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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9일 (금) 16:25 판


함양 노진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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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노진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노진 신도비
영문명칭 0
주소 경남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 산32번지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0호
지정일 1994년 7월 4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함양 노진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신도비는 고인이 살았을 때의 일들을 기록하여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신도비는 무덤의 동남쪽에 세우는데, 그것은 동남쪽을 “신령의 길(神道)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 신도비는 옥계(玉溪) 노진(盧禛, 1518~1578) 선생의 덕을 기리기위해 세운 것이다. 선생은 1546년(명종 원년)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승문원(承文院) 박사(博士)를 시작으로 예조(禮曹) 및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냈다. 선생은 평소에 공사(公私)를 분명히 하여 청백리(淸白吏)로, 또 효자(孝子)로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이 비는 1631년(인조 9)에 임금의 명으로 건립되었다. 비석의 돌은 황해도에서 생산된 백색 대리석이다. 비문(碑文)은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짓고, 글씨는 선조(宣祖)의 부마(駙馬)인 동양위(東陽慰) 신익선(申翊善)이 썼다. 비석의 머릿돌에는 구름 사이로 용 여섯 마리가 뒤엉켜 서로 여의주를 차지하려는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 되어 있다. 거북받침(龜趺) 밑에 마련된 받침돌(臺座)의 정교한 조각은 당대(當代)의 걸작품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수정 국문

초고

1차 수정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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