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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1번= {{TagSpage|156-1}}本稿에 風神이라 함은 主로 南朝鮮 地方 一帶에 傳承하여오는 舊 2月의 『영동할머니』 又는 그와 類似한 名稱으로 부르는 民俗信仰을 指稱하는 것에 限定하노라.
 
|목차1원문1번= {{TagSpage|156-1}}本稿에 風神이라 함은 主로 南朝鮮 地方 一帶에 傳承하여오는 舊 2月의 『영동할머니』 又는 그와 類似한 名稱으로 부르는 民俗信仰을 指稱하는 것에 限定하노라.
 
|목차1원문2번= {{TagSpage|156-2}}이를 學的 硏究 對象으로 한 學者가 古今으로 通하야 數3人 있었으나, 오히려 全的으로 氷釋할 만한 說明을 한  前例가 없어, 이제까지 民俗學的 宿題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筆者가 拙考를 試하려는 것도 群盲撫象之格에 지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며, 이 點에 對하여는 讀者 諸彦의 寬大한 諒解가 있기 바라는 바다.  
 
|목차1원문2번= {{TagSpage|156-2}}이를 學的 硏究 對象으로 한 學者가 古今으로 通하야 數3人 있었으나, 오히려 全的으로 氷釋할 만한 說明을 한  前例가 없어, 이제까지 民俗學的 宿題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筆者가 拙考를 試하려는 것도 群盲撫象之格에 지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며, 이 點에 對하여는 讀者 諸彦의 寬大한 諒解가 있기 바라는 바다.  
|목차1원문3번= {{TagSpage|157-1}}『영동風神』에 對한 梗槪를 略述하면, 그 名稱은 『영동할만네·영동할맘·영동할마니 ·영동할마시·할마시·영동·바람·風神·할만네·영등·연등·麻姑할마니』 等의 여러가지 名稱이 있다. 只今 便宜上 3個 地方의 代表的 儀式을 例擧하면 다음과 같다. 南朝鮮의 東部 地方에서는 正月 晦日에 黃土를 門前에 깔고 左綯繩을 大門 叉는 삽작에 걸고 그 금줄에는 靑葉이 붙은 竹枝를 數3枝 꽂아두어 不淨을 避한다. 그리고 鷄鳴 後에 우물에서 淨華水를 汲取하여 장독간이나 廚間에 두었다가 翌朝에 섬밥(淨飯)을 한 後에 그것을 『볏가리』에 갖다 두고 主婦가 祈禱(손 비빈다고 함)를 드린 다음, 靑竹 3個를 交叉하여 上部에서 1尺許쯤 되는 곳을 結縛하고 色絲‧五色布片‧白紙를 달고 新瓢에 담은 淨華水를 그 위에 둔다. 禱意는 農事의 豊饒 及 家內의 安泰를 主로 하며, 初十日 15日 20日에 改水하며, 『영동할만네』는 初十日에 上칭(府?) 15日에 中칭 20日에 下칭이 올라가고, 餘洋(찌꺼기)는 晦日까지 麥田에 남는다고 한다. {{TagRef|1}}『영동할만네』가 딸을 데리고 下降(내려오면)하면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下降하면 비가 온다고 한다. <ref>蔚山郡 下廂面 伴鷗里 金正福氏 談</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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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3번= {{TagSpage|157-1}}『영동風神』에 對한 梗槪를 略述하면, 그 名稱은 『영동할만네·영동할맘·영동할마니 ·영동할마시·할마시·영동·바람·風神·할만네·영등·연등·麻姑할마니』 等의 여러가지 名稱이 있다. 只今 便宜上 3個 地方의 代表的 儀式을 例擧하면 다음과 같다. 南朝鮮의 東部 地方에서는 正月 晦日에 黃土를 門前에 깔고 左綯繩을 大門 叉는 삽작에 걸고 그 금줄에는 靑葉이 붙은 竹枝를 數3枝 꽂아두어 不淨을 避한다. 