 곳이 時刻이 急하기로 忽忽히 떠나노라"</cite>하였다 하여, 춘향과 이도령이 동시 16세의 동갑으로 만난 그 인연을 선천적으로 여기에 맺어 두고, 이도령이 광한루에 와서 춘향을 불렀을 때는 이명선씨 본과 같이 춘향은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말을 부갈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이도령이 그날 밤에 춘향 집을 찾았을 때는 완판본에 방자가 뒤쫓아 춘향 집으로 가서 춘향을 부를 때 춘향 모가 꿈이야기를 하듯이 마침 춘향 모가 춘향 방에와서 <cite no="XX">"너자는 枕上에서 彩雲이 일어나며 靑龍이 너를 물고 하날로 오르기로 龍의 허리를 안고 이리 궁굴 저리 궁굴하다가 깨였다"</cite>운운의 꿈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럴 때에 이도령이 밖에서 부르니 춘향 모가 깜짝 놀라 맞아들이었으나 여기도 이도령은 춘향을 예로써 맞이한 듯이 하여 춘향 모에게 그 딸의 허혼을 청하였고, 춘향은 그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이도령에게 일신을 바쳤는데, 사랑 끝에 이별이 되는 데는 이도령이 별로 그 모친에게 춘향 일을 삷다가 꾸중을 들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후 사도와 그 부인은 벌써 그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는 듯하여 떠날 때에는 춘향을 불러보려고까지 하다가 도령의 장습도 될 것 같고 하인 소시에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춘향 모녀에게 돈과 백미와 필목과 기타 패물을 후히 주어 위로하고 또 후일 도령님이 급제하면 장차 데려간다고도 일러주었다 하였다. 또 변부사는 이부사가 상경 후에 곧 온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다른 부사가 이부사의 뒤를 이어 왔다가 1년 만에 갈려 간 후에 도임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마 춘향으로 하여금 이도령을 사모하고 수절하는 시간적 여유를 주어,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절대로 그 절개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더 힘있게 말하고자 한 데에서 고안된 듯하나, 사실 종래의 이본은 이부사가 갈려간 후 곧 변부사가 도임하여 왔기 때문에 춘향의 절개에는 얼마쯤 손이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변부사의 우력에도 굴하지 않았다니까 물론 그를 의심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 이별한 곧 그다음이니까 하는 핸드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서와 같이 하여 두고 보면 춘향의 절개에는 아무 의심을 개입할 틈을 두지 않는다. 가히 편자의 조밀한 두뇌를 볼 것이나 이러한 점은 또 이 밖에도 있었다. 이것은 먼저 별춘향전에서도 그랬지만 춘향의 옥중서간인데 여기는 사령이 나와서 춘향에게 서울로 편지나 하여보라 권하고 춘향도 옳게 여겨 편지를 써서 부치는데 역시 전일 도령님을 뫼시고 다니던 방자를 불러 보냈다 하였다. 그리하여 어사가 도중에서 방자를 만나 그 편지를 받을 것이나, 어사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분하여 불의에 그놈을 단박에 삼문출도를 하여 봉고를 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방자에게 눈치를 보여 버렸다. 그런데 별탈향전은 이때 별로 방자에게 그런 눈치를 보였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그 방자에게 자기가 남원에 가기 전에는 아무 말을 내지 마라 당부하고 보냈지만 여기서는 방자에게 어사라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그 뒤 수습을 적당히 하지 않을 수 없어 그 방자를 운봉으로 보내는데, 방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주고 그것을 갖다 운봉관가에 드리고 주는 것이 있거든 받아가지고 오라 한다. 그러나 편지 내용은 그 놈이 가거든 잡아 가두어 두라 하였기 때문에 방자는 거기 가서 그만 금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비록 房子의 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운봉에게는 내통하는 것이 되지않나 하지만 그는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즉 운봉은 어사가 변부사의 생일연에 걸인의 형색을 하고 들어갔을 때 유독히 어사에게 동정하여 주었던 것이나 편자는 이 점을 날카로이 감득하여 운봉의 태도를 유심하게 하는 동시에 또 방자의 입을 막아 〿〿의 탄자를 방지한다는 일석이조식의 수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그 후 어사가 남원 삼문에 출도를 하였을 때는 그 방자가 저절로 노여 어사 앞에 뛰어왔으므로 그 노를 사하고 남원관노청일과소임을 시켜주었다 한다. 그리고 변부사는 자색하여 인병부를 끌러 어사에게 바치니 어사는 도리어 위로하여 하는 말이 남아의 탐화함은 영웅리 일반일 뿐 아니라 또 춘향의 절행이 빛남도 본관의 덕택이니 개념하지 말고 앞으로 선치하여 만인산을 받으라 하고 봉고파직은 하지 않았다 하였다. 여기에 또 편자는 이도령의 도량을 힘껏 넓히여 춘향의 무쌍한 절행에 〿〿〿의 활〿한 인격을 배합하려 한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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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2번= 이렇게 말하면 벌서 대강 짐작이 될 바와 같이 본서는 단단히 종래의 춘향전에 대개찬을 꾀하였고 또 가급적 현대 생활의 감정을 넣어보려 애썼으니 이하 본서의 이 점에 대하여 대강 들어 보면, 첫째 그 형식에 있어 종래의 연속식올 분절식으로 고치고, 또 순언문체룔 언한문체로 써서 이 대신 한문자에는 일일이 그 옆에 언문으로 음역하였기 때문에 독서에 많은 편의를 주었으며, 다음 그 내용에 이르면 우선 벽두에 무슨 대왕 연간에 운운으로 시작하던 고대소설의 전형을 타파하고 벽두에  <blockquo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苧羅山下 若耶溪에 西施가 鍾出하고, ⋯⋯ 湖南左道南原府는 東으로 智異山, 西으로 赤城江, 山水精神 어리여서 春香이가 삼겨 있다</blockquote>이렇게 시작하였다.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할지 모르지만 춘향전으로 보아서는 대담한 파격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여기에 춘향전은 고대 소설에서 다시 신소설로 화장을 고처하고 세상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춘향에 대하여는 완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그를 여염집 처녀로 신장한 것은 물론이지만 춘향 모 월매와 성참판과의 관계 운운은 훨씬 뒤에 가서 춘향 모가 이도령에게 설명하는 말로 들리고, 처음에는 춘향 모의 태몽에 어떤 선녀 이화 도화 두 가지를 양손에 갈라쥐고 하늘로 나와서 도화를 내어주며 <cite no="XX">"이꽃을 잘 갖구어 李花接을 부쳤으면 오는 行樂 좋으리라. 李花 갖다 傳할 곳이 時刻이 急하기로 忽忽히 떠나노라"</cite>하였다 하여, 춘향과 이도령이 동시 16세의 동갑으로 만난 그 인연을 선천적으로 여기에 맺어 두고, 이도령이 광한루에 와서 춘향을 불렀을 때는 이명선씨 본과 같이 춘향은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말을 부갈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이도령이 그날 밤에 춘향 집을 찾았을 때는 완판본에 방자가 뒤쫓아 춘향 집으로 가서 춘향을 부를 때 춘향 모가 꿈이야기를 하듯이 마침 춘향 모가 춘향 방에와서 <cite no="XX">"너자는 枕上에서 彩雲이 일어나며 靑龍이 너를 물고 하날로 오르기로 龍의 허리를 안고 이리 궁굴 저리 궁굴하다가 깨였다"</cite>운운의 꿈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럴 때에 이도령이 밖에서 부르니 춘향 모가 깜짝 놀라 맞아들이었으나 여기도 이도령은 춘향을 예로써 맞이한 듯이 하여 춘향 모에게 그 딸의 허혼을 청하였고, 춘향은 그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이도령에게 일신을 바쳤는데, 사랑 끝에 이별이 되는 데는 이도령이 별로 그 모친에게 춘향 일을 삷다가 꾸중을 들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후 사도와 그 부인은 벌써 그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는 듯하여 떠날 때에는 춘향을 불러보려고까지 하다가 도령의 장습도 될 것 같고 하인 소시에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춘향 모녀에게 돈과 백미와 필목과 기타 패물을 후히 주어 위로하고 또 후일 도령님이 급제하면 장차 데려간다고도 일러주었다 하였다. 또 변부사는 이부사가 상경 후에 곧 온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다른 부사가 이부사의 뒤를 이어 왔다가 1년 만에 갈려 간 후에 도임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마 춘향으로 하여금 이도령을 사모하고 수절하는 시간적 여유를 주어,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절대로 그 절개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더 힘있게 말하고자 한 데에서 고안된 듯하나, 사실 종래의 이본은 이부사가 갈려간 후 곧 변부사가 도임하여 왔기 때문에 춘향의 절개에는 얼마쯤 손이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변부사의 우력에도 굴하지 않았다니까 물론 그를 의심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 이별한 곧 그다음이니까 하는 핸드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서와 같이 하여 두고 보면 춘향의 절개에는 아무 의심을 개입할 틈을 두지 않는다. 가히 편자의 조밀한 두뇌를 볼 것이나 이러한 점은 또 이 밖에도 있었다. 이것은 먼저 별춘향전에서도 그랬지만 춘향의 옥중서간인데 여기는 사령이 나와서 춘향에게 서울로 편지나 하여보라 권하고 춘향도 옳게 여겨 편지를 써서 부치는데 역시 전일 도령님을 뫼시고 다니던 방자를 불러 보냈다 하였다. 그리하여 어사가 도중에서 방자를 만나 그 편지를 받을 것이나, 어사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분하여 불의에 그놈을 단박에 삼문출도를 하여 봉고를 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방자에게 눈치를 보여 버렸다. 그런데 별탈향전은 이때 별로 방자에게 그런 눈치를 보였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그 방자에게 자기가 남원에 가기 전에는 아무 말을 내지 마라 당부하고 보냈지만 여기서는 방자에게 어사라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그 뒤 수습을 적당히 하지 않을 수 없어 그 방자를 운봉으로 보내는데, 방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주고 그것을 갖다 운봉관가에 드리고 주는 것이 있거든 받아가지고 오라 한다. 그러나 편지 내용은 그 놈이 가거든 잡아 가두어 두라 하였기 때문에 방자는 거기 가서 그만 금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비록 房子의 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운봉에게는 내통하는 것이 되지않나 하지만 그는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즉 운봉은 어사가 변부사의 생일연에 걸인의 형색을 하고 들어갔을 때 유독히 어사에게 동정하여 주었던 것이나 편자는 이 점을 날카로이 감득하여 운봉의 태도를 유심하게 하는 동시에 또 방자의 입을 막아 〿〿의 탄자를 방지한다는 일석이조식의 수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그 후 어사가 남원 삼문에 출도를 하였을 때는 그 방자가 저절로 노여 어사 앞에 뛰어왔으므로 그 노를 사하고 남원관노청일과소임을 시켜주었다 한다. 그리고 변부사는 자색하여 인병부를 끌러 어사에게 바치니 어사는 도리어 위로하여 하는 말이 남아의 탐화함은 영웅리 일반일 뿐 아니라 또 춘향의 절행이 빛남도 본관의 덕택이니 개념하지 말고 앞으로 선치하여 만인산을 받으라 하고 봉고파직은 하지 않았다 하였다. 여기에 또 편자는 이도령의 도량을 힘껏 넓히여 춘향의 무쌍한 절행에 〿〿〿의 활〿한 인격을 배합하려 한 것이 보인다.
 
|목차1해독문3번= 이상은 주로 본서의 중요한 창안을 들어보았으나 이 외에도 소소한 것을 든다면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서 남원으로 오던 도중에 잠깐 졸았는데 비몽사몽간에 "저기 앉은 이상공은 나를 살려 주오" 하는 꿈을 꾸고 춘향을 생각하였다던지, 또 어사 출도 후에 춘향을 잡아 올리라 하니 남원읍 노소과부들이 춘향의 백방을 등상들었다 하는 것 등이 있다. 그러나 본서도 대체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명선씨 본 완판본에서 많은 영향을 입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첫째 춘향을 성참판의 딸이라 한 것은 분명히 완판본의 영향이니, 이도령이 첫날 밤에 춘향 모를 찾아서 그 딸과 백년가약을 청하니 춘향 모의 말이 <cite no="XX">"나의 딸 춘향이가 상사람이 아니라, 회동 성참판 영감이 보외로 남양에 좌정하여 일색 명기 다 버리고 늙은 나를 수청케 하시니 모신지 수삭만에 이조참판 승차하여 내직으로 들어갈 때 내게 가자 하셨으나 노부가 계신 이유로 따라가지 못하고 이별한 그 달부터 저것을 밴 줄 짐작하고 연유로 고목하니 젖줄 뗄 만하게 되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댁 운수 불길하여 영감이 별세하니 춘향을 못 보내고 저만큼 길렀으니, 칠세에 소학 읽혀 수신제가 화순심을 낱낱이 가르치니 근본이 있는 고로 만사가 달통이라"</cite>운운한 것과, 어사가 남원 가까이 왔을 때 춘향이 옥중에서 비몽사몽간에 이도령을 보니 두상에는 김관이요 요간에는 패월이라 한 것은 분명히 완판본의 영향일 것이고, 이도령이 광한루서 불렀을 때 춘향이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문구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던지, 어사가 도중에 절에 들렀다 한 것은 이명선씨본의 영향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절 이야기는 이명선씨본과 다소 다름이 있었다. 즉 거기는 어사가 절에 들어가니 향단이가 와서 춘향을 위해 재를 올리고 있었더라 하였는데, 여기는 그 절 이름을 만복사라 하였고 또 그 절인 바는 전에 춘향 모가 춘향을 낳으려고 시주하고 정성드리는 절인데, 어사가 방자를 데리고 그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들이 방금 춘향과 이도령을 위해 불공 축원을 하고 있었으므로 어사 감탄하여 돈 천냥을 내어 시주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체의 기술상순서로 본다 할지라도 이를 완판본과 비교하여보면 그다지 큰 변동이 없었다. 다만 이별에 있어 이도령이 춘향을 그 집으로 찾아 이별을 서러워하고 일단 관가로 들어갔다가 내행을 뫼시고 가는 길에 오리정에서 육방하인의 하직을 받고 재차 춘향 집으로 가서 이별을 하였으며 거기서 명경과 옥지환의 신물을 교환하였다 하였고, 그 다음 이별 후의 춘향의 황릉묘 몽사와 옥창 앵도화락몽사 사이에 춘향의 옥중 서간과 이도령의 어사치행도중에 춘향의 편지 받는 것과 방자의 운봉 금고가 있을 따름이다.
 
|목차1해독문3번= 이상은 주로 본서의 중요한 창안을 들어보았으나 이 외에도 소소한 것을 든다면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서 남원으로 오던 도중에 잠깐 졸았는데 비몽사몽간에 "저기 앉은 이상공은 나를 살려 주오" 하는 꿈을 꾸고 춘향을 생각하였다던지, 또 어사 출도 후에 춘향을 잡아 올리라 하니 남원읍 노소과부들이 춘향의 백방을 등상들었다 하는 것 등이 있다. 그러나 본서도 대체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명선씨 본 완판본에서 많은 영향을 입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첫째 춘향을 성참판의 딸이라 한 것은 분명히 완판본의 영향이니, 이도령이 첫날 밤에 춘향 모를 찾아서 그 딸과 백년가약을 청하니 춘향 모의 말이 <cite no="XX">"나의 딸 춘향이가 상사람이 아니라, 회동 성참판 영감이 보외로 남양에 좌정하여 일색 명기 다 버리고 늙은 나를 수청케 하시니 모신지 수삭만에 이조참판 승차하여 내직으로 들어갈 때 내게 가자 하셨으나 노부가 계신 이유로 따라가지 못하고 이별한 그 달부터 저것을 밴 줄 짐작하고 연유로 고목하니 젖줄 뗄 만하게 되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댁 운수 불길하여 영감이 별세하니 춘향을 못 보내고 저만큼 길렀으니, 칠세에 소학 읽혀 수신제가 화순심을 낱낱이 가르치니 근본이 있는 고로 만사가 달통이라"</cite>운운한 것과, 어사가 남원 가까이 왔을 때 춘향이 옥중에서 비몽사몽간에 이도령을 보니 두상에는 김관이요 요간에는 패월이라 한 것은 분명히 완판본의 영향일 것이고, 이도령이 광한루서 불렀을 때 춘향이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문구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던지, 어사가 도중에 절에 들렀다 한 것은 이명선씨본의 영향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절 이야기는 이명선씨본과 다소 다름이 있었다. 즉 거기는 어사가 절에 들어가니 향단이가 와서 춘향을 위해 재를 올리고 있었더라 하였는데, 여기는 그 절 이름을 만복사라 하였고 또 그 절인 바는 전에 춘향 모가 춘향을 낳으려고 시주하고 정성드리는 절인데, 어사가 방자를 데리고 그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들이 방금 춘향과 이도령을 위해 불공 축원을 하고 있었으므로 어사 감탄하여 돈 천냥을 내어 시주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체의 기술상순서로 본다 할지라도 이를 완판본과 비교하여보면 그다지 큰 변동이 없었다. 다만 이별에 있어 이도령이 춘향을 그 집으로 찾아 이별을 서러워하고 일단 관가로 들어갔다가 내행을 뫼시고 가는 길에 오리정에서 육방하인의 하직을 받고 재차 춘향 집으로 가서 이별을 하였으며 거기서 명경과 옥지환의 신물을 교환하였다 하였고, 그 다음 이별 후의 춘향의 황릉묘 몽사와 옥창 앵도화락몽사 사이에 춘향의 옥중 서간과 이도령의 어사치행도중에 춘향의 편지 받는 것과 방자의 운봉 금고가 있을 따름이다.
 
|목차1해독문4번= 그러나 본서의 플롯 상 전기 양본의 영향은 받았다 할지라도 또 양본에서 취사함이 있었음도 부득이하였으니, 그 취한 바는 벌써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다시 버린 점을 들어 보면 첫째 여기는 완판본의 능랑청이라던지 회계나리라던지 기타 서울 급주며 오작교 하의 표모공론이 나오지 않고, 또 이명선씨본의 농가이외의 어사탐문이라던가, 어사가 초빈에 울었다던가, 춘향이 옥중에서 황릉묘꿈과 옥창앵도화락꿈 이외에도 다른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것도 역시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편자는 자유로 완판본과 이명선씨본을 가지고 취사선택하여 거기에 다시 편자 자신의 창안을 넣어 편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목차1해독문4번= 그러나 본서의 플롯 상 전기 양본의 영향은 받았다 할지라도 또 양본에서 취사함이 있었음도 부득이하였으니, 그 취한 바는 벌써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다시 버린 점을 들어 보면 첫째 여기는 완판본의 능랑청이라던지 회계나리라던지 기타 서울 급주며 오작교 하의 표모공론이 나오지 않고, 또 이명선씨본의 농가이외의 어사탐문이라던가, 어사가 초빈에 울었다던가, 춘향이 옥중에서 황릉묘꿈과 옥창앵도화락꿈 이외에도 다른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것도 역시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편자는 자유로 완판본과 이명선씨본을 가지고 취사선택하여 거기에 다시 편자 자신의 창안을 넣어 편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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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7번= 요컨대 본서는 이상 누누이 설래하여 온 바와 같이 형식 내용 어느 방면으로나 종래의 춘향전에 대폭적 개찬을 하여 편자는 이것을 현대 춘향전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춘향전 문학으로 보아 일대 획기적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여기에 춘향전은 현대인에게 재인식되어 본서는 일반 소설독서층에 그야말로 열광적 환영을 받았다. 여기 따라 대정 14년경 이후로는 또 본서의 이본이 경성 각 서사에서 쏟아져 나왔으니, 먼저 그 서명과 발행소만을 적어보면 이러한 것이 있다. 이 외도 또 만고열녀일선문춘향전(조선도서주식회사) 이라던지 Edward T. Urquart The Fragrance of Spring(시광사)은 다 본서를 저본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전기한 본서의 이본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가하고 본항을 마치겠다.
 
|목차1해독문7번= 요컨대 본서는 이상 누누이 설래하여 온 바와 같이 형식 내용 어느 방면으로나 종래의 춘향전에 대폭적 개찬을 하여 편자는 이것을 현대 춘향전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춘향전 문학으로 보아 일대 획기적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여기에 춘향전은 현대인에게 재인식되어 본서는 일반 소설독서층에 그야말로 열광적 환영을 받았다. 여기 따라 대정 14년경 이후로는 또 본서의 이본이 경성 각 서사에서 쏟아져 나왔으니, 먼저 그 서명과 발행소만을 적어보면 이러한 것이 있다. 이 외도 또 만고열녀일선문춘향전(조선도서주식회사) 이라던지 Edward T. Urquart The Fragrance of Spring(시광사)은 다 본서를 저본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전기한 본서의 이본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가하고 본항을 마치겠다.
 
|목차1해독문8번= 1. 만고열녀춘향전<br/>본서는 편집 겸 발행자에 강의영의 명의로 대정14年 4월 20일에 영창서관과 한흥서림에서 권두에 삽화를 넣어 발행하였다. 내용은 옥중화를 그대로 개판하여 낸 것이나 다만 옥중화의 간한문체를 다시 순언문체로 고치고 또 분절식을 운속식의 옛날에 환원시켰다. 그럼으로 동판을 가지고 대정 14년 11월 15일에는 덕흥서림에서 김동진의 명의로 일명 언문춘향전이라는 이름을 걸어서 발행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잠긴 춘향전의 서명파 그 저자명의에 대하여 설명하여둘 필요가 있으니 첫째 서점에 대하여는 옥중화 하나가 상기한 바와 같이 별별 이름을 쓰고 나오나, 한 책에 있어서도 또한 표지에 제명한 서명파 안장의 서명이 닯으며(다르며), 안장에도 권두에 붙인 번명과 또 권미에 붙인 서명이 다른 일이 종종 있다. 이를테면 이 만고숙녀춘향전으로 두고 보더라도 영창서관본은 안장 권두에는 만고열녀춘향전이라 하여 놓고 권미에는 언문춘향전종이라 하였으며, 또 표지에는 절대 가인성춘향전이라 써 있고, 흥서림본은 표지에 만고열녀춘향전과 언문춘향전의 두 이름이 쓰여있다. 그리고 저작자명의는 발행소에 따라 각기 달라 발행서점주가 곧 그 저작자명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서점과 저작자 명의가 다르다 하여 내용이 다르다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서점은 광고적이요 저작자 명의는 출판의 편의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차1해독문8번= 1. 만고열녀춘향전<br/>본서는 편집 겸 발행자에 강의영의 명의로 대정14年 4월 20일에 영창서관과 한흥서림에서 권두에 삽화를 넣어 발행하였다. 내용은 옥중화를 그대로 개판하여 낸 것이나 다만 옥중화의 간한문체를 다시 순언문체로 고치고 또 분절식을 운속식의 옛날에 환원시켰다. 그럼으로 동판을 가지고 대정 14년 11월 15일에는 덕흥서림에서 김동진의 명의로 일명 언문춘향전이라는 이름을 걸어서 발행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잠긴 춘향전의 서명파 그 저자명의에 대하여 설명하여둘 필요가 있으니 첫째 서점에 대하여는 옥중화 하나가 상기한 바와 같이 별별 이름을 쓰고 나오나, 한 책에 있어서도 또한 표지에 제명한 서명파 안장의 서명이 닯으며(다르며), 안장에도 권두에 붙인 번명과 또 권미에 붙인 서명이 다른 일이 종종 있다. 이를테면 이 만고숙녀춘향전으로 두고 보더라도 영창서관본은 안장 권두에는 만고열녀춘향전이라 하여 놓고 권미에는 언문춘향전종이라 하였으며, 또 표지에는 절대 가인성춘향전이라 써 있고, 흥서림본은 표지에 만고열녀춘향전과 언문춘향전의 두 이름이 쓰여있다. 그리고 저작자명의는 발행소에 따라 각기 달라 발행서점주가 곧 그 저작자명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서점과 저작자 명의가 다르다 하여 내용이 다르다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서점은 광고적이요 저작자 명의는 출판의 편의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차1해독문9번= 2. 옥중절대가인<br/>이것도 표지에는 절대가인 혹은 선한문춘향전이라는 서명을 가지고 있으나 역시 영창서관과 한흥서림에서 대정 14년 10월 10일에 강의영의 명의로 권두에 삽화를 넣어 발행한 것인데, 본서는 순언문체를 썼으나 한문 문구에는 그 옆에 한자를 주기하였다. 내용은 물론 옥중화 그대로인데 다만 벽두에 옥중화의 <ci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cite> 운운을  <blockquote no="XX">"世上萬物 점지할제 絶代佳人 없을소냐, 絶代佳人 생겨날제 烈女忠臣 없을소냐 烈女忠臣 생겨날제 江山精氣 타고 난다. 湖南左道 南原府는……"</blockquote>으로 고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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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9번= 2. 옥중절대가인<br/>이것도 표지에는 절대가인 혹은 선한문춘향전이라는 서명을 가지고 있으나 역시 영창서관과 한흥서림에서 대정 14년 10월 10일에 강의영의 명의로 권두에 삽화를 넣어 발행한 것인데, 본서는 순언문체를 썼으나 한문 문구에는 그 옆에 한자를 주기하였다. 내용은 물론 옥중화 그대로인데 다만 벽두에 옥중화의 <cite no="XX">"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cite> 운운을  <blockquote no="XX">"世上萬物 점지할제 絶代佳人 없을소냐, 絶代佳人 생겨날제 烈女忠臣 없을소냐 烈女忠臣 생겨날제 江山精氣 타고 난다. 湖南左道 南原府는⋯⋯"</blockquote>으로 고쳤을 뿐이다.
 
|목차1해독문10번= 3. 고대소설언문춘향전<br/>본서도 표지에는 춘향전이라 하였는데 대정 14년 10월 30일에 회동서관에서 고유상의 명의로 발행하였다. 고대소설이라 하고 또 제목을 언문춘향전이라 이른 만큼 순언문으로 고대소설 체재의 그대로를 썼다.
 
|목차1해독문10번= 3. 고대소설언문춘향전<br/>본서도 표지에는 춘향전이라 하였는데 대정 14년 10월 30일에 회동서관에서 고유상의 명의로 발행하였다. 고대소설이라 하고 또 제목을 언문춘향전이라 이른 만큼 순언문으로 고대소설 체재의 그대로를 썼다.
 
|목차1해독문11번= 4. 회중춘향전<br/>표지에는 춘향전 또 소춘향가라 하였으니 권미에는 정직하게 옥중화종이라 하였다. 대정 15년 2월 27일에 광한서림에서 김천희의 명의로 발행하였는데 체재는 순언문체의 회중용본에 되어 있다.
 
|목차1해독문11번= 4. 회중춘향전<br/>표지에는 춘향전 또 소춘향가라 하였으니 권미에는 정직하게 옥중화종이라 하였다. 대정 15년 2월 27일에 광한서림에서 김천희의 명의로 발행하였는데 체재는 순언문체의 회중용본에 되어 있다.
|목차1해독문12번= 5. 만고열녀특별무쌍춘향전 <br/>본서는 일명 선한문춘향전 혹은 만고렬녀특별무쌍신춘향전이라 하야 소화 10년 12월 25일에 강의영의 명의로 영창서관, 한흥서림에서 발행하였다. 권두에는 새로운 삽화 수매를 붙이고 본문 벽두의 <cite no="XX">"절대가인 삼겨날제 강산정기 타서 난다……"</cite> 운운을  <blockquote no="XX">"방초화류 좋은 때라 진처사의 오류문은 초록장을 드리운 듯 이리로 펄펄 저리로 펄펄 꾀꼬롱 꾀꼬롱하는 꾀꼬리는 제 벗을 불러내고 이편으로 너훌 너훌 저편으로 너훌 너홀, 쌍쌍이 춤을 추는 범나비는 흥을 계워 노닐더라"</blockquote>로 고쳐서 <cite no="XX">"전라좌도남원부는……"</cite>에 붙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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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12번= 5. 만고열녀특별무쌍춘향전 <br/>본서는 일명 선한문춘향전 혹은 만고렬녀특별무쌍신춘향전이라 하야 소화 10년 12월 25일에 강의영의 명의로 영창서관, 한흥서림에서 발행하였다. 권두에는 새로운 삽화 수매를 붙이고 본문 벽두의 <cite no="XX">"절대가인 삼겨날제 강산정기 타서 난다⋯⋯"</cite> 운운을  <blockquote no="XX">"방초화류 좋은 때라 진처사의 오류문은 초록장을 드리운 듯 이리로 펄펄 저리로 펄펄 꾀꼬롱 꾀꼬롱하는 꾀꼬리는 제 벗을 불러내고 이편으로 너훌 너훌 저편으로 너훌 너홀, 쌍쌍이 춤을 추는 범나비는 흥을 계워 노닐더라"</blockquote>로 고쳐서 <cite no="XX">"전라좌도남원부는⋯⋯"</cite>에 붙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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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번= {{TagSpage|118-3}}本書는 朴健會의 編著로 大正 4年 12月 25日 唯一書館에서 發行되었다. 처음에 揷畵 數枚를 붙이고, 全體를 14回에 나누었는데 그 目次를 들면 左와 같다. <blockquote no="XX">第一回, 廣寒樓上賞春景, 綠楊叢裏送秋千 <br/> 第二回, 召不應佳人寄語, 暫未忘才子狂讀 <br/> 第三回, 道令夜訪佳人邸, 老娘許婚有情郎<br/>{{TagPage|119}}第四回, 兩人洞房唱詩詞, 府使遷任督治行 <br/> 第五回, 五里亭兩入惜別, 南原府新官到任 第六回, 到任先檢妓生案, 貪淫欲奪烈女志 <br/> 第七回, 玉節不屈被酷刑, 二妃顯靈說前程 <br/> 第八回, 高舉壯元謁聖科, 特除湖南繡衣使 <br/> 第九回, 得情札山寺看祈禱, 夢不祥獄中請許官 <br/> 第十回, 歛探民情聽邊歌, 爲女築壇禱蒼天 <br/> 第十一回, 御史探看老娘心, 春娘泣訴獄中苦 <br/> 第十二回, 府使設宴東軒上, 暗行出道南原府 <br/> 第十三回, 惜春香衆寡等訴, 聞喜報老娘舞踏 <br/> 第十四回, 御史陳情龍榻下, 聖心大悅封忠烈</blockquote>일로 보아서도 大綱 짐작될 바와 같이 거의 獄中花 그대로이다. 內容을 閱讀하여 볼지라도 獄中花를 中間 中間이 增한 데에 지나지 못하는데 다음에 그 몇 句節을 獄中花와 對校하는 것으로 本書의 紹介를 마치련다. 첫째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春香을 바라보는 場面이다. 이것을 獄中花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TagPage|120}}『오─ 저것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仔細히 보니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로소이다』 <br/> 道令님이 春香이란 말을 듣고 웃음을 勸馬聲 웃음을 웃더니 <br/>『이애 丁寧 春香이야 顚不刺的을 見了萬千이로대 底般可喜娘은 罕曾見이라, 我─ 眼花擦亂口難言이라 魂靈兒飛去半天이로다. 눈에 水銀을 닌듯이 뵈이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오란다고 즉시 불러오너라.』<br/> 房子 엿자오대 <br/>『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府使 郡守 縣監 官長들이 無數히 보랴호되…..』</blockquote>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ruby|鬼神|●●}}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ruby|이애|●●}} 갑갑하다 {{ruby|어서|●●}}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ruby|시침이를|●●●●}} {{ruby|뚝|●}} {{ruby|띄이고|●●●●}}<br/> 『오 저것 {{ruby|말삼이오|●●●●}}, {{ruby|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자세 보니{{ruby|까|●}} 本邑{{ruby|退妨|●●}} 月梅 딸 春香이{{ruby|로구면|●●●}}. {{ruby|그런대요|●●●●}} {{ruby|道令님은|●●●●}} {{ruby|장가도|●●●}} {{ruby|아니드신|●●●●}} {{ruby|兩班이|●●●●}} {{ruby|그런대만|●●●●}} {{ruby|눈이|●●}} {{ruby|먼첨|●●}} {{ruby|가시오|●●●}}』 <br/> 道令님이 {{ruby|이 말을|●●●}} {{ruby|듯더니|●●●}} {{ruby|房子의|●●●}} {{ruby|嘲弄하는|●●●●}} {{ruby|말|●}} {{ruby|대적하기도|●●●●●}} {{ruby|잊어버리고|●●●●●}} {{ruby|다시|●●}} {{ruby|건너편|●●●}} {{ruby|그네|●●}} {{ruby|줄을|●●}} {{ruby|向하여|●●●}} {{ruby|보니|●●}} {{ruby|마음은|●●●}} {{ruby|烏鵲橋를|●●●●}} {{ruby|건너가고|●●●●}} {{ruby|몸은|●●}} {{ruby|精神없이|●●●●}} {{ruby|廣寒樓|●●●}} {{ruby|夕陽 빛에|●●●●}} {{ruby|앉었다가|●●●●}} {{ruby|기쁜 생각이|●●●●●}} {{ruby|사무쳐서|●●●●}} {{ruby|勒馬聲|●●●}} {{ruby|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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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數히 보려하되……』</blockquote> 이렇게 하였다. 또 다음 다른 데에서 더 하나 뽑아 春香이가 卞府使에게 매를 맞고 獄에 갇히는 場面이다. 이것을 눈中花에서는  <blockquote no="XX">春香이 精神차려 <br/> 『어머니 설어말고 氣體 安保하옵시면 罪 없는 春香 몸이 설마한들 죽소리까. 水火劒槍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 터이니 걱정 많으시고 집으로 가옵소서 萬一에 안 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한 말씀이나 지금으로 죽을 테니 나가소서 울음소리에 氣가 막혀 頃刻에 죽겠구려』 <br/> 春香 母 할일 없어 獄中에 딸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 업더지며 잡바질제 그때 왔던 여러 夫人 春香 母를 이끌어서 집으로 나간 後에 春香이 설이 울며 <br/> 『불쌍하신 우리 母親 아비 없이 나를 길러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내어 좋은 일은 못 보시고 獄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父母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더러운 년의 팔자로다. 香丹이 게 있느냐』 <br/> 『예─』</blockquote>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blockquote no="XX">{{TagPage|122-1}} {{ruby|이윽고|●●●}} 精神을 차려 {{ruby|獄門틈으로|●●●●●}} {{ruby|母親을|●●●}} {{ruby|부른다|●●●}}. <br/> 『어머니 설워마시고 氣體 {{ruby|安寧|●●}}하옵{{ruby|소서|●●}}, 罪 없는 春香{{ruby|이가|●●}} 설마한들 죽으리까 水火{{ruby|刀|●}}槍 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ruby|아나서|●●●}} {{ruby|母親奉養할|●●●●●}} 터이니 걱정 {{ruby|넘어|●●}}말으시고 집으{{ruby|로|●}} {{ruby|돌|●}}아가옵소서. 萬一에 안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莫大{{ruby|할지라도|●●●●}}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이 {{ruby|억색|●●}}하여 氣가 마켜 죽게구려』 <br/> 春香 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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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1번= {{TagSpage|118-3}}本書는 朴健會의 編著로 大正 4年 12月 25日 唯一書館에서 發行되었다. 처음에 揷畵 數枚를 붙이고, 全體를 14回에 나누었는데 그 目次를 들면 左와 같다. <blockquote no="XX">第一回, 廣寒樓上賞春景, 綠楊叢裏送秋千 <br/> 第二回, 召不應佳人寄語, 暫未忘才子狂讀 <br/> 第三回, 道令夜訪佳人邸, 老娘許婚有情郎<br/>{{TagPage|119}}第四回, 兩人洞房唱詩詞, 府使遷任督治行 <br/> 第五回, 五里亭兩入惜別, 南原府新官到任 第六回, 到任先檢妓生案, 貪淫欲奪烈女志 <br/> 第七回, 玉節不屈被酷刑, 二妃顯靈說前程 <br/> 第八回, 高舉壯元謁聖科, 特除湖南繡衣使 <br/> 第九回, 得情札山寺看祈禱, 夢不祥獄中請許官 <br/> 第十回, 歛探民情聽邊歌, 爲女築壇禱蒼天 <br/> 第十一回, 御史探看老娘心, 春娘泣訴獄中苦 <br/> 第十二回, 府使設宴東軒上, 暗行出道南原府 <br/> 第十三回, 惜春香衆寡等訴, 聞喜報老娘舞踏 <br/> 第十四回, 御史陳情龍榻下, 聖心大悅封忠烈</blockquote>일로 보아서도 大綱 짐작될 바와 같이 거의 獄中花 그대로이다. 內容을 閱讀하여 볼지라도 獄中花를 中間 中間이 增한 데에 지나지 못하는데 다음에 그 몇 句節을 獄中花와 對校하는 것으로 本書의 紹介를 마치련다. 첫째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春香을 바라보는 場面이다. 이것을 獄中花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TagPage|120}}『오─ 저것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仔細히 보니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로소이다』 <br/> 道令님이 春香이란 말을 듣고 웃음을 勸馬聲 웃음을 웃더니 <br/>『이애 丁寧 春香이야 顚不刺的을 見了萬千이로대 底般可喜娘은 罕曾見이라, 我─ 眼花擦亂口難言이라 魂靈兒飛去半天이로다. 눈에 水銀을 닌듯이 뵈이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오란다고 즉시 불러오너라.』<br/> 房子 엿자오대 <br/>『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府使 郡守 縣監 官長들이 無數히 보랴호되⋯⋯』</blockquote>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ruby|鬼神|●●}}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ruby|이애|●●}} 갑갑하다 {{ruby|어서|●●}}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ruby|시침이를|●●●●}} {{ruby|뚝|●}} {{ruby|띄이고|●●●●}}<br/> 『오 저것 {{ruby|말삼이오|●●●●}}, {{ruby|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자세 보니{{ruby|까|●}} 本邑{{ruby|退妨|●●}} 月梅 딸 春香이{{ruby|로구면|●●●}}. {{ruby|그런대요|●●●●}} {{ruby|道令님은|●●●●}} {{ruby|장가도|●●●}} {{ruby|아니드신|●●●●}} {{ruby|兩班이|●●●●}} {{ruby|그런대만|●●●●}} {{ruby|눈이|●●}} {{ruby|먼첨|●●}} {{ruby|가시오|●●●}}』 <br/> 道令님이 {{ruby|이 말을|●●●}} {{ruby|듯더니|●●●}} {{ruby|房子의|●●●}} {{ruby|嘲弄하는|●●●●}} {{ruby|말|●}} {{ruby|대적하기도|●●●●●}} {{ruby|잊어버리고|●●●●●}} {{ruby|다시|●●}} {{ruby|건너편|●●●}} {{ruby|그네|●●}} {{ruby|줄을|●●}} {{ruby|向하여|●●●}} {{ruby|보니|●●}} {{ruby|마음은|●●●}} {{ruby|烏鵲橋를|●●●●}} {{ruby|건너가고|●●●●}} {{ruby|몸은|●●}} {{ruby|精神없이|●●●●}} {{ruby|廣寒樓|●●●}} {{ruby|夕陽 빛에|●●●●}} {{ruby|앉었다가|●●●●}} {{ruby|기쁜 생각이|●●●●●}} {{ruby|사무쳐서|●●●●}} {{ruby|勒馬聲|●●●}} {{ruby|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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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원문2번= {{TagSpage|122-2}}그런데 한 가지 여기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春香이가 卞使道에게 불려 들어가서 官長에 對한 拒逆으로 처음에 軍奴房에 내처 笞杖 數刀를 맞는다. 그럴 때에 戶長이 使道에게 春香이가 아직 나이 어려서 官家의 所重한 것{{TagPage|123-1}}을 모르고 그러한 것이니 한번 容恕하면 自己가 잘 타일러 近侍케 하겠다 하니 使道가 도리어 좋아하여 그리하라 하고, 戶長이 春香에게로 나와 무엇을 수군 수군하니 春香이가 다시 使道가 있는 上房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使道가 春香이가 많은 마음을 돌렸는가 하여 無限히 좋아하면서 또 春香에게 節을 굽히고 守廳을 舉行하라 달랜다. 그러나 春香은 亦是 拒絶하였음으로 다시 내려서 매를 쳤다 하였다. 이것은 本書가 앞에서와 같이 獄中花를 增修하는 態度에서 나온 結果이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春香이가 마치 한번은 節을 굽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 듯이 誤解되어 編者는 春香의 節介를 더욱 빛내여 주자 하는 意圖에서 나왔겠지만, 結果는 도리어 그 反對가 됨을 免하지 못하였다. 本書는 即 이러한 点이 가끔 있었다.
 
