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서루

논문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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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서루(友弦書樓)는 구한말 나라가 망하는 조짐이 보이자 대구의 소남 이일우 선생이 세운 인재양성을 위한 도서관.

이일우는 구한말 대구갑부였던 이장가의 후손이다. 이집안의 1400석 재산가운데 절반은 주변친척 자손들의 장학금으로 내놓고 절반은 우현서루를 운영하는데 사용했다. 나라가 없으면 백성은 한줌의 티끌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 있었기때문이다.

우현서루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책을 편하게 읽을수 있도록 숙박시설도 갖추어진 도서관이었다. 책을 보고싶은 사람은 보름이고 한달이고 무료숙박으로 책을 볼 수 있었다. 대구사람들은 물론이고 전국 뜻잇는 지사들이 모여와 하루평균 외부 방문객이 20여명이 넘었다고한다.

우현서루를 출입하여 인연을 맺었던 유명인사가 150명 정도였다고한다. 시일야방성대곡을 썼던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 상해임시정부 박은식 초대국무령 이동휘 몽양 여운영 등이 그들이었다.

우현서루는 7년여동안 운영하다가 1911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