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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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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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제목 정론에 대하여 수록권호 조선문학 1958-3
저자 윤세평 편자 역자 집필일
범주 평론 시작쪽 123쪽 종료쪽 129쪽 분야




항목

차례


개요 저자 목차 내용 인용문헌 유관논의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내용 서술)



저자

(내용 서술)



목차


순서 차례제목 수록면



내용

 오늘 우리 신문들에 있어서나 정치, 경제, 문학 예술 잡지들에 이르기까지 정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증대되여 가고 있다.

이는 우리 출판물들이 생활 현실의 요구에 수응하려는 데서 취해진 응당한 결과로서 경하할 일이다. 혹자는 뿌블리찌쓰찌까 또는 정론이란 말이 아직도 귀에 생소하고 종전에는 없었던 어떤 특별한 새로운 쟌르인 것 같이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뿌블리찌쓰찌까나 정론이라고 하여 신기하게 생각할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그것은 광범한 사회 정치 론평으로서 우리 나라에 일찍부터 있어 왔던 것이 명백하다. 우리는 많은 실례를 들 것도 없이 실학파의 거장인 박 연암이나 정 다산이 탁월한 뿌블리찌쓰트였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 1920-30년대에 맑스주의가 우리 나라에 보급되면서부터는 맑스주의적 정론들이 당시의 출판물들에 큰 자리를 차지하였던 것을 알고 있다. 해방후 맑스-레닌주의에 의하여 인도되는 우리들의 창조적 로력 생활에서 정론의 령역은 비할 바 없이 확장되였으며 그것은 우리들의 혁명 과업 수행과 직접 결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일부 편집자들이나 집필자들 사이에는 아직도 정론에 대한 명확하고 통일적인 견해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왜냐 하면 우리 출판물들에서는 정론을 어떤 특정한 형식을 가진 쟌르로 생각하여 오체르크, 펠레똔, 통신 기사 등과는 무관계한 것처럼, 아주 딴 것으로 취급하는가 하면 또 비슷한 사회-정치적 주제의 론평을 실리면서도 어느것은 정론이란 표제를 붙이기도 하고 안 붙이기도 하며 최근에는 수필이란 제목 밑에 정론을 실리기도 한다. 그리하여 정론의 정의는 의외에도 애매하게 파악되여 그 취급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정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에 대하여 우선 레닌의 정확하고 명료한 규정에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레닌은 일찍이 《혁명의 시절》(1905년)이란 론문에서 맑스주의 정론가들의 임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정론가들은 현 시기의 사변들을 써야 하는바 그것은 운동의 직접 참가자들과 실지 행동하는 프로레타리아트-영웅들에게 상응한 방조를 가져다 주는 실기(實記)가 되도록 써야 할 것이며, 운동을 확대시키고 최소의 힘을 들여서 가장 많고, 가장 확고한 결과들을 가져오게 하는 투쟁 방법과 태도와 수단들을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쓸 것을 일상적인 일로 삼아야 한다.》 레닌의 이 규정은 맑스-레닌주의 정론의 임무 뿐만 아니라 정론 자체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열'쇠로 된다. 레닌은 정론을 어떤 하나의 쟌르로서 국한시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오체르크, 론설, 펠레똔, 기사문으로도 될 수 있으며 사변 일기로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주요한 것은 그것이 현 시기 사변의 단순한 기록이나 복사가 아니라 전투적 맑스주의자들의 붓으로 흥분하여 쓴 혁명적인 사변의 화폭인 데 있다. 물론 정론의 체재가 보다 많이 론설의 체재를 가지고 있어 론문에 가까운 부류로서 다른 쟌르들과 구별되는 것이 보통이며, 오체르크나 수필보다도 론쟁적이며 전투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출판물들이 처해 있었던 사회 력사적 조건들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레닌의 이 교시에 근거하여 정론을 특징지어 본다면 첫째로, 그것은 현대성을 가져야 하는 바 현 시기의 사변, 즉 현대 력사를 쓰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 이는 쉽게 말하여 시사성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서 일반 과학 론문과 구별되는 점이 여기에도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정론가는 한마디로 말하여 자기 시대의 력사를 쓰는 사람인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적인 생활적 제재들을 가질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예리한 정치성을 가져야 한다. 