|목차2원문2번= {{TagSpage|122-2}}그런데 한 가지 여기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春香이가 卞使道에게 불려 들어가서 官長에 對한 拒逆으로 처음에 軍奴房에 내처 笞杖 數刀를 맞는다. 그럴 때에 戶長이 使道에게 春香이가 아직 나이 어려서 官家의 所重한 것{{TagPage|123-1}}을 모르고 그러한 것이니 한번 容恕하면 自己가 잘 타일러 近侍케 하겠다 하니 使道가 도리어 좋아하여 그리하라 하고, 戶長이 春香에게로 나와 무엇을 수군 수군하니 春香이가 다시 使道가 있는 上房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使道가 春香이가 많은 마음을 돌렸는가 하여 無限히 좋아하면서 또 春香에게 節을 굽히고 守廳을 舉行하라 달랜다. 그러나 春香은 亦是 拒絶하였음으로 다시 내려서 매를 쳤다 하였다. 이것은 本書가 앞에서와 같이 獄中花를 增修하는 態度에서 나온 結果이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春香이가 마치 한번은 節을 굽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 듯이 誤解되어 編者는 春香의 節介를 더욱 빛내여 주자 하는 意圖에서 나왔겠지만, 結果는 도리어 그 反對가 됨을 免하지 못하였다. 本書는 即 이러한 点이 가끔 있었다.
  
|목차2해독문1번= 본서는 박건회의 편저로 대정 4년 12월 25일 유일서관에서 발행되었다. 처음에 삽화 수매를 붙이고, 전체를 14회에 나누었는데 그 목차를 들면 아래와 같다.<blockquote no="XX">第一回, 廣寒樓上賞春景, 綠楊叢裏送秋千 <br/> 第二回, 召不應佳人寄語, 暫未忘才子狂讀 <br/> 第三回, 道令夜訪佳人邸, 老娘許婚有情郎<br/> 第四回, 兩人洞房唱詩詞, 府使遷任督治行 <br/> 第五回, 五里亭兩入惜別, 南原府新官到任 第六回, 到任先檢妓生案, 貪淫欲奪烈女志 <br/> 第七回, 玉節不屈被酷刑, 二妃顯靈說前程 <br/> 第八回, 高舉壯元謁聖科, 特除湖南繡衣使 <br/> 第九回, 得情札山寺看祈禱, 夢不祥獄中請許官 <br/> 第十回, 歛探民情聽邊歌, 爲女築壇禱蒼天 <br/> 第十一回, 御史探看老娘心, 春娘泣訴獄中苦 <br/> 第十二回, 府使設宴東軒上, 暗行出道南原府 <br/> 第十三回, 惜春香衆寡等訴, 聞喜報老娘舞踏 <br/> 第十四回, 御史陳情龍榻下, 聖心大悅封忠烈</blockquote> 일로 보아서도 대강 짐작될 바와 같이 거의 옥중화 그대로이다. 내용을 열독하여 볼지라도 옥중화를 중간 중간이 더한 데에 지나지 못하는데 다음에 그 몇 구절을 옥중화와 대교하는 것으로 본서의 소개를 마치련다. 첫째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것을 옥중화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오─ 저것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仔細히 보니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로소이다" <br/> 道令님이 春香이란 말을 듣고 웃음을 勸馬聲 웃음을 웃더니 <br/> "이애 丁寧 春香이야 顚不刺的을 見了萬千이로대 底般可喜娘은 罕曾見이라, 我─ 眼花擦亂口難言이라 魂靈兒飛去半天이로다. 눈에 水銀을 닌듯이 뵈이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오란다고 즉시 불러오너라." <br/> 房子 엿자오대 <br/>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府使 郡守 縣監 官長들이 無數히 보랴호되……"</blockquote>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ruby|鬼神|●●}}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ruby|이애|●●}} 갑갑하다 {{ruby|어서|●●}}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ruby|시침이를|●●●●}} {{ruby|뚝|●}} {{ruby|띄이고|●●●●}}<br/> "오 저것 {{ruby|말삼이오|●●●●}}, {{ruby|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자세 보니{{ruby|까|●}} 本邑{{ruby|退妨|●●}} 月梅 딸 春香이{{ruby|로구면|●●●}}. {{ruby|그런대요|●●●●}} {{ruby|道令님은|●●●●}} {{ruby|장가도|●●●}} {{ruby|아니드신|●●●●}} {{ruby|兩班이|●●●●}} {{ruby|그런대만|●●●●}} {{ruby|눈이|●●}} {{ruby|먼첨|●●}} {{ruby|가시오|●●●}}" <br/> 道令님이 {{ruby|이 말을|●●●}} {{ruby|듯더니|●●●}} {{ruby|房子의|●●●}} {{ruby|嘲弄하는|●●●●}} {{ruby|말|●}} {{ruby|대적하기도|●●●●●}} {{ruby|잊어버리고|●●●●●}} {{ruby|다시|●●}} {{ruby|건너편|●●●}} {{ruby|그네|●●}} {{ruby|줄을|●●}} {{ruby|向하여|●●●}} {{ruby|보니|●●}} {{ruby|마음은|●●●}} {{ruby|烏鵲橋를|●●●●}} {{ruby|건너가고|●●●●}} {{ruby|몸은|●●}} {{ruby|精神없이|●●●●}} {{ruby|廣寒樓|●●●}} {{ruby|夕陽 빛에|●●●●}} {{ruby|앉었다가|●●●●}} {{ruby|기쁜 생각이|●●●●●}} {{ruby|사무쳐서|●●●●}} {{ruby|勒馬聲|●●●}} {{ruby|웃음으로|●●●●}} {{ruby|웃으며|●●●●}} {{ruby|房子를|●●●}} {{ruby|조른|●●}}다. <br/> "이애, 丁寧 春香이냐, {{ruby|어여뿐|●●●}} {{ruby|人物을|●●●}} {{ruby|千萬이나|●●●●}} {{ruby|보았으되|●●●●}} {{ruby|저렇게|●●●}} {{ruby|어여쁜|●●●}} {{ruby|것은|●●}} {{ruby|처음|●●}} {{ruby|보는구나|●●●●}} {{ruby|내|●}} {{ruby|눈이|●●}} {{ruby|眩煌하야|●●●●}} {{ruby|말할|●●●}} {{ruby|수도|●●}} {{ruby|없으니|●●●●}} {{ruby|魂이|●●}} {{ruby|九泉에|●●●}} {{ruby|날라간|●●●}} {{ruby|듯하구나|●●●●}} {{ruby|잔말|●●●}} {{ruby|말고|●●}} {{ruby|내가|●●}}어서 오란다고 곳 좀 불러 오너라"{{ruby|春香이|●●●}} {{ruby|元來|●●}} {{ruby|妓生|●●}} {{ruby|같으면|●●●●}} {{ruby|冊室|●●}} {{ruby|喻附가|●●●}} {{ruby|계신|●●}} {{ruby|바에야|●●●}} {{ruby|입|●}} {{ruby|떠러지기가|●●●●●●}} {{ruby|무섭게|●●●●}} {{ruby|곳|●}} {{ruby|待令을|●●●}} {{ruby|시키마는|●●●●}} {{ruby|房子도|●●●}} {{ruby|그러치|●●●}} {{ruby|않을|●●}} {{ruby|줄|●}} {{ruby|아는|●●}} {{ruby|터이라|●●●}} {{ruby|道令님의|●●●●}} {{ruby|吩咐를|●●●}} {{ruby|듣고|●●●}} {{ruby|매우|●●}} {{ruby|難處하여|●●●●}} {{ruby|春香의|●●●}} {{ruby|來歷을|●●●}} {{ruby|大網|●●}} {{ruby|아뢴다|●●●}}. <br/>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使 府使 郡守 縣監 여러 官長들이 無數히 보려하되……"</blockquote>이렇게 하였다. 또 다음 다른 데에서 더 하나 뽑아 춘향이가 변부사에게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장면이다. 이것을 눈중화에서는 <blockquote no="XX">{{TagPage|122-1}} {{ruby|이윽고|●●●}} 精神을 차려 {{ruby|獄門틈으로|●●●●●}} {{ruby|母親을|●●●}} {{ruby|부른다|●●●}}. <br/> "어머니 설워마시고 氣體 {{ruby|安寧|●●}}하옵{{ruby|소서|●●}}, 罪 없는 春香{{ruby|이가|●●}} 설마한들 죽으리까 水火{{ruby|刀|●}}槍 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ruby|아나서|●●●}} {{ruby|母親奉養할|●●●●●}} 터이니 걱정 {{ruby|넘어|●●}}말으시고 집으{{ruby|로|●}} {{ruby|돌|●}}아가옵소서. 萬一에 안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莫大{{ruby|할지라도|●●●●}}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이 {{ruby|억색|●●}}하여 氣가 마켜 죽게구려" <br/> 春香 母 {{ruby|이말|●●}} {{ruby|듯고|●●}} 할일 없이 獄中에다 {{ruby|春香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ruby|悲悲切切斷腸懷가|●●●●●●●●}} {{ruby|淨凉路上魂顚倒라|●●●●●●●●}} {{ruby|업더질듯잡바질듯|●●●●●●●●}} {{ruby|집으로|●●●}} {{ruby|向하니라.|●●●●}} {{ruby|春香이|●●●}} {{ruby|母親의|●●●}} {{ruby|돌아가는|●●●●}} {{ruby|모양을|●●●}} {{ruby|보고|●●}} {{ruby|한숨을|●●●}} {{ruby|후유─|●●●}} {{ruby|쉬더니|●●●}} {{ruby|길이|●●}} {{ruby|嘆息을|●●●}} {{ruby|한다.|●●●}} <br/> "{{ruby|天地間에|●●●●}} {{ruby|이내|●●}} {{ruby|몸이|●●}} {{ruby|父母恩惠|●●●●}} {{ruby|重하도다,|●●●●}} {{ruby|黃河같이|●●●●}} {{ruby|깊으신|●●●}} {{ruby|德澤,|●●●}} {{ruby|山갈이|●●●}} {{ruby|높고|●●}} {{ruby|높다.|●●●}} {{ruby|슬푸도다|●●●●}} 우리 母親, {{ruby|父親|●●}}없이 날 {{ruby|기를제|●●●}}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ruby|놓고|●●}} 좋은 일은 못보시고 눈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ruby|母親|●●}} 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ruby|樹欲靜而風不止하고|●●●●●●●●●●}} {{ruby|子欲養而親不來라,|●●●●●●●●}} {{ruby|半白|●●}} {{ruby|넘은|●●}} {{ruby|늙은|●●}} {{ruby|母親|●●}} {{ruby|누가|●●}} {{ruby|있어|●●}} {{ruby|泰養하나|●●●●}} {{ruby|내일은|●●●}} {{ruby|내가|●●}} {{ruby|알지|●●}} {{ruby|끝날|●●}} {{ruby|날이|●●}} {{ruby|망연하니|●●●●}} {{ruby|가련한|●●●}} {{ruby|母親身勢|●●●●}} {{ruby|어찌하면|●●●●}} {{ruby|좋을는지|●●●●}}. 香丹아 게 있나냐" </blockquote>부르니 <blockquote no="XX">"예─ {{ruby|여기|●●}} {{ruby|있읍니다|●●●●}}"</blockquote>이렇게 하였다. 즉 위에 권점을 찍은 부분이 개정 혹 증보한 곳이거니와 전체를 통하여 대개 이런 정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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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2해독문1번= 본서는 박건회의 편저로 대정 4년 12월 25일 유일서관에서 발행되었다. 처음에 삽화 수매를 붙이고, 전체를 14회에 나누었는데 그 목차를 들면 아래와 같다.<blockquote no="XX">第一回, 廣寒樓上賞春景, 綠楊叢裏送秋千 <br/> 第二回, 召不應佳人寄語, 暫未忘才子狂讀 <br/> 第三回, 道令夜訪佳人邸, 老娘許婚有情郎<br/> 第四回, 兩人洞房唱詩詞, 府使遷任督治行 <br/> 第五回, 五里亭兩入惜別, 南原府新官到任 第六回, 到任先檢妓生案, 貪淫欲奪烈女志 <br/> 第七回, 玉節不屈被酷刑, 二妃顯靈說前程 <br/> 第八回, 高舉壯元謁聖科, 特除湖南繡衣使 <br/> 第九回, 得情札山寺看祈禱, 夢不祥獄中請許官 <br/> 第十回, 歛探民情聽邊歌, 爲女築壇禱蒼天 <br/> 第十一回, 御史探看老娘心, 春娘泣訴獄中苦 <br/> 第十二回, 府使設宴東軒上, 暗行出道南原府 <br/> 第十三回, 惜春香衆寡等訴, 聞喜報老娘舞踏 <br/> 第十四回, 御史陳情龍榻下, 聖心大悅封忠烈</blockquote> 일로 보아서도 대강 짐작될 바와 같이 거의 옥중화 그대로이다. 내용을 열독하여 볼지라도 옥중화를 중간 중간이 더한 데에 지나지 못하는데 다음에 그 몇 구절을 옥중화와 대교하는 것으로 본서의 소개를 마치련다. 첫째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것을 옥중화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오─ 저것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仔細히 보니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로소이다" <br/> 道令님이 春香이란 말을 듣고 웃음을 勸馬聲 웃음을 웃더니 <br/> "이애 丁寧 春香이야 顚不刺的을 見了萬千이로대 底般可喜娘은 罕曾見이라, 我─ 眼花擦亂口難言이라 魂靈兒飛去半天이로다. 눈에 水銀을 닌듯이 뵈이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오란다고 즉시 불러오너라." <br/> 房子 엿자오대 <br/>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府使 郡守 縣監 官長들이 無數히 보랴호되⋯⋯"</blockquote>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玉도 {{ruby|鬼神|●●}}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ruby|이애|●●}} 갑갑하다 {{ruby|어서|●●}}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ruby|시침이를|●●●●}} {{ruby|뚝|●}} {{ruby|띄이고|●●●●}}<br/> "오 저것 {{ruby|말삼이오|●●●●}}, {{ruby|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자세 보니{{ruby|까|●}} 本邑{{ruby|退妨|●●}} 月梅 딸 春香이{{ruby|로구면|●●●}}. {{ruby|그런대요|●●●●}} {{ruby|道令님은|●●●●}} {{ruby|장가도|●●●}} {{ruby|아니드신|●●●●}} {{ruby|兩班이|●●●●}} {{ruby|그런대만|●●●●}} {{ruby|눈이|●●}} {{ruby|먼첨|●●}} {{ruby|가시오|●●●}}" <br/> 道令님이 {{ruby|이 말을|●●●}} {{ruby|듯더니|●●●}} {{ruby|房子의|●●●}} {{ruby|嘲弄하는|●●●●}} {{ruby|말|●}} {{ruby|대적하기도|●●●●●}} {{ruby|잊어버리고|●●●●●}} {{ruby|다시|●●}} {{ruby|건너편|●●●}} {{ruby|그네|●●}} {{ruby|줄을|●●}} {{ruby|向하여|●●●}} {{ruby|보니|●●}} {{ruby|마음은|●●●}} {{ruby|烏鵲橋를|●●●●}} {{ruby|건너가고|●●●●}} {{ruby|몸은|●●}} {{ruby|精神없이|●●●●}} {{ruby|廣寒樓|●●●}} {{ruby|夕陽 빛에|●●●●}} {{ruby|앉었다가|●●●●}} {{ruby|기쁜 생각이|●●●●●}} {{ruby|사무쳐서|●●●●}} {{ruby|勒馬聲|●●●}} {{ruby|웃음으로|●●●●}} {{ruby|웃으며|●●●●}} {{ruby|房子를|●●●}} {{ruby|조른|●●}}다. <br/> "이애, 丁寧 春香이냐, {{ruby|어여뿐|●●●}} {{ruby|人物을|●●●}} {{ruby|千萬이나|●●●●}} {{ruby|보았으되|●●●●}} {{ruby|저렇게|●●●}} {{ruby|어여쁜|●●●}} {{ruby|것은|●●}} {{ruby|처음|●●}} {{ruby|보는구나|●●●●}} {{ruby|내|●}} {{ruby|눈이|●●}} {{ruby|眩煌하야|●●●●}} {{ruby|말할|●●●}} {{ruby|수도|●●}} {{ruby|없으니|●●●●}} {{ruby|魂이|●●}} {{ruby|九泉에|●●●}} {{ruby|날라간|●●●}} {{ruby|듯하구나|●●●●}} {{ruby|잔말|●●●}} {{ruby|말고|●●}} {{ruby|내가|●●}}어서 오란다고 곳 좀 불러 오너라"{{ruby|春香이|●●●}} {{ruby|元來|●●}} {{ruby|妓生|●●}} {{ruby|같으면|●●●●}} {{ruby|冊室|●●}} {{ruby|喻附가|●●●}} {{ruby|계신|●●}} {{ruby|바에야|●●●}} {{ruby|입|●}} {{ruby|떠러지기가|●●●●●●}} {{ruby|무섭게|●●●●}} {{ruby|곳|●}} {{ruby|待令을|●●●}} {{ruby|시키마는|●●●●}} {{ruby|房子도|●●●}} {{ruby|그러치|●●●}} {{ruby|않을|●●}} {{ruby|줄|●}} {{ruby|아는|●●}} {{ruby|터이라|●●●}} {{ruby|道令님의|●●●●}} {{ruby|吩咐를|●●●}} {{ruby|듣고|●●●}} {{ruby|매우|●●}} {{ruby|難處하여|●●●●}} {{ruby|春香의|●●●}} {{ruby|來歷을|●●●}} {{ruby|大網|●●}} {{ruby|아뢴다|●●●}}. <br/>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使 府使 郡守 縣監 여러 官長들이 無數히 보려하되⋯⋯"</blockquote>이렇게 하였다. 또 다음 다른 데에서 더 하나 뽑아 춘향이가 변부사에게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장면이다. 이것을 눈중화에서는 <blockquote no="XX">{{TagPage|122-1}} {{ruby|이윽고|●●●}} 精神을 차려 {{ruby|獄門틈으로|●●●●●}} {{ruby|母親을|●●●}} {{ruby|부른다|●●●}}. <br/> "어머니 설워마시고 氣體 {{ruby|安寧|●●}}하옵{{ruby|소서|●●}}, 罪 없는 春香{{ruby|이가|●●}} 설마한들 죽으리까 水火{{ruby|刀|●}}槍 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ruby|아나서|●●●}} {{ruby|母親奉養할|●●●●●}} 터이니 걱정 {{ruby|넘어|●●}}말으시고 집으{{ruby|로|●}} {{ruby|돌|●}}아가옵소서. 萬一에 안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莫大{{ruby|할지라도|●●●●}}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이 {{ruby|억색|●●}}하여 氣가 마켜 죽게구려" <br/> 春香 母 {{ruby|이말|●●}} {{ruby|듯고|●●}} 할일 없이 獄中에다 {{ruby|春香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ruby|悲悲切切斷腸懷가|●●●●●●●●}} {{ruby|淨凉路上魂顚倒라|●●●●●●●●}} {{ruby|업더질듯잡바질듯|●●●●●●●●}} {{ruby|집으로|●●●}} {{ruby|向하니라.|●●●●}} {{ruby|春香이|●●●}} {{ruby|母親의|●●●}} {{ruby|돌아가는|●●●●}} {{ruby|모양을|●●●}} {{ruby|보고|●●}} {{ruby|한숨을|●●●}} {{ruby|후유─|●●●}} {{ruby|쉬더니|●●●}} {{ruby|길이|●●}} {{ruby|嘆息을|●●●}} {{ruby|한다.|●●●}} <br/> "{{ruby|天地間에|●●●●}} {{ruby|이내|●●}} {{ruby|몸이|●●}} {{ruby|父母恩惠|●●●●}} {{ruby|重하도다,|●●●●}} {{ruby|黃河같이|●●●●}} {{ruby|깊으신|●●●}} {{ruby|德澤,|●●●}} {{ruby|山갈이|●●●}} {{ruby|높고|●●}} {{ruby|높다.|●●●}} {{ruby|슬푸도다|●●●●}} 우리 母親, {{ruby|父親|●●}}없이 날 {{ruby|기를제|●●●}}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ruby|놓고|●●}} 좋은 일은 못보시고 눈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ruby|母親|●●}} 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ruby|樹欲靜而風不止하고|●●●●●●●●●●}} {{ruby|子欲養而親不來라,|●●●●●●●●}} {{ruby|半白|●●}} {{ruby|넘은|●●}} {{ruby|늙은|●●}} {{ruby|母親|●●}} {{ruby|누가|●●}} {{ruby|있어|●●}} {{ruby|泰養하나|●●●●}} {{ruby|내일은|●●●}} {{ruby|내가|●●}} {{ruby|알지|●●}} {{ruby|끝날|●●}} {{ruby|날이|●●}} {{ruby|망연하니|●●●●}} {{ruby|가련한|●●●}} {{ruby|母親身勢|●●●●}} {{ruby|어찌하면|●●●●}} {{ruby|좋을는지|●●●●}}. 香丹아 게 있나냐" </blockquote>부르니 <blockquote no="XX">"예─ {{ruby|여기|●●}} {{ruby|있읍니다|●●●●}}"</blockquote>이렇게 하였다. 즉 위에 권점을 찍은 부분이 개정 혹 증보한 곳이거니와 전체를 통하여 대개 이런 정도의 것이다.
 
|목차2해독문2번= 그런데 한 가지 여기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춘향이가 변사도에게 불려 들어가서 관장에 대한 거역으로 처음에 군노방에 내쳐 태장 수도를 맞는다. 그럴 때에 호장이 사도에게 춘향이가 아직 나이 어려서 관가의 소중(所重)한 것을 모르고 그러한 것이니 한번 용서하면 자기가 잘 타일러 근시(近侍)케 하겠다 하니 사도가 도리어 좋아하여 그리하라 하고, 호장이 춘향에게로 나와 무엇을 수군 수군하니 춘향이가 다시 사도가 있는 상방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사도가 춘향이가 많은 마음을 돌렸는가 하여 무한히 좋아하면서 또 춘향에게 절을 굽히고 수청을 거행하라 달랜다. 그러나 춘향은 역시 거절하였음으로 다시 내려서 매를 쳤다 하였다. 이것은 본서가 앞에서와 같이 옥중화를 증수하는 태도에서 나온 결과이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춘향이가 마치 한번은 절을 굽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듯이 오해되어 편자는 춘향의 절개를 더욱 빛내주자 하는 의도에서 나왔겠지만, 결과는 도리어 그 반대가 됨을 면하지 못하였다. 본서는 즉 이러한 점이 가끔 있었다.
 
|목차2해독문2번= 그런데 한 가지 여기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춘향이가 변사도에게 불려 들어가서 관장에 대한 거역으로 처음에 군노방에 내쳐 태장 수도를 맞는다. 그럴 때에 호장이 사도에게 춘향이가 아직 나이 어려서 관가의 소중(所重)한 것을 모르고 그러한 것이니 한번 용서하면 자기가 잘 타일러 근시(近侍)케 하겠다 하니 사도가 도리어 좋아하여 그리하라 하고, 호장이 춘향에게로 나와 무엇을 수군 수군하니 춘향이가 다시 사도가 있는 상방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사도가 춘향이가 많은 마음을 돌렸는가 하여 무한히 좋아하면서 또 춘향에게 절을 굽히고 수청을 거행하라 달랜다. 그러나 춘향은 역시 거절하였음으로 다시 내려서 매를 쳤다 하였다. 이것은 본서가 앞에서와 같이 옥중화를 증수하는 태도에서 나온 결과이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춘향이가 마치 한번은 절을 굽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듯이 오해되어 편자는 춘향의 절개를 더욱 빛내주자 하는 의도에서 나왔겠지만, 결과는 도리어 그 반대가 됨을 면하지 못하였다. 본서는 즉 이러한 점이 가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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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3원문1번= {{TagSpage|123-2}}本書는 一名 增訂特別春香傳이라 하여 金用濟의 名義로 大正 6年 11月 29日에 博文書舘에서 發行되었다. 書名에 理倫小說이라 冠詞를 붙인만큼 倫理中心으로 이 小說을 써나가자 하는 것이 編者의 意圖이었던 것 같으나 別로 그것이 小說 全體에 피가 되고 脉이 되어 躍動하들 못하고 가끔 가다가 行進을 멈추고는 一場의 說明을 添加한다는 極히 幼稚한 描寫法을 썼다. 일 터이면 이런 것이 있다. 即 本書 12頁에 李道令이 春香을 불러 오라 하니 房子가 마지못하여 春香 부르려 갔다 하여 놓고 <cite no="XX">「大低 妓生이라 하는것은 아모리 文明한 나라에도 아조 없애지 못함은 아직 人生社會에 習慣을 頓然이 改良치 못함이라, 그러나 다른나라에는 法律과 風俗이 定一하여... 云云」</cite>하는{{TagPage|124}} 것이 있고, 또 25頁에는 李道令이 廣寒樓에서 春香을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戀戀이 생각한다 하여 놓고는 <cite no="XX">「그러나 李道令 같은 사람은 마치 窈窕淑女를 寤寐思之하든 文王같은 聖賢君子의 模範으로 비록 娼玆出身이나 春香이 같은 節介있는 계집을 만나 그 地境을 하였으나 나라에든지 집안에든지 제몸에든지 속해될 것은 없다 하여도 古往今來에 女色에 迷惑하여 亡身敗道에 國破家亡을 자취하는 者가 거의 다 옳지 못한 美色에게 고惑하여 그의 되지 안인 者가 몇몇이나 되는고 云云」</cite>이라 한 것이 있다. 이러한 句節은 다만 이것만이 아니다. 이 밖에도 處處에서 보이지마는 要컨대 이러한 套式으로 쓴 것인데 또 本書는 그 풀로트에 있어서도 一般 異本과 많은 差異를 가졌다. 첫째 李道令은 房子에게 廣寒樓의 景致가 좋다는 말을 듣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廣寒樓에 벌써 나와 앉아서 廣寒樓의 景致를 자랑하고 또 房子와 嘲弄하는 말을 빌어서 關東八景이니 關西八景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結局 廣寒樓가 第一이라는 形式이다. 그러다가 春香을 發見하여서는 房子를 시켜 부르는데 여기서는 春香이 妓生으로 되어 있고, 또 春香은 廣寒樓까지 왔었지마는 李道令과 百年佳約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 李道令이 春香 집을 찾는데 그동안 春香傳으로써 반드시 나오는 李道令의 讀書는 없고, 春香母는 도리어 李道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道令은 春香母를 對하여 春香을 바로 正室夫人으로 맞겠다 하여 以後 用語도 반드시 丈母와 夫人에게 쓰는 말을 썼다. 그리고 離別 後에는 道令의 母親과 또 그 父親이 여기서는 各々 春香을 불러보았다고 하였으며, 卞府使가 到任하여 春香을 때렸을 때는 所謂 十杖歌라는 것은 없지마는 春香母가 또한 發惡하다가 母女가 同時에 같이 下獄되고 말었다. 그 뒤 使道는 春香母를 불러 내어 그 딸을 守竄케 하라 勸告하니 春香毋는 그 뜻으로 春香에게 毁節하기를 勸하였는데 春香은 勿論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李道令은 暗行御使가 되어 南原으로 오는데 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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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3원문1번= {{TagSpage|123-2}}本書는 一名 增訂特別春香傳이라 하여 金用濟의 名義로 大正 6年 11月 29日에 博文書舘에서 發行되었다. 書名에 理倫小說이라 冠詞를 붙인만큼 倫理中心으로 이 小說을 써나가자 하는 것이 編者의 意圖이었던 것 같으나 別로 그것이 小說 全體에 피가 되고 脉이 되어 躍動하들 못하고 가끔 가다가 行進을 멈추고는 一場의 說明을 添加한다는 極히 幼稚한 描寫法을 썼다. 일 터이면 이런 것이 있다. 即 本書 12頁에 李道令이 春香을 불러 오라 하니 房子가 마지못하여 春香 부르려 갔다 하여 놓고 <cite no="XX">「大低 妓生이라 하는것은 아모리 文明한 나라에도 아조 없애지 못함은 아직 人生社會에 習慣을 頓然이 改良치 못함이라, 그러나 다른나라에는 法律과 風俗이 定一하여⋯ 云云」</cite>하는{{TagPage|124}} 것이 있고, 또 25頁에는 李道令이 廣寒樓에서 春香을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戀戀이 생각한다 하여 놓고는 <cite no="XX">「그러나 李道令 같은 사람은 마치 窈窕淑女를 寤寐思之하든 文王같은 聖賢君子의 模範으로 비록 娼玆出身이나 春香이 같은 節介있는 계집을 만나 그 地境을 하였으나 나라에든지 집안에든지 제몸에든지 속해될 것은 없다 하여도 古往今來에 女色에 迷惑하여 亡身敗道에 國破家亡을 자취하는 者가 거의 다 옳지 못한 美色에게 고惑하여 그의 되지 안인 者가 몇몇이나 되는고 云云」</cite>이라 한 것이 있다. 이러한 句節은 다만 이것만이 아니다. 이 밖에도 處處에서 보이지마는 要컨대 이러한 套式으로 쓴 것인데 또 本書는 그 풀로트에 있어서도 一般 異本과 많은 差異를 가졌다. 첫째 李道令은 房子에게 廣寒樓의 景致가 좋다는 말을 듣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廣寒樓에 벌써 나와 앉아서 廣寒樓의 景致를 자랑하고 또 房子와 嘲弄하는 말을 빌어서 關東八景이니 關西八景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結局 廣寒樓가 第一이라는 形式이다. 그러다가 春香을 發見하여서는 房子를 시켜 부르는데 여기서는 春香이 妓生으로 되어 있고, 또 春香은 廣寒樓까지 왔었지마는 李道令과 百年佳約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 李道令이 春香 집을 찾는데 그동안 春香傳으로써 반드시 나오는 李道令의 讀書는 없고, 春香母는 도리어 李道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道令은 春香母를 對하여 春香을 바로 正室夫人으로 맞겠다 하여 以後 用語도 반드시 丈母와 夫人에게 쓰는 말을 썼다. 그리고 離別 後에는 道令의 母親과 또 그 父親이 여기서는 各々 春香을 불러보았다고 하였으며, 卞府使가 到任하여 春香을 때렸을 때는 所謂 十杖歌라는 것은 없지마는 春香母가 또한 發惡하다가 母女가 同時에 같이 下獄되고 말었다. 그 뒤 使道는 春香母를 불러 내어 그 딸을 守竄케 하라 勸告하니 春香毋는 그 뜻으로 春香에게 毁節하기를 勸하였는데 春香은 勿論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李道令은 暗行御使가 되어 南原으로 오는데 途{{TagPage|125-1}}中에서 春香의 편지를 받고 그 答狀을 써서 편지 가지고 온 사람에게 붙어 보냈다 하였으며, 南原에 到達하여는 來日로 卞府使의 生日宴에 御史 出道를 할 모양인데 그때 御史는 書吏 中房에게 自己와 春香과의 關係를 말하였고, 卞府使는 生日宴 끝에 春香을 잡아 올려 또 매를 막 치려 할 때 御史는 三門에 出道를 하였다. 그後 卞府使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官職이 削奪되고 또 서울로 致送이 되어 死刑에 處하였다고 하였다.
|목차3원문2번= {{TagSpage|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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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3원문2번= {{TagSpage|152-2}}이와 같이 本書는 相當히 從來의 春香傳을 改寨하여 特色있게 하려 하였으나 創作의 힘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結局은 뒤죽 박중이 되고 말았는데, 가끔 가다가는 春香傳의 先入見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理解하지 못할 곳도 있고, 또 描寫가 퍽 不自然하여 事件의 發展에 無理한 點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大體에 있어서는 亦是 獄中花를 摸倣하였음은 틀림없었으니, 이를테면 李道令의 父母가 春香을 불러 보려 하던 것을 불러 보았다 하는 것도 그 影響이 아니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獄中花의 原文을 그냥, 或은 그 意味를 取하여 引用한 것이 많이 있다.
  
