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 승리한 권율장군
개요
- 시대: 조선-조선 후기(1593~1863)연대
- 지정분류: 사적 제140호
- 정의: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석축 성곽.산성. 사적.
- 내용: 사적 제140호.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불린다.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3.6㎞인데, 현재 약 400m 정도의 성벽과 성문 4곳이 남아 있다.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였으므로, 한강 하류에 도성을 두었던 백제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 산성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곧 1593년(선조 26) 7월에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權慄)이 근왕병 2만 명을 모아 북상하다가 이곳에 진을 치고서 왜적을 물리쳤고, 이듬해 9월 11일~14일에는 백성들이 힘을 모아 불과 4일 만에 고쳐 쌓았다. 이러한 과정은 주변에 알려져 금지산성(衿之山城)에서도 군량을 모으고 병사를 훈련시켰으며, 월계산성(月溪山城)과 파사산성(婆娑山城)까지 영향을 미쳤다. 1595년에는 포루(砲樓) 시설을 갖추었고, 1597년 2월에는 왜병이 쏜 조총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성벽 안쪽에 평평한 집을 지었으며, 석차(石車)와 함께 투석용으로 쓰던 포차(抛車)를 배치하면서 성 밖에 목책을 세우려고 계획하기도 하였다.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전략적 위상이 계속 중시되어, 1602년(선조 35)에 변응성(邊應星)이 수리하여 쌓았다. 1796년(정조 20)에 수원성 축조와 함께 고쳐 쌓아 오늘에 이르는데, 당시 성의 둘레는 1,800보이고 성문 4곳이 있었다고 한다.이 산성은 많은 군사들이 주둔하기에는 물이 부족한 편이다. 이것은 세마대(洗馬臺)을 낳았다. 곧 1593년에 권율이 이곳에 주둔하였을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끈 왜군이 와서 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보내며 조롱하였다. 권율은 물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백마를 산 위로 끌어 올리고서 목욕시키는 것처럼 흰 쌀을 끼얹었다. 이를 본 왜군은 말을 씻길 만큼 산 꼭대기에 물이 풍부하다고 생각하고는 물러났다고 한다. 세마대는 1957년에 복원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烏山禿山城─洗馬臺址))]
이야기
옛날 조선시대 때 왜군들이 쳐들어 왔어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싸웠는데 그중엔 권율 장군도 있었어요.
권율 장군은 군사들을 데리고 독산에 지어진 튼튼한 요새인 산성에 들어갔어요.
많은 왜군들이 산성을 둘러싸고 싸움을 걸었지만 산성이 너무 튼튼해서 이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산성에는 물이 별로 없어서 군사들은 목이 말랐어요.
만약, 왜군이 물러가지 않으면 결국, 목이 말라서 싸우지도 못하고 항복하고 말 거예요.
신하들이 걱정했어요. "장군님, 왜군은 저희가 물이 없다는 걸 알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권율 장군은 걱정하는 신하들에게 말했어요. “지금 당장, 구름처럼 하얀 말 한 마리를 데리고 산꼭대기로 가서 목욕을 시켜라.”
신하들은 깜짝 놀랐어요. “장군님, 목욕이라니요! 마실 물도 없는데, 어떻게 말을 목욕시킵니까?”
권율 장군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어요. “누가 물로 씻으라고 했느냐? 커다란 쌀을 물통에 넣어서 바가지로 퍼서 말에게 부어라, 왜군들은 멀리 있으니 물처럼 보일 것이다.”
신하들은 권율 장군의 말처럼 하얀색 쌀을 퍼서 말에게 부었어요.
그러자 멀리 있던 왜군들이 말했어요 “이럴 수가, 산성엔 물이 없어서 마시지도 못한다더니 저것 봐! 말을 목욕시키고 있잖아! 안 되겠다. 어서 다른 곳으로 가자!”
산성을 포위했던 왜군들이 물러가자 권율 장군과 부하들은 시원한 물을 마음껏 마시고 힘을 내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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