그리고 鷄鳴 後에 우물에서 淨華水를 汲取하여 장독간이나 廚間에 두었다가 翌朝에 섬밥(淨飯)을 한 後에 그것을 『볏가리』에 갖다 두고 主婦가 祈禱(손 비빈다고 함)를 드린 다음, 靑竹 3個를 交叉하여 上部에서 1尺許쯤 되는 곳을 結縛하고 色絲‧五色布片‧白紙를 달고 新瓢에 담은 淨華水를 그 위에 둔다. 禱意는 農事의 豊饒 及 家內의 安泰를 主로 하며, 初十日 15日 20日에 改水하며, 『영동할만네』는 初十日에 上칭(府?) 15日에 中칭 20日에 下칭이 올라가고, 餘洋(찌꺼기)는 晦日까지 麥田에 남는다고 한다. {{TagRef|1}}『영동할만네』가 딸을 데리고 下降(내려오면)하면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下降하면 비가 온다고 한다.<ref>蔚山郡 下廂面 伴鷗里 金正福氏 談</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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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4번= {{TagSpage|157-2}}南海岸 地方(例로 統營)에서는 2月 初1日 質明에 忠烈祠 우물(忠武公 祀堂 前)에서 中流 以上 家{{Tagpage|158-1}}庭의 處女와 少婦가 飮食을 俱備하여 먹고, 淨華水를 汲取 歸家한 뒤에 新瓢에 담아두고 新竹 1個의 先端을 數片으로 剖割하여 그 靑竹을 땅에 굳게 세우고, 그 위에다가 前記 淨華水瓢를 올려두고, 그 밑에는 五色布片‧五色絲‧白紙 等을 걸고, 물대(水竿 即 前記 靑竹)에는 冬栢‧松‧竹葉을 달고 地面에는 黃土를 깐 後에 主婦가 前年 가을에 秋收한 淨穀을 항아리에 넣어서 特히 大廳 又는 房안에 準備하여두었던 것으로 5穀飯·비빈떡(巨濟島에 서는 인절미)을 차린 後에 燒紙 祈禱를 한다. (巨濟에서는 祈禱 飮食을 家內 會食하고 인절미만은 유지방의 苞內에 넣어 大廳에 있는 成造缸에다가 위하여 두었다가, 3日 後에 먹고 長承浦에서는 風神 올라간 後에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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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5번= {{TagSpage|158-2}}그리고 집안 事情에 依하여 2月 初 1日에서 初 5日까지 祈禱를 變更할 수도 있다. 淨華水는 2月 初1日에서 2月 19日까지 每日 改水하며 『영동할마니』는 2月 初4日 初9日 19日에 올라간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딸과 며느리 差別은 前者 同樣하다. {{TagRef|2}}特히 이 地方 附近에 傳承하여오는 다른 類型에 2月 初1日에는 閣氏風神이 내리고, 2月 19日에는 處女風神이 내린다고 하여 全然 相反되는 形態를 發見할 수 있으나, 그다지 普遍的이 아닌 것 같을 뿐더러, 2月 19日이란 것은 筆者에게 資料를 提供한 사람의 錯誤가 아닌가 한다.<ref>統營 崔天, 李琫振兩氏 談</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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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원문6번= {{Tagpage|158-3}}{{TagRef|3}}京畿道 安城 及 忠南 天安‧大田에서는 2月 初1日에『麻姑할마니가』 下降한다 하여 그 집안 食口의 年齡 數와 同數의 송편떡을 해서 먹고 謹愼하며, 同月 20日에는 上天日이라고 할 뿐이요 特殊한 儀式은 없으나, 이 날 비가 오면 大豊의 前兆요 少不過 소리개 한 마리만 지나가도 좋다고 한다.<ref>安城郡 元谷面 竹栢里 李洪植氏 外 數人 談</ref> <br/> {{TagRef|4}}濟州島의 그것에 對하여는 業己 他 學者가 紹介한 바 있으므로 割愛하기로 한다.<ref>秋葉隆 「濟州島に於ける蛇鬼の信仰」 (這歸文化圏の試み)(靑丘學叢 第7號), 秋葉隆「巨濟島の立竿民俗」朝鮮民俗 第1號)</ref>
  