정치가 사회, 경제, 문화의 집중적 표현이란 것은 알려진 사실이나 거기에 만일 정치성이 결여되였다면 정론으로 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론은 우리들이 종래 《사회 시평》이라고 불러 왔으나 오늘 특히 《정론》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러한 정치성의 특징을 밝혀 주는 데서 보다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셋째로, 그것은 단순한 자기 시대의 력사의 《실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도성을 가진 평론적 성격을 띠여야 한다. 만일 거기에 지도성을 가진 평론적 성격이 결여되여 있다면 그것은 독자들의 요구에 아무것도 수응하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동시에 높은 지도성을 가지며 예리한 평론성을 가진 정론일수록 독자들에게 큰 방조를 주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도 정론이 일반 과학 론문과 엄격히 구별되는 것이다. 마감으로 그것은 강한 전투적 빠포스로써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그런 풍격을 갖추어야 한다. 세련된 형상적 언어, 신랄한 풍자, 호소성 있는 문장 등은 정론의 설득성을 한층 힘있게 보장하여 준다. 만일 이러한 풍격을 갖추지 못하게 될 때 정론은 예술적 산문의 령역에서 아주 떨어져 나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정론의 특징들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에 그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맑스-레닌주의 정론에 관하며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레닌이 천재적으로 밝힌 그대로이다. 그리하여 이는 볼쉐비크의 정론들에서 실천을 통하여 검열되고 확인된 바와 같이 철저한 당성, 행동성 전투성과 함께 투쟁 방법과 태도와 수단에 대한 충분한 지식, 바꿔서 말한다면 맑스-레닌주의의 확고한 견지에 서는 데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맑스-레닌주의 사상으로 무장되며, 공산주의를 위한 투사들과 새 사회의 건설자들인 로동자, 농업 협동 조합원, 근로 인테리겐챠들과의 긴밀한 련계는 우리 시대의 정론이 가지는 기본 특징으로 된다. 진실로 이러한 정론들이 가지는 거대한 의의와 역할에 대하여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다른 모든 쟌르와 같이 사상 사업에 직접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나 그중에서도 정론은 맑스-레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그의 정론성으로 하여 사회의 진보와 혁명 과업 수행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 출판물들은 비록 많은 전문 부문의 류별로 나눠져 있으면서도 신문은 물론 각 잡지들까지도 거의 공통적으로 정론들을 싣고 있다. 물론 아직도 우리 정론들의 수준은 높지 못하며 또 부분적으로나마 정론이 홀시되는 경향도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정론 문학에 대한 날로 증대되고 있는 독자들의 수요를 도외시하는 태도이며 또 출판물과 독자와의 관계도 바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다. 비교적 정론을 계속 싣고 있는 우리 문학 잡지의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문학 잡지는 자기의 고정된 독자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독자는 자기의 직업에 비추어 보아 농촌 경리 문제와는 관련이 멀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전국적으로 버러지고 있는 농촌 경리에 대하여 모르고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러기에 잡지를 손에 든 독자는 해당한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을 그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잡지는 응당 이러한 자기 독자들에게 대답을 주어야 하며 생활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바, 바로 그것을 레닌은 맑스주의자인 정론가로부터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론에 대한 배려는 앞으로 편집자들이 한층 관심을 돌려야 할 문제이라고 생각하는바, 이와 함께 씌여진 정론들이 독자들에게 생동하고 절실하며 의욕을 끌 수 있는 그런 글들로 되어야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씌여진 정론들은 그 주제별로 보아도 협소한 것이 사실이나 문제는 독자들의 의욕을 끌 만한 우수한 정론들이 계속되지 못하고 있는 거기에 있다. 물론 모든 정론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나 적지 않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정론들은 제기된 과업들의 깜빠니야적 조치로서 행사적으로 씌여졌으며, 내용이 빈약하고 공허하여 독자들의 의욕을 끌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물론 집필자와 더불어 편집자의 책임도 있다. 