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참고)
74번째 줄: 74번째 줄: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통영시 문화유산]]
 
[[분류:통영시 문화유산]]
 +
[[분류: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분류:사적]]
 
[[분류:사적]]
 
[[분류:인물유적]]
 
[[분류:인물유적]]

2019년 12월 1일 (일) 04:48 판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un-sin on Hansando Island, Tongyeong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영문명칭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un-sin on Hansando Island, Tongyeong
한자 統營 閑山島 李忠武公 遺蹟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한산일주로 70 (두억리)
지정번호 사적 제113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528,034㎡
웹사이트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한산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적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92년 임진왜란 때 세계 해전사상 길이 빛나는 한산대첩을 치른 장소이다. 여기에 집무실 겸 작전지휘본부였던 운주당(運籌堂)*을 짓고, 1593년부터 1597년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았다. 이곳은 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운주당은 1597년에 건물이 없어졌으나 142년 후인 1740년 통제사 조경(趙儆)이 다시 짓고 이 사실을 비에 적어 남겼다. 1959년 정부가 사적으로 지정한 이래로 여러 차례 보수하여 왔으나 민족의 영웅을 모시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였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둘러본 후 이순신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높은 뜻을 후손만대에 전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부지를 확장하고 보수하여 1976년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하였다.

이곳에는 이순신이 생전에 삼도수군을 지휘하던 곳인 제승당(制勝堂)을 비롯하여 공의 존영을 모신 충무사(忠武祠)와 유허비(遺墟碑), 공덕비(功德碑), 한산정(閑山亭), 수루(戍樓) 등 부속 건물들이 말끔히 복원되어 수려한 주변 경관과 더불어 당시 조선 수군 본영의 면모를 되찾아 볼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갔어도 나라 사랑하던 마음은 출렁이는 푸른 바다와 함께 언제까지나 살아남아 조국 수호의 영원한 횃불이 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우리는 다 같이 옷깃을 여미고 공의 공적을 가슴 깊이 되새겨 영광된 통일 조국의 기반이 되기를 다짐하자.


  • 운주당(運籌堂): ‘운주’는 ‘지혜로 계책을 수립한다.’는 뜻. 운주당은 이후에 제승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문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un-sin on Hansando Island, Tongyeong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장군인 이순신(1545-1598, 시호: 충무공)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유적지이다.

1592년 5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였던 이순신은 85척의 함대를 이끌고 출전하였다. 이후 8월에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선 47척을 침몰시키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한산대첩을 통해 조선 수군은 남해안의 해상권을 다시 확보할 수 있었다.

1593년 선조(재위 1567-1608)는 이순신의 공을 인정하여,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3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삼도수군통제사의 관직을 제수하였다. 3도의 수군을 통괄해서 지휘한 것은 이순신이 최초였다. 이후 이순신은 한산도에 집무실 겸 작전지휘본부였던 운주당을 짓고 1593년부터 1597년까지 3도 수군의 본영으로 삼았다. ‘운주’는 지혜로 계책을 수립한다는 뜻이다. 운주당은 1597년 조선 수군이 칠천량(지금의 거제시)에서 왜군에 패하면서 소실되었다.

1739년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조경(1677-1743)이 이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운주당의 옛터에 건물을 다시 짓고 ‘승리를 만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유허비를 세워 이러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제승당과 그 일원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76년에 제승당,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무사, 활쏘기를 연마하던 정자인 한산정,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한 망루인 수루 등을 다시 지었다.

갤러리

제승당 안내도.jpg
  1. 충무사(영당)
  2. 제승당 유허비
  3. 제승당
  4. 한산정
  5. 수루
  6. 대첩문
  7. 수호사
  8. 관리사무소
  9. 휴게소
  10. 한산문

참고

  • 임진왜란 발발일: 1592년 4월 13일 (음) / 1592년 5월 23일 (양)
  • 이순신 출전: 1592년 5월 4일 (음) / 1592년 6월 13일 (양)
  • 한산대첩: 1592년 7월 8일 (음) / 1592년 8월 14일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