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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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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
한자 禮安李氏 司直公派 舊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우렁길 127-25 (하리1리)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68호
지정일 1986년 12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중종(中宗) 때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이필간(李弼幹)의 아들 이영(李英)이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己卯士禍)를 피하여 고향으로 내려와 동왕 20년(1525) 경에 세운 집이다. 그 후 1925년에 사랑채를 수리하였다고 한다.

이 곳은 한절골이라 불리는데, 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면 6칸, 측면 5칸, 배면 4칸의 ‘口’자형의 건물로, 그 규모는 비록 작으나 안마당 대청 앞 기둥의 강한 민흘림 기법이나, 대들보 및 3량가의 동자기둥 등에서 소박한 옛 가옥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창의 중간 문설주를 통하여 이 건물의 처음 건립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건물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집은 예안이씨 파조로, 부사 이필간(李弼幹, ?~1514)의 맏아들 이영(李英, 1482~?)이 조선 중종 20년(1525)에 지었다고 한다.

이영은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동생 이전(李荃)·이훈(李薰‚ 1489~1552)과 함께 풍산 지역으로 낙향했고, 이후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

집은 ‘ㅁ’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면 오른쪽의 사랑채의 마루가 살짝 돌출되어 있다. 사랑채는 1925년에 수리되었다고 한다. 안채는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두었다. 양쪽 날개채에는 각각 부엌과 고방이 배치되어 있다.

집의 규모는 작지만,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집의 평면 구성이나 대들보에 쓰인 옛날식 가공 수법을 엿볼 수 있다.

  • 이 집이 위치한 마을은 한절골이라 불리는데, 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집의 이름과 관련한 정보 부족 -> 확인 필요함 (집의 이름이 원래부터 ‘사직공 종택’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임, 이영은 부사직(副司直 : 종5품 무관직)을 지낸 부친 이필간(李弼幹)의 맏아들이므로,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사직공파’의 대를 잇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한 것인지..?)
  • 집의 내부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사진 검색 어려움.
  • 삼형제가 풍산으로 낙향한 것은 이곳에 진외증조부(친할머니의 아버지)인 조안도의 별서(別墅)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차 수정

참고자료

  •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443700680000 ->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어지러운 세파를 피하여 서울에서 이곳으로 내려온 예안 이씨 7대손 이영 선생이 머물던 곳이다. 중종 20년(1525)경에 지은 것으로 전하며, 안동에서 살고 있는 예안 이씨의 큰집이었으나 1925년에 현 소유자가 사서 사랑채를 수리했다고 한다. 앞면 6칸·옆면 5칸의 ㅁ자형 집으로 비록 규모는 작으나 조선시대 이 지방의 전형적인 중·상류주택의 유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앞면 중앙에 중문을 두고 오른쪽으로 사랑방과 사랑마루를 두었다. 뒤에 위치한 안채는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상방과 안방을 배치한 구성이다. 안채 대청 앞의 기둥은 네모기둥으로 기둥 아래를 위보다 굵게하여 강하게 하였다.
  •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911 -> 1925년 현재 소유자인 이용흠의 아버지가 매입하여 사랑채를 수리하였다고 한다.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은 정면 6칸, 측면 5칸의 ‘ㅁ’자형 집이다. 정면 가운데에 나 있는 중문간(中門間)에 들어서면 안마당 폭을 가득 메운 안대청 2칸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안대청의 배면에 달려 있는 띠장널창은 좌측의 문틀이 우측보다 좀 더 크며, 위틀에 가운데설주의 홈 흔적이 남아 있다. 가운데설주는 창틀 가운데에 세운 가는 기둥으로 이런 창을 영쌍창이라 하며, 18세기 이후부터 거의 자취를 감춘 고식에 속하는 창호 형식이다. 안대청의 좌측과 우측에는 상방과 안방을 두고 상방 앞으로는 부엌·고방·두지가 좌익사(左翼舍)를, 안방 앞으로는 부엌·고방이 우익사(右翼舍)를 이루게 하였다. 안방 뒷벽에는 벽장이 설치되어 있고, 우측면에는 쪽마루가 마련되어 있다. 중문간 좌측으로는 마구간과 모방을 배열하고, 우측에는 사랑 공간을 두었다. 사랑 공간은 사랑방 1.5칸과 사랑 대청 1칸이 좌우로 나란히 놓여 있다. 사랑 공간의 정면 모두에는 쪽마루를 깔았다. 건물의 구조 양식은 자연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민도리 형식의 3량가(三樑架)에 서산각지붕을 얹었다.
  • (참고) 이필간, 디지털도봉문화대전 http://dobong.grandculture.net/dobong/toc/GC04900358 -> 이필간(李弼幹)[?~1514]은 예안 출신으로 예안 이씨(禮安李氏) 안동파(安東派)의 파조(派祖)이다. 할아버지는 세종(世宗)조에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이온(李韞)이며, 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 이신(李愼), 어머니는 선공감 부정(繕工監副正) 조안도(趙安道)의 딸 정경부인(貞敬夫人) 양주 조씨(楊州趙氏)이다. 은풍 신씨(殷豐申氏)와의 사이에서 네 아들을 두었다. 음보(蔭補)로써 어모장군 행충무위부사직(禦侮將軍行忠武衛副司直)을 지냈으며 한양 동소문(東小門) 밖 소용동(所用洞)에 거주하다가 1514년(중종 9)에 세상을 떠났다. 기묘사화(己卯士禍)를 계기로 이필간의 아들들이 이필간의 신위를 안동 풍산현으로 옮겨 사당에 모시고 예안 이씨 파조로 추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