왜냐 하면 편집 계획에서부터 정론이 주어지는 대다수의 경우는 행사적이며 깜빠니야적으로 되어 정론의 내용보다도 그 주제의 《권위》로써 독자들에게 내려 먹이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의 정론성과 전투성으로써 독자들을 끌어 당길 대신에 시기적인 주요한 주제만으로써 독자들을 매혹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며, 그러한 내용 없는 행사적인 정론들로 하여 우리 정론 일반이 독자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문학 신문》이나 《조선 문학》 등의 기념 행사 때 씌여진 정론들의 수준이 그다지 높지 못한 것으로도 실증되는 바, 편집 사업의 형식주의는 여기에서도 발현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편집 사업에 대하여는 그만큼 이야기하고 오늘 우리 정론의 현 상태에서 그 주되는 결함을 찾는다면 그것은 우선 정론성과 전투성의 부족이라고 본다. 보다싶이 많은 정론들이 아주 상식적인 개괄 론문에 그치고 있으며 또 어떤 것은 보도 문헌의 령역을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정론들이 모두 그러그러한 내용과 표현들로써 무개성적인 쓰찔로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 정론의 현 상태는 심각한 주제를 설정하는 문제로부터 정론의 정론성과 전투성을 제고시키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전변을 우리들 앞에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론이 내포한 결함의 기본 원인은 무엇보다도 생활과의 련계, 다시 말하면 현실에서 버러지는 투쟁과의 직접적인 련계가 미약하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맑스주의적 정론, 혁명적 정론들에 있어서는 바로 생활, 즉 현실 투쟁과의 직접적 련계가 결정적인 조건으로 된다. 따라서 현실 생활 속으로 들어 가는 문제는 우리 정론가들에게 있어서 한층 절실한 사활적 문제인 것이다. 정론의 힘, 그의 적극적인 영향력은 다만 정론가들이 주되는 력량을 현실의 전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게끔 생활에 깊이 침투하는 데로 돌리는 때에만 장성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정론의 전투성은 우리 맑스주의 정론의 기본 특징의 하나이다. 우리 정론들에서 정론성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 중요하고 결정적인 특질이 결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론은 그 내용과 사상성으로 보아 생활에 앞서야 하며 언제나 현실 속에서 새로운 것을 포착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야 하며, 현실의 급속한 템포로 특징지어지는 오늘의 사변들의 뒤꼬리에 붙어 다니지 말아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우리 정론가들이 날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있는 공장 기업소 내부에, 농업 협동 조합 내부에, 과학적 생활 내부에 대한 일상적 관심과 깊은 련계를 지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정론가는 무엇보다도 정론의 소재를 실천 속에서 따들여야 하며 그것은 맑스-레닌주의적 견지에서 분석하여야 한다. 정론에서 서적이나 신문 자료, 수'자들은 소재의 주요 수단으로 될 수 없다. 정론에서 주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이다. 만일 그 정론이 생활과 투쟁 경험으로부터 나왔으며 필자가 직접 체험하고 깊이 통찰하였다면 그것은 불가피적으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격동성과 첨예성을 띠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론의 첨예성과 격동성은 전투적인 정론의 속성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정론은 구체적이며 산 모범으로써 새로운 것을 추켜 세우며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온갖 낡은 인습과 악덕과 침체성에 대하여 무자비하게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당의 사상 사업을 방조하여야 한다. 여기에 정론의 독자들에게 주는 인식적 교양적 역할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되는바, 우리는 우리 사상 사업에서 정론이 가지는 위력을 바로 여기에서 본다. 따라서 정론 창작에 우리 작가들이 참가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우리는 로씨야의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이나 고리끼와 같은 탁월한 작가들의 실례를 들 것도 없이 우리의 탁월한 고전 작가들인 박 연암과 정 다산들에서, 그리고 많은 카프 작가들에게서 예술적-정치적 산문의 고귀한 표본들을 보게 된다. 박 연암과 정 다산의 정론들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들의 정치적 발언의 깊이와 예리성이 항상 예술적 형상의 깊이와 결부되고 있는 그 점이다. 