|목차3해독문1번= 본서는 일명 증정특별춘향전이라 하여 김용제의 명의로 대정 6년 11월 29일에 박문서관에서 발행되었다. 서명에 이륜소설이라 관사를 붙인 만큼 윤리 중심으로 이 소설을 써나가자 하는 것이 편자의 의도이었던 것 같으나 별로 그것이 소설 전체에 피가 되고 맥이 되어 약동하지 못하고 가끔 가다가 행진을 멈추고는 일장의 설명을 첨가한다는 극히 유치한 묘사법을 썼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 있다. 즉 본서 12혈에 이도령이 춘향을 불러 오라 하니 방자가 마지못하여 춘향 부르려 갔다 해놓고 <cite no="XX">「大低 妓生이라 하는것은 아모리 文明한 나라에도 아조 없애지 못함은 아직 人生社會에 習慣을 頓然이 改良치 못함이라, 그러나 다른나라에는 法律과 風俗이 定一하여... 云云」</cite>하는  것이 있고, 또 25혈에는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연연이 생각한다 하여 놓고는 <cite no="XX">「그러나 李道令 같은 사람은 마치 窈窕淑女를 寤寐思之하든 文王같은 聖賢君子의 模範으로 비록 娼玆出身이나 春香이 같은 節介있는 계집을 만나 그 地境을 하였으나 나라에든지 집안에든지 제몸에든지 속해될 것은 없다 하여도 古往今來에 女色에 迷惑하여 亡身敗道에 國破家亡을 자취하는 者가 거의 다 옳지 못한 美色에게 고惑하여 그의 되지 안인 者가 몇몇이나 되는고 云云」</cite>이라 한 것이 있다. 이러한 구절은 다만 이것만이 아니다. 이 밖에도 처처에서 보이지마는 요컨대 이러한 투식으로 쓴 것인데 또 본서는 그 풀로트에 있어서도 일반 이본과 많은 차이를 가졌다. 첫째 이도령은 방자에게 광한루의 경치가 좋다는 말을 듣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광한루에 벌써 나와 앉아서 광한루의 경치를 자랑하고 또 방자와 조롱하는 말을 빌어서 관동팔경이니 관서팔경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결국 광한루가 제일이라는 형식이다. 그러다가 춘향을 발견하여서는 방자를 시켜 부르는데 여기서는 춘향이 기생으로 되어 있고, 또 춘향은 광한루까지 왔었지마는 이도령과 백년가약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 이도령이 춘향 집을 찾는데 그동안 춘향전으로써 반드시 나오는 이도령의 독서는 없고, 춘향모는 도리어 이도령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도령은 춘향모를 대하여 춘향을 바로 정실부인으로 맞겠다 하여 이후 용어도 반드시 장모와 부인에게 쓰는 말을 썼다. 그리고 리별 후에는 도령의 모친과 또 그 부친이 여기서는 각각 춘향을 불러보았다고 하였으며, 변부사가 도임하여 춘향을 때렸을 때는 소위 십장가라는 것은 없지마는 춘향모가 또한 발악하다가 모녀가 동시에 같이 하옥되고 말었다. 그 뒤 사도는 춘향모를 불러 내어 그 딸을 수찬케 하라 권고하니 춘향무는 그 뜻으로 춘향에게 훼절(毁節)하기를 권하였는데 춘향은 물론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도령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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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3해독문1번= 본서는 일명 증정특별춘향전이라 하여 김용제의 명의로 대정 6년 11월 29일에 박문서관에서 발행되었다. 서명에 이륜소설이라 관사를 붙인 만큼 윤리 중심으로 이 소설을 써나가자 하는 것이 편자의 의도이었던 것 같으나 별로 그것이 소설 전체에 피가 되고 맥이 되어 약동하지 못하고 가끔 가다가 행진을 멈추고는 일장의 설명을 첨가한다는 극히 유치한 묘사법을 썼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 있다. 즉 본서 12혈에 이도령이 춘향을 불러 오라 하니 방자가 마지못하여 춘향 부르려 갔다 해놓고 <cite no="XX">「大低 妓生이라 하는것은 아모리 文明한 나라에도 아조 없애지 못함은 아직 人生社會에 習慣을 頓然이 改良치 못함이라, 그러나 다른나라에는 法律과 風俗이 定一하여⋯ 云云」</cite>하는  것이 있고, 또 25혈에는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연연이 생각한다 하여 놓고는 <cite no="XX">"그러나 李道令 같은 사람은 마치 窈窕淑女를 寤寐思之하든 文王같은 聖賢君子의 模範으로 비록 娼玆出身이나 春香이 같은 節介있는 계집을 만나 그 地境을 하였으나 나라에든지 집안에든지 제몸에든지 속해될 것은 없다 하여도 古往今來에 女色에 迷惑하여 亡身敗道에 國破家亡을 자취하는 者가 거의 다 옳지 못한 美色에게 고惑하여 그의 되지 안인 者가 몇몇이나 되는고 云云"</cite>이라 한 것이 있다. 이러한 구절은 다만 이것만이 아니다. 이 밖에도 처처에서 보이지마는 요컨대 이러한 투식으로 쓴 것인데 또 본서는 그 풀로트에 있어서도 일반 이본과 많은 차이를 가졌다. 첫째 이도령은 방자에게 광한루의 경치가 좋다는 말을 듣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광한루에 벌써 나와 앉아서 광한루의 경치를 자랑하고 또 방자와 조롱하는 말을 빌어서 관동팔경이니 관서팔경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결국 광한루가 제일이라는 형식이다. 그러다가 춘향을 발견하여서는 방자를 시켜 부르는데 여기서는 춘향이 기생으로 되어 있고, 또 춘향은 광한루까지 왔었지마는 이도령과 백년가약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 이도령이 춘향 집을 찾는데 그동안 춘향전으로써 반드시 나오는 이도령의 독서는 없고, 춘향모는 도리어 이도령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도령은 춘향모를 대하여 춘향을 바로 정실부인으로 맞겠다 하여 이후 용어도 반드시 장모와 부인에게 쓰는 말을 썼다. 그리고 이별 후에는 도령의 모친과 또 그 부친이 여기서는 각각 춘향을 불러보았다고 하였으며, 변부사가 도임하여 춘향을 때렸을 때는 소위 십장가라는 것은 없지마는 춘향모가 또한 발악하다가 모녀가 동시에 같이 하옥되고 말었다. 그 뒤 사도는 춘향모를 불러 내어 그 딸을 수찬케 하라 권고하니 춘향무는 그 뜻으로 춘향에게 훼절(毁節)하기를 권하였는데 춘향은 물론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도령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오는데 도중에서 춘향의 편지를 받고 그 답상을 써서 편지 가지고 온 사람에게 붙어 보냈다 하였으며, 남원에 도달해서는 내일로 변부사의 생일연에 어사 출도를 할 모양인데 그때 어사는 서리 중방에게 자기와 춘향과의 관계를 말하였고, 변부사는 생일연 끝에 춘향을 잡아 올려 또 매를 막 치려 할 때 어사는 삼문에 출도를 하였다. 그 후 변부사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관직이 삭탈되고 또 서울로 치송(致送)이 되어 사형에 처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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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3해독문2번= 이와 같이 본서는 상당히 종래의 춘향전을 개채하여 특색있게 하려 하였으나 창작의 힘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결국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는데, 가끔 가다가는 춘향전의 선입견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곳도 있고, 또 묘사가 퍽 부자연스러워 사건의 발전에 무리한 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에 있어서는 역시 옥중화를 모방하였음은 틀림없었으니, 이를테면 이도령의 부모가 춘향을 불러 보려 하던 것을 불러 보았다 하는 것도 그 영향이 아니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옥중화의 원문을 그냥, 혹은 그 의미를 취하여 인용한 것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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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4원문1번= {{TagSpage|125-3}}本書는 大正 12年 3月 5日에 高裕相의 名義로 匯東書舘에서 發行되었다. 特別無雙春香傳과 같이 처음에 揷畵 數枚를 붙이고 全體를 <blockquote no="XX">第一 廣寒樓노리 <br/> 第二 千字뒤푸리<br/>{{TagPage|126}}第三 春香斗科 <br/> 第四 百年結約 <br/> 第五 斗歌 <br/> 第六 離別 <br/> 第七 新官到任 <br/> 第八 獄中孤魂 <br/> 第九 李道令 大科及 <br/> 第十 獄中解夢 <br/> 第十↑ 農夫歌 <br/> 第十二 再逢春香 <br/> 第十三 新官 生日杂对 <br/> 第十四 暗行御史出道 </blockquote>14回에 나누었는데 亦是 獄中花의 飜案本일뿐 아니라 無雙春香傳의 影響도 많이 입었다.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春香을 바라보는 場面에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또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얼런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시침이를 띄고{{TagPage|128}}『오─ 저것 말이요, 나는 무엇이라구, 이제 仔細 보니까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구먼, 道令님 장가도 아니드신 兩班이 그런대만 눈이 먼첨 가시요』<br/> 道令님 이말을 듣더니 房子의 嘲弄하는 말 대척하기도 잊어바리고 다시 건너便 그네줄을 向하여 보니 마음은 烏鵲橋를 건너가고 몸은 精神없이 廣寒棋 夕陽빛에 비겼다가 기뿐 생각이 사못쳐서 숨이 절로 나오다가 急히 慾心이 나서 房子를 조른다.<br/> 『이에 저렇게 어여뿐 것은 처음 보겠구나 잔말 말고 어서 곧 좀 불러 오느라』<br/> 春香이 元來 妓生같으면 冊室 吩附가 계신바에야 입 떠러지기가 무섭게 待令을 시키련만 房子도 그렇지 않은줄 아는터이라 道令님의 吩附를 듣고 매우 離處하여 였자오대, 云云</blockquote> 이라 한 것이라든지, 또 春香이가 獄에 갇히는 場面에 <blockquote no="XX">이윽고 精神을 차려서 獄門 구멍으로 어미를 부른다 <br/> 『어머니 설워말고 氣體 安保하옵시면 罪없는 春香몸이 설마한들 죽사오리까 水火劒槍中이라도 아니죽고 살터이니 걱정말으시고 집으로 가옵소서, 萬一에 아니 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의 말삼이나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소래 氣막혀 頃刻에 죽겠구려』 <br/> 春香母 할일 없어 獄中에 딸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 엎더질듯 잡바질듯 집으로 向하니라, 春香이 母親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한숨을 후유─ 하더니 길이 단식을 한다. <br/> 『불상하신 우리 母親 아비 없이 나를 길러 功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내며 좋은 일은 못 보시고 눈{{TagPage|128-1}}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父母근심 죽도 살도 못 하겠네 가련한 팔자야. 상단이 게 있나냐』 <br/>부르니 <br/> 『예─』 </blockquote>라 한 것을 앞에서 引用한 것과 比較하여 보아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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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4원문2번= {{TagSpage|128-2}}그러나 또 前記兩本에서 多少의 增減이 없었는 배도 아니다. 이를테면 가끔 가다가 遊山歌, 새打令 等의 雜歌며 九九歌 等 노래를 揷入한 것은 本書로써 增補한 것이라 볼 것이고, 李道令의 父母가 春香에게 金品을 送贈하였다는 것이라든지 御史가 途中에 萬福寺에 들러 施主를 하였다는 것을 빼어버린 것은 그 削滅한 것이며, 이外에 또 春香의 人物 紹介를 房子의 말 가운데에 넣어버렸다는 것은 얼마쯤 그 풀로트 上의 變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大體에 있어 別로 本書의 獨特한 點을 들만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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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4해독문1번= 본서는 대정 12년 3월 5일에 고유상의 명의로 회동서관에서 발행되었다. 특별무쌍춘향전과 같이 처음에 삽화 수매를 붙이고 전체를 <blockquote no="XX">第一 廣寒樓노리 <br/> 第二 千字뒤푸리<br/>第三 春香斗科 <br/> 第四 百年結約 <br/> 第五 斗歌 <br/> 第六 離別 <br/> 第七 新官到任 <br/> 第八 獄中孤魂 <br/> 第九 李道令 大科及 <br/> 第十 獄中解夢 <br/> 第十↑ 農夫歌 <br/> 第十二 再逢春香 <br/> 第十三 新官 生日杂对 <br/> 第十四 暗行御史出道 </blockquote>14회에 나누었는데 역시 옥중화의 번안본일뿐 아니라 무쌍춘향전의 영향도 많이 입었다.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바라보는 장면에 <blockquote no="XX">(道)"그러면 金도 또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얼런 일러다고" <br/> 房子놈이 그제야 시침이를 띄고 "오─ 저것 말이요, 나는 무엇이라구, 이제 仔細 보니까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구먼, 道令님 장가도 아니드신 兩班이 그런대만 눈이 먼첨 가시요"<br/> 道令님 이말을 듣더니 房子의 嘲弄하는 말 대척하기도 잊어바리고 다시 건너便 그네줄을 向하여 보니 마음은 烏鵲橋를 건너가고 몸은 精神없이 廣寒棋 夕陽빛에 비겼다가 기뿐 생각이 사못쳐서 숨이 절로 나오다가 急히 慾心이 나서 房子를 조른다.<br/> "이에 저렇게 어여뿐 것은 처음 보겠구나 잔말 말고 어서 곧 좀 불러 오느라"<br/> 春香이 元來 妓生같으면 冊室 吩附가 계신바에야 입 떠러지기가 무섭게 待令을 시키련만 房子도 그렇지 않은줄 아는터이라 道令님의 吩附를 듣고 매우 離處하여 였자오대, 云云</blockquote> 이라 한 것이라든지, 또 춘향이가 옥에 갇히는 장면에 <blockquote no="XX">이윽고 精神을 차려서 獄門 구멍으로 어미를 부른다 <br/> "어머니 설워말고 氣體 安保하옵시면 罪없는 春香몸이 설마한들 죽사오리까 水火劒槍中이라도 아니죽고 살터이니 걱정말으시고 집으로 가옵소서, 萬一에 아니 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의 말삼이나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소래 氣막혀 頃刻에 죽겠구려" <br/> 春香母 할일 없어 獄中에 딸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 엎더질듯 잡바질듯 집으로 向하니라, 春香이 母親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한숨을 후유─ 하더니 길이 단식을 한다. <br/> "불상하신 우리 母親 아비 없이 나를 길러 功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내며 좋은 일은 못 보시고 눈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父母근심 죽도 살도 못 하겠네 가련한 팔자야. 상단이 게 있나냐" <br/>부르니 <br/> "예─" </blockquote>라 한 것을 앞에서 인용한 것과 비교하여 보아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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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4해독문2번= 그러나 또 전기 양본에서 다소의 증감이 없었던 바도 아니다. 이를테면 가끔 가다가 유산가, 새타령 등의 잡가며 구구가 등 노래를 삽입한 것은 본서로써 증보한 것이라 볼 것이고, 이도령의 부모가 춘향에게 금품을 보냈다는 것이라든지 어사가 도중에 만복사에 들러 시주를 하였다는 것을 빼어버린 것은 그 삭멸한 것이며, 이외에 또 춘향의 인물 소개를 방자의 말 가운데에 넣어버렸다는 것은 얼마 쯤 그 플로트 상의 변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에 있어 별로 본서의 독특한 점을 들만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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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5원문1번= {{TagSpage|128-3}}本書는 沈相泰의 編著로 一名 別春香傳이라 하여 그 上卷만이 大正 13年 4月 29日에 發行되었다. 卷頭에는 編者의 序文이 붙었는데, 그 一節에 <blockquote no="XX">우리덜전은 該諧謔弄이 比他百倍오며 且以夫讀妻評하여 不見莊苻差接之禮하고 常多麤放橲狎之態하니 彼端士雅儒{{TagPage|129}}豈容倩眄哉리오마는</blockquote>云云이라 한 바와 같이 오로지 廣大의 演藝脚本으로 編集한것으로 多分의 詼諧謔弄을 抱含하고, 또 夫讀妻評이라 하여 夫가 原文을 著頀하면 妻가 그를 듣고 있다가 評을 加하고 이에 또 夫가 對答한다는 形式을 取하였다. 序文 末尾에도 鄉人 沈相泰 別號 哈哈 著讀<br/>室人 鄭在慶 別號 昭昭 聽評 <br/> 右 哈哈 双答<br/>이라 하였으며, 또 看讀方法이라 하여<blockquote no="XX">大字로 抄寫한 獨欄은 每히 原文으로 看倣事. <br/>小字로 抄寫한 雙欄은 右欄은 昭昭의 評, 左欄은 哈哈의 答으로 看似事, </blockquote>라 하였거니와 最初의 一部를 引用하여보면 左와 같다.<blockquote no="XX">당상 당하 연설이올시다 잘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 이사람이 당상 당하 대표자로 유쾌히 듣겠읍니다 [昭昭의 評] 변변치 못한 말을 그처름 들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哈哈의 答]) 下皆做此 구 한국시대올시다 숙종대왕 즉위초에 시화세풍하고 국대만안하여,조정에 충신이오 여염에 열녀로다 삼각산제일봉에 봉황이 앉어서 울음울고 한강수 깊은물에 하도낙서 낫단말가 좃습니까좃습니다 강구연월 격양가에 문동요도 하려니와 백공상황 경상가를 오날이야 알리로다. 사방이 풍등하니 경운경성이 일어나고 헤풍황창 하온날에 도처에 풍악이라 좃습니까좃습니다 장안호걸 벗님네야 놀고 놀고 놀아보세. 이러탓이 좋은 때에 아니노든 못하리라 극사인간{{TagPage|130-1}}저믄날에 소녕 행락몇이련고 소년행락은 하고 노인행락은 못할가요 왜 못하여, 노소 동락은 더 좋지요 (以下省略)</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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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5원문2번= {{TagSpage|130-2}}그러나 內容에 있어서는 獄中花에 別다름이 없다. 다만 本書 特有의 詼諧가 있고 거기에 조금 異彩를 加하기 爲하여 李道令이 廣寒樓서 부를 때 春香이 처음에는 房子를 따라가는 듯하다가 鴈隨侮, 嶸隨花, 蟹隨穴이라는 말을 傳唱하고 제 집으로 도로 가버렸다 한 것이라든지, 또는 春香은 매를 때려 獄中에 가두어 두고 卞使道가 늙은 寡婦를 시켜 다시 그 마음을 돌려보려다가 失敗하였다 한 것이라든지, 또 春香母마저 그 딸에게 毁節하기를 勸했다 하는  것들의 改築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春香이 獄中에 갇혀 달거리로 李道令을 思慕하다가 黃陵廟의 꿈을 꾸는 것으로 이 上卷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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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5해독문1번= 본서는 심상태의 편저로 일명 별춘향전이라 하여 그 상권만이 대정 13년 4월 29일에 발행되었다. 권두에는 편자의 서문이 붙었는데, 그 일절에 <blockquote no="XX">우리덜전은 該諧謔弄이 比他百倍오며 且以夫讀妻評하여 不見莊苻差接之禮하고 常多麤放橲狎之態하니 彼端士雅儒豈容倩眄哉리오마는</blockquote>운운이라 한 바와 같이 오로지 광대의 연예각본으로 편집한 것으로 다분의 회해학롱(詼諧謔弄)을 포함하고, 또 부독처평(夫讀妻評)이라 하여 부가 원문을 저호(著頀)하면 처가 그를 듣고 있다가 평을 가하고 이에 또 부가 대답한다는 형식을 취하였다. 서문 말미에도 향인 심상태 별호 합합 저독<br/>실인 정재경 별호 소소 청평 <br/> 우 합합 쌍답<br/>이라 하였으며, 또 간독 방법이라 하여<blockquote no="XX">大字로 抄寫한 獨欄은 每히 原文으로 看倣事. <br/>小字로 抄寫한 雙欄은 右欄은 昭昭의 評, 左欄은 哈哈의 答으로 看似事, </blockquote>라 하였거니와 최초의 일부를 인용하여보면 아래와 같다.<blockquote no="XX">당상 당하 연설이올시다 잘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 이사람이 당상 당하 대표자로 유쾌히 듣겠읍니다 [昭昭의 評] 변변치 못한 말을 그처름 들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哈哈의 答]) 下皆做此 구 한국시대올시다 숙종대왕 즉위초에 시화세풍하고 국대만안하여,조정에 충신이오 여염에 열녀로다 삼각산제일봉에 봉황이 앉어서 울음울고 한강수 깊은물에 하도낙서 낫단말가 좃습니까좃습니다 강구연월 격양가에 문동요도 하려니와 백공상황 경상가를 오날이야 알리로다. 사방이 풍등하니 경운경성이 일어나고 헤풍황창 하온날에 도처에 풍악이라 좃습니까좃습니다 장안호걸 벗님네야 놀고 놀고 놀아보세. 이러탓이 좋은 때에 아니노든 못하리라 극사인간 저믄날에 소녕 행락몇이련고 소년행락은 하고 노인행락은 못할가요 왜 못하여, 노소 동락은 더 좋지요 (以下省略)</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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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5해독문2번=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는 옥중화에 별다름이 없다. 다만 본서 특유의 회해가 있고 거기에 조금 이채를 가하기 위하여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부를 때 춘향이 처음에는 방자를 따라가는 듯하다가 안수모, 영수화, 해수혈이라는 말을 전창하고 제 집으로 도로 가버렸다 한 것이라던지, 또는 춘향은 매를 때려 옥 중에 가두어 두고 변사도가 늙은 과부를 시켜 다시 그 마음을 돌려보려다가 실패하였다 한 것이라던지, 또 춘향모마저 그 딸에게 훼절하기를 권했다 하는 것들의 개축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춘향이 옥중에 갇혀 달거리로 이도령을 사모하다가 황릉묘의 꿈을 꾸는 것으로 이 상권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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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6: 12. 萬古烈女獄中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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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원문1번= {{TagSpage|130-3}}本書는 李鍾楨의 名義로 大正 14年 3月 22日에 光東書局과 漢城圖書株式會社에서 發行하였다. 그러나 本書는 다만 獄中花를 古本春香傳으로 增補한데 지나지 못하였는데 첫째 들면서 始初에 古本春香傳의 序曲文 即 <cite no="XX">「旅閣같은 이 天地⋯」</cite>云云의 三千里江山遊覽歌를 引用하여 獄中花의 <cite no="XX">「苧羅山下 若耶溪에⋯」</cite>云云에 繼續하였고, 또 廣寒樓 앞에 나타난 春香이(自14頁 至18頁), 春香의 이름(24頁), 사랑歌(自57頁 至60頁), 春香의 獄中苦嘆과 春香母의 嘆息(自152頁 至160頁 抄取) 御史의 途中探問(自171至177頁 抄取), 御史의 南原當到(自180頁 至181頁), 春香의 獄中夢事(自186頁 至187頁), 獄門에서 御史와 春香의 相逢 (自199頁 至200頁), 御史의 東軒坐起(自226頁 至231頁 抄取) 其他를 古本春香傳에서 引用하여 獄中花의 그에 代入하였다. {{TagPage|131-1}}따라서 여기에 自然히 그 連絡 上 얼마끔 그 플로트에 變更이 있었음은 不得已하였거니와 또 本書가 發行者의 이름을 달리할 뿐 아니라 改題하여 出版한만큼 本書 編著의 創案이 全然 없었던 바도 아니다. 이를테면 李道令이 房子를 데리고 春香집을 찾아가서 門밖에서 안 動靜을 살피니 마침 春香母가 春香房에 와서 靑龍云云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기로 李道令이 이것을 듣고 한 계교를 생각하여 春香母에게 冊房에서 글을 읽다가 잠긴 조니 非夢似夢 間에 自己 몸이 莊周蝴蝶이 되어 春香집 花階에 와서 놀았음으로 戀戀하여 지금 찾아왔다 하는 것이 그것인데, 그런 것은 조금씩 곳곳이 있는 것을 發見할 수 있다. 그러나 元體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獄中花를 古本春香傳으로 增補하였다 함에는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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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6해독문1번= 본서는 이종정의 명의로 대정 14년 3월 22일에 광동서국과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하였다. 그러나 본서는 다만 옥중화를 고본춘향전으로 증보한 데에 지나지 못하였는데 첫째 들면서 시초에 고본춘향전의 서곡문 즉 <cite no="XX">"旅閣같은 이 天地⋯"</cite>운운의 삼천리강산유람가를 인용하여 옥중화의 <cite no="XX">"苧羅山下 若耶溪에⋯"</cite>운운에 계속하였고, 또 광한루 앞에 나타난 춘향이(14혈부터 18혈까지), 춘향의 이름(24혈), 사랑가(57혈부터 60혈까지), 춘향의 옥중고탄과 춘향모의 탄식(152혈부터 160혈까지 초취) 어사의 도중탐문(171혈부터 177혈까지 초취), 어사의 남원당도(180혈부터 181혈까지), 춘향의 옥중몽사(186혈부터 187혈까지), 옥문에서 어사와 춘향의 상봉 (199혈부터 200혈까지), 어사의 동헌좌기(226혈부터 231혈까지 초취) 기타를 고본춘향전에서 인용하여 옥중화의 그에 대입하였다. 따라서 여기에 자연히 그 연락 상 얼마 쯤 그 플로트에 변경이 있었음은 부득이했거니와 또 본서가 발행자의 이름을 달리할 뿐 아니라 개제하여 출판한 만큼 본서 편저의 창안이 전연 없었던 바도 아니다. 이를테면 이도령이 방자를 데리고 춘향집을 찾아가서 문밖에서 안 동정을 살피니 마침 춘향모가 춘향방에 와서 청룡 운운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기로 이도령이 이것을 듣고 한 계교를 생각하여 춘향모에게 책방에서 글을 읽다가 잠긴 조니 비몽사몽 간에 자기 몸이 장주호접(莊周蝴蝶)이 되어 춘향집 화계(花階)에 와서 놀았음으로 연연하여 지금 찾아왔다 하는 것이 그것인데, 그런 것은 조금씩 곳곳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원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옥중화를 고본춘향전으로 증보하였다 함에는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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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7: 13. 增像演藝獄中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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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원문1번= {{TagSpage|131-2}}本書는 玉蓮庵이 監校한 古優丁北平의 唱本인데 一名 漢鮮文春香傳이라 하여 洪淳泌의 名義로 大正 15年 12月 20日에 京城書簾組合에서 發行하였다. 本書 亦是 獄中花의 翻案本이거니와 書題에 演藝라는 冠詞가 붙은만큼 純全이 演藝 目的으로 編述된 책이다. 그리하여 內容을 左와 如히 全部 19幕에 나누었다. <blockquote no="XX">第一幕, 鞦韆<br/>第二幕, 冊房讀書<br/>第三幕, 百年結約 <br/>{{TagPage|132}}第四幕, 사랑노래<br/>第五幕, 離別<br/>第一場 南原府東軒, 第二場 春香家, 第三場 五里亭<br/>第六幕, 相思獨愁心<br/>第七幕, 新官到任<br/>第八幕, 妓生點考場<br/>第九幕, 春香捉來<br/>第一場 春香家, 第二場 官庭, <br/>第十幕, 春香獄囚<br/>第十一幕, 李道令科擧場<br/>第十二幕, 李御史南原下來<br/>第一場 〇〇, 第二場 房子偶逢, 第三場 御史聽農歌<br/>第十三幕, 獄中解夢<br/>第十四幕, 御史春香家來訪<br/>第十五幕, 御史獄中往訪<br/>第十六幕, 南原府使生日宴<br/> {{TagPage|133-1}}第十七幕, 御史出道 <br/>第十八幕, 御史春香放送<br/>第十九幕, 御史春香感舊情談</blockquote>그리고 各幕 各場에는 設備와 出場人物을 記入하였는데 이를이면 第一幕 鞦韆에<blockquote no="XX">(設備)烏鵲橋, 廣寒樓, 柳林, 鞦韆, 具鞍驢, 酒看床 <br/>(出場)春香, 小婢上丹, 李道令, 房子羅用釗</blockquote>이렇게 되어 있다. 또 本書 目次 끝에 注意라 하여 <cite no="XX">「此書는 演劇에도 應用하게된者이니 書中 △⋯⋯△票가 有함은 聲曲을 用하는 部分을 示함이라」</cite>한 바와 같이 原文 中 聲曲을 用할 部分에는 一一히 △票를 票示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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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원문2번= {{TagSpage|133-2}}일로 보아 本書는 벌써 한 脚本의 體裁를 整齊하였으나, 春香傳이 元來 戱曲的 小說로써 發達하여 온 것은 앞에서도 說來한 바이거니와 이와 같이 그 體裁까지를 完全이 脚本 形式에 整齊한 것은 本書에 와서 처음이라 하여도 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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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원문3번= {{TagSpage|133-3}}그러나 그 풀로트에 있어서는 獄中花와 別다름이 없었다. 다음에 若干 그 닯은 點만을 들어보면 첫째 春香은 本書에서는 月梅와 徐府使와의 所生이라 하여 姓을 徐氏로 改姓하여 있고, 廣寒樓 앞에서의 鞦韆은 그 母가 上丹이를 불러서 나가서 鞦韆이나 하고 오라하여 하였다 하며, 春香이가 廣寒樓로부터 돌아오니 春香母 夕飯 後에 春香에게로 와서 靑龍의 꿈 이야기를 하고 오늘 廣寒樓에 나가서 別 일이 없었느냐 묻는다. 그래서 上丹이가 옆에 있다가 房子에게 辱을 보았다 하니 春香母 놀라면서 春香에게 몸을 操心하라 當付하였다. 또 五里亭에서의 離別은 春香母가 春香이를 데리고 나왔었다 하였는데 여기에 春香의 人物은 獄中花에서보다 더 一層 凡節家의 處女로 되었다. 그리고 {{TagPage|134-1}}그다음 離別 後의 春香은 相思와 愁心으로 病이 되어 長歎息만 하고 있을 때에 行首妓生이 나와서 春香母에게 離別한 님을 부질없이 생각할 것이 아니니 戶長에게 말하여 妓案에 着名하도록 하라 勸한다. 그럴수록 春香은 더욱 李道令 생각이 懇切할 것이나 이때 마침 서울서 下人이 와서 李道令의 편지를 傳한다. 李道令 及第 後 御史가 되어 南原으로 내려오는데 여기서는 古本春香傳의 影響을 받아 途中 어떤 酒幕에 드니 南原 산다는 行人이 府使의 訟事處決이 不公平할뿐 아니라 烈女 春香을 嚴治下獄하여 去月 初에 죽어서 이 넘에 草殯하였다 함으로 그 말을 곧이듣고 그곳을 찾아가서 울다가 그草殯主인 姜座首에게 辱을 보았다고 하였다. 또 御史出道 後에는 御史가 公事를 마치고 春香집으로 나와 本官을 請하니 卞府使가 惶劫하여 微服으로 찾아와서 印兵符를 끌러서 올리면서 謝罪를 하였는데 이럴 때에 春香母가 또한 春香의 貞節이 本官으로부터 빛났으니 寬大히 容恕하여 주라 請하였다. 勿論 여기도 本官은 獄中花와 마찬가지로 容恕되었으나 春香母의 活躍이 이까지 미쳤을은 注目된다. 이外에 또 本書는 李道令의 父母가 春香에게 金品을 보내주었다는 것이라든지 또 御史가 萬福寺라는 절에 들러 施主를 하였다는 것은 取하지 않았고, 甚至於 春香의 黃陵廟 夢事와 御史의 路上夢事까지 빼어버려 얼마큼 獄中花의 풀로트를 變更하려 한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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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원문4번= {{TagSpage|134-2}}그러나 本書는 그 플로트는 勿論이요, 그 表現한 言語 文章에까지 大部分 獄中花의 그것을 그냥 踏襲하였는데, 다만 가끔 古本春香傳의 影響을 받아 먼저의 所謂 春香의 草殯이란 것이 벌써 그랬지마는 文章에 있어서도 古本春香傳의 그대로를 引用한 데도 있다. 即 房子의 春香誘引 (8頁) 春香의 이름(自20頁 至21頁) 春香의 房치레(自21頁 至23頁) 李道令의 사랑歌(自30頁 至33頁) 等은 곧 그것이다. 그리고 또 本書는 其他 다른 異本에서도 얼마 影響을 받는 듯하여 御史가 途中에서 春香의 편지를 받는 것과 그 當時의 房子 態度같은 것은 增修春香傳에서 襲用하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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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해독문1번= 본서는 옥련암이 감교한 고우정 북평의 창본인데 일명 한선문춘향전이라 하여 홍순필의 명의로 대정 15년 12월 20일에 경성서렴조합에서 발행하였다. 본서 역시 옥중화의 번안본이거니와 서제에 연예라는 관사가 붙은만큼 순전히 연예 목적으로 편술된 책이다. 그리하여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전부 19막에 나누었다. <blockquote no="XX">第一幕, 鞦韆<br/>第二幕, 冊房讀書<br/>第三幕, 百年結約 <br/>第四幕, 사랑노래<br/>第五幕, 離別<br/>第一場 南原府東軒, 第二場 春香家, 第三場 五里亭<br/>第六幕, 相思獨愁心<br/>第七幕, 新官到任<br/>第八幕, 妓生點考場<br/>第九幕, 春香捉來<br/>第一場 春香家, 第二場 官庭, <br/>第十幕, 春香獄囚<br/>第十一幕, 李道令科擧場<br/>第十二幕, 李御史南原下來<br/>第一場 〇〇, 第二場 房子偶逢, 第三場 御史聽農歌<br/>第十三幕, 獄中解夢<br/>第十四幕, 御史春香家來訪<br/>第十五幕, 御史獄中往訪<br/>第十六幕, 南原府使生日宴<br/> 第十七幕, 御史出道 <br/>第十八幕, 御史春香放送<br/>第十九幕, 御史春香感舊情談</blockquote>그리고 각 막 각 장에는 설비와 출장 인물을 기입하였는데 이를테면 제 1막 추천에<blockquote no="XX">(設備)烏鵲橋, 廣寒樓, 柳林, 鞦韆, 具鞍驢, 酒看床 <br/>(出場)春香, 小婢上丹, 李道令, 房子羅用釗</blockquote>이렇게 되어 있다. 