 
|목차1해독문1번= 본고에 풍신(風神)이라 함은 주로 남조선 지방 일대에 전승하여오는 구 2월의 『영동할머니』 또는 그와 유사한 명칭으로 부르는 민속 신앙을 지칭하는 것에 한정하노라.
 
|목차1해독문1번= 본고에 풍신(風神)이라 함은 주로 남조선 지방 일대에 전승하여오는 구 2월의 『영동할머니』 또는 그와 유사한 명칭으로 부르는 민속 신앙을 지칭하는 것에 한정하노라.
 
|목차1해독문2번= 이를 학적 연구 대상으로 한 학자가 고금으로 통하여 수 3인 있었으나, 오히려 전적으로 빙석(氷釋)할 만한 설명을 한 전례가 없어, 이제까지 민속학적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필자가 졸고를 시도하려는 것도 군맹무상지격(群盲撫象之格)에 지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며, 이 점에 대하여는 독자 제언의 관대한 양해가 있기 바라는 바다.
 
|목차1해독문2번= 이를 학적 연구 대상으로 한 학자가 고금으로 통하여 수 3인 있었으나, 오히려 전적으로 빙석(氷釋)할 만한 설명을 한 전례가 없어, 이제까지 민속학적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필자가 졸고를 시도하려는 것도 군맹무상지격(群盲撫象之格)에 지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며, 이 점에 대하여는 독자 제언의 관대한 양해가 있기 바라는 바다.
 
|목차1해독문3번= 『영동풍신』에 대한 경개(梗槪)를 약술하면, 그 명칭은 『영동할만네·영동할맘·영동할마니 ·영동할마시·할마시·영동·바람·풍신·할만네·영등·연등·마고할마니』 등의 여러가지 명칭이 있다. 지금 편의상 3개 지방의 대표적 의식을 예거하면 다음과 같다. 남조선의 동부 지방에서는 정월 회일(晦日, 그믐날)에 황토를 문 앞에 깔고 좌도승(左綯繩)을 대문 혹는 삽작에 걸고 그 금줄에는 청엽(靑葉)이 붙은 죽지를 세 가지(枝)쯤 꽂아두어 부정을 피한다. 그리고 계명(鷄鳴) 후에 우물에서 정화수를 급취하여 장독간이나 주간에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翌朝)에 섬밥(淨飯)을 한 후에 그것을 『볏가리』에 갖다 두고 주부가 기도(손 비빈다고 함)를 드린 다음, 청죽 3개를 교차하여 상부에서 1척허쯤 되는 곳을 결박하고 색사‧오색포편‧백지를 달고 새 표주박(新瓢)에 담은 정화수를 그 위에 둔다. 도의는 농사의 풍요 및 가내의 안태를 주로 하며, 초10일 15일 20일에 개수하며, 『영동할만네』는 초10일에 상칭(부?) 15일에 중칭 20일에 하칭이 올라가고, 여양(찌꺼기)는 그믐날까지 맥전(麥田)에 남는다고 한다. {{TagRefT|1}}『영동할만네』가 딸을 데리고 하강(내려오면)하면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하강하면 비가 온다고 한다.<ref group="a">울산군 하상면 반구리 김정복씨 이야기</ref>
 
