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우회

논문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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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는 1909년 2월부터 1910년 11월까지 활동한 청년 계몽운동 목적의 시민단체이자 신민회의 측면 조직 단체였다. 안창호, 윤치호, 최남선, 차이석, 이승훈신민회 간부 12명과 유길준 등에 의해 조직되었다. 민족 독립을 위한 청년교육과 민족 교육과 실업 진흥이 주 목적이었다. 학우회는 실력양성과 국민적 인식 개선이 독립보다 우선이라 판단하고 주로 계몽 강연활동과 신학교 설립 운동, 신식 병원 유치, 국민 의식 계몽과 개조 등의 활동을 추진해 나갔다.

초기 설립위원장은 윤치호(尹致昊), 총무는 안태국(安泰國), 서기는 옥관빈이 맡았으나, 1910년(융희 4년) 3월 설립위원장 대리 박중화(朴重華), 총무대리 최남선(崔南善) 등으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한일 병합 조약 이후 105인 사건으로 회원 대다수가 구속, 수감되면서 사실상 해산된다.

출범 배경

1907년(광무 10년)에 설립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는 청년층이 국권회복을 위한 민족운동의 주체임을 인식하고 청년운동을 담당할 합법적인 단체의 창립을 추진했다. 1909년(융희 3년) 2월 안창호서재필독립협회 예하 협성회와 같은 청년 계몽 조직의 필요성을 제창하였고, 1909년 8월 윤치호(尹致昊), 최남선, 차이석(車利錫), 이승훈(李昇薰) 등 신민회 간부 12명과 유길준, 김윤식 등의 발의로 청년학우회가 조직되었다. 청년학우회는 처음에 신민회의 외곽단체로서 출범했지만, 유길준, 김윤식 등의 외부 인사들도 참여하였다.

처음에 안창호윤치호, 유길준은 청년들을 조직하고 훈련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국가 건설을 위한 근본이라 생각하고 청년학우회 운영은 신민회와는 별개의 비정치적 순수 청년운동 단체로서 운영할 것을 계획하였지만 결국 신민회의 요원을 양성하려는 의도대로 따라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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