또 본서 목차 끝에 주의라 하여 <cite no="XX">"此書는 演劇에도 應用하게된者이니 書中 △⋯⋯△票가 有함은 聲曲을 用하는 部分을 示함이라"</cite>한 바와 같이 원문 중 성곡을 쓸 부분에는 일일이 △표를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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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해독문2번= 이로 보아 본서는 벌써 한 각본의 체재를 정제하였으나, 춘향전이 원래 희곡적 소설로써 발달하여 온 것은 앞에서도 설래한 바거니와 이와 같이 그 체재까지를 완전이 각본 형식에 정제한 것은 본서에 와서 처음이라 하여도 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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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해독문3번= 그다음 이별 후의 춘향은 상사와 수심으로 병이 되어 긴 탄식만 하고 있을 때에 행수 기생이 나와서 춘향모에게 이별한 님을 부질 없이 생각할 것이 아니니 호장에게 말하여 기안에 착명하도록 하라 권한다. 그럴수록 춘향은 더욱 이도령 생각이 간절할 것이나 이때 마침 서울서 하인이 와서 이도령의 편지를 전한다. 이도령 급제 후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오는데 여기서는 고본춘향전의 영향을 받아 도중 어떤 주막에 드니 남원 산다는 행인이 부사의 송사처결이 불공평할 뿐 아니라 열녀 춘향을 엄치하옥하여 거월 초에 죽어서 이 넘에 초빈하였다 함으로 그 말을 곧이 듣고 그곳을 찾아가서 울다가 그 초빈 주인 강좌수에게 욕을 보았다고 하였다. 또 어사출도 후에는 어사가 공사를 마치고 춘향집으로 나와 본관을 청하니 변부사가 황겁하여 미복으로 찾아와서 인병부를 끌러서 올리면서 사죄를 하였는데 이럴 때에 춘향모가 또한 춘향의 정절이 본관으로부터 빛났으니 관대히 용서하여 주라 청하였다. 물론 여기도 본관은 옥중화와 마찬가지로 용서되었으나 춘향모의 활약이 이까지 미쳤을은 주목된다. 이외에 또 본서는 이도령의 부모가 춘향에게 금품을 보내주었다는 것이라든지 또 어사가 만복사라는 절에 들러 시주를 하였다는 것은 취하지 않았고, 심지어 춘향의 황릉묘몽사와 어사의 노상몽사까지 빼어버려 얼마만큼 옥중화의 풀로트를 변경하려 한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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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7해독문4번= 그러나 본서는 그 플로트는 물론이요, 그 표현한 언어 문장에까지 대부분 옥중화의 그것을 그냥 답습하였는데, 다만 가끔 고본춘향전의 영향을 받아 먼저의 소위 춘향의 초빈이란 것이 벌써 그랬지마는 문장에 있어서도 고본춘향전의 그대로를 인용한 데도 있다. 즉 방자의 춘향유인(8혈) 춘향의 이름(20혈부터 21혈까지) 춘향의 방치레(21혈부터 23혈까지) 이도령의 사랑가(30혈부터 33혈까지) 등은 곧 그것이다. 그리고 또 본서는 기타 다른 이본에서도 얼마 영향을 받는 듯하여 어사가 도중에서 춘향의 편지를 받는 것과 그 당시의 방자 태도같은 것은 증수춘향전에서 습용하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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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8: 14. 萬古烈女圖像獄中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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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8원문1번= {{TagSpage|135}}本書는 李國唱 唱本, 無然居士 校錄이라 하여 昭和 10年 12月 16日에 高敬相의 名義로 世昌書館, 三千里書舘에서 發行하였는데 表紙에는 다시 萬古貞烈女中花라 붙였다. 그리고 이와 꼭 같은 책이 圖像獄中花란 이름으로 昭和 12年 12月 25日에 申泰三의 名義로 또 前記 同書舘에서 發行되었다. 그러나 內容은 亦是 獄中花의 飜案本에 지나지 못하였는데 다만 本文을 全部 8章에 나누어 李道令이 廣寒樓서 春香을 멀리 보고 그날 밤 春香집을 찾는데 까지를 第 1章,그다음 百年을 結緣하고 사랑으로 지나는 데까지를 第 2章, 李道令이 春香의 집에 나와 離別하는 데까지를 第 3章, 五柳亭에서 離別한 後 春香이 獨宿空房 살이를 하는데 卞府使 到任하여 春香 잡으러 오는 데까지를 第 4章, 春香이 잡혀와서 獄中生活하는 데까지를 第 5章, 春香이 獄中에서 편지 써서 李道令에게 부치고, 李道令은 其間 御史가 되어 南原으로 오는 途中에 春香은 獄中에서 獄窓櫻桃花落의 꿈을 꾸고 解夢하는 데까지를 第 6章, 御史 春香집 當到하여 獄中으로 春香을 만나보고 廣寒樓로 나와 驛卒에게 明日의 舉事를 命令하는 데까지를 第 7章, 그 以後를 第 8章으로 하였고 풀로트에 있어서는 李道令과 春香이 離別 後, 獄中花에서는 李道令의 父母가 春香에게 金品을 보내주었다 하였는 것을, 여기서는 그것을 빼어 버리고 그 代身 서울서 李道令으로부터 편지가 오고 春香母는 그 편지와 함께 於音이 오지 않았음을 섭섭히 생각하였으며, 또 春香이 守節한단 말을 듣고 春香을 誘惑할라는 사람이 四方에서 모여들고 春香母 또한 財物에 慾心이 나서 그 딸을 달래보았다 하였다. 그리고 다음은 順序의 顚倒만이거니 {{TagPage|136-1}}와 御史는 南原으로 내려오는 途中에 아직 春香의 편지를 받지 않고 먼저 萬福寺에 들러 중들이 春香을 爲해 齋 올리는 것을 보고 비로소 春香이 獄中에서 苦生하는 것을 알았다 하였고, 또 御史出道 後에는 春香보다 먼저 本宿을 불러서 後日의 善治를 督勵하였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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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8원문2번= {{TagSpage|136-2}}그러나 이것쯤은 그리 大端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한 가지 여기서 注意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春香母의 熊度다. 春香 閭閣家의 處女로 하고 同時에 春香母의 爲人을 비록 退妓라는 이름은 붙어 있을망정 그 態度를 퍽 점잖이 하여 品位있는 夫人으로 한 것은 完版春香傳 以來 모든 異本의 功勞이었는데, 本書에 와서는 다시 되돌아 가서 딸의 貞操를 팔아 財物을 貪한다는, 妓生母의 그 本色을 나타냈음은 어째서인가. 생각건대 이것은 뒤에서 말할 烏鵲橋의 影響을 입은 것이 아닌가 하는데 이 點에 對하여는 다시 뒤에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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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8원문3번= {{TagSpage|136-3}}그리고 本書는 그 表現한 用語에서나 文章에서도 獄中花와 別다름이 없었다. 獄中花에<blockquote no="XX">『⋯府院君 外三寸이오 吏曹判書 同姓祖父요 南原府使 當身 어른이니 萬一 아니가면 來日아침 朝仕後에 너의 母親 잡아다가 冊房短墻안에 마주거리하게 되면 너인들 마음 어떠하며 나인들 마음 좋을소냐, 가리거든 가고말랴거든 말렴으나 나는 간다 간다』 <br/>春香이 暫間 어리석어 房子 얼렁 얼렁하는 말에 속은듯이 하는 말이<br/>『글세 房子야 들어보아라, 꽃꽃마다 앉어 노는 나비를 꽃이 어이 딸아가리. 尊重하신 道令님이 卑陋한 常漢 몸을 오라시니 感激하나 女子廉恥못가겠다. 道令님前에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 여쭈어라』<br/>房子 할일 없어 건너가고 春香은 집으로 돌아 가는지라</blockquote>{{TagPage|137}}한 것을 本書에서는 <blockquote no="XX">『⋯府院君이 外三寸이요 吏曹判書 同姓祖父요 南原府使 당신 어른이니 만일 가지 않았다는 來日 아침 朝化後에 너의 母親 잡아다가 冊房短墻안에 마주거리 하게되면 너인들 마음이 좋으며 나인들 좋으랴. 이만치만 해 두니 가고싶으면 가고 싶으면 그만두어라. 나는 간다』 <br/>房子 휙 돌아서 가야하니 春香이 房子를 부른다<br/>『그래 이년석아』<br/>『밤낮 이년석 저년석 서방을 삼을년석하니 인전 듣기 싫다. 나는 간다』<br/>『이애 房子야 노여워말고 내말을 들어라, 꽃을 찾는 나비들을 꽃이 어이 딸아가리. 尊貴하신 道令님이 이몸을 부르시니 뜻은 惶恐感謝하나 女子道理로서 廉恥따가 못가겠다. 道令님前 올리는 말씀 네가 代身 알외다고. 雁隨海에 蝶隨花요 隨隨穴, 이 세마디 부대 부대 傳해다고』<br/>春香은 上丹을 다리고 제집으로 돌아가고 房子는 할일없어 道令님前으로 건너간다.</blockquote> 이렇게 하였을 程度인데, 다만 本書로서 한 特色을 찾는다면 書名 圖像獄中花라 이른만큼 揷畵를 많이 썼다는 것이다. 이 揷畵도 徒來의 活字本 異本이 擧皆 썼지마는 그는 다 卷頭에 몰아 부쳤던 것을 本書에서는 그것을 中間中間이 原文 中에 넣었다.  이것은 全혀 本書에 와서 처음으로 試驗한 것이요 또 本書는 이로써 새로운 人氣를 끌려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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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8해독문1번= 본서는 이국창 창본, 무연거사 교록이라 하여 소화 10년 12월 16일에 고경 상의 명의로 세창서관, 삼천리서관에서 발행하였는데 표지에는 다시 만고정열녀중화라 붙였다. 그리고 이와 꼭 같은 책이 도상옥중화란 이름으로 소화 12년 12월 25일에 신태삼의 명의로 또 전기 동서관에서 발행되었다. 그러나 내용은 역시 옥중화의 번안본에 지나지 못하였는데 다만 본문을 전부 8장에 나누어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멀리 보고 그날 밤 춘향집을 찾는데까지를 제 1장,그다음 백 년을 결연하고 사랑으로 지나는 데까지를 제 2장, 이도령이 춘향의 집에 나와 이별하는 데까지를 제 3장, 오류정에서 이별한 후 춘향이 독수공방 살이를 하는데 변부사 도임하여 춘향 잡으러 오는 데까지를 제 4장, 춘향이 잡혀와서 옥중생활하는 데까지를 제 5장, 춘향이 옥 중에서 편지 써서 이도령에게 부치고, 이도령은 기간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오는 도중에 춘향은 옥 중에서 옥창앵도화락의 꿈을 꾸고 해몽하는 데까지를 제 6장, 어사 춘향집 당도하여 옥중으로 춘향을 만나보고 광한루로 나와 역졸에게 명일의 거사를 명령하는 데까지를 제 7장, 그 이후를 제 8장으로 하였고 풀로트에 있어서는 이도령과 춘향이 이별 후, 옥중화에서는 이도령의 부모가 춘향에게 금품을 보내주었다 하였는 것을, 여기서는 그것을 빼어 버리고 그 대신 서울서 이도령으로부터 편지가 오고 춘향모는 그 편지와 함께 어음이 오지 않았음을 섭섭하게 생각하였으며, 또 춘향이 수절한단 말을 듣고 춘향을 유혹할라는 사람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춘향모 또한 재물에 욕심이 나서 그 딸을 달래보았다 하였다. 그리고 다음은 순서의 전도만이거니와 어사는 남원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아직 춘향의 편지를 받지 않고 먼저 만복사에 들러 중들이 춘향을 위해 재 올리는 것을 보고 비로소 춘향이 옥 중에서 고생하는 것을 알았다 하였고, 또 어사출도 후에는 춘향보다 먼저 본숙을 불러서 후일의 선치를 독려하였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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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8해독문2번= 그러나 이것 쯤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한 가지 여기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춘향모의 웅도다. 춘향 여각가의 처녀로 하고 동시에 춘향모의 위인을 비록 퇴기라는 이름은 붙어 있을망정 그 태도를 퍽 점잖게 하여 품위 있는 부인으로 한 것은 완판춘향전 이래 모든 이본의 공로이었는데, 본서에 와서는 다시 되돌아가서 딸의 정조를 팔아 재물을 탐한다는, 기생 모의 그 본색을 나타냈음은 어째서인가. 생각건대 이것은 뒤에서 말할 오작교의 영향을 입은 것이 아닌가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뒤에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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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8해독문3번= 그리고 본서는 그 표현한 용어에서나 문장에서도 옥중화와 별다름이 없었다. 옥중화에<blockquote no="XX">"⋯府院君 外三寸이오 吏曹判書 同姓祖父요 南原府使 當身 어른이니 萬一 아니가면 來日아침 朝仕後에 너의 母親 잡아다가 冊房短墻안에 마주거리하게 되면 너인들 마음 어떠하며 나인들 마음 좋을소냐, 가리거든 가고말랴거든 말렴으나 나는 간다 간다" <br/>春香이 暫間 어리석어 房子 얼렁 얼렁하는 말에 속은듯이 하는 말이<br/>"글세 房子야 들어보아라, 꽃꽃마다 앉어 노는 나비를 꽃이 어이 딸아가리. 尊重하신 道令님이 卑陋한 常漢 몸을 오라시니 感激하나 女子廉恥못가겠다. 道令님前에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 여쭈어라"<br/>房子 할일 없어 건너가고 春香은 집으로 돌아 가는지라</blockquote>한 것을 본서에서는<blockquote no="XX">"⋯府院君이 外三寸이요 吏曹判書 同姓祖父요 南原府使 당신 어른이니 만일 가지 않았다는 來日 아침 朝化後에 너의 母親 잡아다가 冊房短墻안에 마주거리 하게되면 너인들 마음이 좋으며 나인들 좋으랴. 이만치만 해 두니 가고싶으면 가고 싶으면 그만두어라. 나는 간다" <br/>房子 휙 돌아서 가야하니 春香이 房子를 부른다<br/>"그래 이년석아"<br/>"밤낮 이년석 저년석 서방을 삼을년석하니 인전 듣기 싫다. 나는 간다"<br/>"이애 房子야 노여워말고 내말을 들어라, 꽃을 찾는 나비들을 꽃이 어이 딸아가리. 尊貴하신 道令님이 이몸을 부르시니 뜻은 惶恐感謝하나 女子道理로서 廉恥따가 못가겠다. 道令님前 올리는 말씀 네가 代身 알외다고. 雁隨海에 蝶隨花요 隨隨穴, 이 세마디 부대 부대 傳해다고"<br/>春香은 上丹을 다리고 제집으로 돌아가고 房子는 할일없어 道令님前으로 건너간다.</blockquote>이렇게 하였을 정도인데, 다만 본서로서 한 특색을 찾는다면 서명 도상옥중화라 이른만큼 삽화를 많이 썼다는 것이다. 이 삽화도 도래의 활자본 이본이 거개 썼지만 그는 다 권두에 몰아 부쳤던 것을 본서에서는 그것을 중간중간에 원문 중에 넣었다. 이것은 전혀 본서에 와서 처음으로 시험한 것이요 또 본서는 이로써 새로운 인기를 끌려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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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9: 15. 奇綠小說烏鵲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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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9원문1번= {{TagSpage|138-1}}本書는 昭和 2年 12月 25日에 高裕相의 名義로 灐東蜚舘에서 發行하였다. 從來의 異本과는 매우 特色있는 春香傳이라 할 수 있는데, 앞에서 이미 말하여 온 바와 같이 獄中花 以後의 所謂 活字本春香傳은 擧皆 獄中花의 異本的 價値밖에 없었다 하여도 過言이 아니였었다. 그럼 나는 그러한 態度를 一蹴하고 全然히 다른 立場에서 春香傳을 써보자 하는 데서 나온 매우 滋味있는 異本이다. 첫째 春香과 李道令이 서로 만나는 데서부터 春香이 下獄되는 데까지는 全然 그 풀로트를 뜯어 고쳤으니, 이것을 部分的으로 말하기보다 차라리 다음에 그 前半의 梗槪를 써서 말하는 것이 便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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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9원문2번= <blockquote no="XX">{{TagSpage|138-2}}(梗概) 肅宗大王 때에 成參判守이라는 사람이 黨爭으로 말미아마 南原府使로 補外가 되었다. 補外로 온바에 內行도다리고 올수 없음으로 衣服과 飮食等節이 不便하여 不得已 月梅라는 老妖를 守廳으로 들였더니 얼마 아니있다가 다시 朝廷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月梅는 벌써 姙娠數的月이 었었다. 그래서 月梅는 그런 緣由로 成參判에 告目하였더니 男女間에 낳는대로 젖줄이나 떠러지면 다려가겠다 하였다. 그後 春香이를 낳았으나 成參判은 上京 後三四年에 偶然히 得病하여 作故하고 그 家族은 落鄕하여 因해 消息이 끊어저 버렸음으로 보내도 못하고 어머니가 다리고 있는데 어느듯 十七歲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完版本과 別다름이 없었다) <br/>이때 南原府使로 온이는 서울 三淸洞李承旨基然인데 그 아들에 夢龍(冠名은 鍾雲)이가 있었다. 南原으로 {{TagPage|139}}올때는 벌써 洪判書凱彥의 딸과 約婚이 있었지마는 結婚하지 않고 道令으로 있었다. 南原에 온 後에 一年이 되도록 밖을 나지않더니 하로는 春興을 못이기여 冊房(道令의 從兄인데 名은 鍾世)과 같이 詩軸를 準備하여 가지고 房子 다리고 나왔다가 忽然히 비를 만나 어느 閭閻집 〿牙에 避하였던바 그집이 곧 春香의 집이었었다. 여기에또 因緣이 매치자니 그랬던가 春香이가 또한 마당에 나와 이것 저것 설것다가 둘의 눈이 偶然히 마주치게 되었다 일로부터 李道令의 戀戀한 마음은 禁할수 없어 일로 病이 날 地境이었었다. 그래서 하루는 다시 花柳求景을 憑蒲하고 冊房과 같이 春香집을 나가 月梅를 만나보고 約婚을 했더니 春香母는 비록 마음이 있었는 듯하였으나 春香은 容易히 許할려하지 않았다. 그後로 冊房이 數次 나와 그 뜻을 들었으나 如前히 그 態度가 變함이 없었음으로 李道令은 그만 글로하여 病이 깊이 들어 病席에 눕기까지 되었다. 父母들은 큰 걱정이 되며 여러가지 藥으로 治療하여 보았으나 相思로난 病이 藥을 쓴다 나을 理가 없었다. 여기에 冊房은 가진 手段을 다쓰고, 春香母 또한 萬端으로 春香을 說誘하였던바 春香 元來 李道令이 싫었던바도 아니었고,  李道令이 오늘날 自己로 因해 病이 깊어 거의 死境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感激하여 許諾했다. 일로부터 春香 李道令 굳은 結約이 되여 자주 만나 사랑의 가운데에 歲月이 가는 것을 알지 못하였더니 만침내 이것이 使道의 안바가 되여 하루밤에는 春香집으로부터 道令을 잡아와서 크게 꾸중을 하고 兼하여 일로써 治政할 面目이 없다하고 自己도 監營에 辭狀하고 올라갈터이니 速히 內行을 뫼시고 上京하라 命하였다. 이렇게 되니 李道令도 할수 없게 되여 春香과 離別을 하게되는데, 父母에게 꾸중을 듣고 또 나갈수없어 春香에게 편지를 써서 부치고 떠난다. 이때 春香은 道令이 使道에게 잡혀가는것을 보고 가슴을 두근거리다가 또 道令의 편지를 받으니 가슴이 터지는 {{TagPage|140-1}}듯 하였으나 어쩌지 못할 事情인줄 알고 母女가 五里亭으로 나와 後期約을 當付하고 離別을 한다. 뒤미처 나오는 道令의 母親이 이 光景을 보고 또한 아들의 情을 생각하여 春香을 불러보고 그 人物이 非凡함을 稱讚하고 信을 지켜 後日 道令님이 찾을 날을 기다리라하였다. 春香도 이에 매우 感激하여 信을 지켜 찾는 날을 기다리겠다 하고 情票로 玉指環 한짝을 끌러 李道令을 주고 愛惜히 나누었다. 그後 使道는 監營에 辭狀을 낸다하더니 채미처 手續도 하기 前에 承旨에 陞差되여 上京하게되고 道令은 上京後 얼마 아니있다가 洪氏에게 장가들었다. <br/>그러나 李夢龍은 舊情을 잊지못하여 自然히 낯빛에 나타나니 그 母親이 아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하루는 그男便을 對하여 春香을 다리오고자 하였다. 그럴 때에 承旨는 言約이 비록 있다하드라도 子息의 非禮行事를 일우어 주는 것은 道理가 아니니 許諾할수 없거니와 春香이가 萬一에 信을 지켜 다른 男子를 쫓지 않는다면 안돌아볼 수 없으니 夢龍이 科擧하여 벼슬에 오르거든 다려오자 하였다.</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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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9원문3번= <blockquote no="XX">{{TagSpage|140-2}}그러나 李道令이 올라간後의 春香집은 漸漸 零落하여 于先 生活이 困難하게 되매 春香母의 생각에는 李道令을 기다린다 하였지마는 그것이 期限이 없는 일이니 도리어 딸을 다른 곳에 치워 남의 德이라도 보고자하였다 이機會를 엿본 李大用이란 富者의 아들이 春香母에 財物을 많이 주고 딸을 勸誘하라 하니 春香母 또한 財物에 貪이나서 春香에게 節을 굽혀서 그사람을 딸른것이 可한듯이 여러번 달래 보았다. 그러나 春香은 終乃 듣들 않을뿐 아니라 그런 非禮의 財物을 받는 것을 怨望하였음으로 春香母도 할수 없이 그 財物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後도 여러 사람이 春香을 노리는者가 있었지마는 春香은 一毫도 글로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었더니 李道令의 父親이 올라간後 또 여러 府使가 갈리고 崔鍾楨이라고 하는 新官이 到任하였는데 이사람은 本是 好色之人이 {{TagPage|141-1}}라 春香이 絕色이란 말을 듣고 한번 보기를 願하여 먼저 春香母를 불러 딸을 잘 引導하여 보내라 한다.春香은 여기서도 또한 拒絶하였더니 府使는 春香母를 獄에 가두고 春香이가 들어오지 않으면 놓아 보내지 않겠다 하였다. 本來 孝誠이 至極한 春香은 그母가 獄에 가치어서 苦生하고 있는것을 그냥 보고 있을수 없어 不得已自身이 官庭에 나갔다 들어오는 春香을 본 本官은 이제야 所願을 푸는구나 하고 기뻐하였더니 春香은 亦是 屈하지 않었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使道의 行爲를 꾸짖고 所謂 官庭發惡을 하기때문에 여기에 府使는 威力을 가지고 春香을 笞杖三十을 加하여 下獄하였다.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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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9원문4번= {{TagSpage|141-2}}本書의 풀로트 上 甚한 變更은 以上의 것인데 이 以後의 後半에 와서는 獄中花와도 別다름이 없었다. 다만 春香의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向하는 사람은 前日 李道令을 모시는 房子가 아니고 普通 삯군이었으며, 途中에서 편지를 받은 御史는 그사람에게 自己는 마침 李道令 편지를 가지고 春香집으로 가는 사람이니 그 편지를 自己에게 맡기고 돌아가라 하고,  萬若 疑心이 나면 지금으로부터 2, 3日 後이면 自己가 春香 집으로 갈 터이니 거기서 만나자고 約束하여 보냈다 하였고, 또 御史는 中路에 萬福寺에 들었다는 것은 빼어 버렸으며 府使는 御史出道 後 罷職되고 말았 다 하였을 뿐이지만, 本書 全體를 두고 보면 實로 廣大한 풀로트의 改纂을 行하였다. 뿐만 아니라 本書는 또 그 體裁에 있어서도 從來의 春香傳과는 全然 달라 純全히 이것을 한 事實로 取扱하여 全體를 小說이라는 것보다 野談式으로 썼다. 그러기 때문에 從來의 歌曲的 部分은 그 그림자를 完全히 감추어 버렸을 뿐 아니라 陜諧弄談까지가 沒影하고 말았다. 또 人物에 있어서도 房子는 나귀를 몰고 다만 李道令을 모셨을 뿐이고, 香丹은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는데 그代身 冊房인 李道令의 從兄이 새로 나와 春香과 李道令의 結綠에 있어 많은 活躍을 하고 있다. 그리고 春香母는  {{TagPage|142-1}}元來 妓生인 만큼 그 妓生的 性格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春香은 本書에 와서 비로소 人妾이라 하는 것을 分明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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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9원문5번= {{TagSpage|142-2}}이와 같이 本書는 全面的으로 春香傳에 一大 改造를 꾀하여 春香傳 文學에 한 異彩를 發하고 있으나, 春香傳이 小說로 發達한지 몇百 年인지 알 수 없으나 如何튼 오늘에 數十種의 異本을 헤아리는 이때 本書와 같은 全然 系統이 닯은 異本이 있다는 것은 한 滋味있는 事實이라고 생각하며 同時에 獄中花가 나온 以後 아직 하나도 거기서 寸步의 距離를 떠나지 못한 듯한 느낌이 있는데 敢히 本書가 나왔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春香傳文學에 어떤 새로운 指針을 가리키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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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9해독문1번= 본서는 소화 2년 12월 25일에 고유상의 명의로 형동비관에서 발행하였다. 종래의 이본과는 매우 특색있는 춘향전이라 할 수 있는데, 앞에서 이미 말하여 온 바와 같이 옥중화 이후의 소위 활자본춘향전은 거개 옥중화의 이본적 가치밖에 없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그러한 태도를 일축하고 전연히 다른 입장에서 춘향전을 써보자 하는 데서 나온 매우 자미있는 이본이다. 첫째 춘향과 이도령이 서로 만나는 데서부터 춘향이 하옥되는 데까지는 전연 그 풀로트를 뜯어 고쳤으니, 이것을 부분적으로 말하기보다 차라리 다음에 그 전반의 경개를 써서 말하는 것이 편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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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9해독문2번= <blockquote no="XX">(경개) 숙종대왕 때에 성참판수이라는 사람이 당쟁으로 말미암아 남원부사로 보외가 되었다. 보외로 온 바에 내행도 데리고 올 수 없음으로 의복과 음식 등절이 불편하여 부득이 월매라는 노요를 수청으로 들였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다시 조정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월매는 벌써 임신 수개월이었다. 그래서 월매는 그런 연유로 성참판에 고목하였더니 남녀 간에 낳는 대로 젖줄이나 떨어지면 데려가겠다 하였다. 그 후 춘향이를 낳았으나 성참판은 상경 후 3, 4년에 우연히 득병하여 작고하고 그 가족은 낙향하여 인해 소식이 끊어져 버렸으므로 보내도 못하고 어머니가 다리고 있는데 어느덧 17세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완판본과 별다름이 없었다) <br/> 이때 남원부사로 온 이는 서울 삼청동 이승지기연인데 그 아들에 몽룡(관명은 종운)이가 있었다. 남원으로 올 때는 벌써 홍판서 개언의 딸과 약혼이 있었지만 결혼하지 않고 도령으로 있었다. 남원에 온 후에 일년이 되도록 밖을 나지 않더니 하로는 춘흥을 못 이기여 책방(도령의 종형인데 명은 종세)과 같이 시축를 준비하여 가지고 방자 데리고 나왔다가 홀연히 비를 만나 어느 여염집 〿아에 피하였던바 그집이 곧 춘향의 집이었었다. 여기에 또 인연이 매치자니 그랬던가 춘향이가 또한 마당에 나와 이것 저것 설것다가 둘의 눈이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이로부터 이도령의 연연한 마음은 금할수 없어 일로 병이 날 지경이 었었다. 그래서 하루는 다시 화류 구경을 빙포하고 책방과 같이 춘향집을 나가 월매를 만나보고 약혼을 했더니 춘향모는 비록 마음이 있었는 듯하였으나 춘향은 용이하게 허하려 하지 않았다. 그 후로 책방이 수 차 나와 그 뜻을 들었으나 여전히 그 태도가 변함이 없었음으로 이도령은 그만 그로 하여 병이 깊이 들어 병석에 눕기까지 되었다. 부모들은 큰 걱정이 되며 여러가지 약으로 치료하여 보았으나 상사로 난 병이 약을 쓴다 나을 리가 없었다. 여기에 책방은 가진 수단을 다 쓰고, 춘향모 또한 만단으로 춘향을 설유하였던 바 춘향 원래 이도령이 싫었던 바도 아니었고,  이도령이 오늘날 자기로 인해 병이 깊어 거의 사경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감격하여 허락했다. 이로부터 춘향 이도령 굳은 결약이 되어 자주 만나 사랑의 가운데에 세월이 가는 것을 알지 못하였더니 마침내 이것이 사도의 안 바가 되어 하룻밤에는 춘향 집으로부터 도령을 잡아와서 크게 꾸중을 하고 겸하여 이로써 치정할 면목이 없다하고 자기도 감영에 사상하고 올라갈터이니 속히 내행을 모시고 상경하라 명하였다. 이렇게 되니 이도령도 할수 없게 되여 춘향과 이별을 하게 되는데, 부모에게 꾸중을 듣고 또 나갈 수 없어 춘향에게 편지를 써서 부치고 떠난다. 이때 춘향은 도령이 사도에게 잡혀가는 것을 보고 가슴을 두근거리다가 또 도령의 편지를 받으니 가슴이 터지는 듯 하였으나 어쩌지 못할 사정인 줄 알고 모녀가 오리정으로 나와 훗날 기약을 당부하고 이별을 한다. 뒤미처 나오는 도령의 모친이 이 광경을 보고 또한 아들의 정을 생각하여 춘향을 불러보고 그 인물이 비범함을 칭찬하고 믿음을 지켜 후일 도령님이 찾을 날을 기다리라 하였다. 춘향도 이에 매우 감격하여 믿음을 지켜 찾는 날을 기다리겠다 하고 정표로 옥지환 한 짝을 끌러 이도령을 주고 애석히 나누었다. 그 후 사도는 감영에 사상을 낸다 하더니 채 미처 수속도 하기 전에 승지에 승차되여 상경하게 되고 도령은 상경 후 얼마 아니 있다가 홍씨에게 장가들었다.<br/> 그러나 이몽룡은 옛 정을 잊지 못하여 자연히 낯빛에 나타나니 그 모친이 아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하루는 그 남편을 대하여 춘향을 데려오고자 하였다. 그럴 때에 승지는 언약이 비록 있다 하더라도 자식의 비례행사를 이뤄주는 것은 도리가 아니니 허락할 수 없거니와 춘향이가 만일에 신을 지켜 다른 남자를 쫓지 않는다면 안 돌아볼 수 없으니 몽룡이 과거하여 벼슬에 오르거든 데려오자 하였다.</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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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9해독문3번= <blockquote no="XX">그러나 이도령이 올라간 후의 춘향집은 점점 영락(零落)하여 우선 생활이 곤란하게 됨에 춘향모의 생각에는 이도령을 기다린다 하였지마는 그것이 기한이 없는 일이니 도리어 딸을 다른 곳에 치워 남의 덕이라도 보고자 하였다. 이 기회를 엿본 이대용이란 부자의 아들이 춘향모에 재물을 많이 주고 딸을 권유하라 하니 춘향모 또한 재물에 탐이 나서 춘향에게 절을 굽혀서 그 사람을 따른 것이 가능한 듯이 여러 번 달래 보았다. 그러나 춘향은 종내 듣들 않을 뿐 아니라 그런 비례의 재물을 받는 것을 원망하였으므로 춘향모도 할 수 없이 그 재물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 후도 여러 사람이 춘향을 노리는 자가 있었지만 춘향은 일호도 그로 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더니 이도령의 부친이 올라간 후 또 여러 부사가 갈리고 최종정이라고 하는 신관이 도임하였는데 이 사람은 본시 호색지인이라 춘향이 절색이란 말을 듣고 한번 보기를 원하여 먼저 춘향모를 불러 딸을 잘 인도하여 보내라 한다. 춘향은 여기서도 또한 거절하였더니 부사는 춘향모를 옥에 가두고 춘향이가 들어오지 않으면 놓아 보내지 않겠다 하였다. 본래 효성이 지극한 춘향은 그 모가 옥에 갇혀서 고생하고 있는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부득이자신이 관정에 나갔다 들어오는 춘향을 본 본관은 이제야 소원을 푸는구나 하고 기뻐하였더니 춘향은 역시 굴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도의 행위를 꾸짖고 소위 관정발악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 부사는 위력을 가지고 춘향을 태장삼십을 가하여 하옥하였다.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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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9해독문4번= 본서의 풀로트 상 심한 변경은 이상의 것인데 이 이후의 후반에 와서는 옥중화와도 별다름이 없었다. 다만 춘향의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향하는 사람은 전일 이도령을 모시는 방자가 아니고 보통 삯꾼이었으며, 도중에서 편지를 받은 어사는 그사람에게 자기는 마침 이도령 편지를 가지고 춘향집으로 가는 사람이니 그 편지를 자기에게 맡기고 돌아가라 하고, 만약 의심이 나면 지금으로부터 2, 3일 후이면 자기가 춘향 집으로 갈 터이니 거기서 만나자고 약속하여 보냈다 하였고, 또 어사는 중로에 만복사에 들었다는 것은 빼어 버렸으며 부사는 어사출도 후 파직되고 말았다 하였을 뿐이지만, 본서 전체를 두고 보면 실로 광대한 풀로트의 개찬을 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본서는 또 그 체재에 있어서도 종래의 춘향전과는 전연 달라 순전히 이것을 한 사실로 취급하여 전체를 소설이라는 것보다 야담식으로 썼다. 그러기 때문에 종래의 가곡적 부분은 그 그림자를 완전히 감추어 버렸을 뿐 아니라 합해농담까지가 몰영(沒影)하고 말았다. 또 인물에 있어서도 방자는 나귀를 몰고 다만 이도령을 모셨을 뿐이고, 향단은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는데 그대신 책방인 이도령의 종형이 새로 나와 춘향과 이도령의 결록에 있어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그리고 춘향모는 원래 기생인 만큼 그 기생적 성격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춘향은 본서에 와서 비로소 인첩이라 하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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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9해독문5번= 이와 같이 본서는 전면적으로 춘향전에 일대 개조를 꾀하여 춘향전 문학에 한 이채를 발하고 있으나, 춘향전이 소설로 발달한 지 몇 백년인지 알 수 없으나 여하튼 오늘에 수십 종의 이본을 헤아리는 이때 본서와 같은 전연 계통이 닯은(다른) 이본이 있다는 것은 한 자미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옥중화가 나온 이후 아직 하나도 거기서 촌보의 거리를 떠나지 못한 듯한 느낌이 있는데 감히 본서가 나왔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춘향전 문학에 어떤 새로운 지침을 가리키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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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3일 (토) 00:1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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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이본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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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春香傳異本考 (二)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12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조윤제 역자 @ 집필일자 @ 게재연월 1940년 9월
시작쪽 107쪽 종료쪽 159쪽 전체쪽 53쪽 연재여부 연재 범주 논문 분야 @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목차