또한 카프 작가들의 정론은 일제와 부르죠아지의 반동적 시도들을 반대하는 투쟁에서와 맑스주의 사상을 선전하는데 있어서 훌륭한 역할을 놀았는바, 그들은 정론 쓰는 것을 결코 다른 창작 활동과 대립시켜서 보지 않았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정론의 우수한 전통으로 되는 것이나, 최근에 와서 우리 작가들은 마치 정론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 듯이 이 고귀한 전통으로부터 물로서는 경향조차 보여 주고 있다. 물론 현재에도 정론에 대하여 꾸준한 관심을 뵈여 준 작가로서 한 설야, 리 기영 등 선배 작가들을 비롯하여 서 만일, 윤 시철, 계 북 기타 몇몇 이름을 대하게 되는 것이나, 그것은 우리 현역 작가들의 수에 대비하여서보다도 현실적인 수요에 비춰 볼 때 너무도 적다. 거듭 말하거니와 정론가의 사업은 오늘의 산 력사를 쓰는 데 있다. 우리는 실지 생활을 통하여 우리가 처하고 있는 현대가 어떤 시기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957년만 두고 보더라도 이는 전후 복구 건설 3개년 계획을 승리적으로 완수하고 제 1차 5개년 계획에 들어 선 의의 깊은 첫해이며, 력사적인 조선 로동당 12월 전원 회의 결정 실행에서 최대한의 증산과 절약을 위한 긴장된 로력 투쟁이 버러진 해이며, 나라의 경제 생활에서 일찍이 없었던 앙양을 가져 온 해이다. 이 모든 것은 사회주의 건설에로 전진하는 우리 인민들의 승리이며 이를 조직 지도한 우리 당의 승리이다. 우리 출판물들은 응당 이 승리를 방조하는 예리한 무기로 되어야 하며 우리 정론가들은 이 투쟁의 산 력사를 써야 한다. 그것은 달성된 성과의 일반화 뿐만 아니라 결함들에 대한 예리한 비판까지도 포함하여 씌여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문학 신문》에는 이러한 생동하는 현실의 화폭으로 되는 정론이 매우 부족하며, 우리 《조선 문학》에는 거의나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다시금 기념일의 행사에나 양념으로 정론의 자리를 내주는 편집자를 탓하게 되는 것이나, 그보다도 불꽃튀는 로력 투쟁의 현실 속에 파견된 수많은 우리 작가들에게 정론을 쓰지 않는 그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현지에 나간 작가들이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니며 또 그들이 창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우리 작가들은 정론에 참가하는 것이 마치 다른 창작에 지장으로 되는 것 같이 생각하며 나아 가서는 정론을 쓰는 작가는 따로 있는 듯이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릇된 편견과 타성보다도 필자가 추궁하고 싶으며 또 의아쩍게 생각되는 것은 그처럼 벅찬 현실 속에서 생활을 연구하며 관찰하는 작가로서 시대의 산 력사인 정론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런 충동을 어찌하여 느끼지 못하는가 하는 그 점이다. 사실 조선 로동당 12월 전원 회의의 력사적 결정은 공업 및 농업 경리에 있어서 새로운 앙양의 위력한 원천으로 되었다. 누구보다도 현지에 나가 있는 우리 작가들은 이 생동하는 현실의 직접적인 목격자이며 또 감동 없이는 대할 수 없는 진실의 탐구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격동적인 산 현실 속에 살면서 과연 정론을 쓸 만한 충격을 받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점에 대하여 우리 작가들은 다시 한번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독자들은 흥분과 격동의 분류로 씌여진 자기 시대의 산 화폭을 정론에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생활 속으로 들어 간 작가들이 이를 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책상 우에서 만들어 내자니 생동성이 없고 고작해야 개괄적인 상식 론문의 테두리를 벗어 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주어진 어떤 개별적 정론만이 독자에게 소원될 뿐만 아니라 정론 일반이 독자들에게 친숙될 수 없는 엄중한 결과까지 가져 오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찌 이런 사태를 더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 보다싶이 우리의 시대는 특출한 력사적 사변들로 충만되여 있다. 그것은 우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혁명적 민주기지 강화를 위한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을 승리적으로 인도하는 우리 당의 정책과 결정 실행에서 표현되고 있다. 매일같이 당의 결정과 호소에 궐기한 로동자, 농업 협동 조합원, 청년 학생들의 대중적 운동이 버러지고 있다. 송남 청년 탄광 개발, 평양시 복구 건설, 10만 정보 과수 면적 확장, 우람찬 기본 건설, 자연을 개조하는 관개 공사… 이러한 대중적 운동은 우리 시대와 우리 제도하에서의 특징적인 사변이다. 이 사변들은 우리 문학 예술을 위하여, 특히 서정시와 서사시, 소설과 희곡을 위한 주제로 되어야 하며 또 되고 있다. 