|목차1해독문3번= 『영동풍신』에 대한 경개(梗槪)를 약술하면, 그 명칭은 『영동할만네·영동할맘·영동할마니 ·영동할마시·할마시·영동·바람·풍신·할만네·영등·연등·마고할마니』 등의 여러가지 명칭이 있다. 지금 편의상 3개 지방의 대표적 의식을 예거하면 다음과 같다. 남조선의 동부 지방에서는 정월 회일(晦日, 그믐날)에 황토를 문 앞에 깔고 좌도승(左綯繩)을 대문 혹는 삽작에 걸고 그 금줄에는 청엽(靑葉)이 붙은 죽지를 세 가지(枝)쯤 꽂아두어 부정을 피한다. 그리고 계명(鷄鳴) 후에 우물에서 정화수를 급취하여 장독간이나 주간에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翌朝)에 섬밥(淨飯)을 한 후에 그것을 『볏가리』에 갖다 두고 주부가 기도(손 비빈다고 함)를 드린 다음, 청죽 3개를 교차하여 상부에서 1척허쯤 되는 곳을 결박하고 색사‧오색포편‧백지를 달고 새 표주박(新瓢)에 담은 정화수를 그 위에 둔다. 도의는 농사의 풍요 및 가내의 안태를 주로 하며, 초10일 15일 20일에 개수하며, 『영동할만네』는 초10일에 상칭(부?) 15일에 중칭 20일에 하칭이 올라가고, 여양(찌꺼기)는 그믐날까지 맥전(麥田)에 남는다고 한다. {{TagRefT|1}}『영동할만네』가 딸을 데리고 하강(내려오면)하면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하강하면 비가 온다고 한다.<ref group="a">울산군 하상면 반구리 김정복씨 이야기</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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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4번= 남해안 지방(예로 통영)에서는 2월 초1일 동 틀 무렵(質明)에 충렬사 우물(충무공 사당 앞)에서 중류 이상 가정의 처녀와 소부가 음식을 구비하여 먹고, 정화수를 급취 귀가한 뒤에 새 박(新瓢)에 담아두고 신죽(新竹) 1개의 선단을 수 조각으로 부할(剖割, 쪼개고 벰)하여 그 청죽을 땅에 굳게 세우고, 그 위에다가 전기 정화수표를 올려두고, 그 밑에는 오색포편·오색사·백지 등을 걸고, 물대(수장 즉 앞의 청죽)에는 동백·송·죽엽을 달고 지면에는 황토를 깐 후에 주부가 전년 가을에 추수한 정곡을 항아리에 넣어서 특히 대청루는 방안에 준비하여 두었던 것으로 오곡반·비빈떡(거제도에서는 인절미)을 차린 후에 소지(燒紙) 기도를 한다 (거제에서는 기도 음식을 집 안에서 회식하고 인절미만은 유지방의 포내에 넣어 대청에 있는 성조항에다가 위하여 두었다가, 3일 후에 먹고 장승포에서는 풍신 올라간 후에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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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5번= 그리고 집안 사정에 의하여 2월 초 1일에서 초 5일까지 기도를 변경할 수도 있다. 정화수는 2월 초1일에서 2월 19일까지 매일 개수하며 『영동할마니』는 2월 초4일 초9일 19일에 올라간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딸과 며느리 차별은 전자 동양(同樣)하다. {{TagRefT|2}}특히 이 지방 부근에 전승하여오는 다른 유형에 2월 초1일에는 각씨풍신이 내리고, 2월 19일에는 처녀풍신이 내린다고 하여 전연 상반되는 형태를 발견할 수 있으나, 그다지 보편적이 아닌 것 같을 뿐더러, 2월 19일이란 것은 필자에게 자료를 제공한 사람의 착오가 아닌가 한다.<ref group="a">통영 최천, 이봉진 양씨 이야기</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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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1해독문6번= {{TagRefT|3}}경기도 안성 및 충남 천안‧대전에서는 2월 초1일에 『마고할마니가』 하강한다 하여 그 집안 식구의 연령 수와 같은 수의 송편떡을 해서 먹고 근신하며, 동월 20일에는 상천일이라고 할 뿐이요, 특수한 의식은 없으나, 이 날 비가 오면 대풍의 전조요 소부과 소리개 한 마리만 지나가도 좋다고 한다.<ref group="a">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이홍식씨 외 수인(數人) 이야기</ref> <br/> {{TagRefT|4}}제주도의 그것에 대하여는 업기 타 학자가 소개한 바 있으므로 할애하기로 한다.<ref group="a">추엽륭 「제주도에 있어서 사귀의 신앙」 (저귀문화권의 형식)(청구학총 제7호), 추엽륭「거제도의 입간민속」 조선민속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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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1일 (월) 15:2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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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고(부 화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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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風神考(附禾竿考)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1 발행기관 震檀學會
저자 宋錫夏 역자 @ 집필일자 19341100 게재연월 @
시작쪽 156쪽 종료쪽 166쪽 전체쪽 011쪽 연재여부 단독 범주 논문 분야 민속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내용을 입력합니다.@