본문


본문1: 7. 獄中花


춘향전 이본을 대강 3기로서 나누어 본다면 경판춘향전에서 완판춘향전까지가 제1기, 완판춘향전에서 옥중화까지가 제2기, 옥중화이후가 제3기가 될 것인데 본서는 이해조의 편저로 대정 원년 8월 27일에 보급서관에서 그 초판이 발행되었다. 이해조라 하면 지금은 작고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새로운 바와 같이 이인직과 아울러 근대 신소설 시대의 대가로서 빈상설, 구의산, 소양정 기타의 작품이 있고, 또 일시는 매일신보사 기자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소설계에 활동할 시대는 세태가 시각으로 변하여 문학을 즐기고 문학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전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춘향전을 다시 복활시켰고 또 어느 정도까지 일로서 현대문학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홀로 춘향전의 이본으로서 그 광채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실로 과도기에 있는 조선소설로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 할 것인데 이후의 춘향전의 이본이라 한다면 거의 그 영향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정도까지 이의 번안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쪽수▶P107 春香傳 異本을 大綱 三期로서 나누어 본다면 京版春香傳에서 完版春香傳까지가 第一期, 完版春香傳에서 獄中花까지가 第二期, 獄中花以後가 第三期가 될 것인데 本書는 李海朝의 編著로 大正 元年 8月 27日에 普及書舘에서 그 初版이 發行되었다. 李海朝라 하면 지금은 作故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記憶에 새로운 바와 같이 李人稙과 아울러 近代 新小說 時代의 大家로서 鬢上雪, 九疑山, 昭陽亭 其他의 作品이 있고, 또 一時는 每日申報社 記者를 다닌 일도 있은 분이나, 그가 小說界에 活動할 時代는 世態가 時刻으로 變하여 文學을 즐기고 文學을 생각하는 것도 왼통 前과 달라졌 다. 이러한 때에 그는 春香傳을 다시 復活시켰고 또 어느 程度까지 일로서 現代文學을 刺戟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本書는 홀로 春香傳의 異本으로서 그 光彩를 빛내고 있을 뿐 아니라, 實로 過渡期에 있는 朝鮮小說로서 잊을 수 없는 ▶P108-1作品이라 할 것인데 以後의 春香傳의 異本이라 한다면 거의 그 影響을 입지 않은 것이 없고, 죄다 어느 程度까지 이의 飜案이라 하여도 過言이 아닐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벌서 대강 짐작이 될 바와 같이 본서는 단단히 종래의 춘향전에 대개찬을 꾀하였고 또 가급적 현대 생활의 감정을 넣어보려 애썼으니 이하 본서의 이 점에 대하여 대강 들어 보면, 첫째 그 형식에 있어 종래의 연속식올 분절식으로 고치고, 또 순언문체룔 언한문체로 써서 이 대신 한문자에는 일일이 그 옆에 언문으로 음역하였기 때문에 독서에 많은 편의를 주었으며, 다음 그 내용에 이르면 우선 벽두에 무슨 대왕 연간에 운운으로 시작하던 고대소설의 전형을 타파하고 벽두에

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苧羅山下 若耶溪에 西施가 鍾出하고, ⋯⋯ 湖南左道南原府는 東으로 智異山, 西으로 赤城江, 山水精神 어리여서 春香이가 삼겨 있다

이렇게 시작하였다.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할지 모르지만 춘향전으로 보아서는 대담한 파격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여기에 춘향전은 고대 소설에서 다시 신소설로 화장을 고처하고 세상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춘향에 대하여는 완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그를 여염집 처녀로 신장한 것은 물론이지만 춘향 모 월매와 성참판과의 관계 운운은 훨씬 뒤에 가서 춘향 모가 이도령에게 설명하는 말로 들리고, 처음에는 춘향 모의 태몽에 어떤 선녀 이화 도화 두 가지를 양손에 갈라쥐고 하늘로 나와서 도화를 내어주며 "이꽃을 잘 갖구어 李花接을 부쳤으면 오는 行樂 좋으리라. 李花 갖다 傳할 곳이 時刻이 急하기로 忽忽히 떠나노라"하였다 하여, 춘향과 이도령이 동시 16세의 동갑으로 만난 그 인연을 선천적으로 여기에 맺어 두고, 이도령이 광한루에 와서 춘향을 불렀을 때는 이명선씨 본과 같이 춘향은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말을 부갈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이도령이 그날 밤에 춘향 집을 찾았을 때는 완판본에 방자가 뒤쫓아 춘향 집으로 가서 춘향을 부를 때 춘향 모가 꿈이야기를 하듯이 마침 춘향 모가 춘향 방에와서 "너자는 枕上에서 彩雲이 일어나며 靑龍이 너를 물고 하날로 오르기로 龍의 허리를 안고 이리 궁굴 저리 궁굴하다가 깨였다"운운의 꿈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럴 때에 이도령이 밖에서 부르니 춘향 모가 깜짝 놀라 맞아들이었으나 여기도 이도령은 춘향을 예로써 맞이한 듯이 하여 춘향 모에게 그 딸의 허혼을 청하였고, 춘향은 그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이도령에게 일신을 바쳤는데, 사랑 끝에 이별이 되는 데는 이도령이 별로 그 모친에게 춘향 일을 삷다가 꾸중을 들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후 사도와 그 부인은 벌써 그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는 듯하여 떠날 때에는 춘향을 불러보려고까지 하다가 도령의 장습도 될 것 같고 하인 소시에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춘향 모녀에게 돈과 백미와 필목과 기타 패물을 후히 주어 위로하고 또 후일 도령님이 급제하면 장차 데려간다고도 일러주었다 하였다. 또 변부사는 이부사가 상경 후에 곧 온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다른 부사가 이부사의 뒤를 이어 왔다가 1년 만에 갈려 간 후에 도임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마 춘향으로 하여금 이도령을 사모하고 수절하는 시간적 여유를 주어,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절대로 그 절개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더 힘있게 말하고자 한 데에서 고안된 듯하나, 사실 종래의 이본은 이부사가 갈려간 후 곧 변부사가 도임하여 왔기 때문에 춘향의 절개에는 얼마쯤 손이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변부사의 우력에도 굴하지 않았다니까 물론 그를 의심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 이별한 곧 그다음이니까 하는 핸드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서와 같이 하여 두고 보면 춘향의 절개에는 아무 의심을 개입할 틈을 두지 않는다. 가히 편자의 조밀한 두뇌를 볼 것이나 이러한 점은 또 이 밖에도 있었다. 이것은 먼저 별춘향전에서도 그랬지만 춘향의 옥중서간인데 여기는 사령이 나와서 춘향에게 서울로 편지나 하여보라 권하고 춘향도 옳게 여겨 편지를 써서 부치는데 역시 전일 도령님을 뫼시고 다니던 방자를 불러 보냈다 하였다. 그리하여 어사가 도중에서 방자를 만나 그 편지를 받을 것이나, 어사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분하여 불의에 그놈을 단박에 삼문출도를 하여 봉고를 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방자에게 눈치를 보여 버렸다. 그런데 별탈향전은 이때 별로 방자에게 그런 눈치를 보였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그 방자에게 자기가 남원에 가기 전에는 아무 말을 내지 마라 당부하고 보냈지만 여기서는 방자에게 어사라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그 뒤 수습을 적당히 하지 않을 수 없어 그 방자를 운봉으로 보내는데, 방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주고 그것을 갖다 운봉관가에 드리고 주는 것이 있거든 받아가지고 오라 한다. 그러나 편지 내용은 그 놈이 가거든 잡아 가두어 두라 하였기 때문에 방자는 거기 가서 그만 금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비록 房子의 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운봉에게는 내통하는 것이 되지않나 하지만 그는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즉 운봉은 어사가 변부사의 생일연에 걸인의 형색을 하고 들어갔을 때 유독히 어사에게 동정하여 주었던 것이나 편자는 이 점을 날카로이 감득하여 운봉의 태도를 유심하게 하는 동시에 또 방자의 입을 막아 〿〿의 탄자를 방지한다는 일석이조식의 수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그 후 어사가 남원 삼문에 출도를 하였을 때는 그 방자가 저절로 노여 어사 앞에 뛰어왔으므로 그 노를 사하고 남원관노청일과소임을 시켜주었다 한다. 그리고 변부사는 자색하여 인병부를 끌러 어사에게 바치니 어사는 도리어 위로하여 하는 말이 남아의 탐화함은 영웅리 일반일 뿐 아니라 또 춘향의 절행이 빛남도 본관의 덕택이니 개념하지 말고 앞으로 선치하여 만인산을 받으라 하고 봉고파직은 하지 않았다 하였다. 여기에 또 편자는 이도령의 도량을 힘껏 넓히여 춘향의 무쌍한 절행에 〿〿〿의 활〿한 인격을 배합하려 한 것이 보인다.
쪽수▶P108-2이렇게 말하면 벌서 大綱 짐작이 될 바와 같이 本書는 단단히 從來의 春香傳에 大改竄을 꾀하였고 또 可及的 現代 生活의 感情을 넣어보려 애썼으니 以下 本書의 이 點에 對하여 大綱 들어 보면, 첫째 그 形式에 있어 從來의 連續式올 分切式으로 고치고, 또 純諺文體룔 諺漢文體로 써서 二 代身 漢文字에는 一一히 그 옆에 諺文으로 音譯하였기 때문에 讀書에 많은 便宜를 주었으며, 다음 그 內容에 이르면 于先 劈頭에 무슨 大王 年間에 云云으로 始作하던 古代小說의 典型을 打破하고 劈頭에

「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苧羅山下 若耶溪에 西施가 鍾出하고, ⋯⋯ 湖南左道南原府는 東으로 智異山, 西으로 赤城江, 山水精神 어리여서 春香이가 삼겨 있다」

이렇게 始作하였다.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할지 모르지만 春香傳으로 보아서는 大膽한 破格이라 아니할 수 없으니 여기에 春香傳은 古代小說에서 다시 新小說로 化粧을 고처하고 世上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春香에 對하여는 完本에서 많은 影響을 받아 그를 閭閻집 處女로 新裝한 것은 勿論이지만 春香母月梅와 成參判과의 關係云云은 훨씬 뒤에 가서 春香母가 李道令에게 說明하는 말로 들리고, 처음에는 春香母의 胎夢에 어떤 仙女 李花 桃花 두 가지를 兩손에 갈라쥐고 하늘로 나와서 桃花를 내어주며 「이꽃을 잘갖구어 李花接을 부쳤으면 오는 行樂 좋으리라. 李花 갖다 傳할 곳이 時刻이 急하기로 忽忽히 떠나노라」 하였다 하여, 春香과 李道令이 同是 16歲의 同甲으로 만난 그 因緣을 先天的으로 여기에 맺어 두고, 李道令이 廣寒樓에 와서 春香을 불렀을 때는 李明善氏本과 같이 春香은 雁隨海▶P109蝶隨花, 蟹隨穴이라는 말을 傅喝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李道令이 그날 밤에 春香 집을 찾았을 때는 完版本에 房子가 뒤쫓아 春香 집으로 가서 春香을 부를 때 春香母가 꿈 이야기를 하듯이 마침 春香母가 春香 房에와서 "너자는 枕上에서 彩雲이 일어나며 靑龍이 너를 물고 하날로 오르기로 龍의 허리를 안고 이리 궁굴 저리 궁굴하다가 깨였다" 云云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럴 때에 李道令이 밖에서 부르니 春香母가 깜짝 놀라 맞아들이었으나 여기도 李道令은 春香을 禮로써 맞이한 듯이 하여 春香母에게 그 딸의 許婚을 請하였고, 春香은 그 母의 許諾을 기다려 李道令에게 一身을 바쳤는데, 사랑 끝에 離別이 되는 데는 李道令이 別로 그 母親에게 春香일을 삷다가 꾸중을 들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後 使道와 그 夫人은 벌써 그 關係를 눈치채고 있었는 듯하여 떠날 때에는 春香을 불러보려고까지 하다가 道令의 長習도 될 것 같고 下人 所視에도 안되어서 그만두고 春香母女에게 돈과 白米와 匹木과 其他 珮物을 厚히 주어 慰勞하고 또 後日 道令님이 及第하면 將次 데려간다고도 일러주었다 하였다. 또 卞府使는 李府使가 上京 後에 곧 온 것이 아니고, 그 中間에 다른 府使가 李府使의 뒤를 이어 왔다가 1年만에 갈려 간 後에 到任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마 春香으로 하여금 李道令을 思慕하고 守節하는 時間的 餘裕를 주어, 날이 가고 달이 가도 絶對로 그 節介는 變함이 없다는 것을 더 힘있게 말하고자 한 데에서 考案된 듯하나, 事實 從來의 異本은 李府使가 갈려간 後 곧 卞府使가 到任하여왔기 때문에 春香의 節介에는 얼마쯤 損이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卞府使의 우력에도 屈하지 않았다니까 勿論 그를 疑心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직 離別한 곧 그다음이니까 하는 핸드캡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本書와 같이 하여 두고 보면 春香의 節介에는 아무 疑心을 介入할 틈을 두지 않는다. 可히 編者의 稠密한 頭腦를 볼 것이나 이러한 點은 또 이 밖에도 있었다. 이것은 먼저 別春香傳에서도 그랬지만 春▶P110香의 獄中書簡인데 여기는 使令이 나와서 春香에게 서울로 편지나 하여보라 勸하고 春香도 옳게 여겨 편지를 써서 부치는데 亦是 前日 道令님을 뫼시고 다니던 房子를 불러 보냈다 하였다. 그리하여 御史가 途中에서 房子를 만나 그 편지를 받을 것이나, 御史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憤하여 不意에 그놈을 단박에 三門出道를 하여 封庫를 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房子에게 눈치를 보여 버렸다. 그런데 別奪香傳은 이때 別로 房子에게 그런 눈치를 보였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그 房子에게 自己가 南原에 가기 前에는 아무 말을 내지 마라 당부하고 보냈지만 여기서는 房子에게 御史라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에 그 뒤 收拾을 適當히 하지 않을 수 없어 그 房子를 雲峯으로 보내는데, 房子에게 편지 한 장을 써서 주고 그것을 갖다 雲峯官家에 드리고 주는 것이 있거든 받아가지고 오라 한다. 그러나 편지 內容은 그 놈이 가거든 잡아 가두어 두라 하였기 때문에 房子는 거기 가서 그만 禁錮를 當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비록 房子의 입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雲峯에게는 內通하는 것이 되지 않나 하지만 그는 또 그럴 만한 理由가 있었던 것이다. 即 雲峯은 御史가 卞府使의 生日宴에 乞人의 形色을 하고 들어갔을 때 唯獨히 御史에게 同情하여 주었던 것이나 編者는 이 點을 날카로이 感得하여 雲峯의 態度를 有心하게 하는 同時에 또 房子의 입을 막아 〿〿의 綻紫를 防止한다는 一石二鳥식의 手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그後 御史가 南原 三門에 出道를 하였을 때는 그 房子가 저절로 놓여 御史 앞에 뛰어왔으므로 그 勞를 謝하고 南原官奴廳一課所任을 시켜주었다 한다. 그리고 卞府使는 紫色하여 印兵符를 끌러 御史에게 바치니 御史는 도리어 慰勞하여 하는 말이 男兒의 貪花함은 英雄梨 一般일 뿐 아니라 또 春香의 節行이 빛남도 本官의 德澤이니 介念하지말고 앞으로 善治하여 萬人傘을 받으라 하고 封庫罷職은 하지 않았다 하였다. 여기에 또 編者는 李道令의 度量을 힘껏 넓혀 春香의 無雙한 節行에 〿〿〿의 濶〿한 人格을 配▶P111-1合하려 한 것이 보인다.
이상은 주로 본서의 중요한 창안을 들어보았으나 이 외에도 소소한 것을 든다면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서 남원으로 오던 도중에 잠깐 졸았는데 비몽사몽간에 "저기 앉은 이상공은 나를 살려 주오" 하는 꿈을 꾸고 춘향을 생각하였다던지, 또 어사 출도 후에 춘향을 잡아 올리라 하니 남원읍 노소과부들이 춘향의 백방을 등상들었다 하는 것 등이 있다. 그러나 본서도 대체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명선씨 본 완판본에서 많은 영향을 입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첫째 춘향을 성참판의 딸이라 한 것은 분명히 완판본의 영향이니, 이도령이 첫날 밤에 춘향 모를 찾아서 그 딸과 백년가약을 청하니 춘향 모의 말이 "나의 딸 춘향이가 상사람이 아니라, 회동 성참판 영감이 보외로 남양에 좌정하여 일색 명기 다 버리고 늙은 나를 수청케 하시니 모신지 수삭만에 이조참판 승차하여 내직으로 들어갈 때 내게 가자 하셨으나 노부가 계신 이유로 따라가지 못하고 이별한 그 달부터 저것을 밴 줄 짐작하고 연유로 고목하니 젖줄 뗄 만하게 되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댁 운수 불길하여 영감이 별세하니 춘향을 못 보내고 저만큼 길렀으니, 칠세에 소학 읽혀 수신제가 화순심을 낱낱이 가르치니 근본이 있는 고로 만사가 달통이라"운운한 것과, 어사가 남원 가까이 왔을 때 춘향이 옥중에서 비몽사몽간에 이도령을 보니 두상에는 김관이요 요간에는 패월이라 한 것은 분명히 완판본의 영향일 것이고, 이도령이 광한루서 불렀을 때 춘향이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문구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던지, 어사가 도중에 절에 들렀다 한 것은 이명선씨본의 영향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절 이야기는 이명선씨본과 다소 다름이 있었다. 즉 거기는 어사가 절에 들어가니 향단이가 와서 춘향을 위해 재를 올리고 있었더라 하였는데, 여기는 그 절 이름을 만복사라 하였고 또 그 절인 바는 전에 춘향 모가 춘향을 낳으려고 시주하고 정성드리는 절인데, 어사가 방자를 데리고 그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들이 방금 춘향과 이도령을 위해 불공 축원을 하고 있었으므로 어사 감탄하여 돈 천냥을 내어 시주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체의 기술상순서로 본다 할지라도 이를 완판본과 비교하여보면 그다지 큰 변동이 없었다. 다만 이별에 있어 이도령이 춘향을 그 집으로 찾아 이별을 서러워하고 일단 관가로 들어갔다가 내행을 뫼시고 가는 길에 오리정에서 육방하인의 하직을 받고 재차 춘향 집으로 가서 이별을 하였으며 거기서 명경과 옥지환의 신물을 교환하였다 하였고, 그 다음 이별 후의 춘향의 황릉묘 몽사와 옥창 앵도화락몽사 사이에 춘향의 옥중 서간과 이도령의 어사치행도중에 춘향의 편지 받는 것과 방자의 운봉 금고가 있을 따름이다.
쪽수▶P111-2以上은 主로 本書의 重要한 創案을 들어보았으나 이 外에도 小小한 것을 든다면 李道令이 御史가 되어서 南原으로 오던 途中에 잠깐 졸았는데 非夢似夢間에 "저기 앉은 李相公은 나를 살려 주오" 하는 꿈을 꾸고 春香을 생각하였다던지, 또 御史 出道 後에 春香을 잡아 올리라 하니 南原邑 老少寡婦들이 春香의 白放을 等狀들었다 하는 것 等이 있다. 그러나 本書도 大體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李明善氏 本 完版本에서 많은 影響을 입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첫째 春香을 成參判의 딸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이니, 李道令이 첫날 밤에 春香 母를 찾아서 그 딸과 百年佳約을 請하니 春香母의 말이 "나의 딸 春香이가 常사람이 아니라, 會洞 成參判 令監이 補外로 南凉에 坐定하여 一色 名妓 다 버리고 늙은 나를 守廳케 하시니 모신지 數朔만에 吏曹參判 陞差하여 內職으로 들어갈 때 내게 가자 하셨으나 老父가 계신 이유로 따라가지 못하고 離別한 그 달부터 저것을 밴 줄 짐작하고 緣由로 告目하니 젖줄 뗄 만하게 되면 데려간다 하시더니 그宅 運數 不吉하여 令監이 別世하니 春香을 못 보내고 저만큼 길렀으니, 七歲에 小學 읽혀 修身齊家 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根本이 있는 故로 萬事가 達通이라" 云云한 것과, 御史가 南原 가까이 왔을 때 春香이 獄中에서 非夢似夢間에 李道令을 보니 頭上에는 金冠이요 腰間에는 珮鉞이라 한 것은 分明히 完版本의 影響일 것이고, 李道令이 廣寒樓서 불렀을 때 春香이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는 文句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라던지, 御史가 途中에 절에 들렀다 한 것은 李明善氏本의 影響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절 이야기는 李明善氏本과 多少 다름이 있었다. 即 거기는 御史가 절에 들어가니 香丹이가 와서 春香을 爲해 齋를 올리고 있었더라 하였는데, 여기는 그 절 이름을 萬福寺라 하였고 또 그 절인 바는 前에 春香母가 春香을 낳으려고▶P112-1施主하고 精誠드리는 절인데, 御史가 房子를 데리고 그 절에 들어가니 모든 중들이 方今 春香과 李道令을 爲해 佛供 祝願을 하고 있었으므로 御史 感嘆하여 돈 千兩을 내어 施主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全體의 記述上順序로 본다 할지라도 이를 完版本과 比較하여보면 그다지 큰 變動이 없었다. 다만 離別에 있어 李道令이 春香을 그 집으로 찾아 離別을 서러워하고 一旦 官家로 들어갔다가 內行을 뫼시고 가는 길에 五里亭에서 六房下人의 下直을 받고 再次 春香 집으로 가서 離別을 하였으며 거기서 明鏡과 玉指環의 信物을 交換하였다 하였고, 그 다음 離別 後의 春香의 黃陵廟 夢事와 獄窓 櫻桃花落夢事 사이에 春香의 獄中 書簡과 李道令의 御史治行途中에 春香의 편지 받는 것과 房子의 雲峯 禁錮가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본서의 플롯 상 전기 양본의 영향은 받았다 할지라도 또 양본에서 취사함이 있었음도 부득이하였으니, 그 취한 바는 벌써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다시 버린 점을 들어 보면 첫째 여기는 완판본의 능랑청이라던지 회계나리라던지 기타 서울 급주며 오작교 하의 표모공론이 나오지 않고, 또 이명선씨본의 농가이외의 어사탐문이라던가, 어사가 초빈에 울었다던가, 춘향이 옥중에서 황릉묘꿈과 옥창앵도화락꿈 이외에도 다른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것도 역시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편자는 자유로 완판본과 이명선씨본을 가지고 취사선택하여 거기에 다시 편자 자신의 창안을 넣어 편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쪽수▶P112-2그러나 本書의 플롯 上 前記 兩本의 影響은 받았다 할지라도 또 兩本에서 取捨함이 있었음도 不得已하였으니, 그 取한 바는 벌써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다시 버린 點을 들어 보면 첫째 여기는 完版本의 陵郞廳이라던지 會計나리라던지 其他 서울 急走며 烏鵲橋 下의 漂母公論이 나오지 않고, 또 李明善氏本의 農歌以外의 御史探問이라던가, 御史가 草殯에 울었다던가, 春香이 獄中에서 黃陵廟꿈과 獄窓櫻桃花落꿈 以外에도 다른 꿈을 꾸었다던가 하는 것도 亦是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編者는 自由로 完版本과 李明善氏本을 가지고 取捨選擇하여 거기에 다시 編者 自身의 創案을 넣어 編纂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본서의 개괄적 소개는 대강 마쳤다고 생각하나 다시 그 내용을 좀 더 세밀히 검토하여 보면 종래의 춘향전에서 면목을 일신하였다 할만큼 그 묘사법을 변경하였다. 즉 종래의 이본은 책에 따라 다소 경중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보아서 그 묘사가 너무 과장적이고 또 비속한 데가 많던 것을 본서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약점을 구하려 애썼다. 이를테면 춘향의 방치례라 하더라도

湯人君 犧牲되어 剪瓜斷髮身嬰白茅六事로 비를 빌어 大雨方數千里에 衰龍袍를 적셔 입고 識宮으로 가는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南壁을 살펴보니 商山四時 네 老人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一點二期 땅땅 둘 때 어떤 老人은 鶴氅衣에 綸巾쓰고 白碁를 손에 쥐고 요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葛巾道服 떨쳐 입고 黑碁를 손에 쥐고 河圖洛書法을 찾아 이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靑藜杖 半만 집고 바둑 훈수를 하느라고 어깨 너머로 넘어 보며 이만하고 앉은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어떠한 老人은 巾을 벗어 松枝에 걸고 竹冠을 제쳐쓰고 五絃琴 거문고를 膝上에 올려놓고 世無知音羽衣曲을 시르렁 타고 놀제 白鶴이 춤을 춘다. 北壁을 바라보니 千年蟠桃瑤池 봄 西王母의 靑鳥로다

이러한 정도에 그쳤고, 춘향 모의 주반상에 이르면

羅州漆盤에 沈菜 한보, 藥脯肉粘鰒쌈 한 接匕, 實果 곁들여 놓았겠다.

라 하여 완판본이나 고본 춘향전과는 운니의 차가 있었다. 또 사랑歌에서도 "近來 사랑歌에 情字 노래 風字 노래가 있으나 너무 亂하여 風俗에 關係도 되고 春香烈節에 辱이 되겠으나 너무 無味하니까 大綱 大綱 하는 것이었다"라 앞에서 미리 말하여 두고 풍기 상 문제될 것은 애초에 넣지 않아 극히 간단히 조처하여 버렸으며, 방자의 심한 농담이라던지 춘향 모의 욕설 같은 것도 쓰지 않아 될 수 있는 대로 사건을 자연스레 전개하여 비속한 점 없게 하고, 또 춘향이나 그 모의 신분에 대하여는 끝까지 옹호하여 절대로 천한 빛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심지어 이부사와 이도령에까지 미쳐 그 인격을 될 수 있는 한 원만무결히 하고자 하였으니 이부사가 춘향 모녀에게 금품을 주어 위로하고 간 것이라던지 어사가 변부사를 봉고파직하지 않고 도리어 전도를 격려한 것은 다 그러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쪽수▶P112-3이로써 本書의 槪括的 紹介는 大綱 마쳤다고 생각하나 다시 그 內容을 좀 더 細密히 檢討하여 보면 從來의 春香傳에서 面目을 一新하였다 할만큼 그 描寫法을 變更하였다. 即 從來의 異本은 책에 따라 多少 輕重은 있었지만 一般的으로 보아서 그 描寫가 너무 誇張的이고 또 卑俗한 데가 많던 것을 本書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弱點을 救할▶P113랴 애썼다. 이를테면 春香의 房치례라 하더라도

湯人君 犧牲되어 剪瓜斷髮身嬰白茅六事로 비를 빌어 大雨方數千里에 衰龍袍를 적셔 입고 識宮으로 가는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南壁을 살펴보니 商山四時 네 老人이 바둑판을 앞에 놓고 一點二期 땅땅 둘 때 어떤 老人은 鶴氅衣에 綸巾쓰고 白碁를 손에 쥐고 요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葛巾道服 떨쳐 입고 黑碁를 손에 쥐고 河圖洛書法을 찾아 이만하고 앉아 있고, 어떤 老人은 靑藜杖 半만 집고 바둑 훈수를 하느라고 어깨 너머로 넘어 보며 이만하고 앉은 景을 歷歷히 그려 있고, 어떠한 老人은 巾을 벗어 松枝에 걸고 竹冠을 제쳐쓰고 五絃琴 거문고를 膝上에 올려놓고 世無知音羽衣曲을 시르렁 타고 놀제 白鶴이 춤을 춘다. 北壁을 바라보니 千年蟠桃瑤池 봄 西王母의 靑鳥로다

이러한 程度에 그쳤고, 春香母의 酒盤床에 이르면

羅州漆盤에 沈菜 한보, 藥脯肉粘鰒쌈 한 接匕, 實果 곁들여 놓았겠다.

