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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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 制勝堂
Jeseungdang Hall
Goto.png 종합안내판: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해설문

국문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이순신이 부하들과 작전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하던 곳이다. 이곳은 현재의 해군작전사령관실과 같은 기능을 담당했다. 이순신은 선조 26년(1593) 7월 15일부터 한양으로 압송되어 갔던 해인 선조 30년(1597) 2월 26일까지 3년 8개월 동안 이곳에서 주둔했다.

‘승리를 만드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제승당은 이충무공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 업무를 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화약을 사용한 신무기인 총통의 제작과 보급에도 힘썼다. 이곳은 1,491일 동안의 일을 기록한 <난중일기(亂中日記)> 중 1,029일의 일기와 많은 시가 쓰인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이순신이 기거했던 운주당(運籌堂)*의 터이다. 이순신은 운주당을 집으로 사용하는 한편 집무실로도 사용하였다. 당시의 운주당은 이순신이 통제사에서 파직된 후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폐허가 되었다. 이후 영조 16년(1740)에 통제사 조경(趙儆)이 다시 세우고 이름을 제승당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제승당은 1976년 제승당 정화사업 때 다시 지은 것이다.


  • 운주(運籌): 지혜로 계책을 수립한다는 뜻

영문

Jeseungdang Hall

Jeseungdang Hall was built in 1739 on the former site of Unjudang Hall, which was Admiral Yi Sun-sin’s residence and naval command cente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Yi Sun-sin resided at this place for 3 years and 8 months beginning in 1593. Here, he and his subordinates planned their battle tactics and worked on improving the cannons for warships. He also handwrote a significant portion of his daily journal, entitled War Diary (Nanjung ilgi), while at Unjudang. In March 1597, he was forced to leave upon his removal from office following a conspiracy. In August that year, the Korean navy suffered a defeat at the Battle of Chilcheollyang Strait, and Unjudang was thereafter abandoned.

Admiral Jo Gyeong (1677-1743), upon his appointment as the Navy Commander of the Three Provinces in 1739, erected a monument and constructed this building to commemorate the site. He named the building, Jeseungdang, meaning “the place where victory is made.”

The building was renovated in 1976. Inside, there are paintings depicting Yi Sun-sin’s military exploits and replicas of cannons and a turtle ship us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영문 해설 내용

제승당은 1739년 운주당의 옛터에 세워졌다. 운주당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거처이자 지휘본부였다.

이순신은 1593년부터 약 3년 8개월간 이곳에 머무르면서, 부하들과 작전 계획을 세우고 화약을 사용한 신무기인 총통을 제작하는 데에도 힘썼다. 또한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를 기록한 『난중일기』의 상당한 분량을 이곳 운주당에서 썼다. 1597년 3월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운주당을 떠나게 되었고, 그해 8월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왜군에 패하면서 운주당은 폐허로 남게 되었다.

이후 1739년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조경(1677-1743)이 이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유허비를 세우고 운주당의 옛터에 건물을 다시 짓고 ‘승리를 만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내부에는 이순신의 전적을 그린 그림과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화포와 거북선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