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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림사 보광전 수리보고서, 문화재청, 2012 -> 복장기문 전문 ; 불상대시주 박줏동 두 내외, 수희시주가 연화사 광인, 자회 등과 함께 숭림사의 불상 삼존 및 두 원통불상 각 하나씩 같이 조성하였다. (연화는 시주를 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므로 조각승으로 보기에는 어려움.)
 
*숭림사 보광전 수리보고서, 문화재청, 2012 -> 복장기문 전문 ; 불상대시주 박줏동 두 내외, 수희시주가 연화사 광인, 자회 등과 함께 숭림사의 불상 삼존 및 두 원통불상 각 하나씩 같이 조성하였다. (연화는 시주를 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므로 조각승으로 보기에는 어려움.)
(연화는 시주를 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므로 조각승으로 보기에는 어려움.)
 
 
*한국의 고건축 제23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보광전 좌우 협시불은 1986년까지도 있었으나 이후 도난당했다고 한다. 불상 뒤에 봉안된 후불탱화는 1913년 작품으로, 1614년 조성 당시의 삼존상을 보고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고건축 제23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보광전 좌우 협시불은 1986년까지도 있었으나 이후 도난당했다고 한다. 불상 뒤에 봉안된 후불탱화는 1913년 작품으로, 1614년 조성 당시의 삼존상을 보고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익산 숭림사 보광전, 세상을 밝게,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eongho0805/150146865670 -> 원래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의 삼세불이 모셔졌었는데 1986년 좌우 협시불이 도난당한 후 다시 관음보살과 아미타불을 제작하여 모신 것이라 한다.(한국의 고건축/193-194)
 
*익산 숭림사 보광전, 세상을 밝게,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eongho0805/150146865670 -> 원래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의 삼세불이 모셔졌었는데 1986년 좌우 협시불이 도난당한 후 다시 관음보살과 아미타불을 제작하여 모신 것이라 한다.(한국의 고건축/193-194)

2021년 6월 28일 (월) 00:04 판


숭림사 보광전 목조석가여래좌상
숭림사 보광전 목조석가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숭림사 보광전 목조석가여래좌상
한자 崇林寺 普光殿 木造釋迦如來坐像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백제로 495-57 (송천리)
지정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지정일 2001년 4월 27일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軀
웹사이트 숭림사 보광전 목조석가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보광전 중앙에 모셔진 목조의 석가모니불상이다. 불상 가슴 속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광해군 6년(1614)에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여래좌상과 약사여래좌상 등의 삼세불*三世佛을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석가여래좌상 1구만 남았다. 몸집이 크고 갸름한 얼굴이 특징으로, 넓게 벌어진 어깨와 넓은 무릎 등이 균형이 잡혀 안정감이 있다. 따로 만들어 끼운 두 손의 모양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전형적인 석가여래불의 손모양이다. 조성 연대가 분명한 조선 후기 불상으로서, 평면적인 신체 표현과 두드러진 옷주름 표현 등에서 17세기 불상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 삼세불 :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로 현세불 석가여래불, 미래불 약사여래불, 과거불 아미타불을 가리킴.
  • 항마촉지인 : 석가모니가 도를 깨달은 순간에 취했던 손모양으로, 오른손을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습.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숭림사의 중심법당인 보광전에 모셔진 삼존불상 중 가운데에 자리한 석가여래상으로, 1614년에 조성되었다.

불상의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이 표현되어 있고,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솟아있다.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데, 오른손은 손바닥이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손가락을 맞대었다. 이러한 손모양은 석가모니불이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불상의 가슴 속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이 불상과 함께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의 좌상이 함께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협시불은 1986년에 도난당했고, 이후 지금의 아미타여래와 관세음보살을 새로 만들어 모셨다.

  • 불상의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운 것이다.
  • 발원문 발견 시기 확인 필요. / 발원문에도 누가 조성했는지는 나와있지 않은 것으로 보임.
  • 보광전은 본래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전각이지만, 숭림사의 보광전에 현재 중앙에 목조석가여래좌상을 모셨고, 좌우에는 철제관음보살과 아미타불이 있다.

참고자료

  • 숭림사 보광전 수리보고서, 문화재청, 2012 -> 복장기문 전문 ; 불상대시주 박줏동 두 내외, 수희시주가 연화사 광인, 자회 등과 함께 숭림사의 불상 삼존 및 두 원통불상 각 하나씩 같이 조성하였다. (연화는 시주를 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므로 조각승으로 보기에는 어려움.)
  • 한국의 고건축 제23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보광전 좌우 협시불은 1986년까지도 있었으나 이후 도난당했다고 한다. 불상 뒤에 봉안된 후불탱화는 1913년 작품으로, 1614년 조성 당시의 삼존상을 보고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 익산 숭림사 보광전, 세상을 밝게,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eongho0805/150146865670 -> 원래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의 삼세불이 모셔졌었는데 1986년 좌우 협시불이 도난당한 후 다시 관음보살과 아미타불을 제작하여 모신 것이라 한다.(한국의 고건축/193-194)
  • 익산 숭림사 보광전 - 2020년 영문집필 -> 보광전은 숭림사의 주 법당이다. 전각 내부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을 중심으로 양옆에 관음보살과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숭림사는 1345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절 이름은 중국의 숭산 소림사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2001년에 해체 수리하였다. 건물 내부에도 섬세하게 조각된 용, 극락조, 닫집 등으로 장식하여, 부처가 계시는 극락세계를 표현하였다.