라 하여 完版本이나 古本 春香傳과는 雲泥의 差가 있었다. 또 사랑歌에서도 "近來 사랑歌에 情字 노래 風字 노래가 있으나 너무 亂하여 風俗에 關係도 되고 春香烈節에 辱이 되겠으나 너무 無味하니까 大綱 大綱 하는 것이었다"라 앞에서 미리 말하여 두고 風紀 上 問題될 것은 애초에 넣지 않아 極히 簡單히 措處하여 버렸으며, 房子의 甚한 弄談이라던지 春香母의 辱說 같은 것도 쓰지 않아 될 수 있는 대로 事件을 自然스레 展開하여 卑俗한 點 없게 하고, 또 春香이나 그 母의 身分에 對하여는 끝까지 擁護하여 絶對로 賤한 빛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態度는 甚至於 李府使와 李道令에까지 미쳐 그 人格을 될 수 있는 限 圓滿無缺히 하고자 하였으니 李府使가 春香母女에게 金▶P114-1品을 주어 慰勞하고 간 것이라던지 御史가 卞府使를 封庫罷職하지 않고 도리어 前途를 激勵한 것은 다 그러한 意圖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본서는 물론 고대소설을 번안하여 그 시대의 생활과 감정을 보유하고자 한 것이지만 그러나 편자는 단순히 고전을 고전으로만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이로써 현대소설화하고자 하는, 즉 다시 말하면 고대 춘향전이 아니고 현대 춘향전을 쓰고자 하는 것이 그 본의인 듯하여 가끔 그 표현에 있어 현대적 감정을 쓴 것이 있었다. 이런 것이 많진 않지만 일례를 들어 보면 농가의 일절에

社會에 領袖되어 法律 範圍 違越말고 一動一靜 知彼知己 因其勢而道之하여 改良風俗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國內 靑年 몰아다가 敎育界에 집어넣고 各種學問 敎授하여 人才養成 한 然後에 學界主人 뫼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經國濟民 研究하여 天下利益 얻었다가 金庫에 滿積하고 商業低仰 任意대로 經濟大家 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운운하는 것은 가히 글로 볼 것인 줄 믿으나 여기에 옥중화는 고전에서 다시 현대소설로 가로에 활보하여 나왔던 것이다. 또 문장에 있어서도 비록 사사조의 운문체는 많이 썼지만, 완판본과 같이 가곡화하고자 아니하고 도리어 될 수만 있으면 희곡적인 데에서 다시 순수한 소설체로 돌아오고자 하였다. 따라서 사실에 없는 말을 공연히 다듬어 실정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적다. 이를테면 먼저 완판본에서 인용하였던 장면, 즉 춘향의 추천하는 데를 비교 삼아 하나 인용하여 보면

春香의 舉動 보아라 鞦韆을 하라 하고 長々綵細 그네줄을 두 손에 갈러쥐고 선 듯 올라 발 구르니 한번 굴러 뒤가 솟고 두 번 굴러 앞이 높아 鳶飛戾天솔개 뜨듯 爛熳桃花 높은 가지 소소러처 툭々 차니 송이송이 맺힌 꽃 휘 느러저 떨어져서 風無聲而落花로다 오락가락 노닐 적에 李道令이 精神없이 한참 서서 望見터니 뜻밖에 몸이 웃슬 웃슬 소톰이 쪽 끼치니 精神黯黯 一身을 벌々 뜰미
『이에 房子야야아아』

이와 같다. 이것은 물론 일례에 지나지 못하지만 전체를 통하여 보면 상당히 가곡을 위한 가곡적 부문을 감소하고 그 대신 사실적 방면에 힘을 경주하였다. 이것도 본서가 현대적 소설로 걸어 나오자 하는 욕망일 것이요 또 거기에 성공하였다고 우리는 인증하지 않을 수 없다.
쪽수▶P114-2그리고 本書는 勿論 古代小說을 飜案하여 그 時代의 生活과 感情을 保有하고자 한 것이지만 그러나 編者는 單純히 古典을 古典으로만 傳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이로써 現代小說化하고자 하는, 即 다시 말하면 古代 春香傳이 아니고 現代 春香傳을 쓰고자 하는 것이 그 本意인 듯하여 가끔 그 表現에 있어 現代的 感情을 쓴 것이 있었다. 이런 것이 많진 않지만 ᅳ例를 들어 보면 農歌의 一節에

社會에 領袖되어 法律 範圍 違越말고 一動一靜 知彼知己 因其勢而道之하여 改良風俗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國內 靑年 몰아다가 敎育界에 집어넣고 各種學問 敎授하여 人才養成 한 然後에 學界主人 뫼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經國濟民 研究하여 天下利益 얻었다가 金庫에 滿積하고 商業低仰 任意대로 經濟大家 되는 것도 大丈夫의 일이로다.

云々하는 것은 可히 글로 볼 것인 줄 믿으나 여기에 獄中花는 古典에서 다시 現代小說로 街路에 闊步하여 나왔던 것이다. 또 文章에 있어서도 비록 四々調의 韻文體는 많이 썼지만, 完板本과 같이 歌曲化하고자 아니하고 도리어 될 수만 있으면 戱曲的인 데에서 다시 純粹한 小說體로 돌아오고자 하였다. 따라서 事實에 없는 말을 空然히 다듬어 實情▶P115-1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적다. 이를테면 먼저 完版本에서 引用하였던 場面, 即 春香의 鞦韆하는 데를 比較 삼아 하나 引用하여 보면

春香의 舉動 보아라 鞦韆을 하라 하고 長々綵細 그네줄을 두 손에 갈러쥐고 선 듯 올라 발 구르니 한번 굴러 뒤가 솟고 두 번 굴러 앞이 높아 鳶飛戾天솔개 뜨듯 爛熳桃花 높은 가지 소소러처 툭々 차니 송이송이 맺힌 꽃 휘 느러저 떨어져서 風無聲而落花로다 오락가락 노닐 적에 李道令이 精神없이 한참 서서 望見터니 뜻밖에 몸이 웃슬 웃슬 소톰이 쪽 끼치니 精神黯黯 一身을 벌々 뜰미
『이에 房子야야아아』

>이와 같다. 이것은 勿論 一例에 지나지 못하지만 全體를 通하여 보면 相當히 歌曲을 爲한 歌曲的 部門을 減少하고 그 代身 寫實的 方面에 힘을 傾注하였다. 이것도 本書가 現代的 小說로 걸어 나오자 하는 慾望일 것이요 또 거기에 成功하였다고 우리는 認證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본서는 이상 누누이 설래하여 온 바와 같이 형식 내용 어느 방면으로나 종래의 춘향전에 대폭적 개찬을 하여 편자는 이것을 현대 춘향전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춘향전 문학으로 보아 일대 획기적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여기에 춘향전은 현대인에게 재인식되어 본서는 일반 소설독서층에 그야말로 열광적 환영을 받았다. 여기 따라 대정 14년경 이후로는 또 본서의 이본이 경성 각 서사에서 쏟아져 나왔으니, 먼저 그 서명과 발행소만을 적어보면 이러한 것이 있다. 이 외도 또 만고열녀일선문춘향전(조선도서주식회사) 이라던지 Edward T. Urquart The Fragrance of Spring(시광사)은 다 본서를 저본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전기한 본서의 이본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가하고 본항을 마치겠다.
쪽수▶P115-2要컨대 本書는 以上 屢々 說來하여 온 바와 같이 形式 內容 어느 方面으로나 從來의 春香傳에 大幅的 改纂을 하여 編者는 이것을 現代 春香傳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春香傳 文學으로 보아 一大 劃期的 事實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여기에 春香傳은 現代人에게 再認識되어 本書는 一般 小說讀書層에 그야말로 熱狂的 歡迎을 받았다. 여기 따라 大正 14年頃 以後로는 또 本書의 異本이 京城 各 書肆에서 쏟아져 나왔으니, 먼저 그 書名과 發行所만을 적어보면

萬古烈女春香傳, 一色絶代佳人成春香傳, 諺文春香傳 (永昌書館, 韓與書林), (德興書林)
諺文獄中絕代佳人, 一名春香傳, 絶代佳人, 鮮漠文春香傳((永昌書館, 韓與書林)
▶P116-1古代小說諺文春香傳, 一名春香傳 (灌東書館)
懷中春香傳, 一名春香傳, 小春香歌 (廣韓書林)
萬古烈女特別無雙春香傳, 一名鮮漢文春香傳, 萬古烈女特別無雙新春香傳 (永昌書館)

이러한 것이 있다. 이 外도 또 萬古烈女日鮮文春香傳(朝鮮圖書株式會社)이라던지 Edward T. Urquart The Fragrance of Spring(時光社)은 다 本書를 底本으로 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前記한 本書의 異本에 對하여 簡單한 說明을 加하고 本項을 마치겠다.
1. 만고열녀춘향전
본서는 편집 겸 발행자에 강의영의 명의로 대정14年 4월 20일에 영창서관과 한흥서림에서 권두에 삽화를 넣어 발행하였다. 내용은 옥중화를 그대로 개판하여 낸 것이나 다만 옥중화의 간한문체를 다시 순언문체로 고치고 또 분절식을 운속식의 옛날에 환원시켰다. 그럼으로 동판을 가지고 대정 14년 11월 15일에는 덕흥서림에서 김동진의 명의로 일명 언문춘향전이라는 이름을 걸어서 발행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잠긴 춘향전의 서명파 그 저자명의에 대하여 설명하여둘 필요가 있으니 첫째 서점에 대하여는 옥중화 하나가 상기한 바와 같이 별별 이름을 쓰고 나오나, 한 책에 있어서도 또한 표지에 제명한 서명파 안장의 서명이 닯으며(다르며), 안장에도 권두에 붙인 번명과 또 권미에 붙인 서명이 다른 일이 종종 있다. 이를테면 이 만고숙녀춘향전으로 두고 보더라도 영창서관본은 안장 권두에는 만고열녀춘향전이라 하여 놓고 권미에는 언문춘향전종이라 하였으며, 또 표지에는 절대 가인성춘향전이라 써 있고, 흥서림본은 표지에 만고열녀춘향전과 언문춘향전의 두 이름이 쓰여있다. 그리고 저작자명의는 발행소에 따라 각기 달라 발행서점주가 곧 그 저작자명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서점과 저작자 명의가 다르다 하여 내용이 다르다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서점은 광고적이요 저작자 명의는 출판의 편의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쪽수▶P116-21. 萬古烈女春香傳
本書는 編輯 兼 發行者에 姜義永의 名義로 大正14年 4月 20日에 永昌書館과 韓興書林에서 卷頭에 揷畵를 넣어 發行하였다. 內容은 獄中花를 그대로 改版하여 낸 것이나 다만 獄中花의 諫漢文體를 다시 純諺文體로 고치고 또 分節式을 運續式의 옛날에 還元시켰다. 그럼으로 同版을 가지고 大正 14年 11月 15日에는 德興書林에서 金東縉의 名義로 一名 諺文春香傳이라는 이름을 걸어서 發行하였다. 그러면 여기에 잠긴 春香傳의 書名파 그 著者名義에 對하여 說明하여둘 必要가 있으니 첫째 書店에 對하여는 獄中花 하나가 上記한 바와 같이 別々 이름을 쓰고 나오나, 한 책에 있어서도 또한 表紙에 題名한 書名파 안장의 書名이 닯으며, 안장에도 卷頭에 붙인 蕃名과 또 卷尾에 붙인 書名이 닯은 일이 種種 있다. 이를테면 이 萬古熟女春香傳으로 두고 보더라도 永昌書館本은 안장 卷頭에는 萬古烈女春香傳이라 하여 놓고 卷尾에는 諺文春香傳終이라 하였으며, 또 表紙에는 絶代▶P117-1佳人成春香傳이라 써 있고, 興書林本은 表紙에 萬古烈女春香傳과 諺文春香傳의 두 이름이 쓰여있다. 그리고 著作者名義는 發行所에 따라 各其 닯아 發行書店主가 곧 그 著作者名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書店과 著作者 名義가 닯다 하여 內容이 닯은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書店은 廣告的이요 著作者 名義는 出版의 便宜上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옥중절대가인
이것도 표지에는 절대가인 혹은 선한문춘향전이라는 서명을 가지고 있으나 역시 영창서관과 한흥서림에서 대정 14년 10월 10일에 강의영의 명의로 권두에 삽화를 넣어 발행한 것인데, 본서는 순언문체를 썼으나 한문 문구에는 그 옆에 한자를 주기하였다. 내용은 물론 옥중화 그대로인데 다만 벽두에 옥중화의 "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운운을

"世上萬物 점지할제 絶代佳人 없을소냐, 絶代佳人 생겨날제 烈女忠臣 없을소냐 烈女忠臣 생겨날제 江山精氣 타고 난다. 湖南左道 南原府는⋯⋯"

으로 고쳤을 뿐이다.
쪽수▶P117-22. 獄中絶代佳人
이것도 表紙에는 絶代佳人 或은 鮮漢文春香傳이라는 書名을 가지고 있으나 亦是 永昌書館과 韓興書林에서 大正 14年 10月 10日에 姜義永의 名義로 券頭에 揷畵를 넣어 發行한 것인데, 本書는 純諺文體를 썼으나 漢文 文句에는 그 옆에 漢字를 註記하였다. 內容은 勿論 獄中花 그대로인데 다만 劈頭에 獄中花의"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 云云을

「世上萬物 점지할제 絶代佳人 없을소냐, 絶代佳人 생겨날제 烈女忠臣 없을소냐 烈女忠臣 생겨날제 江山精氣 타고 난다. 湖南左道 南原府는⋯⋯」

으로 고쳤을 뿐이다.
3. 고대소설언문춘향전
본서도 표지에는 춘향전이라 하였는데 대정 14년 10월 30일에 회동서관에서 고유상의 명의로 발행하였다. 고대소설이라 하고 또 제목을 언문춘향전이라 이른 만큼 순언문으로 고대소설 체재의 그대로를 썼다.
쪽수▶P117-33. 古代小說諺文春香傳
本書도 表紙에는 春香傳이라 하였는데 大正 14年 10月 30日에 滙東書舘에서 高裕相의 名義로 發行하였다. 古代小說이라 하고 또 題目을 諺文春香傳이라 이른 만큼 純諺文으로 古代小說 體裁의 그대로를 썼다.
4. 회중춘향전
표지에는 춘향전 또 소춘향가라 하였으니 권미에는 정직하게 옥중화종이라 하였다. 대정 15년 2월 27일에 광한서림에서 김천희의 명의로 발행하였는데 체재는 순언문체의 회중용본에 되어 있다.
쪽수▶P117-44. 懷中春香傳
▶P118-1表紙에는 春香傳 또 小春香歌라 하였으니 卷尾에는 正直하게 獄中花終이라 하였다. 大正 15年 2月 27日에 廣韓書林에서 金天熙의 名義로 發行하였는데 體裁는 純諺文體의 懷中用本에 되어 있다.
5. 만고열녀특별무쌍춘향전
본서는 일명 선한문춘향전 혹은 만고렬녀특별무쌍신춘향전이라 하야 소화 10년 12월 25일에 강의영의 명의로 영창서관, 한흥서림에서 발행하였다. 권두에는 새로운 삽화 수매를 붙이고 본문 벽두의 "절대가인 삼겨날제 강산정기 타서 난다⋯⋯" 운운을

"방초화류 좋은 때라 진처사의 오류문은 초록장을 드리운 듯 이리로 펄펄 저리로 펄펄 꾀꼬롱 꾀꼬롱하는 꾀꼬리는 제 벗을 불러내고 이편으로 너훌 너훌 저편으로 너훌 너홀, 쌍쌍이 춤을 추는 범나비는 흥을 계워 노닐더라"

로 고쳐서 "전라좌도남원부는⋯⋯"에 붙였을 뿐이다.
쪽수▶P118-25. 萬古烈女特別無雙春香傳
本書는 一名 鮮漢文春香傳 或은 萬古烈女特別無雙新春香傳이라 하야 昭和 10年 12月 25日에 姜義永의 名義로 永昌書館, 韓興書林에서 發行하였다. 卷頭에는 새로운 揷畵 數枚를 붙이고 本文 劈頭의 "絶代佳人 삼겨날제 江山精氣 타서 난다⋯⋯"云云을

「芳草花柳 좋은 때라 晋處士의 五柳門은 초록장을 드리운 듯 이리로 펄펄 저리로 펄펄 꾀꼬롱 꾀꼬롱하는 꾀꼬리는 제 벗을 불러내고 이편으로 너훌 너훌 저편으로 너훌 너홀, 쌍쌍이 춤을 추는 범나비는 興을 계워 노닐더라」

로 고쳐서 「全羅左道南原府는⋯⋯」에 붙였을 뿐이다.































본문2: 8. 特別無雙春香傳


본서는 박건회의 편저로 대정 4년 12월 25일 유일서관에서 발행되었다. 처음에 삽화 수매를 붙이고, 전체를 14회에 나누었는데 그 목차를 들면 아래와 같다.

第一回, 廣寒樓上賞春景, 綠楊叢裏送秋千
第二回, 召不應佳人寄語, 暫未忘才子狂讀
第三回, 道令夜訪佳人邸, 老娘許婚有情郎
第四回, 兩人洞房唱詩詞, 府使遷任督治行
第五回, 五里亭兩入惜別, 南原府新官到任 第六回, 到任先檢妓生案, 貪淫欲奪烈女志
第七回, 玉節不屈被酷刑, 二妃顯靈說前程
第八回, 高舉壯元謁聖科, 特除湖南繡衣使
第九回, 得情札山寺看祈禱, 夢不祥獄中請許官
第十回, 歛探民情聽邊歌, 爲女築壇禱蒼天
第十一回, 御史探看老娘心, 春娘泣訴獄中苦
第十二回, 府使設宴東軒上, 暗行出道南原府
第十三回, 惜春香衆寡等訴, 聞喜報老娘舞踏
第十四回, 御史陳情龍榻下, 聖心大悅封忠烈

일로 보아서도 대강 짐작될 바와 같이 거의 옥중화 그대로이다. 내용을 열독하여 볼지라도 옥중화를 중간 중간이 더한 데에 지나지 못하는데 다음에 그 몇 구절을 옥중화와 대교하는 것으로 본서의 소개를 마치련다. 첫째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것을 옥중화에서는

(道)"그러면 金도 玉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일러다고."
房子놈이 그제야 "오─ 저것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仔細히 보니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로소이다"
道令님이 春香이란 말을 듣고 웃음을 勸馬聲 웃음을 웃더니
"이애 丁寧 春香이야 顚不刺的을 見了萬千이로대 底般可喜娘은 罕曾見이라, 我─ 眼花擦亂口難言이라 魂靈兒飛去半天이로다. 눈에 水銀을 닌듯이 뵈이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오란다고 즉시 불러오너라."
房子 엿자오대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府使 郡守 縣監 官長들이 無數히 보랴호되⋯⋯"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道)"그러면 金도 玉도 鬼神(●●)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이애(●●) 갑갑하다 어서(●●) 일러다고"
房子놈이 그제야 시침이를(●●●●) () 띄이고(●●●●)
"오 저것 말삼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자세 보니() 本邑退妨(●●) 月梅 딸 春香이로구면(●●●). 그런대요(●●●●) 道令님은(●●●●) 장가도(●●●) 아니드신(●●●●) 兩班이(●●●●) 그런대만(●●●●) 눈이(●●) 먼첨(●●) 가시오(●●●)"
道令님이 이 말을(●●●) 듯더니(●●●) 房子의(●●●) 嘲弄하는(●●●●) () 대적하기도(●●●●●) 잊어버리고(●●●●●) 다시(●●) 건너편(●●●) 그네(●●) 줄을(●●) 向하여(●●●) 보니(●●) 마음은(●●●) 烏鵲橋를(●●●●) 건너가고(●●●●) 몸은(●●) 精神없이(●●●●) 廣寒樓(●●●) 夕陽 빛에(●●●●) 앉었다가(●●●●) 기쁜 생각이(●●●●●) 사무쳐서(●●●●) 勒馬聲(●●●) 웃음으로(●●●●) 웃으며(●●●●) 房子를(●●●) 조른(●●)다.
"이애, 丁寧 春香이냐, 어여뿐(●●●) 人物을(●●●) 千萬이나(●●●●) 보았으되(●●●●) 저렇게(●●●) 어여쁜(●●●) 것은(●●) 처음(●●) 보는구나(●●●●) () 눈이(●●) 眩煌하야(●●●●) 말할(●●●) 수도(●●) 없으니(●●●●) 魂이(●●) 九泉에(●●●) 날라간(●●●) 듯하구나(●●●●) 잔말(●●●) 말고(●●) 내가(●●)어서 오란다고 곳 좀 불러 오너라"春香이(●●●) 元來(●●) 妓生(●●) 같으면(●●●●) 冊室(●●) 喻附가(●●●) 계신(●●) 바에야(●●●) () 떠러지기가(●●●●●●) 무섭게(●●●●) () 待令을(●●●) 시키마는(●●●●) 房子도(●●●) 그러치(●●●) 않을(●●) () 아는(●●) 터이라(●●●) 道令님의(●●●●) 吩咐를(●●●) 듣고(●●●) 매우(●●) 難處하여(●●●●) 春香의(●●●) 來歷을(●●●) 大網(●●) 아뢴다(●●●).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使 府使 郡守 縣監 여러 官長들이 無數히 보려하되⋯⋯"

이렇게 하였다. 또 다음 다른 데에서 더 하나 뽑아 춘향이가 변부사에게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장면이다. 이것을 눈중화에서는

▶P122-1 이윽고(●●●) 精神을 차려 獄門틈으로(●●●●●) 母親을(●●●) 부른다(●●●).
"어머니 설워마시고 氣體 安寧(●●)하옵소서(●●), 罪 없는 春香이가(●●) 설마한들 죽으리까 水火()槍 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아나서(●●●) 母親奉養할(●●●●●) 터이니 걱정 넘어(●●)말으시고 집으() ()아가옵소서. 萬一에 안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莫大할지라도(●●●●)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이 억색(●●)하여 氣가 마켜 죽게구려"
春香 母 이말(●●) 듯고(●●) 할일 없이 獄中에다 春香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悲悲切切斷腸懷가(●●●●●●●●) 淨凉路上魂顚倒라(●●●●●●●●) 업더질듯잡바질듯(●●●●●●●●) 집으로(●●●) 向하니라.(●●●●) 春香이(●●●) 母親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한숨을(●●●) 후유─(●●●) 쉬더니(●●●) 길이(●●) 嘆息을(●●●) 한다.(●●●)
"天地間에(●●●●) 이내(●●) 몸이(●●) 父母恩惠(●●●●) 重하도다,(●●●●) 黃河같이(●●●●) 깊으신(●●●) 德澤,(●●●) 山갈이(●●●) 높고(●●) 높다.(●●●) 슬푸도다(●●●●) 우리 母親, 父親(●●)없이 날 기를제(●●●)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놓고(●●) 좋은 일은 못보시고 눈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母親(●●) 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樹欲靜而風不止하고(●●●●●●●●●●) 子欲養而親不來라,(●●●●●●●●) 半白(●●) 넘은(●●) 늙은(●●) 母親(●●) 누가(●●) 있어(●●) 泰養하나(●●●●) 내일은(●●●) 내가(●●) 알지(●●) 끝날(●●) 날이(●●) 망연하니(●●●●) 가련한(●●●) 母親身勢(●●●●) 어찌하면(●●●●) 좋을는지(●●●●). 香丹아 게 있나냐"

부르니

"예─ 여기(●●) 있읍니다(●●●●)"

이렇게 하였다. 즉 위에 권점을 찍은 부분이 개정 혹 증보한 곳이거니와 전체를 통하여 대개 이런 정도의 것이다.
쪽수▶P118-3本書는 朴健會의 編著로 大正 4年 12月 25日 唯一書館에서 發行되었다. 처음에 揷畵 數枚를 붙이고, 全體를 14回에 나누었는데 그 目次를 들면 左와 같다.

第一回, 廣寒樓上賞春景, 綠楊叢裏送秋千
第二回, 召不應佳人寄語, 暫未忘才子狂讀
第三回, 道令夜訪佳人邸, 老娘許婚有情郎
▶P119第四回, 兩人洞房唱詩詞, 府使遷任督治行
第五回, 五里亭兩入惜別, 南原府新官到任 第六回, 到任先檢妓生案, 貪淫欲奪烈女志
第七回, 玉節不屈被酷刑, 二妃顯靈說前程
第八回, 高舉壯元謁聖科, 特除湖南繡衣使
第九回, 得情札山寺看祈禱, 夢不祥獄中請許官
第十回, 歛探民情聽邊歌, 爲女築壇禱蒼天
第十一回, 御史探看老娘心, 春娘泣訴獄中苦
第十二回, 府使設宴東軒上, 暗行出道南原府
第十三回, 惜春香衆寡等訴, 聞喜報老娘舞踏
第十四回, 御史陳情龍榻下, 聖心大悅封忠烈

일로 보아서도 大綱 짐작될 바와 같이 거의 獄中花 그대로이다. 內容을 閱讀하여 볼지라도 獄中花를 中間 中間이 增한 데에 지나지 못하는데 다음에 그 몇 句節을 獄中花와 對校하는 것으로 本書의 紹介를 마치련다. 첫째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春香을 바라보는 場面이다. 이것을 獄中花에서는

(道)『그러면 金도 玉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일러다고.』
房子놈이 그제야▶P120『오─ 저것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仔細히 보니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로소이다』
道令님이 春香이란 말을 듣고 웃음을 勸馬聲 웃음을 웃더니
『이애 丁寧 春香이야 顚不刺的을 見了萬千이로대 底般可喜娘은 罕曾見이라, 我─ 眼花擦亂口難言이라 魂靈兒飛去半天이로다. 눈에 水銀을 닌듯이 뵈이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오란다고 즉시 불러오너라.』
房子 엿자오대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府使 郡守 縣監 官長들이 無數히 보랴호되⋯⋯』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道)『그러면 金도 玉도 鬼神(●●)도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이애(●●) 갑갑하다 어서(●●) 일러다고』
房子놈이 그제야 시침이를(●●●●) () 띄이고(●●●●)
『오 저것 말삼이오(●●●●), 나는(●●) 무엇이라고, 이제 자세 보니() 本邑退妨(●●) 月梅 딸 春香이로구면(●●●). 그런대요(●●●●) 道令님은(●●●●) 장가도(●●●) 아니드신(●●●●) 兩班이(●●●●) 그런대만(●●●●) 눈이(●●) 먼첨(●●) 가시오(●●●)
道令님이 이 말을(●●●) 듯더니(●●●) 房子의(●●●) 嘲弄하는(●●●●) () 대적하기도(●●●●●) 잊어버리고(●●●●●) 다시(●●) 건너편(●●●) 그네(●●) 줄을(●●) 向하여(●●●) 보니(●●) 마음은(●●●) 烏鵲橋를(●●●●) 건너가고(●●●●) 몸은(●●) 精神없이(●●●●) 廣寒樓(●●●) 夕陽 빛에(●●●●) 앉었다가(●●●●) 기쁜 생각이(●●●●●) 사무쳐서(●●●●) 勒馬聲(●●●) 웃음으로(●●●●) 웃으며(●●●●) 房子를(●●●) 조른(●●)다.
『이애, 丁寧 春香이냐, 어여뿐(●●●) 人物을(●●●) 千萬이나(●●●●) 보았으되(●●●●) 저렇게(●●●) 어여쁜(●●●) 것은(●●) 처음(●●) 보는구나(●●●●) () 눈이(●●) 眩煌하야(●●●●) 말할(●●●) 수도(●●) 없으니(●●●●) 魂이(●●) 九泉에(●●●) 날라간(●●●) 듯하구나(●●●●) 잔말(●●●) 말고(●●) 내가(●●)어서 오란다고 곳 좀 불러 오너라』▶P121春香이(●●●) 元來(●●) 妓生(●●) 같으면(●●●●) 冊室(●●) 喻附가(●●●) 계신(●●) 바에야(●●●) () 떠러지기가(●●●●●●) 무섭게(●●●●) () 待令을(●●●) 시키마는(●●●●) 房子도(●●●) 그러치(●●●) 않을(●●) () 아는(●●) 터이라(●●●) 道令님의(●●●●) 吩咐를(●●●) 듣고(●●●) 매우(●●) 難處하여(●●●●) 春香의(●●●) 來歷을(●●●) 大網(●●) 아뢴다(●●●).
『春香의 雪膚花容 南方에 有名하여 監司 兵使 牧使 府使 郡守 縣監 여러 官長들이 無數히 보려하되⋯⋯』

이렇게 하였다. 또 다음 다른 데에서 더 하나 뽑아 春香이가 卞府使에게 매를 맞고 獄에 갇히는 場面이다. 이것을 눈中花에서는

春香이 精神차려
『어머니 설어말고 氣體 安保하옵시면 罪 없는 春香 몸이 설마한들 죽소리까. 水火劒槍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 터이니 걱정 많으시고 집으로 가옵소서 萬一에 안 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한 말씀이나 지금으로 죽을 테니 나가소서 울음소리에 氣가 막혀 頃刻에 죽겠구려』
春香 母 할일 없어 獄中에 딸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 업더지며 잡바질제 그때 왔던 여러 夫人 春香 母를 이끌어서 집으로 나간 後에 春香이 설이 울며
『불쌍하신 우리 母親 아비 없이 나를 길러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내어 좋은 일은 못 보시고 獄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父母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더러운 년의 팔자로다. 香丹이 게 있느냐』
『예─』

이렇게 한 것을, 本書에서는

▶P122-1 이윽고(●●●) 精神을 차려 獄門틈으로(●●●●●) 母親을(●●●) 부른다(●●●).
『어머니 설워마시고 氣體 安寧(●●)하옵소서(●●), 罪 없는 春香이가(●●) 설마한들 죽으리까 水火()槍 中이라도 아니 죽고 살아나서(●●●) 母親奉養할(●●●●●) 터이니 걱정 넘어(●●)말으시고 집으() ()아가옵소서. 萬一에 안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莫大할지라도(●●●●)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이 억색(●●)하여 氣가 마켜 죽게구려』
春香 母 이말(●●) 듯고(●●) 할일 없이 獄中에다 春香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悲悲切切斷腸懷가(●●●●●●●●) 淨凉路上魂顚倒라(●●●●●●●●) 업더질듯잡바질듯(●●●●●●●●) 집으로(●●●) 向하니라.(●●●●) 春香이(●●●) 母親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한숨을(●●●) 후유─(●●●) 쉬더니(●●●) 길이(●●) 嘆息을(●●●) 한다.(●●●)
天地間에(●●●●) 이내(●●) 몸이(●●) 父母恩惠(●●●●) 重하도다,(●●●●) 黃河같이(●●●●) 깊으신(●●●) 德澤,(●●●) 山갈이(●●●) 높고(●●) 높다.(●●●) 슬푸도다(●●●●) 우리 母親, 父親(●●)없이 날 기를제(●●●) 공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놓고(●●) 좋은 일은 못보시고 눈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母親(●●) 근심, 죽도 살도 못하겠네, 樹欲靜而風不止하고(●●●●●●●●●●) 子欲養而親不來라,(●●●●●●●●) 半白(●●) 넘은(●●) 늙은(●●) 母親(●●) 누가(●●) 있어(●●) 泰養하나(●●●●) 내일은(●●●) 내가(●●) 알지(●●) 끝날(●●) 날이(●●) 망연하니(●●●●) 가련한(●●●) 母親身勢(●●●●) 어찌하면(●●●●) 좋을는지(●●●●). 香丹아 게 있나냐』

부르니

『예─ 여기(●●) 있읍니다(●●●●)

이렇게 하였다. 即 右에 圈点을 찍은 部分이 改訂 或 增補한 곳이거니와 全體를 通하여 大概 이런 程度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여기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춘향이가 변사도에게 불려 들어가서 관장에 대한 거역으로 처음에 군노방에 내쳐 태장 수도를 맞는다. 그럴 때에 호장이 사도에게 춘향이가 아직 나이 어려서 관가의 소중(所重)한 것을 모르고 그러한 것이니 한번 용서하면 자기가 잘 타일러 근시(近侍)케 하겠다 하니 사도가 도리어 좋아하여 그리하라 하고, 호장이 춘향에게로 나와 무엇을 수군 수군하니 춘향이가 다시 사도가 있는 상방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사도가 춘향이가 많은 마음을 돌렸는가 하여 무한히 좋아하면서 또 춘향에게 절을 굽히고 수청을 거행하라 달랜다. 그러나 춘향은 역시 거절하였음으로 다시 내려서 매를 쳤다 하였다. 이것은 본서가 앞에서와 같이 옥중화를 증수하는 태도에서 나온 결과이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춘향이가 마치 한번은 절을 굽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듯이 오해되어 편자는 춘향의 절개를 더욱 빛내주자 하는 의도에서 나왔겠지만, 결과는 도리어 그 반대가 됨을 면하지 못하였다. 본서는 즉 이러한 점이 가끔 있었다.
쪽수▶P122-2그런데 한 가지 여기 말하여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春香이가 卞使道에게 불려 들어가서 官長에 對한 拒逆으로 처음에 軍奴房에 내처 笞杖 數刀를 맞는다. 그럴 때에 戶長이 使道에게 春香이가 아직 나이 어려서 官家의 所重한 것▶P123-1을 모르고 그러한 것이니 한번 容恕하면 自己가 잘 타일러 近侍케 하겠다 하니 使道가 도리어 좋아하여 그리하라 하고, 戶長이 春香에게로 나와 무엇을 수군 수군하니 春香이가 다시 使道가 있는 上房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使道가 春香이가 많은 마음을 돌렸는가 하여 無限히 좋아하면서 또 春香에게 節을 굽히고 守廳을 舉行하라 달랜다. 그러나 春香은 亦是 拒絶하였음으로 다시 내려서 매를 쳤다 하였다. 이것은 本書가 앞에서와 같이 獄中花를 增修하는 態度에서 나온 結果이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春香이가 마치 한번은 節을 굽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 듯이 誤解되어 編者는 春香의 節介를 더욱 빛내여 주자 하는 意圖에서 나왔겠지만, 結果는 도리어 그 反對가 됨을 免하지 못하였다. 本書는 即 이러한 点이 가끔 있었다.







