사변들은 또한 오체르크에 대한 수요도 증대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명백히 론문, 펠레똔, 통신 기타의 형식을 통한 정론적인 선전, 리론적인 해명과 분석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전투적인 정론의 아주 좋은 소재인 것이나, 우리는 이 주제들을 무미건조하게 리론화시킬 수는 없다. 거기에서는 사회주의로 가는 도상에서 우리를 흥분시키는 창조와 투쟁의 생동하는 화폭을 우리의 생활적 련계 밑에 선명하게 뵈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눈을 들어 조국의 절반 땅인 남반부에서 버러지고 있는 사변들에 대하여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전 협정을 일방으로 파괴하고 전쟁 도발 정책에 광분하는 미제와 리 승만 매국 도당들, 미제의 식민지 략탈 정책 밑에 무참하게 파괴된 산업 및 농촌 경리와 도탄에 빠진 인민 생활, 미국의 승냥이 철학과 미국식 생활 양식의 수입, 계속되는 미군의 만행과 인민들의 반미 감정의 비등… 이 모든 것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념원하는 우리 독자들의 자나깨나 잊을 수 없는 관심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에 관한 정론들도 결코 만족할 것이 못 된다. 독자들은 일간 신문들에 보도되는 기사에서 한 걸음도 더 깊이 들어 가지 못한 그런 정론들에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한심하게까지 생각되는 것은 국제 생활에서 오늘의 력사를 뵈여 주는 정론이 거의나 없는 점이다. 오늘 평화를 위한 투쟁에서 사회주의와 평화 진영의 성과와 승리는 거대하다. 위대한 쏘련의 선진적 과학은 대륙간 탄도 로케트와 인공 지구 위성의 발사로 새로운 세기를 열어 놓았으며 사회주의 10월 혁명 40주년 기념을 계기로 모쓰크바에서 진행된 사회주의 제 국가 공산당 및 로동당 대표들의 회의의 선언과 세계 각국 공산당과 로동당 대표들의 회의에서 채택된 평화 선언은 평화와 사회주의 진영의 위력이 불패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시위하고 있다. 이 반면에 전쟁 및 침략 진영의 광분하는 군비 확장과 범죄적 전쟁 준비, 특히 중근동에서 《덜레스-아이젠하워주의》의 강요에 의한 평화에 대한 위협, 세아토의 침략 쁠럭에 의하여 조성된 동남아세아에서의 전쟁의 위험성-제국주의가 조성하는 이 모든 전쟁의 위험성은 우리들의 경각성을 더욱 높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산 력사가 우리 정론들에서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가. 우리 작가들은 모두가 평화를 위한 투사라고 할 것인바, 독자들은 사회주의 진영 인민들간의 친선 단결을 비롯하여 제국주의 진영의 정세를 해명하고 식민주의자들간의 모순을 폭로하며 식민지 예속 국가들에서 장송하는 민족 해방 운동을 보여 주는 그런 정론을 작가들에게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쏘련의 에렌부르그의 일련의 정론들과 가깝게는 지난 유엔총회 진행에 관한 그리바쵸브의 정론들을 상기함으로써 이것이 얼마나 절실히 요구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정론에 있어서 국제적인 주제의 빈약성을 극복하기 위하여는 작가들로하여금 국제 생활에서의 제 문제들에 눈을 돌리게 하며 국제적인 이데올로기 전선의 투사로 나서게 하여야 한다. 오늘 정론에 대한 독자들의 요구는 예리한 정치 사상과 예술적 형상을 결합시킬 수 있는 능력과 개체의 감명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필수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론의 문학적 형식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의 신문 잡지들에서 정론은 다만 론문 형식을 취하는 것으로 틀을 만들어 놓았는바, 이것은 시급히 타파되여야 한다. 정론은 보도 형식이나 개관 형식으로도 될 수 있으며 펠레똔이나 풍자적 쟌르를 리용할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박 연암과 같이 기행문 형식으로도 쓸 수 있으며 일기체와 서한체로도 쓸 수 있다. 그리하여 정론의 천편일률적인 형식은 정론을 아무런 특색도 없는 것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잡지까지 무미건조한 것으로 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함께 정론의 언어에 대하여도 문학적인 요구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물론 작가들의 경우에 있어서 신문 론설에서처럼 판에 박히고 굳어진 표현들은 적다고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언어가 선명하지 못하며 국제적인 주제라도 붙들게 되면 인차 신문 론설의 뒤꼬리를 따르는 일도 보게 된다. 우리는 정론의 언어에서 미지근하고 흐리멍덩한 것을 없애야 하는 동시에 우리 말로 순화되지 않은 번역식 언어들도 삼가야 한다. 그리하여 생동하는 오늘의 력사로 되어야 할 정론은 우선 생동하고 예리한 문학적인 언어를 써야 하며 거기에는 작가의 개성적인 쓰찔이 드러나야 한다. 이상은 언어 예술가들인 우리 작가들에게 결코 지나친 요구로 될 수 없다. 우리는 예리한 정론성이 세련된 언어 문장과 결합된 모범을 누구보다도 박 연암의 정론들에서 보게 되는바, 이제 그 한두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한다. 