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
함양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 Stele of Lady Bak, Ham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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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함양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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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 of Lady Bak, Hamyang |
한자 | 咸陽 㤠女 密陽朴氏 旌閭碑 |
주소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249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0호 |
지정(등록)일 | 1997년 1월 3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함양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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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조선 시대에는 효자, 충신, 열녀로 인정을 받게 되면 그 행적을 기록하고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그리고 현판을 달아 정려문을 세우거나 돌에 새겨 정려비를 세우고 널리 알려 귀감으로 삼았다.
이 비는 연암 박지원이 안의 현감으로 있을 때 쓴『열녀 함양 박씨전』에 나오는 주인공의 정려비이다. 정조 21년(1797)에 처음 세웠고, 2009년 2월 19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비문은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의 7대손인 청하 현감 덕제(德齊)가 짓고 썼다.
밀양 박씨는 실제 인물로, 19세에 아전(衙前) 임술증(林述曾)과 혼인하자마자 병들었던 남편이 사망하였고 남편의 3년 상을 치른 후에는 자결하였다. 함양 군수 윤광석, 산청 현감 이면제, 거창 선비 이학전, 벽송사승려 응윤 등도 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영문
Stele of Lady Bak, Hamyang
This stele commemorates the matrimonial devotion of Lady Bak of the Miryang Bak Clan. The stele was erected in 1797 at the entrance to Hamyang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2009.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meant to be hung on red gates or installed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At the age of 19, Lady Bak married Im Sul-jeung, a low-ranking civil official working at the local government office in Hamyang. Her husband was suffering from a chronic disease and died soon after the wedding. Upon the completion of the required multi-year mourning period, Lady Bak took her own life to follow her husband in death. Word of Lady Bak’s act of matrimonial devotion spread to the neighboring villages and was mentioned in records left by scholars, magistrates, and Buddhist monks.
The stele consists of a square pedestal and a body stone. It is housed in a pavilion made of four stone pillars and a roof-shaped capstone.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밀양박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797년에 함양향교 입구에 처음 세웠고, 2009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 현판 또는 정려비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비을 세워 모셨다.
밀양박씨는 19세 때 함양 지역 관아의 하급 관리였던 임술증과 결혼하였다. 지병이 있던 남편은 결혼 후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났고, 박씨는 삼년상을 치른 뒤 자결하였다. 박씨의 이러한 행동은 당시 인근 고을까지 두루 알려져 학자, 현감, 승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기록으로 남겼다.
비석은 네모난 받침돌에 몸돌을 올린 형태이며, 주변에 돌기둥 4개를 세우고 지붕돌을 올려 비각을 만들었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함양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31,02400000,38&pageNo=1_1_1_0
- 열녀학생임술증처유인밀양박씨지려(烈女學生林述曾妻孺人密陽朴氏之閭),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95137&cid=40942&categoryId=33080
- 함양 열녀 밀양박씨 지려(咸陽烈女密陽朴氏之閭), 디지털함양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hamyang.grandculture.net/hamyang/toc/GC07200534
- “남편의 삼년상 마치고 자결한 함양 열녀 밀양박씨 정려비”, 지역N문화. https://local.nculture.org/0bzu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