목차







본문


본문1: 梗槪(경개)


본고에 풍신(風神)이라 함은 주로 남조선 지방 일대에 전승하여오는 구 2월의 『영동할머니』 또는 그와 유사한 명칭으로 부르는 민속 신앙을 지칭하는 것에 한정하노라.
쪽수▶P156-1本稿에 風神이라 함은 主로 南朝鮮 地方 一帶에 傳承하여오는 舊 2月의 『영동할머니』 又는 그와 類似한 名稱으로 부르는 民俗信仰을 指稱하는 것에 限定하노라.
이를 학적 연구 대상으로 한 학자가 고금으로 통하여 수 3인 있었으나, 오히려 전적으로 빙석(氷釋)할 만한 설명을 한 전례가 없어, 이제까지 민속학적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필자가 졸고를 시도하려는 것도 군맹무상지격(群盲撫象之格)에 지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며, 이 점에 대하여는 독자 제언의 관대한 양해가 있기 바라는 바다.
쪽수▶P156-2이를 學的 硏究 對象으로 한 學者가 古今으로 通하야 數3人 있었으나, 오히려 全的으로 氷釋할 만한 說明을 한 前例가 없어, 이제까지 民俗學的 宿題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筆者가 拙考를 試하려는 것도 群盲撫象之格에 지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며, 이 點에 對하여는 讀者 諸彦의 寬大한 諒解가 있기 바라는 바다.
『영동풍신』에 대한 경개(梗槪)를 약술하면, 그 명칭은 『영동할만네·영동할맘·영동할마니 ·영동할마시·할마시·영동·바람·풍신·할만네·영등·연등·마고할마니』 등의 여러가지 명칭이 있다. 지금 편의상 3개 지방의 대표적 의식을 예거하면 다음과 같다. 남조선의 동부 지방에서는 정월 회일(晦日, 그믐날)에 황토를 문 앞에 깔고 좌도승(左綯繩)을 대문 혹는 삽작에 걸고 그 금줄에는 청엽(靑葉)이 붙은 죽지를 세 가지(枝)쯤 꽂아두어 부정을 피한다. 그리고 계명(鷄鳴) 후에 우물에서 정화수를 급취하여 장독간이나 주간에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翌朝)에 섬밥(淨飯)을 한 후에 그것을 『볏가리』에 갖다 두고 주부가 기도(손 비빈다고 함)를 드린 다음, 청죽 3개를 교차하여 상부에서 1척허쯤 되는 곳을 결박하고 색사‧오색포편‧백지를 달고 새 표주박(新瓢)에 담은 정화수를 그 위에 둔다. 도의는 농사의 풍요 및 가내의 안태를 주로 하며, 초10일 15일 20일에 개수하며, 『영동할만네』는 초10일에 상칭(부?) 15일에 중칭 20일에 하칭이 올라가고, 여양(찌꺼기)는 그믐날까지 맥전(麥田)에 남는다고 한다. 현대문주1▶『영동할만네』가 딸을 데리고 하강(내려오면)하면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하강하면 비가 온다고 한다.[a 1]