아다싶이 박 연암의 로작 《열하 일기》는 전체로서 정론적 성격을 띤 저술이라고 하겠으나, 그의 창작 생활의 마감 시기는 정론이 주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선 《열하 일기》 가운데 있는 《차제(車制)》란 글을 인증하여 본다면 박 연암은 여기에서 먼저 당시 중국에서 본 여러 가지 수레들을 소개하고 그것이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 관계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박 연암은 이 많은 수레들의 구조에 대하여 그 기본 특징으로 되는 동궤(同軌)를 명석하게 밝혀 내여 어떤 수레이고 두 바퀴 사이의 척수가 규격에 어긋나지 않게 같게 만든 필요성을 인식 시키려고 하였다. 궤도를 똑같이 해야 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상식적인 이야기나 박 연암의 시대에 조선에 있어서는 아주 탁월한 선진적 견해였던 것이다. 그러나 연암이 이것만을 주장했다면 그것은 하나의 기술론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나 그가 정작 강조하려는 것은 조선에 있어서 교통 운수 수단을 발전시켜야 국가와 인민 생활에 유익하다는 거기에 있었다. 따라서 《우리 조선에는 아직도 수레란 것이 없지마는 있다는 것도 바퀴가 똑바르지 못하고 바퀴 자국은 궤도에 들지 못하니 수레가 아주 없는 셈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흔히들 말하기를, 우리 조선은 산협 지대이라 수레를 쓰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이런 당토않은 소리가 어데 있을 것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리용하지 않고 보니 길을 닦지 않고 있는 것이요, 수레만 쓰게 된다면 길은 절로 닦아질 것이 아닌가. 거리가 비좁고 산마루들이 험준하다는 것은 아예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렇게 말하는 박 연암은 중구의 산세 지형도 조선에 못하지 않게 험준하나 수레가 다닌다는 것을 실증하고, 수레의 리용 결과에 중국에서는 물화가 풍성하고 그 류통이 인민 생활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밝힌 다음, 우리 조선의 실정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령남 지방 아이들은 새우젓을 모르고 강원도 사람들은 주두나무 열매를 담가 간장을 대신하고 서북 사람들은 감과 귤을 분간 못 하고 바다’가 사람들은 메루치를 거름 삼아 쓰는데, 어찌다가 이것이 한번 서울까지만 오면 한 웅큼에 한 잎 값이니 얼마나 이것이 귀한가.》 그리하여 우리 나라 여러 지방들의 토산 명물들을 렬거하고서 이런 것들이 《모두 백성들의 살림살이에 없어서는 안 될 자원들로서 서로 유무상통하고저 함이야 누가 싫다 할 것인가. 그러나 이 지방에 흔한 것이 저 지방에는 귀하고 이름만 들었을 뿐 볼 수 없는 까닭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는 곧 가져 올 힘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도 넓이가 수천 리가 되는 나라에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이토록 가난한 까닭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내에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 까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한번 물어 보자. 수레는 왜 못 다니는가. 이것도 한마디로 대답한다면 모두가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죄이다. 이 량반들은 평생에 읽는다는 글이 주례(周禮)란 성인의 저술로서 툭하면 거인(車人)이니 륜인(輪人)이니… 하지마는 입으로만 외울 뿐이요. 정말 수레를 만드는 법은 어떠하다든가, 수레를 부리는 기술은 어떠하다든가 하는 데는 연구가 없으니 이야말로 건성으로 읽는 풍월일 뿐이요, 학문에야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어허, 한심하고 기막힐 일이로다…》 하고 통탄하였다. 이처럼 박 연암의 정론은 독자들을 흥분시키며 오래도록 생각키우게 하는바 거기에는 형상적인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농민에게 토지를 주어야 하며 토지 겸병을 방지해야 한다는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란 정론에서도 《그림 그리는 자에게 비유하면 단청이 비록 구비하고 묘사가 아무리 능숙하더라도 종이와 비단을 가지지 못하면 북과 먹을 베풀 바탕이 없다.》 고 하여 농민에게 있어서 토지를 화가의 종이나 비단에 비유함으로써 아주 생동적인 형상을 주고 있다.

우리의 정론은 모름지기 이러한 우수한 전통을 계승하여 심각한 주제의 선택으로부터 정론의 문학적 기교를 제고시키는 일에 이르기까지 일층의 전진을 가져 와야 할 것이다.




인용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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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정론에 대하여 Volume: 조선문학 1958-3 A isPartOf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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