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이전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사용자 3명의 중간 판 4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문화유산정보
 
|사진=영덕이전재.jpg
 
|사진=영덕이전재.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706160000 영덕 이전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706160000 영덕 이전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영덕 이전재
 
|대표명칭=영덕 이전재
|영문명칭=
+
|영문명칭=Ijeonjae Ritual House, Yeongdeok
 
|한자=盈德 泥田齋
 
|한자=盈德 泥田齋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길 471-24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길 471-24
22번째 줄: 21번째 줄:
  
 
=='''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
===국문===
없음.  
+
이전재는 남의록(南義祿)과 그의 아들 남경훈(南慶薰)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려고 지었다. 조선 인조 9년(1631)에 문중 사람들의 학문을 닦고 연구하기 위한 공간으로 처음 세웠으나, 이후 후손들이 용도를 바꾸었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23년(1886)에 고쳐 지었다.
  
===수정 국문===
+
남의록은 임진왜란 때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선무원종공신에 봉해졌다. 선조 36년(1603)에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남경훈은 아버지를 따라 함께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학문과 문장에도 뛰어났다.
====초고====
 
이전재는 남의록(南義祿, 1551~1620)과 남경훈(南慶薰 1572~1612) 부자의 묘소 아래에 있다. 18세기 중엽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건물은 1631년(인조 9) 강학을 위한 공간으로 처음 세워졌으나 후손들이 이후 재사로 용도를 바꾸었다. 1886년 중건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남의록은 영덕에서 의병을 모아 임진왜란에 참여한 공로로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1603년에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남경훈은 남의록의 아들로 부친을 따라 함께 의병활동에 참여하였다. 부자는 함께 곽재우의 진영에서 활약하였다. 남경훈은 학문과 문장도 뛰어나 당대 석학인 정경세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
이전재는 모임과 숙소용으로 쓰이는 중심 건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제수청과 관리사로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경상북도 지역의 재사들이 口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전재는 중심 건물 앞에 제수청이 있고 오른쪽에 관리사가 있다. 왼쪽은 흙과 돌을 쌓아 담을 만들고 출입문을 내었다. 중심 건물은 가운데에 누마루와 계단이 있고, 양옆에는 온돌방이 있다.
  
이전재는 두 선조의 신위를 모시면서 제관의 숙소로도 사용되는 건물, 음식을 준비하는 제수청, 그리고 관리하는 건물 등 3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
===영문===
 +
'''Ijeonjae Ritual House, Yeongdeok'''
  
====1차 수정====
+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and the maintenance of the tombs of Nam Ui-rok (1551-1620) and his son Nam Gyeong-hun (1572-1612) of the Yeongyang Nam clan. The building was first established in 1631 by the members of the family as a study hall, and later came to be used as a ritual house. The current building dates to 1886.
이전재는 남의록(南義祿, 1551~1620)과 아들 남경훈(南慶薰, 1572~1612) 부자의 묘소를 보호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1631년 문중의 강학을 위한 공간으로 처음 세워졌으나, 이후 후손들이 용도를 바꾸었다. 1886년 중건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남의록은 영덕에서 의병을 모아 임진왜란에 참여한 공로로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1603년에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남경훈은 아버지를 따라 함께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학문과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
Nam Ui-rok raised a civilian arm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was therefore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03,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for military officials. Nam Gyeong-hun had followed his father into battle and was also a brilliant scholar and writer.
  
이전재는 두 선조의 신위를 모시면서 제관의 숙소로도 사용되는 건물, 음식을 준비하는 제수청, 그리고 관리하는 건물 등 3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
The complex consists of a main building used for gatherings and as lodging, a building for preparing the food for the ancestral rituals, and a custodian’s office. The ritual houses in Gyeongsangbuk-do Province usually have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however this ritual house has separate quarters and a small gate to the left. The main building has an elevated wooden-floored porch with stairs in the center with an underfloor-heated room to each side.
  
====자문의견====
+
===영문 해설 내용===
#분야별 자문위원1
+
이전재는 영양남씨 가문의 남의록(1551-1620)과 아들 남경훈(1572-1612)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는 재사이다. 1631년 문중 사람들이 공부하기 위한 공간으로 처음 지었으나, 이후 후손들이 용도를 바꾸었다. 현재의 건물은 1886년에 고쳐 지었다.
#*건물구성은 두 선조의 신위를 모시면서 제관의 숙소로도 사용되는 이전재, 음식을 준비하는 제수청, 그리고 관리하는 건물 등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치는 튼‘ㄷ’자형을 이룬다. 이전재 전방에 좁은 안마당 건너편에 위치한 제수청과 二자형을 이루고 안마당 우측에 관리사, 좌측에는 이전재와  제수청간을 토석담장으로 막고 그 사이에 출입문인 일각문을 내어 전체적으로는 ‘ㅁ’자형 배치형태를 이룬다.
 
#분야별 자문위원2
 
#*이전재는 임진왜란 때에 의병 활동을 한 남의록(南義祿, 1551~1620)과 남경훈(南慶薰, 1572~1612) 부자의 묘소를 관리하고 묘제를 지내기 위해 1631년에 건립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886년에 중건한 것이다.
 