본문3: 9. 倫理小說廣寒樓


본서는 일명 증정특별춘향전이라 하여 김용제의 명의로 대정 6년 11월 29일에 박문서관에서 발행되었다. 서명에 이륜소설이라 관사를 붙인 만큼 윤리 중심으로 이 소설을 써나가자 하는 것이 편자의 의도이었던 것 같으나 별로 그것이 소설 전체에 피가 되고 맥이 되어 약동하지 못하고 가끔 가다가 행진을 멈추고는 일장의 설명을 첨가한다는 극히 유치한 묘사법을 썼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 있다. 즉 본서 12혈에 이도령이 춘향을 불러 오라 하니 방자가 마지못하여 춘향 부르려 갔다 해놓고 「大低 妓生이라 하는것은 아모리 文明한 나라에도 아조 없애지 못함은 아직 人生社會에 習慣을 頓然이 改良치 못함이라, 그러나 다른나라에는 法律과 風俗이 定一하여⋯ 云云」하는 것이 있고, 또 25혈에는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연연이 생각한다 하여 놓고는 "그러나 李道令 같은 사람은 마치 窈窕淑女를 寤寐思之하든 文王같은 聖賢君子의 模範으로 비록 娼玆出身이나 春香이 같은 節介있는 계집을 만나 그 地境을 하였으나 나라에든지 집안에든지 제몸에든지 속해될 것은 없다 하여도 古往今來에 女色에 迷惑하여 亡身敗道에 國破家亡을 자취하는 者가 거의 다 옳지 못한 美色에게 고惑하여 그의 되지 안인 者가 몇몇이나 되는고 云云"이라 한 것이 있다. 이러한 구절은 다만 이것만이 아니다. 이 밖에도 처처에서 보이지마는 요컨대 이러한 투식으로 쓴 것인데 또 본서는 그 풀로트에 있어서도 일반 이본과 많은 차이를 가졌다. 첫째 이도령은 방자에게 광한루의 경치가 좋다는 말을 듣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광한루에 벌써 나와 앉아서 광한루의 경치를 자랑하고 또 방자와 조롱하는 말을 빌어서 관동팔경이니 관서팔경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결국 광한루가 제일이라는 형식이다. 그러다가 춘향을 발견하여서는 방자를 시켜 부르는데 여기서는 춘향이 기생으로 되어 있고, 또 춘향은 광한루까지 왔었지마는 이도령과 백년가약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 이도령이 춘향 집을 찾는데 그동안 춘향전으로써 반드시 나오는 이도령의 독서는 없고, 춘향모는 도리어 이도령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도령은 춘향모를 대하여 춘향을 바로 정실부인으로 맞겠다 하여 이후 용어도 반드시 장모와 부인에게 쓰는 말을 썼다. 그리고 이별 후에는 도령의 모친과 또 그 부친이 여기서는 각각 춘향을 불러보았다고 하였으며, 변부사가 도임하여 춘향을 때렸을 때는 소위 십장가라는 것은 없지마는 춘향모가 또한 발악하다가 모녀가 동시에 같이 하옥되고 말었다. 그 뒤 사도는 춘향모를 불러 내어 그 딸을 수찬케 하라 권고하니 춘향무는 그 뜻으로 춘향에게 훼절(毁節)하기를 권하였는데 춘향은 물론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도령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오는데 도중에서 춘향의 편지를 받고 그 답상을 써서 편지 가지고 온 사람에게 붙어 보냈다 하였으며, 남원에 도달해서는 내일로 변부사의 생일연에 어사 출도를 할 모양인데 그때 어사는 서리 중방에게 자기와 춘향과의 관계를 말하였고, 변부사는 생일연 끝에 춘향을 잡아 올려 또 매를 막 치려 할 때 어사는 삼문에 출도를 하였다. 그 후 변부사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관직이 삭탈되고 또 서울로 치송(致送)이 되어 사형에 처하였다고 하였다.
쪽수▶P123-2本書는 一名 增訂特別春香傳이라 하여 金用濟의 名義로 大正 6年 11月 29日에 博文書舘에서 發行되었다. 書名에 理倫小說이라 冠詞를 붙인만큼 倫理中心으로 이 小說을 써나가자 하는 것이 編者의 意圖이었던 것 같으나 別로 그것이 小說 全體에 피가 되고 脉이 되어 躍動하들 못하고 가끔 가다가 行進을 멈추고는 一場의 說明을 添加한다는 極히 幼稚한 描寫法을 썼다. 일 터이면 이런 것이 있다. 即 本書 12頁에 李道令이 春香을 불러 오라 하니 房子가 마지못하여 春香 부르려 갔다 하여 놓고 「大低 妓生이라 하는것은 아모리 文明한 나라에도 아조 없애지 못함은 아직 人生社會에 習慣을 頓然이 改良치 못함이라, 그러나 다른나라에는 法律과 風俗이 定一하여⋯ 云云」하는▶P124 것이 있고, 또 25頁에는 李道令이 廣寒樓에서 春香을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戀戀이 생각한다 하여 놓고는 「그러나 李道令 같은 사람은 마치 窈窕淑女를 寤寐思之하든 文王같은 聖賢君子의 模範으로 비록 娼玆出身이나 春香이 같은 節介있는 계집을 만나 그 地境을 하였으나 나라에든지 집안에든지 제몸에든지 속해될 것은 없다 하여도 古往今來에 女色에 迷惑하여 亡身敗道에 國破家亡을 자취하는 者가 거의 다 옳지 못한 美色에게 고惑하여 그의 되지 안인 者가 몇몇이나 되는고 云云」이라 한 것이 있다. 이러한 句節은 다만 이것만이 아니다. 이 밖에도 處處에서 보이지마는 要컨대 이러한 套式으로 쓴 것인데 또 本書는 그 풀로트에 있어서도 一般 異本과 많은 差異를 가졌다. 첫째 李道令은 房子에게 廣寒樓의 景致가 좋다는 말을 듣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廣寒樓에 벌써 나와 앉아서 廣寒樓의 景致를 자랑하고 또 房子와 嘲弄하는 말을 빌어서 關東八景이니 關西八景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結局 廣寒樓가 第一이라는 形式이다. 그러다가 春香을 發見하여서는 房子를 시켜 부르는데 여기서는 春香이 妓生으로 되어 있고, 또 春香은 廣寒樓까지 왔었지마는 李道令과 百年佳約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 李道令이 春香 집을 찾는데 그동안 春香傳으로써 반드시 나오는 李道令의 讀書는 없고, 春香母는 도리어 李道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道令은 春香母를 對하여 春香을 바로 正室夫人으로 맞겠다 하여 以後 用語도 반드시 丈母와 夫人에게 쓰는 말을 썼다. 그리고 離別 後에는 道令의 母親과 또 그 父親이 여기서는 各々 春香을 불러보았다고 하였으며, 卞府使가 到任하여 春香을 때렸을 때는 所謂 十杖歌라는 것은 없지마는 春香母가 또한 發惡하다가 母女가 同時에 같이 下獄되고 말었다. 그 뒤 使道는 春香母를 불러 내어 그 딸을 守竄케 하라 勸告하니 春香毋는 그 뜻으로 春香에게 毁節하기를 勸하였는데 春香은 勿論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李道令은 暗行御使가 되어 南原으로 오는데 途▶P125-1中에서 春香의 편지를 받고 그 答狀을 써서 편지 가지고 온 사람에게 붙어 보냈다 하였으며, 南原에 到達하여는 來日로 卞府使의 生日宴에 御史 出道를 할 모양인데 그때 御史는 書吏 中房에게 自己와 春香과의 關係를 말하였고, 卞府使는 生日宴 끝에 春香을 잡아 올려 또 매를 막 치려 할 때 御史는 三門에 出道를 하였다. 그後 卞府使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官職이 削奪되고 또 서울로 致送이 되어 死刑에 處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본서는 상당히 종래의 춘향전을 개채하여 특색있게 하려 하였으나 창작의 힘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결국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는데, 가끔 가다가는 춘향전의 선입견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곳도 있고, 또 묘사가 퍽 부자연스러워 사건의 발전에 무리한 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에 있어서는 역시 옥중화를 모방하였음은 틀림없었으니, 이를테면 이도령의 부모가 춘향을 불러 보려 하던 것을 불러 보았다 하는 것도 그 영향이 아니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옥중화의 원문을 그냥, 혹은 그 의미를 취하여 인용한 것이 많이 있다.
쪽수▶P152-2이와 같이 本書는 相當히 從來의 春香傳을 改寨하여 特色있게 하려 하였으나 創作의 힘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結局은 뒤죽 박중이 되고 말았는데, 가끔 가다가는 春香傳의 先入見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理解하지 못할 곳도 있고, 또 描寫가 퍽 不自然하여 事件의 發展에 無理한 點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大體에 있어서는 亦是 獄中花를 摸倣하였음은 틀림없었으니, 이를테면 李道令의 父母가 春香을 불러 보려 하던 것을 불러 보았다 하는 것도 그 影響이 아니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獄中花의 原文을 그냥, 或은 그 意味를 取하여 引用한 것이 많이 있다.




































































































본문4: 10. 增修春香傳


본서는 대정 12년 3월 5일에 고유상의 명의로 회동서관에서 발행되었다. 특별무쌍춘향전과 같이 처음에 삽화 수매를 붙이고 전체를

第一 廣寒樓노리
第二 千字뒤푸리
第三 春香斗科
第四 百年結約
第五 斗歌
第六 離別
第七 新官到任
第八 獄中孤魂
第九 李道令 大科及
第十 獄中解夢
第十↑ 農夫歌
第十二 再逢春香
第十三 新官 生日杂对
第十四 暗行御史出道

14회에 나누었는데 역시 옥중화의 번안본일뿐 아니라 무쌍춘향전의 영향도 많이 입었다.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춘향을 바라보는 장면에

(道)"그러면 金도 또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얼런 일러다고"
房子놈이 그제야 시침이를 띄고 "오─ 저것 말이요, 나는 무엇이라구, 이제 仔細 보니까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구먼, 道令님 장가도 아니드신 兩班이 그런대만 눈이 먼첨 가시요"
道令님 이말을 듣더니 房子의 嘲弄하는 말 대척하기도 잊어바리고 다시 건너便 그네줄을 向하여 보니 마음은 烏鵲橋를 건너가고 몸은 精神없이 廣寒棋 夕陽빛에 비겼다가 기뿐 생각이 사못쳐서 숨이 절로 나오다가 急히 慾心이 나서 房子를 조른다.
"이에 저렇게 어여뿐 것은 처음 보겠구나 잔말 말고 어서 곧 좀 불러 오느라"
春香이 元來 妓生같으면 冊室 吩附가 계신바에야 입 떠러지기가 무섭게 待令을 시키련만 房子도 그렇지 않은줄 아는터이라 道令님의 吩附를 듣고 매우 離處하여 였자오대, 云云

이라 한 것이라든지, 또 춘향이가 옥에 갇히는 장면에

이윽고 精神을 차려서 獄門 구멍으로 어미를 부른다
"어머니 설워말고 氣體 安保하옵시면 罪없는 春香몸이 설마한들 죽사오리까 水火劒槍中이라도 아니죽고 살터이니 걱정말으시고 집으로 가옵소서, 萬一에 아니 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의 말삼이나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소래 氣막혀 頃刻에 죽겠구려"
春香母 할일 없어 獄中에 딸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 엎더질듯 잡바질듯 집으로 向하니라, 春香이 母親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한숨을 후유─ 하더니 길이 단식을 한다.
"불상하신 우리 母親 아비 없이 나를 길러 功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내며 좋은 일은 못 보시고 눈 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父母근심 죽도 살도 못 하겠네 가련한 팔자야. 상단이 게 있나냐"
부르니
"예─"

라 한 것을 앞에서 인용한 것과 비교하여 보아도 알 것이다.
쪽수▶P125-3本書는 大正 12年 3月 5日에 高裕相의 名義로 匯東書舘에서 發行되었다. 特別無雙春香傳과 같이 처음에 揷畵 數枚를 붙이고 全體를

第一 廣寒樓노리
第二 千字뒤푸리
▶P126第三 春香斗科
第四 百年結約
第五 斗歌
第六 離別
第七 新官到任
第八 獄中孤魂
第九 李道令 大科及
第十 獄中解夢
第十↑ 農夫歌
第十二 再逢春香
第十三 新官 生日杂对
第十四 暗行御史出道

14回에 나누었는데 亦是 獄中花의 飜案本일뿐 아니라 無雙春香傳의 影響도 많이 입었다. 廣寒樓에서 李道令이 春香을 바라보는 場面에

(道)『그러면 金도 또 아닐진대 무엇이란 말이냐, 갑갑하다 얼런 일러다고』
房子놈이 그제야 시침이를 띄고▶P128『오─ 저것 말이요, 나는 무엇이라구, 이제 仔細 보니까 本邑 妓生 月梅 딸 春香이구먼, 道令님 장가도 아니드신 兩班이 그런대만 눈이 먼첨 가시요』
道令님 이말을 듣더니 房子의 嘲弄하는 말 대척하기도 잊어바리고 다시 건너便 그네줄을 向하여 보니 마음은 烏鵲橋를 건너가고 몸은 精神없이 廣寒棋 夕陽빛에 비겼다가 기뿐 생각이 사못쳐서 숨이 절로 나오다가 急히 慾心이 나서 房子를 조른다.
『이에 저렇게 어여뿐 것은 처음 보겠구나 잔말 말고 어서 곧 좀 불러 오느라』
春香이 元來 妓生같으면 冊室 吩附가 계신바에야 입 떠러지기가 무섭게 待令을 시키련만 房子도 그렇지 않은줄 아는터이라 道令님의 吩附를 듣고 매우 離處하여 였자오대, 云云

이라 한 것이라든지, 또 春香이가 獄에 갇히는 場面에

이윽고 精神을 차려서 獄門 구멍으로 어미를 부른다
『어머니 설워말고 氣體 安保하옵시면 罪없는 春香몸이 설마한들 죽사오리까 水火劒槍中이라도 아니죽고 살터이니 걱정말으시고 집으로 가옵소서, 萬一에 아니 가시고 저리 울고 계시오면 不孝의 말삼이나 지금으로 죽을테니 나가소서 나가소서. 울음소래 氣막혀 頃刻에 죽겠구려』
春香母 할일 없어 獄中에 딸을 두고 天地가 아득하여 엎더질듯 잡바질듯 집으로 向하니라, 春香이 母親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한숨을 후유─ 하더니 길이 단식을 한다.
『불상하신 우리 母親 아비 없이 나를 길러 功도 들고 힘도 들어 고이 고이 길러내며 좋은 일은 못 보시고 눈▶P128-1앞에 모진 일만 절절이 當하시니 不孝莫大 이년 몸이 죽자해도 아니되고 사자하니 父母근심 죽도 살도 못 하겠네 가련한 팔자야. 상단이 게 있나냐』
부르니
『예─』

라 한 것을 앞에서 引用한 것과 比較하여 보아도 알 것이다.
그러나 또 전기 양본에서 다소의 증감이 없었던 바도 아니다. 이를테면 가끔 가다가 유산가, 새타령 등의 잡가며 구구가 등 노래를 삽입한 것은 본서로써 증보한 것이라 볼 것이고, 이도령의 부모가 춘향에게 금품을 보냈다는 것이라든지 어사가 도중에 만복사에 들러 시주를 하였다는 것을 빼어버린 것은 그 삭멸한 것이며, 이외에 또 춘향의 인물 소개를 방자의 말 가운데에 넣어버렸다는 것은 얼마 쯤 그 플로트 상의 변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에 있어 별로 본서의 독특한 점을 들만한 것은 없다.
쪽수▶P128-2그러나 또 前記兩本에서 多少의 增減이 없었는 배도 아니다. 이를테면 가끔 가다가 遊山歌, 새打令 等의 雜歌며 九九歌 等 노래를 揷入한 것은 本書로써 增補한 것이라 볼 것이고, 李道令의 父母가 春香에게 金品을 送贈하였다는 것이라든지 御史가 途中에 萬福寺에 들러 施主를 하였다는 것을 빼어버린 것은 그 削滅한 것이며, 이外에 또 春香의 人物 紹介를 房子의 말 가운데에 넣어버렸다는 것은 얼마쯤 그 풀로트 上의 變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大體에 있어 別로 本書의 獨特한 點을 들만한 것은 없다.













































본문5: 11. 우리들傳


본서는 심상태의 편저로 일명 별춘향전이라 하여 그 상권만이 대정 13년 4월 29일에 발행되었다. 권두에는 편자의 서문이 붙었는데, 그 일절에

우리덜전은 該諧謔弄이 比他百倍오며 且以夫讀妻評하여 不見莊苻差接之禮하고 常多麤放橲狎之態하니 彼端士雅儒豈容倩眄哉리오마는

운운이라 한 바와 같이 오로지 광대의 연예각본으로 편집한 것으로 다분의 회해학롱(詼諧謔弄)을 포함하고, 또 부독처평(夫讀妻評)이라 하여 부가 원문을 저호(著頀)하면 처가 그를 듣고 있다가 평을 가하고 이에 또 부가 대답한다는 형식을 취하였다. 서문 말미에도 향인 심상태 별호 합합 저독
실인 정재경 별호 소소 청평
우 합합 쌍답
이라 하였으며, 또 간독 방법이라 하여

大字로 抄寫한 獨欄은 每히 原文으로 看倣事.
小字로 抄寫한 雙欄은 右欄은 昭昭의 評, 左欄은 哈哈의 答으로 看似事,

라 하였거니와 최초의 일부를 인용하여보면 아래와 같다.

당상 당하 연설이올시다 잘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 이사람이 당상 당하 대표자로 유쾌히 듣겠읍니다 [昭昭의 評] 변변치 못한 말을 그처름 들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哈哈의 答]) 下皆做此 구 한국시대올시다 숙종대왕 즉위초에 시화세풍하고 국대만안하여,조정에 충신이오 여염에 열녀로다 삼각산제일봉에 봉황이 앉어서 울음울고 한강수 깊은물에 하도낙서 낫단말가 좃습니까좃습니다 강구연월 격양가에 문동요도 하려니와 백공상황 경상가를 오날이야 알리로다. 사방이 풍등하니 경운경성이 일어나고 헤풍황창 하온날에 도처에 풍악이라 좃습니까좃습니다 장안호걸 벗님네야 놀고 놀고 놀아보세. 이러탓이 좋은 때에 아니노든 못하리라 극사인간 저믄날에 소녕 행락몇이련고 소년행락은 하고 노인행락은 못할가요 왜 못하여, 노소 동락은 더 좋지요 (以下省略)

쪽수▶P128-3本書는 沈相泰의 編著로 一名 別春香傳이라 하여 그 上卷만이 大正 13年 4月 29日에 發行되었다. 卷頭에는 編者의 序文이 붙었는데, 그 一節에

우리덜전은 該諧謔弄이 比他百倍오며 且以夫讀妻評하여 不見莊苻差接之禮하고 常多麤放橲狎之態하니 彼端士雅儒▶P129豈容倩眄哉리오마는

云云이라 한 바와 같이 오로지 廣大의 演藝脚本으로 編集한것으로 多分의 詼諧謔弄을 抱含하고, 또 夫讀妻評이라 하여 夫가 原文을 著頀하면 妻가 그를 듣고 있다가 評을 加하고 이에 또 夫가 對答한다는 形式을 取하였다. 序文 末尾에도 鄉人 沈相泰 別號 哈哈 著讀
室人 鄭在慶 別號 昭昭 聽評
右 哈哈 双答
이라 하였으며, 또 看讀方法이라 하여

大字로 抄寫한 獨欄은 每히 原文으로 看倣事.
小字로 抄寫한 雙欄은 右欄은 昭昭의 評, 左欄은 哈哈의 答으로 看似事,

라 하였거니와 最初의 一部를 引用하여보면 左와 같다.

당상 당하 연설이올시다 잘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 이사람이 당상 당하 대표자로 유쾌히 듣겠읍니다 [昭昭의 評] 변변치 못한 말을 그처름 들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哈哈의 答]) 下皆做此 구 한국시대올시다 숙종대왕 즉위초에 시화세풍하고 국대만안하여,조정에 충신이오 여염에 열녀로다 삼각산제일봉에 봉황이 앉어서 울음울고 한강수 깊은물에 하도낙서 낫단말가 좃습니까좃습니다 강구연월 격양가에 문동요도 하려니와 백공상황 경상가를 오날이야 알리로다. 사방이 풍등하니 경운경성이 일어나고 헤풍황창 하온날에 도처에 풍악이라 좃습니까좃습니다 장안호걸 벗님네야 놀고 놀고 놀아보세. 이러탓이 좋은 때에 아니노든 못하리라 극사인간▶P130-1저믄날에 소녕 행락몇이련고 소년행락은 하고 노인행락은 못할가요 왜 못하여, 노소 동락은 더 좋지요 (以下省略)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는 옥중화에 별다름이 없다. 다만 본서 특유의 회해가 있고 거기에 조금 이채를 가하기 위하여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부를 때 춘향이 처음에는 방자를 따라가는 듯하다가 안수모, 영수화, 해수혈이라는 말을 전창하고 제 집으로 도로 가버렸다 한 것이라던지, 또는 춘향은 매를 때려 옥 중에 가두어 두고 변사도가 늙은 과부를 시켜 다시 그 마음을 돌려보려다가 실패하였다 한 것이라던지, 또 춘향모마저 그 딸에게 훼절하기를 권했다 하는 것들의 개축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춘향이 옥중에 갇혀 달거리로 이도령을 사모하다가 황릉묘의 꿈을 꾸는 것으로 이 상권을 마쳤다.
쪽수▶P130-2그러나 內容에 있어서는 獄中花에 別다름이 없다. 다만 本書 特有의 詼諧가 있고 거기에 조금 異彩를 加하기 爲하여 李道令이 廣寒樓서 부를 때 春香이 처음에는 房子를 따라가는 듯하다가 鴈隨侮, 嶸隨花, 蟹隨穴이라는 말을 傳唱하고 제 집으로 도로 가버렸다 한 것이라든지, 또는 春香은 매를 때려 獄中에 가두어 두고 卞使道가 늙은 寡婦를 시켜 다시 그 마음을 돌려보려다가 失敗하였다 한 것이라든지, 또 春香母마저 그 딸에게 毁節하기를 勸했다 하는 것들의 改築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春香이 獄中에 갇혀 달거리로 李道令을 思慕하다가 黃陵廟의 꿈을 꾸는 것으로 이 上卷을 마쳤다.













































본문6: 12. 萬古烈女獄中花=


본서는 이종정의 명의로 대정 14년 3월 22일에 광동서국과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하였다. 그러나 본서는 다만 옥중화를 고본춘향전으로 증보한 데에 지나지 못하였는데 첫째 들면서 시초에 고본춘향전의 서곡문 즉 "旅閣같은 이 天地⋯"운운의 삼천리강산유람가를 인용하여 옥중화의 "苧羅山下 若耶溪에⋯"운운에 계속하였고, 또 광한루 앞에 나타난 춘향이(14혈부터 18혈까지), 춘향의 이름(24혈), 사랑가(57혈부터 60혈까지), 춘향의 옥중고탄과 춘향모의 탄식(152혈부터 160혈까지 초취) 어사의 도중탐문(171혈부터 177혈까지 초취), 어사의 남원당도(180혈부터 181혈까지), 춘향의 옥중몽사(186혈부터 187혈까지), 옥문에서 어사와 춘향의 상봉 (199혈부터 200혈까지), 어사의 동헌좌기(226혈부터 231혈까지 초취) 기타를 고본춘향전에서 인용하여 옥중화의 그에 대입하였다. 따라서 여기에 자연히 그 연락 상 얼마 쯤 그 플로트에 변경이 있었음은 부득이했거니와 또 본서가 발행자의 이름을 달리할 뿐 아니라 개제하여 출판한 만큼 본서 편저의 창안이 전연 없었던 바도 아니다. 이를테면 이도령이 방자를 데리고 춘향집을 찾아가서 문밖에서 안 동정을 살피니 마침 춘향모가 춘향방에 와서 청룡 운운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기로 이도령이 이것을 듣고 한 계교를 생각하여 춘향모에게 책방에서 글을 읽다가 잠긴 조니 비몽사몽 간에 자기 몸이 장주호접(莊周蝴蝶)이 되어 춘향집 화계(花階)에 와서 놀았음으로 연연하여 지금 찾아왔다 하는 것이 그것인데, 그런 것은 조금씩 곳곳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원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옥중화를 고본춘향전으로 증보하였다 함에는 다름이 없었다.
쪽수▶P130-3本書는 李鍾楨의 名義로 大正 14年 3月 22日에 光東書局과 漢城圖書株式會社에서 發行하였다. 그러나 本書는 다만 獄中花를 古本春香傳으로 增補한데 지나지 못하였는데 첫째 들면서 始初에 古本春香傳의 序曲文 即 「旅閣같은 이 天地⋯」云云의 三千里江山遊覽歌를 引用하여 獄中花의 「苧羅山下 若耶溪에⋯」云云에 繼續하였고, 또 廣寒樓 앞에 나타난 春香이(自14頁 至18頁), 春香의 이름(24頁), 사랑歌(自57頁 至60頁), 春香의 獄中苦嘆과 春香母의 嘆息(自152頁 至160頁 抄取) 御史의 途中探問(自171至177頁 抄取), 御史의 南原當到(自180頁 至181頁), 春香의 獄中夢事(自186頁 至187頁), 獄門에서 御史와 春香의 相逢 (自199頁 至200頁), 御史의 東軒坐起(自226頁 至231頁 抄取) 其他를 古本春香傳에서 引用하여 獄中花의 그에 代入하였다. ▶P131-1따라서 여기에 自然히 그 連絡 上 얼마끔 그 플로트에 變更이 있었음은 不得已하였거니와 또 本書가 發行者의 이름을 달리할 뿐 아니라 改題하여 出版한만큼 本書 編著의 創案이 全然 없었던 바도 아니다. 이를테면 李道令이 房子를 데리고 春香집을 찾아가서 門밖에서 안 動靜을 살피니 마침 春香母가 春香房에 와서 靑龍云云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기로 李道令이 이것을 듣고 한 계교를 생각하여 春香母에게 冊房에서 글을 읽다가 잠긴 조니 非夢似夢 間에 自己 몸이 莊周蝴蝶이 되어 春香집 花階에 와서 놀았음으로 戀戀하여 지금 찾아왔다 하는 것이 그것인데, 그런 것은 조금씩 곳곳이 있는 것을 發見할 수 있다. 그러나 元體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獄中花를 古本春香傳으로 增補하였다 함에는 다름이 없었다.














































본문7: 13. 增像演藝獄中佳人


본서는 옥련암이 감교한 고우정 북평의 창본인데 일명 한선문춘향전이라 하여 홍순필의 명의로 대정 15년 12월 20일에 경성서렴조합에서 발행하였다. 본서 역시 옥중화의 번안본이거니와 서제에 연예라는 관사가 붙은만큼 순전히 연예 목적으로 편술된 책이다. 그리하여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전부 19막에 나누었다.

第一幕, 鞦韆
第二幕, 冊房讀書
第三幕, 百年結約
第四幕, 사랑노래
第五幕, 離別
第一場 南原府東軒, 第二場 春香家, 第三場 五里亭
第六幕, 相思獨愁心
第七幕, 新官到任
第八幕, 妓生點考場
第九幕, 春香捉來
第一場 春香家, 第二場 官庭,
第十幕, 春香獄囚
第十一幕, 李道令科擧場
第十二幕, 李御史南原下來
第一場 〇〇, 第二場 房子偶逢, 第三場 御史聽農歌
第十三幕, 獄中解夢
第十四幕, 御史春香家來訪
第十五幕, 御史獄中往訪
第十六幕, 南原府使生日宴
第十七幕, 御史出道
第十八幕, 御史春香放送
第十九幕, 御史春香感舊情談

그리고 각 막 각 장에는 설비와 출장 인물을 기입하였는데 이를테면 제 1막 추천에

(設備)烏鵲橋, 廣寒樓, 柳林, 鞦韆, 具鞍驢, 酒看床
(出場)春香, 小婢上丹, 李道令, 房子羅用釗

이렇게 되어 있다. 또 본서 목차 끝에 주의라 하여 "此書는 演劇에도 應用하게된者이니 書中 △⋯⋯△票가 有함은 聲曲을 用하는 部分을 示함이라"한 바와 같이 원문 중 성곡을 쓸 부분에는 일일이 △표를 표시하였다.
쪽수▶P131-2本書는 玉蓮庵이 監校한 古優丁北平의 唱本인데 一名 漢鮮文春香傳이라 하여 洪淳泌의 名義로 大正 15年 12月 20日에 京城書簾組合에서 發行하였다. 本書 亦是 獄中花의 翻案本이거니와 書題에 演藝라는 冠詞가 붙은만큼 純全이 演藝 目的으로 編述된 책이다. 그리하여 內容을 左와 如히 全部 19幕에 나누었다.

第一幕, 鞦韆
第二幕, 冊房讀書
第三幕, 百年結約
▶P132第四幕, 사랑노래
第五幕, 離別
第一場 南原府東軒, 第二場 春香家, 第三場 五里亭
第六幕, 相思獨愁心
第七幕, 新官到任
第八幕, 妓生點考場
第九幕, 春香捉來
第一場 春香家, 第二場 官庭,
第十幕, 春香獄囚
第十一幕, 李道令科擧場
第十二幕, 李御史南原下來
第一場 〇〇, 第二場 房子偶逢, 第三場 御史聽農歌
第十三幕, 獄中解夢
第十四幕, 御史春香家來訪
第十五幕, 御史獄中往訪
第十六幕, 南原府使生日宴
▶P133-1第十七幕, 御史出道
第十八幕, 御史春香放送
第十九幕, 御史春香感舊情談

그리고 各幕 各場에는 設備와 出場人物을 記入하였는데 이를이면 第一幕 鞦韆에

(設備)烏鵲橋, 廣寒樓, 柳林, 鞦韆, 具鞍驢, 酒看床
(出場)春香, 小婢上丹, 李道令, 房子羅用釗

이렇게 되어 있다. 또 本書 目次 끝에 注意라 하여 「此書는 演劇에도 應用하게된者이니 書中 △⋯⋯△票가 有함은 聲曲을 用하는 部分을 示함이라」한 바와 같이 原文 中 聲曲을 用할 部分에는 一一히 △票를 票示하였다.
이로 보아 본서는 벌써 한 각본의 체재를 정제하였으나, 춘향전이 원래 희곡적 소설로써 발달하여 온 것은 앞에서도 설래한 바거니와 이와 같이 그 체재까지를 완전이 각본 형식에 정제한 것은 본서에 와서 처음이라 하여도 가하다.
쪽수▶P133-2일로 보아 本書는 벌써 한 脚本의 體裁를 整齊하였으나, 春香傳이 元來 戱曲的 小說로써 發達하여 온 것은 앞에서도 說來한 바이거니와 이와 같이 그 體裁까지를 完全이 脚本 形式에 整齊한 것은 本書에 와서 처음이라 하여도 可하다.
그다음 이별 후의 춘향은 상사와 수심으로 병이 되어 긴 탄식만 하고 있을 때에 행수 기생이 나와서 춘향모에게 이별한 님을 부질 없이 생각할 것이 아니니 호장에게 말하여 기안에 착명하도록 하라 권한다. 그럴수록 춘향은 더욱 이도령 생각이 간절할 것이나 이때 마침 서울서 하인이 와서 이도령의 편지를 전한다. 이도령 급제 후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오는데 여기서는 고본춘향전의 영향을 받아 도중 어떤 주막에 드니 남원 산다는 행인이 부사의 송사처결이 불공평할 뿐 아니라 열녀 춘향을 엄치하옥하여 거월 초에 죽어서 이 넘에 초빈하였다 함으로 그 말을 곧이 듣고 그곳을 찾아가서 울다가 그 초빈 주인 강좌수에게 욕을 보았다고 하였다. 또 어사출도 후에는 어사가 공사를 마치고 춘향집으로 나와 본관을 청하니 변부사가 황겁하여 미복으로 찾아와서 인병부를 끌러서 올리면서 사죄를 하였는데 이럴 때에 춘향모가 또한 춘향의 정절이 본관으로부터 빛났으니 관대히 용서하여 주라 청하였다. 물론 여기도 본관은 옥중화와 마찬가지로 용서되었으나 춘향모의 활약이 이까지 미쳤을은 주목된다. 이외에 또 본서는 이도령의 부모가 춘향에게 금품을 보내주었다는 것이라든지 또 어사가 만복사라는 절에 들러 시주를 하였다는 것은 취하지 않았고, 심지어 춘향의 황릉묘몽사와 어사의 노상몽사까지 빼어버려 얼마만큼 옥중화의 풀로트를 변경하려 한 것이 보인다.
쪽수▶P133-3그러나 그 풀로트에 있어서는 獄中花와 別다름이 없었다. 다음에 若干 그 닯은 點만을 들어보면 첫째 春香은 本書에서는 月梅와 徐府使와의 所生이라 하여 姓을 徐氏로 改姓하여 있고, 廣寒樓 앞에서의 鞦韆은 그 母가 上丹이를 불러서 나가서 鞦韆이나 하고 오라하여 하였다 하며, 春香이가 廣寒樓로부터 돌아오니 春香母 夕飯 後에 春香에게로 와서 靑龍의 꿈 이야기를 하고 오늘 廣寒樓에 나가서 別 일이 없었느냐 묻는다. 그래서 上丹이가 옆에 있다가 房子에게 辱을 보았다 하니 春香母 놀라면서 春香에게 몸을 操心하라 當付하였다. 또 五里亭에서의 離別은 春香母가 春香이를 데리고 나왔었다 하였는데 여기에 春香의 人物은 獄中花에서보다 더 一層 凡節家의 處女로 되었다. 그리고 ▶P134-1그다음 離別 後의 春香은 相思와 愁心으로 病이 되어 長歎息만 하고 있을 때에 行首妓生이 나와서 春香母에게 離別한 님을 부질없이 생각할 것이 아니니 戶長에게 말하여 妓案에 着名하도록 하라 勸한다. 그럴수록 春香은 더욱 李道令 생각이 懇切할 것이나 이때 마침 서울서 下人이 와서 李道令의 편지를 傳한다. 李道令 及第 後 御史가 되어 南原으로 내려오는데 여기서는 古本春香傳의 影響을 받아 途中 어떤 酒幕에 드니 南原 산다는 行人이 府使의 訟事處決이 不公平할뿐 아니라 烈女 春香을 嚴治下獄하여 去月 初에 죽어서 이 넘에 草殯하였다 함으로 그 말을 곧이듣고 그곳을 찾아가서 울다가 그草殯主인 姜座首에게 辱을 보았다고 하였다. 또 御史出道 後에는 御史가 公事를 마치고 春香집으로 나와 本官을 請하니 卞府使가 惶劫하여 微服으로 찾아와서 印兵符를 끌러서 올리면서 謝罪를 하였는데 이럴 때에 春香母가 또한 春香의 貞節이 本官으로부터 빛났으니 寬大히 容恕하여 주라 請하였다. 勿論 여기도 本官은 獄中花와 마찬가지로 容恕되었으나 春香母의 活躍이 이까지 미쳤을은 注目된다. 이外에 또 本書는 李道令의 父母가 春香에게 金品을 보내주었다는 것이라든지 또 御史가 萬福寺라는 절에 들러 施主를 하였다는 것은 取하지 않았고, 甚至於 春香의 黃陵廟 夢事와 御史의 路上夢事까지 빼어버려 얼마큼 獄中花의 풀로트를 變更하려 한 것이 보인다.
그러나 본서는 그 플로트는 물론이요, 그 표현한 언어 문장에까지 대부분 옥중화의 그것을 그냥 답습하였는데, 다만 가끔 고본춘향전의 영향을 받아 먼저의 소위 춘향의 초빈이란 것이 벌써 그랬지마는 문장에 있어서도 고본춘향전의 그대로를 인용한 데도 있다. 즉 방자의 춘향유인(8혈) 춘향의 이름(20혈부터 21혈까지) 춘향의 방치레(21혈부터 23혈까지) 이도령의 사랑가(30혈부터 33혈까지) 등은 곧 그것이다. 그리고 또 본서는 기타 다른 이본에서도 얼마 영향을 받는 듯하여 어사가 도중에서 춘향의 편지를 받는 것과 그 당시의 방자 태도같은 것은 증수춘향전에서 습용하여있다.
쪽수▶P134-2그러나 本書는 그 플로트는 勿論이요, 그 表現한 言語 文章에까지 大部分 獄中花의 그것을 그냥 踏襲하였는데, 다만 가끔 古本春香傳의 影響을 받아 먼저의 所謂 春香의 草殯이란 것이 벌써 그랬지마는 文章에 있어서도 古本春香傳의 그대로를 引用한 데도 있다. 即 房子의 春香誘引 (8頁) 春香의 이름(自20頁 至21頁) 春香의 房치레(自21頁 至23頁) 李道令의 사랑歌(自30頁 至33頁) 等은 곧 그것이다. 그리고 또 本書는 其他 다른 異本에서도 얼마 影響을 받는 듯하여 御史가 途中에서 春香의 편지를 받는 것과 그 當時의 房子 態度같은 것은 增修春香傳에서 襲用하여있다.












































