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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802400000 함양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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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9일 (금) 13:59 판


함양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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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함양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
영문명칭 0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249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0호
지정일 1997년 1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함양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아전(衙前) 임술증(林述曾)의 아내 밀양(密陽) 박씨(朴氏)의 열(㤠)을 기려 세운 정려비(旌閭碑)이다. 밀양박씨는 안의 사람으로 19세에 병든 신랑 임술증과 혼인 약속을 지켜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사망하자 3년상을 치른 다음 같은 날 같은 시에 자결한 열녀로서 정조17년(1793년) 안의현감(安義縣監)으로 있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쓴 유명한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의 실제 인물이다.

밀양 박씨의 열은 당시 인근 고을까지 두루 알려져 함양군수(咸陽郡守) 윤광석(尹光碩), 산청현감(山淸縣監) 이면제(李勉齊), 거창의 신도향 사인(士人) 이학전(李學傳), 벽송사(碧松寺)의 승려 응윤(應允)등도 각각 기록을 남긴바 있다. 비문은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7대손인 청하현감(淸河縣監) 정덕제(鄭德齊)가 짓고 썼다. 정조21년(1797년)에 처음 세웠고, 2009년 2월 19일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수정 국문

초고

1차 수정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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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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