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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진성이씨 두솔원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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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진성이씨 두솔원재사
안동 진성이씨 두솔원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진성이씨 두솔원재사
한자 安東 眞城李氏 兜率院齋舍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학가산온천길 143-15 (서후면)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88호
지정일 2011년 6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안동 진성이씨 두솔원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기존 문안 없음.


수정 국문

초고

두솔원재사는 진성이씨 가문에서 안동 입향조인 송안군 이자수(松安君 李子脩)의 묘를 관리하고 묘제를 지내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10월 15일에 제사를 지낸다.

이자수는 진성 이씨의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로, 고려 공민왕(恭愍王) 10년(1361) 홍건적의 침입 때 큰 공을 세웠다.

‘ㅁ’자형의 평면으로 이루어진 재사 건물은 1700년대에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전해진다. 처음 지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창호의 구성 방식이나 건축 기법 등에서 1700년대의 건축적 특징이 확인된다. 건물은 2017년 대대적인 보수가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재실 바로 뒷산에 이자수와 그의 부인이 묻힌 두 개의 봉분이 있고, 입구에는 송안군 유허비 1기가 서 있다.


  • 재실 평면 배치 알 수 없음.
  • 이자수의 둘째 아들 이운후와 그의 아들 이정의 자손이 안동에 세거하며 크게 번성하였다. 이자수의 5대손이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로 꼽히는 퇴계 이황이다.
  • 뒷산에 있는 두 개의 봉분 중 어느 것이 이자수의 묘인지는 알 수 없다. 두 무덤 앞에 세워져 있는 묘갈은 선조 3년(1600)년에 후손인 이정회가 세웠다.
  • 재사가 자리한 서후면에는 안동 삼태사(권행, 김선평, 장정필)의 묘와 묘단, 류중영의 묘가 자리하고 있고, 각 가문에서 선조들의 묘를 관리하고 묘제를 지내기 위해 세운 재사가 함께 있다.


1차 수정

참고자료

  • 두솔원재사, 진성이씨 대종회 http://www.jinseong.org/ -> 이 재사가 있는 곳은 원래 객관(客館)이 있던 곳이었다. 속명으로는 ‘두실원’이라 부른다. 재사는 당초 재사 뒤 밭에 있다가 삼 백여 년 전에 현 위치로 옮겼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10월 14일에 재계하는데, 제사 음식이 정결치 못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한 밤중에 호랑이가 이 집을 타넘고 다닌 이변이 있었다 한다. ‘두솔원재사(兜率院齋舍)’라고 쓰여진 현판 1개가 마루 위에 걸려 있다. 21세 후손 이대석씨가 22년째 재사를 관리하고 있다. 묘소는 재사 뒤편에 있다. 재사 입구에는 송안군 유허비 1기가 서 있다.
  • 안동 진성 이씨 두솔원 재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30006 -> 안동 진성 이씨 두솔원 재사는 진성 이씨 안동 입향조인 송안군(松安君) 이자수(李子脩)의 묘소와 묘제를 받들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2011년 6월 2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88호로 지정되었다. 1700년대에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부재의 상태와 평면 형태, 창호의 구성 수법 및 부재의 치목 기법 등에서 1700년대 재실 건축물의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건축적 완성도는 약하지만 건축 형식이나 수법에서 고식을 찾을 수 있고, 평면 형태가 주거 건축과 유사한 점 등은 안동 지역의 다양한 재실 건축의 유형을 보여 준다.
  • 안동 진성이씨 두솔원재사,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31,05880000,37&pageNo__=5_1_1_0&pageNo=1_1_2_0 -> 두솔원재사는 1700년대에 현지로 이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정확한 년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부재의 상태등과 평면형태, 창호의 구성수법 및 부재의 치목기법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건시기와 부합하다고 보여 지며 이건당시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소박한 재실건물이며, 목부재에 헛구멍이 많은 등 현재의 보존상태가 좋지 않고 이건시 배면 창호가 일부 변형된 부분은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건축적 완성도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건축형식이나 수법에서 고식을 찾을 수 있고, 평면형태가 주거건축과 유사한 점 등은 안동지역의 다양한 재실건축의 유형을 보여주는 예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근년에 개조된 문을 복원하고 부설된 가설창고를 없앤다면 가치가 충분하다.
  • 송안군묘소 시제를 다녀와서, 오토산,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uh512/12392 -> 송안군은 진성이씨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로, 안동 마라촌(마애)로 옮겨 살았던 안동 입향조로, 공민왕 때 공을 세워 안사공신 송안군(安社功臣 松安君)에 봉해지고 서후면 명리에 묻혔다. 두솔원재사는 송안군묘소 아래 위치하며 1700년경에 옮겨지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상고할 문헌이 없고 300여년이 넘는 건물로 건축구조와 역사성을 고려하여 2011년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재사가 바람에 씻기고 퇴락하여 기울어져 있는 상태로 전체적인 보수가 시급한 상태에서 대종회장님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도비 6억원의 예산으로 2017년부터 전면보수 중에 있으며(2019년 포스팅) 중수기는 22세손 이동수 안동문화원장이 썼다.
  • (참고) 삽짝풍수, https://blog.naver.com/kwongunho/30166034832 -> 이자수의 산소는 안동시 서후면 명리 마을에 있다. <중략> 진성이씨 『오가세록』의 이자수 묘갈기에 “공의 묘소는 안동부 서쪽 두실원 뒷골에 있는데, 예로부터 묘갈이 없어 상하 두위에서 어느 것이 고위이고 어느 것이 비위인지 판단하지 못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문인 듯 실제로 두 묘 모두에 갈석을 세워 놓았다.
  • (참고) 명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228 -> 도솔원(兜率院)은 조선 세조(世祖) 때 관원이나 선비들이 왕래하다가 날이 저물면 묵던 여관인 도솔원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원은 역과 역 사이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했던 국가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여관으로 안동 지역에는 안기역을 포함하여 7개의 역과 제비원을 비롯한 17개의 원이 설치되어 있었다. 『영가지』에 따르면, 도솔원 동쪽에는 높이 2.3m가량의 미륵불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직전에는 불상에서 간장 같은 땀이 흐르고 배꼽에서는 샘처럼 솟아 국난을 미리 예견하기도 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