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기
백정기(白貞基) | |
대표명칭 | 백정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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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白貞基 |
생몰년 | 1896년-1934년 |
호 | 구파(鷗波) |
시대 | 근대 |
대표직함 | 의사 |
대표경력 |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한국대표 |
상훈 | 건국훈장 독립장(1963) |
능묘 | 효창공원 |
생가 | 구파 백정기의사 고택지(전라북도 기념물 제103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목차
정의
이동녕(1869년~1940)은 한말의 독립운동가이고 정치가이며 행정가이다. 일제강점기 신흥무관학교 소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한국국민당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업적 요약
1906년 북간도 용정촌에서 이상설, 여준 등과 서전의숙을 설립하였고, 1907년 귀국하여 안창호, 양기탁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1911년에는 항일독립군 양성의 중추기관인 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의 전신)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으로 취임하였다.
1918년에는「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4월 13일 임시의정원의 초대 의장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을 주선하였다.
1919년 4월 13일 임시정부 수립을 내외에 선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총리로 취임하였으며, 1927년 주석이 되었다.
1935년에는 한국국민당을 조직하여 당수가 되었다.
내용
독립협회 가입
고택지와 추모
백정기의 고택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103호(구파 백정기의사 고택지)로 지정되어 있다.
백정기는 부안에서 태어나 1907년 이 곳(전라북도 정읍)으로 이주하여 1919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할 때까지 12년동안 생활하였다고 한다.
백정기는 일본의 장기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지병이 악화되어 1934년 순국하였다. 1946년 일본에서 유해를 송환받아 효창공원에 안장하였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지식 관계망
노드
ID | Class | Label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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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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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갤러리
사진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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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 고택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의 백정기 묘 | |
정읍 백정기의사 기념관의 구파기념관 (구파백정기의사기념관, 정읍시) |
영상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 자원
- 이현희, "백정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현희, "백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