쪽수▶P157-1『영동風神』에 對한 梗槪를 略述하면, 그 名稱은 『영동할만네·영동할맘·영동할마니 ·영동할마시·할마시·영동·바람·風神·할만네·영등·연등·麻姑할마니』 等의 여러가지 名稱이 있다. 只今 便宜上 3個 地方의 代表的 儀式을 例擧하면 다음과 같다. 南朝鮮의 東部 地方에서는 正月 晦日에 黃土를 門前에 깔고 左綯繩을 大門 叉는 삽작에 걸고 그 금줄에는 靑葉이 붙은 竹枝를 數3枝 꽂아두어 不淨을 避한다. 그리고 鷄鳴 後에 우물에서 淨華水를 汲取하여 장독간이나 廚間에 두었다가 翌朝에 섬밥(淨飯)을 한 後에 그것을 『볏가리』에 갖다 두고 主婦가 祈禱(손 비빈다고 함)를 드린 다음, 靑竹 3個를 交叉하여 上部에서 1尺許쯤 되는 곳을 結縛하고 色絲‧五色布片‧白紙를 달고 新瓢에 담은 淨華水를 그 위에 둔다. 禱意는 農事의 豊饒 及 家內의 安泰를 主로 하며, 初十日 15日 20日에 改水하며, 『영동할만네』는 初十日에 上칭(府?) 15日에 中칭 20日에 下칭이 올라가고, 餘洋(찌꺼기)는 晦日까지 麥田에 남는다고 한다. 원문주1▶『영동할만네』가 딸을 데리고 下降(내려오면)하면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下降하면 비가 온다고 한다.[1]
남해안 지방(예로 통영)에서는 2월 초1일 동 틀 무렵(質明)에 충렬사 우물(충무공 사당 앞)에서 중류 이상 가정의 처녀와 소부가 음식을 구비하여 먹고, 정화수를 급취 귀가한 뒤에 새 박(新瓢)에 담아두고 신죽(新竹) 1개의 선단을 수 조각으로 부할(剖割, 쪼개고 벰)하여 그 청죽을 땅에 굳게 세우고, 그 위에다가 전기 정화수표를 올려두고, 그 밑에는 오색포편·오색사·백지 등을 걸고, 물대(수장 즉 앞의 청죽)에는 동백·송·죽엽을 달고 지면에는 황토를 깐 후에 주부가 전년 가을에 추수한 정곡을 항아리에 넣어서 특히 대청루는 방안에 준비하여 두었던 것으로 오곡반·비빈떡(거제도에서는 인절미)을 차린 후에 소지(燒紙) 기도를 한다 (거제에서는 기도 음식을 집 안에서 회식하고 인절미만은 유지방의 포내에 넣어 대청에 있는 성조항에다가 위하여 두었다가, 3일 후에 먹고 장승포에서는 풍신 올라간 후에 먹는다)
쪽수▶P157-2南海岸 地方(例로 統營)에서는 2月 初1日 質明에 忠烈祠 우물(忠武公 祀堂 前)에서 中流 以上 家틀:Tagpage庭의 處女와 少婦가 飮食을 俱備하여 먹고, 淨華水를 汲取 歸家한 뒤에 新瓢에 담아두고 新竹 1個의 先端을 數片으로 剖割하여 그 靑竹을 땅에 굳게 세우고, 그 위에다가 前記 淨華水瓢를 올려두고, 그 밑에는 五色布片‧五色絲‧白紙 等을 걸고, 물대(水竿 即 前記 靑竹)에는 冬栢‧松‧竹葉을 달고 地面에는 黃土를 깐 後에 主婦가 前年 가을에 秋收한 淨穀을 항아리에 넣어서 特히 大廳 又는 房안에 準備하여두었던 것으로 5穀飯·비빈떡(巨濟島에 서는 인절미)을 차린 後에 燒紙 祈禱를 한다. (巨濟에서는 祈禱 飮食을 家內 會食하고 인절미만은 유지방의 苞內에 넣어 大廳에 있는 成造缸에다가 위하여 두었다가, 3日 後에 먹고 長承浦에서는 風神 올라간 後에 먹는다)
그리고 집안 사정에 의하여 2월 초 1일에서 초 5일까지 기도를 변경할 수도 있다. 정화수는 2월 초1일에서 2월 19일까지 매일 개수하며 『영동할마니』는 2월 초4일 초9일 19일에 올라간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딸과 며느리 차별은 전자 동양(同樣)하다. 현대문주2▶특히 이 지방 부근에 전승하여오는 다른 유형에 2월 초1일에는 각씨풍신이 내리고, 2월 19일에는 처녀풍신이 내린다고 하여 전연 상반되는 형태를 발견할 수 있으나, 그다지 보편적이 아닌 것 같을 뿐더러, 2월 19일이란 것은 필자에게 자료를 제공한 사람의 착오가 아닌가 한다.[a 2]