본문8: 14. 萬古烈女圖像獄中花


본서는 이국창 창본, 무연거사 교록이라 하여 소화 10년 12월 16일에 고경 상의 명의로 세창서관, 삼천리서관에서 발행하였는데 표지에는 다시 만고정열녀중화라 붙였다. 그리고 이와 꼭 같은 책이 도상옥중화란 이름으로 소화 12년 12월 25일에 신태삼의 명의로 또 전기 동서관에서 발행되었다. 그러나 내용은 역시 옥중화의 번안본에 지나지 못하였는데 다만 본문을 전부 8장에 나누어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멀리 보고 그날 밤 춘향집을 찾는데까지를 제 1장,그다음 백 년을 결연하고 사랑으로 지나는 데까지를 제 2장, 이도령이 춘향의 집에 나와 이별하는 데까지를 제 3장, 오류정에서 이별한 후 춘향이 독수공방 살이를 하는데 변부사 도임하여 춘향 잡으러 오는 데까지를 제 4장, 춘향이 잡혀와서 옥중생활하는 데까지를 제 5장, 춘향이 옥 중에서 편지 써서 이도령에게 부치고, 이도령은 기간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오는 도중에 춘향은 옥 중에서 옥창앵도화락의 꿈을 꾸고 해몽하는 데까지를 제 6장, 어사 춘향집 당도하여 옥중으로 춘향을 만나보고 광한루로 나와 역졸에게 명일의 거사를 명령하는 데까지를 제 7장, 그 이후를 제 8장으로 하였고 풀로트에 있어서는 이도령과 춘향이 이별 후, 옥중화에서는 이도령의 부모가 춘향에게 금품을 보내주었다 하였는 것을, 여기서는 그것을 빼어 버리고 그 대신 서울서 이도령으로부터 편지가 오고 춘향모는 그 편지와 함께 어음이 오지 않았음을 섭섭하게 생각하였으며, 또 춘향이 수절한단 말을 듣고 춘향을 유혹할라는 사람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춘향모 또한 재물에 욕심이 나서 그 딸을 달래보았다 하였다. 그리고 다음은 순서의 전도만이거니와 어사는 남원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아직 춘향의 편지를 받지 않고 먼저 만복사에 들러 중들이 춘향을 위해 재 올리는 것을 보고 비로소 춘향이 옥 중에서 고생하는 것을 알았다 하였고, 또 어사출도 후에는 춘향보다 먼저 본숙을 불러서 후일의 선치를 독려하였다 하였다.
쪽수▶P135本書는 李國唱 唱本, 無然居士 校錄이라 하여 昭和 10年 12月 16日에 高敬相의 名義로 世昌書館, 三千里書舘에서 發行하였는데 表紙에는 다시 萬古貞烈女中花라 붙였다. 그리고 이와 꼭 같은 책이 圖像獄中花란 이름으로 昭和 12年 12月 25日에 申泰三의 名義로 또 前記 同書舘에서 發行되었다. 그러나 內容은 亦是 獄中花의 飜案本에 지나지 못하였는데 다만 本文을 全部 8章에 나누어 李道令이 廣寒樓서 春香을 멀리 보고 그날 밤 春香집을 찾는데 까지를 第 1章,그다음 百年을 結緣하고 사랑으로 지나는 데까지를 第 2章, 李道令이 春香의 집에 나와 離別하는 데까지를 第 3章, 五柳亭에서 離別한 後 春香이 獨宿空房 살이를 하는데 卞府使 到任하여 春香 잡으러 오는 데까지를 第 4章, 春香이 잡혀와서 獄中生活하는 데까지를 第 5章, 春香이 獄中에서 편지 써서 李道令에게 부치고, 李道令은 其間 御史가 되어 南原으로 오는 途中에 春香은 獄中에서 獄窓櫻桃花落의 꿈을 꾸고 解夢하는 데까지를 第 6章, 御史 春香집 當到하여 獄中으로 春香을 만나보고 廣寒樓로 나와 驛卒에게 明日의 舉事를 命令하는 데까지를 第 7章, 그 以後를 第 8章으로 하였고 풀로트에 있어서는 李道令과 春香이 離別 後, 獄中花에서는 李道令의 父母가 春香에게 金品을 보내주었다 하였는 것을, 여기서는 그것을 빼어 버리고 그 代身 서울서 李道令으로부터 편지가 오고 春香母는 그 편지와 함께 於音이 오지 않았음을 섭섭히 생각하였으며, 또 春香이 守節한단 말을 듣고 春香을 誘惑할라는 사람이 四方에서 모여들고 春香母 또한 財物에 慾心이 나서 그 딸을 달래보았다 하였다. 그리고 다음은 順序의 顚倒만이거니 ▶P136-1와 御史는 南原으로 내려오는 途中에 아직 春香의 편지를 받지 않고 먼저 萬福寺에 들러 중들이 春香을 爲해 齋 올리는 것을 보고 비로소 春香이 獄中에서 苦生하는 것을 알았다 하였고, 또 御史出道 後에는 春香보다 먼저 本宿을 불러서 後日의 善治를 督勵하였다 하였다.
그러나 이것 쯤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한 가지 여기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춘향모의 웅도다. 춘향 여각가의 처녀로 하고 동시에 춘향모의 위인을 비록 퇴기라는 이름은 붙어 있을망정 그 태도를 퍽 점잖게 하여 품위 있는 부인으로 한 것은 완판춘향전 이래 모든 이본의 공로이었는데, 본서에 와서는 다시 되돌아가서 딸의 정조를 팔아 재물을 탐한다는, 기생 모의 그 본색을 나타냈음은 어째서인가. 생각건대 이것은 뒤에서 말할 오작교의 영향을 입은 것이 아닌가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뒤에 말할 것이다.
쪽수▶P136-2그러나 이것쯤은 그리 大端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한 가지 여기서 注意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春香母의 熊度다. 春香 閭閣家의 處女로 하고 同時에 春香母의 爲人을 비록 退妓라는 이름은 붙어 있을망정 그 態度를 퍽 점잖이 하여 品位있는 夫人으로 한 것은 完版春香傳 以來 모든 異本의 功勞이었는데, 本書에 와서는 다시 되돌아 가서 딸의 貞操를 팔아 財物을 貪한다는, 妓生母의 그 本色을 나타냈음은 어째서인가. 생각건대 이것은 뒤에서 말할 烏鵲橋의 影響을 입은 것이 아닌가 하는데 이 點에 對하여는 다시 뒤에 말할 것이다.
그리고 본서는 그 표현한 용어에서나 문장에서도 옥중화와 별다름이 없었다. 옥중화에

"⋯府院君 外三寸이오 吏曹判書 同姓祖父요 南原府使 當身 어른이니 萬一 아니가면 來日아침 朝仕後에 너의 母親 잡아다가 冊房短墻안에 마주거리하게 되면 너인들 마음 어떠하며 나인들 마음 좋을소냐, 가리거든 가고말랴거든 말렴으나 나는 간다 간다"
春香이 暫間 어리석어 房子 얼렁 얼렁하는 말에 속은듯이 하는 말이
"글세 房子야 들어보아라, 꽃꽃마다 앉어 노는 나비를 꽃이 어이 딸아가리. 尊重하신 道令님이 卑陋한 常漢 몸을 오라시니 感激하나 女子廉恥못가겠다. 道令님前에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 여쭈어라"
房子 할일 없어 건너가고 春香은 집으로 돌아 가는지라

한 것을 본서에서는

"⋯府院君이 外三寸이요 吏曹判書 同姓祖父요 南原府使 당신 어른이니 만일 가지 않았다는 來日 아침 朝化後에 너의 母親 잡아다가 冊房短墻안에 마주거리 하게되면 너인들 마음이 좋으며 나인들 좋으랴. 이만치만 해 두니 가고싶으면 가고 싶으면 그만두어라. 나는 간다"
房子 휙 돌아서 가야하니 春香이 房子를 부른다
"그래 이년석아"
"밤낮 이년석 저년석 서방을 삼을년석하니 인전 듣기 싫다. 나는 간다"
"이애 房子야 노여워말고 내말을 들어라, 꽃을 찾는 나비들을 꽃이 어이 딸아가리. 尊貴하신 道令님이 이몸을 부르시니 뜻은 惶恐感謝하나 女子道理로서 廉恥따가 못가겠다. 道令님前 올리는 말씀 네가 代身 알외다고. 雁隨海에 蝶隨花요 隨隨穴, 이 세마디 부대 부대 傳해다고"
春香은 上丹을 다리고 제집으로 돌아가고 房子는 할일없어 道令님前으로 건너간다.

이렇게 하였을 정도인데, 다만 본서로서 한 특색을 찾는다면 서명 도상옥중화라 이른만큼 삽화를 많이 썼다는 것이다. 이 삽화도 도래의 활자본 이본이 거개 썼지만 그는 다 권두에 몰아 부쳤던 것을 본서에서는 그것을 중간중간에 원문 중에 넣었다. 이것은 전혀 본서에 와서 처음으로 시험한 것이요 또 본서는 이로써 새로운 인기를 끌려 하였던 것이다.
쪽수▶P136-3그리고 本書는 그 表現한 用語에서나 文章에서도 獄中花와 別다름이 없었다. 獄中花에

『⋯府院君 外三寸이오 吏曹判書 同姓祖父요 南原府使 當身 어른이니 萬一 아니가면 來日아침 朝仕後에 너의 母親 잡아다가 冊房短墻안에 마주거리하게 되면 너인들 마음 어떠하며 나인들 마음 좋을소냐, 가리거든 가고말랴거든 말렴으나 나는 간다 간다』
春香이 暫間 어리석어 房子 얼렁 얼렁하는 말에 속은듯이 하는 말이
『글세 房子야 들어보아라, 꽃꽃마다 앉어 노는 나비를 꽃이 어이 딸아가리. 尊重하신 道令님이 卑陋한 常漢 몸을 오라시니 感激하나 女子廉恥못가겠다. 道令님前에 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 여쭈어라』
房子 할일 없어 건너가고 春香은 집으로 돌아 가는지라

▶P137한 것을 本書에서는

『⋯府院君이 外三寸이요 吏曹判書 同姓祖父요 南原府使 당신 어른이니 만일 가지 않았다는 來日 아침 朝化後에 너의 母親 잡아다가 冊房短墻안에 마주거리 하게되면 너인들 마음이 좋으며 나인들 좋으랴. 이만치만 해 두니 가고싶으면 가고 싶으면 그만두어라. 나는 간다』
房子 휙 돌아서 가야하니 春香이 房子를 부른다
『그래 이년석아』
『밤낮 이년석 저년석 서방을 삼을년석하니 인전 듣기 싫다. 나는 간다』
『이애 房子야 노여워말고 내말을 들어라, 꽃을 찾는 나비들을 꽃이 어이 딸아가리. 尊貴하신 道令님이 이몸을 부르시니 뜻은 惶恐感謝하나 女子道理로서 廉恥따가 못가겠다. 道令님前 올리는 말씀 네가 代身 알외다고. 雁隨海에 蝶隨花요 隨隨穴, 이 세마디 부대 부대 傳해다고』
春香은 上丹을 다리고 제집으로 돌아가고 房子는 할일없어 道令님前으로 건너간다.

이렇게 하였을 程度인데, 다만 本書로서 한 特色을 찾는다면 書名 圖像獄中花라 이른만큼 揷畵를 많이 썼다는 것이다. 이 揷畵도 徒來의 活字本 異本이 擧皆 썼지마는 그는 다 卷頭에 몰아 부쳤던 것을 本書에서는 그것을 中間中間이 原文 中에 넣었다. 이것은 全혀 本書에 와서 처음으로 試驗한 것이요 또 本書는 이로써 새로운 人氣를 끌려 하였던 것이다.













































본문9: 15. 奇綠小說烏鵲橋


본서는 소화 2년 12월 25일에 고유상의 명의로 형동비관에서 발행하였다. 종래의 이본과는 매우 특색있는 춘향전이라 할 수 있는데, 앞에서 이미 말하여 온 바와 같이 옥중화 이후의 소위 활자본춘향전은 거개 옥중화의 이본적 가치밖에 없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그러한 태도를 일축하고 전연히 다른 입장에서 춘향전을 써보자 하는 데서 나온 매우 자미있는 이본이다. 첫째 춘향과 이도령이 서로 만나는 데서부터 춘향이 하옥되는 데까지는 전연 그 풀로트를 뜯어 고쳤으니, 이것을 부분적으로 말하기보다 차라리 다음에 그 전반의 경개를 써서 말하는 것이 편리하겠다.
쪽수▶P138-1本書는 昭和 2年 12月 25日에 高裕相의 名義로 灐東蜚舘에서 發行하였다. 從來의 異本과는 매우 特色있는 春香傳이라 할 수 있는데, 앞에서 이미 말하여 온 바와 같이 獄中花 以後의 所謂 活字本春香傳은 擧皆 獄中花의 異本的 價値밖에 없었다 하여도 過言이 아니였었다. 그럼 나는 그러한 態度를 一蹴하고 全然히 다른 立場에서 春香傳을 써보자 하는 데서 나온 매우 滋味있는 異本이다. 첫째 春香과 李道令이 서로 만나는 데서부터 春香이 下獄되는 데까지는 全然 그 풀로트를 뜯어 고쳤으니, 이것을 部分的으로 말하기보다 차라리 다음에 그 前半의 梗槪를 써서 말하는 것이 便利하겠다.

(경개) 숙종대왕 때에 성참판수이라는 사람이 당쟁으로 말미암아 남원부사로 보외가 되었다. 보외로 온 바에 내행도 데리고 올 수 없음으로 의복과 음식 등절이 불편하여 부득이 월매라는 노요를 수청으로 들였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다시 조정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월매는 벌써 임신 수개월이었다. 그래서 월매는 그런 연유로 성참판에 고목하였더니 남녀 간에 낳는 대로 젖줄이나 떨어지면 데려가겠다 하였다. 그 후 춘향이를 낳았으나 성참판은 상경 후 3, 4년에 우연히 득병하여 작고하고 그 가족은 낙향하여 인해 소식이 끊어져 버렸으므로 보내도 못하고 어머니가 다리고 있는데 어느덧 17세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완판본과 별다름이 없었다)
이때 남원부사로 온 이는 서울 삼청동 이승지기연인데 그 아들에 몽룡(관명은 종운)이가 있었다. 남원으로 올 때는 벌써 홍판서 개언의 딸과 약혼이 있었지만 결혼하지 않고 도령으로 있었다. 남원에 온 후에 일년이 되도록 밖을 나지 않더니 하로는 춘흥을 못 이기여 책방(도령의 종형인데 명은 종세)과 같이 시축를 준비하여 가지고 방자 데리고 나왔다가 홀연히 비를 만나 어느 여염집 〿아에 피하였던바 그집이 곧 춘향의 집이었었다. 여기에 또 인연이 매치자니 그랬던가 춘향이가 또한 마당에 나와 이것 저것 설것다가 둘의 눈이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이로부터 이도령의 연연한 마음은 금할수 없어 일로 병이 날 지경이 었었다. 그래서 하루는 다시 화류 구경을 빙포하고 책방과 같이 춘향집을 나가 월매를 만나보고 약혼을 했더니 춘향모는 비록 마음이 있었는 듯하였으나 춘향은 용이하게 허하려 하지 않았다. 그 후로 책방이 수 차 나와 그 뜻을 들었으나 여전히 그 태도가 변함이 없었음으로 이도령은 그만 그로 하여 병이 깊이 들어 병석에 눕기까지 되었다. 부모들은 큰 걱정이 되며 여러가지 약으로 치료하여 보았으나 상사로 난 병이 약을 쓴다 나을 리가 없었다. 여기에 책방은 가진 수단을 다 쓰고, 춘향모 또한 만단으로 춘향을 설유하였던 바 춘향 원래 이도령이 싫었던 바도 아니었고, 이도령이 오늘날 자기로 인해 병이 깊어 거의 사경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감격하여 허락했다. 이로부터 춘향 이도령 굳은 결약이 되어 자주 만나 사랑의 가운데에 세월이 가는 것을 알지 못하였더니 마침내 이것이 사도의 안 바가 되어 하룻밤에는 춘향 집으로부터 도령을 잡아와서 크게 꾸중을 하고 겸하여 이로써 치정할 면목이 없다하고 자기도 감영에 사상하고 올라갈터이니 속히 내행을 모시고 상경하라 명하였다. 이렇게 되니 이도령도 할수 없게 되여 춘향과 이별을 하게 되는데, 부모에게 꾸중을 듣고 또 나갈 수 없어 춘향에게 편지를 써서 부치고 떠난다. 이때 춘향은 도령이 사도에게 잡혀가는 것을 보고 가슴을 두근거리다가 또 도령의 편지를 받으니 가슴이 터지는 듯 하였으나 어쩌지 못할 사정인 줄 알고 모녀가 오리정으로 나와 훗날 기약을 당부하고 이별을 한다. 뒤미처 나오는 도령의 모친이 이 광경을 보고 또한 아들의 정을 생각하여 춘향을 불러보고 그 인물이 비범함을 칭찬하고 믿음을 지켜 후일 도령님이 찾을 날을 기다리라 하였다. 춘향도 이에 매우 감격하여 믿음을 지켜 찾는 날을 기다리겠다 하고 정표로 옥지환 한 짝을 끌러 이도령을 주고 애석히 나누었다. 그 후 사도는 감영에 사상을 낸다 하더니 채 미처 수속도 하기 전에 승지에 승차되여 상경하게 되고 도령은 상경 후 얼마 아니 있다가 홍씨에게 장가들었다.
그러나 이몽룡은 옛 정을 잊지 못하여 자연히 낯빛에 나타나니 그 모친이 아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하루는 그 남편을 대하여 춘향을 데려오고자 하였다. 그럴 때에 승지는 언약이 비록 있다 하더라도 자식의 비례행사를 이뤄주는 것은 도리가 아니니 허락할 수 없거니와 춘향이가 만일에 신을 지켜 다른 남자를 쫓지 않는다면 안 돌아볼 수 없으니 몽룡이 과거하여 벼슬에 오르거든 데려오자 하였다.

쪽수▶P138-2(梗概) 肅宗大王 때에 成參判守이라는 사람이 黨爭으로 말미아마 南原府使로 補外가 되었다. 補外로 온바에 內行도다리고 올수 없음으로 衣服과 飮食等節이 不便하여 不得已 月梅라는 老妖를 守廳으로 들였더니 얼마 아니있다가 다시 朝廷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月梅는 벌써 姙娠數的月이 었었다. 그래서 月梅는 그런 緣由로 成參判에 告目하였더니 男女間에 낳는대로 젖줄이나 떠러지면 다려가겠다 하였다. 그後 春香이를 낳았으나 成參判은 上京 後三四年에 偶然히 得病하여 作故하고 그 家族은 落鄕하여 因해 消息이 끊어저 버렸음으로 보내도 못하고 어머니가 다리고 있는데 어느듯 十七歲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完版本과 別다름이 없었다)
이때 南原府使로 온이는 서울 三淸洞李承旨基然인데 그 아들에 夢龍(冠名은 鍾雲)이가 있었다. 南原으로 ▶P139올때는 벌써 洪判書凱彥의 딸과 約婚이 있었지마는 結婚하지 않고 道令으로 있었다. 南原에 온 後에 一年이 되도록 밖을 나지않더니 하로는 春興을 못이기여 冊房(道令의 從兄인데 名은 鍾世)과 같이 詩軸를 準備하여 가지고 房子 다리고 나왔다가 忽然히 비를 만나 어느 閭閻집 〿牙에 避하였던바 그집이 곧 春香의 집이었었다. 여기에또 因緣이 매치자니 그랬던가 春香이가 또한 마당에 나와 이것 저것 설것다가 둘의 눈이 偶然히 마주치게 되었다 일로부터 李道令의 戀戀한 마음은 禁할수 없어 일로 病이 날 地境이었었다. 그래서 하루는 다시 花柳求景을 憑蒲하고 冊房과 같이 春香집을 나가 月梅를 만나보고 約婚을 했더니 春香母는 비록 마음이 있었는 듯하였으나 春香은 容易히 許할려하지 않았다. 그後로 冊房이 數次 나와 그 뜻을 들었으나 如前히 그 態度가 變함이 없었음으로 李道令은 그만 글로하여 病이 깊이 들어 病席에 눕기까지 되었다. 父母들은 큰 걱정이 되며 여러가지 藥으로 治療하여 보았으나 相思로난 病이 藥을 쓴다 나을 理가 없었다. 여기에 冊房은 가진 手段을 다쓰고, 春香母 또한 萬端으로 春香을 說誘하였던바 春香 元來 李道令이 싫었던바도 아니었고, 李道令이 오늘날 自己로 因해 病이 깊어 거의 死境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感激하여 許諾했다. 일로부터 春香 李道令 굳은 結約이 되여 자주 만나 사랑의 가운데에 歲月이 가는 것을 알지 못하였더니 만침내 이것이 使道의 안바가 되여 하루밤에는 春香집으로부터 道令을 잡아와서 크게 꾸중을 하고 兼하여 일로써 治政할 面目이 없다하고 自己도 監營에 辭狀하고 올라갈터이니 速히 內行을 뫼시고 上京하라 命하였다. 이렇게 되니 李道令도 할수 없게 되여 春香과 離別을 하게되는데, 父母에게 꾸중을 듣고 또 나갈수없어 春香에게 편지를 써서 부치고 떠난다. 이때 春香은 道令이 使道에게 잡혀가는것을 보고 가슴을 두근거리다가 또 道令의 편지를 받으니 가슴이 터지는 ▶P140-1듯 하였으나 어쩌지 못할 事情인줄 알고 母女가 五里亭으로 나와 後期約을 當付하고 離別을 한다. 뒤미처 나오는 道令의 母親이 이 光景을 보고 또한 아들의 情을 생각하여 春香을 불러보고 그 人物이 非凡함을 稱讚하고 信을 지켜 後日 道令님이 찾을 날을 기다리라하였다. 春香도 이에 매우 感激하여 信을 지켜 찾는 날을 기다리겠다 하고 情票로 玉指環 한짝을 끌러 李道令을 주고 愛惜히 나누었다. 그後 使道는 監營에 辭狀을 낸다하더니 채미처 手續도 하기 前에 承旨에 陞差되여 上京하게되고 道令은 上京後 얼마 아니있다가 洪氏에게 장가들었다.
그러나 李夢龍은 舊情을 잊지못하여 自然히 낯빛에 나타나니 그 母親이 아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하루는 그男便을 對하여 春香을 다리오고자 하였다. 그럴 때에 承旨는 言約이 비록 있다하드라도 子息의 非禮行事를 일우어 주는 것은 道理가 아니니 許諾할수 없거니와 春香이가 萬一에 信을 지켜 다른 男子를 쫓지 않는다면 안돌아볼 수 없으니 夢龍이 科擧하여 벼슬에 오르거든 다려오자 하였다.

그러나 이도령이 올라간 후의 춘향집은 점점 영락(零落)하여 우선 생활이 곤란하게 됨에 춘향모의 생각에는 이도령을 기다린다 하였지마는 그것이 기한이 없는 일이니 도리어 딸을 다른 곳에 치워 남의 덕이라도 보고자 하였다. 이 기회를 엿본 이대용이란 부자의 아들이 춘향모에 재물을 많이 주고 딸을 권유하라 하니 춘향모 또한 재물에 탐이 나서 춘향에게 절을 굽혀서 그 사람을 따른 것이 가능한 듯이 여러 번 달래 보았다. 그러나 춘향은 종내 듣들 않을 뿐 아니라 그런 비례의 재물을 받는 것을 원망하였으므로 춘향모도 할 수 없이 그 재물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 후도 여러 사람이 춘향을 노리는 자가 있었지만 춘향은 일호도 그로 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더니 이도령의 부친이 올라간 후 또 여러 부사가 갈리고 최종정이라고 하는 신관이 도임하였는데 이 사람은 본시 호색지인이라 춘향이 절색이란 말을 듣고 한번 보기를 원하여 먼저 춘향모를 불러 딸을 잘 인도하여 보내라 한다. 춘향은 여기서도 또한 거절하였더니 부사는 춘향모를 옥에 가두고 춘향이가 들어오지 않으면 놓아 보내지 않겠다 하였다. 본래 효성이 지극한 춘향은 그 모가 옥에 갇혀서 고생하고 있는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부득이자신이 관정에 나갔다 들어오는 춘향을 본 본관은 이제야 소원을 푸는구나 하고 기뻐하였더니 춘향은 역시 굴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도의 행위를 꾸짖고 소위 관정발악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 부사는 위력을 가지고 춘향을 태장삼십을 가하여 하옥하였다.

쪽수▶P140-2그러나 李道令이 올라간後의 春香집은 漸漸 零落하여 于先 生活이 困難하게 되매 春香母의 생각에는 李道令을 기다린다 하였지마는 그것이 期限이 없는 일이니 도리어 딸을 다른 곳에 치워 남의 德이라도 보고자하였다 이機會를 엿본 李大用이란 富者의 아들이 春香母에 財物을 많이 주고 딸을 勸誘하라 하니 春香母 또한 財物에 貪이나서 春香에게 節을 굽혀서 그사람을 딸른것이 可한듯이 여러번 달래 보았다. 그러나 春香은 終乃 듣들 않을뿐 아니라 그런 非禮의 財物을 받는 것을 怨望하였음으로 春香母도 할수 없이 그 財物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後도 여러 사람이 春香을 노리는者가 있었지마는 春香은 一毫도 글로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었더니 李道令의 父親이 올라간後 또 여러 府使가 갈리고 崔鍾楨이라고 하는 新官이 到任하였는데 이사람은 本是 好色之人이 ▶P141-1라 春香이 絕色이란 말을 듣고 한번 보기를 願하여 먼저 春香母를 불러 딸을 잘 引導하여 보내라 한다.春香은 여기서도 또한 拒絶하였더니 府使는 春香母를 獄에 가두고 春香이가 들어오지 않으면 놓아 보내지 않겠다 하였다. 本來 孝誠이 至極한 春香은 그母가 獄에 가치어서 苦生하고 있는것을 그냥 보고 있을수 없어 不得已自身이 官庭에 나갔다 들어오는 春香을 본 本官은 이제야 所願을 푸는구나 하고 기뻐하였더니 春香은 亦是 屈하지 않었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使道의 行爲를 꾸짖고 所謂 官庭發惡을 하기때문에 여기에 府使는 威力을 가지고 春香을 笞杖三十을 加하여 下獄하였다.

본서의 풀로트 상 심한 변경은 이상의 것인데 이 이후의 후반에 와서는 옥중화와도 별다름이 없었다. 다만 춘향의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향하는 사람은 전일 이도령을 모시는 방자가 아니고 보통 삯꾼이었으며, 도중에서 편지를 받은 어사는 그사람에게 자기는 마침 이도령 편지를 가지고 춘향집으로 가는 사람이니 그 편지를 자기에게 맡기고 돌아가라 하고, 만약 의심이 나면 지금으로부터 2, 3일 후이면 자기가 춘향 집으로 갈 터이니 거기서 만나자고 약속하여 보냈다 하였고, 또 어사는 중로에 만복사에 들었다는 것은 빼어 버렸으며 부사는 어사출도 후 파직되고 말았다 하였을 뿐이지만, 본서 전체를 두고 보면 실로 광대한 풀로트의 개찬을 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본서는 또 그 체재에 있어서도 종래의 춘향전과는 전연 달라 순전히 이것을 한 사실로 취급하여 전체를 소설이라는 것보다 야담식으로 썼다. 그러기 때문에 종래의 가곡적 부분은 그 그림자를 완전히 감추어 버렸을 뿐 아니라 합해농담까지가 몰영(沒影)하고 말았다. 또 인물에 있어서도 방자는 나귀를 몰고 다만 이도령을 모셨을 뿐이고, 향단은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는데 그대신 책방인 이도령의 종형이 새로 나와 춘향과 이도령의 결록에 있어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그리고 춘향모는 원래 기생인 만큼 그 기생적 성격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춘향은 본서에 와서 비로소 인첩이라 하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쪽수▶P141-2本書의 풀로트 上 甚한 變更은 以上의 것인데 이 以後의 後半에 와서는 獄中花와도 別다름이 없었다. 다만 春香의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向하는 사람은 前日 李道令을 모시는 房子가 아니고 普通 삯군이었으며, 途中에서 편지를 받은 御史는 그사람에게 自己는 마침 李道令 편지를 가지고 春香집으로 가는 사람이니 그 편지를 自己에게 맡기고 돌아가라 하고, 萬若 疑心이 나면 지금으로부터 2, 3日 後이면 自己가 春香 집으로 갈 터이니 거기서 만나자고 約束하여 보냈다 하였고, 또 御史는 中路에 萬福寺에 들었다는 것은 빼어 버렸으며 府使는 御史出道 後 罷職되고 말았 다 하였을 뿐이지만, 本書 全體를 두고 보면 實로 廣大한 풀로트의 改纂을 行하였다. 뿐만 아니라 本書는 또 그 體裁에 있어서도 從來의 春香傳과는 全然 달라 純全히 이것을 한 事實로 取扱하여 全體를 小說이라는 것보다 野談式으로 썼다. 그러기 때문에 從來의 歌曲的 部分은 그 그림자를 完全히 감추어 버렸을 뿐 아니라 陜諧弄談까지가 沒影하고 말았다. 또 人物에 있어서도 房子는 나귀를 몰고 다만 李道令을 모셨을 뿐이고, 香丹은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는데 그代身 冊房인 李道令의 從兄이 새로 나와 春香과 李道令의 結綠에 있어 많은 活躍을 하고 있다. 그리고 春香母는 ▶P142-1元來 妓生인 만큼 그 妓生的 性格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春香은 本書에 와서 비로소 人妾이라 하는 것을 分明히 하였다.
이와 같이 본서는 전면적으로 춘향전에 일대 개조를 꾀하여 춘향전 문학에 한 이채를 발하고 있으나, 춘향전이 소설로 발달한 지 몇 백년인지 알 수 없으나 여하튼 오늘에 수십 종의 이본을 헤아리는 이때 본서와 같은 전연 계통이 닯은(다른) 이본이 있다는 것은 한 자미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옥중화가 나온 이후 아직 하나도 거기서 촌보의 거리를 떠나지 못한 듯한 느낌이 있는데 감히 본서가 나왔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춘향전 문학에 어떤 새로운 지침을 가리키는 듯도 하다.
쪽수▶P142-2이와 같이 本書는 全面的으로 春香傳에 一大 改造를 꾀하여 春香傳 文學에 한 異彩를 發하고 있으나, 春香傳이 小說로 發達한지 몇百 年인지 알 수 없으나 如何튼 오늘에 數十種의 異本을 헤아리는 이때 本書와 같은 全然 系統이 닯은 異本이 있다는 것은 한 滋味있는 事實이라고 생각하며 同時에 獄中花가 나온 以後 아직 하나도 거기서 寸步의 距離를 떠나지 못한 듯한 느낌이 있는데 敢히 本書가 나왔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春香傳文學에 어떤 새로운 指針을 가리키는 듯도 하다.












































본문10: 16. 一說春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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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11: 17. 漢文春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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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12: 結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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