#*이전재는 회합과 숙소용으로 쓰이는 중심 건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건물, 관리사로 구성되어 있다. 중심 건물은 팔작지붕의 누각 형태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집 구조이다. 중간에 마루를 두고 마루 좌우칸은 전면에 마루, 후면에 방을 두었으며 그 옆 칸은 전체가 방이다. 이전재는 경상북도 지역의 보편적 재사와 구별되는 독특한 구조로서 시대성과 지역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2차 수정====
+
남의록은 임진왜란 당시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공신이 되었고, 1603년에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남경훈은 아버지를 따라 함께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학문과 문장에도 뛰어났다.
이전재는 남의록(南義祿, 1551~1620)과 아들 남경훈(南慶薰, 1572~1612)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1631년 문중의 강학을 위한 공간으로 처음 세워졌으나, 이후 후손들이 용도를 바꾸었다. 현재의 건물은 1886년에 중건한 것이다.
 
  
남의록은 임진왜란 당시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1603년에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남경훈은 아버지를 따라 함께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학문과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
이전재는 모임과 숙소용으로 쓰이는 중심 건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건물, 관리사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경상북도 지역의 재사들이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전재는 중심 건물 앞에 제수청이 있고 오른쪽에 관리사가 있다. 왼쪽에 출입문을 내었다. 중심 건물은 가운데에 누마루와 계단이 있고, 양옆에는 온돌방이 있다.
 
 
이전재는 회합과 숙소용으로 쓰이는 중심 건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제수청, 관리사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경상북도 지역의 재사들이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전재는 중심 건물 앞에 제수청이 있고 오른쪽에 관리사가 있으며 왼쪽은 토석 담장에 출입문을 낸 구조이다. 중심 건물은 가운데에 누마루를 두고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64번째 줄: 53번째 줄:
 
[[분류:문화재자료]]
 
[[분류:문화재자료]]
 
[[분류:재실]]
 
[[분류:재실]]
 +
[[분류:2020 영문집필]]
 +
[[분류: 2020 국문집필]] [[분류: 2020 국문초안지원사업]]

2021년 2월 5일 (금) 16:34 기준 최신판

영덕 이전재
Ijeonjae Ritual House, Yeongdeok
영덕 이전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덕 이전재
영문명칭 Ijeonjae Ritual House, Yeongdeok
한자 盈德 泥田齋
주소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길 471-24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16호
지정일 2013년 10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곽(3동)
웹사이트 영덕 이전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전재는 남의록(南義祿)과 그의 아들 남경훈(南慶薰)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려고 지었다. 조선 인조 9년(1631)에 문중 사람들의 학문을 닦고 연구하기 위한 공간으로 처음 세웠으나, 이후 후손들이 용도를 바꾸었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23년(1886)에 고쳐 지었다.

남의록은 임진왜란 때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선무원종공신에 봉해졌다. 선조 36년(1603)에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남경훈은 아버지를 따라 함께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학문과 문장에도 뛰어났다.

이전재는 모임과 숙소용으로 쓰이는 중심 건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제수청과 관리사로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경상북도 지역의 재사들이 口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전재는 중심 건물 앞에 제수청이 있고 오른쪽에 관리사가 있다. 왼쪽은 흙과 돌을 쌓아 담을 만들고 출입문을 내었다. 중심 건물은 가운데에 누마루와 계단이 있고, 양옆에는 온돌방이 있다.

영문

Ijeonjae Ritual House, Yeongdeok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and the maintenance of the tombs of Nam Ui-rok (1551-1620) and his son Nam Gyeong-hun (1572-1612) of the Yeongyang Nam clan. The building was first established in 1631 by the members of the family as a study hall, and later came to be used as a ritual house. The current building dates to 1886.

Nam Ui-rok raised a civilian arm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was therefore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03,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for military officials. Nam Gyeong-hun had followed his father into battle and was also a brilliant scholar and writer.

The complex consists of a main building used for gatherings and as lodging, a building for preparing the food for the ancestral rituals, and a custodian’s office. The ritual houses in Gyeongsangbuk-do Province usually have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however this ritual house has separate quarters and a small gate to the left. The main building has an elevated wooden-floored porch with stairs in the center with an underfloor-heated room to each side.

영문 해설 내용

이전재는 영양남씨 가문의 남의록(1551-1620)과 아들 남경훈(1572-1612)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는 재사이다. 1631년 문중 사람들이 공부하기 위한 공간으로 처음 지었으나, 이후 후손들이 용도를 바꾸었다. 현재의 건물은 1886년에 고쳐 지었다.

남의록은 임진왜란 당시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공신이 되었고, 1603년에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남경훈은 아버지를 따라 함께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학문과 문장에도 뛰어났다.

이전재는 모임과 숙소용으로 쓰이는 중심 건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건물, 관리사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경상북도 지역의 재사들이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전재는 중심 건물 앞에 제수청이 있고 오른쪽에 관리사가 있다. 왼쪽에 출입문을 내었다. 중심 건물은 가운데에 누마루와 계단이 있고, 양옆에는 온돌방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