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통재 잔권 소고―특히 신라수이전 일문에 대하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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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3일 (수) 14:0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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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통재 잔권 소고―특히 신라수이전 일문에 대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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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太平通載殘卷小考―特히 新羅殊異傳逸文에 對하야― 학술지 진단학보 수록권호 12 발행기관 진단학회
저자 이인영 역자 집필일자 1940년 6월 게재연월 1940년 9월
시작쪽 202쪽 종료쪽 210쪽 전체쪽 009쪽 연재여부 단독 범주 논문 분야 역사학



항목

차례


해제 목차 본문 데이터 주석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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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2-1太平通載 缺本 二册―存卷六十八之七十, 九十六之百―은 最近에 이르러 처음으로 發現된 朝鮮 古刊本의 하나이다. 木版 匡郭 縱二四·五糎 橫一六·〇糎(卷九十七首葉) 或은 縱二四·二糎 橫一六·〇糎(卷六十八首葉) 四周單邊(卷六十八之七十) 或은 雙邊(卷九十六之百) 烏絲欄 每半葉十行 行十九字 板心에는 上魚尾 黑口 「太平通戴卷幾」라 하였는데 이는 板式·字體‧紙質 等으로 봐서 宣祖 壬辰 以前 古刊本에 틀림없다.(圖版叅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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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2-2이 太平通載는 李朝世宗·世祖·成宗朝의 文人 逸齋成任의 編纂으로 그弟 虛白堂 成俔은 慵齋叢話 卷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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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2-3

佰氏文安公,〇成任 好學忘倦 嘗在集賢殿 抄錄太平廣記五百卷 約爲群節五十卷 刊行於世 又聚諸書及廣記群節 爲太平通載八十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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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2-4이라 하고 成宗實錄 卷一百六十九, 十五年 甲辰 八月 甲戍條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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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2-5

知中樞府事成任卒……年六十四 謚文安 博聞多見文 寬裕和平安 任爲人 器度寬洪 識見精博 善書工文 尤長於律詩 嘗倣太平廣記 編輯古今異聞 名曰大(太)平通載 行于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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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2-6라 하였다. 成任의 太平廣記詳節도 現在 零本으로 傳하는 것이 있지만 太平通戴로 말하면―지금 남어있는 것만으로 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것 같이―朝鮮·支那▶P203-1古文獻을 널리 涉獵하여 編輯한 것으로서 한 朝鮮 古書가 많이 散失된 現今에 있어서 文獻的 價値는 實로 크다고 않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右揭 慵齋叢話에는 太 平通載가 都合 八十卷이라고 하였으나 同書 殘卷으로 볼진댄 적어도 百卷 以上 되는 것은 確實하다. 다만 過去 우리 朝鮮에 있어서는 흔히 卷과 册을 混同한 例가 적지 않음으로 八十卷이라고 한 것은 곧 八十册을 意味한 것인지도 모른다. 萬若 慵齋叢話의 八十卷이라는 것이 八十册을 意味한 것이라고 하면 現行本이 세 卷 乃至 다섯 卷을 한 册으로 삼은 데 依해서 推測해 보면 元來 同書는 적어도 二四十卷 以上의 巨帙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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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3-2그러면 이 太平通載 殘卷은 언제 어데서 刊行된 것인가. 이에 對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記事를 提示코자 한다. 成宗實錄 卷二百八十五, 二十四年 癸丑 十二月 戊子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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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3-3

弘文館副提學金諶等 上箚子曰 伏聞頃者 李克墩爲慶尙監司 李宗準爲都事時 將所刊酉陽雜俎·唐宋詩話·遺山樂府及破閑·補閑集·太平通載等書以獻 旣命藏之內府 旋下唐宋詩話·破閑·補閑等集 令臣等略註歷代年號·人物出處以進 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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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3-4이라 하고 同書 卷二百八十五, 二十四年 癸丑 十二月 己丑條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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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3-5

吏曹判書李克墩來啓 太平通載·補閑等集 前監司時 已始開刊 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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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P203-6이라 하였다. 由是觀之면 太平通載는 酉陽雜爼·唐宋詩話‧遺山樂府‧破閑集及補閑集들과 아울러 李克墩이 慶尙道 觀察使 時代에 慶尙道서 刊行한 데 틀림없다. 그러면 李克墩 慶尙監司 時代는 언제인가. 成宗實錄卷二百六十二 及 卷二百七十四에 依하면 慶尙道 觀察使 李克墩은 成宗 二十三年 壬子 二月에 辭朝 赴任하였는데 그 다음에 慶尙道 觀察使에 任命된 李季男은 成宗 二十四年 癸丑 三月에 辭朝 赴任하였음으로 李克墩 慶尙監司 時代는 成宗 二十三年 壬子 二月로부터 翌年 三月까지 約一年 一個月間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太平通載는 이 동안에―成宗 二十三年頃―慶尙道서 刊行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最近 發現된 古刊本 太平通載 殘卷이 이 成宗 二十三年頃의 慶尙道 刊本일 것은 그 板式과 紙質로 봐서 또한 容易히 推測할 수 있다. 다만 이 太平通載가 ▶P204-1當時 慶尙道 어떤 邑에서 開刊되었는지는 未詳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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