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팀프로젝트 6조 이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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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디지털인문학이란 2025-1 디지털인문학이란 6조 위키페이지

6조 - 김해
작성자: 인문정보학 이효림





연구목적 및 필요성

* 팀프로젝트 주제와 대상과의 관계, 왜 이 대상을 선정하였는지 기술 (이때 팀프로젝트 위키페이지를 내부링크 하세요.)
* 중요: 팀프로젝트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에 대하여 기술 및 데이터 구축할 것
- 단, 팀프로젝트 주제와 대상의 관계는 명확하게 기술 및 구축하세요.





연구 대상

*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기술
* 사진, 영상 등 멀티미디어 자료도 활용하세요.
* 유의사항: 작성시 본인이 참고한 자료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와서 기록하거나 요약해서 사용하는 것 자체는 허용합니다. 그러나, 여러 자료의 내용을 사실확인 후 참고해서 적절히 배열, 정리하는 큐레이션의 방식으로 작성하기 바랍니다.
- 작성시 활용한 문장이나 정보 등은 반드시 주석 위키문법을 활용해서 그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 주석과 참고문헌은 다른 기준으로 작성합니다. - 주석(Footnote): 기사를 작성하는 데 그대로 가져와서 인용했거나, 요약해서 가져온 내용에 대해 출처를 밝히는 것. 또한 부가적 설명을 하고 싶은 것.(용어풀이 등)
- 참고문헌(Further Reading): 해당 기사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단행본, 신문기사, 연구논문 및 보고서(웹자원 포함) 등에 대한 정보 제공.


김해(金垓,1555∼1593)는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승문원정자를 지내고, 1589년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그해 10월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났고, 11월 사초(史草)를 태운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고향에서 지내던 중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 예천 등 의병대장으로 활약하다 39세 나이로 경주에서 전쟁 중 병사했다.

이듬해 3월 좌도병마사 권응수(權應銖)와 합세하여 상주 당교(唐橋)의 적을 쳐서 큰 전과를 거두고, 4월 서울에서 부산으로 철수하는 적을 차단, 공격하여 대승하였으며, 5월에는 양산을 거쳐 경주에서 이광휘(李光輝)와 합세하여 싸우다가 진중에서 병사하였다.

김해는 왜적의 침입 소식을 들은 날부터 경주의 의병 진영에서 순국하기 직전까지 전투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향병일기』[1]와 부대지휘관의 복무지침서인 『행군수지』를 저술하였다. 이는 임란사 및 지방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군자의 구국정신을 일깨운 김성일의 격문

안동 출신의 김성일(金誠一)은 경상우도 초유사로 임명되어 전쟁 상황을 살피기 위해 1592년 5월에 경상우도로 내려갔다. 그는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을 담아 격문을 써서 여러 지방으로 보냈으며, 이에 감동한 여러 사람들이 의병을 일으키게 되었다.

김해는 김성일의 격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으며, 이를 통해 군사적 환경이 열세임에도 나라를 걱정하며 적에 대해 분개하여 의병대장으로 활약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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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이 막혀 오랑캐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종묘사직이 병화(兵火)에 휩싸이고 임금께서는 서쪽으로 파천하였으니, 백성의 고통이 죽음보다 더한 지가 오래입니다. 누추하고 협소한 지방이라서 예전에도 이 지역 현자들의 가르침을 받아 유학만을 숭상했을 뿐 무예를 익히지 않았습니다. (중략)
의병을 불러 모으니 모두 수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활을 잡아 본 사람은 열에 한둘도 되지 않아 떨쳐 일어나 진격해 나갈 수는 없습니다만, 요해처에 복병을 설치할 수는 있으니, 격분한 마음을 떨쳐 임금을 위해 죽고자 하는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다만 군대는 근본이 갖춰지지 않았고, 통솔하는 자의 재주가 부족하여 병세(兵勢)가 열악합니다. 게다가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고 병기는 탕진되어 모두가 나무를 잘라 만든 병기를 쥐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 거사를 한다면 뜻을 이루지 못할 듯합니다.
그러나 충의로운 마음이 천성으로부터 나오고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도리도 예전에 대략이나마 익혔습니다. 불끈 마음을 먹고 저 더러운 오랑캐를 소탕하고자 하며, 하늘에 맹세컨대 이 도적들과는 세상을 함께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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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해,<근시재집>


난중잡록(亂中雜錄)[2]에는 군사가 만여 명이 되는데 모두 김해의 통솔을 받고, 김해는 충의롭고 강개한 자질로 신의가 본래 남에게 미더움을 받았으므로 먼 데나 가까운 데서 유위(有爲)할 것을 기대하여 간 곳마다 사람들이 적을 치는 데 힘썼다고 되어있다.[3]





시맨틱 네트워크 그래프





연구결과

  • 시맨틱 데이터 구축 및 디지털 큐레이션을 하면서 도출한 사항을 기술
    • 사실적인 관계와 사실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한 추정 등
    • 시맨틱 데이터 구축 시 중점적으로 고려한 사항 등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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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및 문헌

  • (최소 1개 이상)




신문기사 및 사이트



주석

  1.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향병일기"
  2. 임진왜란 시 남원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경남이 쓴 야사집으로 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차례의 난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하였으며, 당시 나라 전체의 역사적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3. 亂中雜錄[二] 壬辰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