쪽수▶P158-2그리고 집안 事情에 依하여 2月 初 1日에서 初 5日까지 祈禱를 變更할 수도 있다. 淨華水는 2月 初1日에서 2月 19日까지 每日 改水하며 『영동할마니』는 2月 初4日 初9日 19日에 올라간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딸과 며느리 差別은 前者 同樣하다. 원문주2▶特히 이 地方 附近에 傳承하여오는 다른 類型에 2月 初1日에는 閣氏風神이 내리고, 2月 19日에는 處女風神이 내린다고 하여 全然 相反되는 形態를 發見할 수 있으나, 그다지 普遍的이 아닌 것 같을 뿐더러, 2月 19日이란 것은 筆者에게 資料를 提供한 사람의 錯誤가 아닌가 한다.[2]
현대문주3▶경기도 안성 및 충남 천안‧대전에서는 2월 초1일에 『마고할마니가』 하강한다 하여 그 집안 식구의 연령 수와 같은 수의 송편떡을 해서 먹고 근신하며, 동월 20일에는 상천일이라고 할 뿐이요, 특수한 의식은 없으나, 이 날 비가 오면 대풍의 전조요 소부과 소리개 한 마리만 지나가도 좋다고 한다.[a 3]
현대문주4▶제주도의 그것에 대하여는 업기 타 학자가 소개한 바 있으므로 할애하기로 한다.[a 4]
틀:Tagpage원문주3▶京畿道 安城 及 忠南 天安‧大田에서는 2月 初1日에『麻姑할마니가』 下降한다 하여 그 집안 食口의 年齡 數와 同數의 송편떡을 해서 먹고 謹愼하며, 同月 20日에는 上天日이라고 할 뿐이요 特殊한 儀式은 없으나, 이 날 비가 오면 大豊의 前兆요 少不過 소리개 한 마리만 지나가도 좋다고 한다.[3]
원문주4▶濟州島의 그것에 對하여는 業己 他 學者가 紹介한 바 있으므로 割愛하기로 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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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3: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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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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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원문주


  1. 蔚山郡 下廂面 伴鷗里 金正福氏 談
  2. 統營 崔天, 李琫振兩氏 談
  3. 安城郡 元谷面 竹栢里 李洪植氏 外 數人 談
  4. 秋葉隆 「濟州島に於ける蛇鬼の信仰」 (這歸文化圏の試み)(靑丘學叢 第7號), 秋葉隆「巨濟島の立竿民俗」朝鮮民俗 第1號)






현대문주


  1. 울산군 하상면 반구리 김정복씨 이야기
  2. 통영 최천, 이봉진 양씨 이야기
  3.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이홍식씨 외 수인(數人) 이야기
  4. 추엽륭 「제주도에 있어서 사귀의 신앙」 (저귀문화권의 형식)(청구학총 제7호), 추엽륭「거제도의 입간민속」 조선민속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